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208

 

수레바퀴돌듯 일상이 돌아가지만 차 한 잔 잠시 마시거나 하늘 한 번 올려다 볼 여유 정도는 갖고있어서 다행입니다. 거기에 조금 더 호사를 부려 책을 보거나 그림감상을 하며 사색에 빠지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말이 다가오며 마음은 들뜨고 몸은 바빠져 어수선하기만하고 책이 눈에 들어올리 만무합니다. 그런데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이 와중에 우연히 이 책을 만나다니... 햇살이 드는 창가에 여유롭게 앉아있는 한 여자가 있는 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작가는 매일 그림을 그리고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글만, 아니면 그림만 그리는 경우가 더 많으니 이 사실 또한 책을 더 특별하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이 책은 ‘방’을 매개로 펼쳐지는 여러 삶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에세이인데, 작가는 마치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그 안의 주인공과 만나고 온 것처럼 당시의 상황과 뒷이야기와 주변의 작은 소품들이 흩어진 연유까지 섬세하게 글로 담아냈습니다. 가끔씩은 어디부터가 작가 개인의 감상이고 어디부터가 그림에 대한 이야기인지 경계선이 모호하게 느껴졌고 그것은 오히려 이야기에 더 깊게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미술 교과서에 나온 유명한 인상파화가정도만 알던 나에게 네이버에 검색해도 자료가 쉽게 나오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화가들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작가의 감상적인 이야기와 그림에 대한 해석을 들으면서 어느새 저도 공감하고 위로받고 있었습니다.

그림이란 것은 우리의 삶과 절대 떨어져있을 수 없고,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모든 일상들은 한폭의 그림으로 담아 영원히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장면들인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이불자락을 움켜쥐고 꼼지락거리는 아이의 모습도, 식구들과 한자리에 앉아 담담하게 밥을 먹는 모습도, 퇴근길에 슈퍼에 들러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저의 모습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란 것을 말입니다... 소확행과 비슷한 말일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일상 자체가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인데 화려하거나 색다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치를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방’은 우리의 일상과 기억,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수많은 시간과 사건의 공간을 말합니다. ‘방’에서 우리는 숨기도 하고, 지키기도 하고, 도전하기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을 보다보면 또 하나의 재미난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예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는 것입니다. 프랜시스 루이스 모라가 1914년에 그린 「뉴욕시티의 지하철 탑승객들」이란 그림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같이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신문. 이 광경을 너무나 익숙하게 어디서 본 것 같았습니다. 신문을 핸드폰으로 바꾸니 영락없이 지금과 똑같습니다!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며 혼자 웃었습니다. ‘시대가 이렇게 바뀐 것이었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바뀐거네.’ 하면서요. 이 그림은 유난히도 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상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있는데 그 변화가 근본적인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동굴에 살았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집에 살고, 마차를 탄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차를 타는 것처럼 말입니다. 

올해가 끝나가는 이 즈음 짧은 여유의 시간이 난다면 이 책을 살짝 들여다보세요.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까지 얻을 수 있을 꺼예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이명신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저자 우지현 출판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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