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별난 사람들의 별난 인생을 부러워하며 오늘을 산다.
그렇게 살다가 9시뉴스나 돌아다니는 무가지 신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내가 알고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 되어 있을 때 “띵” 제대로 뒤통수를 맞는다. 

 얼마 전 둘도 없는 친구가 제주도로 떠났다. 일단은 살 곳을 찾아보겠다고 한 달을 예정하고 “완전초보”딱지를 단 소형차를 끌고 갔다. 간땡이가 얼마나 작은지 2년 넘게 그 딱지를 못 떼던 친구가, 벽산아파트 주차장에 고이 모셔두던 그 차를 몰고 떠났다.
 늘 “떠나야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친구에게 거긴들 뭐가 다르냐고 덤덤히 되받아 말했던 나는 2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참 커가는 아이들과 불안해하는 내 동생을 데리고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제부가 금천구를 떠났다. 그들도 제주로 떠났다. 
 새 길을 간다는 건 어떤 소설가의 말대로 ‘길 없는 길’을 간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길을 떠난 사람들에게 부러움보다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떠나보지 않고 “그 길”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나도 떠나기로 했다.
다만 내가 가는 길은 우리 동네에 있다. 그 길은 시흥대로나 20미터도로, 산기슭공원이나 모아래공원, 호암산과 한내(안양천) 사이에 나있는 길이다. 동네로 무슨 길을

떠나냐고 하시겠지만 얼마나 많은 길과 골목이 나에겐 새로운지 모르겠다. 이번에 가는 시흥유통상가도 그런 아주 낯선 길 중에 하나다. 

 하는 일 때문에 공구를 사러 몇 번 가봤지만 엄청난 크기에 기가 눌려 입구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오곤 했다. 그럴만한 것이 4000여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물류가 움직이겠는가. 호기심에 홈페이지(
http://www.toolok.co.kr/)를 찾아보니 그 다양함이 그야말로 삶의 박물관이다. 우선 취급하는 품목이 공구, 기계제품, 기계부속, 금속, 섬유, 비금속, 건축, 건설, 토목, 전기, 전자, 전산, 제어, 화학, 화공, 의료, 의공학, 업무보조, 생활보조, 기타로 분류되어 있다. 정말 살아있는 인간생활박물관이 여기 아니겠는가. 

 33동으로 구분된 건물이 비슷한 품목끼리 나뉘어있다고 하는데 가도 가도 새롭기만 하다. 또 많은 업체들이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락방 같은 복층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1987년 개장했다고 하니 그 역사도 만만치 않다. 규모 또한 서울에서 둘째가라면 서럽지 않을까한다. 위치는 시흥사거리를 지나 시흥대로를 따라가다 기아대교 바로 전에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몇 동으로 가야 내가 원하는 걸 구입할 수 있나 찾아보고 가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한번은 기계 이름도 모르고 “나무를 가공하는 절삭기인데....이리저리 생겼다”는 설명만 듣고 찾아주면서 필요한 설계 변경까지 해주어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정말 이곳에서는 인간사 안 되는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러니 한번쯤은 어떤 곳인지  인간이 사용하는 만 가지 도구를 헤아리는 여행을 해보심 어떨지.

조금만 걸으면 이런 여행도 가능하다는 사실 가끔 기억해두자. 어떤 분이 얘기하건데 사람이 젊게 사는 방법이 두 가지인데  사랑하는 것과 여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 젊어지기 위해서라도 길을 나서자.
가는 길마다 사람이 다르고 사는 모양새도 다르다. 가는 곳마다 볼꺼리로 넘친다. 향기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다름을 찾아 가는 길. 또 다름 속에 같음을 찾아가는 길이 나에겐 동네답사다. 터덜터덜 걷다가 구경거리가 생기면 기웃기웃하다가 느릿느릿 사람들도 보다가 좀 지치면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다음엔 어디로 가볼까’하고 길을 그려본다.
 ‘왠 여유자작이야’하시는 분 있으시겠지만 이것이 나의 놀이이고 삶이라는 것을 나도 잘 몰랐다는 거.




산아래 문화학교
김유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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