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사람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이하 비없세)에서 진행한 희망버스를 잇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헌장제정 운동 설명회에 참여했다.  비없세 측은 비정규직 문제가 단지 한 기업의 고용유연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빈곤과 차별의 뿌리가 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모두가 함께 하는 사회적 운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22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헌장제정운동 선포식이 진행됐다.

비없세는 입법 청원 운동이나 사회적 선언이 아니라 '헌장'을 제정하는 이유는 법을 넘어, 돈의 이해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 사회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라 한다. 헌장 제정을 통해 우리 사회 모두가 승자독식의 경쟁에서 필연적으로 나쁜 일자리를 만들고, 비정규직 고용에 목을 매는 기업들에게 인간 존엄의 최소 기준을 공유하고, 사회적 공감과 동의를 헌장으로 모아 내자는 것이다.

모름지기 경제란 모든 이가 고르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을 말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존엄하게 함께 잘 사는 것이 경세제민(經世濟民) 즉 경제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자긍심 넘치는 삶의 과정으로 일이 아니라 돈을 목적으로 하는 소외된 노동이 강제된다. 특히 레이건 대처 시대 이후 득세한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는 이런 논리를 극단적으로 밀고 갔는데, 예를 들면 빈부격차가 빈자에겐 더 많은 일을 하게하고 부자에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한다며 빈부격차의 확대를 환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서는 더 적게 주고 더 많이 일을 시키고 언제든지 해고하길 바란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등등은 그 탐욕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자본주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망하게 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지속되는 미국 발 자본주의 위기는 그것을 잘 보여 준다. 반면에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마저 박탈당한 노동자 민중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저항에 나서고 있다.

최근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이제 더 이상 신자유주의 식의 반인간적 논리를 용서할 수 없다는 강력한 경고다. 
민주주의 사회는 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적 협약으로 존재한다. 그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헌법이다. 그리고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한 사회의 사회적 기준을 천명하는 것은 헌장, 선언, 협약 등이 있다.

비없세는 헌장을 통해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도리'의 기준을 마련하자고 한다. 아무리 많은 희열을 주어도 우리가 마약을 범죄시 하는 것은 그것의 과정과 결과가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적 가치를 해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매매, 장기 매매를 범죄로 인식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는 그 대상이 사람이라는 점에서 경영상의 이유로 물건 취급해서는 안 된다.

우리  나라 노동법이 노동 조건의 기준을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최소 조건'으로 규정했듯, 사람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삼고, 노동자들을 일회용 도구로 삼는 것은 그 자체로 반인간적인 패륜적 범죄가 된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비극에서 보듯 구호가 아니라 이른바 노동유연화는 실제로 묻지마 연쇄살인이 되고 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으로 이어지는 좌절과 죽음으로 가는 길을 막고 우리 사회의 인간적 염치, 내적 도리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워보자는 취지가 이번의 헌장제정 운동이다.

그리고 비없세는 헌장 제정을 에 대해 전문가들 중심으로 내용을 만들고 그것에 대한 동의를 묻는 위로부터의 방법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고통을 직접 느낀 이들의 의견을 아래로부터 모아 가자고 제안했다.
아주 바람직한 제안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직접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나와 무관한 것들이 나를 규정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 결과 기업은 민주주의와 인권과 무관한 자본과 경영자들의 봉건적 성채가 되고 있다.
실제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지난 십수년의 신자유주의 체제는 우리사회를 2-30년 전으로 돌려 버렸다.
이런 퇴행을 바로잡는 것도 역시 헌법 제 1조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정신을 잘 살리는 것이고, 그 중심에 당사자들의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에 둬야 한다.
월가 시위에서 나온 "일하는 사람 들, 우리가 99%"라는 구호는 민주주의와 인간된 도리에 대한 자각이자 규탄이다.
비없세의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헌장'운동이 우리사회 타락한 염치를 되살리는 아래로부터의 힘찬 행진이 되길 기대한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상담문의 859-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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