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골목골목에도 불어오는 날. 시흥3동 답사길을 마저 걷기로 한다. 오늘은 드디어 철재상가쪽 행선지를 정하고 길을 나섰다.
시흥대로를 사이에 두고 시흥유통 상가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들어서는 입구가 한산하다. 계절이 스산하니 거래가 없었던지 상가 벽에 줄지어 화물용 트럭이 주차되어있다.
시흥유통상가도 IMF이후로 “경기가 없다”하지만 이곳 중앙철재상가와는 다르게 드나드는 차량에 사람으로 복잡했었다. 자동차든 사람이든 뜸하니 상가 주인들도 안 보이는 곳이 있다.

 


여기도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작업장과 사무실을 복층구조로 두고 있다.(어딜 가나 어려운 환경은 새로운 지혜를 낳게 마련!) 누구라도 붙잡고 얘기를 하고 싶은데 쉽게 말문이 나오지 않는다.
보이는 분들이 그나마 힘겹게 일하시는 연로한 분들이라 작업에 방해가 될까싶어 궁금함도 참아졌다. 간간이 젊은이들도 보이긴 한다.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들로 보인다. 기간산업으로 갈수록, 어려운 작업환경이면서 전문 기술을 요구하는 곳일수록 청년들이 없다는 말을 이곳에서도 실감한다.

건설현장 관련한 일을 하는 옆 지기도 힘든 일을 배우려는 청년이 없어 아쉬워하는 소리를 가끔 한다. 일손이 딸리는데 정작 기술 있는 사람은 없고 청년들은 여전히 실업사태이니 산업 불균형이 문제이긴 하다. 그렇다고 ‘젊은이들 생각 없다고 탓할 수 없지’않는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노동환경이 좋다면 왜 마다 하겠는가? 그만한 대우와 대가가 있다면 오지 말라고 해도 갈 청년들이 있을 거다. 

이 부분이 노동정책과 교육문제가 함께 가야 하는 지점이 아니겠는가. 불균형을 깨는 방법은 정책적인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정책은 교육을 통해서 제대로 실현될 수 있으니 같이 머리를 맞대야한다. 사실 내가 철재상가 쪽으로 걷기 어려웠던 이유는 내 주변과 우리들의 현실을 봐야한다는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안 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것이 진실이라도. 그렇다면 기다린다고(어떤 문제는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절로 해결되기도 하지만!)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그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지만 바꿔가야 내가, 서로가, 모두가 살 만하지 않겠는가.

그렇담 내가 노동부장관도 해결 못한 일을 해야 된다는 건가. 맙소사! 난 그냥 걷기를 좋아할 뿐이고 걸으면서 세상구경을 하는 것이 쉬는 거, 노는 거인 소시민이다. 어쩌라고. 어려운 질문에 스스로 빠지는가. “누구 나 좀 말려주세요.”

하지만 한 가지 노동부 장관도 못하는 일은 내가 하고 있다. 새벽밥 먹고 산업현장으로 나가는 사람 뒷바라지 하며 이런 불균형도 맞춰보겠다는 마을신문에 마을 답사기를 기고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있네’. 가끔 이쁘기도 하고 밉기도 한 동네 아이들과 씨름하며 마을 답사를 다니고 있다.

 인적 드문 곳에 사람이 지나가니 반대로 상가에 계신 분들이 나를 구경하는 일이 벌어지는 곳. 한켠에 유일하게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오동나무다. “오동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밤에~”라는 가사의 그 오동나무 말이다.
그야말로 나무가 살기엔 유해한 환경인데 떡하니 자리를 잡고 햇빛을 받고 있다. 이 녀석은 이파리가 커서 한껏 광합성을 잘하여 쑥쑥 잘 크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폐유가 흐르는 곳에서도 한뼘에 흙만 있으면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자리 잡고 자란다.

옛 어른들이 연기 나는 굴뚝 뒤에 심어 유해가스를 정화하고자 했을까 싶지만(아마도 잎새가 커서 그늘이 많이 지니 뒷마당에 심었는데 굴뚝에서 나는 가스를 잘 잡아주었던 게지) 이놈은 정말 공해에 강하다.
잘 버텨준 기특한 오동나무를 뒤로 하고 22동까지 있는 상가들을 둘러본다. 워낙 전문적인 부속이나 부품들이 생산되고 판매되는 곳이라 끝까지 어리둥절하며 걸었다.
250여개의 업체가 있다하니 그 규모도 놀랍다. 골목 끝엔 아직 은행나무 잎이 남아있는 주택과 빌라들이 나란히 있다.
앗 그런데 갑자기 간판에 전화번호가 낯선 031로 시작하는 걸 보니 여기부터 안양시 석수동인가보다. 

 

 산아래 문화학교
김유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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