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우리와 의논 한 마디 없이 지나간다. 날씨도 우리의 의지대로, 경험대로 읽혀지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던가, 아니던가?

봄날 같은 가을을 즈음해서 기억을 더듬는다.  지구온난화를 뉘집 개이름 처럼 부르는 시대가 아니었을 때도 우리는 시절을 하 수상해하지 않았던가.
사는 게 녹녹치 않았던 대부분에 사람들은 날씨타령은 오유월 개팔자나 하는거라 생각한다. 그래, 그렇더라도 정신이 들고 보니 입동이 가까운 날에 웬 반팔차림의 행렬인가?
간간이 부는 가을바람이 아니라면 숨을 헐떡일만한 날, 늦은 오후 철제상가로 향하는 답사길을 택한다.
궁금함이 앞서나 거대한 철 구조물을 보면 선뜻 길을 지나다닐 수 없다. 그래서 행선지를 살알짝 숨쉬기 좋은 산아래 마을, 시흥3동 골목길,

다세대, 빌라촌이 많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난다. 골목마다 한가로운 집들이 넉넉하게 자리 잡아 단연 돋보이는 동네였다. 연립주택과 빌라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살고 싶은 동네다. 호암산과 삼성산 아래로 동네가 산으로 길게 연결되어있다.
이번 여름 큰비로 수해가 나기도 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복구는 잘되었는지’생각하며 이리저리 골목을 둘러본다. 단박에 눈에 띄는 것은 사람이다. 늦은 오후라 집으로 가는 학생들도 많고 시장가는 주부들로 가득하다. ‘이 동네엔 유독 사람이 많은 걸까?’생각해봤지만 아파트의 인구밀도만 하겠는가.

아파트로 이사한 후론 동네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못한다. 가끔 베란다 너머로 보이니 다른 사람들도 나를 동네사람으로 만나기보다 먼발치로 그냥 보는 사이다.
어린이집  앞, 부모님과 아이들이 만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인가보다. 할머니 한분이 신신당부하는 소리.  “선생님이 때리면 내가 혼내 줄 테니 할머니한테 얘기해야해!” “만약 그랬단 봐라 할머니가 가만 안 둔다!” 나까지 움찔한다. 와우...살벌한 시대여.

사명감에 불타는 그 많은 교사들 자리를 박차고 싶을 게다. 힘들지만 보람으로 버티던 교사들 슬그머니 다른 맘먹고 돌아설까싶다.
“육아는 전쟁”이라고 말했던 후배가 생각난다. 서로를 격려하고 버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에서 우리는 같은 편임을 잊지 말자. 우리는 잘살고 싶은 것처럼 너나없이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거다.
 정말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될 때 속상하다. 우리는 그런 속상함을 나누는 이웃이다. 할머님의 걱정은 들리는지 어쩐지 아이가 확 골목으로 뛰어간다.

그 골목 뒤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걱정 마시라.” 누가 이렇게 말해줬으면 싶은 늦은 오후.
터벅터벅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새뜻한 골목시장으로 들어서니 울긋불긋 여기저기 펼쳐놓은 좌판들이 말을 건다. 내가 봤던 다른 골목시장보다 아기자기 늘어놓은 좌판이 정답다.
시골시장에나 봤던 집에서 만든 묵, 한 그릇에 천원이라는 손글씨는 한껏 멋을 냈으나 그저 소박하다. 오래된 방앗간이 문을 닫고 있는 걸 궁금해 하는데 옆에 분도 “오늘 쉬는 날이래요?”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산아래 문화학교
김유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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