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르는 기억의 한 장. 첫째인지 둘째인지 누군지도 모르겠다. 갓난아기는 울고 있었고, 아기 엄마는 집을 비워 어떻게든 아기를 얼러주고 재워야 했던 그 밤. 회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절여진 배추김치처럼 꼼짝할 수 없는 피곤함에 몸서리쳐야 했던 그 밤. 아기에게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안아서 재우다 자리에 고이 누이고 토닥토닥해주던 그 밤.

아기는 만만치 않았다. 등짝이 바닥에 닿으면 자동적으로 눈을 번쩍 뜨고 울기 시작하는 녀석의 오기에 두손 두발 다 든 채 악악 울어대는 아기의 옆에 누워 눈을 감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밤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보였고, 세상의 누구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어 보이던 그 밤에 이놈의 아기를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 아무 생각없이 잠이나 쿨쿨 자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밖에 들 수 없지 않겠는가.

세 아이를 둔 아빠로서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길고 힘든 사랑의 시작’이라고 누가 그랬다지. 그 고귀한 사랑의 소임은 내 생명이 다하는 그 때 이후에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의 나’를 벗어나 ‘나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나 홀로 운전하는 시간이니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 지 11년이 훌쩍 넘은 늙은 자동차가 온전한 나만의 쉼터이다.

 사람들이 아직은 잠자리에서 뒤척이는 일요일 아침 6시. 사당으로 가는 남부순환로는 텅 비어있다. 몸을 부려놓고 왼손은 운전대에 오른손은 수동기어봉에 왼발은 클러치에 오른발은 브레이크에 올려놓고 시동을 걸면 부릉! 하고 차와 나의 신경세포가 연결된다.

나의 시선이 차의 시선이고 차의 바퀴가 나의 다리이다. 밟으면 밟는 데로 오른 발의 각도에 차는 속도로 반응하고 클러치를 누르는 깊이에 소리로 대꾸한다. 남부순환로는 새벽의 어둠만이 가득하다. 신림역을 지나 종횡무진 돌진(?)하며 서울대입구 사거리를 통과하는 나는 내 공간과 함께 있다.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오직 차와 나의 숨소리와 엔진소리뿐. 우연히 돌린 라디오 채널의 노래가 좋다면 온전한 나의 휴식은 완성, 그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당을 지나 남태령고개를 넘어 지하도로 진입하는 순간은 시속 100km로 질주한다. 고가도로에 올라서면 관악산이 청계산이 내 눈에 한 가득 펼쳐진다. 이대로 가면 하늘로 질주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란!
올라가는 때가 있으면 항상 내려가야 할 순간이 온다. 부릉부릉~ 회사로 연결되는 2차선 도로를 올라가는 차의 숨소리가 힘겹기만 하다.
차가 멈추었다. 몸뚱아리는 땅으로 내려온다.‘나의나’도 버리고 ‘회사의나’로 변신할 시간. 그렇게 휴일근무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독산1동 김희준

필자는 독산1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재빈, 재은, 재령 3남매와 함께 성장일기를 쓰고 있는 아빠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