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답사- 열세번째 이야기



W몰, 패션아일랜드, 팩토리아울렛, 마리오아울렛.... 화려한 간판이 빛나는 밤거리의 디지털 2단지. 이곳이 바로 도시 안에 자체 발광 도시. 금천구 안에 화려한 섬이다.

2단지 사거리가 마리오 사거리가 되고 패션문화의 거리 입간판이 랜드 마크가 된 곳. 몇 달 전  지인이 마리오 근처로 공장을 옮겼다 길래 올해의 물난리에 괜찮은 곳인지 먼저 물었다. 

뭔 소리인지 어리둥절한 그 분에게 초등학교 시절, 물난리로 종종 공장들이 물에 잠겼던 이야기를 했다. 허벅지까지 옷을 걷어붙이고 그 사거리를 건너던 어른들 모습이 뉴스에도 나왔으니 당연히 우리 초등생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시절을 살았던 터라 그런 기억 속에 사거리라 올 여름 엄청난 비에 무사한지부터 물었던 거다.

정말 촌스러운 걱정이다. “IT 패션문화 존”으로 부르는 마당에 웬 걱정. 주말 하루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한(약 20만) 까닭에 이제는 교통마비가 문제다. 이사했다는 그 분도 주말엔 주차장이 돼버린 주변 도로 때문에 물류가 들고 나는데 고통이 있단다.

그렇지만 이런 교통마비도 조금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면 화려한 네온 싸인 만큼 멋진 도시를 수놓는 그림이 된다.  그 유혹에 못 이겨 나도 모르게 그 곳에 간다. 별 일 없이도 간다. 때로는 식구들 선물 산다, 누구누구 생일이다, 심지어 멀리 제주 사는 동생 대신 자처해서 그 곳에 가고 만다. 50-80%로 물건 값이 싸다니...이거 앉아서 돈 버는 일인데 당연히 가야하는 거다.

난 불안한 일이 있거나 걱정되는 일, 우울한 일이 있을 땐 많이 걷는 편이다. 특히 심리적인 불안정을 느낄 땐 나도 모르게 이곳에 간다. 언제 가는 쇼핑홀릭 아닌가 할 정도 자주 갔던 적도 있다. 그럴 땐 내가 정말 도시인이구나 싶다. 화려함속에서 안정을 얻는 도시인말이다. 이제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물건구경 보다 사람구경이 앞선다.

그래도 나는 그 곳이 좋다. 나의 도시적 욕망을 채우는 탈출구 같은 곳이다. 넘보지 못하는 물건을 보더라도 그 아름다움에 취하는 게 좋다. 마치 ‘언제가는 입고 말거야’ 하고 넣어둔 사이즈가 턱없이 모자란 정장 한 벌 같은(이제는 구닥다리라 살이 빠져도 입기는 어려울 듯하지만). 약간은 묻어둔 사치스런 나의 속내가 그 곳엔 있다.

의류, 섬유 공장이 이제는 저 멀리 중국으로, 동남아로 떠난 자리. 국내 최대를 자랑하는 쇼핑타운이 그 곳엔 있다. 수많은 노동자의 노동으로 만들어낸 땀내 나던 현장의 수출 공단에서 현란한 소비 시장의 쇼핑타운으로  탈바꿈한 곳이 그 곳엔 있다. 음악만 들으면 경쾌하기 짝이 없는  노래 “사계”같은 곳이 그 곳엔 있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중략)” 가사처럼 계절이 바뀌는 것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미싱사의 일상이 그려진 이 노래. 신나는 가락 속에 애잔한 노랫말처럼 우리네 인생이 간단치 않을 때 공단 오거리를 지나 마리오 사거리를 가면 화려한 섬을 만날 수 있다.

산아래문화학교
김유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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