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주민자치 풀뿌리 자치연구모임

지금으로부터 2년 전, 금천구에 살면서 당시 민주노동당 활동을 했던 청년 4명이 매 주 아침마다 모임을 가졌다. ‘지역을 알자’는 것이 이들 모임의 취지였다.
‘민주노동당’ 이라는 성격에 걸맞게 이들은 1년 동안 금천구민들의 노동현장을 방문하고,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 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로부터 1년 후,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를 결정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는 경기도 부천 토목공무원이었다. 그의 말로 공무원 생활에 ‘젖어들기’ 전에 해고되어 공무원노조에서 일했다. 곡절이 많았지만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2010년으로 넘어갈 즈음, 그는 공무원 노조의 사회적 역할을 높이는 방안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이 만났다. 함께 ‘금천구 예산연구모임’을 꾸리기로 하였다. 지방선거 후 금천구에는 민선5기 구청장이 취임했다. 이들은 ‘예산연구모임’을 공식화하고 2010년 10월, 총 4강의 예산학교를 개최한다. 금천 지역의 각 정당 및 관심 있는 지역주민들 20명이 모인 것에서 금천구의 가능성을 보았다.

때맞춰 강구덕 구의원이 10월 6일 주민참여예산에 관한 입법을 예고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성에 차지 않았다. 입법 예고안은 실질적인 주민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형식적인 주민참여예산제도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구의회에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구의회에서 진행하는 두 번의 주민참여예산 토론회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했다. 결국 주민참여예산 주민이 20명이었던 원안을 수정해 80명으로 증원하는 첫 열매를 맺었다.

이들의 공감코드는 ‘주민자치’와 ‘금천구’이다.
사전에서는 주민자치(住民自治)를 ‘<정치> 지방 행정을 지방 주민 스스로의 의사와 책임으로 처리하는 일’로 정의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관료중심의 중앙집권적인 지방자치를 배제하고 주민이 지방자치의 주체가 되는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상식적이면서도 실현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관료중심의 정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주민들은 ‘정치’ 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목한 단어는 ‘풀뿌리’였다. 위키백과는 ‘풀뿌리 민주주의란 평범한 민중들이 지역 공동체의 살림살이에 자발적인 참여를 함으로써 지역 공동체와 실생활을 변화시키려는 참여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라고 정의한다. 2011년 초 회원을 모집하며 ‘풀뿌리연구모임’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주민참여원론을 공부하고,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더불어 구정회의록을 보며 감시(모니터링)하고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 과정에서 시흥4동 ‘기동대이전과 중학교 유치’에 대한 주민들의 오랜 염원을 알게 되었다.

“시흥동 중학교 유치에 관해 강구덕 구의원이 질의하는데 교육담당관의 답변이 이해되지 않았다. 구청장, 구의회, 주민들 모두 원하는데 왜 안 되는 걸까? 결국 경찰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주민이 나서야 할 문제라는 판단이 들었다.”며 풀뿌리연구모임의 활동가 민상호 씨는 말한다.

기동대 이전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새로운 주민들을 만났다. 기동대 신축 예산이 편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시간이 없었다. 급하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공동대표 5명과 16명의 대책위원들이 함께 움직여 주민 1만3천∼4천 명의 서명을 받아 국정감사를 통해 ‘경찰청을 신축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 주민자치의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
“기동대이전 문제는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10%는 행정력이 마무리 할 문제다. 지금은 추이를 관망하면서 유야무야되지 않도록 압박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 고 민씨는 이후 방향에 대해 얘기했다.

기동대 이전 주민대책위 상임대표를 맡은 김대성 씨는 금천구청 공무원을 정년퇴직한 지역주민이다. 그는 금천구청 명예감사관으로서 주민참여예산학교에 참여하면서 풀뿌리연구모임 과 인연을 맺었다. 그의 집은 시흥4동 기동대 바로 옆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기동대 이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인물 중의 하나이다. 지역에 오래 거주하면서 덕망도 쌓았고 그 힘으로 주민 1만 명의 서명을 연결할 수 있었다. 금천구청 등 관(官)과의 연결고리 역할도 하면서 대책위의 버팀목이 되었다.

“시흥4동에서 오래 살다보니 주민들로부터 호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미리 추진되었어야 할 일이 31년 걸렸다. 진행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으나 결과가 좋으니 우리 동네의 삶의 터전이 개선된 것에 대해 일조를 한 것 같아 마음이 좋다. 구에서도 명예감사관, 주민참여예산 등 주민자치의 시대로 가고 있다. 풀뿌리 모임이 이런 흐름에 발맞춰 각자의 생활환경에서 주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성격의 모임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는 바람을 전했다.

기동대 문제가 일단락되자마자 또 다시 바빠졌다. 2012년 예산을 편성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민상호 활동가는 업무추진비 등 과다하게 책정되어있는 예산을 줄이고 복지예산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안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의 지역운동 역량이 중앙을 감시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자치구는 감시의 사각지대였다. 앞으로 1년 동안은 주민참여보다 예산이나 제도의 구정을 감시하는 쪽으로 활동하고 싶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울시 자치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연대해서 할 것이다.”며 포부를 밝혔다.

주민자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민선5기에 대해서 “금천구청이 자신의 실적만 챙기지 말고 주민단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만남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며 당부하는 민씨는 인터뷰가 끝나자 다음 일정을 위해 종종걸음을 쳤다.

현재 풀뿌리연구모임은 초기 멤버인 정당관련자들의 참여가 뜸하고 새로운 지역주민들로 채워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다. 풀뿌리 모임을 통해 금천구 주민의 삶의 질과 살림살이를 꾸려나갈 사람은 다름 아닌 금천에서 살아가고 있는 당사자,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김수진 기자

풀뿌리 자치연구 모임 활동가 민상호 씨.
그는 공무원노조의 활동을 발판삼아 구정예산과 제도를  감시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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