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을버스 타고 마을답사를 하다

연말연시를 가볍게 건너는 방법은 없을까. 별 일 없는데 한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마음은 복잡하다.
‘나 잘 살았어?’, ‘올해는 뭘 했더라?’, ‘내년엔 다르게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부터 ‘올해는 부지런해져야지!’라는 다부진 결심까지 이 맘 때면 인생 숙제를 다시 펼쳐든다. 뭐, 다분히 형식적인 의례라고나 할까. 생각을 많이 한다고 어디 저절로 일이 되는 법인가. 머리와 손발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은 예외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그것이 어디 저절로 되는 것인가.

몇 안 되는 가슴과 머리와 손발이 통일된 지식과 지혜가 균형 잡힌 온전한 위인이나 가능한 것이지. 나 같은 범인은 돌고 도는 속세를 따라 자탄을 안고 허우적거리며 살 수 밖에. 오늘도 마찬가지다. 바쁘지도 않은데 부랴부랴 늦은 오후 마을버스 답사길에 오른다.
벽산3단지에서 독산한신아파트까지 가는 마을버스 2번은 그야말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대장정의 버스다. 금천의 동서를 가로 지르는 마을버스다. 노선이 길지는 않지만 재미난 구석이 또 있다. 금천과 안양천을 사이에 두고 광명시가 있는데 이 마을버스가 두 도시 사이를 오간다. 

안양천을 직강하 하천으로 재정비 하면서 지금의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어째 좀 어색하다. 하천을 사이에 두고 동네하나가 뚝 떨어져 섬처럼 떠있는 모양새다. 독산 한신아파트, 안천초등학교 안천중학교가 그렇게 생겨나 행정구역상 금천이다. 우르르 하교 길에 청소년들이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집으로 가는 거겠지’.  교문 근처는 학원버스가 대기 중이라 한 무리는 그 버스에 오른다.

그 버스가 집어 삼키는 아이들이 좀 안쓰럽다.  요즘 내게 충격적인 뉴스는 자살한 청소년들과 가해 학생들의 구속이다. 청소년의 비관 자살은 어제 오늘 일 이 아닌 터라 무서운 현실을 정면으로 보는 끔찍함이 있다. 반면 가해 학생들의 구속 소식을 전하는 뉴스화면을 접하면 화가 치민다. 아직도 ‘우리는 그들의 문제를 구경하는   어른이구나.’하는 자책감이 든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보다는 이슈화에 그치는 무지막지한 폭력의 행사자이다. 학교 폭력이나 따돌림문제를 풀어가는 어른들이 “체벌 강화”나 “조용히 덮고 가는 방식”이니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겠는가.

이제 14세인 청소년 가해자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이나 뉴스에 내보내는 내용을 보면 어른들은 여전히 책임을 미루기만 한다. 꿈을 꾸지 못하게 하는 입시 경쟁과 돈이면 만사형통이라는 물질만능을 조장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는 불쌍한 영혼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이다.

곧 그들이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청소년이 얼마나 불행한가를 알아봐야한다. 어떻게 참고 견디라고만 하나. 모두가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미래의 현실을 외면하면 우리 모두는 자멸하고 말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 가족애가 빛나듯 “대한민국”이라는 형제애를 발휘하고 정면 승부하기를 바란다. 새해부터는 좀 심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무거워졌다.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이 길게 이어졌다. 저녁이 되어 ‘가방도 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걸 보면 여자친구랑 약속이 있나.’ 마을버스 정류장엔 중학생인 듯 보이는 아이가  보인다.
그래 본래의 풋풋한 소년, 소녀로 돌아가라. 미안하다, 얘들아.





산아래문화학교
김유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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