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에서 좋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이 모여 '다시 마을이다.'라는 기획교육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하필 첫 번째 강사가 친형이라 겸사겸사 참석했다가 소중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역에서 마을공동체 교육운동을 하신 경험을 푸는데 만류귀종(萬類歸宗)이라고 공동체적 사람을 추구하는 우리 노동운동과 일맥상통하여 신통했다.
이득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돈 중심의 세상에서 정(情)이라는 말은 참 한가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은 정 없이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다. 고운 정으로 시작해서 관계가 어려워 져도 미운 정이라도 만들어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많은 사람들은 받는 정을 좋아 하지만 우리 경험으로는 주는 정이 훨씬 재밌고 맛있다. 그런데 공동체의 정은 주고받는 정이 아니라 드는 정이다. 드는 정은 저절로 스며들어 내 몸과 마음에 하나가 되어버린 정이다.
우리 조상들이 마을 공동체의 정을 상징하는 것이 두 가지 노동 형식을 가졌다.
하나는 남성 논 농사 중심의 두레공동체고 다른 하나는 여성 밭 농사 중심의 품앗이다. 품앗이는 요즘 말로는 '기브앤테이크'와 비슷하다. 하지만 속을 살펴보면 아주 다른데, 왜냐면 품앗이는 일을 할 집에서 일할 사람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일할 사람이 먼저 "그 집 콩밭 맬 때 됐데. 언제 할까?" 이렇게 청해야 했다는 점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품앗이를 요청하는 사람이 서운해 하는 것이 마을 공동체의 특징이라고 한다. 공동체는 개인의 이해 관계가 우선이 아니라 다른 구성원에 대한 돌봄이 우선이었다. "먼저 관심을 주고 말해 주지 않으면 그것이 학대"였다. 이런 마을 공동체의 특성은 아이들의 놀이 공동체로부터 만들어 진다.
예를 들면 어려서 차던 제기 차기 놀이 중에 동네제기차기라고 있다. 한 번 두 번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장엄할 정도의 집중과 일체감을 느끼는 놀이다.
그런데 이 놀이 속에 는 묘한 평등(?)이 존재한다. 그것은 잘 차는 사람이 바쁘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잘하고 못함이 있다. 서로 다른 개성과 능력이 울퉁불퉁하지만 자연스레 어우러질 때 공동체라는 말이 의미를 얻는다.
그 중에서 제기 잘 차는 사람이 몸이 엄청 분주하다. 제기를 잘 못차는 사람은 자기 앞에 오는 제기가 책임지지만 몸이 날래고 제기를 잘 차는 사람은 빗나가는 제기, 벗어나는 제기를 다 쫓아가 차 올려야 한다. 그런데 이런 차이가 잘남과 못남, 지배와 피지배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냥 더불어 즐겁고 더 많이 찬 사람은 그것으로 즐겁고 자긍함을 갖는다.
공동체에서는 참여가 관계를 결정한다. 잘하고 못하고는 다음 문제다. 반면에 개인주의사회에서는 관계를 구매한다. 돈과 연줄과 명망으로 위치를 사는 것이다. 마치 강남 학생들이 다른 지역의 학생보다 점수가 높은 것은 시험문제의 답을 돈으로 사는 것과 같다.
하지만 공동체에서는 지위는 축적되는 무엇이다.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세월을 견딘 이들이 바로 세월이 주는 지혜를 갖는다.
이런 공동체적 원리를 도시에서 맛보기는 정말 힘들다. 주어진 공동체에서 천천히 익숙해지는 마을이 없으니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만들어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솔직히 원리적으로 보면 도시야 말로 공동체가 더욱 절실하다. 왜냐면 도시야 말로 관계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시골보다 백배는 많지 않은가?
우리 금천이 공동체로 빛나는 고장이 되는데 시민운동의 건승을 빈다.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상담문의 02-859-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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