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민주노총 남부지구협의회 의장을 했던 노동자 어머님의 부고를 받았다. 겨우 한 달 전에 아버님의 부고를 듣고 문상을 했는데, 또 어머니를 보내고 있다. 그 마음이 얼마나 황망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다. 게다가 불과 며칠 전에 국가보안법 혐의로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돌이 넘은 아이와 아내, 그리고 병든 노모가 있는 집에 8-9명의 건장한 이들이 택배기사로, 경비실 경비로 위장해서 순식간에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기가 막힌 꼴이 어머님의 명을 재촉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니 한 노동자의 수난이 남일 같지 않다.
국가 보안법은 일제 강점기 치안 유지법에서 시작됐다.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법이다. 해방된 후 국가보안법이 제정될 때 지금 한미 FTA 비준 소동보다도 큰 진통 끝에 억지 도입됐다. 그리고 민주화로 모든 법이 나아졌지만 국보법만 박물관에 갔다는 헛소문만 돌았지 그대로다.
유신독재를 자랑스러운 시간으로 기억하는 반(反)민주주의자들은 국가보안법이 불온한 소수를 처벌하는 것이지, 일반인은 상관없다고 말해왔다. 항간에는 국가보안법에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특별히 불온하거나, 심지어 북한과 연관된 반국가적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과거사위원회 측 조사에 의하면 국가보안법이나 긴급조치에 의해 처벌을 받은 사람들의 80%가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으로 무고한 일반시민들이 피해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나머지 20%도 많은 사건이 국가에 의해 고문으로 조작된 것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설마 나와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의 실체는 나라가 아니라 정부를 보호하기 위해 국민 전체에 대해 감시와 탄압을 보장하는 법이다.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그 법이 국가 보안이 아닌 정권 보안, 지금 와서는 정보기관 보안법으로 작용할 때 더욱 그렇다.
국보법이 패악을 부리는 시기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정권의 정치 위기에 대한 국면전환이 필요할 때나, 선거를 앞 둔 시기에 집중된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도 2008년에 40여건이었던 국보법 사건이 2010년에는 150여건, 2011년에는 200여건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작년만 해도 우리 지역 진보정당 당 관련자들에 대한 기무사의 사찰이 문제가 됐다.
군인에 의한 일반인 사찰은 김영삼 문민정부 들어와서 공식적으로 금지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서 그 악몽이 부활된 것이다. 군대에 의한 민간인의 관리 통제가 바로 군사독재 아닌가? 이런 사찰이 들통이 나서 호된 사회적 질책을 받은 정부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번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활동에 대해 공안사건을 조장하여 탄압하려는 모양이다.
국보법은 민주화 운동을 빨갱이로 몰던 붉은 썬 글라스였다. 국가보안법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억압하는 미친 칼날이었다. 국가보안법은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붉은 페인트였다.
하지만 이 법에 의해 탄압받는 이들은 후에 역사가 "민주와 인권과 통일과 평화를 추구했던 사람"으로 국가적 예우를 하고 있다.
국보법이 다시 극성을 부리는 것은 정부가 분단을 고집하며 남북적대 정책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대북강경책의 속살이 우리 사회 내부의 대립과 증오를 키우는 것이다. 분단이 만든 맹목과 증오에서는 민주와 인권과 평화와 통일의 밝은 싹은 결코 틔워나지 않는다.
글을 쓰는 지금 뉴스를 보다 정말 국가 보안법이 필요한 곳을 알았다. 한나라당이 저지른 선관위 디도스 공격이야 말로 '국기를 문란케 하는 반국가적 행위'가 된다. 추워지는 시간 속에 속이 더 추울 국가보안법으로 고통 받는 이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에 위안을 보낸다.
힘내자.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상담문의 02-859-0373
'탐방 기고 > 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상담센터기고] 선거의 해 (0) | 2012.01.10 |
---|---|
문소장의 주간 뉴스 브리핑 (0) | 2011.12.13 |
마을공동체 정신 (0) | 2011.12.01 |
문소장의 주간 뉴스 브리핑 (0) | 2011.11.30 |
주간 뉴스 브리핑 (2011 10월 27~11월9일) (0) | 2011.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