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천초등학교에서 출발하는 마을버스를 탔다. 이 05번 마을버스는 광명시와 금천구를 오가는 버스다.
지난주 오후에 05번을 타고 길 건너는데 바로 건너편은 하안동이라는 주소가 보인다.
그렇다면 노란색 중앙선을 중심으로 시도를 넘나드는 건가? 애매하네. 이런 답사엔 ‘애매한 것을 딱 정해주는 최효종과 함께 하면 좋을까마는.’
약국, 슈퍼, 대중탕을 같이 이용하는 사람들은 동네사람이다. 행정구역상 시도를 달리해도 생활을 나누면 동네사람이 되는 거다. 어, 그런데 대낮이라 그런지 버스 안에 동네 사람이 없다.
왜 그럴까 기사님께 여쭈었더니 이 버스는 출퇴근용이란다. ‘출퇴근용이라...’ 금천교를 건너 공단 지역으로 들어서니 무슨 말씀인지 알겠다.
2공단과 3공단과 오가는 마을버스 05번은 지하철역과 일반버스를 연결해서 일터로 향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통근버스였던 거다. 얼핏 비슷한 공장과 얼추 비슷한 건물들 사이로 많은 정류장을 순환하는 05번 마을버스엔 한낮에 사람이 없을 수밖에.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삐까번쩍한 건물들 사이로 드물게 옛 공장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 참 낯설다. 근대유형문화재가 될 법한 오랜 역사가 보이는 낡은 공장 건물 안에는 어김없이 향나무가 보인다. 겨울이라 빛깔이 더 칙칙한 게 먼지를 뽀얗게 쓰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이 내가 초등학교 때 보던 그 모습 그대로 그만 그만하게 서 있다.
‘아니, 세월이 얼마인데.’ ‘자라지 않고 화석처럼 서있는 나무들만 성장을 멈추었을까.’ ‘건물과 역사가 같은 직함 향나무엔 어떤 혼 불을 태우던 향이 남아 있는 듯하다.’(제를 올릴 때 쓰던 향나무에 지상의 염원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연기의 숭고함이 깃들여 있듯이.)
사연 많은 공장들의 기록 되지 않은 많은 공순이, 공돌이들의 개인의 삶은 어디에 있을까.
이제는 추모사업회나 기념사업회의 구술, 사진 기록으로 남은 억울한 노동자들의 죽음은 온 데 간 데 없다.
후에 열사로 기록되었지만 살아서는 불온자로 분류되었던, 개별의 삶을 운동의 마무리로 바쳤던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 때는 불온자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지금은 살기가 팍팍해서 아무로 보편적으로 그들을 위로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기록된 것도 사문화 되고 있다. 역사는 누군가에게 읽혀질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는 박물관에 한 줄의 기록으로 남아서는 그 역할을 할 수 없다.
어렵지 않게, 무겁지 않게 죽은 자들도 바로 보는 문화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민심이 중심을 잡게 될 것이다.
공단이 디지털단지가 된다고 해서 우리 동네의 정체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착각. 강남8학군을 꿈꾸고 잘나가는 어는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만을 꿈꾸고 있다면 우리 동네는 없다.
다 같은 동네에서 다 같은 문화를 누리고 어떻게 내 인생이, 나만의 삶이 있을까. 다름이 주는 다양함이 개별의 삶도 풍요롭게 한다. 누구와 닮은 모양이라고 그 사람과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 아닌가.
내 것을 찾고 내 것을 소중히 하는 것이 나를 지키고 개별의 삶을 빛나게 할 것 이라 믿는다.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다. 내 동네이니까 의미가 있는 것.
동네에서 경험한 것들이 나와 동네와의 관계를 규정짓는다. 세상의 중심에 서서 외치자.
“내가 소중하다”고. 나와 우리 동네와 친구와 이웃과 부모님...또 나와 관계된 모든 것이 소중하다! 05번 버스로 공단을 유람하다 나는 문득 나를 그 전보다 더 이해 할 수 있었다.

산아래문화학교 김유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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