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새해가 밝았다. 아빠는 속절없이 나이 먹어 가는데 아이들은 죽순처럼 무럭무럭 자란다.

새해 첫날을 맞이하여 줄자를 꺼내서 아이들 키를 재어 본다.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열 살 하고도 한 살 더 먹은 장남은 냉큼 달려와 거실 벽에 뒤꿈치를 바싹 붙이고 엄숙한 자세로 서서 결과를 기다린다.
아들이 다섯 살 때였나 싶다. 그때 살던 집에서 쟀던 키는 102cm이었다. 우리 아들이 드디어 100cm가 넘었구나! 하며 기뻐하던 기억이 난다. 가장 최근에 몇 달 전인지는 모르겠으나 재 본 키는 137cm이었다.

오늘은 꽤나 오랜만에 키를 재는 것인데 과연 얼마나 나올까. 아빠도 궁금하다. 아이를 벽에 바짝 기대 세우고 네모난 책으로 구십도 각도를 유지하여 정확한 지점을 볼펜으로 체크한다. 벽에 낙서하는 것은 우리 집에서는 금기사항이지만 이때만은 예외이다. 펜으로 조그만 줄을 긋고 밑에서부터 줄자를 이어본다. 결과는? 143cm! 와우! 어느새 이렇게 컸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들은 ‘나도 이제 145cm를 향해 달려간단 말이지~ “ 하며 좋아한다.

새삼스레 아들을 바라본다. 손도 발도 머리도 많이 굵어졌다. 사춘기를 앞둔 아들의 성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아빠의 기억은 그렇다. 내가 중학교2학년생이던 시절의 그 한해에 거의 한 달에 1cm씩 1년에 무려 12cm가 자랐다. 중3때도 8cm가 자라 고등학교 입학 무렵에는 178cm가 되어 반에서 꺽다리로 통하던 기억이 난다. 나의 키는 고3시절의 183cm를 마지막으로 성장을 멈추었다.

아내의 키도 170에 육박하는 우리 가족의 유전자를 검토해보면, 아들의 키는 앞으로 3~4년 후면 엄마를 뛰어넘을 것이고 아빠와 어깨를 나란히 할 날도 멀지 않았다.
아들은 과연 폭풍과도 같은 성장과 함께 찾아올 사춘기를 어떻게 보낼까. 그 질풍노도의 시기를 과연 아빠인 내가 과연 얼마나 잘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아들이 태어난 산부인과에서 3일을 보내고 퇴원하던 그 여름날, 날은 더웠지만 행여나 바람이라도 들까 싶어 꼭꼭 닫은 차안에서 강보에 싸인 채로 안고 가던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한데, 목말을 태워 두 손을 잡고 동네를 뛰어다니던 날들의 영상이 새록새록 하기만 한데 이제는 업기에도 버거운 체구가 되었다.
 아들과 두 딸의 키를 재어주던 새해 첫 날 밤, 막내는 이불에 지도를 그렸다. 이불이 젖었고 잠잘 데도 마땅치 않아 아들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어둠 속에 곤히 잠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아들의 발을 만져보니 완전 어른 발이다. 이 두 발로 아들이 딛고 살아갈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한 반에 60명을 넘던 시절의 콩나물시루 같던 학창시절을 보낸 아빠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한 반이 고작 24명이고 한 학년에 4학급밖에 없다는 상황을 상상하기 힘들다. 아빠는 콩나물시루 같은 학교에서 줄곧 성장기를 보냈고 100만 명이 한 날 한시에 모여 대학입학시험을 치렀고, 한 해 500명이 죽어나가는 군대에서 간신히 목숨 부지해서 제대할 수 있었고 ‘아엠푸’로 풍지박산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직장을 잡았다가 쫓겨나기를 반복하다가 이제야 겨우 밥 먹고 살고 있다.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은 일단 머릿수가 적으니 다행일 것이다. 머릿수가 적으니 사람이 사람값 받는 세상이 될 것이다. 학식이 일천한 아빠로서는 복잡한 것은 알지 못하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할 것이다.
창가에 비친 1월의 겨울 하늘은 춥기만 하다. 좁지만 따뜻한 방에 부자가 누워 잠드는 밤. 아들은 이제 더 이상 아빠 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좋은걸. 아빠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잠이 들었다.
                            

김희준


필자는 독산1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재빈, 재은, 재령 3남매와 함께 성장일기를 쓰고 있는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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