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번 마을버스를 타고 마을을 답사하다-

경칩을 맞으면서 계속 날이 궂다. 어디 쉽게 봄이 오던가. 올 듯 말 듯 주춤주춤 우리 몸이 봄의 리듬에 풀어질 때 쯤 오겠지.
오늘 맞은 차가운 빗속에 분명 봄은 들어있다. 봄비를 차분히 바라본다면 봄이 보일 것 같은 날, 06번 마을버스를 탔다.
“지역과 함께 하는 미술 워크샵”을 마치고 서로 다른 동네에 사는 초등생1명, 어른 3명이 같은 버스에 올랐다.
우리는 사는 동네는 다른지만 같은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다.
마을버스에서 그런 경험이 있으셨는지? 오랜만에 소식 모르던 이웃을 만나 놀랐던 적 말이다. 마을버스에서, 골목길에서, 목욕탕에서, 약국에서, 미장원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은 사소하지만 소중하다.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내가 그 마을에 속해 있고 그 마을이 나를 알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불편했던 적도 있다. 불친절한 슈퍼아저씨나 어디서나 싸움닭 같은 시장통 아줌마를 보는 건만으로도 불쾌감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태만상의 이웃을 가진 나, 개인은 그래서 든든한 배경이 있는 것 아닌가. 동네에서는 외롭지 않을 뒷배경과 자유롭지 않은 대신 서로의 지킴이가 되는 “관계”가 얽혀있는 것 아닌가.
금천구청역에서 구로디지털단지를 오가는 06번 마을버스는 이 동네 저 동네 참 다른 동네를 지난다. 06번 버스는 아주 많은 소규모 아파트를 간다.
그런데 이 수많은 아파트의 이름은 어떻게 정해질까 궁금해졌다. 라이프아파트, 해가든아파트, 금천현대홈타운 아파트, 독산현대아파트, 진도아파트3차, 진도2차아파트, 청광아파트, 두산아파트가 06번 노선길에 있다.
건설사 이름을 딴 경우가 많겠지만  진도모피와 관계된 진도아파트, 코카콜라나 동아출판사와 관계된 두산아파트는 우리 지역의 정체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 아파트들 사이로 여전히 공장들이 보이니 산업공단, 생산 공단의 현장은 여전하다.
삶터와 일터가 같은 동네에 있는 셈이다.  다만 진도모피나 두산동아의 흔적은 사라지고 아파트만 남아 있는 현재 그 곳엔 어떤 직장인들이 모여 살까.
큰길가 시내버스 정류장이나 전철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출퇴근길,  통학길,  시장가는 길에서 만나는 마을사람들을 이제는 마을버스에서 만난다.
대부분 혼잡한 버스 안이라 인사 나누기도 민망할 따름이지만. 집 가까이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으니 시내버스나 지하철 환승하기엔 편리하다. 특히 급할 때는 내발이 되어주니 고마운 마을버스다.
하지만 마을길을 걷을 필요가 없게 한 것은 아닐까(마을버스 조합에서 알면 큰일 날 소리지만). 마을을 산책삼아 걸어 다닐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걷고 싶거나 구경하고 싶어서 동네 길을 걷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게다가 이유 없이 걸으면 기분 좋게 하는 마을길이 있다면 어떨까.
수많은 마을길과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서로를 알아보는 눈길을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안심되는 일인가. 
06번 마을버스가 가는 길에 있는 소규모 아파트들은 세대가 적으니 머리를 맞대고 동아리나 부녀회나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미 그렇게 자주 모이는 이웃사촌이 되어 있는 아파트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마을버스타고 가다 마을을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번듯한 집이나 평수가 큰 아파트의 주인보다 “이웃”과 사회적 관계를 갖고 사는 주인공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 우리 마을은 어디까지 일까? 내 정체를 밝혀줄 마을은 있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한다.
2월 25일자로 마을버스 요금도 올랐으니 오늘은 회차하여 마을을 한바퀴 더 돌아 찬찬히 마을을 본다.
오래된 가구거리 있는 독산고개를 넘어. 경기민요 교습소와 대비되는 안마시술소 간판이 요란한 건물을 지나 서울막걸리 공장 건너편 두산아파트 후문으로 마을버스는 간다.
자동차 정비소와 고물상을 지나 얼마간 리모델공사 중인 롯데마트 옆으로 양복 짓는 공장과 공책 만드는 공장을 지나면 우시장이 보인다.
마을버스는 천천히 동네 여러 슈퍼들을 지나 마을 사람들을 하나둘 태우고 마을을 돈다.
마을버스가 가는 길엔 마을도 있고 마을사람들도 있는 거다.

산아래문화학교 김유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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