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신문 금천인이 만들어지기 전에, 금천에서 인터넷 신문과 방송을 꿈꾸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김천석이란 친구입니다. 얼굴이 까맣고 머리가 곱슬져 종종 동남아나 서남아 이주노동자 취급을 받던 친구입니다.
헌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시니컬한 언행으로 주로 관성에 젖은 선배들을 질타하던 친구입니다.
이 친구는 죽기 전에 가산디지털 단지 비정규직 문제로 투쟁을 한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4년 동안 카메라 하나로 지켰습니다.
현장을 지키는 것은 비록 빛나지 않는 일이지만, 모든 빛이 현장을 지키는 그 무엇인가를 뿌리삼아 피는 꽃이라고 믿었던 친구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스스로 목적이 되어 다른 것을 수단으로 동원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수단이 되어 동원이 되더라도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예를 들면 물에 빠진 이를 건지는 밧줄 같은 것이라면 기꺼이 동원되고 수단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김천석은 카메라로 그런 동원된 수단의 지위를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또 다른 가시밭길이었고, 끝내 황금과 권좌가 지배하는 세상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천석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사회의 뿌리로 견디다 끝내 그 무게와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천석의 삶을 기리고 지금 이 순간 고통을 버티는 이들을 위해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 힘을"이라는 사회연대 기금 운동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기륭전자 유흥희 분회장의 글의 일부입니다.
"우리 기륭투쟁을 돌아보면 6년의 시간이 한 순간 한 순간 연대의 손길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투쟁이 바쁘고 연대투쟁에 성실했다는 의미로 우리는 소리 없이 우리를 지켜주는 이들의 소중함을 미쳐 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 가운데 김천석이란 저와 동갑내기 동지가 있었습니다. 내일모래 쓴다고 당장 영상 편집해내라고 요구를 쉽게 했습니다.
그때도 우리 몰래 혼자 밤을 새야 하는 동지의 노고를 모르고, 요청하면 당연히 해줘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기륭 투쟁에서 우리를 가장 강력하게 보호한 방패는 카메라였습니다. 특히 영상카메라는 24시간 우리를 지켜주던 파수 대였습니다.
이미 심신이 시퍼런 멍투성이 우리였지만 그런 폭행에 당하면서도 그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몰랐습니다.
우리의 24시간 보호막이었던 김천석이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날벼락이었습니다.
우리 투쟁의 누적된 부담과 스트레스가 그의 생명을 갉아먹은 것인지 죄의식이 우리를 감쌌습니다. 고마움을 말로만 고마워하는 것으로 때운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우리는 우리를 지켜준 가난한 카메라에게 어떻게 힘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결과가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 힘을' 주자는 운동입니다.
우리들의 이 작은 노력이 모든 이의 삶의 조건들을 바꾸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들의 노고를 잊지 않고 있음을, 가장 외롭고 힘들 때 함께 하는 우리가 있음을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 힘을'이라 쓰고 '천석이를 사랑하는 마음'이라 읽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해 봅니다.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02-859-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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