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198

 

강남역 한복판 교통 탑에서 30일이 넘게 고공 단식 농성중인 해고 노동자가 있다. 김용희다. 온몸을 구겨 넣어도 두발이 허공중 매달리는 좁은 곳에서 폭염과 장맛비를 고스란히 감내하는 사정은 상식으로 짐작도 못할 것이다. 지난 7월 10일은 그의 생일이었다. 회갑 생일인데 삼성에서 정년나이란다.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 했다는 죄로 그는 납치, 회유협박, 테러, 해고, 해외유배를 당했고 그 과정에서 부인은 성폭행을, 부친은 자살을 당했다. 지옥 같은 24년을 끝장내기 위해 단식고공농성을 시작한지 한 달이지만 삼성은 ‘입장이 없’고 마지막 일터였던 삼성물산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생일 날 진행된 문화제에서 그는 ‘24년, 암흑 터널을 헤맸다. 나에게 유일한 희망의 힘은 여러분이 거기에서 들고 있는 촛불하나 핸드폰 불빛 한 점이었다.’며 절박한 외로움을 토로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요금소 옥상에는 여성노동자들이 10일이 넘게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도로공사는 일자리를 쪼갠 근본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용역회사를 자회사로 돌리고 자회사로 전직하라고 한다. 대법 판결도 소용없는 횡포를 막고 정상적인 정규직화를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불가’하다고 하고 사장 이강래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불가능하다는 말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대안도 없고 어쩔 수 없다며 자행된 신자유주의 시장 횡포, 자본의 광란 정리해고 비정규직이 처절하게 파산시킨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은 언제나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말이다. 물론 불가능한 일도 있다. 종교나 신의 영역이야 인간이 도저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일찍이 공자님은 자기가 성의로 할 일과 경이원지(敬而遠之), 즉 ‘삼가되 멀리하라’는 영역을 구별했다. 귀신의 영역과 사람의 영역을 말이다. 하지만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어쩔 수 없고 불가능한 영역을 만든다. 이기심 탐욕 경쟁 빈부격차 ... 최근에 제4차산업혁명이라는 공갈협박 주술까지 사람이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억센 희망 대신에 귀신의 세상을 만들어 공포에 떨며 순응 적응 굴종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사람을 존중하고 살리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세상이 된다. 사람이 일회용 휴지가 되는 이런 자본주의 체제가 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지금이 행복한 이들이야 지금이 변화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싶겠지만, 지금이 아픈 우리들에게 오늘은 보다 나은 내일로 가는 여정, 사람의 영역에서 어제의 모든 불가능은 오늘과 내일엔 가능으로 전환되고 전환 시켜야 한다. 
그러고 보면 일본 아베정권도 한일 간의 협정, 박정희와 박근혜가 맺은 그 치욕적인 협정의 시정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헌법을 파괴하고 아예 헌법을 조작했던 박정희와 헌법을 농단 유린했던 박근혜은 존재 자체가 반민주다. 그런 반민주가 만든 역사에 대한 테러, 가해자이자 매수자 그리고 군국주의 일본만 편한 불의를 시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사람을 위한 약자를 위한 한발은 언제나 지금의 기득권자들에게 불가능하다는 낙인을 찍힌다. 아베와 삼성과 도로공사는 낙인을 찍는 ‘샴 세쌍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시대의 슬픈 등대, 강남대로에서 김용희의 죽음을 태우는 절박한 호소는 단지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삼성이 대표하는 그 특권과 반칙과 부정부패와 고문과 유린에 대한, 돈 중심 체제에 대한 강력한 항거다.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5월 25일부터 1박 2일간 ’5월 광주 민주주의의 봄과 시련이라‘는 제목을 가진 프로그램으로 광주에 내려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역사적 현장들과 흔적들을 만나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고 가슴이 아팠던 것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으신 분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신 김상호님는 나와 같은 나이인 고등학교 1학년 17살이었다. 살면서 사람을 향해서 실탄이 발사되는 소리를 듣는다는 상상을 해보긴 했을까. 바로 눈앞에서 사람이 칼에 찔리듯 위협받고 끌려가는 것을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지만 그게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 않았을까.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말씀하시던, 땀이 삐질하던 그분의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제주 4.3사건이라던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사건들을 공부하다 보면 사망자의 숫자에 익숙해지고 무감해지는 느낌이 든다. 의자에 앉아 책 위와 동영상에 나오는 하양, 검정 숫자들을 읽을 때면 사람의 목숨이 마치 종잇장처럼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당사자가 아니니까 라는 가벼운 마음을 갖고 과거만의 일로 치부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사자분들의, 피해자분들의 경험담을 직접 듣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그분들이 본 역사의 현장은 책 위에 기록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지만, 그분들의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 사람들에게는 더욱 크게 울렁이며 다가온다. 김상호님의 이야기를 들은 나에게는 그랬다.
 제주 4.3과 광주민주화운동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사건 당시 외부와 차단되었던 것, 대부분의 살상은 국가의 경찰과 군인들이 저질렀다는 것, 도민들과 시민들이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저항하며 싸운 것 등 대부분 상황을 절망적으로 볼 수 있게끔 하는 요소들이 비슷하다. 특히 국가를 지키는, 국민을 지키는 의무를 가진 군인과 경찰이 국민을 총과 칼로 위협한다는 것은 세상에 배신당한 것과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그런데 말이다, 과연 이 사건들에서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가를 수 있을까? 당연히 아무 죄 없이 죽어 나간 사람들은 명백한 피해자들이자 희생자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죽이던 군인들과 경찰들 모두가 개인의 의지를 가졌던 완벽한 가해자일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데에 과연 아무런 감흥이나 슬픔이 없었을까. 그들의 살상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두가 상처입는 새드앤딩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 사건들의 전말은 깔끔하게 밝혀질 수 있을 것인가? 이 두 사건은 결국 누구를 위한 사건이었을까. 답을 알아도 찜찜하다.

 

기고 김온화 

 

<복원 중인 전남도청 건물 >

 

<광무 구 묘역 모습 >

 

[기고] 불법촬영 사건, 왜 지금까지 손 놓고 있었는가?

 

홍대 남성모델 불법 촬영 사건은 앞서 존재한 다른 불법 촬영 사건들과 확실히 구분된다. 경찰의 대응과 수사의 진행 속도, 법원의 판결, 그리고 언론의 반응과 댓글의 내용이 너무나 다르다.


이번 불법 촬영 사건은 수사를 진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불법 촬영물을 유포한 용의자의 범위가 좁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경찰이 이번 사건에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존재한 수 많은 불법 촬영 사건들 대다수가 "수사가 어렵다" 라는 이유로 수사가 진행되지 못했다. 경찰은 왜 이렇게 편파적인 수사를 진행한 것일까? 불법 촬영물 유포자, 즉 가해자를 일주일만에 검거할 수 있는 실력과 열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여성 피해자들의 신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불법 촬영을 한 남성이 현행범으로 체포 되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사건도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받은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불법 촬영 범죄를 일으킨 인원 중 98%(15662)가 남성이고 여성은 총 2%에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에 불법 촬영 범죄의 피해자 26654명 중에서는 여성이 22402명으로 84%에 달했다. 남성은 600명으로 2.3%를 차지했다.

이 자료는 불법 촬영 범죄의 가해자가 대다수 남성이며,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범죄가 경찰의 빠른 수사진행으로 단시간에 범인을 검거한 적은 유래에 없는 일이다. 수 많은 불법 촬영 사건이 있고 피해자가 2만명이 넘게 있으나, 제대로 처벌을 받은 가해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가해자들 중 90%가 풀려나고, 처벌을 받는다 하여도 솜방망이 처벌이니 불법 촬영 사건이 줄어들리 만무하다.

경찰, 법원, 언론이 얼마나 편파적인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남성일 경우와 여성일 경우를 비교 해보았다.

 

경찰의 대응

여성 피해자의 경우: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음, 가해자의 얼굴 사진을 찍지 않음, 가해자를 불구속기소로 수사, 피해자에게 "못 잡는다", "이미 게시물이 삭제되어 가해자를 알 수 없다", "그러게 왜 그런 옷차림/그런 장소에 있었냐" 등의 피해자를 탓하는 식으로 수사자체를 거부, 가해자 및 제 3자의 2차 가해로부터 보호를 원하는 피해자의 요구 거부.

 

남성 피해자의 경우: 매우 빠르고 적극적인 수사로 단기간에 용의자 파악 및 범인 검거, 피해자의 2차 가해까지 적극 대처, 가해자가 불법촬영물을 올린 사이트에서의 활동 내역 파악, 해당 사이트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 발부 받음.

 

 

법원의 판결

 

남성 가해자의 경우: 초범이라며 무죄 판결, 가해자 집행유예, 가해자가 반성의 기미가 있다며 감형, 현행범인 가해자 무죄,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 등등.

 

여성 가해자의 경우: 증거 인멸과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판사가 영장 발부 및 긴급체포, 불법촬영 유포 혐의로 경찰 구속.

 

 

기사의 자극성

 

여성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의 사진이 아닌 피해자의 상황을 나타내는 자극적인 이미지, 제목에 가해자 남성의 성별은 표기하지 않으면서 피해자의 성별을 부각시킴,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개인정보(나이, 성씨 등)가 더 많이 포함되어 있음.

 

남성 피해자의 경우: 기사 속 첨부된 사진이 학교 건물 또는 가해자의 사진, 기사 내용에 가해자의 개인정보(나이, 성씨 등)이 포함되어 있음. (예시: 20대 동료 모델 모씨(나이, 성별), 동료 여성 모델 ○○○)

 

 

기사의 댓글

 

여성 피해자의 경우: 피해자의 잘못이라며 2차 가해, 피해자에 대한 조롱과 욕설이 난무한 악플이 대다수, 가해자를 옹호하는 발언.

 

남성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에 대한 지나친 폭력적 악플, 이 사건을 남성혐오라 주장, 가해자만이 아닌 여성 전체에 대한 혐오적 악플, 법이 여성들에게 관대하다는 발언으로 특정성별에 대한 혐오를 조장함.

 

불법 촬영 때문에 여성들은 화장실에 가면 먼저 카메라 구멍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휴지로 구멍을 막거나 송곳이나 핀셋으로 구멍을 찔러보기도 한다. 볼일을 보러오는 것 뿐인데 여성들은 이 간단한 일에도 불안감을 갖고 있다. 화장실뿐만이 아니다. 대중교통이나 직장, 학교, 기숙사, 심지어 집에서도 불법 촬영의 위협을 받고 있다. 남성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알지도 못할 일들이다.

홍대 남성모델 불법 촬영 사건의 가해자는 경찰의 조사 당시, "피해자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쉬어야 할 탁자에 누워서 쉬었다." 라고 진술한 바가 있다. 그리고 다른 동료 모델의 말에 따르면 원래 쉬는 시간에 옷을 입고 쉬는데, 남자 모델은 옷도 제대로 여미지 않아 다른 모델들이 눈살을 찌푸렸다고 한다. 아무리 누드모델이라고 하지만, 휴식 시간 중에도 나체를 드러내고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는 공연음란죄에 해당된다. 가해자는 피해자 남성의 행동에 화가 나 사진을 찍어 유포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편파성에 분노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피해자 또한 경찰의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 <몰카 등 성폭행 가해자 처벌 건에 대하여>, <홍대 몰카 사건 관련 기사의 자극적 보도 수정 및 정확한 수사 요청> 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있다.

첫 번째 청원을 올린 글쓴이는,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수사를 달리 하는 국가에서는 남성 역시 안전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범죄를 저질렀다면 벌을 받고 누구나 피해자가 되었다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을 절실히 바랍니다." 라는 문장으로 청원글을 끝맺었다.

다가오는 19, 여성이 피해자인 불법 촬영 범죄에도 수사 당국이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과 이러한 범죄를 일으킨 남성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을 것을 요구하는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가 있을 예정이다.

동일사건이 일어날 때 성별에 따라 편파적 수사를 하는 대한민국이 아닌,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해자가 처벌 받고 피해자가 보호 받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

 

한지수


[탄자니아 통신] 성공하려면? 난 글렀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크버그의 미의회 청문회 참석 기사는 질의응답보다 그가 입고 있던 옷에 더 초점을 맞춘 듯했다. 매일 회색 티셔츠에 후드티, 청바지 차림이었던 그가 짙은 남색 양복에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나왔으니, 신선하기도 하고 예의를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옅은 회색 반팔 티셔츠 9벌과 짙은 회색 후드티 6벌이 걸려 있는 자신의 옷장 사진을 공개한 후 그의 패션이 더욱 화제가 되었는데, 사소한 일상의 선택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남성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선택을 늘 강요당하는 최고 경영자로서의 고뇌가 느껴지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들 중엔 한 가지 스타일 옷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하는데, 그 효시로 스티브 잡스를 꼽는다. 특별한 경험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일본 소니를 방문했던 그에게 제복을 입고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큰 감동을 주었고, 그것이 회사와 사원을 하나로 묶는 매개라고 판단했다. 그는 즉시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에게 애플의 유니폼용으로 100벌의 검정 터틀넥을 주문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그것들은 오로지 그만의 차지가 되어 죽을 때까지 입었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이곳은 대학을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교복을 입는다. 여학생들의 경우 거의 발목까지 오는 긴 주름 스커트에 흰색 블라우스, 그리고 카디건을 덧입는다. 색상만이 다를 뿐 대동소이하다. 머리는 빡빡 밀어야 한다. 여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푸석한 곱슬머리를 기르면 솜처럼 뭉치기에 가시 땋기를 하고 가발을 덧대어 멋을 낼 수도 있지만, 학생들에겐 금기인 것이다. 현지인의 말에 의하면, 현대통령 마구풀리는 치마의 길이가 짧으면 찢어 버리라고 했다니 그 분위기를 알만하지 않은가.

며칠 전, 마르티나 카얀다 수녀님이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는 ‘제임스 상구 여자 중학교’에 다녀왔다. 그곳은 베이지색이다. 그러나 주말이 되면 봄 향기 가득한 화사한 빛깔의 원피스로 갈아입는다. 일 학년은 꽃분홍색, 이 학년은 하늘색, 삼 학년은 바다색.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그 나이만이 누릴 수 있는 감성을 허락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예쁜 원피스를 입고 뽐낼 곳은 없다. 시내에서 약 11킬로미터 떨어진 시골 마을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도 있지만, 방학 외에는 학교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교칙 때문이다.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는 잔디밭에 삼삼오오 앉아 수다를 떠는 일.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무채색의, 멋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교복을 입었다. 남들이 보면 그게 그 옷이었을 텐데, 우리는 모양을 낸답시고 매일 다림질을 하고 새하얀 칼라로 바꿔달았다. 재킷은 최대한 몸의 곡선을 살려야 한다며 수선했고,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수 있는 학교 밖에서는 스커트 허리 다트를 접어 기장을 짧게 했다. 머리는 귓불이 보여야 하는 단발이었는데, 조금만 길어도 수시로 가위를 들고 나타나는 선생님에 의해 잘려 나갔다. 대범한 아이들은 휴일이 되면 가발을 쓰는 위험(?)도 감수했다. 가지 말라는 곳은 또 왜 그리 많았던지. 제과점이나 영화관도 출입금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금기를 어기면서 오는 쾌감을 우리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삼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던 나이였으니 말이다. 대학에 가면 뭐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이 공부를 하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이었던 시절이었다. 

민주주의가 정착되며,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교복이 개성을 말상 시킨다는 여론과 함께 한동안 자율화로 가나 싶더니, 다시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변신을 거듭하더니,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특별한 행사나 기념식이 있으면 화려한 색상과 패턴의 키텡게나 캉가라고 하는 천을 공동 구입해 옷을 맞춰 입는데, 디자인만은 개인의 취향이나 체형에 따라 각자가 선택한다. 아프리카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해, 나도 성당 교우들을 따라 원피스를 만들어 입어 본 적이 있다. 생각보다 디자인이 예쁘게 나와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은 한복을 입듯 입곤 했다. 외국인이 한복을 입고 있으면 신기하고 예뻐 보이는 것처럼, 그들도 내가 자기들의 전통의상을 입어 주는 것을 굉장히 기뻐하며, 아낌없는 칭찬을 해 준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러나 사실 나는 획일화 된 것들이 참 싫다. 조직에 속해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입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행사가 끝나면 누구보다 먼저 잽싸게 벗어던진다. 장시간 입고 있어야만 하는 때는 초반에 슬쩍 흉내만 내다, 더워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옆에 벗어 놓는 꼼수를 쓴다. 그래서 이렇게 떠도는 삶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인생이 지루하다는 느낌이 든다. 중요한 일에 참여할 만큼의 역량이 없으면서, 사소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조차 잔재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유목민의 생활 방식을 선택한 이상 최대한 단순화 시키며 사는 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이라도 자주 바꾸어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 그러나 이곳에서 쇼핑은 언감생심. 헤어스타일 역시 마찬가지. 어정쩡하게 인도 미용사가 잘라놓던 머리도 길러서, 땋는 것으로 해결하고부터는 더 변화가 없어졌다. 선택에서 오는 피로, 그것이 때론 그립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겐 작은 변화마저 삶의 원동력이 되는 까닭이다. 성공하지 못해서 일까? 그래서 성공하지 못한 걸까? 


2018.04.28


 탄자니아에서 소파아

 또 다시 희망버스가 출발한다




 희망버스가 있었다. 2011년 6월, 이명박 시대라는 절망의 한복판에서 죽음으로 암흑을 가르던 희망의 신음소리 같은 몸부림이었다. 지독한 이기와 탐욕의 시대에 돈 시간 마음 다 주며 연대에 나선 시대적 의인들의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헬 법원은 7년의 긴 과정 끝에 사랑의 실천을 ‘유죄’로 확정했다. 한진 중공업 조선소로 들어간 것은 “목적이 정당”할 지라도 “불법적 수단의 사용”으로 부당하며, "교통방해를 직접 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시위참가자들과 공모해 교통을 방해한 것“으로 불법이라는 것이다.


  당시 동료이자 동지인 한진 중공업 김주익 노조 위원장이 목을 매 자결한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은 말했다.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동안 끝이 없는 싸움이 될 수 있겠고” 박창수 김주익을 이어 "내가 죽어야 싸움이 끝나”겠구나. 그때 그 죽음의 그늘을 거둬 준 것이 희망버스였다.  "309일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고립감'이었다. 희망버스를 통해 나는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됐다." 사람을 구한 것과 특별한 손괴도 없이 농성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행진을 한 것에 대해 대한민국 법은 유죄라 한다. 아이가 차도에 있어 이를 구하려 해도 도로에 무단 침입을 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라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차도에 나서면 불법이라는 경중완급도 사회적 책임도 인정도 사랑도 없는 법을 무조건 따르라는 헬조선의 헬 법원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3.1혁명과 4.19혁명으로 규정했다. 3.1은 반제 민족해방혁명이다. 새로운 나라는 자주와 평화로운 나라라는 선언이다. 봉건 왕조 신분제 사회로의 복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으로 나간다는 혁명이다. 4.19는 비록 5.16 군사쿠데타로 피를 흘렸지만 부정부패하고 독재적인 이승만 정권에 맞서 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실천한 혁명이다. 3.1혁명과 4.19 혁명, 모두가 당시 법률로는 불법이다. 하지만 누가 두 혁명을 두고 ‘목적은 정당하지만 수단이 불법으로 부당하다’고 할 것인가? 약자의 이른바 불법은 법이 보장되지 않는 곳, 법이라는 이름이 가진 자의 흉기가 되어 법이 불의가 된 곳에서 피는 민주주의의 본체다. 본시 법은 상식의 최소화이다 기성관념의 집약이라 극히 보수적인 관념체계다. 그래서 모든 역사적 진보와 발전은 법의 준수가 아니라 기존 법의 한계와 모순을 깨어 확장하는데서 나왔다. 실정법으로 가두거나 규정당하지 않는 곳에 내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있는 것이며, 그래서 기존 법과 정의가 충돌하면 정의의 입장에 서는 것이 옳은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원은 끝내 사람의 목숨보다 작업조차 멈춘 조선소 텅 빈 광장을 채운 누군가의 재산 소유권이 더 소중하다고 선언했다. 이것을 법비(法匪)라 한다. 


  악법도 법이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봉건시대 신민(臣民)의 논리다. 아니 봉건시대에도 폭압한 정권에 대한 저항이 인정됐다. 악법은 법이 아니라 악으로 보고 반드시 그것을 고쳐야 사회의 정의가 선다고 믿는 것이 민주공화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이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짓밟고 불의에 저항하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가 있다면 불(不)법이 아니라 반(反)법이라도 희망버스를 출발시키고 또 타야 한다. 빛이 환할수록 더 어두워지는 그늘이 우리의 눈길이 머물 곳이기에.. 


  전주에 택시 노동자 김재주가 있다. 전주시청 앞 20m 높이 조명탑에 오른 지 3월22일로 200일을 넘기고 몸서리쳐지는 날짜를 하나하나 늘리고 있다. 저 날짜의 숫자는 그저 숫자가 아니다. 사람이냐 야만이냐를 묻는 역사의 질문을 담은 숫자이고 무게다. 그는 전주시청과 택시사업주, 노조가 합의한 전액관리제를 전주시청이 이행하지 않자, 지난해 9월4일부터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흔히 우리는 택시가 이른바 사납금제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납금 제는 하루 일의 시공간적 변동성을 고려하지 않아 회사에게는 일정하고 고정적인 수입을 주지만 기사에게는 장시간 노동에 종종 자기 돈을 쳐 박아야 하는 살인적 노동조건을 만든다. 그래서 이미 1997년 사납금 제도가 불법화되었지만 전국의 법인택시 대부분은 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변경한 불법적 사납금 제를 고수하고 있고 지자체들은 이를 묵인하고 있다. 불법을 고수하기 위해 정부 지자체 사용자 그리고 이미 노동자의 권익대신 사용자와 결탁한 어용노조들의 강고한 야합이 있다. 특권과 반칙과 차별과 학대를 적폐의 가장 밑바닥 뿌리들의 결합니다. 그 결과 기사들은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면서 소정근로 시간은 4시간~ 6시간으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모든 교통수단 중 압도적으로 많은 교통사고율과 사망사고율에 시달리고 있다. 


  김재주씨는 이미 2016년 2월 전주 시로부터 ‘전액관리제를 2017년 1월부터 시행’한다는 지자체 차원의 노사정 협약의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토대인 더불어 민주당이 오래 집권 중인 전주에서조차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공중농성을 200일 넘게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 뿐 아니라 스스로 정한 법까지 20년 넘게 지키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 이유는 택시라는 현금 사업에 토호정치, 지자체의 무책임과 비리구조, 사용자의 탐욕과 어용노조의 패악이 고스란히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죽어나는 것은 직접 일하는 택시기사이며 노동자 서민이다. 이런 악폐 적폐를 깨기 위해 김재주 택시기사는 ‘가로 180㎝×세로 70㎝’ 조명탑 공간에 6개월이 넘게 박혀 있다. 


  다시 출발하는 희망버스는 불법 사납급 제라는 대못을 함께 빼자는 촛불 정신의 제대로 된 계승이다. 그리고 이번 희망버스는 목적은 물론 심지어 수단도 정당하다. 김재주 택시기사를 구하고 전국의 택시 노동자를 구하고 무엇보다 안전한 택시를 시민들에게 제공하자는 희망버스다. 함께 희망버스를 타, 보이는 적폐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밑바닥 적폐에 절망하여 신음하는 형제들의 목소리에 촛불의 힘을 싣자.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Under The Sea


곧추세운 몸이 위로 서서히 떠오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빛의 알갱이들이 늘어나며 주위는 점점 밝아온다. 드디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윤슬이 눈부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사랑해요.”

그는 미소 짓는다.


대학이 긴 방학에 들어갔다. 나도 덩달아 배낭을 꾸렸다. 다르에스살람에서 잔지바르행 페리를 타면서도 이곳이 여행의 종착점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동북 지방을 돈 후 종단해서 돌아오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스쿠버다이빙은 꼭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었다. 실행력 하나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는데, 물에 들어가는 것만은 늘 미적거리게 되는 나를 알기에 이번에는 기필코 하며...

트럭을 개조한 버스를 타고 도착한 능귀 해변. 인도양의 진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석고 가루를 개어놓은 듯 희고 고운 모래. 모래톱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고 깨끗한 물. 그 모든 것을 축복하듯 쏟아지는 햇살. 그것들이 한데 버물어져 비취색 물결을 빚어내고 있다. 저 멀리 검푸른 물결은 하늘로 이어져 있다. 머뭇거리기만 하던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나를 탐하라고,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다이빙 포세이돈’. 그가 운영하는 다이빙 숍이다. 안정감 있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 베른하르드. 오십이 되며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어, 그동안 해오던 일을 접고 호주에서 이곳으로 온지 육 년째라고 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활동이므로 그는 매우 신중했다. 기본 교육 후 테스트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사인을 하고야 계약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프랑스인 커플과 미국인 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수는 둘 씩 짝을 이뤄하는 스포츠로 나는 베른하르드와 팀을 이뤘다. 준비를 마친 후 차례차례 물로 뛰어들었다.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처음 짊어진 산소통과 익숙하지 않은 호흡기가 나를 긴장하게 했나보다. 균형을 잡지 못한 몸이 뒤뚱거리며 바닷물이 목구멍을 통해 들어가자 정신이 아득해진다. 지금은 이렇게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를 붙잡고 발버둥 쳤을 내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창피하다. 어쨌든 그의 도움으로 겨우 우스꽝스런 사태를 수습하고 서서히 하강을 시도했다. 그러나 곧, 귀에 강한 통증이 인다. 수압에 적응하기 위해 몇 차례 올라오고 내려가기를 반복한 후에야 밑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오직 내가 내뿜는 숨소리만 들리는 공간에서 호흡에만 집중하는 절대적 순간. 인간의 손이 가지 않은 태고의 신비와 마주하는 일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그 어떤 일보다 나를 전율케 한다. 

새하얀 모래 바닥에 몸을 곧추세우고 있는 실뱀들. 산호초 사이를 들락거리며 숨바꼭질하거나, 하늘거리는 말미잘 사이를 노니는 빨간 물고기들. 바위틈에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모여 있는 밤송이 같던 성게들. 조류에 몸을 맡기고 부유하는 해마. 그 곁을 유유히 헤엄치는 형형색색의 물고기 떼. 산호초 동산 위를 떼 지어 날아다니던 작고 투명한 물고기들, 그들은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는데, 마치 불꽃놀이를 하는 듯하다.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어쩌지 못하고 우우, 소리만 뱉어 낼 뿐이다.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횟수를 더해 갈수록 나와 바다는 하나가 된다. 때론 나를 위해 물길을 열어주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공간에 가두려고 한다. 우리는 밀당을 하며 조금씩 서로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마지막 다이빙,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로 코렐 마운틴이라고 했다. 

이곳은 사뭇 다르다. 두 개의 세계로 극명하게 나뉘어져있다. 한쪽이 산호초 산이라는 밝음이라면, 다른 한쪽은 검푸른 어둠이다. 한 번 빠지면 절대 되돌아 나올 수 없는 크레바스 같은. 

두 세계는 똑 같이 나를 유혹한다. 저 알 수 없는 깊은 세계로 들어가 보고 싶은 어두운 욕망과 아름다움을 더 탐하고 싶은 욕망.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며 양쪽을 곁눈질한다. 엄마가 한눈을 파는 사이 신기한 것들을 쫓아가다 길을 잃는 어린아이처럼 나도 눈앞에 펼쳐지는 욕망을 쫓으며 길을 잃으려는 찰라, 그는 손목에 찬 눈금을 가리킨다. 더 이상 내려가지 말라는 사인이다. 나는 고개를 있는 힘껏 저으며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해 강하게 내리 꽂는다. 좀 더 내려가 보고 싶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다. 


나의 휴가는 두 개의 욕망 사이를 오가며 모두 소비되었다. 이제 남은 건 새로운 바다를 꿈꾸는 일. 그게 무엇인지, 어떠한 모습일지는 나도 모른다.


7월29일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소피아의 탄자니아 통신-16

 탄자니아의 행주 대첩



 헤헤(Hehe) 부족의 추장인 음크와와(Mkwawa)를 만나러 온 길이다. 유리 상자에 잘 보관된 사람의 두개골이 나를 맞는다.  이링가에서 만난 나의 동료 노엘 무에고하는 점심을 먹은 후, 나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음크와와는 1855년 이링가 지역의 루호타에서 무니굼바 족장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자, 음크와와는 형과의 싸움에서 이겨 권력을 승계한다. 이 시기는 노예제가 종식되고,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착취할 새로운 방법을 찾던 때로, 탄자니아는 독일의 식민지배 아래에 있었다. 족장이 된 음크와와는 바가모요에서 타보라에 이르는 교역로에서 통행세를 받았고, 독일의 미움을 사게 된다. 에밀 폰 잘레스키가 아스카리(아프리카인으로 구성된 용병)를 이끌고 왔다. 그들은 소총과 중화기로 무장하고, 보이는 즉시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살해했다. 전쟁은 불가피했다. 

  음크와와는 훌륭한 지휘관일 뿐만 아니라 지도자였다. 그가 이끌던 병력은 수천에 달했고, 방패와 창, 약간의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수한 첩보 시스템을 갖추고, 독창적인 전투계획을 수립했다. 이 전투에서 독일군은 처참히 패배했고, 에밀 폰 잘레스키도 사망했다. 후에 이 전투는 ‘루갈로 전투’라고 불렸는데, 아프리카에 주둔한 독일군에게 역사상 최악의 패배였다. 

  그로부터 삼년 후, 프라이헤르 폰 쉴러와 ‘이링가 전투’를 치르게 된다. 이때 아녀자들도 치마에 돌을 담아 와 싸웠을 정도로 헤헤족은 용감했다고 전해진다. 행주대첩에서 전투 중 화살이 떨어지자 부녀자들도 치마에 돌을 날라 와 싸웠던 얘기와 흡사해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소총과 기관총을 당해 내지 못하고 전쟁에서 지고 만다. 

  그 후 음크와와는 게릴라전을 펼치며 저항했으나,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에서 자살했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그 후 독일인들은 음크와와의 머리를 잘라 독일로 가져갔는데,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후에야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살 방법에 있어서는 노엘의 이야기와 찾아본 자료의 내용이 다르다. 노엘은 턱에서 얼굴을 관통해 두개골까지 칼로 찔러 자살했다고 하는데, 자료에는 관자놀이를 총으로 쏘아 자살했다고 되어있다. 후자가 맞지 않을까 싶다.

   그가 살고 있는 박물관은 벽면을 둘러 약간의 역사적인 자료들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을 뿐, 그의 용맹성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은 많지 않다. 그가 독일군에 맞서 싸우며 사용했다는 칼과 창, 방패 등이 있었는데, 방패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옆 전시장엔 독일군들이 사용하던 총들이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무기로만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가 남긴 유물 중 시선을 끈 것은, 그가 독일에 보냈다는 친서다. 그 당시 독일어로 편지를 쓸 정도의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음크와와 외에도 독일군에 저항한 이야기는 많다.    그 중 특히 유명한 이야기는 ‘마지마지(물) 전쟁’이다. 킨지키틸레라는 예언자가 축성한 물을 마시면 총과 칼에 상처입지 않는다고 말하고, 기장 가루를 물에 섞어 이마에 바르거나 뿌려서 조직의 단결과 지도력을 고취시켰다고 한다. 전투 중 독일군이 쏜 총알이 물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남부 탄자니아 마콘데 고원에서 일어난 야오족의 마쳄바는 주택세를 거부하며 토벌대에 대항해 싸웠다. 패배 후 해안지방으로 가라는 명령에 ‘나는 내 땅의 술탄이요. 당신 역시 당신 땅의 술탄이요.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니 나를 데려갈 만큼 강하다면 와서 날 데려가시오’라는 답을 보낼 정도로 자존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냠웨지족의 추장인 이시케는 타보라에서 통행세를 거둬 독일과 대립했는데, 폰 프린스중위가 이끄는 독일군에 패배하고, 포로가 되기보다 자살을 택했다.

  통일된 나라가 없었기에 지엽적이었으며, 부족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는 한계는 있었지만 유럽인들이 생각하던 아프리카인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역할을 했음에 틀림이 없다. 안타까운 점은 독일인의 용병인 ‘아스카리’들이 아프리카인이었다는 점이다. 형식은 독일과의 싸움이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들끼리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독일이 부족 간의 대립을 이용할 수 있었던 점 역시 단일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아프리카의 비극이었다. 

  아랍이나 영국의 지배도 받았는데, 유독 독일에 대한 저항이 컸는지 궁금했다. 독일인은 현지인을 무척 가혹하게 다뤘다고 한다. 독일 용병들이 아녀자들을 겁탈하는가 하면, 작은 일로도 공개 태형을 하거나, 심지어 무자비하게 죽였단다. 지나치게 주택세를 부과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강기롱가 바위에 올랐다. 이링가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강기롱가는 헤헤 부족의 언어로, ‘말하는 돌’이란 의미인데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음크와와와 관련된 것이다. 그가 이링가에서 게릴라전을 펼 때 독일인의 이동이나 활동을 파악하던 곳으로, 정찰병들은 중요한 뉴스를 전하기 위해 새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음크와와가 그 당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많은 부분이 노예로 팔려가던 기록으로 메워져 있다. 이제는 비극적인 역사만이 아닌,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키울 수 있는 이런 자료들을 찾고, 발굴해 널리 알린다면 좋을 것이다.

 

4월8일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탄자니아통신] 옥수수 고개


  뭔가 수상하다. 

현관 앞 테라스에 낯선 사람들이 북적인다. 가까이 가니 도넛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한편에서 잘 부푼 밀가루 반죽을 아기 주먹만 하게 떼어 도넛 형태로 모양을 빚어 놓으면, 또 다른 한편에선 튀겨내느라 여념이 없다. 집 안 역시 다르지 않다. 가스레인지 네 개의 버너위에는 제 각각의 색으로 익어가는 도넛이 튀김 냄비 속에서 끓고 있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잘 익은 것을 건져내고, 빈 냄비에 다시 반죽을 넣고... 잠시도 손을 쉴 틈이 없다. 김 선교사님 얼굴에는 발그스레한 꽃이 피었다. 바람이라도 쐬고 오시라며 교대를 청하자 위험하다며 팔을 젓는다. 위험한 건 마찬가지 아니냐며, 뺏다시피 튀김 젓가락을 받아든다. 

  “무슨 일이래요? 잔치라도 벌이시나요?”  설명인즉, 지금 이곳의 시골은 춘궁기로 점심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단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점심 준비를 하는 것이란다. 


  이곳 서민들은 옥수수 가루에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얕은 불에서 잘 저어주며 익힌 후, 마치 호빵처럼 둥글게 빚은 우갈리를 주식으로 한다. 지금 들에는 한참 옥수수가 영글어 가지만 추수를 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추수를 하기 전 3~4월이 농민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때라는 것이다. 그 옛날, 우리나라 역시 보리를 수확하기 전인 5~6월을 보릿고개라고 해서 가난한 백성들이 풀뿌리나 나무껍질 등으로 연명하거나, 심하면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다고 하지 않나. 지금 이곳도 옥수수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그 많은 양의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불 보듯 훤한데, 그것들을 손수 장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드는 김에 주변의 독거노인들 몫까지 만들었다며 들려주는 빵 봉지를 들고, 아이들을 앞세워 길을 나섰다. 옥수수 밭 한가운데 대여섯 평 됨직한 양철지붕 집. 쪽문을 들어서자 바로 부엌이다. 할머니는 발갛게 달아오른 화로 옆에 쪼그리고 앉아 콩 요리가 익어가길 기다리고 있다. 창이라곤 없는 집에, 갈라진 벽 틈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전부다. 부엌 옆 쪽방엔 스펀지 매트리스가 놓인 찌그러진 철제침대만 스산하다. 

  우리를 배웅한다며 따라 나온 그녀는 자그마한 키에 깡마른 몸매다. 신발을 신지 않은 발은 안쪽으로 둥글게 휘어 있었는데 엄지발가락이 기형적으로 길다. 오랜 세월 맨발로 생활한 탓이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찾아온 낯선 손님이 반가웠던지 여러 번 포옹을 청하는 그녀를 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맞춰 학교로 출발했다. 초행길로 여기저기 파인 물웅덩이와 꼬불꼬불 산길 탓인지 꽤 멀게 느껴진다.  

  수업중인지 세 채의 교사(校舍)가 화단을 둘러 서 있을 뿐 조용하다. 화단이라고 해봐야 삐뚤삐뚤 벽돌을 둘러 시늉만 냈을 뿐, 사람 손이 가지 않아 잡초만 무성하다. 일학년 교실로 들어서자 손바닥만 한 교실에 백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아있다. 하얀 난방에 빨강색 니트, 파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여기 저기 헤져서 너덜거린다. 일 년에 한 번씩 교복을 나눠주는데 옷 한 벌로 일 년을 나니 당해낼 재간이 없는 탓이란다. 선생님이 함께 한 탓인지 아이들은 얌전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너무나 차분한 아이들이 낯설기만 하다. 세네갈에서의 경험을 생각하며 은근히 걱정을 하던 터였으니 말이다. 

  


  세네갈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한 적이 있었는데 마지막 수업 시간, 작별 인사 겸 선물로 비스킷을 준비했는데, 온순하고 상냥하던 아이들이 먹을 것 앞에서 거의 아귀 수준으로 변해 잘못하면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했다.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수습을 했으나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하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교실은 널널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퇴한 아이들이 많아서라고 한다. 중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인데도 시골에서는 아직 아이들을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탓이다. 하지만 일부 교육열이 있는 부모들은 소도 팔고 땅도 팔아 학교를 보내기에, 입학 시기가 되면 매물이 많이 나와 땅값이 곤두박질을 친단다. 

  

  이곳에서 초등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노트 겉면에는 ‘Education is the most powerful weapon we can use to change the world'라는 넬슨 만델라가 했던 말이 적혀 있다. 교육의 힘을 믿는 지도자와 일부 학부모의 교육열이 이 땅을 살릴 것이라 믿는다.    나는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는 아니지만, 초등학교 점심시간에 식빵이나 옥수수 빵을 급식으로 먹은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선진 자선단체에서 제공한 구호물자였다. 어린 나이의 우리가 그런 것을 알리 만무했고, 별미를 먹는 색다른 즐거움을 누렸을 뿐이었다. 나는 저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지금을 추억하며, 좀 특별한 급식을 먹었던 학창 시절의 아름다운 경험으로 기억하길 바란다.

   


3월25일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지역청년을 만나다, 지역공간을 말하다


금천/구로 일대에서 매력적인 공간을 운영하는 지역 청년을 만납니다. 청년들이 편히 오갈 수 있는 혹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역공간을 담아냅니다.




#1 백지장을 소개합니다 


Q. 안녕하세요, 백지장을 운영하는 5명의 친구들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백지장을 운영하고 있는 차근, 동욱, 소현, 호태, 그리고 미루입니다 :) 대부분 구로에서 나고 자라온 친구들이에요. 소현이와 차근이 원래 고등학교 친구였는데, 차근이 소개로 한 명씩 서로 알게 되면서, 지금 같이 백지장을 꾸려가고 있어요. 


Q. 백지장은 어떤 공간인가요?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누구나 빈 A4용지처럼 편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이에요. 작은 공간이지만 대여하여 일정 시간동안 온전히 단독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죠. 보통 작업 공간이나 모임 공간이 필요해서 찾아보면 예약하는 데 경쟁이 심하거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하거나 비용적인 부담이 큰 데, 백지장은 그런 부담 없이 본인의 필요에 맞게 편하게 머무르고, 채워나갈 수 있는 공간이에요. 




#2 백지장을 시작하기까지


Q. 백지장을 어떻게 시작됐나요?


처음에는 동아리방으로 시작했어요. 올해 1월에 차근, 소현, 그리고 동욱, 이렇게 셋이서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게 주된 활동이었는데, 그렇게 서로 다양한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일종의 살롱, 사교클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공간을 얻게 되었어요.  


그런데 막상 저희만 쓰는 동아리방보다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함께 쓸 수 있는 열린 공간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7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필요한 분들이 대여해서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백지장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들 대부분은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는 시기를 앞두고 있고, 다들 각자 다양한 꿈을 가지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같이 작업하며,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 ‘컴퓨터나 프로그래밍을 활용해서, 작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등등. 하지만 그런 꿈들이 결국 백지장과 맞닿아 있다고 모두 생각하기에,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Q. 이 공간을 무상으로 얻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사연이 담겨있는지요. 


소현의 외할아버지께서 흔쾌히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무상임대로 이 지하공간을 내어주셨어요. 물론 저희만의 소꿉장난으로 끝나지 않게 하라는 당부 말씀과 함께요.


그치만 10년 이상 안 쓰던 지하 공간이라 처음엔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천장 일부가 뚫려 있고, 곰팡이에 벌레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공기도 탁했어요. 그래서 정작 공간을 얻은 후 5월까지는 청소하느라 시간이 다갔어요. 


그래도 이런 공간을 무상으로 얻지 못했다면 더 속도에 쫓기도 어려움도 많았을 거에요. 공간이 일단 안정적이니,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으니 큰 힘이 되죠. 


Q. 백지장은 비영리공간이라 들었는데, 비영리공간으로 운영하기로 다 같이 마음을 모으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저희가 백지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꼬박꼬박 인건비가 나오는 일이 아니니까요. 공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있고요. 그래서 처음엔 비영리공간으로 하자, 영리공간으로 하자, 의견도 분분하고, 저희의 생각도 자주 바뀌었어요. 

그치만 우리 모두 처음 시작하는 일이니까, 정답이란 게 없으니까, 맞고 틀리다는 식이 아니라, 최대한 모든 생각들을 나누고, 지금은 별로인 것 같아도 나중에 막상 그 이야기가 좋게 활용될 수 있으니 버리지 않고 기록해두고...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지금은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 대여료만 받고 백지장을 비영리로 운영하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물론 여전히 더 많은 이야기들이 현재진행형이지만요.  


#3 백지장의 오늘, 그리고 내일 

Q. 백지장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나요? 


저희가 아는 지인들의 모임이나 활동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새롭게 외부 모임들이 백지장을 찾기 시작했어요.  대학생 동아리 모임이나, 전시회, 영화감상모임 등 20대 중후반의 청년들이 직접 꾸려서 진행하고 있는 모임이나 활동들을 위한 공간으로 주로 쓰이고 있죠. 


그래서인지 백지장을 찾는 친구들은 이 공간이 미완성이라서 좋다는 말을 많이 해요. 자신들과 비슷한 것 같다고,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고요.  


저희 역시 백지장이 지금과 같았으면 좋겠어요. 완전히 깨끗한 백지 같은 공간이라서, 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개성이 드러날 수 있는 공간,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들로 채워지는 공간이요. 


Q. 특히 어떤 사람들이 백지장을 이용하면 좋을까요?


일단 활동 공간이 부족한 지역의 청소년들이나 비정기적으로 동아리방이나 모임 공간이 필요한 친구들, 혹은 밤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공간을 쓰고 싶은 분들에게 백지장을 추천해주고 싶어요. 


백지장이 작은 공간이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펼칠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없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새로운 분야에서 처음 경험을 쌓아가는 분들에게요. 예를 들어 미대생이 아니지만 본인의 그림을 전시해보고 싶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개인이 인생에 한번 자신만의 무언가를 표현하는 전시나 행사를 소소하고 가볍게 열어보고 싶은 분들에게 백지장이 좋은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최근 백지장이 몰두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백지장이라는 공간을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무인공간으로 운영될 수 있는 준비를 마치는 일이에요. 공간운영을 하기 위한 비용 중에 인건비 부담이 제일 크잖아요. 그래서 스마트도어락 등을 활용해서 무인공간으로 운영해서, 누구나 부담없이 저렴하게 백지장을 편하게 빌려서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컴퓨터나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은 호태가 지금 열심히 관련 공부를 하고 있구요. 

다만, 온라인으로 예약해서 이용하는 데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백지장을 채우고 있는 모임이나 커뮤니티들이 연결되고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이용하시는 분들과 카페나 백지장 등에서 만나 관계도 형성하고, 서로 다른 모임들을 소개해주거나 연결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서로 알아가다 보면, 이 공간이 비록 무인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좀 더 책임감 있게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처럼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요?  


Q. 앞으로 백지장이 더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백지장은 10년 넘게 안쓰던 공간을 A4용지와 같은 상태로 많은 사라들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한 공간, 즉 갱지와 같은 가치를 가진 곳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백지장을 시작하면서 필요했던 것들,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것들을 열심히 정리해서, 이런 공간에 관심이 있거나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언제든 볼 수 있는 참고자료를 만들 예정이에요. 다른 청년들이 시행착오나 어려움 없이 지속가능한 공간을 운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백지장이 일종의 모델하우스인거죠. 백지장이 각 동네에 많이 생겨서, 동네 청년들이 자주 갈 수 있는 공간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4 백지장이 그리는 구로 

Q. 백지장이 대림역 바로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데, 위치는 만족하나요?


옛날에 여기는 학교와 학교 앞 떡볶이집이 있고, 피아노 학원이 있는, 그런 평범한 동네였어요. 그치만 요즘은 풍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새로운 건물이나 가게가 많이 생기고, 일자리를 찾아온 중장년층이 대부분이고 청소년이나 청년들은 많이 줄어든 것 같아서 아쉬운 점이 많죠. 

그래서 구로디지털단지역이나 가산디지털단지역에 많이 있는 젊은 직장인분들과 많이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그 근방에 원룸 오피스텔에 혼자 사는 청년들도 많잖아요. 보통 이 동네에서 청년들이 잘 안 놀잖아요, 홍대나 다른 곳에 가서 놀지. 백지장을 거점으로 청년들이 자주 동네에 어슬렁거리면 좋겠어요. 그것만으로도 정말 큰 변화일 것 같아요. 


Q. 백지장이 구로구에 있다는 점이 여러분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아무래도 저희 대부분이 구로구에서 나고 자랐으니까 동네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그리고 구로구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팀들도 많고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어서, 청년들이 지역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좋은 것 같아요. 구로는예술대학이나 구로구는 아니지만 근처에 신도림예술공간 고리나 무중력지대 G밸리와 같은 공유 공간들이 함께 있으니, 더 무언가를 해보기 좋을 거 같다는 기대도 크구요. 


#5 백지장, 그리고 5명의 친구들 

Q. 백지장을 운영하고 있는 여러분은 요즘 어떤가요?  



(호태) 오랫동안 안 쓰던 공간이라 지저분하고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었는데, 친구들이랑 같이 페인트칠도 하고, 제습도 하고, 그렇게 하나 하나 채워나가니까 마치 내 방을 꾸미는 느낌이라 재미있어요. 그리고 백지장이 참 작고 아직 할 게 더 많은데, 오늘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어서 신기해요. 인생 첫 인터뷰니까요

(차근) 저도 요즘 백지장을 만들어가는 일이 재미는 있지만,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곧 군대를 가야하니까 조바심도 나구요. 그래도 짧은 시간동안 가치를 창출하는 경험을 해본다는 건 의미 있는 일 같아요. 그래서 지금보다 더 속도를 내서 몰입하고 싶어요. 


(동욱) 저는 지금 분당에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대림역에 오는 것까지 너무 멀어서 몰입도가 좀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 점이 많이 미안하기도 하구요. 또 개인적으로 지금은 혼란스럽고, 불안한 점도 많은 거 같아요. 군대를 갔다 와서 졸업 후를 생각하면, 하고 싶은 것들은 아직 너무나 많은데, 또 모든 게 다 열려있다는 점에서 더 혼란스러운 거 같아요. 


(미루) 방학 때 놀고 있는데 차근이형이 불러서 어떨결에 여름부터 백지장에 자주 오가며 일을 돕고 있어서,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백지장 역시 아직은 만들어지고 성장해가는 과정이니까, 큰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아직 갈 길이 멀죠. 


(소현) 저는 지금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시간은 부족하지만 백지장 운영을 하는 게 재밌어서 열심히 안할 수가 없어요. 백지장에서 이걸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자꾸 여러 생각들도 자주 하구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지만 지금은 백지장을 같이 운영하고 있는 친구들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제가 잘하는 것, 도움이 될 수 있는 점 등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백지장


ADD 구로구 구로4동 도림천로 336 진성빌딩 지하1층

TEL 010-7426-7222

EMAIL contact@blankpapers.org

HOMEPAGE blankpapers.org

FACEBOOK blankpapers.org



기획 및 제작, 촬영 무중력지대 G밸리

취재 무중력지대 G밸리,

       도토리문화학교



소피아의 탄자니아 통신-13


나는 한국어 전도사???



교정을 걷다 보면 다양한 언어로 인사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외국인이다 보니 가장 많이 듣는 것은 역시 영어다. 그 다음이 중국어인데, 아프리카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면 나는 한국말로 답한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어리둥절해 하는 그들에게 이것은 한국식 인사라고 설명해 주면, 그제서야 알은체를 하며 드라마 얘기를 꺼낸다. 요즘 탄자니아에서 ‘주몽’이 인기인지 주몽 얘기를 많이 한다.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대사에서 자주 듣던 문장이나 단어의 뜻을 물어오기도 한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은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는데, 그럴 때마다 반을 편성해 오라며 돌아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눈에 봐도 에너지가 넘치는 교직원을 만났는데 그 역시 같은 요구를 해왔다. 

가끔은 예외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 예외가 세상의 한 부분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믿는 유형이다. 그는 그날 저녁 메신저를 통해 명단을 보내왔다. 반신반의하며 수업 일정을 잡아보라 했다. 단톡방이 열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시간표까지 나왔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수업이 열렸다. 오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몇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중국어 강사로 파견되어 온 ‘화화’와 고등학생 ‘조슈아’가 합류한 것이다. 


화화는 Hanban이라고 불리는 중국 교육부 소속의 ‘국제 중국어 교사’ 자원봉사 단원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기도 한 그녀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탄자니아에 왔다. 쾌활하고 적극적일뿐더러,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도 강해 수업을 즐긴다.

조슈아는 음베야 산을 등산하며 만났던 교수, 찰스의 아들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방학을 맞이해 집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합류할 시점에는 이미 진도가 제법 나간 터라 조금 일찍 오게 해서 기초를 가르치니 금방 글자를 깨우쳤다. 곧 스마트폰에 한국어 자판을 설치해 인사를 해왔다. 지금은 한국에 있는 또래와 채팅을 즐긴다. 컴퓨터에 한글을 입력할 수 있게 해주고 자판 연습 프로그램을 깔아줬더니, 한글 자판 스티커를 사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게 가르치는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내 영어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곳은 특이하게 초등학교에서는 스와힐리어 교재로 공부하다 중등 학교로 진학하면 모든 과목을 영어로 바꿔 수업을 받게 된다. 자국어도, 영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교육정책 탓인데, 이런 시스템에서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향상되긴 어렵다. 그래서 능력 있는 부모들은 사립 학교에 보내 초등교육부터 영어로 수업을 받게 한다. 교수 아버지를 둔 행운으로 사립 학교를 다닌 덕에 그의 영어는 제법 유창하다. 수업이 없는 날은 메신저를 통해 쉴새 없이 영어로 질문을 해대니 나 역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덕분에 내 영어 어휘도 많이 늘었다. 이제 방학이 끝나 다시 모로고로에 있는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며, 졸업 후 다시 합류하겠다고 한다. 그가 빠진 수업을 생각하니 잔재미가 떨어질 듯해서 걱정이다. 



국제 사회에서 그 나라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자국어 사용 인구 수가 사용될 정도로 언어는 힘이다. 일찍부터 그 사실을 간파한 유럽의 강대국들은 자국어 사용 인구를 늘리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해왔다.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란세스,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 영국의 영국문화원 등을 들 수 있는데, 중국은 그들을 모방해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공자학당을 설립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언어뿐 아니고 토목과 건축 분야는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곳은 요즘 어디를 가나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인데 거의 대부분이 중국 자본과 기술력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프리카는 중국 땅이라고 할 만큼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코이카와 세종학당을 통해 한글 보급과 나라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도도마 대학에 한국어 학과를 개설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어를 전공으로 하려는 학생은 많지 않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선택 과목으로 개설한다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욕구를 가진 학생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이곳 대학으로 오며 한국어 교육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맡은 전공과목에 대한 부담으로 다른 건 고려할 여건이 아니었는데 우연찮게 시작한 수업이 나를 나아가게 한다. 며칠 전, 총장 보좌인 음본데를 만나 한국어를 선택 과목으로 하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검토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중국 대학에서 한국어를 강의한 경력으로 시도해 보는 것인데,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1월 9일

푼디


 집수리 기술자 푼디와 아이들



종점에서 기다리겠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달라달라(시내버스)에 올랐다.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틈 사이로 잡목 숲이 언듯언듯 보이는 가 싶더니, 제법 큰 마을이 나온다. 차장은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목적지라고 알려준다. 달라달라에서 내리자 자그마한 키에 호리호리한 사내가 나를 발견했는지 다가온다.   

  그는 집을 수리하며 만난 푼디(기술자)다. 

관사로 들어와 집을 손보는데 며칠이면 끝날 것이라던 공사는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데도 진척이 없어 지쳐가던 중, 기술자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며 찾은 사람이 그였다. 

 식전 댓바람에 와서 늦은 시간까지 묵묵히 일만 했다. 물 달라는 말조차 없었다.  그런 그가 맘에 쓰여 중간 중간 간식을 냈다. 그의 손이 닿자 며칠 만에 공사는 마무리 되었다. 일을 끝내고 돌아가며, 자신의 집에 초대를 했던 것이다.  


 그는 삐뚤빼뚤한 골목길을 한참이나 걸어가서야 자그마한 대문 앞에 멈추어 선다.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집인데, 그 중 커튼으로 내부를 가린 입구로 안내한다. 좁은 거실에는 벽면을 따라 레이스 천으로 커버를 씌운 소파가 자릴 잡고, 중앙에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거실 한 귀퉁이를 차지한 배불뚝이 구형 텔레비전에서는 합창단원들의 몸짓만이 권태롭다. 

 거실을 가운데 두고 두 개의 방이 나란히 놓여있다. 부부침실엔 커다란 침대하나가 방을 가득 채우고, 벽면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옷가지가 전부다. 맞은 편 방은 부엌이며 동시에 아이들의 거처다. 부엌살림이라고 해봐야 아직도 불길을 안고 있는 숯불 화덕과 켜켜이 쌓여있는 플라스틱 통, 몇 개의 양은 냄비가 전부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참 열악하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삶이 내게는 작은 위안으로 다가온다.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것들을 탐내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곡간을 채우려고 전전긍긍 하던 욕심만 내려놓으면, 내 한 몸 거둘 수 없겠나 하는 맘이 들었기 때문이다.       

 

 딸만 셋인 딸부자였는데,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나를 보며 경계하는 지 곁눈질만 할 뿐 선뜻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곳에 자리 잡고 사시는 한인분이 자신의 딸 이 입었던 것이라며 주신 원피스와 막내를 위해 쇼핑한 옷이 든 쇼핑백을 큰 아이에게 내민다. 면 체크무늬 원피스를 밑에 동생에게 넘기는 걸 보니, 공주풍의 하늘하늘한 분홍색 레이스 원피스가 맘에 들었나보다. 동생은 바로 갈아입고 나와 내 앞에 서서 자랑을 한다. 언니는 체면을 차리는지 멀찍이서 몸에 대보기만 하는데, 입에는 함박웃음이 걸려있다.  

 그의 아내가 식사 준비를 하는 사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며 나를 끈다. 대문을 나서자 어느새 준비했는지 오토바이 한 대가 서있다. 친구에게 빌려온 것이란다. 울퉁불퉁 자갈길을 한참 달려 도착한 곳은, 넓은 들판에 몇 채의 집만 덩그맣게 서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저만치 공사 중인 건물이 보였는데, 혼자 자신의 집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삼십대 초반인 그는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공사판을 떠돌며 기술을 익힌 것인데, 손끝이 야물고 영리해 웬만한 전문가 뺨쳤다. 기술이 있는 그에게 땅이 마련되자 자연에서 나는 재료만으로도 너끈히 집을 짓는 것이다. 거실에 방 둘, 부엌 그리고 화장실 겸 샤워 실. 좁지만 다섯 식구가 살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미 몇 그루의 망고와 아보가도 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는 마당에 야채도 심을 거란다. 정원도 가꿔보라는 나의 말에 빙그레 웃는다. 


 여섯 가구가 함께 세 들어 살고 있는 지금의 집. 수도꼭지 하나가 시설의 전부인 욕실을 공동으로 사용했고, 마당의 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쓰고 있었다. 그의 집과 맞은편에 살고 있는 중학교 교사의 집을 제외하면 단칸방이라고 했다. 이곳은 서아프리카와 달리 핵가족 형태를 띠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독신인구가 많다. 부족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인구를 분산시키는 정책을 편 영향인 듯하다. 120개나 되는 부족들을 섞기 위해 학생들을 다른 지방의 학교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그래서 기숙사나 관사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이런 저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그곳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이사 갈 꿈으로 행복한 그. 몸뚱이 하나로 삼십대 초반의 나이에 자신만의 집을 갖게 된 사내. 탄자니아에서 보기 힘든 사람이다. 

  그의 아내가 정성스레 준비한, 감자에 소고기를 넣어 찐 전통음식을 맛나게 먹고 나오면서 집들이 선물로 예쁜 식기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10월 15일


한가위 보름달을 야생의 자연 상태에서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배낭 하나 매고 나서는 발걸음은 늘 가볍다. 이링가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보다보다’라 불리는 오토바이 택시를 탔다. 투타말랭가행 낡은 대형 버스가 기다린다. 행선지가 정확하게 적혀있지 않은 차를 운전사의 말만 믿고 탔다가는 어디로 갈 지 모른다. 여러 사람에게 재차 확인을 하고 난 후에야 차에 오른다.  

오후 여덟시에 출발한단다. ‘지금이 오전 열한시인데...’하다가, 탄자니아 시간에 생각이 미친다. 이곳은 그들만이 사용하는 로컬 시간대가 따로 존재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간과 꼭 여섯 시간 차이가 난다. 계산을 해보니 오후 두시를 의미했다. 세 시간, 기다리는 데는 이제 나도 이력이 난 터라, 제 시간에 출발해 주기만 바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꼭 한 시간을 더 채우고 차는 움직인다. 시동을 거는 데 엔진 소리가 불안하다. 옆 좌석에 앉은 학생을 걱정스레 쳐다본다. 괜찮단다. 

두 시간이 걸린다는 버스는 정확히 네 시간이 채우고 투타말랭가에 도착했다. 두 시간 거리를 이동하는데 꼭 하루가 걸렸다. 이곳은 마음을 넉넉히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땅이다.

코끼리 떼가 물을 먹고 있다


바오밥 나무와 기린의 모습


루아하 국립공원의 첫인상을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쯤으로  서술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 기대를 배반하기 마련이다. 낯익은 풍경에 실망하려는 순간 제법 커다란 물체가 후다다닥 길을 가로질러 잡목숲 속으로 사라진다. 초입부터 송아지만한 짐승을 만났다면 기대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잠시 스친다.

사파리 도중 가장 많이 만난 동물이 임팔라, 코끼리, 기린 순이었는데, 임팔라는 아담하고 날렵한 몸매에 산머루 같은 눈망울이 선하고 앙증맞지만, 존재감 없이 얌전하기만 해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학창시절 동창처럼 싱겁다. 


기린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몸매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법하다. 나뭇잎을 뜯어 먹는 품새마저 잘 자란 양갓집 규수마냥 기품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눈을 꿈뻑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껑충껑충 뛰어 달아나는데, 춘향이가 향단이로 변한 양상이다.  

곳곳에 밑동이 벗겨진 바오밥 나무들이 있었는데, 나무속의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코끼리가 한 거라고 했다.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 역시 그들의 소행이란다. 이쯤 되면 초원의 무법자다. 코끼리하면 내게는 타잔 영화 속의 정의의 사도로 기억되었었는데 말이다. 타잔이 곤경에 처해 ‘아~~~~~아아’하고 손나발을 불면, 어느새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와, 악당들을 물리치곤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들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라고 있는, 풀을 뜯는 광경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왼쪽 발로 땅바닥을 툭툭 차서 풀을 뽑아 놓고는 긴 코로 살짝 집어  올리더니, 마치 키로 까불듯이 몇 번 흔들어 흙을 털어내고 입으로 가져간다. 무리들과 조금 떨어져 걷고 있는 코끼리 세 마리가 보였는데, 마치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소풍가는 가족같이 정겹다. 


아름답기로 치면 기린과 쌍벽을 이룬다고 생각한 얼룩말도 자주 눈에 들어왔다. 의외로 백 미터 미남 미녀들이다. 작달막한 키에 통통한 몸매, 두툼한 목살이 둔해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사자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는데, 사자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가이드가 차를 돌린다. 이미 몇 대의 차량이 서 있다. 암사자 몇 마리가 그늘에 앉아 있다. 수놈은 보이질 않는다. 맹수의 본능을 숨기고 있는 그녀들은 그냥 게으른 사냥개처럼 보일 뿐이다. 그 외에도 원숭이, 하마, 악어, 이름 모를 새들을 보았다. 

입장료를 치르며 만났던 공원관리가, 휴일을 맞아 때마침 이링가에 있는 본가로 돌아간다며, 차를 태워주겠다고 했다. 국립공원에서 이링가까지는 비포장도로였는데 곧 포장을 할 거라고 했다. 이미 설계도 끝나고 착수만 하면 된단다. 밀렵꾼은 없냐는 나의 질문에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단다.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잘 관리하고 있는 탓이란다. 인상 깊었던 것은 공원 입장료를 카드로만 받고 있었는데, 현직 대통령 마구풀리가 집권하며 비리를 막기 위해 취한 조치라고 했다. 

탄자니아는 없는 게 없는 풍요로운 땅을 가졌지만 유능한 지도자가 없다고 한탄하던 나의 동료, 로엘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내내 꽉 찬 ‘슈퍼 문’이 나를 호위해 주었다.

부시에서 동물들을 많이 만났지만, 오래 기억되는 건 그래도 사람이다. 정반대 방향의 차를 타라던 무책임한 차장들, 가는 내내 말동무가 되어주던 까까머리 고등학생. 자신이 로얄 패밀리라고 허풍을 떨던 가이드, 환율로 나를 바가지 씌우던 사내, 예쁘고 영민해 보이던 친절한 호텔 프론트 아가씨... 그들과 웃고, 수다 떨고, 다투기도 하면서 탄자니아에 한 발 더 나가선 듯하다. 


2016.09.25.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보름달처럼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금천구민 여러분! 그리고 곳곳에서 고향을 빛내고 계신 자랑스러운 금천인 여러분!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추석에는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친지들과 훈훈하고 가슴 따뜻한 시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잊고 있었던 친구들과 이웃들에게도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 나누는 명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올해는 민선 6기 출범 2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 금천구는 주민자치 역량 강화로 복지와 마을공동체의 공생적 발전을 모색하는 마을민주주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마을계획 수립과 마을기금 운영 등 자립적·주체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해는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정착의 원년으로 ‘찾동’ 중심의 복지·건강·일자리의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 주민의 건강과 행복을 돌보는 거점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현재 진행중인 군부대 부지 내 친환경미래도시를 조성하는 등 금천의 지도를 바꿔가는 일에 총력을 다 할 계획입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고 그늘진 곳,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모든 곳에 최대한 다가가는 수요자 중심의 복지정책을 펼치겠습니다.

우리구는 이를 위해 구민들 곁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끊임없이 만나고 소통하면서 더 나은 금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풍요로운 황금들녘에서 한해의 농사를 추수하듯 주민여러분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금천의 변화가 열매를 맺는 시간이 되도록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작년보다 더 심한 저성장, 고물가, 실업난과 극심한 전세난 등 경제상황이 어렵고 상황을 헤아리기 어려운 변수가 산재해 있지만 구민여러분께서 힘을 모아주신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우리의 큰 명절인 추석을 맞이해 금천구민의 한결같은 성원과 적극적인 참여에 감사드리며 내내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설렘 가득한 고향길 안전하게 다녀오시고,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금천구청장 

차성수

   

------------------------------------------------------------------------------------------------------------------



존경하고 사랑하는 금천구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금천구의회 의장 정병재입니다.

우리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한가위를 맞이하여 구민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추석에는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 친지들과 함께 훈훈하고 가슴 따뜻한 시간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동안 금천구의회는 금천구민들의 사랑에 힘입어 금천구 발전과 구민 행복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묵묵히 달려왔습니다. 지속되는 저성장과 경기침체, 실업난 등의 어려운 상황들이 산재해 있지만, 구민 여러분께서 힘을 모아주신다면 함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앞으로도 금천구의회는 주민과 함께하는 열린 의정과 찾아가는 현장 의정을 통해 우리 금천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금천 발전이라는 값진 열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구민 여러분의 가정에 항상 풍요와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하며, 이웃과 넉넉하게 나누는 풍요롭고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금천구의회 의장 

정병재 



----------------------------------------------------------------------------------------------------------------------


금천지역 주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거짓말처럼 무더위가 가시고, 청명한 가을 하늘과 함께 민족 최대 명절인 한가위가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순도순 덕담을 나누는 즐거운 추석 명절에, 우리 금천 경찰은 주민들이 평온하고 행복하게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현장을 굳건히 지키며 지역 치안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특히 명절 전후 들뜬 분위기를 틈타 발생하기 쉬운, 절도 등 각종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주민들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전 직원들이 힘을 합해 특별방범․형사활동을 실시하는 한편, 고향 가는 길이 더욱 편안하도록 원활한 교통 관리에도 힘쓰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민 여러분, 

 금천 경찰은 주민 만족 치안을 목표로 노력한 결과, 대내외적으로 매우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올해 1~3월경 112 신고를 한 뒤, 경찰의 응대 및 민원서비스를 경험한 주민들을 상대로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 경찰서는 서울 31개 경찰서 중 1위를 달성하였고, ’16년 상반기 직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직무만족도 평가에서도 2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7월 11일 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이래, “안전한 금천, 깨끗한 경찰”을 기치로 내걸고, 모든 경찰관의 보다 적극적인 치안 활동과 친절한 자세, 공정하고 청렴한 법집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각 지구대․파출소에서는 매일 경찰관 한 명 당, 두 명 이상의 주민을 만나 지역 치안에 관한 의견과 불편함을 듣고 적극적으로 어려움을 해소해 주는‘112 운동’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6. 1.부터 8. 31.까지 실시한 여성안전특별치안활동 기간 동안 골목길 순찰, 주민 간담회 등을 통하여 지역 주민이 불안하게 느끼는 공간과 인물에 관한 의견을 가감 없이 듣고, 순찰을 강화하거나 범인 검거 또는 구청 등과 협력하여 비상벨 또는 보안등을 설치하는 등 범죄에 취약한 환경을 개선하는 활동도 꾸준히 펼쳤습니다. 

    특히, 앞으로는 보다 과학적인 범죄 분석과 첨단기술의 접목을 통해 치안 활동의 효율성을 높이고(스마트 치안), 주민 여러분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안전하고 질서 있는 치안공동체를 공고히 해 나가는데(공동체 치안) 더욱 주력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금천 경찰의 활동을 관심 깊게 지켜봐 주시고, 앞으로도 잘 한 일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애정 어린 충고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우리 금천 주민들이 가장 궁금하고 필요로 하는 소식들을 발 빠르게 전해줌으로써, 지역 사회의 화합과 발전에 기여하는 금천in 관계자 분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통해 주민들에게 더욱 많은 사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풍성하고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금천경찰서장  

김 성 종


----------------------------------------------------------------------------------------------------------------------


금천구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금천구 국회의원 이훈입니다. 무척이나 무더웠던 올해 여름이 지나고 민족의 최대 명절 한가위가 다가왔습니다. 일상의 고단함은 잠시 잊고, 가족 모두가 즐겁고 정겨운 추석 연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역 전통시장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 먹고살기 어렵다고 말씀하셔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2016년 청년실업률은 역대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세월호 사건과 가습기 사건은 아직 풀리지 않은 채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민주주의의 후퇴와 서민경제의 침체, 대북관계의 문제들을 극복해내야 하겠습니다. 서민과 약자들을 위한 민생제일의 가치로 국정과 지역의 미래지향적인 비전과 정책을 세우고 이루겠습니다. 

저도 서민의 한결같은 벗이 되어 바르고 유익한 정치의 길로 올곧게 가겠습니다.

모쪼록 주위의 소외된 이웃과도 더불어 함께하는 알차고 보람된 한가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금천구 국회의원

 이 훈올림







참 건강을 위해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의학지식이나 건강상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많다. 모두 의사나 치유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이 알고 있는 정보들은 대부분 피상적, 단편적이고 저차원적인 것들로, 거의가 대중매체에서 얻은 것들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우리의 심신은 더욱 강건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건강은 절대 절명의 과제이다. 하지만 수많은 대중매체들이 무책임하게 상업적으로 쏟아내는 건강정보들은 때로 해롭기까지 하다. 대중을 더욱 나약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정보들도 있다. 옥석을 가려볼 줄 아는 혜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세상의 모든 수단, 방편들은 다 건강과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문학, 예술(음악, 미술, 영화, 무용 등), 스포츠 나아가 정치, 경제 등. 또한 물이나 음식, 수면, 언어, 생활자세, 노동이나 몸짓까지도 활용하기에 따라 훌륭한 치유수단이 된다.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가 능히 동료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다시 일어나게 할 수 있지 않은가. 

  전통의 양생법인 기공(氣功)은 우리 민족을 지켜온 대안의학, 예방의학이자 문화의 원천 소스로서, 오랜 세월동안 행해져 왔다. 제기차기, 널뛰기, 탈춤 등 민속놀이와 큰절하기 등의 예법은 기공을 생활화했던 실례이다. 조선조만 해도 허준, 퇴계 등 많은 선조들이 이를 실천했고 <동의보감>, <활인심방(活人心方)> 등을 통해 후대에 전하기도 했다(그림1 참조). 우리는 건강과 치유뿐 아니라 예방의학 차원에서도 이를 깊이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예방이 치료보다 더 중요하며, 비용도 훨씬 덜 든다. 또한 기공은 건강문화의 콘텐츠로도 널리 활용될 가치가 있다. 특히 기공의 고차원 건강정보는 우리를 더욱 강건하고 지혜롭게 이끌어줄 것이다. 

   

-참 건강을 위한 생활수련  

  참 건강을 위해서는 몸과 생체에너지, 마음을 동시에 잘 관리해야 한다. 옛사람들은 이를 각각 형(形), 기(氣), 신(神)이라 불렀다. 형기신을 잘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형(形), 곧 몸을 위해서는 체형을 바르게 교정해야 한다. 틀어진 고관절과 척추를 바로 하고, 근골과 관절을 강화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치유력이 극대화되어 만병이 스스로 치유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교정식 참장공이 좋다. 둘째 기(氣) 즉, 생체에너지를 강화하려면 먼저 단전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마보식 참장공과 함께 단전호흡을 해야 한다. 셋째 신(神) 즉, 정신을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덕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묵념을 생활화하고 덕행(德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구체적인 방법은 1~4회 참조).   

  

< 그림1. 퇴계의 활인심방에 소개된 기공 동작들 >


연재를 마치며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해 다음 몇 가지를 실천해 볼 것을 권한다.

① 아침저녁으로 매일 참장공(마보식과 교정

식)을 1~2분씩 한다.

② 서 있을 때는 언제나 참장공을 응용한 자

세로 서 있는다.

③ 걸을 때는 팔자걸음을 걷지 말고, 발을 살

짝 안으로 모아 걷는다. 

④ 자리에 앉을 때는 다리를 벌리거나 꼬지 

말고 반드시 모아서 앉는다.

⑤ 잘 때는 다리를 벌리지 말고 두 다리를 모

아서 바르게 자도록 한다. 

⑥ 시간이 날 때는 마음의 고통이나 잡념을 

덜기 위해 묵념 명상을 생활화한다. 

  아울러 주위에 베푸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보자. 노화전문가들에 의하면 장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낙천적이며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산다고 한다. 물질이 없다면 마음으로 하면 된다. 불가에선 베품 즉 보시(布施) 중에 진리의 말을 전하는 법(法) 보시를 으뜸으로 치고 있다. 건강비법을 함께 나누는 것도 매우 중요한 베푸는 삶이다. 주위에 건강을 잃은 분들이 있으면 참장공을 알려주고 함께 수련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끝)

        


이명복

기센터 및 건강문화연구원


본 건강칼럼은 9회를 마지막으로 종료됩니다. 그동안  건강기공을 연재해주신 이명복 원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9회의 기고는 본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볼수 있습니다. 

'탐방 기고 >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피아의 탄자니아 통신-6  (0) 2016.10.04
2016년 추석인사  (0) 2016.09.12
소피아의 탄자니아 통신-5  (0) 2016.09.12
[기고] 여성혐오와 남성혐오, 왜?  (0) 2016.09.12
소피아의 탄자니아 통신-4  (0) 2016.09.06

일식 추적자


'스카이 워처'라는 장비로 일식의진행 상태를 스크린으로 중계하고 있다.


“선생님은 글감 사냥꾼이에요.” 어디를 가나 호기심을 갖고 글감을 찾는 나를 보며 필리는 말했다. 마감이 있는 글쓰기가 나를 그리 만드는 것인데, 보통은 사소한 일상에서 소재를 찾게 되지만, 특별한 일이 있으면 절대 놓칠 수가 없다.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식을 보기 위해서라면 북극의 설원도 마다않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일식 추적자‘ 또는 '반그림자 애호가'라고 한단다. 나도 하루쯤 일식 추적자가 되어 보아도 좋을 듯하다. 


루제와, 음발라리. 

우주 쇼를 보기 위해 특수 안경을 쓰고 해바라기 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이곳에 오지 못한 사람들은 집에서 물그림자로 일식을 관측한다니 퍽이나 낭만적이다.. 

비쩍 마른 몸매에 키가 크고 옷차림이 독특해 눈에 띄는 마사이 사람들이 나무 꼬챙이에 끼운 갓 잡은 양고기를 장작불 주위에 둘러 바비큐 하고 있다.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야생의 삶을 사는 그들도 이런 날에는 장돌뱅이가 되기도 하나보다.  

저만치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금줄까지 쳐놓고, 백인 두 명이 마치 북처럼 생긴 ‘스카이 워처’라는 장치를 통해 일식의 진행 상태를 스크린을 통해 중계하고 있다. 렌즈를 통과한 태양은 마치 달 같다.  

열 시 방향에서부터 점점 야위어 가던 해가 종국에는 동그라미로 남는데 걸리는 시간만 두어 시간이다. 성질 급한 사람은 필름을 빨리 감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영락없는 금가락지가 떠있다. 팔을 살그머니 뻗어 두 손가락으로 길어 검지에 끼면 딱 맞을 듯하다. 한참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붉은 빛으로 타오르는 듯도 하다. 동그라미 하나만 달랑 남기고, 달이 해를 완전히 품어 버린 순간 공기는 투명하다 못해 서늘해지며 냉기가 흐른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다. 

잠시 머뭇거리던 달이 제 갈 길을 재촉하자, 네 시 방향에서 동그라미가 깨지는가 싶더니 다시 열시 방향에서부터 해는 살이 찐다. 


우주쇼 장면을 한국에 실시간 생중계하던 중이다. “지구가 좁지? 우주로 가려고?”  

 스마트폰을 통해 보내온 지인의 답신이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꽤 오래 전 일이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우주여행 상품을 팔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 되었다. 천문학적인 가격의 상품이었는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세계 부호 중의 한명이 선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와 그 여행의 가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비교적 현실적이었던 친구는 짧은 순간의 호기심을 위해 거금을 투자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낯선 상황에 자신을 던지는 끊임없는 여행이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고 믿는다. 

일식은 일 년에 적어도 2회, 많으면 5회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특정 장소에서 일어날 확률은 평균 370년에 한 번. 역사적인 순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단지 우연일까? 전날 밤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찾아온 꿈을 꾸었고, 임지에 파견된 후 꼭 한 달만의 일이다. 돌아오는 길, 잠시 버스에서 내려 렌즈 속에 담긴 해를 본다. 마치 낮에 뜬 보름달 같다. 참 예쁘다. 




소피아

9월 9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고 사회와 더불어 존재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일 년이 멀다하고 흐름이 변하고 기술변화도 빠르고 유행도 자주 바뀝니다. 이러한 빠른 기술의 변화는 우리 생활의 변화와 더불어 사고의 변화를 동시에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회 변화에 따른 사회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분화되고 갈등 양상도 다양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역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빈부 간의 갈등, 이념 간의 갈등, 성별 간의 갈등 등 우리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이러한 갈등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존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갈등 양상과는 조금 다르게 성별 간의 갈등, 즉 여성혐오, 남성혐오 형태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왜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혐오하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혐오는 세대를 넘어 다 존재하는 것일까? 혐오에 대해 혐오로 대응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등 많은 생각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사상적으로나 제도적으로도 남성중심사회였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만큼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제약을 받고 살아왔으며 그것을 우리 사회는 묵인하면서, 사회제도 또한 그렇게 형성되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법과 제도가 양성 평등 사회로 가고자 하는 노력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여전히 체감 상으로 양성 평등사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몇 개 분야를 가지고 양성평등사회가 되었느냐 따질 수는 없습니다. 특히 요즘 젊은 남성세대들을 보자면, 기존 기성세대에서 누리던 남성우위의 이점을 요즘 젊은 남성세대들은 전혀 누리지도 못하면서 이제 사회 곳곳은 여성 비중이 높아가고 있으며 어떤 분야에서는 이제 압도적으로 여성이 우위를 점하고 있어 남성이 오히려 여성에게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우리사회가 남성들이 여성들에 가한 폭력이나 차별 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이에 대해 여성운동의 입장에서 이를 시정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것은 별로 없고 온건한 방법으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항의를 하거나 투쟁을 해도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자, 좀 더 과격하게 좀 더 극단적 방식으로, 그동안 남성들이 여성에게 행해온 것들을 똑 같은 방법으로 남성에게 되돌려 주는 미러링(반사) 형태의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이러한 저항행태들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대해 평가는 다양합니다. 그런데 왜 여성들이 그러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우리 사회는 고민을 해 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별간의 이러한 대립 해결책이 꼭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미러링(반사)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도 여성주의 입장에서 좀 더 깊은 고민을 해 봐야 할 것입니다. 

여성운동, 즉 페미니즘 운동이 우리사회의 여성운동을 발전시키고 여권을 신장시켰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러한 페미니즘을 넘어 즉, 극단적 페미니즘이라고 불리우는 메갈리아(혐오에 대해 혐오로 대응하는 방식)가 과연 여성주의 운동, 페미니즘 운동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 논쟁이 분명히 있습니다. 페미니즘이든 극단적 페미니즘이든 메갈리아는 절대 페미니즘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반면 여성주의 운동의 한 방식으로 좀 더 극단적 페미니즘도 여성운동의 방식이며 심지어 메갈리아도 넓은 의미에서 페미니즘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 성별간의 갈등 해결이 훨씬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여성주의 입장에서 넓은 의미의 페미니즘 운동(메갈리아와 같은 방식 포함)에 대해 왜 시비를 거느냐, 이것도 하나의 운동방식이다는 것과 혐오에 대한 미러링, 극단적인 혐오는 절대 반대한다는 남성측과의 대립이 생기는 것입니다. 

서로의 입장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고 상대방을 비난하기만 하고, 어느 한 편만 들기만 하면 상대방에 대해 낙인찍기를 해 버리니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극도의 혐오와 폭력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갈등은 어디서나 존재하고 피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우리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성별간의 갈등대립이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점차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제 성별 갈등도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한 하나의 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남성이냐 여성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천부인권으로서 한 개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동안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서로 공유하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상대방을 생각해 준다면 이 문제 또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독산동 주민 

공병권  



Fungatera



“푼가 테라”

“푼가 테라”


앞서가던찰스는 ‘푼가 테라’를 외치며 손을 내민다. 

그의 말에 의하면 테라는 자체 동력을 갖지 못한 컨테이너를, 푼가는엔진을 가진 차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력을 가진 차가 그렇지 못한 컨테이너를 끌고 가는 것이다. 손에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간다는 뜻도 되고 힘내라는 격려의 말로 쓰이기도 한단다.

지금음베야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루사조는음베야 산에 오를 팀을 구성 중인데 함께 하겠냐는 전화를 해왔다. 우리 집 창을 통해 매일 보는 풍경이기도 했고, 집수리 때문에 지쳐있기도 하던 터라 흔쾌히 그러마, 고 대답했던 것이다. 


새벽 여섯 시가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도착했으니 내려오라는 루사조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경쾌하게 울린다. 계단을 내려가자 그녀의 자동차가 전조등을 켠 채서있다. 빛이 소리 없이 어둠을 잠식하나 싶더니 어느새 사위는 밝은 빛으로 채워진다. 참 순식간이다. 어둠이 내리는 것보다 빠르다. 

산행 초반에는 영 힘이 든다. 일행 중 몇명과 뒤로 처진다. 그 중 한 둘은 뒤처진 일행을 위해 속도를 줄여준 것이리라. 

나는 늘 그렇듯 초반에는 힘을 못 쓰다, 조금씩 신체 리듬이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몸이 가뿐해지며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매사에 늦되다.

나를 위해 보조를 맞춰주던 찰스와자연스럽게 팀이 되어 일행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찰스는 내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한국 여성의 강인함을 알겠다며 은근슬쩍 추켜 세운다.

시간이 갈수록 여러 팀으로 나눠지고, 선두 그룹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여기저기서‘요~~~~~ 요요요요요, 요~~~~요요요요요’하는 메아리 소리가 요들 송처럼 가볍게 나풀거리며 산을 간지른다. 나는 우리네 식으로 손나발을 불며 ‘야~~호’로 화답하자 그들도 나를 따라 ‘야~~호’를 외친다. 


여러 개의 작은 산봉우리를 넘고 넘어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사방이 산인데고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정상은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인장 류가 자라고 있고,정상을 향해완만하게곡선을 이룬 산등성이엔 노란 야생화가 만발해 마치 유채꽃밭 같다. 계곡을 이루는 곳은 어김 없이 열대성 산림이 울창하다. 멀리에는세파족이 사는 마을이 제법 크게 자릴 잡고 있다. 그들은양을 키우고화전을 일구며 산다고 한다. 

일행을 기다리는 와중에 한 편에선 열심히 사진을 찍고, 한 편에선 동영상을 촬영하며 인터뷰까지 한다. 나에게도 폰을 들이대며 한국말로 한마디 하라고 재촉한다.

아프리카는 사진 찍고 찍히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대륙인 것만은 분명하다. 저렇게저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긴 역사를 통해 기록할 언어를 갖지 못해 남의 나라 철자를 차용해서 쓰는지…


내려가는 길은 곡예다. 바위산은 그렇다 쳐도 한 발짝만 잘못디디면 양쪽이 낭떠러지. 거의 기다시피 내려온다.

바위산을 겨우 벗어나 한 숨 돌리며,한 시간길어야 한 시간반이라 했으니 곧 마을이 나타나겠지 했는데 다시 새로운 능선이 저만치 앞에 보인다.가까이 가니 앞서간 일행들이 미끄러지다시피 헤쳐나간 흔적만 있다. 엉덩이에 불이 나는 가 보다 하면, 잡목 숲. 두 팔을 휘저으며 길을 만들며 나아간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질 무렵, 무릎을 삐끗했는지 시큰거리기 시작한다.헛발질만놓다뒤뚱거린다.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잡는다. 까만 얼굴에 눈과 치아만 하얀 낯선 얼굴의 청년이다. 그의 도움을 잠시 받지만여전히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는 메고 있던 가방을 뒤따라오던 동료에게 부탁하고 등을 내민다. 도리가 없다. 나 때문에 지연될 수는 없는 일. 염치불구하고 업힌다. 그는 마치 산토끼 같다. 한 걸음에 달려 내려간다. 

그는 동력을 가진 푼가. 나는 동력이 없는 테라다.

국부인 니에레레는 말했다고 한다.탄자니아는 아직 엔진을 켜지 못해, 유럽이 끌어주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시동이 걸리면 엄청난 속도로 달릴 것이라고… 이곳이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란 것을 알아갈수록 그의 말은 설득력을 갖는다. 막내의 설음을 딛고 젊고 힘찬 대륙으로 태어날 그날. 나도 기다려 볼 것이다.



소피아

8월 21일

바닥에 앉기, 눕기


우리는 집안이나 일터, 식당에서 종종 바닥에 앉는데, 그 때 대부분 양반다리를 한다. 하지만 이처럼 고관절을 벌린 자세들은 인체역학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 심지어 이 자세로 오래 앉아서 명상을 하다가 건강을 상한 수행자들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고관절이 밖으로 틀어진다(外轉)는 것. 그러면 전일적인 인체에서는 연쇄적으로 골반, 요추, 흉추, 경추, 견관절이 틀어지고 아래로 무릎, 발목에도 문제가 생긴다. 고관절이 빠져 걷기가 힘들어지고 관절염, 요통, 견비통, 장부질환 등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부득이하게 책상다리를 할 경우, 평소와 반대로 다른 발을 올리거나 안에 놓는 게 좋다. 그리고 상황이 종료되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교정식 참장공(1회 사진 참조)을 해서 틀어진 고관절을 바로잡아야 한다.

사진 1 큰절자세



바닥에 앉을 때 가장 좋은 자세는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 즉 궤좌(跪坐)이다. 이는 본래 우리 민족의 전통 명상자세로, 이를 정좌(正坐)라 불렀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일본여성들이 늘 궤좌를 하는 것은 잘 알려졌으며, 검도 등 무도의 기본자세도 궤좌이다. ‘사무라이(武士)’라는 말이 우리말 ‘싸울아비’에서 유래했듯이 이는 모두 우리에게서 건너간 것이다. 궤좌를 하면 틀어진 체형이 바로 잡히면서 무릎관절도 더 튼튼해진다. 처음에는 다소 힘들어도 자꾸 해보면 점점 더 오래, 편안하게 앉을 수 있게 된다.

  우리 문화에서 궤좌의 전통은 큰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예로부터 해온 큰절은 놀라운 건강비법이다. 이는 틀어진 몸을 바로 잡아줄 뿐 아니라 겸양의 덕을 기르는 중요한 마음공부이기도 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큰절자세로 1~2분만 엎드려 있어 보자(사진1 <큰절 자세> 참조). 피로가 잘 풀리고 틀어졌던 몸이 교정되어 혈액순환이 잘 되며, 자연치유력도 강화된다.


-바람직한 수면자세


  우리는 잠에 대해 많은 편견들을 갖고 있다. 잠은 최소한만 자도 충분하며, 몇 시간 이상 꼭 자야 한다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다. 나폴레옹은 하루 평균 3시간을 잤고, 성철 스님은 무려 8년간 장좌불와를 했으며, 심지어 티벳의 수행자 밀라레빠는 평생 잠을 안 잤다고 한다. 불면증에 시달려 잠을 못 자는 분들이 있는데, 그냥 누워만 있어도 피로가 잘 풀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에 잠이 안 오면 누운 자세에서 단전(배꼽 3치 아래)을 향해 “고마워요. 사랑해요.”하고 에너지 넘치는 말을 마음속으로 속삭여보자. 더 효과적인 방법은 초침소리에 맞춰서 읽는 것이다. 잠시 후면 단전에 에너지가 가득 차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수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세이다. 불량한 수면자세는 몸을 더 틀어지게 만든다. 그릇된 자세들로는 큰대(大)자로 자기, 만세 부르기, 한발을 다른 발 위에 올리고 자기, 옆으로 눕거나 엎드려서 한 발 꺾고 자기 등이다. 이런 자세로 자면 숙면이 안 되고 얕은 잠을 자기에 악몽에 시달리기 쉽다. 혈액순환도 잘 안되고, 척수신경이 압박을 받아 장부에도 이상이 온다. 

  바람직한 수면자세는 낮은 베개를 목에 댄 목베개를 하고, 두 다리는 벨트로 묶은 채 자는 것이다(사진2 <이상적인 수면자세> 참조) 처음엔 이 자세가 불편한 듯해도 며칠만 지나면 숙면과 혈액순환이 잘 되며, 매우 편안한 자세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사진2 이상적인 수면자세



이명복

기센터 및 건강문화연구원






‘꽝꽝’

망치질 소리가 요란하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며칠을 미루더니 드디어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열 시쯤 되어 장정 네 명이 들어섰다. 손바닥만한 공간을 수리하는 것이니 금방 끝나겠군 했다. 그런데 조금 후, 망치 소리는 인부들의 잡담으로 바뀌었다. 타일을 깨던 망치가 부러져 바꾸러 가야한단다. 다시 망치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점심 시간이라며 옷깃을 여민다. 곧 돌아오겠다는 그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들어선다. 망치질 소리 대신 청소하는 기척이 나는 가 했더니 퇴근 시간이란다. 

시계를 보니 세 시. 문설주 부분의 타일만 겨우 떼어낸 상태다. 너무 단단해, 일하는 게 여의치 않은 탓이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내일이 지나면 다시 주말. 저 기세로 일하면 타일 벽을 제거하는 데만 며칠이 걸릴듯하다

(타일공사를 하고 있는 타자니아 인부)


학교 푼디(기술자)와 자재를 사러 시장에 갔을 때다. 타일을 고르고 흥정을 마친 후 계산기를 들고 셈을 하는 종업원의 손짓이 둔하다. 영수증에 적어넣는 숫자는 셈에 밝지 않은 내가 한 눈에 봐도 뭔가 이상하다. 다시 계산기를 누르더니 계면적은 듯 웃으며 숫자를 고쳐 적는다. 

물건을 사고 나오면서 푼디는 한마디 한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느리지? 하지만 느린대신 정확해.” 계산기까지 들고도 간단한 셈마저 틀린 걸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그냥 웃고 만다. 


그러나 푼디의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살림살이 욕심은 없는데 물을 사용하는 공간 만은 깨끗해야 살맛이 나는 탓에 좀 번거롭지만 수리를 하기로 한 것인데, 끝마무리가 제대로 될 까 불안해진 탓이다.

내가 집을 좀 손봐야겠다고 했더니 나의 코워커인로엘은 말했다. 

“그 집을 사용한 사람은 미국인이야. 아프리카 사람이 아닌.”

'미국인'으로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두어 번 강조한다. 

미국인이라고 싸잡아 말했지만, 너와 같은 외국인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아파트는 외국인 전용이라 했으니 말이다. 

(거실에서 격자모양의 창문 너머에로 보이는 음베야)



삼십 년이 넘은 건물이니 당연한 거라 했더니 자신의 관사는 깨끗하다고 손사레를 쳤다. 그 특유의 넉살을 담아 유쾌하게 말했지만 예사롭게 들리지 만은 않았다.

공사 현장을 왔다갔다하며, 한편으로는 식탁을 책상 삼아 글을 쓰는 지금. 어설프게 짜진 격자창 속에 갇힌 음베야 산이 성큼 다가와 있다. 확 트인 통유리창이라면 더 좋았을 걸 하다가, 삐뚤삐뚤하게 잘라진 퍼즐 조각 같은 지금이 더 정감있다고 고쳐 생각한다.

피스코 단원이 돌아간 후 오래 비어있던 관사는 춥고 썰렁하다. 이곳에 사람 사는 기운을 담으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절기상으로 겨울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갈 땅, 음베야는 고산지대인 탓에 날씨마저 추운 탓이다. 수리가 끝나고 자리가 잡히면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낼 거실만이라도 분위기를 좀 따뜻하게 바꿔야겠다. 


이년이 지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할 터이지만, 그때까지는 내게 안식처가 되어줄 ‘나의 집’. 좀 늦으면 어떤가?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지 않은가!

탄자니아의 속담에‘하라카하라카 하이나 바라카’란 것이 있다. ‘빨리 빨리는 축복이 없다’,라는 뜻이다. 여기는 탄자니아. 나는 오늘도 중얼거린다.


하라카하라카 

하이나 바라카. 


소피아

8월 12일

서있기, 서서 일하기

 

 

바른 서기의 중요성 

  인간이 두 발로 서게 된 것은 놀라운 축복이었지만 문제점도 있다. 네 발 아닌 두 발로 서있으면 두 다리로 전 체중을 지탱하게 되어 자세가 불안정하고 피가 몰려 기혈 순환이 잘 안되며 하체는 쉬 피로해진다. 더구나 고관절, 골반이 틀어진 상태로 서있는 경우 연쇄적으로 무릎, 발목은 물론 허리, 어깨, 목까지 이상이 오기 쉽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 있는 것이 가장 좋을까? 그 비법은 참장공(站樁功)을 응용한 자세로 서 있는 것이다. 수천 년 전 선가(仙家) 양생법에서 유래한 참장공에는 놀라운 건강정보가 담겨 있으며, 인류를 위한 최상의 운동이라 할만하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고, 불과 1분 만에도 큰 효과를 보게 된다.

  참장공의 기본은 말 타는 자세에서 유래한 마보식(馬步式)이며, 그 핵심비밀은 첫째 무릎을 굽히는 것이고, 둘째 두발을 안으로 모으는 것이다. 마보식을 응용한 자세들로는 허보식(虛步式; 굽힌 뒷발에 체중을 싣는다), 궁보식(弓步式; 굽힌 앞발에 체중을 싣는다), 부보식(仆步式, 한발을 펴고 낮게 앉는다), 독립식(獨立式; 한발로 선다) 등이 있다(사진1 참조). 일상생활에서 이 자세들을 활용할 때 손동작은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하면 된다.

 

 

서있기, 서서 일하기

-무릎 굽히고 서있기; 서있을 때는 언제나 무릎을 약간 굽혀보자. 이는 매우 중요한 특급 건강정보이며, 놀랍게도 고대인들은 오래전부터 건강과 양생을 위해 이를 실천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내몽고에서 발굴된 1만여 년 전 정천문명(한겨레의 시원문명으로 추정됨)에서 나온 흑피옥 조각품들을 보면 거의가 무릎을 굽힌 채 서있는 자세를 하고 있다(사진2 참조). 

  하루 중에 서있는 시간이 적지 않다. 전철을 타거나 기다릴 때, 싱크대에서 요리나 설거지할 때, 강의나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이를 닦을 때, 소변볼 때 등 잠시 서있는 시간에는 두 발 앞쪽을 살짝 안으로 모으고 무릎을 굽힌 채 서있어 보자. 한결 피로감이 없고 다리로 피가 몰리지 않으며, 중심이 내려가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가 된다. 또 단전에 기가 가득 모이게 되어 활력이 넘친다. 며칠만 실천해보면 몸이 완전히 달라짐을 바로 느낄 수 있다.

  군대 등에서 많이 하는 차려, 열중쉬어 자세도 약간 수정해서 무릎을 살짝 굽히는 게 좋다(1mm만 굽혀도 된다). 이런 자세로는 오래 서있을수록 건강이 점점 더 좋아진다. 

-선 자세로 일할 때; 서서 일을 할 때는 마보식 참장공을 응용해 두 무릎을 굽힌 자세로 해보자. 청소 등 이동하는 작업을 할 때는 여건에 맞게 허보식, 궁보식을 응용해 앞무릎 혹은 뒷무릎을 굽혔다 펴면서 해보자. 혹은 부보식을 응용해 두 발을 양옆으로 벌린 자세에서 한 발을 펴고, 다른 발은 굽힌 자세로 일을 한다. 한 발로 서야할 때는 다른 무릎을 살짝 굽혀보자. 이렇게 하면 일을 하면서 동시에 강력한 하체운동이 되고, 단전에 많은 기가 모여서 건강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사진1 여러 가지 참장공들. 왼쪽부터<마보식><허보식> <궁보식> <독립식> <부보식> >

 

<사진2 정천문명의 흑피옥조각품들. 고대인들은 무릎을 굽힌 참장공 응용자세를 생활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명복
기센터 및 건강문화연구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