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보름달을 야생의 자연 상태에서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배낭 하나 매고 나서는 발걸음은 늘 가볍다. 이링가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보다보다’라 불리는 오토바이 택시를 탔다. 투타말랭가행 낡은 대형 버스가 기다린다. 행선지가 정확하게 적혀있지 않은 차를 운전사의 말만 믿고 탔다가는 어디로 갈 지 모른다. 여러 사람에게 재차 확인을 하고 난 후에야 차에 오른다.  

오후 여덟시에 출발한단다. ‘지금이 오전 열한시인데...’하다가, 탄자니아 시간에 생각이 미친다. 이곳은 그들만이 사용하는 로컬 시간대가 따로 존재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간과 꼭 여섯 시간 차이가 난다. 계산을 해보니 오후 두시를 의미했다. 세 시간, 기다리는 데는 이제 나도 이력이 난 터라, 제 시간에 출발해 주기만 바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꼭 한 시간을 더 채우고 차는 움직인다. 시동을 거는 데 엔진 소리가 불안하다. 옆 좌석에 앉은 학생을 걱정스레 쳐다본다. 괜찮단다. 

두 시간이 걸린다는 버스는 정확히 네 시간이 채우고 투타말랭가에 도착했다. 두 시간 거리를 이동하는데 꼭 하루가 걸렸다. 이곳은 마음을 넉넉히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땅이다.

코끼리 떼가 물을 먹고 있다


바오밥 나무와 기린의 모습


루아하 국립공원의 첫인상을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쯤으로  서술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 기대를 배반하기 마련이다. 낯익은 풍경에 실망하려는 순간 제법 커다란 물체가 후다다닥 길을 가로질러 잡목숲 속으로 사라진다. 초입부터 송아지만한 짐승을 만났다면 기대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잠시 스친다.

사파리 도중 가장 많이 만난 동물이 임팔라, 코끼리, 기린 순이었는데, 임팔라는 아담하고 날렵한 몸매에 산머루 같은 눈망울이 선하고 앙증맞지만, 존재감 없이 얌전하기만 해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학창시절 동창처럼 싱겁다. 


기린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몸매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법하다. 나뭇잎을 뜯어 먹는 품새마저 잘 자란 양갓집 규수마냥 기품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눈을 꿈뻑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껑충껑충 뛰어 달아나는데, 춘향이가 향단이로 변한 양상이다.  

곳곳에 밑동이 벗겨진 바오밥 나무들이 있었는데, 나무속의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코끼리가 한 거라고 했다.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 역시 그들의 소행이란다. 이쯤 되면 초원의 무법자다. 코끼리하면 내게는 타잔 영화 속의 정의의 사도로 기억되었었는데 말이다. 타잔이 곤경에 처해 ‘아~~~~~아아’하고 손나발을 불면, 어느새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와, 악당들을 물리치곤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들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라고 있는, 풀을 뜯는 광경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왼쪽 발로 땅바닥을 툭툭 차서 풀을 뽑아 놓고는 긴 코로 살짝 집어  올리더니, 마치 키로 까불듯이 몇 번 흔들어 흙을 털어내고 입으로 가져간다. 무리들과 조금 떨어져 걷고 있는 코끼리 세 마리가 보였는데, 마치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소풍가는 가족같이 정겹다. 


아름답기로 치면 기린과 쌍벽을 이룬다고 생각한 얼룩말도 자주 눈에 들어왔다. 의외로 백 미터 미남 미녀들이다. 작달막한 키에 통통한 몸매, 두툼한 목살이 둔해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사자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는데, 사자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가이드가 차를 돌린다. 이미 몇 대의 차량이 서 있다. 암사자 몇 마리가 그늘에 앉아 있다. 수놈은 보이질 않는다. 맹수의 본능을 숨기고 있는 그녀들은 그냥 게으른 사냥개처럼 보일 뿐이다. 그 외에도 원숭이, 하마, 악어, 이름 모를 새들을 보았다. 

입장료를 치르며 만났던 공원관리가, 휴일을 맞아 때마침 이링가에 있는 본가로 돌아간다며, 차를 태워주겠다고 했다. 국립공원에서 이링가까지는 비포장도로였는데 곧 포장을 할 거라고 했다. 이미 설계도 끝나고 착수만 하면 된단다. 밀렵꾼은 없냐는 나의 질문에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단다.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잘 관리하고 있는 탓이란다. 인상 깊었던 것은 공원 입장료를 카드로만 받고 있었는데, 현직 대통령 마구풀리가 집권하며 비리를 막기 위해 취한 조치라고 했다. 

탄자니아는 없는 게 없는 풍요로운 땅을 가졌지만 유능한 지도자가 없다고 한탄하던 나의 동료, 로엘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내내 꽉 찬 ‘슈퍼 문’이 나를 호위해 주었다.

부시에서 동물들을 많이 만났지만, 오래 기억되는 건 그래도 사람이다. 정반대 방향의 차를 타라던 무책임한 차장들, 가는 내내 말동무가 되어주던 까까머리 고등학생. 자신이 로얄 패밀리라고 허풍을 떨던 가이드, 환율로 나를 바가지 씌우던 사내, 예쁘고 영민해 보이던 친절한 호텔 프론트 아가씨... 그들과 웃고, 수다 떨고, 다투기도 하면서 탄자니아에 한 발 더 나가선 듯하다. 


2016.09.25.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직장맘 여러분

자기 권리에 민감해 지세요



대한민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2년 이래 부동의 1위다. 최신 통계에서는 36.3%로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은 63만7,000원밖에 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등한 자격이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덜 받는 임금 차별과 일과 가정을 꾸려야 만하는 무거운 짐을 가진 직장맘들의 답답함이 여전히 계속되는 현실에서 지난 7월 개소식을 갖은 금천구 직장맘 지원센터 민대숙 센터장을 만나고 왔다. 


Q. 직장맘 지원센터란 무엇인가? 

A. 여성이 경력단절 없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이루며 행복하게 직장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직장맘의 고충(직장. 가족, 개인 고충 등)을 종합 상담해주고, 그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노동권/갈등 관리 교육, 모성보호 제도 구축을 위한 컨설팅 제공 등의 일을 하는 곳이다. 


Q. 센터 이름에 ‘직장맘’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꼭 직장맘들만 이용하는 센터인가? 

A. 아니다. 직장대디든 예비 직장인이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다. 다만, 우리나라가 아직 여성을 취약계층으로 분류하고 있는 만큼 여성의 일자리/재취업/경력단절 등의 문제 해결에 실질적 도움이 되고자 한다. 


Q. 어떤 취지로 만들어지게 됐나? 

A. 그동안 여성지원 정책들이 많이 있었지만 현실에서 제 역할을 하기가 어려웠고, 여성 일자리 관련 정책이 경력단절 후의 재취업에만 몰두해 오다 보니 경력단절을 겪는 시점에서 지속할 수 있는 정책의 부재와 재취업의 어려움, 재취업의 질적 저하 등의 문제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경력단절부터 예방할 정책 등 실질적 도움이 될 역할을 해보고자 2012년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를 시작으로 2016년 7월 금천구 직장맘 지원센터를 열게 됐다. 추후에 서울 은평구와 노원구에도 직장맘 지원센터가 세워질 예정이다. 


Q. 금천구 직장맘 지원센터가 주로 하는 활동은? 

A. 대표적으로 상담, 교육, 기업지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담의 경우 전화/내방/온라인/찾아가는 상담 등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고 현재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법률적 상담만이 아닌 직장 내 갈등과 개인적인 갈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밀착 상담을 한다. 내담자의 상황에 맞게 상담과 지도를 진행하다 보니 일회성으로 한 번의 상담으로 끝나는 경우보단 수차례 지속해서 진행되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전문적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전문기관에 연계해 준다. 

교육의 경우 스스로가 노동법을 잘 알고 활용해야 부당한 권익침해를 막을 수 있으므로 근로기준법/모성보호 제도 등의 교육과 갈등 관리 능력 강화 교육,직장맘과 영유아 자녀를 위한 애착 강화 프로그램 등을 교육한다. 개인 또는 단체 10인 이상이 신청이 있다면 직접 찾아가 대상자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기업 지원의 경우 평등한 인사 노무규정 구축 지원, 기업의 모성보호 제도 활성화 컨설팅 제공 등의 활동으로 직장맘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기업에 평등한 직장문화가 뿌리내리도록 지원하고 있다. 


Q. 상담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는데, 주로 어떤 상담 문의인가? 

A. 보통 출산/육아 휴직에 관련된 문의가 많다.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회사의 반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실제 법률상 어느 정도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많이 궁금해한다 체납 등의 일반적 노무 상담도 많은 편이다. 


Q. 센터장으로서 우리나라 직장맘의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A. 1997년 노무사 시험 합격 후 2009년부터 2015년까지 금천구 직장맘 지원센터의 모법인 ‘여성노동 법률 지원센터’에서 근무하고 현재 금천구 직장맘 지원센터장으로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직장 생애주기를 보면 대체로 결혼 전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다 결혼 후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재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첫 직장이 정규직 중심의 1차 노동시장 위주였다면 재취업의 경우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의 비중이 높은 2차 노동시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대부분 소규모 회사이거나 경력인정을 제대로 받기 힘든 콜센터 상담원이나 돌봄 노동으로 주로 편성되어 저임금을 받는다. 우리나라 현 정책은 경력단절 여성에 대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보단 ‘일단 취업부터 하자’인 것 같다. 그래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켜야 하는 여성들에게 대체로 임시직이 주어지고, 주 40시간의 법정 근로시간을 일해도 많은 부분에서 차별적 인식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첫 직장이 오래 유지되도록 경력단절이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출산/육아휴직/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의 활용을 돕고 경력을 유지하도록 지원한다. 여성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회사와 협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 중 하나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는? 

A. 많은 경우가 기억에 남지만, 서울시 직장맘 지원센터에서부터 상담을 받아서 현재 금천구 직장맘 지원센터에서 상담받은 분이 기억에 남는다. 출산 휴가 때부터의 상담이 육아휴직 후 복귀 문제까지 상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죄책감 사이에서 일을 포기하는 것만이 엄마와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Q. 일하면서 가장 보람 된 점은? 

A. 법률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거나 갈등 관계가 원만히 해결됐다는 단순한 결과가 아닌, 직장맘과 공감하며 이뤄낸 상담/지도로 직장맘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 

Q. 일하면서 느끼는 고충은? 
A. 금천구 직장맘 지원센터가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고충은 없지만, 먼저 개소한 서울시의 경우 지속적인 상담을 하다 보면 상담자가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해 의지를 하는 경우가 있어 감정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다. 

Q. 센터장으로서의 비전은? 
A. 직장맘에 대해 종합적인 지원은 필요한 일이다. 특히나 여성들은 공감만으로도 힘을 얻는 부분이 큰 만큼 직장맘과 밀착해 상담지도를 하려 한다. 금천구 직장맘 지원센터 근처에 많은 사업장이 있다. 그만큼 많은 직장맘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고 인근 기업들에 여러 가지 제안을 할 수도 있다. 직장맘 스스로가 강해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왕이면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기업들에 좋은 계획들을 제안하고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직장맘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는 여러 가지 사례를 만들 것이다. 

Q. 마지막으로 직장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자기 권리에 민감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동안 받아온 교육에는 은연중 ‘배려해야만 한다’가 기본인 것 같다. 희생이 포함된 배려라 자신의 권리 주장이 약하다.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내 의견을 관철할까’를 고민하기보단 ‘상대방이 배려해줘야 관철된다’고 생각해 협상에 능숙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점이 안타깝다. 협상에 있어 중요한 점은 일단 협상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일과 가정에서 협상해야 할 경우가 많음에도 대체로 포기한다. 단순한 공감이 아닌 쟁취해야 할 것이 많음을 알면 좋겠다. 그리고 언제나 금천구 직장맘 지원센터의 문은 열려있다. 전화/방문/온라인(www.gworkingmom.net) 매체 등으로 많이 찾아와 주면 좋겠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궁금하다면 언제든지 02-852-0102로 전화 문의하길 바란다. 단, 어떤 문제든 결정된 후가 아닌 전에 연락하는 것이 좋겠다. 

김혜희 기자
gcinnews@gmail.com




이 이야기는 사춘기 아이와 엄마의 '이해'에 대한 이야기이다. 직장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엄마 버나뎃은 점점 지쳐가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어쩔 수 없이 아들 셋 중에 장남인 패트릭에게 동생들 돌보는 일과 집안일을 부탁하게 되고, 엄마의 잔소리를 귀찮아하는 12살 사춘기 패트릭은 힘들어 하게 된다.

   이 책은 엄마와 아들의 입장이 한장씩 교차되어 쓰여져 두 주인공의 상황과 맘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노트북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버나뎃은 휴식이 필요함을 느끼고 찾아간 죽은 어머니의 집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침을 준비하고 계시고, 자신은 12살 어린시절로 돌아가 있음을 알게된다.

 당황함을 느끼지만 아이들이 궁금하여 아들 패트릭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 다니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어린시절로 돌아가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 같이 다니면 얼마나 재미있고 스릴 넘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한편, 엄마가 사라진 집에서는 엄마대신 모든 집안일을 하게 된 패트릭은 점점 지쳐가게 된다.  왠지 통쾌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대목이다. '엄마의 소중함을 가족들이 알게 되겠지'하는 대리만족감을 느꼈다.

힘들어 하고 있는 패트릭은 어느 날, 엄마에게서 이메일을 받는다. 엄마를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구스베리 나무와 5월 1일 전야의 불꽃을 이용해  영혼케이크를 만들어 먹는 것 등(이 방법은 아일랜드 전통의식이다.  버나뎃의 엄마는 아일랜드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다.)의 이유로 엄마는 재료준비를 부탁한다.이해는 되지 않지만 엄마가 돌아올 수 있다는 하나의 희망으로 패트릭은 열심히 준비해 주고, 엄마는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일까? 만약 내가 사라지면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생각과 행동들을 할까?..를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엉망인 집과 맨날 울면서 지낼 아이들의 모습이 상상되면서 그런 일이 생기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럴거라는, 아이들이 간절히 나를 원할 것이라는 나 혼자 만의 위로를 해 보았다.

이 책의 내용은 엄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된다.

버나뎃이 12살에서 현실로 돌아가게 될 때, 돌아가셨다 다시 돌아온 버나뎃의 엄마는 다시 사라지게 됨을 안 버나뎃은 갈등을 하게 된다.  그런 버나뎃을 안아주며 엄마가 하신 말씀은   "죽음이 딸과 엄마사이를 갈라 놓을 수 있을 것 같니?  네가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 속에 내가 있는거다" 왠지 찡하고 가슴 아픈 말이었다. 

나의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으리라...내가 아이들에게 온갖 사랑을 쏟듯이...

새삼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느끼며, 살아 계실때 한번이라도 더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인공 패트릭의 갈등과 힘듦을 읽으면서, 요즘같이 할 일이 많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좀 더 많이 마음을 들여다 보고, 보듬어 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박정남

(주)천일기업 노동자 비대위와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 위원회가 지난 8월 17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폐업과 체불임금에 대한 해결방아을 촉구하고 있다.


대한민국 노동자가 올해 못 받은 임금이 1조 4000억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사상 최악의 체불 임금 규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8월 말 현재, 임금을 받지 못해 정부에 진정한 노동자가 21만 4052명, 체불액은 9471억원이다. 지난해에 비해 체불 노동자는 12%, 체불액은 11%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IMF 시기 최대 규모였던  2009년 1조 3438억원을 넘어 1조 4000억원에 이를 것이라 한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일본의 2014년 체불액은 1,440억원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세 배 규모라는 점을 배제한 채 단순 비교해도 10배, 감안하면 30배에 이른다.


고용노동부는 고질적인 임금 체불의 원인을 체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문화, 경기가 나빠지면 직원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경영자들의 인식이라 진단한다. 돈만 챙겨 도주하는 사장, 법인 대표를 다른 사람으로 돌려 임금을 떼먹는 사장이 흔하고 흔하다. 이런 부분을 충돌질 하는 것은 층층시하 하도급이라는 피라미드형 깔대기 구조의 사업 구조도 한 몫 한다. 올해 한국 임금 체불이 압도적인 이유는 경기침체에 경기 침체에다 조선·해운 산업 구조조정 등의 여파도 크다. 이에 대한 노동부의 대책은 ‘고의·상습 체불 사업주의 명단을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체불임금 외의 부가금까지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를 신설해 체불임금의 두 배까지 보상’하게 만드는 제도를 만들고, 퇴직 근로자에게만 지급되던 지연이자 역시 재직 근로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단다. 

하지만 회사 사정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임금 지급부터 안주거나 줄이는 경영자의 시대착오적 사고방식 때문이라는 노동부 진단은 틀렸다. 자본가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대한 탐욕은 지극히 자본가다운 것이지 전근대적인 것이 아니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자본주의에서 임금은 노동자에겐 생명 줄이지만 자본가에겐 그저 비용이다. 비용은 줄일수록 좋다. 적게 주고 많이 시키는 것이 모든 경영학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래서 국부론에서 아담 스미스는 사회 정치 정책을 자본가에게 맞기지 말라는 충고를 한다. 그들은 비도덕한 것이 아니라 무도덕하다. 그러니 자본가들의 쉼 없는 착취본능을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최소 최저 기준을 만들어 통제하는 것이 노동법이다. 정부와 노동부 행정이 필요한 것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한 탐욕 무한 착취를 하려는 자본의 광란을 막아내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규제를 척결하고, 노동개혁을 한다는 현 정부의 입장은 자본가들의 광란에 노동자 민중의 목숨 줄을 던져주는 미친 짓이다. 


체불은 일반 절도보다 더 악질적인 사회적 범죄다. 절도는 단지 돈과 물건만 훔치지만 체불은 돈과 물건에 노동자들의 피땀을 훔치기 때문이다. 임금 청구 시효가 3년인 것도 말이 안 된다. 일반 채권에 대한 청구 시효가 최소 5년에서 7년이다. 그런데 박정희 유신 독재가 기업하기 좋으라고 “임금 청구 시효를 3년”으로 만들었다. 민법적 규정만도 못한 노동법이라니 이것은 상식이 아니다. 더 문제는 체불이든 해고든 그것 때문에 겪는 노동자와 가족들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나 배상은 전무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버스나 기차를 타면 부정승차로 비용을 30배나 더 받는다고 협박한다. 그렇다면 노동자 양해 없는 체불도, 부당해고가 확정되면 보상임금도 그만큼 주어야 상식이지만 체불시 임금의 두 배, 부당해고 시 세배라도 주는 제도가 절박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습 체불 사업주를 처벌하기 위한 부가금 제도를 신설’, ‘지연이자제와 같은 지원 정책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우선 이 상습에는 주휴 연휴 포괄임금 등을 통한 편법이나 불법으로 임금을 갈취하는 것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또한 지금의 현실에서 ‘고의적 또는 상습적인 체불 사업주에 대한 구속 수사, 명단 공개’라는 엄포나 ‘현행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규정’으로는 처벌 효과를 제대로 거둘 수 없다. 실제 구속도 드물고 벌금도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더 강력한 징벌적 처벌이 필요하다.


체불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해마다 골만 깊어지는 것의 가장 큰 책임자는 개별 자본가가 아니다. 돈만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 상 안 그런 것이 이상하다. 그래서 탐욕의 자본을 절제 시키고 감시하는 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의 첫째는 있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을 철저히 지키게 만드는 것이다. 그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국가고 노동부다. 국가가 행정적으로 제대로 하면 예를 들면 체불사업자를 제대로 처벌하면 현재 발생되는 체불 임금의 70%는 무조건 해결된다. 노동부는 항상 일손이 없다고 한다. 근로감독관 한 사람에게 수십 수백 건의 사건이 배당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 등에서 ‘명예 노동감독관제’ 등을 통해 일을 분담 분산시켜 해결하자고 했지만 항상 외면한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민주’노조를 만드는 길이다. 노조가 있는 곳의 체불은 없는 곳의 체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다. 이것만으로 체불임금 50%는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조 만들면 탄압하고 노조활동을 범죄시 하는 것이 국가고 노동부니 ‘전근대적’이든 ‘태생적으로 탐욕적’이든 체불임금 발생을 저지할 수 없다. 


차로 본다면 회사의 경영은 액셀러레이터이고 노조는 브레이크다. 성장 발전의 맹목에 자정 기능, 사회적 도덕성, 일의 성패에 대한 성찰 기능을 하게 만드는 것이 노조다. 그래서 노조는 회사의 걸림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거름이요 보약이다. 그런데 이런 기초적인 상식을 가진 사용자가 없다. 국가와 노동부가 사용자들보다 더 이악스럽게 노조를 부정하고 파괴한다. 그 결과가 바로 체불임금도 사상최대다. 그래서 체불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와 노동부 그들의 ‘행정의 실패’에 있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법조비리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신문과 방송 등 모든 매체들은 앞 다퉈  이를 보도하는가 하면 기획물로 연재까지 하는 곳도 있다. 세상 관심사가 온통 이곳에 집중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사실 법조 비리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또 지금처럼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런 일이!” 하면서 탄식을 하거나 유난을 떨 정도가 아니라 할 수 있을 만큼 세간에 익숙한 사건이기도 하다. 다만 이번 경우는 그 사건이 빠른 시간에 진실이 드러나게 됨으로 유언비어로 호도되거나 축소되는 등 흐지부지 끝나던 과거와는 다른 점은 있다.


법 집행자이고 심판자인 검·판사들이 스스로 그 대상이 되는 경우는 분명 범상한 일은 아니고 그래서 세상은 온통 그들에 대한 질타의 강도가 여간 드높지 않다. 믿는 곳에서 기대에 반하는 사태가 있을 때 사람들은 놀라움을 넘어 실망을 하고 마침내는  분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도 종종 볼 수 있던 사태인데도 근간에 이르러 이렇듯 큰 파장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 비해 민주화가 크고 넓게 진전된 게 이유일 게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는 쉽게 감춰지고 축소, 희석되던 권력층의 비리 부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에 대한 비판도 보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인 것이다. 그런데 사회는 이러한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는데도 법조인에 의한 부정과 비리가 계속되는가 하면 그 양상은 더욱 추(醜)해지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일까? 


가장 쉽게 제기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행위 당사자의 자질이다. 그러나 먼저 따져봐야 할 게 있는데 그것은 그러한 자들이 자리를 할 수 있게 하는 국가의 제도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사회의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임무인 만큼 고도의 도덕성과 지성(知性)을 요구하여야 하지만 그것이 경시되는 것이 현실인 것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인간성적 모습보다는 지식의 양(量)에다 이른바 스펙의 양을 앞세우는 경향이 높고 그래서 기회주의자와 같은 정의롭지 못한 인사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빌미를 만들어 놓았다. 이런 환경에서는 지금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사태의 발생 개연성은 항상 존재한다. 


유의하여야 하는 것은, 오늘 우리 사회는 물질 만능으로 인한 가치왜곡이 심화되고 있고 그로 인한 불의(不義)도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그것의 행사(行使) 주역들은 기회가 많은 사회 우위계급 즉 권력층이나 부유층에 주로 분포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법조인들의 추한 행위들은 정의롭다 하기 어려운 국가제도에다 물질만능으로 혼돈된 시대 가치관들로 인한 필연적 결과라 보는 것이다. 


이기적(利己的) 속성인 인간들이 물질적 가치에 초연(超然)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은 모두의 이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찍부터 도덕을 내세우고 윤리를 가르친다. 이성(理性)을 통한 질서를 구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들은 한계를 가짐으로 일찍부터 인류는 질서를 강제할 수단으로 법과 제도를 만들었고 그것을 관장하는 기구 곧 사법부를 두었다. 이른바 검·판사 제도의 연원(淵源)이다. 


그렇듯 인류는 문명화에 비례하여 사법제도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시대에 따른 인간의 오만(傲慢)과 방종(放縱)을 제어하고자 하였고 그런 목적인만큼 지성과 도덕성은 이들 발탁의 주요조건으로 하였다. 검·판사 즉 법조인에 대한 권위는 그래서 일찍부터 존재했고 사람들은 이러한 구도를 승복하였다. 그들 즉 법조인은 사회 질서유지의 보루(堡壘)로서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으로 신뢰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할 때 받는 충격은 매우 크다. 실망은 도를 넘어  육체적 고통으로 발전되는가 하면 정신까지도 황폐화하기까지 한다. 오늘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은 그런 경험자들이 적지 않고 그래서 지금과 같은 법조인의 부정 비리에 관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법조인이라 하여 항상 긴장상태로 세상을 살 수 없는 것은 이해의 영역 안쪽이다. 그들도 보통사람과 같이 

오욕칠정(五欲七情)을 가지고 희로애락(喜怒哀樂)으로 감성을 표현하는 것은 아무도 탓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구하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그들이라 하여 아니라 할 수 없지 않는가! 다만 기대를 두고자 하는 것은 보통사람들과는 차별되는 자기 절제를 보고 싶을 뿐이다.


오래전, 세간의 신망을 받으면서 역임했던 대법원장이 임기를 끝내면서 “다시 태어나면 법관은 되지 않겠다.”며 회오(回悟)하듯 퇴임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임기 동안 자기 절제에 따른 고통 등 법관으로서 품위 유지가 어려웠다는 자기 고백으로 들려 듣는 이들을 숙연케 한 그의 고백은  사람들에게 법관의 표양(表樣)이 어떤 것인가를 비로소 알게 하였다. 그는 임기 중에 무한정으로 요구되는 자기 절제에 따른 고통의 고백에 더하여 법관 임용제도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숨기지 않았다. 판사가 되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오로지 법전읽기에만 몰두하노라 다른 기회는 포기되어야 하고 그래서 꿈 많던 청춘시기에 연애편지는커녕 청춘이야기를 다룬 영화한편 보는 것조차 금기시 한 자신이 과연 인간의 감성(感性)을 판단하는 법관으로 타당한가를 묻는 대목이 그것이다. 


법관은 지식과 스펙의 량(量)으로 정형해서는 안 되는, 즉 전인적(全人的) 인격자라야 법관 자격자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던진 메시지 일게다. 오늘과 같은 사태를 예견한 그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다만 감탄할 뿐이다. 인간의 다양성으로 온갖 사건으로 날이 새는 오늘 우리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모두가 공감하는 기회가 주어짐으로 평등한 사회가 되게 하는 질서의 존재가 아닐까?. 그것은 특정인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고 함께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지켜나가는 것이다. 우리 사법계가 챙겨할 대목이다. (♣2016.9.9.) 



장제모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보름달처럼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금천구민 여러분! 그리고 곳곳에서 고향을 빛내고 계신 자랑스러운 금천인 여러분!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추석에는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친지들과 훈훈하고 가슴 따뜻한 시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잊고 있었던 친구들과 이웃들에게도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 나누는 명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올해는 민선 6기 출범 2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 금천구는 주민자치 역량 강화로 복지와 마을공동체의 공생적 발전을 모색하는 마을민주주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마을계획 수립과 마을기금 운영 등 자립적·주체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해는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정착의 원년으로 ‘찾동’ 중심의 복지·건강·일자리의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 주민의 건강과 행복을 돌보는 거점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현재 진행중인 군부대 부지 내 친환경미래도시를 조성하는 등 금천의 지도를 바꿔가는 일에 총력을 다 할 계획입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고 그늘진 곳,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모든 곳에 최대한 다가가는 수요자 중심의 복지정책을 펼치겠습니다.

우리구는 이를 위해 구민들 곁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끊임없이 만나고 소통하면서 더 나은 금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풍요로운 황금들녘에서 한해의 농사를 추수하듯 주민여러분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금천의 변화가 열매를 맺는 시간이 되도록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작년보다 더 심한 저성장, 고물가, 실업난과 극심한 전세난 등 경제상황이 어렵고 상황을 헤아리기 어려운 변수가 산재해 있지만 구민여러분께서 힘을 모아주신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우리의 큰 명절인 추석을 맞이해 금천구민의 한결같은 성원과 적극적인 참여에 감사드리며 내내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설렘 가득한 고향길 안전하게 다녀오시고,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금천구청장 

차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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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고 사랑하는 금천구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금천구의회 의장 정병재입니다.

우리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한가위를 맞이하여 구민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추석에는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 친지들과 함께 훈훈하고 가슴 따뜻한 시간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동안 금천구의회는 금천구민들의 사랑에 힘입어 금천구 발전과 구민 행복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묵묵히 달려왔습니다. 지속되는 저성장과 경기침체, 실업난 등의 어려운 상황들이 산재해 있지만, 구민 여러분께서 힘을 모아주신다면 함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앞으로도 금천구의회는 주민과 함께하는 열린 의정과 찾아가는 현장 의정을 통해 우리 금천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금천 발전이라는 값진 열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구민 여러분의 가정에 항상 풍요와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하며, 이웃과 넉넉하게 나누는 풍요롭고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금천구의회 의장 

정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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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지역 주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거짓말처럼 무더위가 가시고, 청명한 가을 하늘과 함께 민족 최대 명절인 한가위가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순도순 덕담을 나누는 즐거운 추석 명절에, 우리 금천 경찰은 주민들이 평온하고 행복하게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현장을 굳건히 지키며 지역 치안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특히 명절 전후 들뜬 분위기를 틈타 발생하기 쉬운, 절도 등 각종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주민들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전 직원들이 힘을 합해 특별방범․형사활동을 실시하는 한편, 고향 가는 길이 더욱 편안하도록 원활한 교통 관리에도 힘쓰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민 여러분, 

 금천 경찰은 주민 만족 치안을 목표로 노력한 결과, 대내외적으로 매우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올해 1~3월경 112 신고를 한 뒤, 경찰의 응대 및 민원서비스를 경험한 주민들을 상대로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 경찰서는 서울 31개 경찰서 중 1위를 달성하였고, ’16년 상반기 직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직무만족도 평가에서도 2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7월 11일 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이래, “안전한 금천, 깨끗한 경찰”을 기치로 내걸고, 모든 경찰관의 보다 적극적인 치안 활동과 친절한 자세, 공정하고 청렴한 법집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각 지구대․파출소에서는 매일 경찰관 한 명 당, 두 명 이상의 주민을 만나 지역 치안에 관한 의견과 불편함을 듣고 적극적으로 어려움을 해소해 주는‘112 운동’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6. 1.부터 8. 31.까지 실시한 여성안전특별치안활동 기간 동안 골목길 순찰, 주민 간담회 등을 통하여 지역 주민이 불안하게 느끼는 공간과 인물에 관한 의견을 가감 없이 듣고, 순찰을 강화하거나 범인 검거 또는 구청 등과 협력하여 비상벨 또는 보안등을 설치하는 등 범죄에 취약한 환경을 개선하는 활동도 꾸준히 펼쳤습니다. 

    특히, 앞으로는 보다 과학적인 범죄 분석과 첨단기술의 접목을 통해 치안 활동의 효율성을 높이고(스마트 치안), 주민 여러분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안전하고 질서 있는 치안공동체를 공고히 해 나가는데(공동체 치안) 더욱 주력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금천 경찰의 활동을 관심 깊게 지켜봐 주시고, 앞으로도 잘 한 일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애정 어린 충고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우리 금천 주민들이 가장 궁금하고 필요로 하는 소식들을 발 빠르게 전해줌으로써, 지역 사회의 화합과 발전에 기여하는 금천in 관계자 분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통해 주민들에게 더욱 많은 사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풍성하고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금천경찰서장  

김 성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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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금천구 국회의원 이훈입니다. 무척이나 무더웠던 올해 여름이 지나고 민족의 최대 명절 한가위가 다가왔습니다. 일상의 고단함은 잠시 잊고, 가족 모두가 즐겁고 정겨운 추석 연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역 전통시장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 먹고살기 어렵다고 말씀하셔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2016년 청년실업률은 역대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세월호 사건과 가습기 사건은 아직 풀리지 않은 채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민주주의의 후퇴와 서민경제의 침체, 대북관계의 문제들을 극복해내야 하겠습니다. 서민과 약자들을 위한 민생제일의 가치로 국정과 지역의 미래지향적인 비전과 정책을 세우고 이루겠습니다. 

저도 서민의 한결같은 벗이 되어 바르고 유익한 정치의 길로 올곧게 가겠습니다.

모쪼록 주위의 소외된 이웃과도 더불어 함께하는 알차고 보람된 한가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금천구 국회의원

 이 훈올림







참 건강을 위해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의학지식이나 건강상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많다. 모두 의사나 치유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이 알고 있는 정보들은 대부분 피상적, 단편적이고 저차원적인 것들로, 거의가 대중매체에서 얻은 것들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우리의 심신은 더욱 강건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건강은 절대 절명의 과제이다. 하지만 수많은 대중매체들이 무책임하게 상업적으로 쏟아내는 건강정보들은 때로 해롭기까지 하다. 대중을 더욱 나약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정보들도 있다. 옥석을 가려볼 줄 아는 혜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세상의 모든 수단, 방편들은 다 건강과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문학, 예술(음악, 미술, 영화, 무용 등), 스포츠 나아가 정치, 경제 등. 또한 물이나 음식, 수면, 언어, 생활자세, 노동이나 몸짓까지도 활용하기에 따라 훌륭한 치유수단이 된다.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가 능히 동료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다시 일어나게 할 수 있지 않은가. 

  전통의 양생법인 기공(氣功)은 우리 민족을 지켜온 대안의학, 예방의학이자 문화의 원천 소스로서, 오랜 세월동안 행해져 왔다. 제기차기, 널뛰기, 탈춤 등 민속놀이와 큰절하기 등의 예법은 기공을 생활화했던 실례이다. 조선조만 해도 허준, 퇴계 등 많은 선조들이 이를 실천했고 <동의보감>, <활인심방(活人心方)> 등을 통해 후대에 전하기도 했다(그림1 참조). 우리는 건강과 치유뿐 아니라 예방의학 차원에서도 이를 깊이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예방이 치료보다 더 중요하며, 비용도 훨씬 덜 든다. 또한 기공은 건강문화의 콘텐츠로도 널리 활용될 가치가 있다. 특히 기공의 고차원 건강정보는 우리를 더욱 강건하고 지혜롭게 이끌어줄 것이다. 

   

-참 건강을 위한 생활수련  

  참 건강을 위해서는 몸과 생체에너지, 마음을 동시에 잘 관리해야 한다. 옛사람들은 이를 각각 형(形), 기(氣), 신(神)이라 불렀다. 형기신을 잘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형(形), 곧 몸을 위해서는 체형을 바르게 교정해야 한다. 틀어진 고관절과 척추를 바로 하고, 근골과 관절을 강화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치유력이 극대화되어 만병이 스스로 치유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교정식 참장공이 좋다. 둘째 기(氣) 즉, 생체에너지를 강화하려면 먼저 단전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마보식 참장공과 함께 단전호흡을 해야 한다. 셋째 신(神) 즉, 정신을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덕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묵념을 생활화하고 덕행(德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구체적인 방법은 1~4회 참조).   

  

< 그림1. 퇴계의 활인심방에 소개된 기공 동작들 >


연재를 마치며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해 다음 몇 가지를 실천해 볼 것을 권한다.

① 아침저녁으로 매일 참장공(마보식과 교정

식)을 1~2분씩 한다.

② 서 있을 때는 언제나 참장공을 응용한 자

세로 서 있는다.

③ 걸을 때는 팔자걸음을 걷지 말고, 발을 살

짝 안으로 모아 걷는다. 

④ 자리에 앉을 때는 다리를 벌리거나 꼬지 

말고 반드시 모아서 앉는다.

⑤ 잘 때는 다리를 벌리지 말고 두 다리를 모

아서 바르게 자도록 한다. 

⑥ 시간이 날 때는 마음의 고통이나 잡념을 

덜기 위해 묵념 명상을 생활화한다. 

  아울러 주위에 베푸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보자. 노화전문가들에 의하면 장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낙천적이며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산다고 한다. 물질이 없다면 마음으로 하면 된다. 불가에선 베품 즉 보시(布施) 중에 진리의 말을 전하는 법(法) 보시를 으뜸으로 치고 있다. 건강비법을 함께 나누는 것도 매우 중요한 베푸는 삶이다. 주위에 건강을 잃은 분들이 있으면 참장공을 알려주고 함께 수련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끝)

        


이명복

기센터 및 건강문화연구원


본 건강칼럼은 9회를 마지막으로 종료됩니다. 그동안  건강기공을 연재해주신 이명복 원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9회의 기고는 본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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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추적자


'스카이 워처'라는 장비로 일식의진행 상태를 스크린으로 중계하고 있다.


“선생님은 글감 사냥꾼이에요.” 어디를 가나 호기심을 갖고 글감을 찾는 나를 보며 필리는 말했다. 마감이 있는 글쓰기가 나를 그리 만드는 것인데, 보통은 사소한 일상에서 소재를 찾게 되지만, 특별한 일이 있으면 절대 놓칠 수가 없다.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식을 보기 위해서라면 북극의 설원도 마다않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일식 추적자‘ 또는 '반그림자 애호가'라고 한단다. 나도 하루쯤 일식 추적자가 되어 보아도 좋을 듯하다. 


루제와, 음발라리. 

우주 쇼를 보기 위해 특수 안경을 쓰고 해바라기 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이곳에 오지 못한 사람들은 집에서 물그림자로 일식을 관측한다니 퍽이나 낭만적이다.. 

비쩍 마른 몸매에 키가 크고 옷차림이 독특해 눈에 띄는 마사이 사람들이 나무 꼬챙이에 끼운 갓 잡은 양고기를 장작불 주위에 둘러 바비큐 하고 있다.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야생의 삶을 사는 그들도 이런 날에는 장돌뱅이가 되기도 하나보다.  

저만치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금줄까지 쳐놓고, 백인 두 명이 마치 북처럼 생긴 ‘스카이 워처’라는 장치를 통해 일식의 진행 상태를 스크린을 통해 중계하고 있다. 렌즈를 통과한 태양은 마치 달 같다.  

열 시 방향에서부터 점점 야위어 가던 해가 종국에는 동그라미로 남는데 걸리는 시간만 두어 시간이다. 성질 급한 사람은 필름을 빨리 감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영락없는 금가락지가 떠있다. 팔을 살그머니 뻗어 두 손가락으로 길어 검지에 끼면 딱 맞을 듯하다. 한참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붉은 빛으로 타오르는 듯도 하다. 동그라미 하나만 달랑 남기고, 달이 해를 완전히 품어 버린 순간 공기는 투명하다 못해 서늘해지며 냉기가 흐른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다. 

잠시 머뭇거리던 달이 제 갈 길을 재촉하자, 네 시 방향에서 동그라미가 깨지는가 싶더니 다시 열시 방향에서부터 해는 살이 찐다. 


우주쇼 장면을 한국에 실시간 생중계하던 중이다. “지구가 좁지? 우주로 가려고?”  

 스마트폰을 통해 보내온 지인의 답신이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꽤 오래 전 일이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우주여행 상품을 팔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 되었다. 천문학적인 가격의 상품이었는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세계 부호 중의 한명이 선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와 그 여행의 가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비교적 현실적이었던 친구는 짧은 순간의 호기심을 위해 거금을 투자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낯선 상황에 자신을 던지는 끊임없는 여행이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고 믿는다. 

일식은 일 년에 적어도 2회, 많으면 5회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특정 장소에서 일어날 확률은 평균 370년에 한 번. 역사적인 순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단지 우연일까? 전날 밤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찾아온 꿈을 꾸었고, 임지에 파견된 후 꼭 한 달만의 일이다. 돌아오는 길, 잠시 버스에서 내려 렌즈 속에 담긴 해를 본다. 마치 낮에 뜬 보름달 같다. 참 예쁘다. 




소피아

9월 9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고 사회와 더불어 존재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일 년이 멀다하고 흐름이 변하고 기술변화도 빠르고 유행도 자주 바뀝니다. 이러한 빠른 기술의 변화는 우리 생활의 변화와 더불어 사고의 변화를 동시에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회 변화에 따른 사회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분화되고 갈등 양상도 다양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역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빈부 간의 갈등, 이념 간의 갈등, 성별 간의 갈등 등 우리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이러한 갈등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존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갈등 양상과는 조금 다르게 성별 간의 갈등, 즉 여성혐오, 남성혐오 형태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왜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혐오하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혐오는 세대를 넘어 다 존재하는 것일까? 혐오에 대해 혐오로 대응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등 많은 생각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사상적으로나 제도적으로도 남성중심사회였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만큼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제약을 받고 살아왔으며 그것을 우리 사회는 묵인하면서, 사회제도 또한 그렇게 형성되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법과 제도가 양성 평등 사회로 가고자 하는 노력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여전히 체감 상으로 양성 평등사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몇 개 분야를 가지고 양성평등사회가 되었느냐 따질 수는 없습니다. 특히 요즘 젊은 남성세대들을 보자면, 기존 기성세대에서 누리던 남성우위의 이점을 요즘 젊은 남성세대들은 전혀 누리지도 못하면서 이제 사회 곳곳은 여성 비중이 높아가고 있으며 어떤 분야에서는 이제 압도적으로 여성이 우위를 점하고 있어 남성이 오히려 여성에게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우리사회가 남성들이 여성들에 가한 폭력이나 차별 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이에 대해 여성운동의 입장에서 이를 시정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것은 별로 없고 온건한 방법으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항의를 하거나 투쟁을 해도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자, 좀 더 과격하게 좀 더 극단적 방식으로, 그동안 남성들이 여성에게 행해온 것들을 똑 같은 방법으로 남성에게 되돌려 주는 미러링(반사) 형태의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이러한 저항행태들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대해 평가는 다양합니다. 그런데 왜 여성들이 그러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우리 사회는 고민을 해 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별간의 이러한 대립 해결책이 꼭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미러링(반사)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도 여성주의 입장에서 좀 더 깊은 고민을 해 봐야 할 것입니다. 

여성운동, 즉 페미니즘 운동이 우리사회의 여성운동을 발전시키고 여권을 신장시켰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러한 페미니즘을 넘어 즉, 극단적 페미니즘이라고 불리우는 메갈리아(혐오에 대해 혐오로 대응하는 방식)가 과연 여성주의 운동, 페미니즘 운동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 논쟁이 분명히 있습니다. 페미니즘이든 극단적 페미니즘이든 메갈리아는 절대 페미니즘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반면 여성주의 운동의 한 방식으로 좀 더 극단적 페미니즘도 여성운동의 방식이며 심지어 메갈리아도 넓은 의미에서 페미니즘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 성별간의 갈등 해결이 훨씬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여성주의 입장에서 넓은 의미의 페미니즘 운동(메갈리아와 같은 방식 포함)에 대해 왜 시비를 거느냐, 이것도 하나의 운동방식이다는 것과 혐오에 대한 미러링, 극단적인 혐오는 절대 반대한다는 남성측과의 대립이 생기는 것입니다. 

서로의 입장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고 상대방을 비난하기만 하고, 어느 한 편만 들기만 하면 상대방에 대해 낙인찍기를 해 버리니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극도의 혐오와 폭력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갈등은 어디서나 존재하고 피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우리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성별간의 갈등대립이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점차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제 성별 갈등도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한 하나의 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남성이냐 여성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천부인권으로서 한 개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동안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서로 공유하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상대방을 생각해 준다면 이 문제 또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독산동 주민 

공병권  


김중혁, < 모든 게 노래>

마음산책 / 2013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제법 그럴듯한 음악을 잘 찾는 편인데, 가끔 내가 찾고도 스스로 감탄할 때가 있다. 우연에 대한 감사랄까?

요즘 기타를 배우고 있지만 사실 난 음악을 잘 모른다. 음악에 그다지 관심이 있지도 않고, 많이 알지도 못한다. 노래도 잘 못 부른다. 그렇지만 노래를 알고 싶어는 한다. 

한때 소설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어찌 그리 고상한 취미들을 가졌는지 세계에서 노래 좀 부른다는 가수들의 이름과 노래 제목을 줄줄이 꿰기 일쑤였다. 그러면 오디오는 커녕 변변한 카세트도 없는 나로서는 그 음악이 매우 궁금했다. 음악을 들어보려면 카세트 테잎이나 cd를 사야하는데 음악을 잘 알지도 못하고 사려니 괜히 쑥스럽고 멋적어서 사는 것조차 불편했다.

그런데 요즘은 누군가 어떤 노래가 좋다고 하면 바로 바로 들어본다. 가요부터 팝송, 클래식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수험생용 영문법 책에서 문법을 설명하기 위해 소개된 노래부터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알게 되는 노래는 물론 소설 속 카페에 흐르는 노래까지 찾아 듣는다. 음악을 무척 좋아해서냐면 그건 아니다. 그냥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웬만한 음악은 거의 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서다. 음악을 몰라 부끄럼을 느낄 지경인 내가 노래에 관한 책을 아무 꺼리낌없이 집어들 수 있는 이유도 스마트폰의 신기함으로 인한 자신감이다. 


이 책은 노래에 관한 책이다. 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해서 그 사랑하는 여자를 자신의 친구에게 자랑하듯이 음악에 대한 사랑을 자기 흥에 못 이겨 쓴 글들을 모은 산문집이다. 

음악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가 봄에는 김추자의 <봄비> 최고라면 그런가보다 하며 찾아 들어보고, 무심한 목소리가 좋다고 하면 어떤 목소리가 무심한 걸까 찾아서 들으며 천천히 오래 보았다. 그렇게 책을 읽는 건 

엄청 폼 잡는내 또래의 김천 촌놈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랄까? 이런 식이다.


책을 읽다가 어떤 가수의 목소리가 좋다고 하면 나는 마음으로 받아친다.

"오승은? 그런 가수가 있어? 한번 들어보지. 일단 노래를 듣고 당신 얘기를 수긍하든 말든할게. " 

일단 책읽기를 멈추고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답한다. 

"음, 좋군! 나랑 취향이 맞아. 친구(책을 읽다보니 작가 소개에는 없지만 나와 나이 같음)"

그는 노래에 관한 책을 써서 음악평론가인 줄 알았더니 소설가란다. 중학교 때 부모님을 졸라서 산 기타가 자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한다. 기타가 좋아서 공부를 좀 멀리하게 되었고, 혼자 노래를 부르고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다보니 소설가가 되었다고 ‥ 그러면서 은근 음악을 업으로 삼을 정도는 아니지만 좀 한다 소리는 듣는다고. 애매하고 어중간한 재능을 가졌다며 자기 자랑에 잘난 척, 가끔 글 끝에 그림이 있는데 그것도 자신이 그린 거란다. 그래, 너 잘났다 하며 읽는데 정말 재수없게시리 똑똑하기도 한 것 같다. 관계의 비밀까지 알고 있다고 할까?


목소리를 내고, 목소리를 듣는 과정은 참 의미심장하다. 나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내 목소리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상대방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듣는 내 목소리를 정확한 내 목소리라고 보기도 힘들다. ‥ 우리가 사는 방식 역시 비슷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다. 진짜 나는 어디쯤 있을까. ‥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 39쪽 )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진수정


금천구청 인근에 건설되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인 <롯데캐슬> 경내에 계열 기업인 ‘롯데마트’ 개점 허가로 온 동네가 시끄럽다. 쟁점을 살펴보면, 지역발전에 더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한 몫을 담당하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인 만큼 입주민의 편의 등 그것이 제대로 기능케 하려면 대형 상업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 허가 당국의 판단이고, 이러한 결정은 인근의 재래시상을 포함한 영세상을 도산케 하는 등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만큼 취소되어야 한다는 것이 반대 측 주장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그 접근에 조심스러운 것은 날카로운 비판으로 대중의 신망(?)을 받고 있는 칼럼니스트도 예외가 아니다. 대중적 인기로 힘을 얻는 그들이지만 항상 그런 입장에서만 비판의 방향을 두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를 하자면 서민 측을 내세우는 주장에 비판적 접근은 부담이 된다는 자복(自服)이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였으니 부딪쳐야 한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 여기서 논리를 앞세워 답을 찾고자하는 것은 본 장의 의도가 아니다. 누가 옳고 그름인가를 판단하고자 함이 아니고 다만 이러한 문제에서 공동선, 즉 함께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를 찾고자 함이 목적이다.


먼저 허용한 자, 즉 허가당국의 입장을 살펴본다. 그들의 결정(허가)은 법률 근거, 즉 합법(合法)이 바탕이다 법치국가에서 법령에 저촉이 없는 한 사인(私人)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어떤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실정법의 권위이고 존재이유다. 공무원은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본분이니 그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허가를 부당하다 주장하는 측은 어떠한가? 그들의 주장도 법리(法理)에 근거를 둔다. 재래시장에서 일정 거리 내에는 대형마트의 허가는 제한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전자의 합법은 어디서 근거한 것인가? 아마 전자의 결정은 이 규정의 범위 밖에 있기 때문 일게다


여기서 법률 공방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분명한 것은 방어를 해야 하는 쪽도 공격을 해야 하는 쪽도 불법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될 수 있는 사안인데 어떻게 비법적인 영역에서 다루었겠는가!


다양한 인격이 존재하는 공동체에서 권리 다툼은 상사(常事)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법이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법 밖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하니 난감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것은 어느 일방의 양보 또는 포기인데 기대는 할 수 있지만 불확실한 만큼 대안이 아니니 유감이다. 

다툼에서 서로가 화의할 대안이 없을 때 물리력의 대립은 필연적이고 그것은 비법적인 방향에서 전개되게 되는데 이 문제는 지금 그러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권리를 주장하는 쪽은 양보할 기색이 없고 상대방도 결사적인 항의의 표현인 삭발시위로 대응하고 있으니 극적인 전환이 없다면 그 결과는 물리력 충돌로 이어질게 충분히 예견된다.


우려가 되는 것은 이러한 다툼은 정치판 행태로 변전(變轉)하는 것이다. 이기는 것만이 선(善)이고 그래서 양방은 마찰하게 되고 급기야는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면서 갈등구도를 복잡하게 만들어 사회적 부담을 키우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합리는 실종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비정상 상황이 전개되어 . 급기야는 실정법보다 더 엄중하다는 이른바 “때법”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유사 사례다. 그 상황 전개의 책임, 즉 특정 주체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툼 주체인 양방은 물론 제3자에게조차 무익한 상황의 전개를 걱정하는 것이다. 유의해야 하는 것은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이해(利害) 관계로 인한 비법적인 다툼으로 갈등구도가 심화되고 


다양화함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였다.

문명인이라면, 민주시민이라면 예견되는 부정적 사회 파장 전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양 당사자를 포함한 모두가 겸허한 자세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현실적 이해(利害)에 함몰하여 공동선을 외면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민주시민이라면 문명인이라면 유의해야 한다.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존중의 가치에 맞는 포용과 아량의 지혜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내 권리를 타인이 인정할 때 그것은 빛이 나고 그래서 가치는 더해 질 것이다. 품위 있는 권리 향유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상대적 약자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권리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법리나 세상 정리(情理)로 주어진 권리는 행사에 공익성이 확보됨으로 존재의의를 구하게 된다. 내가 보호되는 이유를 겸손하게 받아드리고 보호되어야 하는 타방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총론은 화려하지만 그것으로 대안이 되지 못하듯이 이 문제의 해결 기대도 그렇다. 이기주의(利己主義)에 바탕을 두는 인간의 가치 설정은 자기 논리적 근거를 확실하게 가지게 마련이다. 머리로는 이해를 두지만 가슴에 이는 이기적 셈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 아닌가!


그래서 기대어 볼 데는 정의(正義)라는 가치다. 옳고 그름을 법이라는 틀에서 판단함으로 공익성의 결여나 비 공익성이 있다면 그 근거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영역에서는 온전하지 못하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법적 판단은 정의라는 관점에서는 공감을 구하기 어렵다. 양방은 함께 유념하여야 한다.

비록 법적 근거에 의한 권리이지만 그것의 유보나 포기가 더 공익적이라면 이를 택하는 것은 아름답고 곧 정의의 실현이다. 법의 존재 이유는 정의의 실현이라 하지 않는가! 여기서 인용하기는 좀 그렇지만 참고할만한 명언이 있다. “실정법이 심각하게 정의와 충돌한다면 실정법은 정의에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2016.08.25.)



장제모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Fungatera



“푼가 테라”

“푼가 테라”


앞서가던찰스는 ‘푼가 테라’를 외치며 손을 내민다. 

그의 말에 의하면 테라는 자체 동력을 갖지 못한 컨테이너를, 푼가는엔진을 가진 차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력을 가진 차가 그렇지 못한 컨테이너를 끌고 가는 것이다. 손에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간다는 뜻도 되고 힘내라는 격려의 말로 쓰이기도 한단다.

지금음베야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루사조는음베야 산에 오를 팀을 구성 중인데 함께 하겠냐는 전화를 해왔다. 우리 집 창을 통해 매일 보는 풍경이기도 했고, 집수리 때문에 지쳐있기도 하던 터라 흔쾌히 그러마, 고 대답했던 것이다. 


새벽 여섯 시가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도착했으니 내려오라는 루사조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경쾌하게 울린다. 계단을 내려가자 그녀의 자동차가 전조등을 켠 채서있다. 빛이 소리 없이 어둠을 잠식하나 싶더니 어느새 사위는 밝은 빛으로 채워진다. 참 순식간이다. 어둠이 내리는 것보다 빠르다. 

산행 초반에는 영 힘이 든다. 일행 중 몇명과 뒤로 처진다. 그 중 한 둘은 뒤처진 일행을 위해 속도를 줄여준 것이리라. 

나는 늘 그렇듯 초반에는 힘을 못 쓰다, 조금씩 신체 리듬이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몸이 가뿐해지며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매사에 늦되다.

나를 위해 보조를 맞춰주던 찰스와자연스럽게 팀이 되어 일행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찰스는 내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한국 여성의 강인함을 알겠다며 은근슬쩍 추켜 세운다.

시간이 갈수록 여러 팀으로 나눠지고, 선두 그룹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여기저기서‘요~~~~~ 요요요요요, 요~~~~요요요요요’하는 메아리 소리가 요들 송처럼 가볍게 나풀거리며 산을 간지른다. 나는 우리네 식으로 손나발을 불며 ‘야~~호’로 화답하자 그들도 나를 따라 ‘야~~호’를 외친다. 


여러 개의 작은 산봉우리를 넘고 넘어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사방이 산인데고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정상은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인장 류가 자라고 있고,정상을 향해완만하게곡선을 이룬 산등성이엔 노란 야생화가 만발해 마치 유채꽃밭 같다. 계곡을 이루는 곳은 어김 없이 열대성 산림이 울창하다. 멀리에는세파족이 사는 마을이 제법 크게 자릴 잡고 있다. 그들은양을 키우고화전을 일구며 산다고 한다. 

일행을 기다리는 와중에 한 편에선 열심히 사진을 찍고, 한 편에선 동영상을 촬영하며 인터뷰까지 한다. 나에게도 폰을 들이대며 한국말로 한마디 하라고 재촉한다.

아프리카는 사진 찍고 찍히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대륙인 것만은 분명하다. 저렇게저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긴 역사를 통해 기록할 언어를 갖지 못해 남의 나라 철자를 차용해서 쓰는지…


내려가는 길은 곡예다. 바위산은 그렇다 쳐도 한 발짝만 잘못디디면 양쪽이 낭떠러지. 거의 기다시피 내려온다.

바위산을 겨우 벗어나 한 숨 돌리며,한 시간길어야 한 시간반이라 했으니 곧 마을이 나타나겠지 했는데 다시 새로운 능선이 저만치 앞에 보인다.가까이 가니 앞서간 일행들이 미끄러지다시피 헤쳐나간 흔적만 있다. 엉덩이에 불이 나는 가 보다 하면, 잡목 숲. 두 팔을 휘저으며 길을 만들며 나아간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질 무렵, 무릎을 삐끗했는지 시큰거리기 시작한다.헛발질만놓다뒤뚱거린다.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잡는다. 까만 얼굴에 눈과 치아만 하얀 낯선 얼굴의 청년이다. 그의 도움을 잠시 받지만여전히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는 메고 있던 가방을 뒤따라오던 동료에게 부탁하고 등을 내민다. 도리가 없다. 나 때문에 지연될 수는 없는 일. 염치불구하고 업힌다. 그는 마치 산토끼 같다. 한 걸음에 달려 내려간다. 

그는 동력을 가진 푼가. 나는 동력이 없는 테라다.

국부인 니에레레는 말했다고 한다.탄자니아는 아직 엔진을 켜지 못해, 유럽이 끌어주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시동이 걸리면 엄청난 속도로 달릴 것이라고… 이곳이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란 것을 알아갈수록 그의 말은 설득력을 갖는다. 막내의 설음을 딛고 젊고 힘찬 대륙으로 태어날 그날. 나도 기다려 볼 것이다.



소피아

8월 21일

바닥에 앉기, 눕기


우리는 집안이나 일터, 식당에서 종종 바닥에 앉는데, 그 때 대부분 양반다리를 한다. 하지만 이처럼 고관절을 벌린 자세들은 인체역학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 심지어 이 자세로 오래 앉아서 명상을 하다가 건강을 상한 수행자들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고관절이 밖으로 틀어진다(外轉)는 것. 그러면 전일적인 인체에서는 연쇄적으로 골반, 요추, 흉추, 경추, 견관절이 틀어지고 아래로 무릎, 발목에도 문제가 생긴다. 고관절이 빠져 걷기가 힘들어지고 관절염, 요통, 견비통, 장부질환 등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부득이하게 책상다리를 할 경우, 평소와 반대로 다른 발을 올리거나 안에 놓는 게 좋다. 그리고 상황이 종료되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교정식 참장공(1회 사진 참조)을 해서 틀어진 고관절을 바로잡아야 한다.

사진 1 큰절자세



바닥에 앉을 때 가장 좋은 자세는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 즉 궤좌(跪坐)이다. 이는 본래 우리 민족의 전통 명상자세로, 이를 정좌(正坐)라 불렀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일본여성들이 늘 궤좌를 하는 것은 잘 알려졌으며, 검도 등 무도의 기본자세도 궤좌이다. ‘사무라이(武士)’라는 말이 우리말 ‘싸울아비’에서 유래했듯이 이는 모두 우리에게서 건너간 것이다. 궤좌를 하면 틀어진 체형이 바로 잡히면서 무릎관절도 더 튼튼해진다. 처음에는 다소 힘들어도 자꾸 해보면 점점 더 오래, 편안하게 앉을 수 있게 된다.

  우리 문화에서 궤좌의 전통은 큰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예로부터 해온 큰절은 놀라운 건강비법이다. 이는 틀어진 몸을 바로 잡아줄 뿐 아니라 겸양의 덕을 기르는 중요한 마음공부이기도 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큰절자세로 1~2분만 엎드려 있어 보자(사진1 <큰절 자세> 참조). 피로가 잘 풀리고 틀어졌던 몸이 교정되어 혈액순환이 잘 되며, 자연치유력도 강화된다.


-바람직한 수면자세


  우리는 잠에 대해 많은 편견들을 갖고 있다. 잠은 최소한만 자도 충분하며, 몇 시간 이상 꼭 자야 한다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다. 나폴레옹은 하루 평균 3시간을 잤고, 성철 스님은 무려 8년간 장좌불와를 했으며, 심지어 티벳의 수행자 밀라레빠는 평생 잠을 안 잤다고 한다. 불면증에 시달려 잠을 못 자는 분들이 있는데, 그냥 누워만 있어도 피로가 잘 풀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에 잠이 안 오면 누운 자세에서 단전(배꼽 3치 아래)을 향해 “고마워요. 사랑해요.”하고 에너지 넘치는 말을 마음속으로 속삭여보자. 더 효과적인 방법은 초침소리에 맞춰서 읽는 것이다. 잠시 후면 단전에 에너지가 가득 차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수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세이다. 불량한 수면자세는 몸을 더 틀어지게 만든다. 그릇된 자세들로는 큰대(大)자로 자기, 만세 부르기, 한발을 다른 발 위에 올리고 자기, 옆으로 눕거나 엎드려서 한 발 꺾고 자기 등이다. 이런 자세로 자면 숙면이 안 되고 얕은 잠을 자기에 악몽에 시달리기 쉽다. 혈액순환도 잘 안되고, 척수신경이 압박을 받아 장부에도 이상이 온다. 

  바람직한 수면자세는 낮은 베개를 목에 댄 목베개를 하고, 두 다리는 벨트로 묶은 채 자는 것이다(사진2 <이상적인 수면자세> 참조) 처음엔 이 자세가 불편한 듯해도 며칠만 지나면 숙면과 혈액순환이 잘 되며, 매우 편안한 자세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사진2 이상적인 수면자세



이명복

기센터 및 건강문화연구원





거리에 군복이 넘실된다. 일상에 군대가 끼는 것은 불길하다. 대내적으로 쿠데타 후 비상계엄이나 전쟁 시기에나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군복이 넘실거리는 것은 안보의 강화가 아니라 안보의 실패가 보여주는 풍경에 가깝다. 이유는 8월 22일부터 25일까지 을지프리덤가디언 (UFG : Ulchi-Freedom Guardian) 전쟁연습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이 지면으로 발표되는 시기는 그 훈련이 끝났을 테지만 UFG연습의 본질적 성격상 꼭 의미를 다루고 싶어 쓴다. 


올해 UFG연습이 특별한 것은 2015년 8월 27일에 미국의 새로운 한반도 전쟁계획인 ‘작계 5015’가 수립되었고 2016년 올해부터 적용되게 때문이다. ‘작계 5015’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를 공격적으로 제거하는 개념, 즉 유사시 북한을 선제 타격하는 개념을 적용한 것이다. 게다가 이번 UFG 연습에서는 ‘작계 5015’에 반영된 북한의 생화학 무기 위협 및 대응 절차를 적용해 훈련을 진행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작계 5015'에는 합동요격지점(JDPI)도 '생물학무기 진원지'를 포함한 JDPI 700여개를 새로 선정하고 검증도 마친 상태라고 한다. 게다가 정당성을 의심받는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인 만큼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훈련도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실전 같은 훈련”을 하자고 한다. 어느 때보다 이번 UFG 연습이 걱정되는 것은 2015년의 UFG연습을 전후해 막판에 미국이 긴장완화를 권고하면서 가까스로 봉합된 위험천만한 전쟁위기를 겪었다는 경험과 올해는 남-북간 채널도  북-미간 채널도 없어진 악화된 조건에 대한 우려다. 대화는 단절되고 소통의 그 명맥도 닫힌 상태에서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된 군사적 긴장은 전쟁으로 직결될 수 있다. 중국마저 한반도에 전쟁이 터진다면 누구도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 UFG연습은 우리 국민들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생존권을 위협한다. 평화와 통일을 타격한다. 

   

'작전계획 5015’는 선제공중 핵 타격 시나리오라는 ‘확장억제전략’에 근거하여 작성된 ‘맞춤형 확장억제전략’이다. ‘맞춤형 확장억제전략’은 탐지(Detect), 교란(Disrupt), 파괴(Destroy) 및 참수(Decapitation), 방어(Defense) 순으로 전개된다. 

이를 위해 이미 많은 군사적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네이비실(Navy SEAL)’ 소속 특수전병력의 주한 미군 상주를 시작했다. (이들은 적국에 침투, 핵심시설을 파괴, 대량살상무기 제거, 특수정찰임무, ‘참수작전’에 동원된다.) 

미 해군 특수 전 병력을 태우고 적지에 수중 침투하는 공격 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의 부산항 입항과 ‘한미공정통제사연합훈련’을 진행했다. (공정통제사란 전시에 가장 먼저 적지에 공중 침투, 아군 수송기에 정확한 위치정보 제공, 후속병력과 무장장비를 투하할 공수위치의 안전을 확보하는 공군특수전부대다.) 


2015년에 선정한 ‘합동선정타격점 700개 중 어느 대상들이 실제로 타격할 만한 대상인지 검증과 미국 해군-해병대와 한국 해군-해병대의 강습상륙함을 동원한 대규모 상륙작전과 종심기동-내륙진공작전 연습이 진행됐고, <연합뉴스> 2016년 4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전라북도 군산공군기지에서 ‘맥스썬더(Max Thunder)’라는 작전명의 EA-18G 전자 전기를 동원한 항공전자전 연습했다. 이 모든 연습이 선제공격을 전제로 한 전쟁연습이다.(한호석씨 글 인용)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미국이 2016년 8월 17일 전개된 3종의 전략폭격기를 동원하는 선제 공중 핵 타격 태세를 과시한 것이다. B-1B 전략폭격기, B-2 스텔스전략폭격기, B-52 전략폭격기 각 3대를 괌의 앤더슨공군기지로 전진 배치하였다가 8월 17일에 3종 합동폭격비행연습을 했다. 이 공격 연습은 오직 북을 향한 것으로 북으로서는 정말 심각한 사태다. 이중 B-2스텔스 폭격기는 이론 상 개전 초 제일 먼저 북측 영공으로 몰래 침투하여 북의 레이더기지와 대공미사일 기지 등을 파괴하여 이후 순항미사일과 전투기 공격을 마음 놓고 진행할 수 있는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핵심 무기다. 미국 소유 24대 중 3대를 괌에 배치했다는 것에서 언제든 임의의 시각에 북을 선제 타격할 수 있다는 위협을 노골화 한 것이다. 아마 작년 경험의 교훈으로 이번 UFG 연습에서 폭격기 한반도 직접 출동을 하지 않고 괌에서의 모의 훈련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공중타격 핵 전략 폭격기의 북한 집중은 압력도 보통 압력이 아닐 것이다. 

 

나아가 이번 UFG 연습에는 생물방어연습이 실시된다고 한다. 주한미군의 탄저균 반입사건은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 한미 양국은 이미 지난 2011년부터 한미 생물방어연습(Able Response·AR연습)을 실시해왔다고 한다. 지난 7월, 주한미군이 생화학무기 방어 전략인 ‘주피터 프로젝트’에 따라 부산광역시 부산항 8부두에 치사율이 매우 높은 탄저균 등을 실험하는 생화학무기 실험실을 추진하고 있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왜 한국은 미국의 가장 위험한 것에 대한 실험실로 이용되는가? 


사드배치도 그렇다. 미국평화운동가의 말에 의하면 사드는 방어용이 아니라 공격용이다. 사드의  필요성은 ‘맞춤형확장억제전략’에 의하면 탐지(Detect), 교란(Disrupt), 파괴(Destroy) 및 참수(Decapitation), 방어(Defense)라는 4D 개념에 의하면 1단계인 탐지와 마지막 단계인 방어에 사용된다. 탐지하고 선제타격하고 그래도 실패하여 날아오는 미사일을 타격하는 것이니 공격 뒤에 오는 방패지 그 반대는 아니다. 전쟁과 무기가 평화를 가져온다는 믿음 자체가 모순이다. 북은 잠수함을 통해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사드배치가 허망한 것이며 한미일의 북에 대한 예측이 틀렸다는 시위다. 결국 전쟁연습은 적을 더 강하게 할 뿐이다. 평화는 평화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왜 남쪽의 평가로 낡고 가난한 북한을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들이 힘을 합쳐 이토록 괴롭히는가? 체제의 위기, 경제의 위기, 정권의 위기를 외부로 돌리는 이 낡고 낡은 악마 만들기 수법에 속지 않는 사람들의 이성적 성숙함이 절실하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일왕이 생전퇴위 의사를 밝혔다. 그는 “고령으로 인해 신체가 쇠약해지고 이에 일왕으로서의 책무 수행이 어려워 퇴위하고 싶다”고 했다. 이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국왕의 생전 퇴위 의지 표명은 아베 정권의 개헌에 대한 마지막 저항"이라 평한다. 반면에 ‘천황은 국정에 관한 권능이 없다’는 헌법 4조를 근거로, 정부가 여론의 동향을 살핀 뒤 주도적으로 대응해 개헌 찬성파가 일왕 퇴위에 맞춰 개헌 카드를 내걸고, 이참에 평화헌법을 고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일왕제의 후위구도를 둘러싼 논쟁으로 전쟁헌법의 이슈가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필자의 눈에 먼저 띄는 것은 아베정권의 개헌에 대한 ‘마지막 저항’이라는 평가다. 하늘의 황제라는 일본 왕이 그 위에 누가 있어 저항인가? 하는 의구심과, 그러고 보면 일황이니 뭐니 해도 제 운명을 제가 결정하지 못하고 ‘저항’ 하는 존재라는 현실에 대한 새삼스러운 자각이다. 그러면 그 저항의 대상은 무엇일까? 당연히 일왕을 얼굴마담으로 세우고 이득을 탐하는 제국주의 세력, 그 힘의 중심, 미국과 일본 독점 자본의 얼굴마담 아베다. 


현재 미일은 중국 러시아와 대찬 힘겨루기를 하면서 한국을 미일 군사동맹에 흡수하려 하고 있다. 정치 경제 외교에서 균형점을 잡아야 하는 박근혜 정권이지만 친일 매국노들의 후예답게 ‘위안부 합의부터 사드배치’까지 미일 동맹체제로 기울었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자본주의 구조적 대공황이 놓여 있다. 히틀러의 전체주의, 루스벨트의 수정주의 운운 하지만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를 극복한 것은 결국은 전쟁이었듯이 미국과 일본 또는 EU 등은 정치 경제적 위기의 돌파를 체제 대립이나 악마 만들기를 통한 전쟁의 참화로 돌파구를 뚫고 있다. 미국의 사드배치가 한국의 안보와 무관하게 미일의 본토나 미군 기지를 지키며, 군사 정치적 대립을 통해 군비 확장과 무기 장사를 키워 ‘전쟁 또는 그것에 버금가는 효과’를 만들려는 것이 미일의 진정한  목표다. 그것을 위한 가장 큰 전제가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본의 현행 헌법을 고쳐야 한다. 또한 미일 군사동맹체제 아래 남한을 흡수하는 위해 한일 간의 역사적 틈을 억지로 메우려고 위안부 합의가 강제되고 사드배치가 강행되고 있다. 


이런 미일 지배세력의 의도에 일본 왕실의 입장은 다 알 수 없다. 다만 아베정권의 개헌에 저항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 논리는 다음과 같다. 

현행 헌법은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반을 둔다."고 명시해 일왕의 지위를 '상징적 존재'로 한정하고 있다. 반면 아베 총리와 자민당이 지난 2012년 내놓은 개헌안 초안에 따르면 일왕의 지위는 '일본국의 상징'에서 '원수'로 바꾸는 등 실질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아베는 일왕을 신격화해 국가 총동원 체제를 구축했던 1889년의 '일본제국 헌법'으로 회귀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는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설정해 일본의 군대 보유와 교전 권을 부정한 현행 헌법 9조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키히토 일왕이 퇴임 발표에서 "일왕은 헌법상 국정에 관한 권능이 없다."를 분명히 한 것은 아베 내각이 추진하는 개헌에 불안을 느껴 생전 퇴위 입장을 표명했을 것이라고 추정에 힘을 준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당시의 일왕이던 히로히토의 장남인 아키히토일왕은 11세에 일본 패전을 지켜봐야 했다. 그 과정의 참혹함과 무력함 그리고 모욕감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간의 입장은 항상 평화주의적 입장을 피력했다. 사이판 한국인 전몰자 기념비에 참배, 태평양 전쟁에 대한 반성을 직접 언급하는 것 등이 증거다. 


그리고 이런 입장은 왕위를 잇는 왕세자 나루히토로 이어졌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지난해 2월 "앞선 전쟁으로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이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많은 사람이 고통과 큰 슬픔을 겪은 것을 매우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두 번 다시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과거의 역사를 깊이 인식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왕세자는 지난 2014년 "지금의 일본은 전후 일본 헌법을 기초로 쌓아올려졌고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헌법을 지키는 입장에서 필요한 조언을 얻으면서 일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혀 평화헌법을 통한 평화국가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그러니 전쟁 패전의 참담함을 경험한 아키히토가 또 다시 전쟁의 가면에 되는 것을 저어하고 그 역사적 임무를 젊은 아들에게 물리는 것은 좀 비겁해 보이지만 이해가 될 만한 행위로 보인다. [프레시안 임경구 기사 인용]


언젠가 이 난을 통해 현 일왕제인 천황제가 세계 2차 대전의 항복을 미국에 일방적으로 하며 만들어진 협잡체제라고 했다. 그 결과 패전국 일본이 분단을 당한 것이 아니라 기괴하게 한반도가 분단을 당했고 전쟁의 참화를 뒤집어 쓴 채 사대망국노들의 후예들이 더 지독한 사대 망국노 짓을 하는 보고 있다.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 정치 경제 외교 국방 통일 과제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말이다. 그러니깐 평화헌법의 본질은 전쟁을 할 수 없는 대신 ‘군벌 재벌들의 기득권을 인정 옹호’하는 지배체제의 유지의 상징으로 천황제 유지와 바꿔치기 한 것이다. 그것은 중국 일본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화를 막겠다는 것이 미국의 의도이기도 했다. 그러니 평화헌법이 없어진다면 당연히 천황제도 없어져야 한다. 천황제의 폐지가 일본 민주주의 또는 헌법 개정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이라면 신분 계급을 인정하는 왕정은 시대에 뒤떨어 진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말한다. 이참에 천황제를 폐지하라. 그 논쟁을 통해 적어도 당장의 전쟁 위기는 벼룩 눈물만큼 완화되길 빌면서 말이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이화여자대학교에 설치 예정이던 미래라이프 단과 대학은 학생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설치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학생들의 요구가 관철되었다는 점에서 정부당국에 의해 수립된 이 정책은 일견 문제가 있는 것으로 비친다. 국가의 정책은 그 설치 명분이 분명한데서 수립 근거를 가지게 되는데 정책현장에 반대가 있어 취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객관적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결과를 두고 정책당국을 질책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경위를 살펴보면,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였고 그것의 수용 결정은 민간 부분즉 이화여자대학이 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특정대학에 수용을 강제한 것은 아니고, 이 제도를 수용한 다른 대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굳이 책임을 따지면 수용 당사자인 이화여자대학교이다.


그렇다면 이화여자대학교의 이 결정은 잘못된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달리 나오겠지만 필자의 의견은 ‘그렇지 않다’이다. 즉 이화여자대학교 당국자를 비난하는 이유는 보편성을 가지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여론은 학생들을 옹호하고 대학당국에 비판적인 이유는 무슨 까닭인가?

사태를 제대로 보려면 문제가 된 “미래라이프 대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대학은 국민들에게 평생교육 기회 공여 일환의 교육제도로 특별히 직업 계 특성화고등학교나 마이스터고등학교 등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고등교육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기성 대학에 단과대학을 개설케 하여 운영하는 것이라 한다. 간단히 이해를 하면 가정 또는 개인적 사정으로 대학을 가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고등교육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제도의 취지를 볼 때 공익성을 가지고 있는데 학생들이 반대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들의 주장은, 방송통신대학과 사이버 대학 등 같은 목적의 교육기관이 있는데도 기성대학에 두는 것은 중복이며, 이러한 대학들과 동일 시 되는 것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화여자대학의 자존의 문제이고, 능력이나 자질이 검증되지 않는 학생들을 입학하게 되면 어렵게 입학한 자신들과 형평성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강행하려는 것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위한 학교당국의 상업적 발상이란다.

학생들의 주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받아들이기는 좀 그렇다. 학교 측의 상업적 발상이란 주장은 생각해 볼 과제이나 유사한 제도와 중복이나 형평성 제기, 학교의 명예실추운운은 공감하기가 어렵다. 그 배경에는 배타적 이기주의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학교 측의 상업적 발상도 솔직히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그들 학교는 오래 전부터 다른 대학교에 비교될 만큼의 상당한 국고보조를 받고 있고 그것으로 재학생과 교수들은 장학금, 연구비 등의 수혜를 받고 있다. 비판은 객관성을 확보할 때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이 아니다. 그들의 가장 큰 반대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규정지우고 있는 자기들의 권위의 실추 즉 이화여자대학이라는 상징의 손상을 우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 스스로 규정한 자부(自負)를 옹호하기 위하여 배타적 이기주의를 행동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자세를 잘 못되었다 하지 않는다, 자존(自尊)을 지키고 이를 중히 여기는 것은 인간라면 가질 수 있는 보편성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기적 배타주의가 발로라면 보편성의 범주에 두기 어렵다. 정의(正義)의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대학을 상아탑(象牙塔)이라 하는 것이 이에 대한 설명이다. 다시 말하면 대학은 학문 연마의 장을 넘어 전인적(全人的) 인격 형성을 구하는 기회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다.


학생들이 학문의 연마와 병행하여야 할 것은 사회정의의 행동이다. 정의가 실종된 시공(時空)에서 쌓은 지식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그러한 지식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가 하면  타인들에게 위해(危害)를 가할 수 있는 것은 인류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정의롭지 못한 세력들이 지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비안간적 모습들이 주조이고 그러한 곳에서 평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학은 지성인(知性人)을 추구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지성(知性)의 사전적 어의는 “맹목적이거나 본능적 방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지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그 상황에 적응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성질”이라 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지성인은 곧 정의로움의 바탕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상아탑의 주역이라면 지성인이 목표여야 한다. 그리하여 사회의 양심과 지성을 대표하도록 자기를 가꾸고 단련하여야 한다.


오늘의 대학을 두고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그래도 대학에 두어진 사회의 원래 기대는 지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세상의 평화를 지키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듯 대학생은 미래의 주역이자 희망이어야 하는 만큼 학문의 량(量)으로 자기도취에 빠지지 말고 전인적 인격자를 지향하여야 한다. 

이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한다. 명문을 자처하는 대학교는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가치를 현실 상황에서 찾아야지 과거의 가치에 고착하여 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역사의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과거에 형성된 가치는 문명의 변천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어제의 선(善)이라 하여 항상 선일 수 없고, 어제에 세워진 권위도 오늘에 이르러서는 빛을 더할 수도 있지만 덜할 수도 잃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전통을 자랑하는 모든 집단에게 말한다. 나보다 부족한 이웃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을 동의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지 부끄럽거나 자존을 다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지성인의 모습이 되고 그들의 전통을 더욱 빛나게 한다. 또한 전통은 그 집단 내부의 자부이자 로망일 뿐 외부에 강요할 권위로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2016.8.10.).


장제모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꽝꽝’

망치질 소리가 요란하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며칠을 미루더니 드디어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열 시쯤 되어 장정 네 명이 들어섰다. 손바닥만한 공간을 수리하는 것이니 금방 끝나겠군 했다. 그런데 조금 후, 망치 소리는 인부들의 잡담으로 바뀌었다. 타일을 깨던 망치가 부러져 바꾸러 가야한단다. 다시 망치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점심 시간이라며 옷깃을 여민다. 곧 돌아오겠다는 그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들어선다. 망치질 소리 대신 청소하는 기척이 나는 가 했더니 퇴근 시간이란다. 

시계를 보니 세 시. 문설주 부분의 타일만 겨우 떼어낸 상태다. 너무 단단해, 일하는 게 여의치 않은 탓이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내일이 지나면 다시 주말. 저 기세로 일하면 타일 벽을 제거하는 데만 며칠이 걸릴듯하다

(타일공사를 하고 있는 타자니아 인부)


학교 푼디(기술자)와 자재를 사러 시장에 갔을 때다. 타일을 고르고 흥정을 마친 후 계산기를 들고 셈을 하는 종업원의 손짓이 둔하다. 영수증에 적어넣는 숫자는 셈에 밝지 않은 내가 한 눈에 봐도 뭔가 이상하다. 다시 계산기를 누르더니 계면적은 듯 웃으며 숫자를 고쳐 적는다. 

물건을 사고 나오면서 푼디는 한마디 한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느리지? 하지만 느린대신 정확해.” 계산기까지 들고도 간단한 셈마저 틀린 걸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그냥 웃고 만다. 


그러나 푼디의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살림살이 욕심은 없는데 물을 사용하는 공간 만은 깨끗해야 살맛이 나는 탓에 좀 번거롭지만 수리를 하기로 한 것인데, 끝마무리가 제대로 될 까 불안해진 탓이다.

내가 집을 좀 손봐야겠다고 했더니 나의 코워커인로엘은 말했다. 

“그 집을 사용한 사람은 미국인이야. 아프리카 사람이 아닌.”

'미국인'으로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두어 번 강조한다. 

미국인이라고 싸잡아 말했지만, 너와 같은 외국인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아파트는 외국인 전용이라 했으니 말이다. 

(거실에서 격자모양의 창문 너머에로 보이는 음베야)



삼십 년이 넘은 건물이니 당연한 거라 했더니 자신의 관사는 깨끗하다고 손사레를 쳤다. 그 특유의 넉살을 담아 유쾌하게 말했지만 예사롭게 들리지 만은 않았다.

공사 현장을 왔다갔다하며, 한편으로는 식탁을 책상 삼아 글을 쓰는 지금. 어설프게 짜진 격자창 속에 갇힌 음베야 산이 성큼 다가와 있다. 확 트인 통유리창이라면 더 좋았을 걸 하다가, 삐뚤삐뚤하게 잘라진 퍼즐 조각 같은 지금이 더 정감있다고 고쳐 생각한다.

피스코 단원이 돌아간 후 오래 비어있던 관사는 춥고 썰렁하다. 이곳에 사람 사는 기운을 담으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절기상으로 겨울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갈 땅, 음베야는 고산지대인 탓에 날씨마저 추운 탓이다. 수리가 끝나고 자리가 잡히면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낼 거실만이라도 분위기를 좀 따뜻하게 바꿔야겠다. 


이년이 지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할 터이지만, 그때까지는 내게 안식처가 되어줄 ‘나의 집’. 좀 늦으면 어떤가?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지 않은가!

탄자니아의 속담에‘하라카하라카 하이나 바라카’란 것이 있다. ‘빨리 빨리는 축복이 없다’,라는 뜻이다. 여기는 탄자니아. 나는 오늘도 중얼거린다.


하라카하라카 

하이나 바라카. 


소피아

8월 12일


금천구가 독립한 지 20년이 지났다. 금천의 시민사회는 얼마만큼 성장했을까? 누가 자신 있게 우리 시민사회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까? 왜 사람은 많은데 사람이 없다는 말이 반복될까? 몇몇 열성적인 활동가들의 목소리와 갈등에 포획되어 교착된 상황은 왜 해체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가? 시민주권의 꿈은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시민 - 번갈아 가면서 지배하고지배당하는 존재 


지난 번에도 언급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을 번갈아 가면서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존재라 정의하였다. 그리스 시대의 자유의 개념은 이사야벌린의 구분을 빌리자면 소극적 자유였다. 그곳에서의 자유란, 복잡한 공적 업무를 동료에게 인계하고 그곳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기만의 사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자유를 의미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두가지를 알 수 있는데, 먼저 그들에게 공적 업무를 맡는다는 것은 권리 이전에 의무였다는 것, 둘째로 폴리스에 대한 위협이 상존하는데도 동료시민에게 그 자리를 내어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너와 나의 공동체에 대한 애정만큼은 다르지 않다는, 동등성의 원리에 바탕을 둔 믿음과 신뢰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동료시민들이 번갈아가면서 지배하고 지배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두 지배하려고만 하고, 오르려고만 한다. 정치도, 회사도, 시민사회도 예외가 없다. 올라가지 못하면 불안하다. 그야말로 떨어지면 낙오다. 교장을 하다가 평교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으며, 검사장 하다가 평검사 역할을 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고, 국회의원하다가 구의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지역 정당도, 군소 지역 정당도 마찬가지다. 한번 위원장하면 중앙으로 올라가지 않는 한 끝까지 위원장을 하려한다. 때론 맡길 만한 사람이 없기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들기도 하지만, 사람이 없다는 말은 그만큼 무능 했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나마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로 덫에 걸린지 오래다. 한번 맡은 사회적 지위는 더 상승하기를 바라면 바랬지 동료에게 내어주고 지배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기 보다 부족하다고 여긴 동료가 어떤 위치를 맡으면 도와주면 그만인 것을 끊임없는 험담으로 자기 불안을 대신한다. 결국 그 불안은 줄세우기를 강요하게 되고, 자기 편을 들어주길 바라며 은근히 자기 세력을 만들려 한다. 은연중 누가 자기 험담을 할까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타인의 모든 행위는 불순한 의도의 수단으로 의심받고, 갈등은 발전의 근간이 되지 못한 채 늘 언제 또 터질지 모를 불안만 가중시킨다. 갈등은 원인의 무한 소급에 빠져 더욱 미로를 헤맨다. 시민은 많은데 결국 시민이 없고 쉽게 지치는 이유다. 누구도 더 기대하지 못한다. 동료 시민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다는 것은 결국 자기 무능이다. 불가에서 “나는 너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2003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주 정부는 무작위로 입법가로서의 시민의원을 선출했다. 물론 선거를 통한 의원이 있었기에 이들의 집요한 반대는 불 보듯 뻔했을 것이다. 그 시민의원들이 정리한 법안(선거제도)은 주민투표로 이루어졌고 57.3%를 득표했다. 즉시 입법 되는데 60%가 필요했기에 결국 그 법은 폐기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실험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라진 박애  


모두 알다시피 자유 평등 박애는 근대 프랑스 시민혁명의 주된 가치였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근대 계몽주의의 위대한 가정은 박애라는 실천윤리가 없이는 불가능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왜 박애라는 형제애와 연대의 가치는 근래에 와서 멀어졌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두가지로 추측하고 싶다. 하나는 근대 초기 나치와 파시즘과 소련 공산주의라는 희대의 전체주의라는 비극에 대한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비극적 경험을 통해, 동지애나 연대의 가치에 대한 강조가, 전체주의에 동조한다는 의심 받을지도 모른다는 자기 검열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동지애나 연대는 동질적인 공동체를 이루지 않고는 정체에 대한 헌신을 도덕적으로 끌어낼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결국 마이클샌델 같은 공동체 자유주의자도, 한나아렌트와 같은 정치철학자도 전체주의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두번째는 이데올로기가 종언을 구한 다음 도래했던 변종 신자유주의의 득세다. 신자유주의가 성공이라는 개인적 권리에만 줄기차게 집단적으로 천착한 결과로 연대와 박애의 가치는 더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그 가치는 개인의 성공을 위한 전략이나 수단으로만 전락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자유와 평등은 주로 의무보다 개인의 권리에 대한 개념이다. 그것이 불간섭 자유이던, 비지배 자유이던 말이다. 그에 비해 박애는 주로 의무에 관한 개념이다. 논리적 비약이겠지만, 우리가 우리의 자유와 평등을 권리로서 보장받기 위해서는 박애라는 연대의 책임을 질 때만이 가능하다. 박애와 형제애와 연대의 가치가 폐기된 곳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기때문에 인간이 존엄하다”는 가치가 존립할 수 있을까? 

당장 개인의 권리만을 앞장세운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는 곳만 보아도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박애가 자유와 평등을 위한 수단이라는 말은 아니다. 박애는 박애대로 고유한 가치가 있다.) 박애와 형제애와 연대는 비단 개인과 개인만의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형제애의 정신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간의 연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다른 정치적 이상과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 불편함을 인내하고 연대하겠다는 각오 없이는 “자유롭고 평등하기때문에 인간은 존엄하다”는 근대의 이상은 공염불이 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과정에서는 노예의 해방이라는 담론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고대 그리스가 그러했으며, 영국과 미국이 그러했다. 

노예들의 투쟁을 통해 도래한 해방의 담론이 아니라 당시 자유민에 의해 자발적으로 도래한 해방 담론을 말한다. 이 사실은 민주주의에서는 내가 절대 자유롭고 평등하기 위해서 박애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기 때문에 박애와 연대는 전략이나 수단이 아닌 절대 당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연대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관인에서 시작한다.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을 관인하겠다는 똘레랑스에서 비롯된다.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30년간의 종교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종교가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하기로 했던 관인의 가치가 서구의 근대화의 중요한 덕목이 되었던 것 아니었던가.  

다시 시민사회로 돌아와 보자. 어쩌면 우리는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헌신과 열정만큼이나 관인과 연대에는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이나 또는 자기가 속한 집단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큼 타인이나 타 집단에 대한 동료애나 연대의 의무를 수행했을까? 이것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러나 자신이나 자신의 집단이 신도 아니면서 자신의 정치적 윤리적 이상만이 옳다고 타인을 배재할 권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이것은 결단코 옳지 않다. 서구가 3~400년간의 과정의 긴 고통을 통해서 열었던 근대를 우리는 정녕 거져 먹었다는 것인가? 


금천의 시민사회가 적어도 시민주권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박애와 형제애의 의무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이고 명령이다. 그 형제애의 대상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동료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구와도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치명적으로 인권을 침탈하고, 또 공적공간을 파괴하고 사유화 시키려 들지 않고,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정당이던 무엇이던 형제애의 마음은 열어놓아야 한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은 확보되고, 주어진 공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헌시 되면서 명예와 영광이 주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글을 쓴다는 것이 늘 어렵다. 나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반성으로 여겨줬으면 좋겠다.)                            


                      

        금천구 주민 

이윤로

                                   



금천서민경제 다 죽이려는가 ?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은 노동자들 보다 335시간 더 많은 연평균 2406시간 일하고 있다. 물론 OECD 1위다. 그러나 1997년 국가부도이후 비정규직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1인 자영업자의 5년 후 생존율이 29.6%에 불과한데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영세상인과 소상공인들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금천의 서민경제를 유달리 잔혹하게 파괴하고 있는 것들이 대형마트와 SSM들의 무분별한 난립이다. 검증된 통계를 보면 SSM 하나 들어서면 동네슈퍼 22개가 문 닫아야 하고, 대형마트 하나 들어오면 전통시장 매출액이 40-50% 줄어든다 한다. 대명시장을 봐라 ! 100미터도 안되는 지점에 홈플러스가 들어서면서 그 잘나가던 시장이 지금 다 무너지고 유흥가로 전변되어 있지 않은가? 
 관악구는 금천 인구의 두 배가 넘음에도 도시외곽에 대헝마트가 한 개 밖에 없다. 선진국들 대부분은 대형마트가 도시외곽에 위치하고 있단다. 금천은 도시 한 복판 전통시장 부근에 나란히 대형마트가 3개나 있다. 한인수 전 구청장이 허가해 준 것이다. 해도 너무 했다. 금천의 인구가 서울에서 제일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자살율이 매우 높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롯데마트 건축허가는 취소 되어야한다.
  상인들 앞에서 전통시장이 살아야 금천경제가 살 수 있다고 항상 외치고 다녔던 차성수구청장이 전통시장 상인들은 물론이고 본인이 속한 민주당이나 구의원, 시의원들하고도 상의없이 동네 한 복판, 현대시장과 5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매장면적 2만5천평방미터나 되는 롯데마트 건축허가를 승인해줘 버렸다.
 서울에서도 규모로 상위권에 든다는 롯데마트가 또 금천에 들어오면 겨우 연명하고 있는 현대시장과 남문시장, 대명시장, 골목시장등과 소상공인들은 존폐의 위기에 몰릴 것이다. 이들이 무너지면 금천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창원시, 서울 구의동, 전주시 등에서는 교통체증과 소상공인 보호를 명목으로 대형마트 건축허가 심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지금의 유통산업발전법이 3000평방미터 이상의 대헝마트가 전통시장 1키로이내에 입점하려 할 때는 상권영향평가와 전통시장협력계획서를 대형마트 건물을 준공한 후 사후적으로 제출하게 되어있어, 건축허가 자체를 통제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개념있는 많은 자치단체장들은 교통영향평가나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이유로해서  소송을 불사하며 무리를 하면서까지 건축허가를 안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현재 롯데마트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이 안된 상태이다. 2002년 시흥3동 동네 한복판에 주민들이 혐오하는 신앙촌이라는  종교건물을 당시 구청장이 주민들 여론수렴과정 없이 건축허가를 내준 적이 있었는데, 주민들이 이에 저항해서 반대운동을 격렬하게 벌였고 결국 한인수 구청장은 건축허가를 취소한 적이 있었다.
 인천시에 소재하는 대헝마트 사업자들이 인천시에 휴점날짜를 평일로 해줄 것을 제안
 했을 때, 인천시와 의회의 답변은 [시민들의 편의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이다]라는 것이었다. 차성수 구청장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금천미래연구회 대표 
최규엽


서울시의 ‘청년활동 지원 사업’을 평가한다.

 

 

서울시는 구직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취업지원을 위해 1년 이상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미취업 청년 3000명에게 이른바 “청년수당” 월 50만원을 최대 6개월 동안 지급한다는 “청년활동 지원 사업” 시책을 발표했는데 발표 2주 만에 630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청년수당'은 서울시가 정기 소득이 없는 미취업자이면서 사회활동 의지를 갖춘 만 19~39세 미취업 청년 3000명에게 최장 6개월간 교육비와 교통비, 식비 등 월 50만원의 활동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쉽게 이해를 하자면 청년들의 취업지원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정부 측 주무관서인 복지부는 이의 시행을 반대하고 있어 이 정책의 실행여부는 아직은 미지수다.
서울시가 이러한 시책을 시행하려는 것은 현재 우리사회가 당면한 청년실업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증좌로 시책의 정당성이나 합리성을 따지기 이전에 그 발상에 우선 성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청년실업 문제는 국가의 현재는 물론 미래를 위하여 마땅한 해소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만큼 가능한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하는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럴 만큼 지금 우리 사회는 청년 실업해소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만큼 심각하고도 긴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냉정을 찾아 이를 살펴보면 이러한 정책이 과연 온당한가에는 의문이 든다. 물론 그 시행에 일정한 기준을 두겠지만 어떻든 무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라 보편 가치관으로 수긍이 어렵고 그 시책의 성공적 결과에 대한 기대도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색을 하고 반대를 하는 이유도 그런 점에서 이해가 된다.

 


국가의 모든 정책의 수립은 그것의 시행으로 이뤄낼 수 있는 공익적 성과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과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국가정책 시행은 예산이 수반되고 그것은 모두 국민들의 부담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목표는 공익성에 두고 있지만 그 성과가 추상적인 사업은 정부의 정책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특별한 사안에 따른 불가피한 시행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글자 그대로 특별한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
이런 유형, 즉 목표치가 불분명하거나 성과가 추상적인 정책 사업은 대개 인기영합적인 사업들이 많다. 선거를 앞두거나 그러한 공약으로 권력을 쟁취한 세력들에 의해 시행되는 경우가 그것으로 결과는 하나같이 공익성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국고 낭비 질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정책시행 과오는 특히 복지정책에서 많이 보인다. 정책의 특성상 국민들에게 기대치를 심어주게 됨으로 그 정책 시행주체에 대한 지지로 연결될 수 있어 선거를 앞둔 국가 권력자들이 선호하고 그래서 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시의 ‘청년수당 장첵’도 그런 범주에 두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확고하게 ‘아니다’라고 부인하기도 어렵다.
우선 이 정책이 가진 외관(外觀)이 그렇다. 정책의 모양도 그런가 하면 시기도 의심을 가질만한 하다. 더욱 짙은 혐의는 그 대상이 국민 구성에서 가장 비판적이라 할 수 있는 청년층인데서 찾을 수 있다. 필자의 과민함일지 모르지만 이들 정책 대상 세대는 감정이입(感情移入)이 풍부하고 그래서 타 세대에 비해 사회 여론 조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권력을 지향하는 세력은 이런 세대의 동향에 민감하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이른바 ‘청년수당’을 어떻게 보는가? 지금까지의 논조를 볼 때 필자는 이 정책을 반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으나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이를 지지한다. 그런 정책이 반갑고 기대를 가져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사회가 당면한 상황으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현상극복을 위한 국가적 대책을 촉구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비판적 부언(附言)을 단 것은 정책의 행태나 시기를 감안할 때 오해의 소지가 있고 그래서 모처럼 마련된 요긴한 정책이 무력화 될까 우려되는데 따른 당부를 더하고자 함이다. 솔직히 이 정책은 인기 영합적이라 오해할만한 소지가 있다. 포퓰리즘 냄새가 짙고 그래서 일반 다중(多衆)의 비판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책의 행태와 시기 특히 그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시행주체가 누구인가는 의혹을 둘만한 충분한 요건이 된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시행되어야 한다. 현재의 청년실업에 대한 대책은 중요한 과제이므로 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시점 등을 두고 오해를 이야기 하지만 이는 ‘나무는 보면서 숲을 못 보는 격이다’ 청년실업 문제의 방안강구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긴급하고도 긴요한 국가적 현안이 아닌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여(與)든 야(野)든 정치권은 말할 것 없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열외(列外)가 되지 않아야 한다.
비교를 위한 접근이 논쟁 사유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정책으로 소요되는 예산은 그것의 효용성이나 실용성에 가치를 둘 수 있다. 예정된 총 소요 예산(90억원)은 국회의원들의 예산에 비교할 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크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잡비 예산에 비하여도 작은 금액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는 국가위기 극복의 한 일환에서 조명되어야 할 만큼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내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로 정치권은 활발한 정책 대결모습을 보일 것이고 따라서 권력 지향세력에 의한 무분별한 포퓰리즘 정책들이 남발할 것이다. 그들의 공약 중에서 아마 청년 실업해소는 중요한 공약이 될 것이 분명하고 그 비중도 높을 것이므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이 정책은 선제적이라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작년(2015년)부터 준비하여 일 년 여에 이르는 시간에 걸쳐 검토되어 그 내용과 방향 등이 상당 수준의 과학적 결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므로 임기응변적으로 남발되는 다른 이들의 정책과는 차별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견(豫見)컨데, 내년 정치판도에서 청년실업 문제는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고 따라서 정치권은 중요한 과제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정책 주체인 서울시 당국자에게 당부한다. 그대들은 당면한 시대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목표를 향해 진군하기 바란다. 결과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어려운 사안이고 비판에 더해 반대조차 심한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것을 이해하는 국민들이 있음을 기억하여 용기를 가져주기 바란다. 진정한 애국자는 국가가 위기를 만났을 때 목숨조차 바친다는 각오로 임하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소신에 따라 최선을 다하라. 심각한 청년실업 사태인 지금 상황에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위대하고 성스럽기조차 하다. 진정한 나라사랑 모습은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임무를 담당하는 것에서 빛을 발한다.(♣2016.7.24.)

 

 


장제모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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