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불편러의 투표참관기

제도의 공정하고 실효성 있는 구현에 대한 고찰 




사실 민주주의에 걸맞는 시민의 자세라는 건 매우 까다롭고 예민하고 피곤하다. 대개 사람들은 문제가 된다고 지적하는 사안에 깊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아니라고 넘기면 문제가 아닌, 아무도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쓰는 문제를 굳이 (심지어 실익도 없어보이는데) 꺼내는 사람을 보면 사실 짜증부터 솟구친다. 심지어 얼핏 듣기에도 그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으면 생각하느라 머리도 아프고 그냥 꼴뵈기 싫고 외면하고만 싶어진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고 해도, 그 말을 듣고 원래 하던대로 안하고 쓸데없이 움직였다가 괜히 뭐 잘못되면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까봐 겁부터 난다. 그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그 맞는지를 따져보자고 누군가 질문받는 일 자체는 정말 귀찮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마인드는 뒤가 구리고 당당하게 공개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는 밀실 정치 세력들에겐 필수적이다. 누가 알려달라고 물어보고 달려들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만큼 기득권 세력을 위협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일 제대로 하기 싫어하고 타성에 젖은 조직일수록 그 자신을 건강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게 비판하는 일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이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정당화하면서 '지적하는 당신이 틀렸다'며 힘과 권력으로 누르려는 고압적인 리액션을 당연하게 취한다. 결국, 이런 사고의 경직성과 문제회피적 태도, 권위주의의 일상화가 바로 비리와 부패가 판치고 종국에는 폭력으로 점철된 독재 체제를 만들어내는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라 하겠다. 


그런데 소위 민주 국가가 건설되었다는 이승만 정권에서 박정희 정권, 그리고 그런 독재정권들을 추억하며 당선된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는 위에서 하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의심하지도 않고 그냥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해온 사람들이 다수인 참 부끄럽고 안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이 사회의 전반에는 정당한 질문에는 부담을 느끼고 바른 말과 바른 행동에는 스트레스 받으니 자제하라는 태도가 곳곳에 만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거권 있는 민주시민으로서 자존감이라곤 눈꼽만큼도 가지기 힘든 적폐 중의 적폐라고 할 수 있다.


이번 5월 9일 대선은 무엇보다도 필자에게 이런 적폐가 청산되길 기대하게 만든 최초의 선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년이 넘도록 끈질기게 행동을 이어가면서 결국 탄핵을 이루어낸 대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난생 처음 쪽팔린 과거를 벗어던지고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미래에 대해 한줄기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선거가 진행되는 첫걸음인 투표소에서부터 여전히 멀었구나, 굳어진 사고는 쉽게 바뀌지 않겠다는 현실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투표용지 잘못 나왔다, 대리투표 적발되었다, 이런 뉴스는 사실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고 불거지는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이다. 특히 바로 직전인 박근혜 정권은 마지막까지도 부정선거 의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어째서일까? 실제 이 부정선거가 진짜였는지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전국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선거일에 투표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라는 것, 권력 투쟁의 장이자 감시와 비판이 역시 날카롭게 세워져야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이 거의 공유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투표 참관인 제도가 있어도 허울 좋은 껍데기 마냥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투표참관인제도는 투표과정에 이해당사자들을 참여시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의 교부상황 등 투표과정을 지켜보면서 법에 위반되는 사실이 있으면 이의를 제기하고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다. 즉, 선거에서 가장 긴장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는 바로 정당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역으로 이용하며 '정당'별로 투표참관인을 선정하고 이들로 하여금 선거를 개시하는 시점부터 개표되는 시점까지 투표함 바꿔치기나 유권자 조작 등 공정한 선거를 위협하는 모든 시도로부터 감시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역할을 맡게 하는 것이다. 즉, 모든 선거에서 부정선거 의혹의 가장 일차적인 책임은 투표소 내 투표참관인에게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제도가 제대로만 이루어졌어도 부정선거 의혹으로 쓸데없는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건 자명하다.


그러나 필자가 참여한 투표참관인은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투표소 나가는 방향 즈음에 앉아서 투표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투표참관인의 역할이 "1. 선거인 본인여부 확인 과정 참관, 2. 투표용지 교부 상황과 투표 상황 참관, 3. 투표 간섭 또는 부정투표, 그 밖에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는 사실 발견 시 투표관리관에게 이의제기 및 시정요구, 4. 투표소 안에서 사고발생 시 그 투표상황 촬영, 5. 임시기표소 사용 시 투표 참관" 이라는 점이 뻔히 적혀진 브로셔를 배부하고도 투표관리인에게 이 내용을 묻자 돌아온 답변은 투표 참관인은 배정된 자리를 일단 지키고 앉아있는 것이며 의심이 될때나 가서 수시로 지켜보라는 내용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 유권자마저 필자에게 시끄럽다고 투표참관이나 하라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투표참관인 제도가 무엇이고 뭘 하는지에 대해 유권자들조차도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걸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필자에게 있어 이번 대선은 특별하고 소중한 의미가 다른 어떤 때보다도 남달랐으며 그 만큼 투표의 공정성에 대해 투표참관인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느꼈다. 이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를 달 수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선거과정의 모든 단계를 의심을 하고 그걸 푸는 역할이 필자가 투표참관인으로서 여기 온 이유가 아니냐고 말하고 투표용지와 본인 여부 확인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 20분이 흘렀을까.. 투표 관리인은 결국 필자를 불러내서 서 계시는 걸 보는게 불편하기도 하고 직원들이 일하는 걸 지켜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심리적 압박을 느껴서 안하던 실수도 할지 모르니 자리로 돌아가라고 10여 분이 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그럼 다른 참관인들이 이런 역할을 같이 해야될 게 아니냐고, 근데 아무도 이런 합리적인 의심을 하지 않고 공무원들 힘들다 소리만 하며 필자를 설득하려 들고, 심지어 그 의심하는 일을 하라고 선관위에서 돈받고 투표소 와있는 거 아니냐고, 다른 분들에게 이 활동이 최소한 정당하다는 걸 교육시켜야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해도 그저 똑같은 말이 계속 반복될 뿐이었다. 결국 필자는 자리에 돌아와 우리는 무척 공정하고 원칙적으로 선거를 진행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4시간이 넘는 남은 시간 동안 그저 멍청하게 참관인 석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필자가 어떻게 보일지 뻔히 알고 있다. 그 시간 금동초 투표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필자는 쓸데없는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프로 불편러도 이런 프로불편러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오히려 그렇게 건의사항을 덮으려는 투표관리인의 태도가 적폐 중의 적폐가 아닐까?


사실 우리 사회에 이런 무책임과 게으른 사고가 도처에 널려있다. 예를 들면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세월호에 대해서 누구 한 명이라도 이 배는 위험하다고, 출항하면 대참사가 일어날 거라고 걱정을 안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있었다 해도 그런 '불편한 사실'을 공론화는 커녕 아무도 귀기울여 듣지 않았고 결국 300여명이 넘는 희생자가 세상을 떠나 유족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아직까지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현재형 사건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사실 특별한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저 제도가 제대로 실행만 되어도 예상치 못한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공공사회에서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대통령이 누가 되도 딱히 큰 희망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박새솜



[장제모칼럼] 마을신문을 이야기 하다





언제부터인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동네마다 마을신문이 있다 할 정도로 마을신문 풍년이다. 좋은 현상이다. 마을에 신문이 있다는 것은 다양한 정보의 수요 공급을 통해 그 마을의 역동성을 기할 수 있다. 마을신문은 그 곳의 밀집된 정보들이 망라된, 마을의 소식들 곧 정보의 생산 장이자 교류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운영자의 능력에 따라 생활의 방편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으므로 일자리 창출에 더하여 마을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더불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마침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정부에서도 마을공동체 사업 일환에서 공모 등의 방법으로 ‘마을 미디어’ 확대 정책이 시행되고 있어 주민들에 의한 마을신문 등 미디어의 창설과 운영을 자극하고 있는 것도 발전 동력으로 볼 수 있다. 


 마을신문이라 해서 과소평가 하는 것은 경솔한 처사이다. 기사 량 등 신문으로서 규모가 작을 뿐 최소한 신문이 가져야 할 것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의 역할은 정보의 생산과 공급인 것은 마을신문들도 또한 존재 이유다 다만 정보의 수요 공급이 한정된 대상과 공간이라는 점이 대형 신문을 비롯한 일반 신문들과 차이일 뿐이다. 이러한 마을 신문의 특성은 그러나 장점이 될 수 있다. 특정지역이 무대이고 그 공간 즉 고정된 독자들이 정보 수요자라는 점에서 신문에 대한 집중도는 오히려 마을신문이 더 높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신문의 기능을 비판자적 역할에서 찾는다. 신문의 역사가 시작된 것도 이러한 동기에서 찾을 수 있고 그래서 일찍이 신문을 ‘사회의 목탁’이니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들이 회자되었다. 이기주의가 속성인 인간들의 생활 공동체에서는 비판이 필요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들을 경시 또는 외면하면 공동체적 질서가 교란될 수 있어 이를 예방 또는 확대 방지가 필요한데 그것을 신문의 임무로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역할을 방송 등 다른 매체들도 담당하고 있지만 신문(종이신문)이 그 원조인 것이 곧 신문이 미디어의 상징이자 중심으로 이해되는 이유 일게다. 이러한 공식은 인터넷 등 ‘에스엔에스(SNS)’가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에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마을신문도 신문인만큼 이러한 전통적이자 고유한 기능인 비판은 외면 될 수 없다. 작던 크던 정보의 생산과 보급이 신문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정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사람 사는 이야기 즉 인간사들이 소재다. 사유(思惟)하는 인간들의 삶이니 수많은 사연들이 얽히고설켜 다양성의 집대성인 그 곳에 비판의 수요는 매일같이 발생하고 있지 않겠는가? 

비판이 없는 신문은 죽은 신문이다. 이는 곧 짠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신문들은 비판적 기사가 독자를 부르는 요인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의 보편성은 정의에 기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문들은 논단이나 칼럼과 같은 비판이 주조가 되는 편집을 선호한다. 그렇듯 비판의 질과 양이 신문의 외형(外形)이 되는 것이 신문의 역사이고 전통이다. 


그런데, 마을 신문도 이런 유형의 편집이어야 하는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마을신문은 이런 보편성에 함몰되지 않는, 즉 일반신문과는 달라야 한다. 거북한 이야기 보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고, 부정성 보다는 긍정성이 많은 신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물론 비판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록 거북하고 부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이라면 기사화는 당연하다. 비판은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동기로 작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굳이 비판적 접근이 요구되지 않는 경우인데도 비판의 강조는 바람직하지 않고, 객관성이 미흡한 비판적 구성은 하지 말야야 한다. 마을신문은 이런 면에 취약하다.

마을신문이라 하여 신문의 보편 형식구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마을신문이 형식을 지키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그 구성에 있어 일반신문과는 차별되는 편집 형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마을신문은 마을신문 다운 구성이 되어야 한다. 어떤 구성이 마을신문 다운 것인가는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자.


재차 말하지만, 마을신문이라 하여 추구하는 가치가 일반신문과 다르거나 차이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부터라도 마을신문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따로 두어 보자는 제안을 하고자 함이다. 신문이 가지는 통념적 가치에 함몰되지 말고 새로운 가치의 생성 즉 시대적 변화에 순응하는, 새로운 마을의 가치를 함께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분명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마을신문은 일반신문을 넘을 수는 없다. 노력하고 노력하여 일반신문에 버금 될 모양을 갖췄다면 이제부터는 일반신문이지 더 이상 마을신문이 아니다. 마을신문이라는 이름의 구속을 거절하지 않는, 소박함의 구성이 마을신문의 본질이어야 한다. 지향해야 할 가치가 일반 신문과는 다른, 마을 신문만이 가지는 형식구조 즉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말이다. 어떤 가치를 창출 할까는 운영당사자들이 할 일이다.

마을이라는 단위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그 규모의 차이기 있겠지만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한다. 도시에서 이웃이란 그 경계가 모호하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를 수 있는 것이 오늘의 도시 현상인 것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도시에는 이웃으로 이해해야 하는 공동체들을 말하는데 크게는 기초 자치구 작게는 행정 동 단위가 그것이라 본다. 

필자가 거주하는 금천구에도 대여섯 정도의 마을신문이 있다. 규모도 비슷하고 편집 방향등도 비슷한 것 같으나 운영 모습은 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경영의 형태와 운영자의 구성을 볼 때 그렇다. 그런데 분명한 공통성이 보인다. 하나 같이 열악한 재정상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이 어려운 것은 현재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대개의 마을신문의 현실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추정 밖에 있는 것도 있겠지만 필자가 이해하는,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마을신문은 다 그런 것 같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심히 신문을 만들고 있는 운영자들이 대견함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마을신문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중요한 수단이므로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임무는 우선 운영 당사자들이 담당해야 한다. 그들 스스로 택한 길이고 그것은 자신의 신념의 소산이라 이해하기 때문이다. 잘 해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도 해야 하지만 전략도 필요하다. 목적 달성은 노력과 전략이 아우를 때 달성확률이 높다. 앞에서 제기한 마을신문만의 가치를 고민하는 것은 전략 수립의 포인트가 된다.

마을신문이 있는 공동체 구성원인 주민들도 활성화에 동참해야 한다. 마을 공동체의 공동선을 이뤄내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공동선은 민주주의에 의해 구할 수 있는데 마을신문은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된다. 참여가 도움이다. 곧 독자가 되는 것이다.  


행정관청도 마을신문 활성화를 도와야 한다. 정책과제이자 목표인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이 되기 때문이다. 현 제도에서 방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행을 위한 이른바 ‘주민참여’를 내세우는 각 행정사무에 마을신문을 돕는 장치를 두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공무원의 몫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성실한 복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마을신문만의 가치를 가지는 신문이 우리 고장인 금천구에서 가장 먼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2017.04.23.)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함께 아이 키워요

 [동아리탐방- 아이러브쿡] 요리 수업 할 사람 여기 붙어라~!




매주 토요일 금천구 독산4동 주민센터 2층 너나들이방은 아침부터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거기에 더해 맛있는 음식 냄새까지 솔~솔 풍긴다.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은 신발을 어림짐작으로 세어 봐도 30~40여명의 사람들이 있어 보인다.

도대체 그 공간에서는 무슨 벌어지고 있는 것 일까? 

누가, 무엇을, 왜 하는 것일까? 호기심을 품고, 조용한 도서관의 한 공간을 흡사 파티의 공간으로 매주 변화시킨 주인공들을 찾아보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금천구의 엄마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동아리 ‘아이러브쿡’의 아이들과 엄마들!

이번 금천인 동아리탐방에서는 매주 독산4동에서 ‘아이러브쿡’ 동아리를 이끌고 있는 백재원, 김민정 공동대표를 만나봤다.


Q.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아이러브쿡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백재원이고 6살, 8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나 역시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민정이며 8살 아이의 엄마다.


Q. 아이러브쿡은 어떤 동아리인가?

A.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꾸려가는 요리 및 과학, 체육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하는 동아리이다. 딱 부러지게 ‘어떤 동아리다’라고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들의 오감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발달시킬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활동을 매주 토요일 독산4동 주민센터에서 오전 10시 반에 시작해 3~4시간 한다. 


Q. 아이러브쿡의 탄생?

A. 원래 엄마들끼리는 아는 사이였다. 1년 전 그 엄마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 공간이 없다는 점에 모두들 아쉬워했고, 날씨에 영향 받지 않는 안정된 공간에서 아이들과 무언가를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에 의기투합해 아이러브쿡을 만들었다. 다행히 독산4동 주민센터 너나들이 공간에서 요리 및 수업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서 판을 벌려봤다. 엄마인 우리가 제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아이들 오감 발달에 도움이 되는 요리 수업 위주로 계획을 짜고 가능한 많은 아이들과 엄마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토요일 오전으로 시간대를 정했다. 


Q. 아이러브쿡은 동아리 이름 때문에 요리활동 위주일 것 같다. 다른 활동도 많이 하나?

A. 사실 동아리를 만들었을 때 요리 활동을 위주로 했다. 과자 집, 만두 만들기 등등... 하지만 매회 수업이 진행될수록 점점 소재나 수업 내용이 확장되어 가고 있다. 단순히 요리에 그치는 것이 아닌 요리를 통해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도하고, 요리를 통해 과학 등 다른 영역을 배워보기도 한다. 또 평소에 집에서는 감히 엄두를 못 냈던 활동들, 이를테면 국수비 만들어 뿌려보기/딸기 손으로 으깨보기/대왕김밥 만들어보기 등 한계를 정하지 않고 수업을 이끌고 있다. 때로는 몸 놀이, 아이들이 직접 상인이 되어 물건을 팔아보는 벼룩시장체험 등 ‘아이러브쿡’의 ‘쿡’에서 벗어난 활동들도 자주 진행한다. 


Q. 수업의  계획과 진행은?

A. 현재 아이러브쿡 소속 엄마들이 21명이다. 그 엄마들이 2인1조로 교대로 수업의 기획 및 준비를 다하고 나머지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 수업에 참여하며 도우미 역할을 한다. 아이디어는 대체로 생활에서 얻는 편이고 주제가 정해지면 자연스레 엄마들끼리 조언을 주고받아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 시작에는 그 날 주제에 관련된 책을 먼저 함께 읽고 탐색의 시간을 갖은 후 본격적으로 요리, 과학 등의 활동을 한다. 주로 5세~8세 아이들이 수업을 들으며 평균 40여명이 참여한다.


Q. 아이러브쿡 수업에 참여하고 싶은 아동과 학부모가 많다고 들었다. 언제든지 수강신청 가능한가?

A. 사실 공간의 한계 때문에 지금의 인원 이상을 받기는 힘들다. 하지만 기존 인원의 결원이 생겼을 때 SNS 공지를 통해 아이러브쿡 멤버나 당일 수강생을 수시로 모집한다.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어 아쉽기도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활동해 준 동아리 멤버들께 감사하다. 

수강료는 한 달에 한 번 내는 공간 사용비 2만원에 매 주 수업재료비를 인원수에 맞게 나눈다. 매 수업 때 마다 평균 2~3천원이라 부담이 없다. 


Q.  아이들과 학부모의 반응은?

A. 아이들이 토요일은 ‘당연히 재밌게 놀면서 수업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온다. 함께 놀 수 있는 친구, 언니, 오빠, 형들이 많아서 좋아하기도 하고 직접 몸으로 체험한다는 것에 기대하고 즐거워한다. 학부모들은 처음에는 많은 아이들로 인해 정신없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먼저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학부모들도 점차 자기의 역할을 갖게 되니 더 몰입하게 됐다. 더불어 엄마들끼리의 공유와 수다가 한 주간 풀린 스트레스도 풀게 해 줘 힐링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Q.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보람은?A. 즐거움 자체가 보람이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종종 아이러브쿡의 활동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하는 인사를 받으면 더 없이 뿌듯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Q. 반면 애로사항은?

A. 동아리를 시작한 초반에는 역할분담이 불분명해서 어려운 점이 조금 있었지만, 애초에 지인들과 시작된 모임이었기에 빠른 시간 내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새로 들어 온 동아리 멤버들은 초반에 많은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당혹감과 낯설음에 조금 어색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 분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작은 애로사항이라면 애로사항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당장 4월 29일 진행 될 ‘사생대회’가 있다. 흔히들 사생대회라 하면 일부만 상을 받는데 우리는 참가한 모든 아이들이 특별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상장과 메달을 만들고 있다. 그 이후의 계획은 수업을 진행하면서 상황에 맞게 세울 것이다.


Q. 지난 1년을 되돌아 봤을 때 두 대표의 변화는?

A. 아이러브쿡을 진행하면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즐거울까,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수없이 하게 된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동아리멤버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받는 과정에서 전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된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초반 수업을 준비했을 때의 부담감은 어느덧 엄마들과의 역할 분담으로 없어지고 함께 아이를 키우는 같은 입장에서의 공감대가 형성돼 든든하다. 


Q. 아이러브쿡의 아이들이 점차 자란다. 그 아이들의 성장에 따른 계획은?

A. 맞다. 일 년 전만해도 초등학생이 없었다. 이 아이들이 커 갈수록 무언가를 ‘조물조물’ 만드는 것이 재미없게 느껴질 수 도 있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뭔가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을까싶다. 예를 들어 동생반/형님반을 나눠 따로 수업을 하는 것이다. 형님반의 경우 도서관이라는 장점을 활용해서 독서 수업 같은 다른 수업을 진행한다거나 스스로 한 끼 정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주제로 수업을 하는 것 등 그 때의 상황에 맞게 정하면 된다. 아이러브쿡 활동을 하면서 때론 예상외의 상황으로 당황스러운 일이 참 많기도 했지만 매번 우리 멤버들의 기지와 재치로 잘 헤쳐 나갔다. 앞으로도 잘 해내리라 믿기 때문에 당장 큰 계획은 안 세울 것이다.(웃음)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한 가정만이 아닌 마을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을 전체의 노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러브쿡의 활동처럼 함께 공동육아를 실현하는 것이 과거에 비해 달라진  요즘의 세태에 좋은 귀감이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더불어 부모도 성장하는 ‘아이러브 쿡’의 1주년을 축하하고 앞으로 더 멋진 행보를 기대해본다.


김혜희

gcinnews@gmail.com

금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금천센터)가 제1회 한울타리 전시회를 금천구청 로비에서 개최한다. '한울타리'는 금천센터 내 장애인 자조모임으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전파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면 그 일환으로 장애인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사진, 글을 전시하고 있다.



장애인의 날 


미녀와 야수



동화 미녀와 야수를 아시나요?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미녀와 야수와 같아요. 사람들은 제가 마치 야수인 것처럼 제 모습을 무서워해요. 어떤 사람은 욕을 하고, 어떤 사람은 이상한 눈으로 절 쳐다봐요. 엄마가 아이의 눈을 가리거나 딴 데로 데리고 갈 때도 종종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야수가 아니에요. 단지 저는 생김새가 다를 뿐, 같은 사람이에요. 마치 마법에 걸린 왕자처럼 말이죠.


저는 박동수입니다. 저는 뇌성마비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제 손은 다른 사람보다 굽어있고, 걷는 게 어려워 전동휠체어를 탑니다. 겉보기엔 달라보일지 몰라도 저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사람입니다.

2006년까지 지냈던 시설에서는 저를 야수로 취급했습니다. 그 곳에서는 제가 외출하고 싶어도, 식사를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립생활을 시작한 날, 계절의 변화를 직접 보는 것, , 비를 맞는 것도 좋았고, 밤에 하는 드라마도 볼 수 있어 모두 좋았습니다. 시설 밖에 사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건지 처음 알았습니다. 아마 남들은 이럴 거예요. 그게 뭐가 행복해? 저는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어요. 당신은 큰 행복에 눈 멀어 작은 행복을 보지 못한다고. 그 후 학교도 다니고 행복한 날이 계속 되었지요.


하지만 아직도 저를 야수로 바라볼 때가 많아요. 하루는 길을 건너는데 한 아이가 절 보곤 아빠에게 아빠, 저 사람 사람 맞아?”하며 말했습니다. 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난 분명히 사람이라고. 하지만 일정이 빠듯하여 가야만 했고, 언어장애도 있습니다. 결국 혼자 화를 삭이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아마 평소 장애인을 대할 기회가 없어서일 겁니다. 예전 시설에 있을 때 안면화상을 입은 형이 있었습니다. 처음 봤을 땐 많이 무서웠지만 같이 대화하고 놀다보니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형의 인격만 보이기 시작했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장애인이 만나서 대화도 하고 놀다보면 겉모습은 자연스럽게 개의치 않게 된다는 것이죠. 저는 야수가 아닙니다.


저는 박동수입니다.


* 본 글은  한울타리 전시회에 전시중인 박동수 씨의 글입니다. 동수씨는 금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흥동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품앗이

마을에서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는 생활체험기-5



  동네백수(동네의 백가지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품앗이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이 모든사람들에게도 통용되는 상식일테지만. 일손을 빌릴 때. 한 번 일을 빌려주면 서로 오고가는 관계가 생긴다.  그러나 한 번 간 내 노동의 증여가 보답이 안 될 때 일손을 요청해도 거절한다. 내 성의와 노동의 증여를 일회용으로 쓰는 사람에 대하여는 거절로 응답한다, 신뢰의 관계와 연속적인 관계는 생기지 않게 된다. 서로간의 품의 증여로 인한 신뢰가 생기면 사정을 알고 새벽까지 일해주기도 한다. 무슨 마을일을 대학동아리 활동을 하는 듯이 모여서 새벽까지 일하기도 한다. 40대 50대의 어른들이 이런 열정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다음날이면 이루어져있다. 매일 뭉쳐지는 피로가 있음에도 분치기로 서로가 급한 마음에 뚝딱 일을 해낸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니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좀더 기발하게 일을 해낼 수 있다. 누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에 누구는 재봉을 하고 누구는 음식을 만들고 누구는 목공을 하게 된다. 자기의 재능을 십분발휘하기도 하며 한때는 꿈이었을 일도 해볼 수 있다. 내 재능이 프로같지 않아도 마음 편하게 거들 수 있는 게 동네품앗이이다. 마을일이란 게 누구 한사람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기에 협동도 잘 되고 지나가는 일손을 청할 수 있고 알아서 간식을 챙겨와 마을일꾼들을 걷어먹이는 사람들도 생긴다. 자주 얼굴을 보는 사람들은 사정을 뻔히 알기에 걱정을 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보탬을 주고자 한다. 

  내가 들인 시간과 품만큼, 사람과의 관계에 얼마나 마음을 썻는지에 따라서 품앗이는 나에게 돌아온다. 우리가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일도 덜컥 시작하는 것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이다. 믿는 구석이란 게 결국 자기가 쌓은 신뢰관계이다. 그리고 일에 대한 명분이 있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고 명분있는 일을 계속하게 되면 기적이 일어난다.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4개월 집회운영비용이 1억 적자라는 소식에 나흘만에 8억8천만이 모금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며칠 전 벚꽃축제를 준비하면서 지인들 모두의 손이 모였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판에 칠판페인트를 밤까지 칠하는 지인, 새벽 꽃시장에 나가는 지인, 목공으로 꽃수레를 만드는 지인들. 이렇게 모인 품들이 모여서 벚꽃축제는 다양하게 빛났다. 금천구의 가장 큰 잔치라 할 수 있는 벚꽃축제가 여러 단위에서 준비되고 각 단위에서는 관계로 얽혀진 사람들이 각자의 품을 내서 축제를 치러낸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듯이 사람의 신뢰도 아름답게 피어나고 축제를 치러내면서 피로는 남을지라도 서로의 관계는 만발하게 된다. 

 하나의 축제가 끝나면 또다른 행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추모제와 어린이날 큰잔치 이다. 매월 행사의 연속임에도 우리는 또 해낼 것이다. 우리라는 관계가 있고 우리 마을에 대한  빗물같은 정이 있고 다양한 품들이 모일 것이기 때문이다. 돈버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이렇게 일하는가?  마을에서 내 존재를 필요로 하고 내 지인들이 꼬시기도 하고 재미있으니까. 


독산동 주민 김현미



소피아의 탄자니아 통신-16

 탄자니아의 행주 대첩



 헤헤(Hehe) 부족의 추장인 음크와와(Mkwawa)를 만나러 온 길이다. 유리 상자에 잘 보관된 사람의 두개골이 나를 맞는다.  이링가에서 만난 나의 동료 노엘 무에고하는 점심을 먹은 후, 나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음크와와는 1855년 이링가 지역의 루호타에서 무니굼바 족장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자, 음크와와는 형과의 싸움에서 이겨 권력을 승계한다. 이 시기는 노예제가 종식되고,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착취할 새로운 방법을 찾던 때로, 탄자니아는 독일의 식민지배 아래에 있었다. 족장이 된 음크와와는 바가모요에서 타보라에 이르는 교역로에서 통행세를 받았고, 독일의 미움을 사게 된다. 에밀 폰 잘레스키가 아스카리(아프리카인으로 구성된 용병)를 이끌고 왔다. 그들은 소총과 중화기로 무장하고, 보이는 즉시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살해했다. 전쟁은 불가피했다. 

  음크와와는 훌륭한 지휘관일 뿐만 아니라 지도자였다. 그가 이끌던 병력은 수천에 달했고, 방패와 창, 약간의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수한 첩보 시스템을 갖추고, 독창적인 전투계획을 수립했다. 이 전투에서 독일군은 처참히 패배했고, 에밀 폰 잘레스키도 사망했다. 후에 이 전투는 ‘루갈로 전투’라고 불렸는데, 아프리카에 주둔한 독일군에게 역사상 최악의 패배였다. 

  그로부터 삼년 후, 프라이헤르 폰 쉴러와 ‘이링가 전투’를 치르게 된다. 이때 아녀자들도 치마에 돌을 담아 와 싸웠을 정도로 헤헤족은 용감했다고 전해진다. 행주대첩에서 전투 중 화살이 떨어지자 부녀자들도 치마에 돌을 날라 와 싸웠던 얘기와 흡사해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소총과 기관총을 당해 내지 못하고 전쟁에서 지고 만다. 

  그 후 음크와와는 게릴라전을 펼치며 저항했으나,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에서 자살했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그 후 독일인들은 음크와와의 머리를 잘라 독일로 가져갔는데,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후에야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살 방법에 있어서는 노엘의 이야기와 찾아본 자료의 내용이 다르다. 노엘은 턱에서 얼굴을 관통해 두개골까지 칼로 찔러 자살했다고 하는데, 자료에는 관자놀이를 총으로 쏘아 자살했다고 되어있다. 후자가 맞지 않을까 싶다.

   그가 살고 있는 박물관은 벽면을 둘러 약간의 역사적인 자료들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을 뿐, 그의 용맹성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은 많지 않다. 그가 독일군에 맞서 싸우며 사용했다는 칼과 창, 방패 등이 있었는데, 방패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옆 전시장엔 독일군들이 사용하던 총들이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무기로만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가 남긴 유물 중 시선을 끈 것은, 그가 독일에 보냈다는 친서다. 그 당시 독일어로 편지를 쓸 정도의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음크와와 외에도 독일군에 저항한 이야기는 많다.    그 중 특히 유명한 이야기는 ‘마지마지(물) 전쟁’이다. 킨지키틸레라는 예언자가 축성한 물을 마시면 총과 칼에 상처입지 않는다고 말하고, 기장 가루를 물에 섞어 이마에 바르거나 뿌려서 조직의 단결과 지도력을 고취시켰다고 한다. 전투 중 독일군이 쏜 총알이 물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남부 탄자니아 마콘데 고원에서 일어난 야오족의 마쳄바는 주택세를 거부하며 토벌대에 대항해 싸웠다. 패배 후 해안지방으로 가라는 명령에 ‘나는 내 땅의 술탄이요. 당신 역시 당신 땅의 술탄이요.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니 나를 데려갈 만큼 강하다면 와서 날 데려가시오’라는 답을 보낼 정도로 자존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냠웨지족의 추장인 이시케는 타보라에서 통행세를 거둬 독일과 대립했는데, 폰 프린스중위가 이끄는 독일군에 패배하고, 포로가 되기보다 자살을 택했다.

  통일된 나라가 없었기에 지엽적이었으며, 부족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는 한계는 있었지만 유럽인들이 생각하던 아프리카인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역할을 했음에 틀림이 없다. 안타까운 점은 독일인의 용병인 ‘아스카리’들이 아프리카인이었다는 점이다. 형식은 독일과의 싸움이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들끼리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독일이 부족 간의 대립을 이용할 수 있었던 점 역시 단일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아프리카의 비극이었다. 

  아랍이나 영국의 지배도 받았는데, 유독 독일에 대한 저항이 컸는지 궁금했다. 독일인은 현지인을 무척 가혹하게 다뤘다고 한다. 독일 용병들이 아녀자들을 겁탈하는가 하면, 작은 일로도 공개 태형을 하거나, 심지어 무자비하게 죽였단다. 지나치게 주택세를 부과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강기롱가 바위에 올랐다. 이링가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강기롱가는 헤헤 부족의 언어로, ‘말하는 돌’이란 의미인데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음크와와와 관련된 것이다. 그가 이링가에서 게릴라전을 펼 때 독일인의 이동이나 활동을 파악하던 곳으로, 정찰병들은 중요한 뉴스를 전하기 위해 새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음크와와가 그 당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많은 부분이 노예로 팔려가던 기록으로 메워져 있다. 이제는 비극적인 역사만이 아닌,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키울 수 있는 이런 자료들을 찾고, 발굴해 널리 알린다면 좋을 것이다.

 

4월8일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서울시 지역사회 혁신계획과 협치



<작년 11월27일 ‘참여에서 권한으로’라는 주제로 협치서울시민대회를 열고 시민 1200명과 함께 ‘협치서울선언’을 발표했다.>




최근에 이르러 ‘협치(協治)’라는 단어가 화두(話頭)가 되고 있다. 협치란 ‘공동체 운영을 함에 있어 서로 다른 영역의 구성체(조직, 기관 등)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협조하여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민(民)과 관(官)이 함께 공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그런 것 일게다.

이와 같은 구도는 공익적 결과 도출이라는 점에서 기대할만한 하다. 다른 기구들이 함께 한 목적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이해관계가 있는 공동체들이 한 목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은 갈등 구조를 피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긍정성에 더하여 민주주의의 확대 발전이라는 점은 특히 주목할만하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달성하려는 구조가 아닌가?

사실, 협치의 긍정성은 인류가 공동체성을 가지면서 이해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주의로 그것이 표양하는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불안정하면서 이의 도입은 여러 장애를 만나고 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공무원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부처이기주의가 그 대표적 사례다. 크게는 역할의 차이로 나누어진 기관 등의 헤게모니(hegemony) 다툼이고, 작게는 같은 부서간의 임무 차별에 따른 주체 경쟁으로 이른바 ‘칸막이 행정’이 그런 전형이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 예산 효율성 문제는 물론 인적 자원을 비롯한 국가자원 운영의 난맥상으로 연결되어 국가행정의 수행에 장애로 작용한다. 유의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상태의 지속은 국가를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비정상적인 국가행정 운영은 필연적으로 반 민주주의의 표본인 불평등을 부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협치는 필요하고 더욱이 민주주의를 견고히 하는데 더욱 긴요하다.

협치는 국가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 조직에서만의 과제가 아닌 범사회적 과제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적 구속을 벗을 수 없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간 수많은 정치가와 학자들에 의해 원만한 협치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들이 여러 형태로 제기되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는 아직도 먼 얘기인 것 같다. 우리사회 이디서도 모범 유형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듯 일을 나누는 것이 아직은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는 “지역사회 혁신계획 지원 추진계획”은 주목할 만한 시책이다. 향후 서울시정의 행정지향을 시민과의 협치에 두는 것을 포인트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민관(民官)협치를 통한 행정공유를 시정 방향으로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이 시책의 추진근거와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시는 이미 “서울특별시 민관 협치 활성화를 위한 기본조례(서울시 조례 제6317호. 2016.9.29.)”를 제정하였고, 그 시행 배경을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협치’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시대적 요구”에서 찾고 있다. 즉, ‘행정의 역량만으로는 고령화, 실업, 도시재생, 환경․에너지, 다문화 등 복잡․다기한 도시문제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한데 따른 대안 강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 이해를 하면, 다원적이고 다층 구조인 도시문제 해결을 위해 시정(市政)에 민간이 관여하게 함으로 방안을 강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서울시가 만나고 있는 현재의 도시문제는 관(官) 일변도의 정책시행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일정 영역에 민간이 참여하게 함으로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서울시의 방향설정은 감당할 수 없는 행정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기보다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자 미래지향을 위한 선견적인 발상으로 볼 수 있다. 시책 곳곳에서 당면한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고 대두되는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시민의 참여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협치 관련 정책수립에 ‘시민들의 참여 권한 보장’을 우선으로 내세우는 것은 그러한 면모로 이해한다.

서울시는, “시민의 명목상 참여가 아니라 계획수립과 결정의 권한・영향력이 시민들에게 충분히 주어지는 ‘진정한 시민참여’의 과정을 통해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위해 ‘원활한 정보 소통과 정보 공개’도 하겠다고 한다. 즉 ‘계획수립과 실행에 필요한 행정의 다양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여 시민과 행정이 정보의 격차 없이 계획의 수립・실행을 추진’하고, ‘또한 충분한 공론의 과정(토론회, 포럼, 간담회 등)을 통해 시민들이 의견이나 반론을 제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2017년 지역사회혁신계획 지원 추진계획)

시정(市政)과 관련한 정책수립에 시민참여는 바람직하다. 더욱이 시민과 함께 추진하고자 하는 협치와 관련한 정책의 수립은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의 이 계획은 평가할만하다. 정책수립에서부터 시민의 참여 권한이 확실하게 보장된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울시의 정책은 그러나 필요한 과정이 있다. 시민의 참여보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마련이 그것이다. 시민의 참여보장 주체는 서울시이지만 그 시행주체는 협치의 대상과 직접적인 접촉을 담당하는 기초 자치구인데 대한 구체안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민과의 협치의 구체적 시행은 서울시의 하급기관인 자치구가 맡게 되는데 아직은 시민참여에 적극성이 부족한 제도적 속성을 가진 구도라 제대로의 시행에 회의가 되기 때문이다.

협치를 목표로 하는 서울시의 ‘지역사회 혁신계획’은 시범실시를 위하여 금천구 등 8개 구(관악, 도봉, 동대문, 서대문, 성동, 영등포, 은평)를 대상으로 선정하였고, 해당 구는 담당관을 둔 독립부서를 구성하고 본격 시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과연 서울시가 지향하는 바의 진행, 즉 ‘시민 참여권한의 우선 보장’이 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이 정책 시행의 기초를 마련하는 인적자원의 확보와 조직구성에 대한 신뢰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그 시행의 합리성과 효율성은 그것을 담당하는 조직의 역량에 좌우된다. 따라서 개개 구성원의 능력과 구성원을 아우르는 조직체계가 정책수행에 원만한가를 보아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자치구의 인적구성 방법은 염려가 된다. 다른 구는 정보 부재로 언급의 여지는 없지만 필자의 자치구인 금천구의 경우는 분명 문제를 가지고 있다. 조직 구성에서 서울시가 표방하는 ‘시민참여권한 우선 보장’에 적극적인 동의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를 들면, 금천구는 제도시행을 위한 조직구성에서 아직은 능력자의 인선과 관련한 합리적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있다. 현재에 보이는 제도적 주민참여 조직체의 인선과 조직구성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이야기하기는 구차한 실정이라 보는 것이 그것이다. 새 인재 영입을 위한 객관적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나 완전성 즉 객관성과 공정성을 말하기는 어렵다. 실례(實例)를 들면, 제도적 주민기구의 구성원 선임 때 구청이 보유한, 객관성에 신뢰를 둘 수 없는 자체자료(인재풀)에 의하거나, 기존 구성원에 의한 추천이 항용의 방법이다. 더욱이 추천의 경우는 “끼리끼리 조직 문화”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유치하다. 이런 방법은 분명히 합리적이지 않다. 인터넷 공모와 같은 객관적 방법도 한정적이거나 소극적 운영일 뿐이다. 

시민의 참여를 주조로 하는 협치 지향의 새로운 정책시행이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그것을 수행할 조직구성이 맞갖지 않는다면 그 정책의 성공적 수행은 기대하기 어렵다. 명심해야 한다.

(♣2017.4.11)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책]버려진 계집아이-야야 내딸이야  내가 버린 내 딸이야



사람이라면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 한 ‘인간’으로 성장해 자신의 가족을 형성하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이고 당연한 권리이다.  그런데 이 권리가 박탈당한 아이가 있었다.  부모가 원하는 아들이 아니란 이유로! 가장 기초적인 사회에서 내쳐진 계집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무속 신화 ‘바리데기’를 읽고 나서다.

옛날 불라국에 오구대왕와 길대부인이 있었다. 아들을 원했지만 딸만 여섯을 낳게되고, 시름에 빠진 오구대왕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백일정성과 기도로 남아를 원했지만 결국 일곱번째 딸이 태어났다. 화가 난 오구대왕은 딸의 얼굴도 보지않고 내다버리라고 소리친다. 버린다하여 이름이 바리데기다. 산 속에 버려진 바리는 산신령의 보호로 혼자 고독히 자라나게 된다.  15년이 지난 후 오구대왕은 자식을 버린 죄로 죽을 병에 걸리게 되고, 길대부인은 내다버린 바리를 찾아 나선다. 산속에서 다시 만나게 된 ‘엄마와 딸’은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며 지난 세월을 보듬어 준다. 집으로 돌아온 바리는 면목없어 하는 오구대왕이 저승 땅에 있는 약수물을 마셔야만 살 수 있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길을 떠난다. 천륜을 저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저승길을 자처한 것이다. 혹독한 산 속에서 고독한 마음으로 살아나간 바리에게 부모의 뉘우침과 사랑이 바리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가족을 찾음으로써,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님에 감사하며 자신을 온전히 내놓아야 갈 수 있는 죽음의 길, 그 길에서 바리는 수많은 이들의 아픔과 절규를 보며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온갖 고초와 시련을 넘어 저승 땅 동대산의 동수자를 찾아간다. 본래 동수자는 천상사람으로 죄를 지어 저승에 내려와 삼십 년 동안 약수를 맡아 지키며 인간세상 칠공주를 만나 아들 삼형제를 보아야 죄를 씻고 하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장 약수 물을 구해 아버지를 살리고 싶지만 동수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결혼과 출산을 하여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된다. 죽음의 공간인 저승에서 새로운 생명탄생, 그리고 어린 생명을 길러내는 어머니의 역할은 ‘생명수’를 구하는 바리의 역정 속에서 생명의 가치를 몸소 체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또 하나의 죄 많은 동수자를 끌어안아 구원을 받게 한다.  기나긴 역정 속에서 드디어 손에 넣게 된 약수물(생명수)은 백일정성 기도해야 한 방울을 얻을 수 있었다.  삼백일 정성으로 약수물 세 방울을 얻고 꽃밭의 꽃들을 꺾어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이미 죽은 오구대왕을 살려내면서 여정의 마무리를 짓는다. 

 



바리의 여정이 소위 말하는 ‘효심’으로 볼 수 있으나, 그것은 ‘효심’으로만 견뎌낼 것들이 아니었으리라.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내, 연민을 통한 진정한 ‘성장’이 있었다. 그러하기에 동수자도 오구대왕도 죄를 사하고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그 후 바리는 이승과 저승에서 헤매는 가엾은 영혼을 달래어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게 해주는 죽음을 관장하는 신, ‘만신의 왕의 길’을 걷게 된다.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한 부모를 저버리지 않고 온전히 자식의 의무를 감내하였기에 인간으로의 권리를 되찾게 된 것이며, 생명의 소중함을 몸소 체득하고 깨달았기에 버려진 계집아이에서 ‘만신의 왕’의 권리와 의무까지 행하는 존재로 승격된 것이다. 

바리의 여정은 ‘거저 얻는 것이 없다.’ 많은 말을 쏟아내는 요즘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들의 삶도 있다는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부여 받은 권리와 의무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옹골지고 아름다운 삶이 되어가길 바란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박연진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미 하원의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법안 가결을 보고 



미국이 지난 6일 7일 시리아 알샤이라트 공군기지를 향해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59기로 습격했다. 아사드 시리아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에 대한 보복 차원이라고 했다. 테러는 반군이 저지르지만 공격은 아사드 정권이 받고 있는 기괴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 즐겨 쓰는 술책이다. 반미국가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모든 거짓과 조작을 통해 전쟁과 침략을 국제적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역사적으로 베트남 전쟁의 도화선 통킹만 조작 사건, 이라크 침략의 거짓 근거 대량살상 무기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런 미국의 전략이 이른바 아시아회귀전략과 함께 북한에게도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미 하원이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법안’을 가결했다. 전에도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이라 한 적 있다. 1988년이다. 이유는 일본의 적군파에 도피처를 제공, 버마 아웅산 묘역 폭탄테러사건,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 등의 테러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2008년에 조지 부시가 삭제를 했는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에 따른 행위다. 오바마 정권 들어 북한에 대한 대화와 소통을 거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이 전개되면서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사건, 무기 판매 의혹 등으로 테러 지원국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나왔고, 올 들어 김정남 암살사건 계기로 재지정 소리가 높아지다가 이번에 하원에서 법안이 가결된 것이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요건을 보면 ‘테러조직에 기획·훈련 지원을 했거나, 테러단체나 테러에 직·간접적 금융 지원을 하고 있거나,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다른 형태의 협력’을 하고 있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의 결정적 계기는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의 사망이다. 하지만 김정남의 사망에 대한 진상 규명은 없다. 정치적 공세만 있다. 북이 했다는 주장만 있다. 우선 찍고 사고치고 강대국의 힘으로 싼 똥 뭉개기다. 지금 시리아에서 자행된 폭격의 모습 그대로다. 이런 모습은 아주 전형적인 조폭 양아치들의 수법이기도 하다. 김정남 사망 사건은 테러로 규정되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과 말레이시아의 김정남 사망 사건에 대한 외교적 마무리로 용두사미가 되었다. 김정남 사망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했던 세력들의 결과적 실패다. 그래도 남한 언론과 미국은 그저 주장했기에 기정사실이다. 그 결과가 전쟁임에도 말이다.  


근거가 상실한 사건을 가지고 북을 테러지원국을 재지정하는 미 하원의 모습은 이 법이 테러에 대응한 내용이 아니라 북을 봉쇄 침략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한다. 법안을 발의한 공화당의 테드 포 의원은 ‘북이 지난 2008년 정치적, 외교적 이유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됐지만, 오히려 미 본토에 핵탄두 탑재 미사일을 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질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 법안과 함께 통과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규탄하는 결의안’과 연결시키면 테러와 무관한 사드를 조속히 배치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저지하려는 것이다. 브레드 셔먼 하원 외교위원회 간사는 북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이 미국 본토를 군사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의 실제적 개발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이니 속과 겉이 다른 위선의 법이다. 미국과 북한은 공식적으로 전쟁 중이다. 정전(휴전)은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잠시 쉬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종전을 원한다. 평화협정 요구가 그것이다. 미국과 일본 남한 수구 지배층만 종전을 거부한다. 분단과 증오가 그들의 정치 경제적 이익의 가장 큰 힘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북한은 평화를 미국은 전쟁 또는 그에 준하는 대결 상태를 원한다. 그를 위해 미국은 반미국가에 대한 근거도 없는 거짓으로 국제적 갑질을 한다. 그것이 제국주의 행태다. 


이런 모습에 때한 북한의 입장은 단호하다. 제재조치는 “가뜩이나 긴장한 한반도 정세를 폭발전야에로 몰아가는 대결 책동”이지만 가중되는 제제는 “(이미)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것으로 “동방의 핵 강국으로 우뚝 솟아..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서도 눈부신 성과들을 이룩해” 나가는 북한의 길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본시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권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전제로 새로운 대북 정책의 수립을 공언했다. 하지만 현실은 오바마의 정책의 연장선이다. 하원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법안은 미국 주류 세력의 동북아 회귀 이후 패권체제의 강화라는 큰 그림 속에 이미 그려져 있던 기획의 일부로 보인다. 김정남 사망이 음모적 기획으로 보는 것도 이런 합리적 의심의 결과다. 만약 촛불이 광장을 이루고 그 광장이 박근혜 정권을 탄핵하지 못했다면 미국에 예스만 하는 정권, 태극기와 미국기를 함께 드는 노예들의 상태들을 통해 보면 전쟁이나 전쟁에 근접한 긴장은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트럼프는 “북한은 정말 문제다. 인류 전체의 문제다”며 중국 압박을 통해 북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는다. 남한은 변화시키는 것은 미국의 콧김 하나면 된다는 그들 나름의 현실적 역사적 경험의 발로다. 하지만 북중 관계가 한미관계처럼 종속 의존적이지 않다는 점, 미국의 모습이 제국주의적인 오만이라는 점을 미국은 인식하지 못한다. 하기야 태극기와 미국기를 함께 흔들며 트럼프에 SOS를 치는 남한이고 보면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는 중국의 모습은 이해할 수 없고, 고분고분하지 않는 북한을 인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아, 주권을 가진 나라로 보면 중국이 아니라 너희의 모습이 비정상이다. 그리고 남한아, 북한의 오기가 비정상이 아니라 사드배치 문제 등을 미중에 맡기고, 미국 일본에 마구 퍼주고 불가역적 손해만 보며, 제 동족에게는 아귀요, 국제적으로는 호구인 남한의 지금이 비정상이다. 


자주와 평화와 대화가 안보다. 민주주의가 경제다. 평등이 민생이다. 통일, 그것도 유일하게 평화적 통일만이 남한의 헌법이다. 전쟁과 독점과 차별과 가난을 부추기는 적폐들과의 단호한 분리! 그것이 촛불광장이 보내는 2017년 대선의 명제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칠보공예 특화 공예관 - 반초갤러리를 가다




2016년 6월9일 시흥2동 탑동초등학교 건너편 골목길에 ‘금하칠보 반초갤러리’가 개관식을 가진 바 있다. 당시 칠보공예 특화 전통 공예관이 국내 최초로 설립되는 것에 많은 기대감이 모았다. 

반초갤러리는  박수경 대표가 가문으로 3대째 이어지는 칠보유약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행정자치부 주관 ‘지역 향토명품 육성 공모사업’으로 선정되면서 금천구에 만들어졌다. 박수경 대표의 외할아버지인 김이두 선생은 ‘금하상회’사업을 시작한 이후 어머니 김선경 대표가 2대의 맥을 이었고, 박수경 대표가 3대째로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박수경 대표는 ㈜금하칠보의 대표이자, (사)한국칠보공예협회 이사장직을 맡으면하 칠보공예의 현대화를 견인하고 있다.


반초갤러리는 3개층으로 1층 체험관, 2층 제작실 및 전시관, 3층 교육관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넓지 않은 공간에 칠보공예품과 다기들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개관 8개월이 지난 올 2월 반초갤러리를 찾아 임지선 차장과 박수경 대표를 만났다. 

개관 이후 갤러리는 ‘칠보’전통공예를 알리기 위해 주력했다. 임지선 차장은 “지역단체와 학교, 주민들이 함께 체험하면서 만든 칠보 벽화 1000개를 만들어져 올해 구청 로비에 붙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근 동일여고 학생들부터 주민들, 초등학생들까지 금하칠보가 만든 체험킷을 활용해 손쉽게 한국의 공예를 경험할 수 있었다.


동시에 힘을 쏟은 것이 전문강사의 양성이다.  이 차장은 “고용노동부화 함께하는 무료교육사업으로 칠보공예 민간자격증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창업을 하거나 취업하신분도 있고 디자인 쪽으로 가신 분들도 있다. 반초갤러리는 칠보공예 강사를 양성하고 판매도 하고, 기법을 배운 곳”이라고 설명했다. 

칠보공예는 7가지 보석인 금,은,구리,마노,사노,호박,진주 (경전에 따라 차이가 있음)로 각각의 색상을 인공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박수경 대표는 “7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숫자라고도 하기도 하고 ‘칠보단장했네 ’하면 예쁘게 치장한 것을 말하듯이 아름다운 색상을 표현하는 의미다. 칠보를 하면 화제의 90프로가 강아지, 산 등의 자연에 대한 이야기일 정도로 정서적으로 좋다.”고 칠보의 매력을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칠보공예품은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칠보 갤러리가 왜 금천구에 있나? 강남 청담동에 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청담동의 사람들은 쇼핑을 하러 오는 분은 많지만 체험이나 공예를 배우기 위해서 오는 사람은 드물다. 게다가 금천구만큼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에 대해서 주민들의 관심이 높은 곳도 없다.”고 말했다. 

금하칠보에서 만드는 공예품들은 대통령이 해외 순방 할 때 방문 기념 선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프랑스, 사우디, 중동를 방문할 때도 금하칠보의 선물로 가져갔다. 미국의 어떤 사립고교 학생은 칠보의 매력에 빠져 단기로 배워가 자기들이 공예동아리를 운영하고 있고 한 대학교에서는 사업화하는 것이 좋겠다며 제안서를 만들어 오기도 했다. 갤러리에서 보여준 칠보가 적용된 넥타이핀이나 USB메모리 등은 고급스러운 풍모를 내뿜고 있었다.


박수경 대표는 “디자인과 대학교수들도 칠보를 자게나 옷칠 정도로 아는 경향이 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우선적으로 칠보의 대중화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초등학교부터 공예를 보는 안목을 키워내고 싶다. 그리고 공예를 통해 먹고 사는 일, 직업으로 가는 길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목표다. 국내외에 한국의 공예를 알리고 수입을 창출하기 위해서 고민”이라고 덧붙혔다.


이를 위해 교육부문을 많이 강화하고 있다. 우선 초등학생들이 많이 경험하게 하고 싶어 가정의 달 시즌에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학교에 제시 예정이다. 박 대표는 “금천구 학생들은 한 번씩은 칠보공예를

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창업분야도 신경쓰고 있다. 동부여성발전센터 공예 아이티템 창업도 이어지고 있고 갤러리를 중심으로 초중급 칠보공예자격증 과정도 계속 운영해가고 있다.


박수경 대표는 “좋은 선물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은 것이 반초갤러리의 꿈이기도 하다. 언젠가 선물은 곧 뇌물이 된 현실이 안타깝다. 칠보공예로 직접 만들어 선물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선물이 된다. 브로치나 명함집 등 내 시간과 마음이 들어가는 선물을 만들 수 있게 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갤러리는 항상 열려 있으니 많이 오세요. 그 어디에도 없는 것들이고 여기 와야만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는 인사처럼 금천구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공간으로, 전통공예 칠보가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반초갤러리의 꿈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책이야기] C.S 루이스의 <나니아 나라 이야기>


나니아. 마법이 유효하고 동물이 말을 하며 숲과 나무의 전령을 만날 수 있는 신비로움이 가득한 나라죠. 우리의 세계에서 그 곳으로 가는 방법은 전혀 예측할 수 없어요. 옷장을 통해 가기도 하고 액자 속 그림이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기차역에서 사라지기도 하구요, 학교 뒷문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뭐야, 마법? 판타지야? 애들 책이군!” 하며 시큰둥하게 여기실 분들도 있겠지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판타지 문학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허황되게 느껴지고 그래서 몰입도 잘 안 되는 문학. 사건의 연속과 재미에만 초점을 맞춰서 심심풀이 삼아 읽다 잊어버릴 가벼운 문학쯤으로 생각했으니까요. 혼자 읽기 시작했으면 두어 권 읽다 휙 던져버렸을 지도 몰라요. 


“전개도 뻔하고 선악의 대비도 단순해. 7권이 비슷할 것 같은데” 하면서요.

그러나 약속을 했지요. 7권 다 차례차례 읽기로요. 지난 1월과 2월은 ‘나니아 나라 이야기>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구와 약속했냐구요? 그 답에 앞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하고 싶습니다. 마법의 이야기에서 그렇듯 나니아에도 절대악 마녀가 등장하고 그 반대의 존재, 아니 더 위대한 사자 아슬란이 등장합니다. 또 우리세계에서 그곳으로 우연히 가게 되는 아이들이 있지요. 아이들은 많은 위기와 모험을 하게 되는데요, 그게 그렇게 신나거나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시련과 시험, 여러 번의 시행착오, 유혹에 대한 갈등,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지요. 


물론 다양한 성격의 주변 인물들도 제 몫을 톡톡히 합니다. 인물이라고 해서 사람에 국한되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기는 나니아, 마법의 땅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신중한 오소리, 충직한 난장이, 현명한 듯 어리숙한 부엉이, 감히 아무도 그의 등에 올라탈 엄두도 낼 수 없는 켄타우로스(허리 위쪽은 사람, 아래쪽은 말의 모습인 존재), 바지런한 비버부부, 그리고 누구보다 용맹스런 쥐, 사악한 원숭이 등등. 그러한 존재들은 이야기를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고 인간보다 더 뚜렷한 성격을 드러내어 생동감을 더해 줍니다.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읽으며 어린이 문학의 힘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어요. 


유연함의 힘이랄까, 포용력이랄까, 단순 명료함이 주는 당당함이랄까, 또 그 단순 명료함이 결코 얕은 깊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숙연함이랄까...그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화는 어린이와 성인 모두를 대상으로 둘 수 있고, 책에서 얻는 감동이나 즐거움도 아이는 아이 것을 가져가고 어른 역시 자신의 눈높이로 끌어 올리거나 깊이 내려가서 느낄 수 있지요. 성인 문학이 할 수 없는 그 어려운 것을 어린이 문학이 해 냅니다.


앞에서 언급한 ‘약속’은 작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모임에서 ‘한 두권 읽고 말게 아니라 7권 모두 도전해서 읽어보자’ 하며 의기투합 했거든요. 저는 시흥동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에서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을 하고 있어요.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그림책도 보고 동화도 함께 보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는 6여년에 걸쳐 7권으로 완성되었고 총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죠. 권수도 부담스러웠지만 완독의 어려움은 책에 대한 재미를 놓치지 않는 거였답니다.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중간에 포기했을 거에요. 그 시간이 있어서 완독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고 혼자 읽을 때 미처 알지 못했던 깊고 다양한 재미를 알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오는 4월이면 은행나무도서관에서 ‘동화 읽는 어른’ 19기를 모집합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좋아하시는 분, 혹은 그 세계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이 오셨으며 좋겠어요. 그래서 함께 읽는 즐거움을 많은 분들이 알아 가면 어떨까 합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박현진



[칼럼]고3 현장 실습생 노동자의 죽음 




관계를 다단계화 하는 것, 과정을 중층적으로 꾸미는 것은, 책임에 따른 권리, 권리를 위한 책임이라는 민주적 관계의 기본을 피하기 위한 수법이다. 자본주의도 경제원론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중간단계 없이 직접 매매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 과정임을 인정한다. 근데 현실에서는 그 반대다. 신자유주의라는 자본만의 자유로운 체제에서는 효율은 경제적 영역이 아니라 지배의 영역이다. 자본주의적 지배의 궁극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적게 주고 많이 부려도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하는 관계, 관계의 노예화다. 노예적 관계란 지배와 피지배 사이에 책임과 권리를 단절시켜, 지배자는 권리만을 누리고 피지배자는 의무만 진다. 이것은 국가와 사회가 사회공동체적 계약에 의해 구성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궁극의 부정이다. 


행정 관료들은 관의 공공 서비스를 민영화하거나 위탁관리 하려한다. 행정의 직접적인 대민서비스를 민영화나 위탁경영을 통해 간접화 한다. 그 결과 대민봉사(對民奉仕)는 대민군림(對民君臨) 민간 부림으로 뒤바뀐다. 기업들이 아웃 소싱을 하는 것도 직접 경영에 의한 법 제도적 사회적 책임을 기존에 중간 관리자들에 불과한 영역으로 돌려 책임을 전가시킨다. 기업의 사회 공공적 책임도 아웃소싱 된 곳에 넘겨 버린다. 책임으로부터의 자유, 진짜 사장이 숨는 이유다. 그 최종 결과가 비정규직 노동이다. 비정규직 노동 중에 파견 노동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경우 수사(修辭)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노예상황이다. 법 제도적 책임자인 파견회사 등이 실제적 권리가 없고 책임도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권리는 없고 의무만 진다. 원청회사는 파견회사나 아웃소싱 된 부서를 통해 권리만 누리고 부리기만 하면 된다. 이 관계도 권리와 책임에 기초한 민주공화국 원리에 반(反)한다. 


현장 실습을 나간 열아홉 살 고3 소녀는 울고 들어오는 날이 많았단다. “내일도 회사를 가야 되는구나” 하는 탄식을 SNS에 남기기도 했다. 소녀는 끝내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LG유플러스 전주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생 홍모양의 이야기다. 여기서도  LG유플러스는 자기 회사 일이 아니라 타 회사 LB휴넷 소관이라 뒤로 빠진다. 현장실습생이라는 말에 우리 사회의 모순이 다 포함되어 있다. 실습생은 아직 노동자가 아니고 학생이라는 말이다. 노동을 하는 학생은 학생이 아니라 노동자다. 누구라도 일을 하는 순간 ‘노동법적 권리가 보장되는 노동자’라는 것이 헌법이 규정한 인간존엄의 최소 규정이다. 하지만 한국은 기이하게 이런 부분을 쉽게 생략한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알바 노동은 용돈벌이로 보고 노동권을 배제한다. 병역특례병은 노동자가 아니라 군인이라면 노동권을 무시했다. 그리고 현장실습생이 그렇다. 


더 문제는 현장실습에 실습이 없다는 점이다. 현장실습은 자기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익히는 과정이다. 이번에 목숨을 끊은 홍양의 전문과목은 애견학과였다. 그런데 그가 간 현장은 애견센터가 아니라 전공과 무관한 통신회사 콜센터다. 콜센터에서 애견학을 어떻게 실습할까? 대한민국의 진정한 적폐는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가식과 거짓의 체제가 너무나 깊고 강하게 주류 행세를 하고 있는 점이다. 게다가 홍양이 맡은 일자리는 가장 업무 스트레스가 많은 자리라는 이른다 ‘욕받이’ 부서라고 불리는 해지방어부서였다. 그러니깐 불만이 생겨 계약해지를 원하는 이들을 상대하는 영역이다. 가장 노련하고 업무에 익숙하며 멘탈이 강한 이들이 맡아야 하는 일을 가장 약하고 경험도 없고 어린 친구에게 맡기는 이 잔인한 기업문화, 여기에 어떻게 인간존중이 자리를 잡을까? 자본주의 한국은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무도하다. 


구로공단에서도 실습생들이 공장마다 들어와 일을 했다. 때론 기숙사 생활도 했는데 한창 혈기에 뜨거운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잘못되고 열악한 조건에 항의를 하면 다음 날 학교 담임선생이 공장에 와 실습생들에게 집단 기합을 주고 갔다. ‘시키는 대로 해라. 너희들이 말썽을 피우면 너희들 어디 가서 취업도 못하지만 학교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내년에 올 후배들의 앞길도 망친다.’는 것이다. 기업과 학교의 폭력을 동반한 값싼 노동력 동원체제가 현장실습생 제도다. 그래서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그것을 받아 2006년에 '현장실습정상화방안'을 통해 사실상 폐지됐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기업하기 좋은 나라 규제 철폐라는 미명으로 기업체의 요구를 수용하여 부활한다. 그 결과 2014년에는 CJ 제일제당 진천 공장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 노동자 선임 노동자의 폭행에 시달리다 자살, 2016년에는 경기도의 한 외식업체에 현장실습생으로 취업하여 졸업 후까지 일하다 장시간 노동과 선임 노동자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고 이번에는 홍양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비극의 뿌리는 취업률에만 목맨 정부정책과 교육계의 구태다. 중소기업청의 특성화고 사업 대상은 '취업률 45.5% 이상인 학교'로 제한돼 있다. 취업률이 45.5% 이상이 안 되면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게다가 취업률은 학생이 실습하는 업체와 학생의 전공 간 연관성, 노동조건 등은 묻지도 따지지 않는다. 중기청의 특성화고 지원액은 학교 1곳당 1억7000만 원, 일선 학교 입장에서는 적은 돈이 아니니 학교 간 경쟁이 치열하다. 교육부도 중기청과 결(結)이 같다. 취업률을 달성하면 재정지원을 주는 시스템이다. 이 반교육적이고 반인간적은 시스템은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 숫자만 늘리면 된다는 발상과 동일하다. 학생이라며 학생의 조건과 존중이 사라지고, 노동자이면서도 노동권을 박탈당한 비정규직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우리 학생들을 구겨 넣은 것이다.  그러고 나서 기껏 어른들이라는 작자들이 젊은 미래들에게 하는 말이라곤 “아프니깐 청춘이다.” “가만히 참고 순종하라.”이다. 정말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 없다. 박근혜 소시어패스 정권을 탄핵한 자리에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떠올랐다. 그 청산의 결과가 노동이 환한 웃음이고 노동이 그 사회 구성원의 자부심의 뿌리가 되길 바란다. 사람을 수단도구화 하여 일회용 휴지쯤으로 대하는 더러운 세상을 끝장내고 젊은 우리 미래들이 노동의 신성함을 즐기는 세상을 만들자.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탄자니아통신] 옥수수 고개


  뭔가 수상하다. 

현관 앞 테라스에 낯선 사람들이 북적인다. 가까이 가니 도넛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한편에서 잘 부푼 밀가루 반죽을 아기 주먹만 하게 떼어 도넛 형태로 모양을 빚어 놓으면, 또 다른 한편에선 튀겨내느라 여념이 없다. 집 안 역시 다르지 않다. 가스레인지 네 개의 버너위에는 제 각각의 색으로 익어가는 도넛이 튀김 냄비 속에서 끓고 있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잘 익은 것을 건져내고, 빈 냄비에 다시 반죽을 넣고... 잠시도 손을 쉴 틈이 없다. 김 선교사님 얼굴에는 발그스레한 꽃이 피었다. 바람이라도 쐬고 오시라며 교대를 청하자 위험하다며 팔을 젓는다. 위험한 건 마찬가지 아니냐며, 뺏다시피 튀김 젓가락을 받아든다. 

  “무슨 일이래요? 잔치라도 벌이시나요?”  설명인즉, 지금 이곳의 시골은 춘궁기로 점심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단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점심 준비를 하는 것이란다. 


  이곳 서민들은 옥수수 가루에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얕은 불에서 잘 저어주며 익힌 후, 마치 호빵처럼 둥글게 빚은 우갈리를 주식으로 한다. 지금 들에는 한참 옥수수가 영글어 가지만 추수를 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추수를 하기 전 3~4월이 농민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때라는 것이다. 그 옛날, 우리나라 역시 보리를 수확하기 전인 5~6월을 보릿고개라고 해서 가난한 백성들이 풀뿌리나 나무껍질 등으로 연명하거나, 심하면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다고 하지 않나. 지금 이곳도 옥수수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그 많은 양의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불 보듯 훤한데, 그것들을 손수 장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드는 김에 주변의 독거노인들 몫까지 만들었다며 들려주는 빵 봉지를 들고, 아이들을 앞세워 길을 나섰다. 옥수수 밭 한가운데 대여섯 평 됨직한 양철지붕 집. 쪽문을 들어서자 바로 부엌이다. 할머니는 발갛게 달아오른 화로 옆에 쪼그리고 앉아 콩 요리가 익어가길 기다리고 있다. 창이라곤 없는 집에, 갈라진 벽 틈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전부다. 부엌 옆 쪽방엔 스펀지 매트리스가 놓인 찌그러진 철제침대만 스산하다. 

  우리를 배웅한다며 따라 나온 그녀는 자그마한 키에 깡마른 몸매다. 신발을 신지 않은 발은 안쪽으로 둥글게 휘어 있었는데 엄지발가락이 기형적으로 길다. 오랜 세월 맨발로 생활한 탓이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찾아온 낯선 손님이 반가웠던지 여러 번 포옹을 청하는 그녀를 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맞춰 학교로 출발했다. 초행길로 여기저기 파인 물웅덩이와 꼬불꼬불 산길 탓인지 꽤 멀게 느껴진다.  

  수업중인지 세 채의 교사(校舍)가 화단을 둘러 서 있을 뿐 조용하다. 화단이라고 해봐야 삐뚤삐뚤 벽돌을 둘러 시늉만 냈을 뿐, 사람 손이 가지 않아 잡초만 무성하다. 일학년 교실로 들어서자 손바닥만 한 교실에 백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아있다. 하얀 난방에 빨강색 니트, 파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여기 저기 헤져서 너덜거린다. 일 년에 한 번씩 교복을 나눠주는데 옷 한 벌로 일 년을 나니 당해낼 재간이 없는 탓이란다. 선생님이 함께 한 탓인지 아이들은 얌전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너무나 차분한 아이들이 낯설기만 하다. 세네갈에서의 경험을 생각하며 은근히 걱정을 하던 터였으니 말이다. 

  


  세네갈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한 적이 있었는데 마지막 수업 시간, 작별 인사 겸 선물로 비스킷을 준비했는데, 온순하고 상냥하던 아이들이 먹을 것 앞에서 거의 아귀 수준으로 변해 잘못하면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했다.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수습을 했으나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하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교실은 널널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퇴한 아이들이 많아서라고 한다. 중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인데도 시골에서는 아직 아이들을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탓이다. 하지만 일부 교육열이 있는 부모들은 소도 팔고 땅도 팔아 학교를 보내기에, 입학 시기가 되면 매물이 많이 나와 땅값이 곤두박질을 친단다. 

  

  이곳에서 초등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노트 겉면에는 ‘Education is the most powerful weapon we can use to change the world'라는 넬슨 만델라가 했던 말이 적혀 있다. 교육의 힘을 믿는 지도자와 일부 학부모의 교육열이 이 땅을 살릴 것이라 믿는다.    나는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는 아니지만, 초등학교 점심시간에 식빵이나 옥수수 빵을 급식으로 먹은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선진 자선단체에서 제공한 구호물자였다. 어린 나이의 우리가 그런 것을 알리 만무했고, 별미를 먹는 색다른 즐거움을 누렸을 뿐이었다. 나는 저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지금을 추억하며, 좀 특별한 급식을 먹었던 학창 시절의 아름다운 경험으로 기억하길 바란다.

   


3월25일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장제모칼럼]탄핵 이후를 생각해 본다


대통령의 탄핵재판이 끝났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제대로 된 결과이다. 다수 국민들이 원하는 바이고 그것은 진실의 드러냄을 원하는 국민들의 수가 많다는 뜻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려고 만들어진 단어일 게다

대통령이 탄핵되었다는 것은 그 국가 공동체에서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고 권력자를 국민들이 단죄를 한 것이니 예사 사건이 아닌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개 탄핵제도가 있지만 그것은 쉽게 이행되기는 어려운 것은 주지하는 바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일천하고 아직은 이 제도 시행에 대한 확신이 불확실한 대한민국에서 그것이 이루어 졌으니 대단하다는 표현은 당연하다.


사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고위 공직자나 정치 지도자 등의 범법을 다루는 경우 법치운행에 비정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과 관련한 보통의 비리는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게 다반사고 범죄로 인정되는 경우에도 분명한 처리가 미뤄지거나 부합한다할만한 조치를 보기 어려운 것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 그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된 것은 대단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당사자인 대통령이 추천한 헌법재판관이 현직법관으로 있고, 그에 의해 임명된 권력자들이 곳곳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는가하면 기득권자 등이 주체 세력이 되어 여론을 만들면서 대대적인 반대시위를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결과는 당사자인 대통령의 탄핵사유가 명백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정의로운 국민들의 의지가 강고하고도 집요했고, 심판에 임한 헌법재판관들 또한 정의로움을 견지했기 때문으로 본다. 사실 범법 사유를 분명히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고 또 헌법 재판관 각자의 개인적 신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는 만큼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기각)의 도출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 아니었던가! 그렇듯, 민주주의 국가의 진면목은 그 국가 공동체에 정의로운 국민들의 수가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진실을 판단하는 제도적 구조의 건전성 여부가 어떤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이번 사건은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 곧 탄핵이 되었다 해서 이제부터 바람직한 순서가 진행되리라는 기대는 성급하다. 물론 여러 정황을 볼 때 희망적 기대를 가질 수는 않지만 그것은 그에 필요한 상황적 과정이 요구 된다. 즉 현재를 분명히 청산해야 하는 절차를 거치고 그에 따라 치러야 할 계산이 제대로 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탄핵사태는 당사자적 책임 주체가 있지만 그러한 환경이 있게 한, 공동체가 책임 주체가 되는 제도의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챙겨야 할 절차는, 크건 작건 이 사태에 관계하여 책임을 져야 할 대상자를 찾아 필요한 처분을 하여야 한다. 이미 상당수의 책임당사자가 법률적 책임과 만나고 있지만 아직도 이 대열에 빠졌거나 비켜선 자들이 있다 이러한 자들을 낱낱이 찾아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그 사실들을 역사에 기록을 해야 한다. 그래야 확실한 청산 과정이 된다. 당부하건데 화합을 내세워 원칙을 깨면 안 된다. 관용은 사실이 규명 된 후에 하는 것이 마땅하다. 엄격한 절차를 거친다면 비록 무거운 행위라도 사회적 합의로 일정한 범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절차는 탄핵 국면으로 생성된 국민 갈등의 해소를 위한 신중한 진행이다. 그간에 표출된 국민들의 의지는 단순히 개인적 신념에 의한 찬성 반대의 표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곳에는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이념적이자 가치관적 문제가 여러 행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이를 살펴야 한다. 

정치인이 치러야 할 계산이 있다. 그들은 정치현실에 접근하기 위해 제기한 공약(公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약속들이 이 사건과 직접적 관계가 있다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임무와 또 탄핵사건이 가진 정치성을 감안할 때 그 약속들은 이 사태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참고 되어야 한다. 개인적 성정에 따라 표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들 공약의 요지는 스스로를 정의사회 건설의 일꾼으로 내세운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이번과 같은 사태의 반복을 단절할 수도 있는가 하면 지속되게 할 수도 있는 당사자임을 유념해야 한다. 국가 제도의 규범 임무를 권한으로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이번의 사태에 대한 책임자적 자세로 국민들과 약속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이번과 같은 사태가 원천적으로 발생할 수 없도록 세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현 제도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구조다. 간단히 이해를 하면, 광범한 정치권력 및 고위공직자의 인사권과 국가 재정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재정권을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권한은, 인간의 이기주의를 사회발전 동력으로 인정하는 것을 제도로 두는 자본주의 국가체제에서는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제도는 둔 채 사람만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는 뿌리는 둔 채 가지만 자르는 것과 같다. 뿌리가 온전하면 그것이 가진 속성은 여전하지 않겠는가? 제도의 완전 바꿈, 즉 개헌을 해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을 반드시 해야 한다. 방법과 절차는 정치 전문가들이 할 일이겠지만, 차제에 분명하게 확실하게 고쳐야 한다는 것은 국민여망일 것이다. 

                                                                                                            

대통령제의 폐해는 파행이 있을 때마다 제기되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우리헌법 30년 사에 대통령의 불명예 퇴임이 수차례나 있었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참고 할 것은, 대한민국은 아시아 존에서 가장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나라다. 그 도입은 늦었지만 민주주의적 정권교체 경험이 가장 많은 나라이고 그렇듯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도 매우 높다. 그런 국민이 유권자임을 정치권은 유념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정치구도를 만들기를 바란다.

(♣2017.03.27.)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미리내 쿠폰으로 행복더하기

마을에서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는 생활체험기-3


 얼마 전까지 자리 카페 도장쿠폰을 모았는데 이제 더 이상 모을 수 없게 되었다. 어쩌다 넉넉치 않은 운영사정을 알게 되니 도장 10번 받아서 1잔을 무료로 마시는 게 미안한 일이 돼 버렸다. 그동안 내가 주문하는 것은 물론이고 약속시간에 늦은 사람이 음료주문 하러 가면 득달같이 달려가 도장을 찍어달라고 했다. 도장 가득 찍힌 쿠폰 두 장을 매니저에게 청소년들이 ‘미리내’ 쿠폰으로 쓰면 좋겠다면서 건네줬다.


 이후에 지인들에게 카페 이용 후 도장 쿠폰 다 찍으면 자기가 공짜로 홀랑 마시지 말고 동네청소년들에게 미리내 쿠폰으로 주자고 했다. 지인들이 도장 찍힌 쿠폰을 나한테 주기 시작했다. 돈을 미리 내고 ‘미리내’를 하는 것보다 도장 쿠폰으로 ‘미리내’를 하는 게 사람들에게 흔쾌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 같다. 

당장에 내 주머니에서 돈이 안 나가고 1잔은 공짜로 생기는 것이니 손해보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 때문 아닐까?


티끌모아 태산이 아니라 쿠폰모아 ‘미리내’이다. 처음 두 장을 미리내로 낼 때는 부끄럽게 매니저님이 굳이 이름을 쓰라고 해서 동네김현미아줌마가 라고 썼는데,.. 이제는 멋진 말과 쿠폰을 증여한 사람의 이름을 다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넓고 넓은 세상, 금천구의 작은 마을에서 동네아이들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하기 위해서 동네 어른 10명이 도장을 꾹꾹 찍는다는 스토리를 상상하니 너무 낭만적이다.


얼마전 지인이 구례로 이사갔다. 떠나기 전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별의 정을 나누었다.  서로가 선물교환을 약속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상대방에게 선물을 준비해와서 교환했다. 떠나가는 지인은 핸드드립 커피를 즐겨 마시는 취미가 있는지라 다섯 가지 원두를 조금씩 포장해 선물로 줬다. 구례에서 새로운 이웃들과 핸드드립 커피마시면서 잘 사귀어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받은 선물은 숲의 향기가 나는 향초였는데 집에서 향초를 켜보니 그 지인에게 어울리는 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같이 한 공간에서 살아온 비슷한 추억들, 서로를 기억하겠다는 마음, 구례에 오면 꼭 연락해서 만나자는 약속.  이별이 무거워지지 않도록 배려한 선물은 그 사람의 품위를 느끼게 한다. 구례라는 말만 나오면 나는 기분좋게 한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구례에 가면 설레이는 마음으로 전화를 할 사람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귀기가 쉽지 않아서 지금까지 가꾸어온 관계를 소중하게 유지하는 게 좋고 편하다. 새로운 인연이 다가오더라도 젊었을 때보다 마음을 내주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새롭게 만난 사람을 탐색하는 과정들(과거에 뭐했던 사람인지, 평판은 어떠한지,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원만한 사람인지)에서 나온 정보를 통하여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결정을 한다. 또 이것저것 함께 겪어보고 나서 소중한 관계로 발전시킬 사이인지 사무적인 관계가 될지, 되도록 안 만나고 살 사이인지도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들은 시간이 많이 소비되고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생길 수 있는 사소한 오해들의 용서와 화해들, 입장 바꿔 배려하기 등의 과정을 통하여 소중한 관계로 발전된다. 


요즘에는 이런 과정을 겪는 게 피로해 사람에게 집중하는 시간에 돈을 벌어 자기한테만 쓰는 혼밥과 혼술이 유행하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관계가 시작되면 진심어린 마음을 주고받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그리 많이 쏟지 않아도 관계유지가 가능하다. 또 그 사람의 소중한 관계망이 내 관계망과 접속하고 확장되기도 한다. 세상의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그 사람을 자랑스럽게 소개시켜주게 된다. 그 사람의 필요를 세심하게 챙겨서 선물하기도 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서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기도 하고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들은 내 행복에 영향력을 끼친다. 이로써 행복해진 나는 내 친구(이웃)의 행복을 평균 9% 증가시킨다. 불행한 친구는 내 슬픔을 7% 증가시킨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주변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협력해야 한다.




미리내:이용손님이 미리 금액을 지불해놓은 후에 누구나 그 금액만큼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나눔문화



독산동 주민 김현미



[책]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은비는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동네에서 호랑이 할머니로 불리는 옆집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은비 눈에는 옆집할머니가 귀신할머니처럼 보인다. 은비는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며 우연히 채널을 돌리가다 건물을 향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 퍼붓는 할머니를 보게 된다. 화면 가득 얼굴을 채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옆집 귀신할머니다.


그렇게 뉴스를 통해서 처음으로 위안부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할머니는 도대체 누구한테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인지 그 건물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해 하게 된다. 평소 할머니는 스스로를 꽃 엄마라고 하며 꽃들을 정성껏 돌보시는데, 그건 꽃들이 할머니에게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짓밟히기 전의 어여뻤던 처녀시절을 떠올리게 해주고 귀여운 아이들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되는 할머니를 대신해서 이 꽃들을 돌보게 되는 은비가 할머니의 이름을 알게 되고, 할머니를 다룬 기사를 통해서 할머니의 삶을 알게 된다.

은비는 성추행 당할 뻔 한 경험을 하게 된 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비로소 할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할머니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할머니와 가까워지게 된다. 은비는 어느 날 아픈 할머니를 발견하여 병원에 모시고 간다. ‘선팽이, 선팽이....’라고 신음하시는 할머니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던 은비는 할머니의 건강이 좋아졌을 때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 할머니의 고향 서천 선팽이 마을에 다녀오게 된다.

그 후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부산에 있는 요양원으로 가시게 되고, 은비는 할머니 집에 있었던 화분들을 집으로 가져간다.

 

얼마전 신문을 보다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눈에 들어왔던 한줄. 위안부 ‘수요집회’ 25주년...“1년 안에 끝날 줄 알았다”

매 주 수요일 수요집회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언제부터 얼마나 진행되어 왔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 했다. 수요집회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만 막연히 했는데 올해가 25주년이라고 한다. 기사에는 25년 전 사진과 현재의 사진이 실렸는데 그때는 할머니들이 60대였고, 지금은 평균연령 90세이다. 우리가 설마 하면서 했던 말들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 아니야?’ 했는데 그게 정말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에 순간 멍~ 해졌다. 많이 들어서 뭔가 알고 있는 듯 느껴졌었지만 정작 알고 있는 것은 없었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역사로 끝나는게 아니고 다시 우리의 일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우리 모두 지난과거를 그리고 현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박현진


카리브 송게아 [소피아의 탄자니아 통신-14]


  ‘우리의 프린세스’는 사람을 좋아해 누구를 만나도 ‘카리부 송게아’한다. 

  송게아에 오는 걸 환영한다는 스와힐리어다. 그가 나를 자신의 집에 놀러오라며 빼놓지 않는 자랑이 남부 최고의 도서관을 가졌다는 ‘송게아 여고’, 독일식 수제 소시지 공장 그리고 유서 깊다는 가톨릭 성당이다. 임지에서 보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랑거리도 늘어났는데,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라는 돼지 숯불구이 요리도 그 중의 하나다. 건기 막바지, 수돗물이 나오지 않자 한 가지가 더 덧붙여졌는데, 매일 하루에 한 번씩 길어온다는 우물물 맛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깨끗하고 시원하며 물맛 좋기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국에서 친구가 다녀간 후, 한 가지가 더 늘어났는데, 오리지널 참이슬을 ‘나를 위해 묻어 두었다는 뻥’이다. 그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그 말도 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진위여부 파악 겸, 남쪽 지방을 둘러볼 요량으로 온 송게아는 아담한 도시로 생각보다 깨끗하다. 

  송게아 여고 교문을 들어선 후 조금 걷자 가장 먼저 도서관 건물이 보인다. 정자처럼 꾸민 휴식 공간을 하나의 건물로 사면을 에워 싼 형태다. 교실 중 한 칸은 책을 진열하고, 나머지는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배치했는데 그의 말이 과장만은 아니다. 아프리카, 그것도 고등학교 도서관으로서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시설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교사(校舍)는 아름답다. 소박하지만 정원이 있고 정원 사이를 지붕 덮인 회랑이 지나고 있다. 독일인이 지은 건물이라는 데 삼십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잘 관리되어 깨끗하다. 운동장도 널찍하다. 가운데는 농구대와 배구 코트가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체육 활동을 한단다. 운동장 옆에 허름한 건물 한 채가 있었는데, 그곳이 그가 거처하는 관사다. 방 두 개에 거실과 욕실, 부엌이 있다. 선배가 놓고 간 살림살이를 더해 여염집만큼이나 복잡하다. 손을 좀 보았어도 되련만, 다른 사람도 살았는데 나는 못살겠나 싶어 그냥 들어왔다고 했다. 어학원에서 함께 지낼 때는 어찌나 까탈을 부리던지, 우리 중 누군가가 프린세스라 불렀다. 그 말이 어찌나 절묘했던지 그가 까탈을 부리기 시작하면 ‘우리의 프린세스 어쩌나’하며 어르곤 했었다. 그런 그가 알고 보니 무수리 중에서도 상무수리다.  


수업 시간이 되어 함께 교실로 갔다. 하얀 남방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주름치마, 초록색 니트의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니트 색만큼의 싱싱한 호기심을 담고 나를 반긴다. 

‘만나서 반가워. 내 이름은 소피아야, 나는.....’ 나의 인사가 끝나자 유난히 예쁜 이마와 아름다운 눈을 가진 소녀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킨다. 짝꿍이 결석을 했는지 그녀의 옆 자리가 비어있었던 탓이다. 내가 자리에 앉자 옆 분단의 통통한 녀석은 내 머리칼부터 잡는다. 빡빡머리만 허용되는 그녀들에게 자연스런 생머리만큼 선망의 대상은 없는 까닭이다. 또한 전원 기숙사 생활에, 종교 활동 외의 바깥나들이가 철저히 통제됨은 물론 전화조차 사용 금지라고 한다. 이를 어길 시 즉시 퇴학 처리된다고 한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한참 멋을 부릴 나이에 통제된 공간과 엄격한 교칙에 갇혀 딴 생각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다.  

  나 역시 꽤나 보수적인 환경에서 고교 시절을 보냈다. 흰 블라우스에 검정 플레어스커트 교복에 귓불 위 일 센티미터 단발이었다. 흔히 좀 까졌다고 했던 친구들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기어이 머리의 일부를 뭉텅 잘리기도 했다. 밥은 안 먹어도 블라우스 칼라는 다림질해야 했고, 멋을 부린답시고 스커트 벨트 부분을 두어 번 접어 짧게 입다 훈육 선생님께 걸려 치도곤을 당하기도 했다. 어른들은 제일 예쁠 때라고들 했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오후 수업이 끝나자 전체 조회를 했는데 이때는 비교적 자유롭다. 주임교사의 훈시가 시작되었음에도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대열에 합류하고 있었고, 구석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수다를 떠는 몇 무리의 학생도 있다. 저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들려주고 있을까?  우리의 아침 조회에는 땅딸막한 키에 펑퍼짐한 몸매의 교장 선생님이 함께 하셨다. 그의 훈시는, ‘천하의 영재’로 시작해 ‘천하의 영재’로 끝을 맺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고, 삼년 내내 비슷한 훈시를 들어야했던 우리가 넌덜머리를 내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고 동창회가 열렸다. 살아온 길은 달랐지만, 그의 말들이 살아가는 내내 자긍심을 갖게 해주었다는 것에 우리 모두 이견이 없었다. 학창 시절, 선생님에 얽힌 사연은 살아가는 내내 이야기 거리가 된다.   

 

 우리의 프린세스는 수학 선생님이다. 여학생들에게 수학은 보통 어렵고 하기 싫은 과목이다. 그러나 그를 좋아해 수학까지 좋아진 학생도 있을 것이다. 뽀얀 음준구(하얀 사람이라는 스와힐리어) 총각 선생님. 그와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살아가는 내내 즐거운 추억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들만의 시간이 올 때, 온갖 미사여구를 덧붙여 자신들만의 무용담을 펼쳐 보일런지도 모르겠다. 


3월10일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기고] 태극기 유감(遺憾)  

남부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8:0, 탄핵에 대한 헌재 재판관들의 결론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은 이제 시작이다. 완장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구(舊) 대한민국의 적폐 속에서 이득은 본 이들과 그 구조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산이 필요하다. 

우리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우리가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결과가, 그저 완장만 바꾼 과정이, 이번과 같은 참담한 현실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밑으로 부터의 힘, 민중의 힘을 발굴했고 확인했다. 이 힘을 낡은 부대에 기존의 틀에 가두면 안 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하는 역사적 교훈을 제대로 살리는 새로운 출발을 하자. 그 낡은 모습 중 하나가, 태극기를 둘러싼 기괴한 전쟁이다. 

    

태극기는 태극과 팔괘가 합친 형상이다. 그런데 조선이나 고(구)려 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한반도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태극과 팔괘는 적절할까? 태극무늬가 우리의 전통문양이란 주장도 있지만, 태극과 팔괘는 중국의 주역에 근거한 철학적 상징이다. 고유의 것이 아니라 외세 중국의 영향이니 마치 한문을 한글이라는 것처럼 어색하다. 

태극기가 만들어 지는 과정도 그렇다. 박영효가 일본에 가면서 만들었든, 이후 고종이 대한제국의 상징으로 지정했든, 그것은 봉건적 왕조의 상징이다. 봉건 왕조에서 민주공화국으로 전환은 계승보다 단절이 크게 작동되는 역사다. 민주주의는 왕의 목을 단두대에 거는 것이다. 그 혁명의 과정에서 형성된 노래와 깃발이 근대국가의 국기(國旗) 국가(國歌)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다. 프랑스 국가는 프랑스 혁명 당시 마르세유 출신 의용병들이 파리에 입성할 때 부르던 노래다. 미국의 국가도 미국 독립전쟁 중 가장 치열한 격전지 중 하나였던 볼티모어의 포트맥켄리전투를 통해 작곡된다. 이렇듯 근대국가의 상징은 민중들의 민주주의와 자주독립이란 투쟁을 담는다. 


그렇다면 태극기가 지금의 태극기가 된 것도 박영효도 고종도 그리고 이후 1948년 남한 정부의 수립 이후에 이승만 정부가 결정한 것도 아니다. 전적으로 태극기가 나라의 상징이 된 계기는 3.1운동이다. 조선의 독립을 원한 민중들이 저항의 무기로서 손에 쥔 태극기가 그 진정한 시작이다. 민주공화국의 새 조국을 만들겠다는 상해임시정부의 결의, 가족들의 피눈물을 뒤로하고 풍찬노숙을 하며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독립군들, 반세반봉건 민중 혁명가들의 가슴 속에 숨겨진 깃발로 태극기가 본질이다.


그런데 최근에 태극기는 그 역사적 태극기가 아니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곳에서는 썩어문드러진 냄새만 진동했다. 애써 언론은 본연의 태극기를 살리기 위해 태극기와 동반한 상징을 비교했다. “친박은 ‘성조기’, 촛불은 ‘노란리본’…태극기의 동반자는 달랐다”라는 한겨레신문 기사 제목이 그렇다. 친박은 태극기를 통해 애국주의라는 성역을 자기들의 방패로 세웠다. 그 결과 태극기는 집권 정부의 가면이 되었다. 부정부패를 가리는 상징, 분단 증오를 가리는 상징, 사대 의존을 가리는 상징, 놀랍게도 태극기를 찢고 일장기를 심장에 받은 박정희와 그 후손들, 친일파들의 가면으로 태극기가 동원됐다.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를 역사에서 지우려는 이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왔다. 태극기가 악마가 쓴 선한 가면이 됐다. 참으로 놀라운 본말전도다. 

태극기에 오물을 묻히는 것도 모자라 친박들은 애국을 성조기와 동반시켰다. 외세와 함께 하는 애국이라니,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외국의 도움은 그 나라의 굴욕이자 수치다. 어떤 경우에도 결코 자랑일 수 없다. 미국이 기독교 신의 천사가 되어 한반도 남쪽의 민주주의화 해방을 지켜주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라 빨리 극복할 역사다. 그런데 이들은 태극기보다 더 큰 성조기를 들고 “대한민국의 핵심 안보는 한미동맹의 유지”라며 의존가 사대를 주권보다 앞세운다. 놀랍게도 이런 이들이 중국 등에 대해서는 주권을 잘도 내세운다. 지금 정말 필요한 주권의식은 대중 의식이 아니라 대미의식이다. 


태극기와 관련된 또 다른 장면도 있다. 촛불집회에 나온 태극기다. 태극기를 처음에 들고 나온 것은 더불어 민주당이라 기억된다. 민주당의 집회에서 국회의원이 애국가를 함께 부르자는 모습도 목격된다. 이들도 아마도 종북 공세를 피하기 위해 태극기나 애국가를 애써 앞세웠을 것이다. 태극기를 수단화 하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큰 호응은 없어 잠시 사라지나 했는데 나중에 노란 리본을 단 태극기가 등장한다. 노란리본을 동반자로 한 태극기는 또 어떤 의미의 태극기일까?

세월호는 국가의 총체적 부정과 무책임과 제도적 구조를 통해 은폐된 국가범죄다. 이때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정부를 통한 국가가 아니면 국가에 무슨 실체가 있을까? 그 국가적 범죄를 규탄하고 진실과 정의를 밝히자는데 다시 국가의 상징이라니.. 애국이 중요하려면 ‘불의에 대한 저항, 진실과 정의를 향한 대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빠진 애국은 폭력이고, 무지가 만든 맹목이다. 태극기에 세월호 리본을 다는 것은 그것을 다는 이들의 개별적 진정성과 무관하게 국가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세월호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다. 태극기로 상징하는 국가주의적 애국주의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다. 


궁극적으로 국가(國家)는 민을 위한 도구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가진 자들의 지배도구가 되어있다. 그래서 야당을 하다가 여당이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권력의 자의성에 마취되어 부정부패와 국정농단의 포로가 된다. 가진 자들 지배자들의 이익을 전체의 이익으로 속이면서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조차 애국이라 믿는 미신이 만들어진 힘이기도 하다. 그래서 민중들에게 국가는 여전히 비판과 저항의 대상이다. 국가 자체를 노동자 민중의 국가로 변혁하지 못하면 헬(Hell)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 상징에 얽매이는 인식이라니. 그것은 고여 있는 물이다. 야당이 집권한들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경험적 비관주의, 진보에 대한 허무주의 토대다. 이런 것이 정말 청산이 절실한 적폐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장제모칼럼]평화의 소녀상을 살핀다




봄이 온다는 삼월은 3·1절로 시작된다. 자연히 일본을 생각하는 시간을 맞는다. 한국인에게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가장 먼 나라, 다수 한국인에게는 그렇게 느껴지는 나라일 게다. 더욱이 독도문제에 더하여 평화의 소녀상 건립 문제로 일본과의 거리는 더욱 멀게만 여겨지게 하는 이 즈음이다. 이른바 글로벌 시대에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와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지내야 하는지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독도는 영토문제이니 국가의 존립과 자주의 문제이고, ‘평화의 소녀상’은 민족 자존심의 문제이므로 둘 다 양보할 수 없는 대상이라 답을 만드는 게 쉽지가 않다.  


독도문제는 현실적으로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니 시끄럽기는 하지만 그간의 기조를 지켜나가면 된다. 그러나 ‘평화의 소녀상’ 문제는 정의의 문제이자 민족자존의 문제인 만큼 그것의 온전(穩全)을 구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직접 피해를 당한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민족전체가 당한 수치인데 대한 치유(治癒)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전개로 볼 때 그렇다. 일본 정치를 담당하는 무리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로 접근의 여지가 좁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과는커녕 사실을 부정하기조차 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정의의 문제이고 따라서 어떤 논리로도 감추어질 사안이 아닌 만큼 해결의 길은 결코 묻히지 않는다. 진실은 가린다고 가리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하지 않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미리 하자면, 아무리 속상하다 하더라도 국가 간의 문제이니 만큼 감정적 접근을 자제하여야 한다. 이 문제는 일본 내에서도 자국의 책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 중에는 한국인 못지않게 분개하는 이들조차 있다. 현재에 보이는 그들의 억지는 집권세력을 포함한 일부 극우 세력의 망동일 뿐이다. 유의할 것은 문제의 본질은 부정하지 않았던 것이 그간의 일본 정치역사라는 점이다. 그렇듯 그들을 두드려 깨울 여지는 그들 공간 곳곳에 남아있다. 성숙하고 유연한 자세로 접근하여야 한다. 


우선 생각할 것은 이성적 접근이다. 상대를 깨우치게 하려면 진리의 모습을 잃지않아야 한다. 비이성적 자세로는 진리를 깨우치게 하기 어렵다. 진리는 진리로 접근하여야 하고 그것은 이성(理性)을 갖출 때 강력하다. 진리의 승리는 쟁취로 인하는 것 보다는 그것을 구하고자 하는 곳에서 본연의 모습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냉정하게 보자.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나타나지 않는데 대한 시위이고 그 설치 공간 선택의 당연성도 인정된다.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한 가장 적극적 선택이다. 그러나 그 후속 전개는 사려 깊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원하는 것을 구하기 위하여 보존해야 할 가치를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의 설치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일본이 반발하기 때문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이성적 접근을 말하고, 더하여 그것을 행위하는 가치를 말하고자 함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의미하는 상징물이다. 최초의 ‘소녀상’은 서울의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되었다. 당시 그것을 보고 이성적이면서도 강력한 접근이라 찬탄을 금치 않았다. 목적을 위한, 이보다 더 강렬한 메지시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후의 전개 즉 부산 일본 영사관 설치는 최초의 소녀상이 가진 가치를 흐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든다. 반복은 강조를 의미하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최초의 가치를 저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평화의 소녀상은 서울의 주한일본대사관 앞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국민모금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전국 27곳에 있는가 하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립공원을 포함한 해외에도 3곳이나 있다 서울에만도 여러 곳에 있다. 마포구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노원구 ‘마들근린공원 역사의 길’, 성북구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앞, 동작구 흑석역 3번 출구 옆, 구로구 구로역 북부광장 등에서도 주한일본대사관 앞과 같은 모습의 ‘평화의 소녀상’을 만날 수 있다. 


그 밖에 서울의 대학생들에 의해 건립된 서대문구의 대현문화공원, 서울 서초구 서초고등학교 교정, 고등학생들에 의해 건립된 서울 중구 정동길 프란치스코회관 앞에도 있다. 특히 ‘프란치스코회관’ 앞 소녀상은 당시 ‘위안부’ 세대를 생각하게 하는 연령인 고등학생들에 의해 건립된 것이라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 밖에도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부산 동구청 앞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 곳에 소녀상이 건립되었거나 건립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소녀상의 건립은 반성을 모르는 일본, 정확하게 말해 일본정부를 비롯한 그 옹호 세력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그 전개는 보다 성숙하게 접근한다면 목적한 바를 더욱 충실하게 달성할 수 있다. 장소 선택을 말하고자 함이다. 위안부 문제 응징의 상징인 ‘평화의 소녀상’은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의 것을 대표로 하자. 대사관이란 그 설치 국가의 상징이니 그 목적을 위한 선택은 타당하다. 그 이외, 즉 서울을 비롯한 여타지역의 ‘소녀상’은 대표의 상징을 돋우는 목적이면 된다.


다시 이야기 한다. 반복은 강조라는 의미에서 횟수가 많은 것은 탓이 아니다. 그럴 만큼 반성을 모르는 일본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의 소녀상은 생각의 여지를 갖게 한다. 반복보다는 중복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소녀상 상징적 대표는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의 것 하나인 것이 더 강렬한 메시지다. 일본 정부가 반발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한국의 소녀상 의미를 수긍하고 있고 따라서 전국 도처를 비롯한 해외의 소녀상으로 압박감을 갖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반전(反轉) 빌미를 줄 필요가 없다. 부산 영사관 앞 건립은 그런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소녀상 건립은 그것이 가지는 상징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곳, 즉 항일운동의 상징성을 가진 곳으로 예를 들면, 부산은 ‘부산진일신여학교기념관’, 광주는‘수피아여자고등학교’, 대구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충남은 ‘천안아우내 3·1 운동 독립 사적지’ 등이 어떨까 한다. 특히 부산과 광주는 위안부 또래에 의한 독립운동 발상지라 상징성이 크다.


비이성적 상대에 대한 강력한 시위는 이성적 접근임을 말한바 있다. 한국이 이성적일 때 일본의 양심세력은 더욱 결집을 할 것이다. 비열한 자들만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이 이성적일 때 세계의 동참은 더욱 많아지게 될 것이다.

(♣2017.03.10.)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우리문화산책]정전으로 가는 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지나면 사람들은 대개 의문을 품는다. 바로 궁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커다란 문이 하나가 더 있는 것이다. 그 문을 흥례문이라고 하는데, 궁궐의 실질적인 입구다. 심지어 그게 다가 아니다. 그 뒤에는 근정문이라고 하는 문이 하나가 더 있고, 그 문들을 모두 지나서야 겨우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에 당도할 수 있다. 이로써 경복궁은 커다란 정문이 차례차례 세 개나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이는 동양의 궁궐 문화 특유의 건축 양식이기 때문에 생소한데, 이유를 알고 보면 재밌다. 경복궁은 “주례”라고 하는 주나라의 건축 법제를 따라 창건한 것인데, 이 주례에는 황제국은 5문3조, 제후국은 3문3조라 하여 궁궐의 전체적인 구조를 확실히 정해놓고 있다.

 즉, 경복궁의 중심축이 되는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까지의 세 개의 문이 3문이고, 그 안으로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으로 이어지는 건물들이 3조인 것이다. 여기서 3조란, 근정전. 바깥 정치를 담당하는 곳(외전), 사정전. 왕이 집무를 보고, 정사를 돌보는 곳(내전). 강녕전. 왕이 잠과 휴식을 취하는 곳(침전)으로 구성된다.

 쉽게 말해 정문인 광화문으로부터 왕이 잠을 청하는 곳인 강녕전까지가 한 몸이자, 경복궁의 몸통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경복궁을 즐겨보기 위해서는 그런 구조적 매력과, 모든 중요 건물들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통쾌함을 느껴보지 않을 수 없다.

 

 3문 중 두 번째의 문은 바로 이 흥례문인데, 광화문이 경복궁이라는 커다란 궁궐의 정문이라면, 이 흥례문은 본격적인 왕의 공간으로 가기 위한 정문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궁궐이라 한들 조선 왕조에서는 흥례문 바깥의 영역은 왕의 영역이 아닌 백성의 영역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흥례문은 그 앞에 굉장히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조선 왕조가 숨 쉬고 있을 시절에 이곳은 수많은 병사들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위용을 재현하기 위해 하루에 두 번씩 흥례문 앞에서는 병사들이 나와 수문장 교대의식을 치룬다. 

 흥례문을 지나면 꼭 지나쳐야 하는 것이 영제교다. 모든 궁궐에는 길을 내어 금천이라고 하는 명당수가 흐르도록 하는데, 이 금천을 지나는 돌다리가 바로 영제교다. 금천은 사상적으로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주고 좋은 기운을 가져오게 하는 의미가 있으며, 문과 문 사이에 이런 다리가 있으니 보기에도 아름답다. 영제교의 난간 끝과 끝에는 총 네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있는데, 용은 곧 왕의 권위를 뜻한다.

 영제교를 지나갈 때 재미있는 것은 영제교의 난간에 몸을 기댄 후 나와 함께 금천을 바라보고 있는 네 마리의 천록을 바라보는 순간 느낄 수 있다. 이 천록은 돌로 조각 된 상상의 동물인데, 물을 통해 흘러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왕을 지켜주는, 어찌보면 이곳에서 가장 근엄해야 할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무섭다기보다는 귀엽게 짝이 없다. 왜냐하면 이 중 한 마리의 천록이 너무나도 익살스런 모습으로 메롱하듯 혀를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조각가의 실수였을지, 아니면 그 나름의 위트였을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아마 매일 같이 왕과 신하들이 지나는 길에 그저 조각가의 실패작이 올라와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아마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것은 강한 힘만이 아닌, 상황에 맞는 유머와 재치라고 생각했던 왕가의 미덕이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김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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