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는 생활체험기-2

  선물(증여)경제의 관계창출론


정월 대보름날 새벽, 잠에서 깨어 주위를 둘러보면 아버지는 김에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리고 계셨다. ‘오늘 아침엔 구운 김에 오곡밥을 싸먹고 나물들을 먹겠구나’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다.  바스락 김바르는 소리,  들기름에 나물 볶는 냄새,  아홉 번 밥 먹고 아홉 가지 나물을 먹는다는 이야기. 귀밝기술, 더위팔기 등이 그립다. 아홉 번을 밥을 먹으려면 동네의 여러 집을 돌아야 그 아홉 번을 채울 수 있다. 어머니 어렸을 적에는 남의 집에 들러 아홉 번 밥먹기를 채웠을지 몰라도 나 어렸을 적에는 밥 먹기 아홉 번까지는 어려웠고 친구 서너 집 정도 찾아가서 오곡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지금에는 오곡밥 아홉 번은 먹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집에서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을 다해서 먹는 집도 드물 것이다. 

  보름날 전날 저녁 아홉 가지는 어렵고 네 가지 나물을 했다. 무조림, 콩나물무침, 고사리나물과 이름 모를 나물 한 가지. 이름 모를 나물은 내 이웃이, 자기 다니는 직장에서 전국 팔도사람들 모이는 전국총회에서 충청도사람한테서 받았다는 나물이었다. 마른 나물이 차곡차곡 채워진 양파망 한 망을 나에게 던져준 지가 작년 초겨울이었던가. 이 이름 모를 나물을 볶아놓으니 부드럽기 그지없고 식감도 매우 좋아 나물담은 접시가 비워지는 게 아까울 정도로 맛있었다. 

세 가지 나물을 덜어 담고 팥 삶고 강낭콩, 밤콩 삶아 찹쌀 반 되씩 담아 놓고 가져가라고, 가져가라고 애원해도 다들 바빠서 못 오는 정월대보름 이브. 이러니 밥 아홉 번은 고사하고 한 번도 못 얻어먹을 사람들 쯧,쯧,쯧.  

할 수 없이 대보름날 아침에 일어나 솥적은 솥에 오곡밥 두 솥하여 나물과 함께 두 집에 직접 갖다 줬다. 한 집에서는 “정월보름날 오곡밥과 나물도 먹어보네” 하면서 답례로 구운 김 10봉지를 줬다. 구운 김 10봉지를 들고 오다가 골목입구 미장원집에 들러 1봉지 주고 4봉지는 한 지인에게 줬다. 공짜로 얻은 것들은 원래 내 것이 아니기에 다시 여러 사람과 나눠야한다. 


오곡밥에 넣은 팥이며 강낭콩, 밤콩, 찹쌀은 우리 어머니께서 주신 선물이다. 어머니 또한 팥은 지인에게 찹쌀은 이모에게 받은 것이라고 한다. 선물은 이렇게 피라미드처럼 퍼지고 꼬리를 물고 연결된다. 선물 식재료는 노동력이 첨가되어 더 감동적인 선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한 집에 주면 세 집이 나눠먹고 답례가 오가고 그 답례가 여러 집을 거치게 된다. 



  화폐의 순환은 신용창출로 통화량이 증가하지만 선물(증여)의 순환은 사람관계와 믿음이 창출된다. 선물(증여)이 전달되는 모든 경로를 알게 되면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공동체에 기여할 것을 스스로 찾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선물(증여)가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기반으로 유통되기 때문이다. 선물경제의 관계창출론이라고 할까.  화폐는 시간이 가면 이자가 붙지만 선물은 시간이 가면 곰팡이가 붙을 수 있다.  유효기간 내 써야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빨리 넘겨야 하는 것도 있다. 선물은 화폐보다 더 빨리 순환되기도 하고 결국 노화되고 소멸하게 된다. 순환되고 소멸된 자리에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남게 된다. 

  얼마 전부터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기 생활체험기를 쓰고 있다면서 동네방네 나팔을 불고 다녔다. 여러 사람들이 트렘폴린, 전자렌지, 딸의 옷을 줄 수 있다고 알려왔다. 나는 다시 동네사람 만나는 자리마다 “전자렌지 안 필요해?  트렘폴린도 있는데. 누가 동글이청소기와 작은청소기 바꾸고 싶다는데 그럴 맘 있어? 안 쓰는 거 사람들한테 줄 만한 거 없어?” 라고 묻는다. 이렇게 해서 시흥동 벽산아파트 사람하고 우방아파트 사람에게 서로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트렘폴린을 증여케 했다.


독산3동 녹색장터 운영회의 때 회의참여자들 간에 하프바이올린 증여약속이 이뤄지기도 했다. 증여로 모르는 사람들 간에 사적인 관계가 생겼다. 또 그냥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도 하프바이올린을 주고받아서 친밀한 사적관계가 생겼다. 하프바이올린이 켜질 때마다 증여자를 기억할 것이다. 아이가 커서 하프바이올린이 작아졌을 쯤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증여되고 바이올린은 그렇게 낡아질 것이다. 하프바이올린 어린 연주자는 살아가는데 뭐가 젤로 중헌지를 느끼게 되고 자기와 가족을 둘러싼 주변의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고민이 생겼다. 증여를 약속한 물건의 보관 그리고 증여자와 수증자의 연결을 스마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증여약속을 해도 물건을 가져와 보관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아 증여 약속자의 집에 그대로 두고 있다. 증여 받은 물건은 빨리 새로운 임자를 찾아줘야 할텐데….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신방물장수처럼 돌아다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다. 이에 대한 묘수가 떠오르질 않는다. 증여 물건의 보관과 연결에 대한 당신의 아이디어를 선물해주기 바란다(연락처:010-2774-9276)



김현미

[기고]미국의 정보 보고서 - “글로벌 트렌드” 





법치를 추상같이 외치던 박근혜 정부의 실상이 법꾸라지들의 난장판이었음을 이제 세 살배기도 안다. 그런데 민주공화국을 겪어 보지 못한 이들이 민주(民主)라는 과정과 공화(共和)라는 지향 대신에 지배자에 대한 무조건 복종을 말하는 봉건 왕조적 발상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다. 문제는 이들이 이런 역사적 추태와 퇴행을 마치 대한민국을 지키는 충성쯤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상징을 태극기로 삼고 자기들의 행위가 애국이라고 생각한다. 


애국이라는 말이 악당들의 의지처요, 바보들의 도피처라는 점에서 설핏 뭐 무식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들이 생뚱맞게도 태극기와 함께 미국기를 들고 설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미국인들도 갸웃할 괴행(怪行)이다. 이른바 보수의 전형은 역사적 자존심을 제대로 지키는 지사(志士)형의 인물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현대사에서는 보수의 전형은 백범김구 쯤 되리라. 역사적으로도 병자호란 당시 끝까지 투쟁하자는 김상헌의 척화파와 현실을 인정하고 종전하자는 최명길의 화의파가 논쟁을 할 때 척화파가 보수의 모습이다. 자기 땅에 침략한 남의 군대를 증오하고, 자기 땅에 존재하는 남의 군대를 치욕적으로 생각하며 아파하고 그것을 격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안보에 대한 보수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데 유독 보수를 자처하는 한국에서는 보수가 외세를 환영하고 외세에 의존한다. 참으로 기괴(奇怪)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도 곰곰이 생각하면 한국의 비극적인 현대사의 필연적 모습이다. 친일파들은 생존을 위해 친미파가 되었으며, 자기들의 역사적 범죄를 가리기 위해 갑자기 반공의 전사가 된다. 하지만 이들은 6.25를 통해 미국 없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처절한 경험을 한다. 이른바 한국군의 3일 버티기는 3일만 버티면 미국이 구하러 온다는 식의 6.25 트라우마의 발현이자 이들의 존재 자체가 사대 망국의 뿌리 위에 핀 썩은 곰팡이 신세라는 것을 보여준다. 북에 비해 모든 것이 양적으로 우세해도 작전권조차 가져오지 못하는 겁쟁이 모습의 뿌리다. 그 결과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반공 반북을 소리 높여 외치되 물리력은 무조건 미국에 의존하면 된다는 상징이 한손엔 태극기와 다른 손엔 미국 국기를 들게 된 것이다. 결국 이들의 득세는 한반도의 분단 증오 전쟁이고 이를 위해 사대 매국 부정부패 특권 반칙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 절정이 박근혜정권의 모습이다. 그 찌질 함의 극치가 성조기요 헌재에서 보여주는 박근혜 변호사들의 모습이다. 


그러면 미국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직접적인 언급은 아니지만 최근에 번역된 책이 하나 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가 발행하는 세계 미래예측 보고서 <글로벌 트렌드>다. 매 4년마다 향후 20년을 내다보는 민간에 공개하는 미래 예측 보고서다.

국가정보위원회(NIC) 9.11 사태 후 신설된 CIA 등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장(DNI) 산하 조직이고 이들은 연간 700억 달러(약 80조 원)의 예산을 쓴다. 실제 9.11 테러는 미국을 대외적으로 상시 전쟁국가로 만들고 대내적으로 모든 국민의 감시 체제 속에 가두는 경찰국가로 만들었다. 형식적인 미국식 민주주의조차 이른바 애국과 국가주의에 질식사 한 꼴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한국보다 낫다. 기밀이라는 이유로 정보를 감추고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를 한다. 그 이유를 국가정보위원회는 “미래의 위험과 기회에 관해 공개 토론을 고무하는 것, 보안이란 이유가 1~2년 이상을 내다보는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은 전문가와 공무원뿐 아니라 학생, 여성단체, 기업가, 투명성 옹호자 등과 폭넓게 접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보는 비밀이 아니라 공개 토론 접촉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청와대는 국가 비밀이라 범죄 조사를 위한 방문조차 막는 한국과는 참으로 다른 모습이다. 


보고서는 단기적으로 세계적 경제 침체로 인해 세계화가 멈추고 각 국이 섬처럼 떨어지는 고립주의로 경사될 것으로 본다. 갈등의 시간이란 말이다. 그런데 NIC는 놀랍게도 지금의 위험을 잘 극복하려면 "여성이든 소수집단이든 아니면 최근의 경제·기술 추세로 타격을 입은 사람이든 모든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내서 포용하는 사회"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힘과 경쟁 체제가 아니라 패자부활, 사회, 공동체적 가치를 강화하는 사회가 위기를 벗어날 힘을 가진다고 강조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과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나 다름없다. 이런 성찰을 할 수 있는 힘이 미 제국주의의 보이지 않는 힘이리라. 


보고서는 국제적 문제의 해결을 개입과 강제로 풀어왔던 미국의 모습도 반성한다.

"이처럼 명백한 혼란에 대해서는 질서를 강제하는 것(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이 솔깃한 유혹으로 다가오겠지만, 궁극적으로 그러한 조치는 단기적으로 비용이 너무 크며 장기적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전제로 한반도 정세를 보지 못하고 6.25적 시절의 사고로 21세기를 사는 한국의 수구 정치세력의 낡음이 기가 막힌데 여기에 휘말리는 노인층의 무지와 맹목과 광신은 정말 끔직하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의 언급은 세계 최고령 국가 대열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부록으로 동남아시아 정세를 개괄하는데 보고서는 미국의 경쟁자인 중국에 큰 관심을 쏟고 있으며, 그 뒤로 일본과 인도, 인도네시아를 언급한다. 독자적으로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것이 미국이 보는 한국의 위상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국익을 제치고 무조건 남한을 지지하며 하늘같은 은혜를 베풀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전 통일부 장관 송민순씨는 자칫 한국이 살계경후(殺鷄警猴)를 당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닭을 죽여 원숭이에게 경고를 한다는 것으로 일벌백계와 같은 말이다. 만만한 한국이 트럼프 미국에서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대상이 되어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경고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장제모칼럼]    공공(公共)의 의미




금천구 ‘서서울미술관’ 건립에 따른 주민설명회가 있었다. 미술관이 들어오는 곳은 금천구청 뒤쪽 롯데캐슬 아파트 건설을 하면서 함께 조성된 금나래 중앙공원 내로 이 아파트 입주자들이 반대를 한다고 하여 걱정이 되었는데 별 문제없이 설명회가 끝나 다행이다. 전언에 의하면, 이 아파트 입주자 측 반대(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이유는 미술관이 건립되는 공간은 당초 단지 내의 근린공원으로 알고 있었는데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은 공원 면적의 축소이고 따라서 목적의 차이가 있으므로 약속 위배라 한다. 쉽게 이해를 하면, 입주 계약 시 알고 있던 순 공원 면적이 미술관이 들어서게 되면서 줄어들 게 되므로 불공정 거래로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당국자가 배포한 안내를 보면 이러한 의혹의 여지는 없다. 아파트단지 조성 때 사업시행자로 부터 공공용지가 통상적 절차에 의해 기부 체납되었고, 이제 그 곳에 취지에 부합하는 사업시행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제가 제기된 이유를 알아보니 공공용 부지는 확보하였으나 분양 안내서 제작 시에는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지 않았으므로 단지 공원으로만 표기 했었는데 이후에 서울시 공모를 통해 미술관 건립 결정이 된 데 따른 정보전달상의 문제라는 것이다.


설명회가 별 다툼 없이 끝났다 하여 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장담은 아직은 이른 것 같다. 우선 계획된 내용대로 진행될 것인가는 확정이 되지 않았으며, 주민 반대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미술관의 건립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가지는 주민들이 많으므로 준비된 사업의 충실성을 기하는 과정에 주민 참여 폭을 넓힌다면 있을 수 있는 주민 저항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며 더불어 준비된 사업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문제, 즉 국가(지방자치단체 포함) 주도 공공사업에서 주민 저항이 있을 경우를 상정하여 생각해 볼게 있는데 그것은 당국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분명히 필요한 사업이고 그 절차도 하자가 없는데도 주민들이 반대를 할 경우가 있고, 이럴 경우 사업이 변경되거나 심지어는 취소되는 경우가 있다. 사업의 변경은 민원의 성격에 따른 조정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될 수도 있으나 취소의 경우는 문제가 있다. 


먼저 당국(정부)의 정책신뢰성 문제가 제기 된다. 취소를 해도 되는 사업을 왜 준비했는지에 대한 비판을 넘어 정책 불신으로 연결되게 되어 국정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비용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비용 지출에 더하여 관계자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쓸모는 없으면서 비용만 잔뜩 쓴 결과 곧 예산 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 보다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주민의 신뢰 추락이다. 행정당국이 가장 중요하게 가져야 할 가치 즉 주민의 신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뢰를 결여한 정부권력은 존재 가치를 가지지 못함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간 우리사회에서 정부의 대 주민 신뢰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례는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하여 국민의 대 정부 신뢰는 실추된 경우들이 많다. 지방정부라 하여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더 심각한 경우조차 있다. 어떤 지방정부는 재정 부족으로 공무원 급여조차 못 줄 형편이 되는 등 사실상 파산경지에 도달한 경우도 있다. 살펴 보건데 이러한 경우에서 공통점은 당국의 무모한 사업 시행이고 대개는 지나치다 할 포퓰리즘적 정책시행으로 인한 결과다. 


그런 한편 민원(民願)이 민원(民怨)이 되는 경우가 있다. 국가적 공공사업이라 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넘어 생존권적 문제가 있는데도 강행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에너지 정책을 내세워 원자력 이용 시설 등 방사능 누출 우려가 있는 사업 강행과 같은 것이 그런 사례다. 물론 국가형편상 필요성이 있을 수 있으나 그로 인한 우려해야 할 문제가 있고, 그것은 먼 훗날의 문제 즉 후손에게 끼칠 나쁜 영향을 생각해 볼 때 그 시행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런 저런 경우를 포함하여 시행자 측(여기서는 정부 등 당국)과 주민과의 다툼이 있게 되는 국가사업의 시행이 잦은 것이 현대사회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하루하루가 변화의 시간들을 맞고 있다. ‘변화가 없다면 발전도 없다’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러한 다툼들은 더러는 원안 취소라는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조정을 통한 타협으로 어떤 형태로던 시행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유의해야 하는 것은 타협으로 시행되는 경우를 모두 긍정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공공의 원칙’이 준수된 결과라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현실은 지적받을 만한 사례들이 있다. 타협이 공공의 원칙이 배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툼의 원인이 되는 민원이 다분히 배타적 이기주의적 접근인데도 ‘정치적 배경이 있다고’, ‘시끄럽고 귀찮다고’ 수용되는 유형이 그런 것이다. 공공사업에서 타협이란 어떤 형태로던 공익을 전제하여 서로가 조금씩 양보를 통한 합의를 하되 궁극적으로 공공성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민원을 대할 때 당국자의 자세는 중요하다. 공공에 반하는 세력과 타협하거나 굴복함으로 잘 준비해 둔 공공사업을 수정 또는 포기하는 정부는 결코 국민의 신뢰를 구할 수 없다. 주민들의 반대가 있더라도 그것의 공공성 확신이 있다면 모든 노력을 기울여 성사를 시켜야 하지 취소하거나 굴종적 타협을 하는 것은 정책불신의 이유를 만든다. 당국이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는 대민 신뢰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보다 더 강력한 지지 기반은 없다.


이제, 국민 즉 주민들의 자세를 이야기해 보자. 공공사업이 객관적 공공성을 가짐에도 특정 집단의 이익에 반한다며 오직 자기 논리만 내세우며 반대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가 하면 상대적 유익을 구하기 위한 기획민원도 없지 않다. 즉 반대를 통해 반사이익을 구하려는 행태가 그것으로 공공의 정신으로 볼 수 없는 전형이다. 공동체에서 주민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가치는 ‘우리’이고 그것은 곧 공공(公共)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에 대한 이해를 해보자. 일정 공간에서 특정 목적을 두고 찬·반 다툼이 있을 때 이해를 같이하는 집단들을 ‘우리’라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고 ‘저희’라 하는 것이 맞다. 그 공간의 공동체의 전체 구성원이 주체이고 다툼 당사자는 각 객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는 공공성을 찾을 수 없는 대신 배타적 이기주의만 볼 수 있다. 곧 공공의 실종이다.


배타성이 존재하는 곳에는 ‘우리’란 있을 수 없다. ‘우리’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모두가 함께 공동의 행복을 추구할 때 비로소 존재한다. ‘우리’란 함께 행복해 지는 것을 가치로 두어야 하고, 더 나아가 오늘의 우리 행복에 더하여 미래 즉 우리 들 후손의 행복을 보장하게 될 때 더한 가치를 가진다. 진정한 ‘우리’란 현재와 미래가 함께 행복해 지는 것을 추구하는 집단이어야 한다.


공원(公園)의 글자 풀이를 해 보면 공공의 정원(庭園)이다. 생활공간 가까이 푸른 초원에 꽃과 나무들이 조화롭게 자라고 맑은 물의 담긴 호수가 있고 그 공간에 다중을 위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시설인 미술관이 있다. 얼마나 멋진 구성인가? 금나래 중앙공원에 건립되는 ‘서서울미술관’은 이런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곳은 모든 계층이 함께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미술관이라 하여 ‘그 명칭에 특정된 공간’이 아니고 또한 ‘전문가(미술 등 예술가)만의 공간’이 아닌 ‘모든 것과 모두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의 ‘우리’의 공간에서 머물지 않고 내일의 ‘우리’ 공간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 수 있게 우리 모두 뜻을 모으자!(♣2017.2.23.)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칼럼]“무죄지만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 4년”






지난 2월 3일, 대법원은 수서발 KTX ‘우회(迂廻) 민영화’에 반대해 벌인 철도노조의 2013년 23일간의 파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불법 파업이라며 업무방해죄로 기소한 건인데 4년 만에 무죄를 확정한 것이다. 당시 경찰은 철도파업에 대하여 파업 지도부를 체포한다는 명분으로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하고, 전국에 수배조치를 내리는 등 국가적 난리를 쳤다. 그 호들갑의 결론은 무고한 사람을 잡으려 했던 해프닝이자 과잉폭력이었다. 대법원 판결은 노조가 아니라 철도민영화를 강행하기 위해 박근혜정권과 그에 부역한 공권력이 자행한 행위가 불법이라는 결론이다.  


파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이다. 헌법이 보장한다는 것은 하위 법률로 이를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직 재벌 살리기, 국가 재산 팔아먹기에 혈안이 된 현 정권과 그 아바타 철도공사는 노동법을 피해 형법상의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처벌했다. 파업은 원래 그 자체가 업무를 정지시키는 행위다. 그러니 파업의 본래적 의미를 민 형법으로 막는 법 적용은 헌법적 권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존재 자체가 위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년 IMF 환란 이후 거대하게 몰려 온 신자유주의적 야만은 헌법적 기본권인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와 손배 가압류로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 줄을 끊었고 정당한 파업을 파괴했다. 근대법의 원칙 중에는 ‘사회법 특별법 우선 적용의 원칙’이 있다. 만약 노동법과 형법이나 민법이 충돌하면 노동법을 우선 적용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 이후 현재까지 정권들은 검경을 통해 집회및시위법 대신에 일반도로교통방해 혐의를 적용하고 있는데 이것도 법적용의 원칙을 물구나무 세운 부당한 법질이다. 이런 식의 자의적 법 적용은 법과 공권력으로 정의의 잣대가 아니라 민에 대한 흉기로 만든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합법적이라는 것, 정당하다는 것은 정부도 철도공사도 이미 알고 있다. 왜냐면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의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쟁의행위의 정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 파업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려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경우에 한 한다”고 확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노조는 모든 파업의 절차를 다 거쳤다. 그럼으로 파업의 내용의 적정 여부와 상관없이 불법 파업일 수 없고 더더구나 업무방해는 아니라는 점이다. 알면서도 돈과 권력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조건 불법으로 몬다. 그 이유는 파업을 막으려는 것도 있지만 더 깊게는 노동조합을 파괴하겠다는 의도다. 


노조를 파괴하는 방법은 파업을 불법으로 몰고 다수 간부와 중심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대량 징계를 때린다. 징계는 어떤 형태 든 노동자들의 생활을 파괴하고 생존을 위협한다. 철도노조의 경우 한번 파업에 수십 명의 해고 수백 명의 징계가 따른다. 이것을 통해 노조의 중심 간부들을 제거하고 일반 조합원들에게 노조 활동은 어렵고 힘들며 심지어 탄압을 받는다는 것을 시위하여 일벌백계(一罰百戒)의 효과를 노려 적극적인 노조활동을 원천봉쇄한다.


 더 무서운 것은 무죄를 확인 받기 위해 필요한 저 4년의 시간이다. 4년의 공백이 만약 중소규모의 노조라면 견딜 수 없는 무게가 되어 노조를 짓누른다. 그러니 자본은 해고나 징계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장 안에서 민주노조의 중핵을 제거하는 시간 4년을 버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충분하다고 믿는다. 무죄이면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 4년, 이것은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는 불지옥을 사는 시간이다. 생계가 파탄 나고, 가정이 깨지거나 어려워지고, 몸 마음이 다 황폐해지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대한 보상도 없다. 한국의 노동법은 원상 회복주의에 기초해 있어 해고기간에 임금만 주면 다 된다는 식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을 때 항상 보이는 광고문이 있다. 부정 승차 시 30배의 비용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저들은 우리에게 30배의 징벌을 쉽게도 부과하면서 생계와 가정과 삶을 파괴한 부당해고라는 살인행위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버스비만도 못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존권이다. 지금도 노동자들은 쉬운 해고 반대로 싸우지만 실상 노동자들의 해고 징계 비용은 너무나 저렴하다. 부당해고가 결정되면 최소 3~5배로 누증된 임금이나 임금만큼 추가되는 인격적 정신적 보상이 필요하다. 그럴 때만 자본은 사회적 살인인 해고나 노조에 대한 불법 탄압에 대해 보다 신중해 질 것이다. 


파업의 빌미를 제공한 수서 발 고속철도 SRT가 개통됐다. 알짜노선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철도공사와 무관한 별도 법인으로 되어있어 그 이익은 철도공사의 적자노선에 보전이 불가능하다. 기존 철도노선의 적자노선인 벽지노선의 운행횟수가 줄고 폐선 되는 등 공공철도 붕괴가 현실화 되고 있다. 철도민영화를 반대한 철도노조의 주장이 모두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돈을 버는 노선을 차지한 자본은 수익을 보지만 그 이득을 위해 희생된 영역, 철도민영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 돌아온다. 철도노조의 주장은 정당했고 그것을 막기 위한 파업도 정당했다. 다행히 철도노조는 대형 노조라 4년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그 시간에 무죄를 확정해도 회사가 사라져 있기도 하다. 그러니 노동자들에게 4년은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이란 말인가? 시간이 주는 불공평과 차별적 고통이 너무 심하다.   


현재에 부와 권력을 움켜 쥔 이들에게 내일은 없다. 오늘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혁신을 말하고 그 부역자들에 개혁을 말하지만 그들의 내일은 다람쥐쳇바퀴 속, 빙글빙글 돌다 비틀대며 과거로 가는 길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로 가는 길은 지금 약하고 가난한 자의 이해와 요구가 실현되는 길이다. 오늘이 지옥이라 절실하게 내일의 천국을 꿈꾸는 이들의 염원이 현실이 되는 길이다. 자본과 노동이 싸우면 노동이 이겨야 하는 이유다. 촛불과 광기의 태극기가 싸우면 촛불이 이겨야 하는 이유다. 모두 다시 빈곤과 차별 없는 광장에 촛불 횟불 들불로 서자.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최근 박건웅 작가의 <짐승의 시간>이라는 만화책을 읽었다. (故)김근태 의원(편의상 이하 ‘김근태 의원’이라 칭하기로 하자)이 민주화 운동 시절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사건으로 19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 동안 받은 고문을 그린 책이다. 책이라면 한 페이지를 채 읽기도 전에 잠들어버리는 내 남편이 다 읽을 때까지 화장실도 가지 않고 집중해서 읽은 책이다. 물론 글자만 빼곡한 책이 아니라 만화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림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만화가 나오기 전 <남영동1985>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볼 때 장면 하나하나가 마음을 아프게 찔러대던 기억이 있다. 


 <짐승의 시간>의 원형이랄까. 김근태 의원은 22일간 머물렀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있었던 일을 책으로 내게 되었다. 

 <남영동>이라는 책을 출간한 곳이 ‘도서출판 중원문화’(박정희 유신독재정권과 싸울 목적으로 1978년 설립됨)라는 곳인데 편집장(이을호 씨) 역시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았고 발행인(황세연) 또한 한쪽 눈을 실명할 정도로 5.18 당시 고문을 받았던 사람이다. 박종철 군이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한 1987년 이 책이 출간되었으니  또다시 험난한 길을 가야 한다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얼마나 비장하고 큰 결심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 책의 발행인은 독자에게 이런 한마디를 던진다.


 “독자 여러분들의 불 같은 정의가 오랫동안 남아있기를 부탁드린다.”

 이 책은 남영동에서의 일과 그 이후 구치소에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그것들에 담겨있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들로 채워져 있다. 내가 기억하는 김근태 의원은 약간 힘이 없어 보이고 목소리도 크지 않은 모습인데 그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만은 굳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2016년을 겪은 나에게 이 책은 더욱 더 진하게 다가온다. 지나간 수십 년의 세월동안 우리가 아는 사람들부터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간 수많은 민주화 열사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민주주의를 고작 몇 사람들이 뿌리째 흔들어 놓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많이 울었다. 아니 사실은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정의롭게 살다가 목숨을 잃은 그 분들의 고통과 수고로움, 그리고 그 가족들의 절규, 나는 백분의 일도 짐작할 수 없는 그 고통... 그분들의 맺힌 한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하지만 눈물이 나오는 그 순간 나는 그만큼의 노력도 없이 그저 받아먹고 있는 이 편한 민주주의의 세상에 살며 너무 값싼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나 하는 미안함에... 눈물 흘리는 것조차 민망스러워 차마 삼키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참 마음 아프게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남영동을 찾았다. 17년 전부터 다니고 있는 우리 교회가 있는 그 동네. 남영동.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올 때면 플랫폼에서 항상 바라보던 그 회색 건물. 남영동 대공분실에... 마흔이 된 이제야 가게 됐다. 이제야 찾아가게 되어 부끄럽다. 그리고 많이 미안해진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찾아간 그 곳. 이제 막 11살 된 딸, 8살 된 아들과 가려니 (솔직히) 조금 무서운 마음도 든다. 그럴 리 없겠지만, 어디서 왔는지, 누군지, 왜 왔는지 물을 것만 같고, 어디 가서 조사받을 것만 같다. 그래서 아는 이들과 함께 갔다. 내가 평소 겁이 없는 인간에 속하는데도 그제야 안심하고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뀐 남영동 대공분실. 김근태 의원이 무거운 중압감을 느꼈다는 1미터 정도 두께의 철문, 그리고 몇 층인지 알 수 없게 건축가 김수근이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 소용돌이 계단, 그리고 겨우 한 뼘 정도 되는 조사실(고문실)의 창문... 그리고 욕조...


 마음을 짓누른다. 아무도 없이 달랑 우리 일행만 있는 5층 조사실이 마치 이 세계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듯한 느낌마저 준다. 지인들과 함께 오지 않고 아이 둘하고만 이곳을 찾았다면 음산한 무거움에 눌려 몇 초 있지 못하고 바로 바깥으로 나와 버렸을 것만 같은 곳...

 <짐승의 시간>과 <남영동>을 읽고서 며칠간 머리가 하얘진다. 생각하느라 잠시 모든 생각을 미루게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 아마 한동안은 이 상태로 지내게 될 것 같다. 


 요즘은 김근태 의원의 에세이집 <희망은 힘이 세다>를 읽고 있다.

 남영동에서 나온 지 15년이 지난 1999년 가을, 매일경제신문에서 김근태 의원은 이 시절을 회상하며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아들애가 대여섯 살 때의 일이다. 부천 YMCA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란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였더니 검은 승용차 뒷자석 가운데 왜소하게 끼여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양켠에는 건장한 사내들이 검은 안경을 낀 채 떡 버티고 앉아 있고.


 유치원 선생님들이 그 그림 제목을 ‘우리 아버지’가 아니고 ‘자랑스러운 우리 아버지’라고 고쳐 쓴 다음 다른 애들 그림과 함께 전시해주었다. 애 엄마는 그 그림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들의 배려가 고마워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대학생이 된 아들이 그 때의 무거운 기억들 때문에 위축되어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젊은이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김근태 의원은 자율과 책임, 그것이 우리 사회의 기본 축이 되는 그런 날을 그리워한다. 그곳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고백을 한다. 


 생각하는 것들, 소신을 삶으로 살아내며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분들. 100% 만족하지 못하지만, ‘아직은 멀었다’라고 가끔은 한탄하게 되는, 그러나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이 민주주의 사회는 지나간 어둠의 시절에 그 분들이 민주화를 위해 목숨과 삶을 내어놓고 군부독재의 추악한 폭력, 끈질긴 억압과 싸운 덕분이리라.

 작년 10월말쯤부터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끼며 살고 있다. 박근혜, 최순실과 그의 악당들, 아니 그 이전 이승만, 박정희부터 이어온 파렴치한 권력자들을 향한 분노와 절망은 단지 나 혼자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책이 다 무어고 민주주의가 다 무어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건 곧 역사가 되고, 삶이 곧 정치다. 정치와 삶은 직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민주화 열사들이라고 불리는(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이루고 지켜온 민주주의를 올바로 지켜내기 위해 결코 침묵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의 공판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민주화 실현을 위해 국민으로서, 그리고 자기 자리에서 민주화를 향해 나가는데 기여하고 자극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충심으로 희망합니다...(중략)... 민주화의 실현을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했으며,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시 반성해야 하고, 민주화 실현을 위해서는 그 누구도 면제되고 제외될 수 없는 것입니다. 민주화가 이룩되는 날에 나는 민주화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당신은 민주화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를 서로 반문하고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중략)...”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조혜진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마을에서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는 생활체험기-1

고구마와 통기타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더 깨끗하게 사는 생활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이런 편리한 생활은부작용을 남기고 누군가 그 부작용을 감당해야 하거나 지구가 점점 파멸에 이르지 않을까 라는 불안한 예상을 하면서도 소비를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생활의 편리는 찾았을지 몰라도 더욱 여유롭고 행복해졌는가? 라는 대답에 쉽게 ‘예’ 라고  답할 수도 없다.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우리는 더 일하고 더 많이 벌어야 한다. 끈임없이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계속 소비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번듯한 일자리로 돈 벌 기회조차 갖는 것이 어려운 시절이다.

  돈없이도 가능한 삶, 정확히 말하자면 돈을 적게 가지고도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를 실험해보고 싶었다. <마을에서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기>는 극단적으로 소비를 억제하는 고통스러운 생활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서로 가진 것을 나눠 쓰고 바꿔 쓰는 실천을 일상에서 해보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는 교환경제보다 얼마나 더 행복감을 주는지, 증여•선물경제를 통하여 느껴지는 연대나 우애, 증여자의 인격 등을 기대하면서 생활체험기 <마을에서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몇 주 전 어떤 회의자리에서 안지성 목사님으로부터 통기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새터에서 청소년 통기타반을 운영하는데 수강생 수에 맞춰 통기타를 구비하지 않았다며 집안에서 놀고있는 통기타 수배를 내렸다. 나는 우리집에 있는 통기타 하나를 갖다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날 회의가 끝나자 안목사님은 시골에서 농사지어 올라온 고구마를 회의참석한 사람들에게 선물하셨다. 썩기 전에 얼른 가져가서 나의 고민을 덜어주라면서 고구마 선물받는 사람들의 심적 부담까지 가벼이 해주었다. 선물받은 고구마 중 일부는 건강한농부협동조합에 와서 목공수업 온 학생들의 군고구마 간식이 되었고 또 남은 고구마는 방문객들이 생으로 깍아먹는 주전부리가 되었다. 선물의 미학은 이런 것이다. 선물 받은 고구마가 누구누구에게 전달되었는지 누가 맛있게 먹었는지 알 수 있고 서로 감사하고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또 선물 받은 자는 고구마 선물에 대한 만족감과 감사함으로 답례선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으리라. 우리가 고구마를 산 마트에 가서 구입한 고구마로 누구누구랑 나눠서 맛있게 먹고 누구는 정말 감사하다고 하더라 이런 말을 전할 수 있는가?  선물은 최초 선물한 사람부터 최종 선물 받은 자까지 선물의 경로를 알 수 있으며 그 사람들의 마음씀씀이까지도 느낄 수 있다.


  우리집에 먼지를 쓰고 있는 통기타는 금천인 이성호 편집국장이 2년 전인가 나에게 증여한 것이었다. 그때는 독산고 매점에 갖다두고 아이들이 방과후 통기타를 치는 장면을 상상하며 냉큼 기타를 받았다. 매점에서 아이들은 기타 '등등' 조차 치지 않았다. 자리만 차지하는 기타를 매점에서 가져와 집에서 8개월을 묵힌 후 새로운 주인(통기타반 청소년)을 찾아줬다.  우리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무언가 3년을 두면 쓸 일이 꼭 생긴다고, 다만 많은 것들을 3년 묵히기에는 집이 개판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선물은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행복하나니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여 선물받고 싶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좀 느긋이 기다려야 한다. 누군가의 필요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응답하기에는 몇 주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24시간 내내 불을 켜고 지갑들고 어서 오라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필요를 당장에 사야하는 사람은 선물경제인이 되기 어렵다.  필요한 것을 바로 충족시키지 않고 불편함을 참으면서 좀 기다려야 한다. 꼭 필요한 선물을 받아들고 선물을 준 사람에게 ‘이 사람이 내 마음을 잘 알고 있구나’ 라는 우애의 정을 느껴보는 마을생활 신나지 않은가.



김현미



[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무죄지만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 4년”





지난 2월 3일, 대법원은 수서발 KTX ‘우회(迂廻) 민영화’에 반대해 벌인 철도노조의 2013년 23일간의 파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불법 파업이라며 업무방해죄로 기소한 건인데 4년 만에 무죄를 확정한 것이다. 당시 경찰은 철도파업에 대하여 파업 지도부를 체포한다는 명분으로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하고, 전국에 수배조치를 내리는 등 국가적 난리를 쳤다. 그 호들갑의 결론은 무고한 사람을 잡으려 했던 해프닝이자 과잉폭력이었다. 대법원 판결은 노조가 아니라 철도민영화를 강행하기 위해 박근혜정권과 그에 부역한 공권력이 자행한 행위가 불법이라는 결론이다.  


파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이다. 헌법이 보장한다는 것은 하위 법률로 이를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직 재벌 살리기, 국가 재산 팔아먹기에 혈안이 된 현 정권과 그 아바타 철도공사는 노동법을 피해 형법상의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처벌했다. 파업은 원래 그 자체가 업무를 정지시키는 행위다. 그러니 파업의 본래적 의미를 민 형법으로 막는 법 적용은 헌법적 권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존재 자체가 위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년 IMF 환란 이후 거대하게 몰려 온 신자유주의적 야만은 헌법적 기본권인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와 손배 가압류로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 줄을 끊었고 정당한 파업을 파괴했다. 근대법의 원칙 중에는 ‘사회법 특별법 우선 적용의 원칙’이 있다. 만약 노동법과 형법이나 민법이 충돌하면 노동법을 우선 적용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 이후 현재까지 정권들은 검경을 통해 집회및시위법 대신에 일반도로교통방해 혐의를 적용하고 있는데 이것도 법적용의 원칙을 물구나무 세운 부당한 법질이다. 이런 식의 자의적 법 적용은 법과 공권력으로 정의의 잣대가 아니라 민에 대한 흉기로 만든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합법적이라는 것, 정당하다는 것은 정부도 철도공사도 이미 알고 있다. 왜냐면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의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쟁의행위의 정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 파업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려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경우에 한 한다”고 확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노조는 모든 파업의 절차를 다 거쳤다. 그럼으로 파업의 내용의 적정 여부와 상관없이 불법 파업일 수 없고 더더구나 업무방해는 아니라는 점이다. 알면서도 돈과 권력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조건 불법으로 몬다. 그 이유는 파업을 막으려는 것도 있지만 더 깊게는 노동조합을 파괴하겠다는 의도다. 


노조를 파괴하는 방법은 파업을 불법으로 몰고 다수 간부와 중심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대량 징계를 때린다. 징계는 어떤 형태 든 노동자들의 생활을 파괴하고 생존을 위협한다. 철도노조의 경우 한번 파업에 수십 명의 해고 수백 명의 징계가 따른다. 이것을 통해 노조의 중심 간부들을 제거하고 일반 조합원들에게 노조 활동은 어렵고 힘들며 심지어 탄압을 받는다는 것을 시위하여 일벌백계(一罰百戒)의 효과를 노려 적극적인 노조활동을 원천봉쇄한다.


 더 무서운 것은 무죄를 확인 받기 위해 필요한 저 4년의 시간이다. 4년의 공백이 만약 중소규모의 노조라면 견딜 수 없는 무게가 되어 노조를 짓누른다. 그러니 자본은 해고나 징계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장 안에서 민주노조의 중핵을 제거하는 시간 4년을 버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충분하다고 믿는다. 무죄이면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 4년, 이것은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는 불지옥을 사는 시간이다. 생계가 파탄 나고, 가정이 깨지거나 어려워지고, 몸 마음이 다 황폐해지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대한 보상도 없다. 한국의 노동법은 원상 회복주의에 기초해 있어 해고기간에 임금만 주면 다 된다는 식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을 때 항상 보이는 광고문이 있다. 부정 승차 시 30배의 비용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저들은 우리에게 30배의 징벌을 쉽게도 부과하면서 생계와 가정과 삶을 파괴한 부당해고라는 살인행위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버스비만도 못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존권이다. 지금도 노동자들은 쉬운 해고 반대로 싸우지만 실상 노동자들의 해고 징계 비용은 너무나 저렴하다. 부당해고가 결정되면 최소 3~5배로 누증된 임금이나 임금만큼 추가되는 인격적 정신적 보상이 필요하다. 그럴 때만 자본은 사회적 살인인 해고나 노조에 대한 불법 탄압에 대해 보다 신중해 질 것이다. 


파업의 빌미를 제공한 수서 발 고속철도 SRT가 개통됐다. 알짜노선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철도공사와 무관한 별도 법인으로 되어있어 그 이익은 철도공사의 적자노선에 보전이 불가능하다. 기존 철도노선의 적자노선인 벽지노선의 운행횟수가 줄고 폐선 되는 등 공공철도 붕괴가 현실화 되고 있다. 철도민영화를 반대한 철도노조의 주장이 모두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돈을 버는 노선을 차지한 자본은 수익을 보지만 그 이득을 위해 희생된 영역, 철도민영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 돌아온다. 철도노조의 주장은 정당했고 그것을 막기 위한 파업도 정당했다. 다행히 철도노조는 대형 노조라 4년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그 시간에 무죄를 확정해도 회사가 사라져 있기도 하다. 그러니 노동자들에게 4년은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이란 말인가? 시간이 주는 불공평과 차별적 고통이 너무 심하다.   


현재에 부와 권력을 움켜 쥔 이들에게 내일은 없다. 오늘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혁신을 말하고 그 부역자들에 개혁을 말하지만 그들의 내일은 다람쥐쳇바퀴 속, 빙글빙글 돌다 비틀대며 과거로 가는 길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로 가는 길은 지금 약하고 가난한 자의 이해와 요구가 실현되는 길이다. 오늘이 지옥이라 절실하게 내일의 천국을 꿈꾸는 이들의 염원이 현실이 되는 길이다. 자본과 노동이 싸우면 노동이 이겨야 하는 이유다. 촛불과 광기의 태극기가 싸우면 촛불이 이겨야 하는 이유다. 모두 다시 빈곤과 차별 없는 광장에 촛불 횃불 들불로 서자.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노근리, 그 해 여름>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주인공 은실이는 동생 돌보고 집안 일을 돕는 것보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친구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열두살 소녀이다. 큰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큰 언니 금실이와 가끔 비교되는 것이 속상하기는 하지만 가족들이 열심히 농사짓는 덕에 굶을 걱정은 없다.


그러나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은 충북의 깊은 산골 마을에도 예외없이 불어 닥치고 미군들의 명령에 따라 새로운 삶을 찾아 피난을 떠나지만 미군은 노근리 쌍굴에 피난민들을 밀어넣고 무차별 총질을 한다. 은실은 노근리 쌍굴에서 겨우 살아오지만 그 때의 충격으로 목소리를 잃고 죽은 엄마와 동생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있어 더 슬픔 삶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이 이야기는 1999년 미국 AP통신에 의해 알려져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밀려오는 인민군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했던 사람들에게 ‘피난민들을 적군으로 대하라'라는 명령 한 마디에 미군들은 양민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유도 모르고 죽어야만 했던 가족들과 이웃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알려야만 했고 이 때의 처참함에 대해 알려야했기 때문에 굴 속에 흐르는 핏물을 먹고 죽은 시체에 기어다니는 구더기를 먹으며 그들은 살아남아야 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일본의 식민지와 6.25전쟁, 민주주의를 향한 끝없는 항쟁으로 이루어진 슬픈 역사이지만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가진 역사이다. 이 나라의 백성들은 은실의 아버지처럼 그저 성실하게 나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세상이 공평하고 살만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만을 고민하고 백성 위에 군림하며 자신의 권력을 내려 놓지 않으려고 백성의 목숨도 쉽게 빼앗아갔다. 그러나 짓밟히는 백성들은 결코 쓰러지지 않고 잡초가 되어 다시 일어나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발, 우리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달라고.....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유 문 주

주민자치 입법을 논(論)하다


‘주민자치’에 대한 정책시도는 꽤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유효한 정책이 없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우선 비판부터 제기해야겠다. 이런 저런 이유야 있겠지만 핵심은 행정당국이 시행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책을 마련하고 무려 17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제도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여기서의 ‘주민자치’란 읍·면·동(주민 센터)의 해당지역 주민을 구성원으로 하는 ‘주민자치위원회’를 말함이다. 이 제도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에 도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실질적인 ‘주민자치’로 볼 수 없는 역할, 즉 주민복지, 여가 등의 프로그램 운영과 주민 센터 자문(사실상 업무 보조)이 전부인 것이 현재 모습이다.


1992년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문민정부인 김영삼(문민)정부에서 김대중, 노무현정부에 이르는 연속 된 15년은 민주주의 확대 적기였음에도 풀뿌리 민주주의의 원형인 ‘주민자치’가 시행되지 않은 것은 생각해볼 여지를 가진다. 더욱이 김대중 정부는 이 제도를 도입했고,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진보 성향이던 노무현 정부로 연결되었는데 말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의 지도력이나 철학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공무원의 자세다. 여러 설명이 가능하지만 노무현 정부 초기에 있었던 검사와 대통령과의 대화 자리에서 보여준 한 평검사의 작태(作態)로 설명을 대신할 수 있다. ‘변화는 싫고 기득권은 지키려는’ 공무원 조직의 견고한 관성이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발전적 철학을 가진 지도자가 있어도 하부조직이 완강하다면 지도자의 그것은 한갓 구호로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간의 우리 행정구조였다.


현금에 이르러 국민의 민주화 의식수준이 향상된데 따른 정치권의 자각으로 과거의 폐습들은 수정되는 등 민주주의 모습이 성숙되면서 ‘주민자치’ 시행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이에 발맞추듯 정부(주로 지방정부)는 주민참여를 주조로 하는 사업들을 경쟁이라도 하듯 다양하게 시행함으로 주민자치 생태계 형성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일시적이거나 특정 지역의 현상이 아니고 국가 제도에서 항구적으로 운영되게 해야 한다. 즉 주민자치와 연관한 정책들이 정형화 된 국가정책이 되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유의해야 하는 것은, 정책은 법률에 근거하지만 절대 규정이 아닐 경우 변경, 취소 등 불완전성으로 인해 수요가인 국민에게 신뢰성 문제를 준다. 주민자치 규정 전문법률, 즉 주민자치를 규정하는 독립법의 제정 당위(當爲)의 존재이유다. 

근간 실질적인 주민자치를 주장하는 학자 등에 의해 가칭 ‘주민자치 기본법’이 논의되고 있다. 시의적절한 행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주민자치의 국가정책화는 법 근거가 필요하다. 지금의 주민자치 시행은 지방정부의 조례에 의하고 그 근거는 ‘지방자치법’인데 규정에 한계가 있어 ‘법적안정성’ 문제를 가진다. 2015년 개정된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27~29조)도 법 근거가 될 수 있지만 같은 범주다. 


학자들에 의한 (가칭)‘주민자치기본법’은 이런 현실에 대한 대안이고 더불어 주민자치 정책의 확대 및 구체화를 법체계에서 시행하고자 함이 목적이다. 공감을 넘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실질적 주민자치의 실시는 “풀뿌리 민주주의” 곧 민주주의 확대 시현(示現)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바라건 데 입법과정이 정의로움에 더하여 어떤 경우에도 민주주의가 왜곡되는 규정을 두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내용의 입법으로 할까는 참여 전문가들 몫이지만 혹시 간과할 수 있는 우려 하나가 있어  당부를 하고자 한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이 국가의 주체이듯이 주민자치의 주체도 당해 공동체의 주민이어야 한다. 우려하는 것은 이에 대한 법제 참여자(학자, 당국자)의 자세다. 효율성 등을 앞세워 외부인인 ‘전문가’, ‘이해당사자’를 당연 구성원으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주민이 주체인 조직일 경우는 특히 그렇다. 전문성 등을 통한 효율을 고러한 것이지만 객관성 문제가 있고, 시행자 등(당국, 학자)의 영향력확대를 꾀한다는 오해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행정 참여가 목적인 주민자치조직에는 당해지역 주민이 아닌 자를 포함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효율성 추구로 이해될 수 있지만 그 실익이 상계(相計)될 정도의 부작용이 있거나, 부정적 결과가 있을 수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효율을 구할 수도 있지만 그것의 객관적 담보가 어렵고, 오히려 치명적 결함도 될 수 있다는 뜻인데 그것은 주민자치의 핵심가치인 ‘자발성’과 ‘자율성’의 저해를 부르기 때문이다. . 


‘이해당사자’ 규정도 같다. 입법에 의한 주민자치는 예산이 수반되므로 감시자 역할이 필요하고 이의 장치 때 외부개입 여지가 있는데, 당국자 직접 관리거나 3자 위임이거나 사정은 같다. 개입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주민들을 위축시키고, 발전하면 관치(官治)가 되어 주민자치의 또 다른 핵심인 ‘자주성’ 문제를 만난다.  주민자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주성’이다. 자치(自治)란 뜻은 그게 아닌가? 찾아보면 주민 중에 전문가 등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을 것이다.


관련 사례에 의하면, 주민 조직에 참여한 전문가의 이론이 주민들의 의견과 조화되지 않아 문제가 되고, 더욱이 주민과의 이질성 문제로 갈등관계가 되어 제대로 된 운영을 하지 못하는 등 득(得)보다는 실(失)이 더 컸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특별한 사례로 볼 수 있지만 보편적일 수도 있다.


정리를 하면. 민주주의 시행을 위해 주민자치는 당연과제이고, 시행의 보장을 위해 입법(立法)이 필요하며, 그 세부 규정마련 시 유의 사항을 제시하였다. 요약하면, 주민자치 구성과 운영을 규범할 때 ‘자발성’과 ‘자율성’에 더하여 ‘자주성’의 확보가 되어야 하고, 이의 경시나 무시는 ‘주민자치 본질문제’라 하였다. 

그리고 건의를 한다. 주민자치조직의 씽크탱크(Think tank) 역할 도입이다. 행정동은 정책연구 수립임무가 없는 단순 업무수행기관이다. 따라서 주민자치조직이 주민공동체의 사업계획 등 연구개발 임무를 담당한다면 창조적 협치가 될 것이다. 찾아보면 주민 중에 능력자가 있을 것이고, 이는 참 주민자치의 유형(類型)이 아니겠는가? 


더할 게 또 있다. 앞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행정동 단위에서 운영되는 다른 주민조직 이를테면 통·반장과 직능단체들(제도권, 비제도권을 포함한)도 주민자치 영역에 포함하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주민자치다.(♣2017.1.21.)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지역청년을 만나다, 지역공간을 말하다


금천/구로 일대에서 매력적인 공간을 운영하는 지역 청년을 만납니다. 청년들이 편히 오갈 수 있는 혹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역공간을 담아냅니다.




#1 백지장을 소개합니다 


Q. 안녕하세요, 백지장을 운영하는 5명의 친구들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백지장을 운영하고 있는 차근, 동욱, 소현, 호태, 그리고 미루입니다 :) 대부분 구로에서 나고 자라온 친구들이에요. 소현이와 차근이 원래 고등학교 친구였는데, 차근이 소개로 한 명씩 서로 알게 되면서, 지금 같이 백지장을 꾸려가고 있어요. 


Q. 백지장은 어떤 공간인가요?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누구나 빈 A4용지처럼 편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이에요. 작은 공간이지만 대여하여 일정 시간동안 온전히 단독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죠. 보통 작업 공간이나 모임 공간이 필요해서 찾아보면 예약하는 데 경쟁이 심하거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하거나 비용적인 부담이 큰 데, 백지장은 그런 부담 없이 본인의 필요에 맞게 편하게 머무르고, 채워나갈 수 있는 공간이에요. 




#2 백지장을 시작하기까지


Q. 백지장을 어떻게 시작됐나요?


처음에는 동아리방으로 시작했어요. 올해 1월에 차근, 소현, 그리고 동욱, 이렇게 셋이서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게 주된 활동이었는데, 그렇게 서로 다양한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일종의 살롱, 사교클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공간을 얻게 되었어요.  


그런데 막상 저희만 쓰는 동아리방보다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함께 쓸 수 있는 열린 공간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7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필요한 분들이 대여해서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백지장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들 대부분은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는 시기를 앞두고 있고, 다들 각자 다양한 꿈을 가지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같이 작업하며,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 ‘컴퓨터나 프로그래밍을 활용해서, 작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등등. 하지만 그런 꿈들이 결국 백지장과 맞닿아 있다고 모두 생각하기에,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Q. 이 공간을 무상으로 얻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사연이 담겨있는지요. 


소현의 외할아버지께서 흔쾌히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무상임대로 이 지하공간을 내어주셨어요. 물론 저희만의 소꿉장난으로 끝나지 않게 하라는 당부 말씀과 함께요.


그치만 10년 이상 안 쓰던 지하 공간이라 처음엔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천장 일부가 뚫려 있고, 곰팡이에 벌레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공기도 탁했어요. 그래서 정작 공간을 얻은 후 5월까지는 청소하느라 시간이 다갔어요. 


그래도 이런 공간을 무상으로 얻지 못했다면 더 속도에 쫓기도 어려움도 많았을 거에요. 공간이 일단 안정적이니,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으니 큰 힘이 되죠. 


Q. 백지장은 비영리공간이라 들었는데, 비영리공간으로 운영하기로 다 같이 마음을 모으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저희가 백지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꼬박꼬박 인건비가 나오는 일이 아니니까요. 공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있고요. 그래서 처음엔 비영리공간으로 하자, 영리공간으로 하자, 의견도 분분하고, 저희의 생각도 자주 바뀌었어요. 

그치만 우리 모두 처음 시작하는 일이니까, 정답이란 게 없으니까, 맞고 틀리다는 식이 아니라, 최대한 모든 생각들을 나누고, 지금은 별로인 것 같아도 나중에 막상 그 이야기가 좋게 활용될 수 있으니 버리지 않고 기록해두고...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지금은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 대여료만 받고 백지장을 비영리로 운영하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물론 여전히 더 많은 이야기들이 현재진행형이지만요.  


#3 백지장의 오늘, 그리고 내일 

Q. 백지장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나요? 


저희가 아는 지인들의 모임이나 활동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새롭게 외부 모임들이 백지장을 찾기 시작했어요.  대학생 동아리 모임이나, 전시회, 영화감상모임 등 20대 중후반의 청년들이 직접 꾸려서 진행하고 있는 모임이나 활동들을 위한 공간으로 주로 쓰이고 있죠. 


그래서인지 백지장을 찾는 친구들은 이 공간이 미완성이라서 좋다는 말을 많이 해요. 자신들과 비슷한 것 같다고,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고요.  


저희 역시 백지장이 지금과 같았으면 좋겠어요. 완전히 깨끗한 백지 같은 공간이라서, 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개성이 드러날 수 있는 공간,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들로 채워지는 공간이요. 


Q. 특히 어떤 사람들이 백지장을 이용하면 좋을까요?


일단 활동 공간이 부족한 지역의 청소년들이나 비정기적으로 동아리방이나 모임 공간이 필요한 친구들, 혹은 밤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공간을 쓰고 싶은 분들에게 백지장을 추천해주고 싶어요. 


백지장이 작은 공간이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펼칠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없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새로운 분야에서 처음 경험을 쌓아가는 분들에게요. 예를 들어 미대생이 아니지만 본인의 그림을 전시해보고 싶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개인이 인생에 한번 자신만의 무언가를 표현하는 전시나 행사를 소소하고 가볍게 열어보고 싶은 분들에게 백지장이 좋은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최근 백지장이 몰두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백지장이라는 공간을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무인공간으로 운영될 수 있는 준비를 마치는 일이에요. 공간운영을 하기 위한 비용 중에 인건비 부담이 제일 크잖아요. 그래서 스마트도어락 등을 활용해서 무인공간으로 운영해서, 누구나 부담없이 저렴하게 백지장을 편하게 빌려서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컴퓨터나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은 호태가 지금 열심히 관련 공부를 하고 있구요. 

다만, 온라인으로 예약해서 이용하는 데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백지장을 채우고 있는 모임이나 커뮤니티들이 연결되고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이용하시는 분들과 카페나 백지장 등에서 만나 관계도 형성하고, 서로 다른 모임들을 소개해주거나 연결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서로 알아가다 보면, 이 공간이 비록 무인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좀 더 책임감 있게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처럼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요?  


Q. 앞으로 백지장이 더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백지장은 10년 넘게 안쓰던 공간을 A4용지와 같은 상태로 많은 사라들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한 공간, 즉 갱지와 같은 가치를 가진 곳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백지장을 시작하면서 필요했던 것들,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것들을 열심히 정리해서, 이런 공간에 관심이 있거나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언제든 볼 수 있는 참고자료를 만들 예정이에요. 다른 청년들이 시행착오나 어려움 없이 지속가능한 공간을 운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백지장이 일종의 모델하우스인거죠. 백지장이 각 동네에 많이 생겨서, 동네 청년들이 자주 갈 수 있는 공간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4 백지장이 그리는 구로 

Q. 백지장이 대림역 바로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데, 위치는 만족하나요?


옛날에 여기는 학교와 학교 앞 떡볶이집이 있고, 피아노 학원이 있는, 그런 평범한 동네였어요. 그치만 요즘은 풍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새로운 건물이나 가게가 많이 생기고, 일자리를 찾아온 중장년층이 대부분이고 청소년이나 청년들은 많이 줄어든 것 같아서 아쉬운 점이 많죠. 

그래서 구로디지털단지역이나 가산디지털단지역에 많이 있는 젊은 직장인분들과 많이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그 근방에 원룸 오피스텔에 혼자 사는 청년들도 많잖아요. 보통 이 동네에서 청년들이 잘 안 놀잖아요, 홍대나 다른 곳에 가서 놀지. 백지장을 거점으로 청년들이 자주 동네에 어슬렁거리면 좋겠어요. 그것만으로도 정말 큰 변화일 것 같아요. 


Q. 백지장이 구로구에 있다는 점이 여러분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아무래도 저희 대부분이 구로구에서 나고 자랐으니까 동네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그리고 구로구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팀들도 많고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어서, 청년들이 지역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좋은 것 같아요. 구로는예술대학이나 구로구는 아니지만 근처에 신도림예술공간 고리나 무중력지대 G밸리와 같은 공유 공간들이 함께 있으니, 더 무언가를 해보기 좋을 거 같다는 기대도 크구요. 


#5 백지장, 그리고 5명의 친구들 

Q. 백지장을 운영하고 있는 여러분은 요즘 어떤가요?  



(호태) 오랫동안 안 쓰던 공간이라 지저분하고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었는데, 친구들이랑 같이 페인트칠도 하고, 제습도 하고, 그렇게 하나 하나 채워나가니까 마치 내 방을 꾸미는 느낌이라 재미있어요. 그리고 백지장이 참 작고 아직 할 게 더 많은데, 오늘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어서 신기해요. 인생 첫 인터뷰니까요

(차근) 저도 요즘 백지장을 만들어가는 일이 재미는 있지만,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곧 군대를 가야하니까 조바심도 나구요. 그래도 짧은 시간동안 가치를 창출하는 경험을 해본다는 건 의미 있는 일 같아요. 그래서 지금보다 더 속도를 내서 몰입하고 싶어요. 


(동욱) 저는 지금 분당에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대림역에 오는 것까지 너무 멀어서 몰입도가 좀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 점이 많이 미안하기도 하구요. 또 개인적으로 지금은 혼란스럽고, 불안한 점도 많은 거 같아요. 군대를 갔다 와서 졸업 후를 생각하면, 하고 싶은 것들은 아직 너무나 많은데, 또 모든 게 다 열려있다는 점에서 더 혼란스러운 거 같아요. 


(미루) 방학 때 놀고 있는데 차근이형이 불러서 어떨결에 여름부터 백지장에 자주 오가며 일을 돕고 있어서,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백지장 역시 아직은 만들어지고 성장해가는 과정이니까, 큰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아직 갈 길이 멀죠. 


(소현) 저는 지금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시간은 부족하지만 백지장 운영을 하는 게 재밌어서 열심히 안할 수가 없어요. 백지장에서 이걸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자꾸 여러 생각들도 자주 하구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지만 지금은 백지장을 같이 운영하고 있는 친구들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제가 잘하는 것, 도움이 될 수 있는 점 등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백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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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이훈 국회의원 의정보고회를 보고


그동안 국회의원이 10개 동에서 의정 보고회를 가진 사례는 없는 가운데 이훈 의원이 10동 순회하며 주민과의 대화를 갖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할 수 있다.

지난 총선에서 금천구와 연고가 없는 가운데 당선되니 이 훈 의원으로서는 지역주민들과의 접촉도를 높여내고 서로 소통하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장소에서도 주민센터 강당 등의 큰 규모의 장소보다는 대회의실 등 서로 친밀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곳에서 진행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주민과의 대화형식은 구청장이 2~3년 전까지 진행해오던 방식이었고, 서울시 의원과 구의원이 함께 배석했지만, 지역밀착형 민원에 대해서는 즉답을 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알아보고 알려주겠다는 답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한계로 비쳤다. 그렇다고 관계 공무원이 배석하는 것도 문제다.

또한, 구청장의 대화에서 가졌던 한계인 주민들의 참여 부족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참석자들이 더불어민주당 당원이 대부분인 가운데 지역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요인을 마련하는 것, 새로운 정치활동에 대한 갈증이 느껴졌다.

금천구청장의 주민과의 대화도 주민자치위원회, 관변단체 및 통반장들의 참석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에서 보면 그 이상의 정치참여를 어떻게 열어 낼 것인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국회의원과 구청장은 역할과 권한이 다르기에 두 '주민과의 대화'는 질의와 내용이 달라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주민들로부터 소상공인 세법개정의 문제나 최순실 국정논란에 대한 의견,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제안들이 제출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주민과의 대화로 시작한 이 훈 의원의 새로운 실험들이 계속되길 기대해본다.


이성호 기자



트럼프 시대




"우리는 세계 다른 나라와 친선과 우호관계를 추구하겠지만 세계 어느 국가도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전제 아래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는 오랜 동맹은 강화하고 새로운 동맹도 만들어, 문명국가들을 단합시켜 급진 이슬람 테러집단을 이 지구상에서 없애 버릴 것"이다. 트럼프의 취임사 중 국제관계에 대한 언급이다. 


전체적으로 ‘오직 미국’만을 외친 취임사다. 이런 트럼프에 대해 미국의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끔찍하고, 무지막지하고, 위험한 파트타임 어릿광대이자 풀타임 소시오패스"라고 말한다. 또 누구는 ‘영리한 멍청이’라고 한다. 2015년에 트럼프는 미국 대선에 뛰어든다. 그리고 막말과 기행으로 대중적 인기를 끈다. 이때 대다수의 언론들은 비웃었고 그의 인기는 금방 식을 것이라 봤다. 그런데 그는 끝내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 역대 미대선 후보 중 가장 부자였지만 선거비용은 상대 후보의 절반도 쓰지 않았다. 힐러리는 돈으로 뉴스를 샀지만 트럼프는 막말과 기행을 뉴스거리를 찾는 언론이 저절로 달라붙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불투명, 돌발, 불확실성을 백인 남성의 뚝심이자 백인 남성의 낭만으로 만들었다. 무식하고 우직하고 멍청한 척 하며 할 것 다하고 승리하기까지 하니 ‘멍청한 영리한 이’ 가 아닐 수 없다.  


트럼프를 닉슨에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보통 미국의 양당은 대외 전략에서 질적 차이가 없다. 다만 공화당은 미국 우선주의라 부르는 고립주의를, 민주당은 민주와 인권을 내세운 개입주의를 선호한다. 그래서 실제 전쟁은 민주당 정권이 많이 일으켰는데 공화당이 더 호전적인 것처럼 느낀다. 이런 모습을 민주당은 세련된 ‘양복 입은 조폭’, 공화당은 배 유리병으로 긁으며 진상을 피우는 ‘양아치 조폭’이라고 비유했다. 모습은 양아치가 훨씬 흉하지만 피해는 양복이 훨씬 크게 만든다. 이런 공화당의 입장을 ‘미치광이 전략’이라 부른다. "미치광이 전략 (Madman Theory)"을 대외정책으로 삼은 미국 대통령이 닉슨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작은 일에도 발끈해서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로 믿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소련이나 제3세계에게 ‘나를 건들면 죽는다’ ‘한다면 한다.’라는 메시지를 주려했다. 적어도 트럼프는 미국인과 인류에게 미치광이 전략을 성공시킨 모습이다. 



미국의 석학 노암 촘스키는 트럼프를 ‘인류공동체의 삶을 가능하면 빨리 파괴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는 자’라 평가했다. 그러면서 2016년 11월 8일을 상기한다. 11월 8일, 세계기상기구(WMO)는 파리 기후협약 이행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모로코에서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2)를 연 날이자,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무참히 뭉개버릴, 세계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의 대선이 있던 날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트럼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미국이 됐다고 평가한다. 촘스키 교수의 말을 좀 더 빌리자면 트럼프 시대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관리 감독한 잘 나가던 미국 경제가 박살난 2007년 대공황의 산물이다. 그린스펀은 "노동자들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킴으로써" 경제를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위기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차마 임금 인상, 복지 혜택, 노동 안정성 등을 요구할 수 없었다. 참고 견디는 노동자 민중은 신자유주의적 기준으로 보면 매우 건강한 경제의 신호다. 그 결과 남성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1960년대 수준으로 추락했다. 반면 극소수 최상위층과 1% 부자들의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졌다. 그런데 또 왜 사상 최대 부자인 트럼프가 미국의 선택이 되었을까?


촘스키 교수는 진정한 원인을 빈부격차로 본다. 지금의 빈부격차는 자유시장 원리나 실적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기업하기 좋은 세상’ 정책 결정이 낳은 것이라 진단한다. 임금이나 복지 혜택의 파괴가 진행됐다. 안정적 일자리 방패인 노조가 파괴됐다. 그것은 자기 존엄성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 자기가 속한 세상에서 무언가 가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도 무너뜨렸다. 그런데 미국 백인들은 그 원인을 빈부격차에서 찾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능력주의 경쟁을 당연시 해 온 미국 백인들은 상층부 사람들이 잘 나가는 것에 대해선 불만이 없다. 잘 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하다. 그것이 '미국적 방식'이다. 오히려 불만의 대상은 자기보다 못한 이들이 된다. 자기들의 나아짐을 방해하고 괴롭히는 고통의 제공자는 뒤쳐진 사람들이다. '규칙을 따르지 않는 무자격자들'이 정부 정책 때문에 자기들을 앞질러 나가게 됐다고 여긴다. 이주민에 대한 혐오 복지에 대한 부정이 정부에 대한 증오로 나타났고, 이런 이들에게 트럼프는 변화를 대변하는 사람이다. 그 변화가 개선이 아니라 개악, 나아가 퇴락이겠지만 말이다. 


사회를 구조적으로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볼 사회적 시각이 사라진 곳에서 핀 시대가 트럼프 시대다. 사회를 제대로 배우면서 휴머니즘을 지탱할 공동체적 관계가 부족한, 노조나 진보 계급정당 등이 부재한 세상에서 고립된 원자로 사는 미국 사람들이 믿는 능력주의는 결국 ‘문제는 사회적인데 해결은 개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자 ‘사회가 생산한 질곡을 개인이 책임지는 시대’다. 트럼프의 시대를 연 다른 요인은 인종주의다. 그리고 기독교 근본주의다. 촘스키는 그런 미국인들의 정서를 이렇게 전한다. ‘미국에서 심각한 지구 온난화의 위협에 대해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 인구의 40%가 조만간 예수가 재림할 텐데 지구 온난화 따위가 무슨 문제냐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성경을 부정하는 것 같으면 오히려 과학이 비정상이 되는 구조가 미국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봉착된 문제를 세계의 이름이 아니라 미국의 이름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철저하게 실리를 따지는 장사치 정치이자, 걸리면 죽인다는 양아치 정치를 선언한 것이다. 무지몽매 맹목 그리고 의도된 미치광이 놀음에, 미국 판 이명박그네정치를 한꺼번에 볼 것이기에 세상은 아주 후져질 것이다. 그럴수록 ‘평화 친선 연대 그리고 통일’에 대한 주체적 각오가 필요하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총탄에 묻힌 사람들의 이야기 <1945, 철원>을 읽고


   철원에 있다는 노동당사 이야기는 진작에 듣고 있었는데 책을 읽기 전, 작가가 그 노동당사를 보고 이 소설을 기획했을 것 같았다.

  사진으로 본 그 건물은, 경험하지도 않은 많은 일들을 느끼게 했다. 실제로 봤다면 더했겠지만 사진으로도 그것은 충분했다.

  2008년쯤, 여성문화유산해설사 강의를 들으며 꽤 오랜 시간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종강을 앞두고, 문화유산을 찾아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발표를 했는데 우리 조는 고려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공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귀한 집 부녀자까지도 끌려갔던 공녀는 경복궁을 거쳐 서대문과 독립문을 지나 원산까지 가고 다시 중국땅으로 가는 긴 여정을 마쳐야 했다. 우리 조는 그녀들의 행선지를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고, 독립문 근처에서 그녀들에 대한 예를 올리기로 하고 댕기와 버선을 준비했다.

  그녀들이 거쳐갔던 서대문과 독립문 근처를 왔다갔다하다가 그녀들의 소리를 들었다고 해야할까 그녀들의 뒷모습을 봤다해야 할까, 아니면 두 가지를 다 듣고 봤을지도 모르겠다. 댕기를 길게 늘어뜨린 여인들이 걸어가고 있었고, 잠시지만 울음소리를 들었다. 지금도 그 곳에 가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철원의, 폭격에 온 몸을 맡긴 그 건물을 보니 또다시 어떤 이야기와 어떤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역사라는 것이 나와 동떨어져있는 것이 아님을 이제 알기 때문일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특히 이 땅에서 벌어진 일들은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사상의 대립을 겪지 않았다 해도 결국 내 안에서 나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잘못 봤나 자꾸 앞 쪽을 보게 된다. 주인공 경애와 기수, 은혜들의 나이가 고작 열여섯이라니... 그 나이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하고, 가족과 이념 사이에서 방황해야 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진작에 보았던 박완서의 소설에서도 열아홉의 어린 박완서가 겪었던 일은 그와 다르지 않았다. 전쟁은 그에게 하나의 숙제가 되어 대부분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박완서는 자신이 겪은 일이었겠지만 이 소설은 ‘철원노동당사가 본 것’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그 시절 있음직한 이야기로 씨실과 날실을 잘 엮었다.

  사상의 극단은 현실의 어려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전두환 시절 학교를 다닌 나는 아직도 전경들의 군화발 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꿈을 꾸고, 깨어서도 땀을 흘린다. 내게 닥쳤던 현실은, 나름 암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역시 극한의 사상들이 출연하고 대립한다. 술을 먹지 못한다는 이유로, 집안이 가난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르조아지라며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던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졸업후 그 시절에 배웠던 인간다움을 위해 애썼던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원을 차리고 참교육 따위는 아랑곳 안했고, 돈을 버는데 열을 올렸다. 사실 그걸 비난할 수도 없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공산주의 사상은 그간 눌리고 억압되었던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연천댁이 그랬고, 경애도, 제영도 그랬다. 뭔가 빼앗기기만 한 사람들이 인간다움으로 대접받고 공평한 처우를 받고 무엇보다 생명같은 땅을 나누어주지 않았던가. 그 사상은 옳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 사상의 실천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사람살이는 그렇게 딱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권력의 맛을 들인 사람은 그것을 추구하게 되어 다시 비인간적인 상황을 만들곤 한다.

  우리 어머니는 신경줄이 얇아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는데, 그러다가 울먹이며 갑자기 전쟁 때 이야기를 한다. 노쇠해지면서 하는 이야기는 주로 지주이자 천주교신자였던 아버지가 숨어지내던 그 곳에 밥을 갖다주던 이야기다. 냉정하기만 한 아버지, 한번도 애썼다고 안아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작은 단발머리 아이는 산을 넘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피투성이인채로 구덩이에서 발견되었고, 다시 소녀 시절로 돌아간 어머니는 아버지,아버지 부르며 운다. 외할아버지는 최근, 순교한 것으로 인정받고 성인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피로 가득찬 아버지의 고무신을 잊지 못하고 마음에 큰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그게 누구의 잘못인가? 누구에게도 그건 너 때문이라고 속시원하게 말하지도 못한 세월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세월이 준 상처로 가족은 해체되고, 믿었던 이는 배신을 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온갖 인물들이 나오는데 다소 극적인 면도 있지만 그럴 법한 이야기들이다.

  끝에 책을 좋아하는 경애가 미자를 데리고 예전 서화영의 서재로 데리고 가 책을 빌려주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하지만 이 때는 1947년으로 평화로운 시절은 그 이후에도 절대 오지 않았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경애가 들은 무심한 총성이 그 무지막지한 시대를 알리는 소리는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다시 또 철원의 노동당사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가 본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기둥에 선명한 총탄이 그것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묻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민 경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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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주민주(覆舟民主)’의 2017년을 만들자


‘군주민수’(君舟民水)는 교수들이 뽑은 작년의 사자성어다. 순자(荀子)의 왕제(王制)편에 나온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水則載舟 水則覆舟(수즉재주 수즉복주)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뒤집기도 한다. 임금은 이를 염두에 두어 위기가 닥칠 때 이런 상황에 이르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에서 뽑았다고 한다. 

역성(易姓)혁명을 주장하고 나선 맹자 이후 이를 경계하기 위한 순자의 왕도 정치를 하라는 권고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에서 임금 군(君)이라는 봉건적 의미가 그대로 사용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차라리 정부 정(政)자를 사용하여 ‘정권은 배요 민심은 물이다.’라는 ‘정주민수’로 살짝 돌리고 싶다. 하여튼 재작년의 ‘어리석은 지도자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다’는 뜻의 ‘혼용무도’(昏庸無道)와 이를 뒤집자는 의미의 연계는 자못 신통하다. 


국회 탄핵까지 관철했지만 현재 우주의 기운이라는 요기를 체현한 기괴한 박근혜정권은 복주(覆舟)되지 않고 여전히 황교안이라는 대행체로 재주(載舟) 중이다. 그러니 민이라는 물이 군이라는 배를 뒤집었다는 말은 아직 현실이 되지 못했다. 광장의 촛불은 여전히 타고 있고, 헌재와 특검이 탄핵과 퇴진을 위한 진실을 캐고 있지만 그것이 민의 뜻을 담을지 낡은 배의 고질을 땜 빵 하는 것으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지핀 촛불의 불빛만큼, 우리가 펼친 광장의 크기만큼, 우리의 희망과 염원을 밀고가야 한다. 6개월 전 우리가 광장과 촛불과 탄핵 정국을 알지 못했듯 또다시 현재의 모습으로 미래를 재고 낙심하고 줄서고 이익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촛불이 보여주는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념과 이상이 없는 현실은 고인물이다. 고인 물은 썩을 뿐이다. 잠시 출렁이다 만 무수한 역사적 지체(遲滯)들,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와 그 구조들, 청산되지 못한 군사독재의 잔재들, 끝내 처단하지 못한 광주학살의 원흉들, 불사의 오뚝이로 무수한 부정부패를 범하고도 부만 늘린 재벌들,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관료 판검사들 이 모두가 응어리 뿌리를 뽑지 못한 악성 종기들이다. 그러니 죽 쒀 개주지 말자는 소극적인 말을 넘어 광장 촛불이 심지로 박힌 민주주의를 꿈꿔야 한다.


광장의 촛불이 기성의 기득 세력의 자리바꿈에 기대를 걸고, 주춤주춤하는 사이에 정말 부숴야 할 벽이 그대로 있음에, 촛불의 고여 지체됨에 저항한 한 스님이 소신공양 분신 항거를 하였다. 정원스님이다. 그는 “원이 있다면 이 땅에 새로운 물결이 도래하여 더러운 것들을 몰아내고 새 판 새 물결이 형성되기를 바랄 뿐이다.” “일체 민중들이 행복한 그날까지 나의 발원은 끝이 없사오며 세세생생 보살도를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생명의 서를 세웠다. 우리는 이 스님의 원을 제대로 이을 것인가? 배를 뒤집고 새로운 배를 띄워야 한다. 그런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2017년은 정말 중요하고 또 격변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광장의 촛불이 만든 정세로 한껏 단물을 빠는 존재들이 있다. 국회의원들이다. 행정 권력의 통제를 벗어나 민주주의 화신이라도 된 듯 말잔치를 해 대지만 정말 필요한 것을 한 적은 없다. 그보다 더 제 세상을 만난 이들이 이른바 대권주자들이다. 이들은 개헌이니 조기 대선이니 하면서 광장의 촛불을 정지시킨다. 뼈를 깎는 혁신이니 탈당 후 보수 신당이니 새누리와 그 잔당들의 모습은 똥은 그대로 둔 채 보자기를 씌우거나 바꾸자는 것이다. 똥 위에 똥 종이가 아니라 비단 보자기가 씌워져도 똥은 똥이다. 제삼지대란 말은 3당야합의 역사적 부활이고 개헌을 말하는 것이나 조기 대선으로 광장의 길을 비트는 것은 칼날위의 삶을 그대로 둔 채 칼 날 위에 습자지 하나 겨우 덮자는 꼴이다. 과장에게 고인 물이 되라하고, 촛불을 든 사람들에게 그만 구경꾼이 되라한다. 


이래서 복주(覆舟)가 되지 못한다. 더 괴물이 되고 더 교활해진 굶주린 호랑이들을 만날 뿐이다. 노무현이 집권 초에 이미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할 때 그는 실은 민주공화국을 포기했다. 차라리 두려우면 방안에서라도 벽을 보고 투쟁을 하라던 사망 직전의 DJ가 낫다. 그 결과 우리는 몰염치한 이명박을 만났다. 이익이 된다면 뭔 말을, 뭔 짓을 못하겠냐는 그는 입에서 항문까지 모든 장을 일직선 고속도로로 만든 꼴이 4대강 망치기를 해 냈다. 그런데도 심판하지 못한 한국은 이제 자기 염치에 대한 외면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염치마저도 모조리 파괴하는 파렴치 박근혜를 만났다. 박근혜에게 강요로 뇌물을 받쳤다는, 300억 주고 3조 5조의 이익을 본 삼성은 피해자가 아니라 수익자다. 만찬가지로 현실 권력을 나눠지고 공생한 모든 보수 여야 정치 또한 공범이지 피해자가 아니다. 정말로 피해를 본 것은 뇌물청탁으로 삶이 더 피폐해진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다.   


그러니 복주(覆舟)를 완성하는 해, 대의제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이 주인이 되는 직접 민주(民主)의 해, 복주민주(覆舟民主)의 2017년을 만들자. 농단의 진정한 실세들, 특히 국정원에 대한 전혀 새로운 혁파가 필요하다. 시장, 이윤, 기업 중심의 사회적 살인 체제에 대한 97년 이후의 적폐를 확실하게 분쇄하자. 부정과 부패가 구조화된 헬 조선, 유착이 힘이 되고, 힘이 특권이 되고, 특권이 반칙의 무기가 되어 헌법이 유린되고 국정이 농단되는 세상, 서로에게 서로가 경쟁도 넘어 생사를 가르는 원수가 되는 세상, 이 반 인간적 사회를 근본에서 성찰해야 한다. 사탄이 된 인류의 자기학대 체제, 출세와 돈이 모두인 맹목의 체념의 체제 돈 중심의 세상, 그 배를 뒤집어야 한다. 군주민수(君舟民水)를 넘어 복주민주(覆舟民主)로 나가자. 

구체적 대안? 그것은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있는 것은 이미 낡았다.

주체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목숨을 건 정원 스님이 보여준 그 발원 ‘일체 민중들이 행복한 그날’을 위한 노동자 민중, 우리 자신이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소피아의 탄자니아 통신-13


나는 한국어 전도사???



교정을 걷다 보면 다양한 언어로 인사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외국인이다 보니 가장 많이 듣는 것은 역시 영어다. 그 다음이 중국어인데, 아프리카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면 나는 한국말로 답한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어리둥절해 하는 그들에게 이것은 한국식 인사라고 설명해 주면, 그제서야 알은체를 하며 드라마 얘기를 꺼낸다. 요즘 탄자니아에서 ‘주몽’이 인기인지 주몽 얘기를 많이 한다.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대사에서 자주 듣던 문장이나 단어의 뜻을 물어오기도 한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은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는데, 그럴 때마다 반을 편성해 오라며 돌아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눈에 봐도 에너지가 넘치는 교직원을 만났는데 그 역시 같은 요구를 해왔다. 

가끔은 예외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 예외가 세상의 한 부분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믿는 유형이다. 그는 그날 저녁 메신저를 통해 명단을 보내왔다. 반신반의하며 수업 일정을 잡아보라 했다. 단톡방이 열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시간표까지 나왔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수업이 열렸다. 오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몇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중국어 강사로 파견되어 온 ‘화화’와 고등학생 ‘조슈아’가 합류한 것이다. 


화화는 Hanban이라고 불리는 중국 교육부 소속의 ‘국제 중국어 교사’ 자원봉사 단원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기도 한 그녀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탄자니아에 왔다. 쾌활하고 적극적일뿐더러,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도 강해 수업을 즐긴다.

조슈아는 음베야 산을 등산하며 만났던 교수, 찰스의 아들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방학을 맞이해 집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합류할 시점에는 이미 진도가 제법 나간 터라 조금 일찍 오게 해서 기초를 가르치니 금방 글자를 깨우쳤다. 곧 스마트폰에 한국어 자판을 설치해 인사를 해왔다. 지금은 한국에 있는 또래와 채팅을 즐긴다. 컴퓨터에 한글을 입력할 수 있게 해주고 자판 연습 프로그램을 깔아줬더니, 한글 자판 스티커를 사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게 가르치는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내 영어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곳은 특이하게 초등학교에서는 스와힐리어 교재로 공부하다 중등 학교로 진학하면 모든 과목을 영어로 바꿔 수업을 받게 된다. 자국어도, 영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교육정책 탓인데, 이런 시스템에서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향상되긴 어렵다. 그래서 능력 있는 부모들은 사립 학교에 보내 초등교육부터 영어로 수업을 받게 한다. 교수 아버지를 둔 행운으로 사립 학교를 다닌 덕에 그의 영어는 제법 유창하다. 수업이 없는 날은 메신저를 통해 쉴새 없이 영어로 질문을 해대니 나 역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덕분에 내 영어 어휘도 많이 늘었다. 이제 방학이 끝나 다시 모로고로에 있는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며, 졸업 후 다시 합류하겠다고 한다. 그가 빠진 수업을 생각하니 잔재미가 떨어질 듯해서 걱정이다. 



국제 사회에서 그 나라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자국어 사용 인구 수가 사용될 정도로 언어는 힘이다. 일찍부터 그 사실을 간파한 유럽의 강대국들은 자국어 사용 인구를 늘리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해왔다.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란세스,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 영국의 영국문화원 등을 들 수 있는데, 중국은 그들을 모방해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공자학당을 설립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언어뿐 아니고 토목과 건축 분야는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곳은 요즘 어디를 가나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인데 거의 대부분이 중국 자본과 기술력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프리카는 중국 땅이라고 할 만큼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코이카와 세종학당을 통해 한글 보급과 나라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도도마 대학에 한국어 학과를 개설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어를 전공으로 하려는 학생은 많지 않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선택 과목으로 개설한다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욕구를 가진 학생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이곳 대학으로 오며 한국어 교육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맡은 전공과목에 대한 부담으로 다른 건 고려할 여건이 아니었는데 우연찮게 시작한 수업이 나를 나아가게 한다. 며칠 전, 총장 보좌인 음본데를 만나 한국어를 선택 과목으로 하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검토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중국 대학에서 한국어를 강의한 경력으로 시도해 보는 것인데,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1월 9일

[장제모칼럼]대의제와 주민참여 제도



마을공동체 활동의 활발한 전개에 더하여 ‘주민 참여’를 내건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의 정책들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그 수와 내용이 다양하게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식이 날로 성장하고 있고 그에 따른 위정자들의 자각으로 인한 결과적 현상으로 우리사회 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민주주의의 저변확대가 기대되는 과정을 맞고 있는 게다

.










그러함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 민주주의가 덜 성숙된 사회라는 지적에 겸허할 필요가 있다. 여러 문제를 말할 수 있지만 민주(民主)를 말하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대의정치(代議政治)가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대의정치를 이해하면, 국정(國政)에는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지만 이는 비현실적이므로 일정 수 단위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을 뽑아 이들로 하여금 대신 담당케 하는 즉 대의(代議) 제도다. 국회의원, 시·도(광역)의원, 시·군·구(기초)의원이 그 대표적 예로, 이러한 제도는 민간부문에서도 광범하게 도입되고 있는데 조합 등 큰 단체의 대의원제도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대의정치의 후진성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별 이의 없이 공감을 할 정도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런 평가가 있을 만큼 우리의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 의원들의 상당수는 국민의 신뢰에 거리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그들을 직접 선출한 유권자들로 부터 외면당하는 경우조차도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물론 의원들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그들의 의정활동이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친 것에 더하여 실망스런 행위조차하기 때문이다. 요약을 하면, 의원들의 능력과 자질 문제다. 의원 면면을 보면 학력이나 경륜 면에서 가벼이 볼 여지가 별로 없는 이른바 엘리트(elite)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참으로 난해하다. 

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일차적으로 본인의 책임인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함에도 간과해서는 안 될 다른 원인이 있는 데 그것은 그들이 의원이 되는 과정 즉 선출과 관련한 제도의 문제가 그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의원이 되려면 법령에 따라 입후보를 해야 하고, 이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정당의 추천 즉 공천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 신청에 의한 무소속 출마다. (여기서 무소속의 경우는 논제 밖이므로 생략하자.) 우리 선거 환경에서 정당의 공천은 아주 중요한 과정으로,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파의 공천은 곧 당선이나 다름없다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거 메커니즘(election mechanism)이다. 

이론(異論)이 있겠지만, 우리의 의원들은 의원이 되기 전 그러니까 후보 때에는 부적격성을 발견하기 어렵지만 의원이 된 후 무능이나 자질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의원이 되는 과정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상당수의 의원들은 그들의 현재가 있게 한 배경 즉 정파의 배려에 보답하고 그로서 취득한 기왕의 권리 지속을 위해 자기 구속을 스스로 정당화함으로 개인적 신념과 철학을 바꾸거나 버림으로 결과적으로 천박한 이기적 기회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정리를 하면, 의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우선적으로 본인 탓이지만 의원이 되는 과정 즉 선거제도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들의 저질행태(모두는 아니다)는 그들이 있게 되는 과정에서 단초(端初)가 마련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원이 되려면 공천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 타의(他意)가 작용하는 게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현실이다. 이를 해부해 보자. 후보 선정의 주요 포인트는 정파에 대한 충성도인데 이는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민주주의 원리에 배치되는데다 다분히 후진적이다. 그리고 ‘당선가능성’이라는 기준인데 이것도 비과학적인데다 공정성 문제를 가진다.


 조직이 크면 그것이 조건 충족으로 간주되는데 이에는 필연적으로 자금이 연관되기 때문이고 따라서 이는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파에 소속되지 않는 무소속 출마가  있지만 우리 선거 환경에서 그 길은 불확실한 선택이고 그렇듯 당선확률도 낮다. 이와 같이 우리의 대의제 과정에는 민주주의 원리인 기회균등이 경시되는데 그것의 개선이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은 물론 헌법규정의 국민 참정권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의제(代議制)보다 더 나은 제도는 현재로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은 정치 선진국의 사례로 설명된다. 우리나라도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이 제도를 도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그 여정에 굴곡과 파행이 있었음에도 민주주의 국가로의 발전에 기여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대의제는 살펴본 바와 같이 문제가 있으므로 이의 개선 당위(當爲)를 헌법이 규정하는 민주주의 국가(헌법 제1조)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제기는 거창했는데 마땅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함은 유감이다. 항간에는 ‘의원 소환제’나 ‘국민 발안 제’ 등의 도입을 제기하는데 공감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유효한 대책이라 확신할 수가 없다. 전자는 법 제정 주체가 대상인 만큼 입법이 순탄치 않고 설혹 된다 하더라도 기대효과는  미지수다. 입법당사자 구속이 취지인 만큼 단서 없는 순수한 내용의 기대가 어렵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도 유사하다. 우선 그것을 있게 하는 과정이 전자의 어려움과 다르지 않고, 과정을 극복하였다 하여도 정연한 진행의 보장이 어려운가 하면 부작용조차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일고 그로 인한 민민(民民) 갈등 우려가 그것이다. 그럼함에도 이 제도 도입은 긍정한다. 어떤 형태로던 현재의 대의제 불합리 해소책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제기되는 문제의 본질, 즉 현행 우리 대의제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의 대안이 아니다. 단지 ‘견제를 통한 문제의 방지’ 목적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생각해 보는, 보완책이자 대안도 될 수도 있는 제도의 도입인데 현재 여러 유형으로 전개되고 있는 ‘주민참여’라는 이름의 각종 주민활동 제도의 활용이 그것이다. 이 제도를 이해해 보면, 국정에의 직접 주민참여 즉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행이고 곧 민주주의의 연원(淵源)이다. 정치인들이 평소 ‘국민’을 앞세우는 것은 이러한 원리를 알기 때문이 아닐까?

살펴보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주민참여 제도’ 중에는 민주주의를 사실적으로 이해할만한 내용이 많고 그것의 시행 일선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은 실감 있게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있다. 이러한 주민참여 제도를 대의제와 연관하여 보는 것은 비약(飛躍)일 수 있으나 그 기능에 대한 본원적인 이해, 즉 제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 공감을 구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글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국정 시행을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국가 행정 제 부문에 국민이 자유롭게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대의제는 이러한 목적으로 도입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방향에서 대의제를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이해를 진보적으로 해 보고자 하는 것이 ‘주민참여제도’ 도입 의견이다. 다시 말하면 대의제에 대한 견제나 보완을 말하기 이전에 민주주의의 본질에 다가가는 추구 즉 ‘직접민주주의’로 이해하는 것이다. 함께 고민해 볼 가치가 있지 않는가? (♣2017.1.6.)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동아리탐방 :  라디오 금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방송 팀


아프니깐 청춘? 

안 아픈 건강한 청춘을 위하여!




지난 달 2016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고3 수험생들에게는 결과에 대한 아쉬움도 물론 있겠지만, 앞으로 맞이할 2017년 20살 성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게 될 설레임이 더 클 것이다. 이번 금천아이엔 금천인 탐방에서는 라디오금천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이하 하라공) 방송을 이끌고 있는 독산고 3학년 4인방을 만났다. 수능을 마친 뒤라 다양한 여과활동, 아르바이트 등으로 수능 전보다 더 즐겁게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하라공팀과 나눈 편안한 대화를 소개해 본다.


*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 라디오 금천에서 매주 1회 진행되는 라디오 방송. 2016년 고3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본인들의 스트레스를 풀고자 재밌게 수다 떠는 방송. 


Q. 각자 자기소개 부탁한다.

A. 라디오 금천에서 [하라공] 방송을 진행하는 독산고 3학년 학생들이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실명이 아닌 DJ명으로 소개하겠다. 

각자 김감쪽, 얼티, 주공기, 조미료란 디제이명을 쓴다. 

주공기 : ‘독산고 주공기’라 할 만큼 공기놀이를 잘 해서 얻은 별명이다. 방송에서 디제이 겸 기술직이다.

김감쪽 : 언니가 붙여준 별명인데 방송에서 쓰니 더 의미 있는 말 같다. 우리 네 명이 함께 주제를 고르고 각자 맡은 대본을 쓴다.

얼티 : 홍차를 좋아해서 지은 이름이다.

조미료 : MSG처럼 없으면 심심하지만 있으면 맛깔나게 재밌는 성격이라 생긴 별명이다.(조미료님은 아르바이트로 취재에 참석하지 못함)


Q. 어떻게 방송을 시작했나?

A. 작년에 학교협동조합을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어봤다. 그 때 결성된 팀이 지금의 하라공 팀이다. 영상작업을 끝내고 뭔가 관련된 활동을 더 하고 싶어서 올해 자기주도 동아리활동으로 팟캐스트 방송을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우리들의 계획을 학교에 알리니 선생님께서 라디오금천을 소개시켜주셔서 2016년 2월에 하라공이라는 방송을 기획하게 됐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어 당황스러웠지만 평소 좋아하던 팟캐스트 ‘지대넓얕’을 벤치마킹해서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눈높이에서 수다로 풀어보기로 방향을 정했다. 우리 넷이 똘똘 뭉치니 후다닥 준비를 끝내고 딱 일주일 만에 하라공 방송이 탄생했다.


Q. 제목이 특이한데 방송 컨셉은?

A. 정말 우리들 좋자고, 스트레스 풀자고 하는 방송이다. 그런데 고3이 공부는 안하고 방송한다고 쓴 소리 들을까봐 제목으로 선수를 친 거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고3이다보니 결국은 방송 마무리가 공부 얘기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씁쓸하다.(웃음)


Q. 방송을 들은 주변의 반응은?

A. 부모님들이 의외로 많이 호응해주시고 응원해주신다. 한편으론 고3이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많았나 하시며 놀라시면서 공부만 해야 하고 쉬지 못한 채 학원 뺑뺑이 도는 우리를 굉장히 불쌍해하신다. 친구들은 우리들 이야기니깐 굉장히 재밌어 한다. 우리가 방송에서 추천해준 영화와 드라마를 적어 놓고 보신다는 선생님도 계신다.

우리의 방송이 주변사람들과 학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 굉장히 뿌듯하다. 자랑이지만, 이번에 학교에서 자기주도 동아리상으로 은상을 받았고 우리의 방송 활동이 후배들에게 하나의 모범으로 소개되고 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그 동안의 20회 방송 모두가 재밌었지만, 특히나 여행과 이상형을 주제로 한 방송이 기억에 남는다. 성인이 되어 각자 여행 가고 싶은 장소와 일정, 금액, 먹거리, 놀거리를 짜 보았는데 방송하는 동안 많이 설레고 기대됐다. 또 우리 네 명의 이상형이 모두 달라서 많이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Q. 방송하면서 겪는 애로사항은?

A. 학교 다니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서 오히려 기운이 났다. 우리의 얘기를 하는 것이라 딱히 힘든 점이 없고 공부하지 않아서 좋았다. 단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Q. 변화 된 모습이 있다면?

A. 처음 방송할 때는 많이 어색해서 대본 읽는 것이 정말 딱딱하게 책 읽는 수준 이였다. 하지만 어느덧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정리해서 조리 있게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 리액션도 최고다.(웃음)


Q. 수능이 끝났다.  계획은?

A. 김감쪽 : 대학을 무조건 가야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든다. 우선 정시로 원서를 접수한 상태고 혹시나 입시에 실패한다면 내년에 수시로 대학응시를 하던가 해외로 봉사활동을 할까한다. 

얼티 : 나도 대학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다. 게임관련 스튜디오를 차리는 창업을 생각했으나 부모님께서 대학생활을 권유하셔서 우선 언어 전공으로 대학입학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 대학 졸업 후 바늘구멍 같은 취업을 하고 또 다시 정형화 된 사회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귀농한 아버지를 돕던가 나만의 사업으로 창업을 하던가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 어른들은 아프니깐 청춘이라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이 사회에서 잘 나가지 못 하면 우리들이 부족하고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직은 사회를 잘 모르지만 아프지 않으면서도 즐거운 청춘을 보내고 싶다.


주공기 : 부모님이 어린이집을 운영하시고 친인척이 유아교육 전공자가 많아 자연스레 유아교육과에 원서를 접수한 상태다. 합격하면 학교생활을 하며 내 적성에 맞는 과 인지 더 살펴볼 것이다. 만약 나와 맞지 않다면 다시 수능을 준비하더라도 평소에 관심 갖던 미디어 쪽으로 생각해볼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뭔가 이번 기회에 많이 생각하게 된다. 


Q. 제목이 공부해야만 하는 고3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자발적인 인생공부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하라공 방송은 계속되는가?

A. 안타깝게도 현재 네 명이 지원한 대학교가 지리적으로 너무 많이 떨어져있다. 방송을 하려면 자주 모여야 하는데 그 점이 불가능할 것 같아 하라공은 이제 그만하려 한다.


Q. 만약 다시 모여 방송을 한다면 방송 제목을 무엇이라 정할건가?

A. [하라공]이다. 이름은 같지만 의미는 바뀐다. ‘하라는 공부 안 해도 어떻게든 된다?’ 대략 그런 뜻으로 바뀔 것이다.(웃음)



Q. 라디오 방송이 하라공팀에게 남긴 것은?

A. 김감쪽 : 고3 생활 동안의 큰 즐거움 이였다. 평소에 가진 몇몇의 단편적 생각들을 잘 정리할 수 있는 여유와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얼티 : 내가 뭘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는데 덤으로 말도 조리 있게 하게 된 것 같다. 라디오를 통해 문화컨텐츠학과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 지금의 라디오 경험이 큰 자부심이 될 것 같다. 주공기 : 고등학교 시절 나의 꿈을 향한 첫 도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서 자랑스럽다. 홍보영상 작업과 라디오를 하면서 방송쪽에도 관심이 생겼다. 바쁜 고3시기였지만 하라공 방송을 결정한 것이 후회 없다.


Q. 며칠 후 면 새내기 성인이 된다.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은?

A. 감쪽 : 그 동안 나이가 어려서 자격미달로 못해봤던 스카이 다이빙 등의 위험한 스포츠와 투표를 해보고 싶다. 얼 : 일본으로 혼자 여행을 가거나 그린피스같은 단체에 소속되어 열혈적으로 환경운동을 하고 싶다. 주공기 : 당장 운전면허증을 따고 싶다. 사실 이번에 도로주행을 네 번째로 도전한다. 꼭 붙고 싶다.(웃음)


Q. 앞으로 이어질 제2의 하라공 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방송을 하는 동안 즐기면서 재밌게 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왕에 하기로 결심했다면 제대로 성실하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처럼.(웃음) 우리도 처음엔 어떻게 할지 망막했는데 두어 번 경험해보니 너무 쉽다는 걸 알았다. 첫 시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고자하는 생각만 갖지 말고 꼭 실천했으면 좋겠다. 한 발짝만 내딛으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김혜희 기자

gcinnews@gmail.com



탄핵 퇴진! 그 후를 위해 전태일을 읽는다. 


장기 투쟁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전태일 열사, 박종철 열사, 문익환 목사 김근태 선생 등 140여분의 민족민주 열사들이 묻힌 마석의 모란공원을 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애환, 장기투쟁 노동자들의 고통을 열사를 통해 조금이라도 위무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모란공원에서 새롭게 투쟁에 대한 결의를 가다듬는다. 그리고 촛불 광장의 기운을 되새기며 왜 지금의 헬 조선의 구조가 썩었고 새로운 세상이 절박한지도 말한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200만 촛불의 한 가운데서 전혀 새로운 한국을 말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근무시간에 놀며 약에 취해 있는 누구와 전혀 다르지 않는 역사 앞에 범죄자들이다.


모란공원은 우리나라 제1호 공원묘지다. 그 전에는 공동묘지였다. 공동묘지는 조선 후기 민란이후 지배자들에게 무리죽음을 당한 민중들을 묻은 것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공동묘지하면 원한과 귀신이 판치는 공포의 장소다. 그 이름을 공원묘지라 하니 밝음이 느껴진다. 특히 모란공원, 그리고 광주의 망월동 구 묘역, 부산의 솥밭산 등, 세상 모순에 맞서 싸우다 돌아가신, 흉포한 국가폭력에 타살을 당하신 열사들의 억울한 죽음의 묘지임에도 어느덧 뜻있는 이들의 위로와 결의가 맑게 뭉쳐지는 휴식과 치유의 공간이 되었다. 그것은 시대의 어둠에 맞선 이들이 투쟁이 비겁하지 않았고, 살아 있는 자들의 추모가 그 죽음을 욕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사들의 염원이 살아 숨 쉬는 한국, 이것이 정말 새로운 대한민국이 아닐까?


 전태일 열사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22년을 살면서 세상을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상’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어떤 무엇이든지 값이 붙은 것은 아무리 거액이고, 귀중한 것이라도 가치를 상실한 거야, 값이 붙은 그 순간부터’라고 갈파한다. 그 결과  ‘가난한 자는 부자의 노예가 되는 사회’ ‘가장 청순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 묻고 더러운 부한 자의 거름이 되는 사회’ ‘인간이 만든 생산물로부터 뭇짐승보다 천대를 받는 인간’들의 사회라 규정한다. 전태일은 이런 사회에서 참되게 살아가는 세상을 그린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을 고귀하게 여기고, 천지만물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고귀하게 여기는 사회’다.  ‘서로간의 기쁨과 사랑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어서,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즐거워할 수 있는 사회’다. 그러기 위해 태일은 사람답게 사는 생의 과제를 ‘어떠한 인간적인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과제’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잘못된 세상에 녹지 말고 ‘잘못 뭉친 덩어리를 전부 분해’ 하자고 한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쓴다. “나는 여기서 내일 하루를 구하고 내일 하루는 그 분해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일세.” 생활과 정치 투쟁을 융합하면서 돈 중심의 반인간적인 부패와 타락의 세상을 분해하자는 것이 전태일 열사의 제안이다. 


까뮈는 노동하지 않는 삶은 부패하고 주인 되지 않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고 했다. 지금 우리 시간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아니라 돈이, 돈과 관련된 야만적 관계가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선의의 공동체적 관계를 잡아먹은 것이다. 박그네의 기괴한 삶은 박그네만의 삶이 아니다. 장자연리포트의 조선일보, 건설업주가 운영한 섹스 파티 별장의 관료 검판사들, 김무성 사위, 이명박 아들 들이 했다는 마약파티, 부패와 부도덕의 환락은 돈이 만든 인간 타락의 최고의 무기들이다. 그러니 시민들의 분노와 그것이 일상인 지배자들의 이해는 천지차이다. ‘대통령이 무슨 죽을죄를 진 것도 아니고’라는 저들의 발상은 부패와 타락과 향락이 그들의 일상이기에 가능한 반응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분노했다. 탄핵마저 동요하는 이들을 몰아 드디어 탄핵까지 이르렀다. 잘못을 모르는 청와대는 탄핵을 해도 물러가지 않겠다고 한다. 억지로 통합 진보당을 해산시키며 민주와 복지를 종북으로 몬 반동의 최종 완결자 헌법재판소가 자기들의 아성이라는 오만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는 망령이자 좀비다. 그는 다시 살아있는 생명의 세계에서 생명을 부지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제 박그네 이후가 중요하다. 보수야당들은 흔들리고 동요하며 억지로 몰려왔음에도 민중들이 쓴 죽을 개처럼 탈취하려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반동의 도돌이표가 될 것이다. 여야 간의 정권교체가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했음은 이미 증명되었다. 만약 야당이 진실로 새로운 세상이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 촛불이 만든 광장 정치가 민주권력의 모태이자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민중을 구경꾼에다 필요할 때 동원하는 무기 수단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해결은 마치 국회 또는 체제라는 구름 속에서만 아퀴 지으려 한다. 그러니 그들은 쉼 없이 심판의 대상에 구애를 한다.  


청문회에 나온 재벌들의 모습은 비루했다. 우리가 확인한 대통령은 비천했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그것으로 우리 위에 군림했다. 무수한 세상 전문가 지식인들이 비루와 비천의 사냥개 간신이 되어 세상을 농락했다. 일을 안 해도 되는 (박그네)대통령, 죽어도 문제가 없는(삼성)이건희, 이들은 정말 존재적으로 쓸모가 없다. 기생적 존재들이다. 이제 실체 진짜 생명이 나서야 한다. 진짜들의 요구가 중심에 박힌 정치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정치로 우리는 세월호 진실을 규명하자. 백남기 농민 열사 한을 풀자. 관권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공권력을 사유화한 국정원과 극우 반동 진영의 뿌리를 뽑자. 농민 생존권 보장하자. 재벌들의 민원해결이자 뇌물의 결과인 노동법 개악을 모조리 되돌리자. 정리해고 비정규직을 철폐하자. 재벌 지배 체제를 분쇄하자. 국가보안법 철폐하자. 증오와 대립과 전쟁과 파괴가 아니라 친선 협력의 평화 통일의 길을 열자. 전태일이 염원한 ‘서로 간의 기쁨과 사랑을 마음껏 음미하는’ 세상으로 나가자. 


새로운 정치의 중심은 기존의 질서, 체제, 세력이 아니다. 바로 광장에 촛불을 든 민중들이다. ‘금전대의 부피’가 아니라 민중들의 선한 인간 공동체의 꿈이 돈을 이기는 박근혜 이후를 힘차게 상상하며 나서자.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안소영 지음, 강남미 그림, 출판사 보림 



온종일 방에 들어앉아 혼자 실없이 웃거나 끙끙대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기도하는 이덕무를 보고 사람들은 어딘가 모자라는 책만 보는 바보 "간서치"라 불러다 한다. 이 책은 본가의 적자가 아니니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니 살림을 꾸려 갈 녹봉도 받지 못하고 온전한 양반들만의 세계에 끼워주지도 않았던 서자출신 이덕무와 그의 벗들(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명문가의 자제지만 생각이 깊었던 이서구, 스승이었던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등 역사속 인물들의 삶을 마치 곁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저 별 도리 없이 가난을 대물림 받아 가슴속에 품은 뜻을 세상에 펼쳐 볼 수 없었던 이덕무는 굶주린 때에, 날씨가 추울때에, 근심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기침병을 앓을 때에는 온종일 작은 방에 앉아 햇살을 따라 책상을 옮겨가면서 애써 돼내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한다.


 1766년 5월 백탑(원각사 십층석탑) 이 있는 대사동으로 이사를 하게되고 벗들과 스승을 만나게 됨으로써 이덕무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의 벗중에 박제가는 오랑캐의 신기한 것만을 좋아하며 쫓아 다닌다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잘못된 것에는 눈을 부라리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뜻을 굽히는 법이 없이 그의 말은 언제나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의 눈을 백성들에게 닿아 있었기에 양반과 백성을 구분하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농민과 수공업자 상인들의 순서를 매기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다. 

 쾌한 생명력을,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편안하게 해주는 독특한 기운이 있는 유득공또한 그의 벗이었다. 유득공은 늘 소매에 종이와 붓을 넣고 다니며 조금이라도 색다른 것을 보면 글로 써두어 글 상자 속에 보관하였다. 조선의 역사. 조선의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눈여겨 보았으며 조선땅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그는 (이십일도회고시)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처남 매부지간이었던 백동수는 성미가 급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무인 집안의 자손으로 할아버지에게 활 쏘는 법, 말 타는 법을 배우고 당시 최고 검객 김광택에게 검술을 배웠으며 의술과 단학도 아울러 익혔다. 


 가난에 찌든 선비였던 이덕무와 부족함이 없던 명문가의 자제였던 이서구가 벗이 될 수 있었던건 책을 통해서였다. 문턱이 닳도록 오고가며 책을 나누고 읽고 이야기하면서 서로가 너무 잘 맞았다. 

 이렇듯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사람으로써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마음에 맞는 벗들과 함께 백탑 아래에서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나이와 신분에 꺼리낌없이 함께 어울리는 것이었다.

 탑과 벗들과의 사귐이 무르익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도 더 큰 세계와의 만남을 갖게해주는 스승을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보면 누가 중심이고 누가 변두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의 스스로가 중심인것을 가르쳐준 단헌 홍대용 선생과 편견에 사로잡힌 세상은 새로운 활기라고는 없는 세상,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것들로만 가득한 세상이라며 편견을 버리라고 가르쳤던 연암 박지원과의 만남이었다. 

 정신없이 벗들의 이야기까지 읽어내려갔을때 생각이 들었다. 누구와 어디와 많이 닮았다.  같이 보고픈 책을 정해 열심히 읽고 부족한 책을 줄서서 돌아가며 읽어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정을 쌓아가는 은행나무도서관 역시 그들의 "청장서옥" 못지 않다는 것에 뿌듯했다. 

 서자 출신이라는 운명이 그들을 얽매일때 세상에 태어나 쓰일 때가 없다는 절망감에 고통스러울때 백성의 미래가 조선의 미래가 걱정스러울때 같이 분노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벗이 없었다면 어디에 마음을 둘 수 있었을까?


 이덕무는 나이 40이 다 되어 박제가, 유득공과 함꼐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의 수행원으로 가면서 넓은 세계로 첫 발을 내딛는다. 정조의 탕평책으로 규장각 검서관이된 그는 여러 서적의 편찬, 교정, 감수에 참여하였으며 많은 시편도 남긴다. 그 뒤로는 경기도 적성지방의 현감으로 내려가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 고을을 다스렸다. 그들이 후세에 남긴 많은 서적들을 다 읽어볼 수는 없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다하더라도 누군가 나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와 나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때, 우리는 시간을 나눌 수 있다. 옛삶과 우리가, 우리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하는 벗이 되리라." 이 글귀 처럼 "책만 보는 바보" 한 권의 책으로도 책과 벗들을 그리고 내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하는 벗이 될 수 있으리라 싶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정혜숙 ]

[탄자니아 통신] 커피꽃 향기


“다 젖었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온 거야?”


옅은 회색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낮게 드리운 하늘을 보며 우산을 챙겨 나왔지만, 오토바이 위에서 소나기를 만나니 그것도 별 소용이 없어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이 되어 들어서는 나를 보고 건넨 첫 마디였다. 오토바이 위에서 돌아가야 하나 잠시 생각도 했지만 비 오는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생각하며 온 것이다. 도시에서 멀찍이 떨어진 한적한 산골이기에 버스가 없어 큰 맘 먹고 움직이는 곳이지만, 이곳은 내가 탄자니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해 시야가 확 트였을 뿐 아니라, 신이 창조한 본연의 아름다움에 인간의 손맛이 더해져 새로운 땅으로 거듭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매력 한 가지를 더 덧붙이자면 에스프레소 맛이 최고이기도 하다. 

 

젖은 몸이 체온을 빼앗겨 춥다. 시간이 지나 옷이 마를 때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우선 따뜻한 차를 주문한 후 노트북을 부팅시키고 있는데 그녀가 손에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비에 젖은 새마냥 오돌오돌 떨고 있는 내가 안스러워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드라이어를 건네며 한쪽 손을 자신의 가슴에 대고 한쪽 눈을 찡긋한다. 따뜻한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자 헤어스타일이 보송보송 살아나며 몸에도 온기가 돈다. 따뜻하다. 그렇게 만난 모니카 휘슬러는 덴마크 여성이다. 



< 커피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모니카 휴슬러 부부 (왼쪽)30년전 (오른쪽)현재의 모습>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 휴가를 보내기 위해 탄자니아에서 한 달을 머물게 되었고, 스위스 청년을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한참 예쁜 스물둘, 스물여덟, 둘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단다. 어째 영화 속 이야기 같다고 했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자리를 떴다.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태블랫 피씨가 들려있었다. 곧 신문기사 한 편이 그녀의 손 위에 펼쳐졌다. 가장 먼저 눈길을 잡은 것은 한 눈에 봐도 오래된 사진이다. 짧은 금발에 핫팬츠 차림의 왈가닥 소녀와 뒤에서 그녀의 목에 팔을 두르고 예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청년. 꼭 30년 전의 그들이었다.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기사거리로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 청년은 스위스인 가족이 세대를 이어 경영하던 커피 농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결혼 후 그곳을 인수해 지금의 ‘우탱굴레 커피 로지’를 지었다고 했다. 그 후 잔지바르에도 사업을 확장해 커피 하우스를 오픈했고, 지금은 다르 에스 살람에 로스팅 공장까지 가지고 있단다. 한 남자와 시작된 운명적인 사랑은 동화로만 그치지 않고 커피로 확장되며, 그녀를 유능한 사업가로 변신시킨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커피 경진대회에서 우승해 상장과 트로피를 손에 든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며 두 팔을 치켜들고 흔든다. 그 속에는 커피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듬뿍 베어있었다. 결혼 전에도 커피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거냐고 했더니 문외한이었단다. 이제는 ‘커피 전문가가 된거냐’,는 나의 짓궂은 질문에 ‘그렇게 되고 싶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커피 꽃은 이 삼일 동안 재스민과 비슷한 강한 향을 뿜고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꽃만 남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자신도 모르겠다고도 했다. 얌전한 새댁 같기만 하던 순백의 꽃. 향마저 없구나,하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내 속마음을 읽은 것마냥 그녀가 말했다.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때를 알고 그때에 맞춰 강한 향기를 뿜어내는 것 또한 최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해 선택한 고도의 전략일 것이다. 그들 역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짧은 순간에 서로를 향해 강한 매력을 발산하며 서로를 끌어당겼을 것이다. 그렇게 만나 평생을 함께 하며, 한 곳을 바라보며 성장했을 그들, 커피 꽃을 닮았다. 그리고 몇 장의 사진들을 더 펼쳐 보이는데 덴마크의 유명한 배우, 여왕의 아들과 함께 한 사진 등이다. 세월의 흐름은 발랄했던 소녀의 모습을 중년의 사업가인 아름다운 여인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말해 달라고 하자, 우탱굴레 커피가 한국에도 전해지길 바라며, 자신의 커피를 위해 그곳에 오는 한국인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성, 혹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개인적인 꿈을 말해 보라고 했다. 


“너는 이미 알잖아. 나의 삶이 곧 커피야.” 


내게 누군가 똑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짧은 여행을 위해 아프리카에 왔던 그녀. 오랫동안 동경한 땅 아프리카를 찾아 온 나. 그녀는 이 속에서 평생의 꿈을 찾았는데, 내게 지금 아프리카는 너무나 거대해 꿈으로 담기에는 막연하다. 구체적이고 손에 쥘 수 있는 내게 맞는 꿈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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