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식민지 한국의 슬픈 자화상

 

 

 < 사드배치 지역이 경북 성주군으로 확정을 앞두고 13일 오전 경북 성주 성밖숲공원에서 군민 3천여명이 참석해 사드성주배치반대 범국민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는 현장. (사진 오마이뉴스) >

 

 

‘성주만은 안 된다’가 ‘대한민국 어디에도 안 된다’로 진화하는 성주군민들의 마음은 암흑 속에서 켜지는 희망의 불빛이다. 강정 세월호 밀양에서의 투쟁이 이해가 된다며 반성을 하는 성주군민들의 모습은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자본과 권력자들의 생각에 대해 얼마나 통렬한 반격인가? 박그네 정권은 우리시대 참으로 고통스러운 교사다. 반면교사(反面敎師)다.

 

라오스에서 열리는 6개국 외무장관 회의에서 중국은 북에는 우애를 과시했고 한국에게는 배신자라며 냉랭함을 던졌다. 대구 치맥 파티에 중국 청도가 보이콧을 했고 러시아는 사드배치에 대한 항의로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 자체를 거부하며 미사일 집중 공격을 공언했다. 결국 사드는 그간 북 핵을 축으로 하는 유엔이 만든 국제 공조를 정확하게 요격했다. 박근혜가 김정은을 살렸다며 남북의 ‘적대적 공존론’이 실감나는 장면이다.

 

사드는 염탐체제이고 방패다. 하지만 미국 스스로 인정하듯 아직 미완성의 체제다. 그런데 그 미완성은 방패로서 미완성이지 염탐체로서 미완성은 아닐 터,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문제를 전략적 과제로 두는 것도 실은 자기 방위 망이 유리벽이 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자 거부라 보여 진다. 문제는 이 사드가 한반도에서는 염탐마저도 필요 없는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아니 무용지물이 아니라 백해무익한 것이 사드배치다. 왜냐면 우선 사드배치가 평화와 통일이 아니라 대립과 긴장 그리고 전쟁과 군비경쟁의 헬 게이트이기 때문이다. 사드배치의 결과는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통해 일본과 미국은 안전해 지겠지만 한국에게는 외교 파탄, 재정 파탄, 민생 파탄, 평화와 통일의 파탄으로 이어지는 재앙이다. 게다가 사드배치로 모든 북 중 소 전략적 무기들이 한반도에 초 집중된다. 사드는 미사일을 끌어당기는 지남철이요 핵 번개를 끌어당기는 피뢰침이다.

 

그런데도 사드배치를 밀어붙이는 이유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김종일 대표는 “박근혜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세월호 진상문제를 덮기 위해 특조위를 무력화시키고 특별법 연장을 거부한 것, 강정해군기지 건설에 사용될 철근 수백 톤이 세월호에 실 린 것,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게 불리한 초대형 이슈가 터지면 청와대가 직접 나서 전방위적 언론 통제를 자행했음이 이정현 녹취록과 김시곤의 비망록에 의해 밝혀진 것,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를 묵살한 채 4조가 넘는 세금을 공적자금이란 명분으로 투입한 것, 메르스 대란 조기종식이란 대국민 사기극을 완성하기 위해 추가 확진자를 숨긴 것, 계속되는 경제정책 실패와 남북관계 파탄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실정과 민심 이반에 따른 정권안보의 위기의식 때문”이라 분석한다.

시기적으로 보면 “사드배치에 대한 결정의 유일한 논리적인 이해는 지난 총선에서 차기 권력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현 정권과 미국의 의도가 맞아 떨어지며, 이 정권 임기 내에 사드 배치를 완료하여야한다는 시간을 역산한 결과”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일이 있다. 한국 정부의 입장과 말들이다. 주한미군 사드 포대는 주한미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으면서 한미연합작전에 운용될 것이라 한다.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으로 국회 동의도 필요 없다고 정부가 인정한 순간 사드에 대한 전권은 한미연합사령부, 미군 대장의 권능이 된다. 한국 외교의 전략적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 국방부에서 사드 배치를 발표하는 그 순간에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 바지를 수선하러 강남에 갔다는 장면은 "한민구 국방장관이 발표 불과 이틀 전에 국회 비경제분야 대정부질문 당시, 사드 배치와 관련해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공언한 것과 함께 대미관계에서 한국의 처지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그런데 그 배제와 능멸의 대상이었던 국방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이 돌연 사드 배치의 전도사, 사드 판매의 영업사원이 되어 사드만능론과 사드자위론을 설파한다. 어찌 이리 자존심도 염치도 없단 말인가?

사드가 수도권을 포기하고 일본과 미국을 방어하는 체제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드는 대중 대러 염탐 체제이자 미국 본토 사수 체제다. 그런데 사드가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자주적 결정에 자위적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이 배제된 방어체제라는 것만으로도 사드는 방어적 조치도 못된다. 자주적 국방이란 제힘으로 자기를 지키는 것이다. 남의 힘에 남의 무기에 의존하는 것을 자주라고 하는 것은 노예의 논리다. 자위 또한 그렇다. 하지만 사드배치는 미국의 동아시아로의 귀환과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의 공고화로서 자주나 자위와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게다가 미일은 100년 전에 카스라-테프트 조약을 통해 한국과 필리핀을 식민화 한 장본인들이다. 일본의 식민통치는 아직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그런데 미일의 하위 파트너로 총알받이가 되는 것을 자주 자위라 하는 자는 적어도 한국 사람은 아니다. 분단과 분열과 전쟁과 의존으로 권력과 부를 누린 이들, 수구 사대 매국세력들의 말이다.

지난 날 분단 정권 수립을 막고 통일 정권 수립을 주장하는 제주도를 학살하며 “제주도 하나쯤은 지워도 된다.”던 미군정 권력의 의식보다 더 끔찍한 발상이 사드 배치에 숨겨져 있다. 그 본심의 발현이 국민을 외부 내부, 순수 불순으로 나누는 행위다. 국민 내부에 적대의식을 심어 만들어진 사드배치에 이익을 보는 내부세력 순수 세력은 도대체 누구일까?

오바마와 아베가 자주 국방의 내부이고 통일과 평화가 외부 불순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정체성은 진짜 무엇일까? 미국이 한국 사람을 들쥐로 보는 것과 현 정권이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것의 차이는 없어 보인다. 사드배치는 민주주의도 주권도 헌법이 규정한 평화와 통일도 다 부정하는 최악의 파시즘적 전쟁 책동이다. 자주 애국이라는 말의 주체가 ‘미국과 일본’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사드배치가 더욱 분한 이유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우리는 매년 양력 2월14일을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렛과 꽃을 선물하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발렌타인데이로 기억하고 상술인 것을 알면서도 축제처럼 그 날을 기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2월14일은 또다른 의미로 기억되어야할 날이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우리나라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독립의 의지를 밝혔던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기도 하다.

  김흥식 작가가 쓴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체포된 뒤 1910년 2월 7일부터 2월 14일 마지막 사형선고를 받을 때까지의 일주일동안 있었던 재판정 모습을 재현한 책이다.
첫 번째 공판에서 여섯 번째 공판까지 재판정 안에서의 나눈 변론을 통해 우리는 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안중근은 천석꾼의 양반집 아들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주어진 삶에 안주할 수도 있었으나 을사늑약, 정

미 7조약 체결로 인하여 나라가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어 만주로 향한다.

  단지동맹을 통하여 독립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하고 연설 등을 통하여 사람들을 개몽하였으며 학교사업을 추진하기도 한다.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을 떠나 만주를 순시하기 위해 온다는 사실을 접한 안중근은 우덕순,조도선,유동하와 함께 거사를 준비하고 하얼빈역에서 그 뜻을 이루게 된다.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안중근 의사는 이토를 죽인 것은 한국의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역에서 독립전쟁을 일으켜 이토를 죽인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살인이 아님을 밝히고 전쟁포로로서 정당한 재판을 받도록 해 줄 것을 주장하였으나 재판장과 검사 그리고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으로 구성된 재판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은 안중근 의사는 항소마저 포기하고 사형집행이 있는 그 날까지 뤼순 감옥에서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여 하얼빈 의거의 정당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사형되었을 때의 그의 나이 서른 한 살,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그 꿈을 펼쳐야 할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위기의 나라를 구하고자 한 그의 큰 뜻을 평범한 나로써는 도저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오늘은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는 말을 떠올려 보며 오늘을 어떻게 살지 다시 생각해 본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유문주

서있기, 서서 일하기

 

 

바른 서기의 중요성 

  인간이 두 발로 서게 된 것은 놀라운 축복이었지만 문제점도 있다. 네 발 아닌 두 발로 서있으면 두 다리로 전 체중을 지탱하게 되어 자세가 불안정하고 피가 몰려 기혈 순환이 잘 안되며 하체는 쉬 피로해진다. 더구나 고관절, 골반이 틀어진 상태로 서있는 경우 연쇄적으로 무릎, 발목은 물론 허리, 어깨, 목까지 이상이 오기 쉽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 있는 것이 가장 좋을까? 그 비법은 참장공(站樁功)을 응용한 자세로 서 있는 것이다. 수천 년 전 선가(仙家) 양생법에서 유래한 참장공에는 놀라운 건강정보가 담겨 있으며, 인류를 위한 최상의 운동이라 할만하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고, 불과 1분 만에도 큰 효과를 보게 된다.

  참장공의 기본은 말 타는 자세에서 유래한 마보식(馬步式)이며, 그 핵심비밀은 첫째 무릎을 굽히는 것이고, 둘째 두발을 안으로 모으는 것이다. 마보식을 응용한 자세들로는 허보식(虛步式; 굽힌 뒷발에 체중을 싣는다), 궁보식(弓步式; 굽힌 앞발에 체중을 싣는다), 부보식(仆步式, 한발을 펴고 낮게 앉는다), 독립식(獨立式; 한발로 선다) 등이 있다(사진1 참조). 일상생활에서 이 자세들을 활용할 때 손동작은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하면 된다.

 

 

서있기, 서서 일하기

-무릎 굽히고 서있기; 서있을 때는 언제나 무릎을 약간 굽혀보자. 이는 매우 중요한 특급 건강정보이며, 놀랍게도 고대인들은 오래전부터 건강과 양생을 위해 이를 실천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내몽고에서 발굴된 1만여 년 전 정천문명(한겨레의 시원문명으로 추정됨)에서 나온 흑피옥 조각품들을 보면 거의가 무릎을 굽힌 채 서있는 자세를 하고 있다(사진2 참조). 

  하루 중에 서있는 시간이 적지 않다. 전철을 타거나 기다릴 때, 싱크대에서 요리나 설거지할 때, 강의나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이를 닦을 때, 소변볼 때 등 잠시 서있는 시간에는 두 발 앞쪽을 살짝 안으로 모으고 무릎을 굽힌 채 서있어 보자. 한결 피로감이 없고 다리로 피가 몰리지 않으며, 중심이 내려가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가 된다. 또 단전에 기가 가득 모이게 되어 활력이 넘친다. 며칠만 실천해보면 몸이 완전히 달라짐을 바로 느낄 수 있다.

  군대 등에서 많이 하는 차려, 열중쉬어 자세도 약간 수정해서 무릎을 살짝 굽히는 게 좋다(1mm만 굽혀도 된다). 이런 자세로는 오래 서있을수록 건강이 점점 더 좋아진다. 

-선 자세로 일할 때; 서서 일을 할 때는 마보식 참장공을 응용해 두 무릎을 굽힌 자세로 해보자. 청소 등 이동하는 작업을 할 때는 여건에 맞게 허보식, 궁보식을 응용해 앞무릎 혹은 뒷무릎을 굽혔다 펴면서 해보자. 혹은 부보식을 응용해 두 발을 양옆으로 벌린 자세에서 한 발을 펴고, 다른 발은 굽힌 자세로 일을 한다. 한 발로 서야할 때는 다른 무릎을 살짝 굽혀보자. 이렇게 하면 일을 하면서 동시에 강력한 하체운동이 되고, 단전에 많은 기가 모여서 건강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사진1 여러 가지 참장공들. 왼쪽부터<마보식><허보식> <궁보식> <독립식> <부보식> >

 

<사진2 정천문명의 흑피옥조각품들. 고대인들은 무릎을 굽힌 참장공 응용자세를 생활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명복
기센터 및 건강문화연구원

라면을 끓이며

 

 

냄비에서 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옆에는 라면 봉지 두 개가 입을 벌리고 있다. 스프 봉지를 꺼내 봉지를 뜯고 끓는 물에 털어 넣는다. 그리고는 볼품없이 잘라놓은 소시지를 넣는다. 이곳 사람들은 도마를 사용하지 않기에 손에 들고 뚝뚝 자른 탓이다. 마지막으로 라면의 면발을 넣는다.
어학원 부엌이 한국인으로 붐빈다. 며칠 전 한국인 선교사 몇 분이 스와힐리어 교육 상담을 받으러 왔다가 라면 두 봉지를 건네주고 간 것인데, 어학원 식당을 잠시 빌려 요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부터 감기로 골골거리는 나를 위해 감기약이라며.....
접시에 소복이 담긴 밥과 야채 볶음 사이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냄비가 놓인다.
한국 음식에 어울리는 식기가 있을 리 없다. 아쉬운 데로 찻잔을 그릇 대신으로 삼아 면발을 나누어 담은 후 냄비 체 들고 국물을 따른다. 라면 두 봉을 네 명이 나누어 먹어야 하기에, 물을 넉넉히 잡은 탓에 심심해진 국물이지만 다들 맛있다며 법석을 떤다.

해외생활을 꽤 했지만 한국 음식을 그리워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세네갈에서 유일하게 생각났던 건 짭짜름한 젓갈이 유일했다. 그것도 잠시 스치듯 몇 번 생각난 것이지 크게 아쉬워하지도 않았었다. 그런 내가 새삼 입맛이 변해 갑자기 한국음식에 감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료들이 약이라며 처방해준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따뜻함이 난데없는 행복을 주고 있다.

 

 

카카오톡단톡 방은 우리의 연락망이다. 누군가 수다가 필요하면 모임을 주동한다.
“호디“ “카리브”호디는 남의 방에 들어가기 전 노크 대용으로 쓰는 스와힐리어인데, 우리에겐 일종의 암호다. ‘프린세스’의 방이 우리의 아지트다. 그의 방 만이 유일하게 전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프린세스’. 와니. 유일한 남자다. 낯선 상황이 되면 여지없이 까탈을 떨곤 해서 누군가 그를 ‘프린세스’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인데 그 표현이 너무나 절묘해서, 그가 까탈을 부리기 시작하면 우리 중 누군가가 ‘아이구, 우리 프린세스 어쩌나’하며 그들 어른다.
우리가 그렇게 놀려도 마음 상해하지 않을뿐더러 며칠만 지나면 언제 까탈을 부렸냐는 듯 상황을 즐긴다. 또한 육체적인 힘이 필요할 때는 말없이 팔을 걷어붙일 줄도 안다.
약속시간이 되면 여행을 좋아해 이미 여러 나라를 경험하고 외국인 친구들과 가장 잘 어울려 우리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는 스텔라가 호디를 외치며 입장한다.
조금 지나면 웃음소리가 하이디처럼 경쾌해 명랑소녀라고 이름 붙인 필리가호디를 외치며 들어온다. 신기한 건 나와 참 다르구나 싶은데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의외로 닮은 점이 많아 편한 아가씨다.

우리 넷은 하는 일도 나이대도 성격도 다 다른데, 매우 독립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에 익숙한 것이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갈등이 없다. 설사 사소한 오해가 있다고 해도 솔직하게 표현하고 받아들이기에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는 탓이다.
아침을 좀처럼 먹지 않는 내가 하루는 아침 시간에 식당에 갔다. 보통 식사 시간이 되면 먼저 간 사람이 자리를 잡고 먹고 있으면 하나 둘 모이게 마련인데 그날은 아무도 오지 않는다.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선생님 중의 한 분인 장구오가 동료들의 안부를 물어온다. 잘 모르겠다는 나의 대답에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네가 아는 게 도대체 뭐냐, 고 정색을 한다. 이곳 탄자니아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웃집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그건 아주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아침 식사보다 잠을 선택했다는 걸 알기에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자, 아프거나 위험한 일이 발생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탄자니아에는 ‘한 손가락으로는 이를 잡을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냥 웃고 만다. 옆방에 살면서 따로 와서 밥을 먹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신의 그릇을 챙겨 먼저 자리를 뜨는 우리가 그들 눈에는 참 별스럽게 보일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구오에게 이런 우리를 설명할 길은 없다.

 

방으로 돌아오는 밤하늘에 보름달이 바오밥나무 가지에 걸려있다. 필리가 말한다.
“특별한 일이 있는 날 하늘을 쳐다보면 보름달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정말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면 보름달이 있더라고요.”라면 두 봉지가 특별함을 줄 수 있는 지금. 난 이 순간이 좋다.


 

소피아
7월 6일

즐거운 휴가철 주의할 점-2



지난 호에 이어 즐거운 휴가를 위한 팁에 대해 계속 이어가기로 한다. 

유명 관광지에허 흔히 일어나는 사고로 도난 사고를 빼놓을 수 없다. 소중한 여권이나 돈을 잃어버려서 난감한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안전한 여행을 책임지는 여행사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인가?

결론은 본인이 잘못해서 잃어버린 부분까지 여행사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다만 여행사가 예약한 호텔이 베란다 출입문이 부실해서 도둑이 든 경우같이 여행사에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예외적으로 80%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는 있다.

만일 경관을 보러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배가 흔들려서 발목을 삐었다면 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미리 고지하고 주의를 주지 않은 가이드한테 책임을 물을 수는 있을까? 

이 경우는 구체적 사실 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여행사 일정에 따라 관광을 하다가 사고가 났으면 여행사가 섭외한 가이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본인이 자유 시간에 혼자 돌아다니다가 난 사고라면, 사고 지역이 특별히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미리 주의를 주지 않았다거나 하는 점을 들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제 모든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폭설이 와서 비행기가 안 뜨는 경우, 그래서 중요한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겨울 제주에서 급작스레 내린 폭설에 휴가를 즐기던 수만명이 발이 묶인 채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적이 있다.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더군다나 중요한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예견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최근 몇 년 전부터 휴가가 누구나 즐기는 일상이 되었다. 토요일까지 열심히 일하고, 일년에 3박4일 휴가내는 것도 눈치보이던 시절에는, 일부 특권층만이 누리던 호사였는데 말이다.

휴가지 또한 다양해져서 경포대나 해운대 같은 익숙한 해변가 외에 해외로 나가는 사람도 많아졌고, 인터넷이 안 되던 시절 휴가철이면 차표를 구하려고 3일 전부터 길게 늘어섰던 줄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인터넷으로 예약이 가능하고 국내 유명 관광지 외에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운 힐링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광고문구에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하는 말이 있지 않았는가...다만 제대로 힐링할 수 있는 안전하고 즐거운 휴가를 위해서는 숙소 예약부터 교통편, 안전 사고까지 미리 준비하고 점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필자소개
민주평통 상임위원 및 금천구협의회 운영위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감사,  KBS '생방송일요일아침입니다' 고정 패널. 법무법인 참진(851-6494)에서 변화사로 활동 중이다.


[기고]포획된 시민사회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지금의 금천 시민사회는 소수의 열정적이 운동가들에게 포획되어 있는 것 같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물론 이는 비단 금천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토론을 이유로 타 구에 가서 상황을 물어보면 비슷한 대답들을 듣는다. 

시민사회가 소수의 열정적인 운동가들에게 포획되었다는 것은 몇몇 소수가 한 지역의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좌지우지하며, 마치 모든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왜곡되어 있다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비단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지역 정당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러한 포획은 다양한 정책의 발굴이나 생산을 왜곡되게 한다. 물론 정당이 일부 열성적인 활동가들에 의해 포획된 사례는 한국만이 아니다. 서구에서도 정당 정치를 개선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개혁의 대상으로 이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말하자면 소수의 열성적인 당원활동가들은 그들의 바램을 계속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당을 이끌고 갈 가능성이 크고, 그런 경우 정당운영이 경직화되면서 유권자들의 선호 변화에 적응력이 떨어지는 그런 정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당정치와 대통령제 민주주의–정진민) 맹목적으로 열성적인 정당의 활동가들이 정당을 일반 유권자나 지지자들과 유리되게 만들듯이 시민사회의 일부 열성적인 활동가들이 많은 시민들을 시민사회의 열린 공적 공간과 유리되게 만들고 있다. 과정에서 갈등은 치유되지 않고 깊어져 간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 나타날까?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 서문에서 우리는 목록에 없는 유산을 상속받았다고 말했던 것과 같이 우리 인간의 태생적인 한계일까? 


1 갈등과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

어떠한 사회나 개인의 수준은 늘 갈등과 위기 속에서 드러난다. 위기에 대한 세련된 반응은 그 사회를 세련되게 만들고 역동적인 반응은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며, 천박한 반응은 그 사회를 당연히 천박하게 만든다. 마키아밸리는 갈등이 국가를 발전시키는 근간이라고 하였다. 갈등을 구조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발전의 근간으로 여기지 못하고, 타인을 경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때 그 사회의 천박성은 극도로 드러난다. 서양 속담에 누군가를 괴물로 생각하면 어느 순간 진짜 괴물이 되어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는 동양 불가에서는 “나는 너다.”라는 화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 관계에서는 모두가 힘들다. 

이제는 금천의 지역사회에도 갈등을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세련되게 풀 수 있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를 말리거나, 대승적으로 참으라고 하는 그런 식으로의 방법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응보적 정의보다 회복적 정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다. 노파심이지만 옥상옥처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또다른 구조를 만들자는 것을 말함은 아니다. 


2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착각 

열심히 활동하는 것은 장려 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으로 빅 마우스가 되어 여기저기 참견하고,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옳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동료 시민에 대한 패악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행위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다. 하나는 시민들의 투표나 합의된 절차 등을 통해 공직에 당선된 사람의 정치적 행위가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론장에서의 다수의 합의를 통한 정치적 행위가 정당성을 획득한다. 물론 무엇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정치인이 투표라고 하는 과정을 통했다고 해서 모든 행위에 정당성이 부여 된다거나, 공론장에서의 시민사회가 합의를 거쳤다고 모든 행위가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것은 정당성 없이 시민사회를 포획하는 것과 같고,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남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자유와 평등, 노동에 대한 권리 등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들을 누군가가 침탈할 때의 불퇴전의 용기는 소중하다 못해 숭고하다. 하지만 (권위주의가 해체되지 못한 공간에서의 불퇴전의 용기와 다르게) 권위주의가 해체된 공간에서의 불퇴전의 용기는 자신을 과시하는 것 외에는 결코 유익하지 않다. 한 공동체에서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는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절대화 시킬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독재와 반독재의 싸움, 민주와 반민주의 싸움에서의 익숙했던 덕목이었던 불퇴전의 용기가, 권위주의가 해체된 그래서 새로운 시민사회라는 공동체를 건설해야함을 요구 받는 곳에서는 과연 어떤 용기가 주된 덕목으로 대체 되어야 하는지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3 중세 권위주의시대의 개념적 정의(定義) 방식을 아직도?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을 관념론으로 수용하면서, 세계는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식 체계 속에서 재구성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가 말했던 입법자로서의 준칙은 사실 모두의 준칙이 아니라 자신의 인식체계속의 준칙이었다. 근대는 이런 소통불가능성을 태생적으로 안고 태어난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더 나아가 근대는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하면서 무언가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스스로 또는 마음대로 내릴 수 있는 기이한 자유까지 부여하였다고 말했다. 즉 국가나 사회 또는 민주주의, 정치 등 모든 사물이나 추상적 언어를 포함한 어떠한 것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마음대로 내릴 수 있는 자유를 말이다. 이런 기이한 자유는 전통적인 권위주의적인 체계에서는 전형적인 소통불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런 사회에서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자유로운 체제 속에서는 이런 기이한 자유가 오히려 초기의 소통가능성을 열어젖히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리는 행위가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는 것이다. 비로소 근대는 이것을 발전과 진보의 근간으로 삼는다. 스티브 잡스가 휴대폰이나 컴퓨터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달리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진화된 휴대폰과 컴퓨터의 생태계를 만들었듯이 말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과 완벽하게 소통할 수 없다. 오히려 자유로운 인간의 불안전한 소통 때문에 가장 크게 소통의 가능성을 확보하는 역설이 근대의 소통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중세나 권위적인 시대에서 개념적 정의는 늘 권위자에 의해서 정리가 되었고, 누구도 부정해서는 안되었으며 인간은 그대로 외우기만 하면 되었고 모르면 권위자에게 물으면 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물이나 추상적 언어 등에 대한 개념적 정의조차도 개개인이 자유로이 내릴 수 있는 근대에서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때때로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볼멘 소리들을 한다. 세대간 지역간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게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 권위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증거다. 몇몇 넋 나간 과거의 사람들이 독재 때가 좋았다라는 푸념과 다르지 않다.  


정리를 대신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을 “번갈아 지배하면서 지배 당하는 자”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러나 주변을 보면 누구나 오르려고만 한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구의원이 되면 시의원이 되어야 하고 구청장이 되면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낙마하면 견디지 못한다. 톨스토이의 이반일리치처럼 사형선고를 받고서야 후배가 나를 밀어내고 국회의원이 되었음을 깨달을까? 우리 사회엔 아직도 국회의원 하던 이가 구의원을 하거나 반장이나 통장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반장이나 통장을 만나면, 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은 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이런 왜곡된 덕목이 시민사회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때때로 은근히 자신의 지위와 경력을 들이대는 이유가 적어도 자신이 누구니까, 어느 정도의 위치 정도는 되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과시하는 것 같다. 자신의 소중한 경험이 공적인 자산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덕목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면서 시민사회를 포획하려는 것이다.     


금천 시민사회에는 어른이 없다. 그들의 결정에 따라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낼 어른이 부재하다. 모두가 어른인 척 하고 있으나 불편한 상황에서는 회피한다. 어른은 있을지 모르지만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작은 갈등도 확대 재생산되어 끝까지 간다. 몇몇은 오히려 갈등을 유발하면서 불퇴전의 용기를 낸다. 이런 사람들이 열심히 하면 결국 다수의 시민과 유리된다. 시민과 유리된 시민사회는 그냥 그들만의 집단에 불과하다. 다수는 원치 않는 상황에서 결정을 강요 받게 되고, 또한 그들의 넋두리를 계속해서 들어줄 인내심도 곧 한계를 드러낼 것이기에 다수는 다시 사라지게 된다. 결국 다시 소수만이 남아서 지역을 포획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 주권은 요원하다. 물론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며 반성할 일이다.  



                              금천구 주민 

이윤로

                                   



곤살로 모우레 글, 알리시아 바렐라 그림

이순영옮김, 도서출판 북극곰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가 생각나는 그림책. 어른들을 위한 글 없는 그림책으로 소개된 이 책엔 표지에서부터 빨간 물고기 한 마리가 등장한다.

단순하다못해 심드렁한 표지 분위기에 어울린 심심한 캐릭터로 생각되기도 하고, 눈에 띄었다 해도 제목이 물고기니 별 의미없이 지나칠 수 있는 존재로도 보인다.

공원을 헤엄치듯 날아다니는 물고기를 따라 책장을 펼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원의 일상이 보인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공원이니 상상의 공원 이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공원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또 보고 또 보게 되는 그림책. 그곳에 하나의 공원이라도 백 개, 천 개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소녀와 그녀를 바라보는 소년의 사랑. 늙은 마그다와 마디의 재회, 그들의 추억을 따라가다 내 곁에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해보기도 한다.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 시인의 이야기, 그런 시인을 바라보며 마법 같은 순간을 느낀 꼬마 과학자를 보며 내 딸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밖에도 스웨터를 짜는 할머니, 공원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사진 작가, 공원에서 연주하는 플루티스트. 머리위에 먹구름이 따라다니는 여인, 물줄기가 계속 바뀌는 분수, 유기견과 고양이, 새, 두더지 등 여러 동물 들의 이야기로도 상상을 펼칠 수 있다.

 그저 스쳐지날 수 있는 공원의 일상인데, 조금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니,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그곳에 있다. 

혼자 유유히 사라지는 물고기처럼 오늘 내가 지나온 공원은 어디였을까. 따뜻하게 바라보고 웃음지으며 내 곁을 지나간 물고기는 누구였을까.



                                     2016.07-1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 읽는 어른모임

 조진영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안 된다.



남북 간 관계는 이제 경색(梗塞)이라는 표현조차 쓸 수 없을 정도의 경지가 되어 버렸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쓰는 외교라는 단어가 불필요한 것은 물론 서로를 타도의 대상으로 공공연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이렇게 오늘과 같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을 만들었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양쪽의 정치지도자들이 그들이다.

남북문제는 한반도 분단 이후 남북 양 정부RK 중요하고도 첨예한 국가과제로서 받아들여 필요한 정책으로 마주하면서 여러 시도를 전개하였으며 그 도정에 위기도 있었지만 희망적 진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상황들은 그 시작의 의미나 도중의 희망성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과정은 항상 부정적인 결과로만 이어졌다. 그렇듯 남북문제는 시대적 필요에 따른 양측의 건설적이고 희망적이었던 진행의 경우에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이유로 시작 때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들로 서로 탓을 하면서 끝을 내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이다.

왜 이와 같은 진행이 되는가의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의 매뉴얼에는 두 체제의 공존을 목적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수사에다 미사여구조차 남발되던 그들의 대화마당에 진실이 없는 것이다. 달리 설명을 하면 둘 중에 하나는 소멸되어야 하는 것이 서로의 속내이고 따라서 애초부터 결론이 있을 수 없음을 알면서 만나는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행태는 지난 시간에 서로의 체제 다지기에 유익한 과정이 되었고 그래서 각각의 영역에서 생산성이 평가되면서 서로는 빤한 결론을 두어놓고도 대화라는 기만책으로 양쪽 국민들을 우롱하였다. 이 주장은 물론 북쪽에 대하여는 신뢰성 문제의 제기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쪽은 분명한 사실임을 여러 방면에서 동의를 구할 수 있고 필자세대들은 경험으로 만난 바 있다. 

지난 일을 들쳐가면서 양비론적 비판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던 현상을 바꾸는 장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의 전개는 남북 모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천추의 한이 될 불행한 사태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만큼 현재에 전개되는 시간은 두 당사자에게는 엄중하고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개연성을 아주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길 해보자. 지금과 같은 남북문제를 풀려면 그 진전에 남쪽의 노력이 먼저 제기되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과 북은 규모의 차이가 있고 그로 인한 균형은 평범한 방법으로는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규모의 차이가 있는 두 객체가 조화하려면 한쪽의 대승적 양보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규모를 가진 남쪽에서 있어야 한다.  



물론 공식은 단순하지만 그것의 현실적용이 쉽지 않다. 이기적 가치질서에 길들여진 남쪽에서 공론화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가 있다하여 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남쪽은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인만큼 변화는 발전적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는 질서를 인정하고 있기에 이를 행동하자는 것이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만들려면 현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남북이 조화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적으로 존재하는 양 체제의 규모 때문인데 그것의 갭(gap) 에 대한 이해가 다르고 그래서 해소의 방법도 다르다. 북측이 대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엇박자를 내는 것이나 남쪽은 자본주의적 가치질서로만 바라보려 한다. 그래서 결과는 항상 파행이다. 다시 말하면 북쪽은 규모가 다른 현실 인정은 곧 패배라 보고 이를 극복하고자 비대칭전략을 지향하는 것이다. 북한의 비대칭 무기들이 그것이고 그 중심에 핵(核)이 있다. 

필자의 단견일지 몰라도 북한의 핵은 이러한 질서가 바탕이다. 이 주장의 옳고 그름에 대한 비판을 원치 않는다. 다만 현재의 남북 간 긴장 완화는 무조건적으로 필요하고 이를 위해 현상에 대한 바른 이해를 말하고자 함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남쪽 정부는 필요이상으로 북한을 자극하고 있고 더욱이 미국을 끌어들임으로 그 긴장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외·내부적 사정으로 국지 도발을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시위하는 전쟁은 하지 못할 것이다. 핵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완전한 담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전쟁은 패배이자 곧 종국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대북 강경기조 일변도로 끊임없이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평소보다 잦은 군사훈련을 하는가 하면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군과의 합동작전도 빈번하게 한다. 국민을 안심시킨다는 명분인데 이는 오히려 국민을 불안하게 할 뿐이다. 다수의 국민들은 어떤 결과에도 전쟁이라는 상황을 원치 않음을 알아야 한다. 

최근 정부의 북한의 황강 댐 수공(水攻) 위협 거론도 국민들의 신뢰 밖이다. 장마 때인데도 북한이 물을 가두고 있는 것은 남한에 수공을 하고자 함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수공을 통하여 북한이 남한에 줄 수 있는 피해는 그러한 행위로 그들이 받게 될 국제적 비난에 비하면 그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오랜 가뭄 뒤 끝이고 장마의 지속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어 방류에 신중을 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그렇듯, 정부는 북한과 관계하여서는 강경책 일색이다. 더욱이 미국을 끌어들여 긴장도를 더욱 고조하고 있고 그것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북한 핵무기 대한 방어 목적이라며 중국과 러시아가 강력히 반대하는 사드(Thh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하기로 미군과 합의한 것이 그것이다. 참으로 슬프고 두렵기조차 하다. 북한이 한계상황으로 받아들여 그에 따른 행동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려 덤벼드는 것은 동서양의 평범한 교훈이다. 사드 배치 절대 안 된다. 그 결정 물려야 한다!(♣2016.7.9.)



장제모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건강기공 (5)  걷기, 뛰기



<연재 계획>

1. 몸 다스리기1- 건강에 전제는 바른 체형

2. 몸 다스리기2- 자세가 바르면 만병에 자연치유

3. 기 다스리기- 생체에너지가 강해야 진짜 건강

4. 마음 다스리기- 생각을 비우면 마음이 건강해

5. 쉽게 하는 생활기공1- 걷기, 뛰기

6. 쉽게 하는 생활기공2- 서있기, 서서 일하기

7. 쉽게 하는 생활기공3- 의자에 앉기, 앉아서 일하기

8. 쉽게 하는 생활기공4- 바닥에 앉기, 눕기


걷기의 중요성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은 걷기이다. 요즘 공원이나 헬스장에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걷는 운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 많이 걷는다고 운동효과가 크고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두발로 직립보행을 하기에 숙명적으로 몸이 틀어지기 쉽다. 잘못된 자세로 걸으면 신체균형이 깨지고 몸은 전후좌우로 틀어지게 된다. 또한 몸 여러 부위에 진동이 커서 에너지 낭비가 심하고 쉬 피로해진다. 

  특히 팔자걸음은 절대 금물이다. 한 발을 땅에 딛는 순간 밖으로 틀어진(外轉) 고관절에 체중이 실리면서 그 고관절은 더 틀어지게 된다. 거리에서 보면 어기적어기적 걷는 분들이 있는데, 거의가 고관절이 틀어진 경우이다. 이 상태로 계속 팔자걸음을 걸으면 몸은 더 틀어지고 그 결과 척추의 신경과 혈관, 경락이 막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11자 걸음을 걷거나 가급적 앞발 쪽을 살짝 안으로 모으고 걷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진 삼보공. 코와 모공으로 마시며 걷는다.>



쉽게 하는 걷기와 뛰기

  옛 수행의 스승들은 생활 중에 쉽게 할 수 있는 많은 수련법들을 개발했는데, 이중에 걷는 수련을 보공(步功)이라 한다. 몇 가지 보공들을 소개해 본다.  

-삼보공(三步功); 도가의 대스승 여동빈 선생이 체계화한 ‘자연환기법(自然煥氣法)이라는 보공의 기본이다. 편안한 자세로 자연스럽게 세 걸음 걸어가면서 코로 숨을 마시고, 다시 세 걸음 걸어가면서 숨을 토한다. 동시에 전신 모공으로 우주에너지를 흡입하고, 다시 체내의 탁기를 배출한다는 의념으로 걷는다(사진1 참조).   등산길에 삼보공을 해보면 확실히 피로감이 적고 숨이 덜 차며 산의 정기를 많이 받게 되어 기력이 넘친다.  

  숙달되면 여섯 걸음을 걸으며 마시고 여섯 걸음을 걸으며 토하는 육보공을 해보자. 나아가 구보공, 십이보공도 연습해보자. 날로 에너지가 넘치게 된다.    

<사진2 활보공. 한 무릎을 들 때 다른 무릎은 굽힌다> 



-활보공(闊步功); 기공무예, 기공무용의 스텝으로 건들거리듯 무릎을 출렁이며 걷는 것이다. 즉, 한 발을 올릴 때 동시에 다른 발은 무릎을 굽힌다(사진2 참조). 이렇게 걸으면 단전에 많은 기가 모이고 무릎과 고관절은 물론 하체 전체가 강화되며 정력도 크게 증진된다. 

-계단 오르내리기; 지하철 등의 계단들은 아주 좋은 수련장이다. 계단을 오를 때는 2~3계단씩 오르고, 내려갈 때는 뒤꿈치를 들고 걸어보자. 가급적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고, 보공을 하면 부족한 운동을 완전히 보충할 수 있다. 

-뛰기; 조깅이나 달리기를 할 때는 삼보공을 응용해 보자. 세 걸음을 뛰면서 마시며, 또 세 걸음을 뛰면서 토하면 된다. 신기하게 숨이 덜 가쁘고 쉬 피곤해지지 않는다. 

  단시간에 극대의 운동효과를 얻으려면 두 발을 모아 캥거루처럼 가볍게 뛰기를 해보자. 이는 경신술을 연마하는 비전으로 단기간에 단전에 기가 쌓이고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하체도 강철같이 되고 정력이 강해지는 놀라운 운동이다. 캥거루는 절륜한 정력가인데, 그 에너지는 바로 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명복 원장 약력

 한국외국어대 및 同 대학원 졸업

 40년간 氣功․명상․대체의학 연구/

  중국공인 기공사 

 경기대 대체의학대학원 외래교수/

    교육부연수원 강사  기업연수 강사

 저서:丹學학습법,어디서나 쉽게 하는 생활기공,氣功이란 무엇인가,현대인을 위한 기공,센터링생활명상


소피아의 탄자니아 통신

“하바리 자 아수부히 은주리 사나”


“하바리 자 아수부히 은주리 사나”라는 스와힐리어 인사로 하루를 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여기는 아프리카의 동쪽, 인도양변에 접해있는 탄자니아다. 여행할 곳이 가장 많은 나라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세렝게티의 나라이며, 조용필의 노래로 유명해진 킬리만자로의 나라다.



지금 이곳은 겨울이다. 겨울이라고 해도 20도를 웃도는 날씨이기에 우리나라의 가을 같다. 아침저녁엔 제법 선선해 스웨터를 찾게 되지만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낮이 되면 스웨터를 벗어 던지기 마련이다. 아프리카는 보통 크게 건기와 우기로 나누기에 계절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이곳도 사계절이 있는 것이다.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즈음 우기가 막 끝났다고 들었는데 가끔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하는 걸 보면 우기의 막바지가 아닐까도 싶다. 

 

나는 지금 수도인 다르 에스 살렘으로부터 자동차로 약 네 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 모로고로에 와있다. 임지에 파견되기 전 스와힐리어를 배우기 위해 언어 훈련원에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여느 나라와 달리 탄자니아의 국어는 스와힐리어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거친 나라이기에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섞어 사용하지만 대부분은 스와힐리어를 쓰기에 스와힐리어를 모르고는 생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곳의 수업 방식은 독특하다. 오전에는 여러 명이 교실에 앉아 추마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문법을 공부한다. 오후에는 낮잠을 한숨 잘 만큼의 휴식을 취한 후, 선생님 한 분에 학생 둘이 그동안 배운 내용들을 반복해서 연습한다. 처음에는 떠듬떠듬 대답하게 되는데 어느새 입에 붙게 된다. 말은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입으로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딱 맞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때는 저녁 무렵의 산책 시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어디를 보아도 아름답다. 계절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열대성 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어 상당히 이국적인 풍경을 보이는 탓이다. 

꽃잎 갈피갈피에 꽃술을 숨겨놓고 꽃잎을 한 장씩 떨어트릴 때마다 바나나 한 손을 키워내는 빨갛고 커다란 꽃은 볼 때마다 경이롭다. 

우기가 시작되며 모내기 했을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에서 아낙네들이 벼를 베고 있는 풍경이나, 콩을 털듯 알곡을 털어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카메라에 담으니 그대로 밀레의 그림이다. 

돌아오는 길에서 만나는 소떼들 옆에는 어김없이 목이 긴 하얀 새들이 무리지어 앉아있다. 그 모습이 신기해 물어보니, 소는 벌레가 있으면 그 부분의 풀은 먹지 않기에 새들이 벌레를 잡아 먹어준다고 한다. 악어새와 악어처럼 서로 공생하는 관계인 것이다. 


8주의 교육을 마치면 임지로 가게 되는데 이곳이 무척 그리울 듯하다. 함께 공부하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도 좋지만 공부하는 게 참 좋다. 공부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들은 선배 언니가 말했다. 인생 총량의 법칙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지금 그것을 채우고 있는 모양이라고.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참 다행인 건 그 몫을 채우고 있는 이 시간이 여간 행복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늦바람이 나도 한참 난 듯하다.  


한국에 있는 지인이 소식을 전해오며 물었다. 무엇이 나를 아프리카로 다시 떠나게 했는지 궁금하다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할 일이 있고, 선량한 사람들이 있어서라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얼마나 멋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인지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나는 내 평범한 일상에 때로는 과감히 돋보기를 들이 대기도 하고, 때로는 팔짱을 끼고 멀찍이서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상상도 하며, 이곳을 그려 보려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미지의 땅인 아프리카. 

내 눈에 보여 지는 아프리카를 솔직 담백하게 담아 전할 수 있다면, 나의 늦바람도 이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필자 - 소피아>


소피아

7월 6일


구청장! 관행이라는 구태를 깹시다.




2014년 1월, 수많은 장애인과 노숙인 들이 염전에서 노예로 부려진 사건이 보도됐다. “최근에 일어난 염전노예 사건은 정말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고 경찰은 일제점검을 했다. 가혹 행위와 학대가 밝혀진 극히 일부의 염전 주들이 구속되었고, 하지만 많은 염전주들은 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3년 치 임금을 지급하면 형사 처분이 면제되었고, 형사 입건 된 염전주들도 검찰과 법원에서 ‘(염전노예가) 지역의 관행이었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이로서 확인 된 것은 한국사회의 이윤을 둘러싼 속살은 노예제 사회였다. 그 노예제를 지탱하는 것은 이윤에 대한 탐욕과 경찰 공무원 토호들의 ‘야합이라는 관행’이었다.


[한남상운 노동자들은 아직도 근로기준법에서 명시한 휴게시간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발 배고프지 않게 밥이라도 먹고, 화장실 한번 편히 가고 싶을 뿐입니다. 불법, 난폭운전을 하지 않으면 휴식시간은 꿈조차 꿀 수 없고, 밥 먹을 수 있는 식당까지 걸어 나갔다 오는데 왕복 15분이상이 걸리는 조건에서 식사시간 14~17분은 굶으라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퇴근시간까지 아예 굶거나 아님 손님을 태우고 오는 도중 분식집 앞에 버스를 세우고 김밥 한 줄을 사서 차안에서 그 김밥을 먹어야합니다. 그러나 이조차 손님이 한 분이라도 계시면 먹을 수 없습니다.]

 

신곤 운수 마을버스 기사들은 밥이라도 먹고 운전할 수 있게 해달라며 노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회사가 신곤에서 경성운수로, 한남상운으로 이름이 바뀌더니 어용노조가 만들어지고 계약해지라는 줄 해고를 해 됐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관리 관할 책임을 지는 금천구청을 찾아갔다. 거기서 만난 금천구청의 행정도 동일했다. 화장실도 없는 종점, 유통기간이 훨씬 지난 우유 간식, 도로교통법이 규정한 어떠한 부대시설도 없는 회사, 도저히 법적으로 허가될 수 없는 조건에서 마을버스 운영 허가를 내 준 것이 ‘관행’이라는 주장이다. 


밥 굶기고 장시간 운행을 시켜 두 바퀴 돌 것 세 바퀴 돌게 해 하루하루 죽어가는 마을버스들에게 금천구청은 “주민들의 마을버스 사용에 편리한 것”이라 문제없다고 한다. 농사는 농부가 행복하기 위해 짓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그 행복이 다른 이의 삶을 좋게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돈이 주인인 세상은 오직 돈을 가지고 제품을 사는 자(소비자, 고객)에게만 눈길을 맞춘다. 고객제일주의는 일하는 사람에게 노예노동의 멍에를 지운다. 사람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자는 것이 민주공화국의 기능이다. 그래서 헌법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했지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선 다 헛소리다. 본시 행정기능은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고 인간 존엄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인간이 아니라 노예가 운전하는 마을버스는 민주공화국의 버스가 아니라 노예 왕국의 버스다. 다른 이의 노예 됨으로 이루어진 서비스가 많을수록 좋다고 하는 순간 금천 구청의 행정도 노예제 관료들의 행정이고 금천구청장은 노예행정의 얼굴이다. 

   

구청장을 만났다. 구청장은 노사관계는 (그것이 노예제라도) 우리가 어쩔 수 없고, 인허가와 관련된 지적된 부분은 관행이라 조사를 해보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한남운수 전에도 금천 마을버스 처지와 조건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고쳐지거나 고치려는 움직임을 본 적이 없다. 이번 한남 상운의 사건에도 신곤운수가 경성운수로 그리고 한남 상운으로 바뀌면서 그때마다 금천구청은 실사를 해서 적법한 조건에서 운수사업 등록 인허를 해야 했다. 없었다. 구내 일곱 개 중 범일만 빼고 다 그렇다니 이거야 말로 직무유기다. 게다가 범일도 삼익아파트 앞의 마을버스 기사가 은행나무 위에 본사로 쉬러 간다는 것도 거짓이다. 이런 거짓이 관행이란 이름으로 묵인 방조되었다. 결국 관행이라는 것은 금천구청 등 행정관청이 탁상행정을 통해 만든 적폐요 책임회피의 다른 말이다. 그 적폐와 책임 회피 뒤에 숨어 “관행” 운운 한 구청장의 한심한 법의식과 인권의식도 참담하다.


노사관계를 책임 질 수 없다는 발언도 잘못이다. 왜냐면 한남상운을 비롯해 마을버스 회사는 다 불법을 전제로 한 유령회사다. 유령회사에서 정상적인 노사관계 성립자체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유령회사 바지 사장을 만들어 노예의 일터를 ‘묵인 동조 방조’한 첫 책임이 금천구청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 징역 5년의 중형을 내린 판사의 논리도 양심도 없는 판결이 사회적 문제가 됐다. 공권력이 문제가 있어도 순종하라는 그 전제, 잘못 꿰진 첫 단추를 외면하고 복종만 요구한 군사독재나 식민지행정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차성수 구청장도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마을버스의 참담한 현실을 만든 첫째단추를 꿴 책임이 구청에 있음을 외면한다.  


재선에 성공한 구청장이 한 인터뷰에서 ‘함께 꿈꾸는 금천, 함께 만들어 나가는 미래’로 만들어 가자고 했다. 구청장이 꿈꾸는 금천은 노예가 모는 마을버스의 금천인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미래는 여전히 관행이 지배하고, 일하는 사람을 기계나 머슴 취급하는 그런 금천인가? 우리는 과거 구태에 젖은 구청장 대신 구로공단 민주노조운동의 상징이자 혼(魂), 박영진 열사의 야학 선생이었다는 차 구청장에 대한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그가 행정을 통해 인권 존중. 인권 보호, 인권 실현의 의무를 관행 뒤에 숨기고, 법 형식 가면 속에 버리는 순간 그 또한 또 다른 구태 구청장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남상운 노동자들의 염을 마음으로 받들어 세월 호나 구의역 참사를 예방하는 마음으로 한남상운 노동자들의 요구를 긴급 구제하는 마음으로 수용하고, 마을버스를 구가 완전 책임지는 체제를 구축해 전화위복의 계기를 삼는 멋진 구청장이 되길 바란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 <뒷집 준범이> 



글 그림 이혜란 / 보림 출판사 


 어느 골목 이웃들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정겹게 풀어내며 추억을 곱씹게 만들었던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한때 인기였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 중에 소심한 성격으로 방안에 틀어박혀 바둑만 두던 ‘택’이라는 아이가 있었죠. 만약 먼저 손 내밀어주고 함께 해준 그 골목의 친구들이 없었다면 ‘택’이는 과연 어떻게 성장했을까요? 


 여기 작은 시장골목에 ‘준범이’라는 아이가 이사를 왔습니다. 앞집은 낮은 지붕아래에 시끌벅적 요란한 친구들이 쪼르르 붙어삽니다. 늘 예쁜 옷차림의 미장원집 공주, 슈퍼마켓 먹보 충원이와 동생 떼쟁이, 만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중국집 강희와 강우, 그리고 강아지 땡이까지. 일하러 가신 할머니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준범이가 하는 일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TV를 보는 게 전부입니다. 그러다가 신나게 노는 아이들 소리에 창문을 내다보게 되고, 그 ‘창’이 마음의 문이라도 되는 듯 서서히 크게 열리게 되지요. 외로운 준범이를 발견하고 함께 놀자며 손짓해주는 자장면집 딸 ‘강희’는 밝고 당당하며 고맙기까지 합니다. 친구들과 섞여 마음껏 놀고 싶은 마음과 나가지 말라는 할머니의 당부를 지켜야 하는 준범이의 미세한 갈등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안 돼...’ 힘없이 놀기를 포기하는 준범이, 친구들이 갑자기 사라진 앞마당의 정적이 제 마음마저 쿵~ 내려앉힙니다. 그때 준범이네 문을 박차고 우르르 밀려들어오는 아이들, “노올~~자!!” 그제야 시커멓게 그려진 연필그림의 준범이 방에 색색의 환한 파스텔톤 희망이 물들어집니다. 아이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한바탕 신나게 놀지요.   


 <뒷집 준범이>는 부산에서 신흥반점 중국집 딸로 자랐던 이혜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담이 담긴 두 번째 책이야기입니다. 아파트와 빌딩으로 가득한 요즘에 과연 이런 동네가 있을까, 아이들이 이런 감정을 잘 이해할까 싶지만, 여전히 이런 골목이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고 굳이 이런 곳에 살지 않더라도 이 아이들의 감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심심하면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는 우리 집 아들들이 생각났습니다. 아파트 마당에 행여 아는 친구가 나올까 뚫어져라 쳐다보고, 누구 하나라도 나오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던 아이들. 너무 더워서 안 되고, 너무 추워서 안 되고,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안 되고... 이런저런 핑계로 아이들이 어우러져서 놀 기회를 차단시켰던 제 모습을 반성했지요. 그리고 또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강희처럼 준범이에게 스스럼없이 따스하게 손 내밀 수 있는 아이들인가? 과연 나는 그런 사람인가? 이 시대 우리 주변에 있는 ‘나의 준범이’는 누구인가?...

 오늘은 나의 준범이를 찾아봐야겠습니다.


                                     2016.06-2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 읽는 어른모임 윤미희  글

<연재 계획>

1. 몸 다스리기1- 건강에 전제는 바른 체형

2. 몸 다스리기2- 자세가 바르면 만병에 자연치유

3. 기 다스리기- 생체에너지가 강해야 진짜 건강

4. 마음 다스리기- 생각을 비우면 마음이 건강해

5. 쉽게 하는 생활기공1- 걷기, 뛰기

6. 쉽게 하는 생활기공2- 서있기, 서서 일하기

7. 쉽게 하는 생활기공3- 의자에 앉기, 앉아서 일하기

8. 쉽게 하는 생활기공4- 바닥에 앉기, 눕기




 많은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롭다. 생각을 안 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처럼 고통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계속 나타나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는 먼저 알아야 한다. 외부세계는 거의가 자기 자신이 만든 것이며, 현재의 문제들은 대부분 과거 기억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당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그 원인인 기억을 지우고 정화해서 막힌 에너지를 풀어내야 한다. 마음 비우기야말로 인생공부의 핵심이다. 일찍이 노자는 말했다. “학문은 날마다 채우는 것이요 수도는 날마다 버리는 것이다. 버리고 또 버려서 마침내 무위(無爲)에 이르면 가히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마음을 비우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매우 강력한 효과가 있는 것은 선가(仙家) 비전의 명상법인 묵념법(黙念法)이다.『환단고기』에는 배달국의 태우의 환웅이 전한 비전이 바로 묵념법이며, 이를 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절로 운기조식이 되며 정기가 보전된다.”고 했다.


묵념으로 마음을 정화하는 방법

  우리 마음은 현재의식과 더 깊은 곳의 무의식, 그리고 가장 깊은 곳의 초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의식은 신성, 본성, 참나로 불리는 전능한 의식이다. 우리가 초의식과 연결돼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고, 심신이 완전하며 건강하다. 

  문제는 무의식에 있다. 우리는 무의식의 거대한 창고에 매일 40만 개의 기억 파일들을 새로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수많은 기억들이 무의식에 쌓이면 태양이 먹구름에 가리듯 초의식과는 단절되고 그 결과, 기억들의 지배를 받아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고통스런 기억들의 마이너스 에너지는 너무 강력해서, 우리는 삶 전체를 점령당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고통의 기억들을 지워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현재의식)가 직접 지울 수는 없다. 현재의식은 에너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오직 초의식만이 이를 지울 수 있다. 그런데 비대해진 무의식이 그 통로를 막고 있기에, 우리는 반드시 무의식을 통해서만 초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생각을 지우고 마음을 정화하는 쉬운 방법은 초의식에 이르도록 마음 깊이 뭔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냥 편안하게 반복해서 말하면 된다. 그 말은 ‘고마워요. 사랑해요.’이다(‘미안해요. 용서해요.’를 함께 말하면 더 좋다). 

  감사, 사랑의 말은 인간의 언어 중에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담겨있다. 물에 이 말을 들려주면 그 물은 에너지 가득 찬 육각의 결정으로 변한다(옆 사진 참조). 감사와 사랑은 인간 정신의 가장 높은 차원으로, 초의식과 직결된다. 따라서 이 말들을 반복하면 초의식의 작용에 의해 괴로운 기억이 지워지고, 우리는 이내 깨어나게 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완전한 내면의 평화와 심신의 건강을 누릴 수 있다.  

  지금 뭔가의 문제로 고통스러운가? 그렇다면 먼저 그 생각을 향해 즉시 감사와 사랑의 말을 반복해보자. 웅얼거리다보면 신비한 주문처럼 이내 마음의 정화를 체험하게 된다. 


기센터 및 건강문화연구원

이명복 원장

 이명복 원장 약력

 한국외국어대 및 同 대학원 졸업

 40년간 氣功․명상․대체의학 연구/

  중국공인 기공사 

 경기대 대체의학대학원 외래교수/

    교육부연수원 강사  기업연수 강사

 저서:丹學학습법,어디서나 쉽게 하는 생활기공,氣功이란 무엇인가,현대인을 위한 기공,센터링생활명상



‘한국이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


2016년 6월 15일, 유엔 집회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한국에 대한 조사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유엔특별보고관의 보고서는 한국의 집회 결사 등에 대한 법은 여러 주요 영역에서 국제인권 법 기준과 배치된다고 판단한다. 

대표적으로 당국(검찰과 경찰)에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는데 보통이면 공권력의 재량권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존중, 보호, 촉진하라는 것에 있다. 집회를 축소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방해 상황을 막아 집회를 보호하는데 의무를 다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집회를 기본적으로 불온한 것으로 보고, 이를 격리 차단 무산시키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뿐만 아니라 집회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으로 허가의 대상이 아니라 신고만 하면 되는데 이를 허가제로 운용하고 있어 문제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진실을 규명하는 집회는 무조건 불허, 정부를 지지하거나 정부비판 집회를 방해하는 어버이 연합 류의 3류 집회는 무조건 허가 하는 등 최소한의 균형이나 염치도 없이 허가제로 운영하여 헌법을 유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고서는 현 정부의 모습은 헌법적 기본권을 부정하고, 집회 및 시위의 본연의 뜻을 범죄시 하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것’‘한국이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심각한 경고를 보냈다. 


보고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자들의 결사체다. 그 조직의 범위와 운영은 노조가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운영하면 된다. 

하지만 한국은 기이하게 그것을 정부가 결정한다. 그래서 유엔 보고서는 전교조를 법외 노조로 만드는 폭거, 공무원노조에 대한 설립신고 반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 제한 등은 노동조합 가입 대상을 정부가 결정하는 것으로 결사의 자유를 난폭하게 침해한다고 밝혔다. 

단결권을 부당하게 제한되었던 복수노조 불허 조항이 없어지자 역으로 자본가들은 발레오 전장, 유성전기 등에서 보여주듯 사측이 어용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조를 파괴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금천의 한남상운운수(구 신곤 운수)도 마찬가지인데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들면 회사가 어용노조를 조직하여 이를 탄압하고 있다. 유엔 보고서는 이를 방조 방관하는 정부(노동부, 경찰, 구청 등)도 자주성에 기초한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라 밝혔다. 정부는 노사관계에서 중립이 아니라 노조의 자주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은 노동조합 활동에 특히 파업 투쟁에 쉽게 해고와 함께 업무방해를 이유로 손배가압류를 한다. 그런데 현 노조법에는  ["쟁의행위"라 함은 파업·태업·직장폐쇄 기타 노동관계 당사자가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와 이에 대항하는 행위로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한다.]로 정의되어 있다. 파업 자체가 업체의 운영을 방해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파업의 결과로 인한 손해에 대해 민,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파업권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에 반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이런 법 적용은 노동법을 민법으로 돌리는 것으로 ‘노동법 150년 역사’를 지우는 엄청난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다.   


현 정권의 노동조합에 대한 정책은 낙제점을 벗어나 아예 한국 현대사가 만들어 온 민주주의와 인권의 모든 것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유엔의 판단이다. 유엔 보고서는 전 세계 전쟁 사망자 보다 많다는 자살률, 매년 2,000명이 넘게 죽는 산재 사망자, 300만 명이 넘어 섰다는 빈곤 노인과 노인 빈곤율, 청소년 행복지수... 무수히 많은 세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비극과 재앙이 괜히 일어 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진 무지와 맹목과 파렴치와 탐욕이 만들어 낸 결과다. 


그런데 이상하다. 유엔의 이런 지적에 한국은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한때 유엔 출범 일을 공휴일로 정한 한국 사람들의 유엔에 대한 인식은 지극히 이중적이고 주관적이다. 좋은 일이나 북을 공격하는 것에는 유엔의 견해는 말 그대로 신주단지다. 줏대 없는 바지 외교 관료인 반기문씨가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이름만으로 대권 후보가 되는 현상이다. 최근 현 정권이 평화통일이 아니라 비핵 응징에 몰두하면서 유엔 결의를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것이 대표적이다. 단 소리만 취하고 약이 되는 쓴 소리는 외면한다. 그래서 위험하다. 


지난해 11월 6일 UN 자유권규약위원회가 한국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 전반을 심의한 뒤 내린 최종 권고문이 있다. “국제조약은 어떤 생각이 단지 적대국이 가진 생각과 일치하거나 적대국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이유로 그 생각의 표현이 제약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음”을 밝히면서 한국정부에게 국가보안법 7조 조항을 폐지하라 했다. 이런 권고는 2006년에 개정 권고가 폐지로 그 수위가 높아졌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국제적 기준에 맞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충고에 부끄러움으로 성찰하며 반응을 한 적이 없다. 


유엔이 북에 대한 간섭은 그 나라와 정권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니 권고나 결의를 무조건 들을 수 없다. 냉정한 눈으로 보면 유엔의 북한에 대한 왕따는 너무나 지나치다. 실상 전쟁을 막아야 하는 유엔의 이름으로 리비아를 원시 부족국가로 만들고 시리아가 폐허가 되었을 때 유엔은 스스로 자기 이름을 포기한 셈이다. 평화의 방패가 아니라 전쟁의 총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보건 사회복지 노동권에 대한 유엔의 작동은 아직 살아있다. 그것은 개개 나라의 사회적 약자나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 서서 인간의 존엄성의 보장 상승하는 과정에서 관찰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극단적으로 강대국들의 입장만 대변하는 유엔 안보리 입장이 아니라 이 건과 같은 유엔 조사관들의 말을 듣는 것이 민주공화국의 의무다.  


한국은 산업화나 민주화 문제에서 세계의 부럼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나는 친일파다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 작자들이 지배층이 세상에서 어떤 민주주의가 살아남아 있을까? 헌법에 한반도를 국토로 하여 개념적으로는 북한 동포도 한국 민으로 두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인권에 대한 민변의 요청을 “어느 나라 변호사냐?”고 외치는 집권 여당 대표의 발언 속엔 꿈틀거리는 것은 파시즘적 획인주의 일 뿐이다. 

그래서 이번 유엔 보고서를 통해 우리를 되돌아보자. 전교조, 공무원 노조, 유성기업 노조 지금 싸우고 있는 이들이 국제적 눈으로는 한국 민주주의 시금석이었다. 전교조를 백안시하고 공무원노조를 탓하며 노동조합이나 집회 및 시위를 적대시하는 이들의 관점이 한국의 모든 것을 훼손해 온 짓이다. 사람은 스스로 제 얼굴을 볼 수 없다. 거울을 통하거나 누가 지적해 줘야 알 수 있다. 우리의 부끄러움 모습을 지적하는 것에 화가 아니라 성찰로 대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랑이 될 것이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뒷집 준범이> 

글 그림 이혜란 / 보림 출판사 



 어느 골목 이웃들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정겹게 풀어내며 추억을 곱씹게 만들었던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한때 인기였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 중에 소심한 성격으로 방안에 틀어박혀 바둑만 두던 ‘택’이라는 아이가 있었죠. 만약 먼저 손 내밀어주고 함께 해준 그 골목의 친구들이 없었다면 ‘택’이는 과연 어떻게 성장했을까요? 


 여기 작은 시장골목에 ‘준범이’라는 아이가 이사를 왔습니다. 앞집은 낮은 지붕아래에 시끌벅적 요란한 친구들이 쪼르르 붙어삽니다. 늘 예쁜 옷차림의 미장원집 공주, 슈퍼마켓 먹보 충원이와 동생 떼쟁이, 만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중국집 강희와 강우, 그리고 강아지 땡이까지. 일하러 가신 할머니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준범이가 하는 일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TV를 보는 게 전부입니다. 그러다가 신나게 노는 아이들 소리에 창문을 내다보게 되고, 그 ‘창’이 마음의 문이라도 되는 듯 서서히 크게 열리게 되지요. 외로운 준범이를 발견하고 함께 놀자며 손짓해주는 자장면집 딸 ‘강희’는 밝고 당당하며 고맙기까지 합니다. 친구들과 섞여 마음껏 놀고 싶은 마음과 나가지 말라는 할머니의 당부를 지켜야 하는 준범이의 미세한 갈등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안 돼...’ 힘없이 놀기를 포기하는 준범이, 친구들이 갑자기 사라진 앞마당의 정적이 제 마음마저 쿵~ 내려앉힙니다. 그때 준범이네 문을 박차고 우르르 밀려들어오는 아이들, “노올~~자!!” 그제야 시커멓게 그려진 연필그림의 준범이 방에 색색의 환한 파스텔톤 희망이 물들어집니다. 아이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한바탕 신나게 놀지요.   


 <뒷집 준범이>는 부산에서 신흥반점 중국집 딸로 자랐던 이혜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담이 담긴 두 번째 책이야기입니다. 아파트와 빌딩으로 가득한 요즘에 과연 이런 동네가 있을까, 아이들이 이런 감정을 잘 이해할까 싶지만, 여전히 이런 골목이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고 굳이 이런 곳에 살지 않더라도 이 아이들의 감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심심하면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는 우리 집 아들들이 생각났습니다. 아파트 마당에 행여 아는 친구가 나올까 뚫어져라 쳐다보고, 누구 하나라도 나오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던 아이들. 너무 더워서 안 되고, 너무 추워서 안 되고,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안 되고... 이런저런 핑계로 아이들이 어우러져서 놀 기회를 차단시켰던 제 모습을 반성했지요. 그리고 또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강희처럼 준범이에게 스스럼없이 따스하게 손 내밀 수 있는 아이들인가? 과연 나는 그런 사람인가? 이 시대 우리 주변에 있는 ‘나의 준범이’는 누구인가?...

 오늘은 나의 준범이를 찾아봐야겠습니다.


                                     2016.06-2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 읽는 어른모임 윤미희  글

[기관탐방]지혜의 숲 작은도서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책으로 시민의 힘을 키운다'라는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독서·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지혜의 숲 문세이 관장님을 만났다.


독서, 도서관에 대한 인식 변화의 중심에 서다

‘지혜의 숲’은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준다. 벽은 안정감을 주는 연두색에 가까워 눈을 편안하게 한다. 나무로 만든 책상·의자 같은 가구는 딱딱하기보다는 차분해 보일정도로 조화를 이뤘고, 높지 않은 책장과 그속 가지런한 책은 아이들의 눈높이를 배려한 듯 보였다.  

작지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가득한 이 공간에서 기존의 책만 읽는 곳이 아닌 함께 읽고, 생각하고, 공유하는 ‘토론의 장’으로 변화하려 한다.


Q.책, 독서의 가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미리 배운다는 것이다. 책은 한 치 앞을 모르는 앞으로의 삶을 미리 알려주는 역할하기도 한다. 결국 책을 읽으면 인생이 행복할 수 있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유가 여기이 있다고 본다. 


Q. 작은 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했을 것 같은데, 어려움은 없었나?

꾸준히 노력하는 것에 비해 성과가 더뎌서 어려움은 있었다. 하지만 천천히 뚜벅뚜벅 한 길을 달려오다 보니 튼실한 열매가 맺더라. 앞으론 분명 독서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추세인 만큼 내가 잘 하는 일만 남은 것 같다.


Q.최근 작은 도서관이 많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서관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구축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도서관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도 잘 갖춰야 한다. 이를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누구나 책을 편하게 볼 수 있고, 원하는 책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해요. 운영의 묘를 잘 발휘해야 된다는 거다. 또한 지자체가 정책적으로 운영을 뒷받침해야 하고, 도서관이 우리 삶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함께 인식해야 한다.




책으로 가능한 변화, 더 나은 삶을 위한 소통


 Q.‘지혜의 숲’ 작은 도서관의 프로그램 활동도 궁금하다.

어린이를 위해 ▲독서논술-주제별 글쓰기 ▲도서관 책과 떠나는 역사여행 ▲영화 동화책 읽기등 독서문화 프로그램과, 성인들을 위한 ▲독서특강 ▲독서사고력 논술 지도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누구나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린이집·유치원단체와 협력해서 독서캠페인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그 결과 자연스렙게 활발한 동아리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수업교재를 연구하는 ‘사고뭉치 교재연구’동아리, 책읽고 이야기나누는 ‘시나브로’ 동아리가 대표적이다.


Q.다양한 문화강연도 중요하지만 소모임을 할 수 있는 동아리가 활성화 된 것이 눈에 띄는데?

그렇다. 동아리회원들은 매주 요일을 정해놓고 꾸준히 활동하고 계신다. 작은 도서관의 특징이 마을 가까이에 있어서 멀리까지 책을 빌리러 가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럽게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동아리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 같아요. 또한 우리도서관의 단비같은 분들이다.


 Q.동아리에선 어떤 주제로 토론이 이뤄지나요?

한주에 한권씩 책을 정해 읽고 서로가 느낀점에 대한 토론을 진행된다. 의외로 창의적이고 다양한 사고를 지니신 분들이 많다.

예를 들어 ‘쓰레기에서 레 를빼면 쓰기’라는 책과 ‘미쓰런피우스’ 라는 동화책이 있다. 내용은 한 여성이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일만 한다. 그것은 꽃씨를 뿌리는 일이였다. 사람들은 그 여성을 이상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리엔 꽃들이 자라게 되고 엄청난 꽃밭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그 꽃들을 보고 행복해 하고  즐기면서 따라하게 함께 하게 된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사람은 늘 고민해야 한다라는 내용인 것이다. 토론과정에서 우리는 뭘하면 좋을까? 어떻게야 마을이 아름답게 변할까? 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적용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최고로 잘 할 수 있고, 쉽게 할 수 있는 마을속 생활쓰레기 줄이기 였다.


Q. 생각을 모으고 처음으로 행동에 옮긴 일은 무엇인가?

지난 3월. 지혜의 숲 10주년 행사가 있었다. 거창하진 않지만 매년 행사고, 지역주민들을 초대해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올해는 일회용쓰레기가 없는 행사를 진행해보자 라는 의견을 모으고 기획에 들어갔다.

이를테면 집에서 음료수컵, 음식담을 그릇등을 지참하는 주민들은 유료가 아닌 무료로 제공한다는 거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행사 후 쓰레기양은 검은봉지(중간싸이즈)반정도 아주 소량이 나온것이다. 주민스스로가 쓰레기 줄이기 운동을 할 수 있게다라는 자부심이 생기는 순간 이였다.


 Q.시대의 변화에 따른 책의 변화는 필연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책속에서 현시대의 문제점을 찾아 볼 수 있고, 그것이 환경쓰레기로 표현된 것인가?

그렇다. 처음엔 웃으게 소리로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환경미화원들이 가장 많이 다치는 요인이 제대로 버려지지않는 유리, 칼 등에 상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하여 주부인 우리가 주체가 돼서 생활환경쓰레기 감량 프로젝트‘함께 green숲’ 를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생활쓰레기 분리수거법을 실시간 공유하는 것이다. 

지역내 마을과 마을의 주민들이 ‘실시간 분리수거활용방법.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공유 밴드를 개설해 서로 실천 하는 방법으로 지금은 8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Q.끝으로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2016년엔 우리가 수집해온 자료들로 재활용분리수거 세부항목들 사례집도 만들고, 공유하고 그로인해 함께 개선해 나가고 싶고.더불어 우리 주민들이 책을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입니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헬 조선 - 괴물들의 사회 


       <쿠키뉴스 사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한 여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경찰은 정신분열증환자의 피해망상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어 여성혐오 논쟁이 일어났는데 논쟁이 무슨 필요 있나. 저 흑산도의 끔찍한 수컷들의 만행이 모든 것을 웅변하는데. 거기에 그 만행을 둘러 싼 더러운 한국 패거리사회 속살을 보라. 이미 오래전에 우리는 이기적 욕구를 위해 도덕적 양심을 죽여 버린 세상을 살고 있다. 이명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숨은 힘들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많은 이들은 언제나 그랬다고 한다. 정말 그랬을까? 어떤 이는 한국 경찰처럼 병자나 사이코 패스의 탓이라 한다. 심지어 사람의 본성을 이기심과 탐욕으로 보는 이들에겐 그 정글 - 야만의 전장은 정상적인 사회가 된다. 그러니 자연스레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쓰라린 탐구를 한다. 인간에게 정말 희망은 있는가? 

사람에게 사람이 가장 잔인한 존재라는 것은 어제 오늘, 동서양의 일이 아니다. 죽은 귀신보다 산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성악설보다 성선설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러다 머리가 좀 크면 성선도 성악도 아닌 백지론 정도로 양보한다. 사람은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키워지고 만들어 가는 존재다. 본능 본성은 사회적 존재로서 사람에게 절대적 조건이 아니다. 생선가게에 비린내 나고 꽃가게에 향내 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기에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까?  


모든 것을 개인의 몫으로 돌리면 보수,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리면 진보라고 한다. 보수는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진보는 지금은 부족하고 억울한 이들의 염원이다. 지키려는 이들과 바꾸려는 이들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사회의 계급적 힘과 투쟁의 정도다. 지난 30년은 진보가 보수에 밀린 시간이다. 현존 사회주의 몰락과 미국형 제국주의의 극대화 속에서 신자유주의라 이름 지어진 세상이었다. 세상을 돈(이윤)이라는 유일신으로 단색화 됐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경쟁하는 존재다. 그 중심엔 시장이 있다. 이기적인 사람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최고의 결과를 내놓을 것이다. 거기서는 성공과 실패가 오로지 자신의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생명을 살린다. 그것이 생명의 윤리다. 사회라는 공동체란 없다. 오직 자기만이 자기를 책임진다. 쉬지 않고 성장하고 쉬지 않고 경쟁하는 무자비한 세상에서 평가와 순위매기는 불가피하며 탈락 또한 불가피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현실에서 완전 경쟁이 가능한 시장은 없다. 태어날 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금수저와 흙수저들의 경쟁이 있을 뿐이다. 성공과 실패가 이미 고정된 사회다. 공정 경쟁은 사기다. 그 결과 한국은 비정규직이 900만이 넘는다. 월 평균 임금 143만 원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들, 빈곤과 차별이 당연하고 빈부격차가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악마의 논리로 물든 세상이니 금수저가 아닌  젊은이들은 연애, 결혼, 출산, 집, 인간관계 등까지 줄줄이 포기하다, 심지어는 자기 목숨까지 포기해야 한다.


구의역에서 청년 노동자가 죽었다. 열아홉 청년, 가방에 든 컵라면, 생일 전날 당한 사고…. 익숙하게 세상은 “당신 아들의 잘못이다. 그가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고,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죽음을 죽은 자의 탓으로 돌렸다. 정규직 노동자 파업은 ‘노동귀족의 파업’이고, 비정규직파업은 ‘공장을 무법천지로 만드는 불법 파업’이며, 민중 집회를 ‘IS 테러리스트의 난동’으로 보는 눈 그대로다. 그래도 이번엔 아니었다. 시민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의 죽음은 불의의 사고가 아니야” “그의 죽음은 바로 지금 헬 조선 대한민국 자체야”라 외쳤다.

구의역 참사는 처음이 아니다. 2013년 1월 성수역, 2015년 8월 강남역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초 삼성전자 부품회사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 4명이 메탄올에 중독돼 실명했다. 올해에만 현대중공업에서 7명, 삼성중공업에서 5명이 목숨을 잃었다. 6월 1일 남양주 지하철 공사현장이 폭발 붕괴해 죽은 네 명의 노동자도 죽었다. 매년 2500명 이상의 노동자가 기업들의 살인 행위로 죽어간다. 구의역의 죽음은 어린 청년의 불쌍한 죽음이 아니다. 매년 죽는 2,500명의 죽음 중의 하나다. 계급적인 죽음이다. 계급적으로 보고 계급적으로 해결을 모색하지 않는 한 세상을 조금도 바꾸지 못하는 또 하나의 불쌍한 죽음이 되고 만다. 실업으로 굶어죽거나 과로사 산재로 죽는 세상은 계속된다.  


죽음의 시대를 만든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가 만든 능력주의 환상이다. 경쟁을 통해 모든 인간적 유대, 공동체적 친선을 지워버렸다. 더불어 사는 관계가 아니라 좀비 아니면 사탄이 되어야 사는 적자생존 승자독식의 사회다. 신자유주의,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도덕적 통제 없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은 다른 이에게 그저 승냥이 괴물이다. 그 결과 시작부터 패배자가 양산된다. 그들의 불만은 더 약한 먹잇감을 노리는 비열함으로 미끄러진다. 이른바 혐오범죄다. 미국형 제국주의 지배 체제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윤이 인간에 우선한다.’는 입장이 세상을 헬로 만든 진짜 주범이다. 


천박한 양아치자본주의 대표쯤 되는 한국사회는 더 불행하다. 식민지노예로, 총칼의 노예로 이제 돈의 노예로 살아 온 역사가 더 흉폭하고 파렴치한 세상을 만들었다. 어떤 도덕적 갈등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도막내는 사회다. 괴물 세상을 만든 진짜 괴물들은 가짜를 내세워 아무런 의무 없이 무한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 원하청, 무전유죄, 전관예우, 대형로펌.. 무수한 거악들이 내세운 장막이 거악의 몸통을 가리고 있다. 그 몸통을 똑바로 보자. 사회적 약자의 불만이 또 다른 사회적 약자로 향하는 질병, 혐오범죄,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저 장막 뒤 괴물의 몸통에 불만의 저항을 하자. 괴물세상을 사람세상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자 우리가 사는 길이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책소개]싸목싸목 보금아

크레용하우스 / 이은재 글 / 최효애 그림




‘싸목싸목’은 ‘천천히’라는 전라도 사투리라고 한다.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일지 알 수가 없다. 보금이에게는 어떤 어떤 힘든 일이 일어났고, 그것을 천천히 극복해 나간다는 뜻일까? ‘싸목싸목 보금아’는 세도정치의 폐해가 극심하던 시절 탐관오리들과 지주들에게 수탈당하는 백성의 삶을 보금이네 가족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소금을 팔던 보금이네가 피땀 흘려 가꾸던 소금밭에 모래를 퍼다 붓고 만덕골로 밤도망을 와야 했다. 하지만 겨우 얻은 돌멩이 투성이 밭에서 온 식구가 열심히 키워낸 보리와 감자까지도 빼앗기고 만다. 항의하다 끌려가서 두들겨 맞아도 하소연할 데도 없다. 이런 일은 보금이네만 겪었던 일은 아니다. 억울함이 일상이었던 백성들의 삶이 너무 비참했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수확량의 70~80 퍼센트를 빼앗기고 나면 식구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들다. (나는 아버지가 떠나면서 최부자네서 보리쌀을 꾸어 올 때, 뭔가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중이가 넋은 나간 상태에서도 복순이는 끔찍이 아끼는 걸 볼 때도 아무래도 복순이를 빼앗길 것만 같아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최부자 집을 쳐들어 가지만 최부자의 목숨은 살려주고 사람들은 정든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서문에서 우리보다 앞선 세대들이 보금이처럼 힘겨운 삶을 잘 견뎌 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는 훨씬 행복해졌고,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지금 누리는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아보는 지혜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나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마을을 떠난 사람들의 앞날이 그리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적인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개인적인 노력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가 있을까? 

보금이네와 같은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삼미자어른 같은 사람에게도 그 당시를 살아가는 것이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부패한 관리들이 어떻게 지주들과 결탁해서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지 뻔히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또한 큰 고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 힘겨운 삶을 벗어나는 것은 백성들 스스로가 깨우치고 힘을 모아 저항하는 것 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백성들의 항거가 성공한 적이 있었나?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대한민국으로 바뀌었지만 요즘 인터넷에서는 ‘헬조선’이라는 말과 ‘헬조선 지옥불반도’라는 그림이 떠돌고 있다. 

 ‘싸목싸목 보금아’를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이것이 후기 조선에만 일어났었던 일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인 이야기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2016.06-1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 읽는 어른모임

박수경  글

<연재 계획>

1. 몸 다스리기1- 건강에 전제는 바른 체형

2. 몸 다스리기2- 자세가 바르면 만병에 자연치유

3. 기 다스리기- 생체에너지가 강해야 진짜 건강

4. 마음 다스리기- 생각을 비우면 마음이 건강해

5. 쉽게 하는 생활기공1- 걷기, 뛰기

6. 쉽게 하는 생활기공2- 서있기, 서서 일하기

7. 쉽게 하는 생활기공3- 의자에 앉기, 앉아서 일하기

8. 쉽게 하는 생활기공4- 바닥에 앉기, 눕기



기 다스리기- 생체에너지가 강해야 진짜 건강


근본문제는 기력(氣力)

  진짜 건강한 사람은 언제나 기력이 온몸에 넘친다. 늘 기운이 없고 쉬 피로해지는 것은 몸(특히 단전)에 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체에는 기(생체에너지) 저장창고가 있는데, 옛사람들은 이를 ‘단전(丹田)’이라 했다. 배꼽의 3촌(약 6~7cm) 아래인 아랫배 중앙에 있다. 

  먼저 자신의 기력을 간단하게 자가진단해 보자. 숨을 마셔서 아랫배를 부풀린 후, 단전 부위를 손가락으로 눌러본다. 그 때 초점이 맺히듯 한 곳으로 에너지가 집중되면 기운이 많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힘이 전혀 모이지 않고 온통 물렁해서 어디가 단전인지 모르겠다면 기력이 크게 쇠잔해진 증거이다. 만약 세게 눌러도 손가락이 안 들어갈 만큼 단전부위가 단단하다면 많은 기가 저장돼 있다는 증거이다. 이런 분은 잘만 관리하면 100년 장수도 가능하다.


생체에너지를 강화하는 참장공



<사진1 내마보식>




  자가진단 결과, 기력이 없더라도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불과 수분 만에 단전에 기를 가득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비법은 참장공(站樁功)이다. 참장공은 5천년 이상 된 선가(仙家)의 전통수행법으로 체형을 교정하며 근골을 강화시키고 오장육부까지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까지 있다. 특히 말 타는 자세에서 유래한 두 가지 참장공 내마보식(內馬步式), 외마보식(外馬步式)을 틈틈이 해보자. 즉시 단전과 온몸에 힘이 넘치게 된다. 

  내마보식 외마보식 참장공은 각각 인체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통로인 독맥(督脈)과 임맥(任脈)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함께 수련하면 좋다. 동작은 간단하다. 아래 설명대로 자세를 취한 후 고요히 숨을 쉬며 1분 정도 정지해 있는다(2~3회 반복하고, 숙달되면 시간을 조금씩 늘인다). 

  내마보식 참장공 수련법은 다음과 같다. ①차려 자세에서 두 발을 어깨 폭보다 넓게 벌린다. ②두 발의 뒤꿈치를 더 벌려서 앞발 쪽을 좁게 한다. ③무릎을 굽혀서 앉으며 두 손은 주먹을 쥐어 양 옆구리에 댄다. ④두 손을 올려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한 후 눈앞에 놓는다(사진1 참조).    

  외마보식 참장공 수련법은 다음과 같다. ①은 내마보식과 동일. ②두 발의 앞꿈치를 더 벌려서 앞발 쪽을 넓게 한다. ③무릎을 굽혀서 앉으며 두 손은 주먹을 쥐어 양 옆구리에 댄다. ④두 손을 올려서 두 손바닥이 안을 향하게 한 후 가슴 앞에 놓는다(사진2 참조).   

  아침저녁으로 참장공을 수련하면 수일 내로 만성피로감이 사라지고 근골이 강건해지며 기력이 크게 증진된다.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은 온몸에 주체할 수 없는 기운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사진2 외마보식>


이명복

<이명복 원장 약력>

 한국외국어대 및 同 대학원 졸업

 40년간 氣功․명상․대체의학 연구/ 중국공인 기공사 

 경기대 대체의학대학원 외래교수/ 교육부연수원 강사  기업연수 강사

 건강칼럼니스트: <신동아><한국일보> 등 연재

 저서:『丹學학습법』,『어디서나 쉽게 하는 생활기공』,『氣功이란 무엇인가』,『현대인을 위한 기공』,『센터링생활명상』

주민 설명회 단상(斷想)


<6월2일 가산32번지일대 도시경관 용역보고회가 열리고 있다.-금천구청 홈페이지?




정부나 지자체를 비롯하여 공기업 등에 의한 주민 설명회를 자주 접한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보게 되는 현상으로 암울한 독재정권 체제에서 살면서 숱한 비민주적 행태를 경험했던 필자세대에게는 여러 감회를 갖게 한다. 그럴 만큼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에로의 진전모습을 활발하게 보여주어 기대를 가지게 한다.

주민설명회는, 그렇듯 직접 민주주의의 한 모습으로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크고 다양하다. 우선 국민주권을 생각게 한다. “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규정의 현장을 실감케 하는 것도 그것이다. 또한 공동체적 관점 즉 공동선의 의미를 함께 생각게 하는 장이 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동선의 가치를 일깨우는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주민 설명회의 원래 목적은 국가 등이 시행하고자 하는 정책행위들을 직·간접적 관계를 가진 주민과의 교통을 통하여 더 나은 시행을 하고자 함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책 등의 시행과정에서 대두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대안 마련은 물론 준비된 안보다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한 건설적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원리와는 다른 모습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상당수의 주민설명회는 준비된 안(정책)의 시행에서 민주주의적 흠결을 만들지 않으려는 절차로 운영되는 것이 있는 등 본래 취지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그 시행의 공동체적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있을 수 있는 반대를 합리(合理)를 내세워 민주성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즉 소수의 반대가 있지만 다수의 지지가 있으므로 준비된 안으로 결정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유념해야 하는 것은 합리라 하여 민주성을 항상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진행을 모두 잘못되었다고 몰아버릴 수는 없다. 그것이 최선은 못되더라도 차선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진행이 처음부터 진정성을 가지고 진행을 하였는가 이고 더 큰 문제는 진행 중에 문제를 만났다고 하여 본질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 버리는 것이다. 산에다 나무 심기가 본래 방향인데 결론에 이르서는 나무심기는 잊어버리고 집을 지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비유가 좀 그렇지만 신념을 가지고 주민설명회관심 깊게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수긍이 될 것이다. 

여기서 유의하고 넘어갈 게 있다. 그것은 주민설명회에서의 오류는 주최 측의 무능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 반대 측인 주민들의 책임도 결코 그에 못지않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주민설명회의 비정상은 참여한 주민들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당초 논((畓)을 만들고자 만든 안(案)이 주민들에 의해 밭((田)이 만들어 지는 결과가 되는 것이 그런 경우다. 물론 결과가 잘 된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아니다. 본질이 무시되거나 바뀌는 것은 허구(虛構)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양비론적(兩非論的) 비판은 마치 주민설명회 무용론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즉 필자는 그것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고자  강조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공동체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이 보다 더 좋은 진행은 아직 보지 못했다. 


본론을 말한다. 주민설명회는 아주 중요환 과제이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케 하는 아주 필요한 과제이고 따라서 이의 건전한 진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진행은 개선되어야 하고 그것을 하려면 필요한 동의가 양측에서 함께 있어야 한다.

먼저 주최 측의 자세다. 공동체적 필요가 있는 과제이나 주민 동의가 필요한 과제라면  그것의 난이도(難易度)에 구애되지 말고 소신껏 제시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구하기 위한 과정에서 전개 될 어떤 상황에서도 본질이 지켜지도록 범위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진행을 하여야 한다. 시간적 문제 등 난제를 만났다고 해서 본질이 훼손되는 타협을 한다면 그것은 하지 않는 것이 더 났다. 설득이 어렵다고 생각되면 처음부터 그에 따른 분명한 대책을 세워서 결과를 구해낼 각오로 진행하여야 하고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아예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은 참여하는 주민의 자세다. 주장은 활발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하되 어디까지나 합리적 접근이여야 한다. 이러한 자세로 목적하는 바를 구해낸다면 그것은 괄목할만한 가치를 가지는 민주주의의 실현의 한 모습이 된다. 비록 결과가 기대 밖이라 해도 그러한 과정으로 구해낸 것이라면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는 평가 대상이 된다. 민주적 과정으로 구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억지나 비합리적 방법으로 일정한 결과를 얻어내었다면 그것의 내용이나 규모가 어떠하던 그것은 가치를 가지지 못하고, 그러한 환경을 가진 사회라면 민주주의 발전은 더딜 것이다. 


사실, 주민설명회에서 지적되어야 할 문제는 주최 측의 비합리도 있지만 그 상대 즉 주민들의 비합리는 아주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편 가르기기도 보수적 편견도 아니다.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Fact)이다. 사람들에게 주민설명회를 말하면, 주최 측의 무리나 무능보다는 주민들의 비민주적 억지나 비합법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있을게고 그곳에서는 갖가지의 비합리가 생산되고 있을게다. 그렇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이상하다. 우리 사회의 주민설명회의 단면이다. 그런 주민설명회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론이 나온다. 비합리적인데다 생산적 가치도 만나기 어려운 그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민주주의 성장의 한 과정이라는 자기 인지(認知)다. 그렇듯 아직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는 미성숙이고 이의 발전을 위해 주민설명회는 계속되어야 한다. 비록 비 건설적인 모습이 있을지라도....(♣ 2016.06.10.)



장제모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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