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곰에게 잡혀간 우리아빠



허은미 저/김진화 그림 | 여유당


아빠는 왜 불곰에게 잡혀갔을까? 내지를 보면 불곰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곰의 탈을 쓴... 누군가가 있다.

첫 장을 펼치면 불곰이 누구인가 바로 알게 된다. 화가 나면 얼굴이 불곰처럼 빨개지고 아침마다 집안을 들었다 놨다 하는 엄마는 별명이 불곰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소리치는 불곰에게 쫓겨 등교한 아이는 ‘우리 가족’이란 제목으로 동시를 짓는다. 아빠, 동생, 순덕이(고양이)가 좋은 이유는 척척 쓰지만 “엄마는 왜 좋은지 모르겠다.”고 시를 맺은 아이는 그때부터 엄마가 좋은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불곰을 묘사하는 내용이 뜨끔하다. 불곰의 모습을 보면서 멋쩍어서 웃음이 나온다.

아이들과 함께 보면 아이들의 반응은 각각 다르다. 저학년은 왜 엄마가 불곰인지 크게 공감하지 않는 듯하다. 아직까지는 이 세상 최고인 엄마가 불곰 같은 존재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나보다. 고학년은 반응이 다르다. 불곰이 엄마인 것을 알면서부터 쿡쿡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엄마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기로 접어들어서 그런 것 같다. 집에 있는 엄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아빠가 불곰을 만나서 엄마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아이는 생각이 많아진다. 아빠가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 이후 외할머니댁을 가서 엄마의 어릴 적 사진 부터 결혼 전 아주 예뻤던 아가씨 시절 사진을 보게 되는 아이.

엄마도 이전에는 나처럼 아이였었고 엄마의 엄마에게서 사랑받고 자란 존재라는 것을 느낀 후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마지막에 아이는 여전히 불곰에게 쫓겨서 학교를 가지만 아이의 발걸음이 가볍고 표정이 밝다. ‘우리 가족’ 동시에 엄마의 좋은 점을 찾아서 마지막을 완성한다. 

마지막 아이의 동시 내용은 무엇일까? 엄마와 의견 충돌을 보이며 방황하는 고학년 친구들에게는 엄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고, 천사표 엄마가 꿈이었지만 현실은 고함쟁이인 엄마들에게는 공감과 위로가 되는 책인 것 같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박현진


*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엄마가 미안해“ - 쇠제비갈매기 가족의 슬픈 이야기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포구 모래밭에 알을 낳고 살아가는 쇠제비갈매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쇠제비갈매기는 도시에서 필요한 모래를 마구 퍼가서 낮아진 모래밭에 알을 낳았습니다. 장맛비가 내려 알들은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새끼 갈매기 세 마리와 어미 갈매기가 살고 있었는데 어린 새끼들은 비를 맞으며 엄마 품속에서 떨고 있었지요. 쏟아지는 빗속에서 새끼들을 구하기 위해 엄마 갈매기는 멀리 떠내려가는 널빤지를 밀어 오려고 합니다. 세차게 출렁이는 강물 때문에 쉽게 새끼에게 널빤지를 가져올 수가 없었습니다. 부리가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힘을 냅니다.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널빤지 위로 올린 어미 갈매기는 안전한 곳으로 널빤지를 밀어보려 하지만 점점 힘이 빠집니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새끼들을 보아도 어미갈매기는 날개만 푸드덕거릴 뿐 날아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새끼 갈매기 한 마리가 강물에 휩쓸려 금세라도 강물로 떨어질 것만 같자  어미는 죽을힘을 다해 날개짓을 합니다. 가까스로 날아오르는 순간 세찬 강물이 새끼 갈매기들을 덮쳐 새끼 갈매기들은 흔적도 없이 강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거센 빗줄기가 그친 포구엔 다시 포크레인이 모래를 파헤치고 그 모래밭에는 쇠제비갈매기 어미만 혼자 남겨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새끼를 낳고 천적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새끼를 보호하고 길러냅니다. 성체가 되어 둥지를 떠나도 스스로 먹이를 구할 때까지 엄마는 새끼들을 위해 헌신하지요. 이 책에서도 몸이 부서져라 새끼를 구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런데 제목이 왜 엄마가 미안해 일까요? 재빨리 날아 널빤지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못 한 게 미안 한 것일까요? 잠시 어미쇠제비 갈매기가 되어보았습니다.

모래밭이 낮아진 걸 모르고 그곳에 둥지를 튼 게 미안해집니다. 다주어도 아깝지 않지만 다 주어도 늘 부족하게 해 준 것 같은 엄마의 마음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두 같은가 봅니다. 


얼마 전 공영방송에서 안동호에 살아가는 쇠제비갈매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누군가는 생태계 파괴엔 관심이 없고, 누군가는 안타까움으로 추적, 연구하고 그것을 알리는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미 쇠제비갈매기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우리는 그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줘야겠습니다. 우리만 사는 지구가 아니니까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최경영



진정한 사과와 용서?!





“나는 이번 여름방학 때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뭔데?”  “아빠를 만들 거야!”


『별맛일기』 2권 <김치말이 국수> 편의 일부 내용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 항상 요 대목에서 친구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럼 난 모른 척하고 계속 읽자고 한다. 읽다 보면 엄마만 있는 별이가 아빠와 사는 미나에게 두 사람을 연결해 주자며 작전을 짜자고 한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 그러다 이야기가 끝날 쯤 부모님들이 ‘이제 우리 사이 공개해도 될 것 같아요.^^’라고 핸드폰 문자를 주고받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면 읽던 아이들이 모두 잘 됐다고 환성을 지른다. 마치 자기가 미나나 별이인 것처럼 좋아한다. 금방 별이와 미나의 마음이 된 것이다. 



『별맛일기』는 만화책이다. 어린이월간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되었던 만화다. 단순히 연필로 그리고 쓴 흑백만화다. 하지만 결코 단순한 만화책은 아니다. 소박하고 건강한 요리법이 소개된 요리만화책이다. 실제 아무 색도 칠해지지 않았지만 읽다 보면 연한 노랑과 분홍이 느껴진다. 나는 이 책에서 <김치말이 국수>편을 제일 좋아한다. 엄마, 아빠의 결혼을 응원하는 아이들 모습이 참 신선하다. 사실 어린이책에서 부모님들의 이혼이나 재혼에 대해 다룬 책들은 좀 있다. 한부모 가정 이야기도 제법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책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힘든 마음을 견뎌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 책 주인공 별이는 다르다.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솔직히 보여주고 아빠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드물게 아이가 엄마의 결혼을 도와주는 책으로 에즈라 잭 키츠의 『루이의 아빠 찾기(Louie’s Search)』란 책이 있기도 하다. 그 책에서 루이는 우연히 아빠와 엄마를 연결해주게 되었다. 그에 비해 『별맛일기』의 별이는 아빠를 갖고 싶어 스스로 적극적인 중매쟁이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때 별이는 가정을 행복하게 꾸려갈 책임 있는 한 사람이 된다. 

 

이 책은 요리만화책이니 배우고 싶은 요리편부터 순서 없이 봐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읽다 보면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러니 차례차례 천천히 읽어야 하는 재미있는 책이다. 여럿이 함께 본다면 만화 캐릭터에 맞게 실감나는 목소리로 역할을 나누어 연극하듯이 읽으면 더 재미있는 책이다. 미혼모나 다문화, 동성애에 관한 문제나 기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일들도 다루고 있으니 그런 것들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며 읽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맛있는 일기인 만큼 주인공 별이의 요리를 직접 따라하며 맛있게 읽어주는 게 가장 재미있게 읽는 법 아닐까?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정선화

                                 



마을과 만나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교양강좌


'국왕의 나라 태국의 인권 이야기'

 

 

2018626일 오전 10-12

강사 :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장소: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시흥5동 탑동초교 근처)

지역 주민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풍부한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해변, 싸고 맛있는 음식, 화려한 밤문화, 방콕, 푸켓, 치앙마이 등 여행 가보고 싶은 나라 태국이 아닌 군사정부와 왕실의 권력이 지배하는 나라, 태국의 민주화를 외치는 젊은이를 왕실모독죄로 감옥에 보내는 나라,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태국을 만나 봅니다.

 

태국 몽꿋왕 역을 한 율브린너 나오는<King and I>보셨나요? 태국에선 상영금지인 영화입니다. 영국에서 온 여인이 왕과 왕자들을 서양문명의 세계로 인도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영화를 오리엔탈리즘으로 해석합니다. 거만한 서양의 시선으로 동양을 폄하해 묘사했다는 겁니다. 좀더 세게 말하면 제국주의 시각을 담고 있다는 겁니다. 태국 왕실은 주변국들이 서양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상황에서도 국가주권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6년 쿠테타 이후로 왕실모독죄 위반 사례가 급증하였습니다. 국왕이 쿠데타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태국에서 왕실을 모독했을 경우 최대 15년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제인권단체들이 계속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요지부동입니다.

 

주권을 지켜냈던 태국왕실, 그렇지만 인권탄압의 명분이 되고 있는 태국의 왕실, 어떻게 이해야할지,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빅데이터 -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


올해 대학원에 들어간 조카를 만났다. 무엇을 전공하냐고 하니 ‘빅데이터’를 연구한단다. 

4차 산업혁명에 맞추어 도서관도 변화를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 같이 작은도서관에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작은 공간과 적은 비용, 정리되지 않은 많은 정보들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지? 

몇 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있었다. 최고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바둑의 최고 중 최고 인간 실력자의 대결이었다. 과연 인간 대 로봇, 누가 이길 것인가 가슴 졸이며 봤다. 최종 결과는 알파고가 4승 1패로 이세돌에게 승리하였다. 알파고가 이긴 것은 빅데이터 덕분이란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4차 산업혁명 등 요즘 많이 듣는 말들인데 이에 관한 책들이 어려워서 쉽게 읽히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반가운 책을 만났다. 이제 막 5월에 나온 <빅데이터,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안지선 글>은 초등 고학년 이상 읽을 수 있게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빅데이터란 무엇이며 어떻게 널리 활용되고 있는지 다양한 예시를 통해 살펴보고, 국내외의 많은 연구 사례는 빅데이터가 우리 삶 속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 꼼꼼하게 정리해 준다. 빅데이터의 개념과 함께 실제로 빅데이터가 바꾸어 놓은 세상의 모습,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기술이 미래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얘기해 준다. 

날씨를 예측하는 기상청의 슈퍼컴퓨터와 자동차 내비게이션, 대중교통 안내 시스템, 그리고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스마트폰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서비스들은 대부분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기술들이다. 

빅데이터는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인공지능과 사물 인터넷이 결합한 전자 기기들이 지금보다 훨씬 똑똑해질 거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목이 말라 냉장고에 가서 물을 찾으면 사용자의 생체 리듬에 맞도록 온도가 조절된 물이 냉장고에서 제공된다. 평소 몸에 늘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 몸에 간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들인 웨어러블 제품이 사용자의 생체 리듬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냉장고와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 등이 인터넷 네트워크로 늘 연결되어 내 몸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그 데이터에 근거해 내가 마실 물의 온도를 컴퓨터가 결정해 주는 것이다. 

웨어러블 기기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생성된 건강 데이터는 내가 자주 다니는 병원의 진료 시스템에도 함께 저장된다. 호흡이나 심장박동 등에서 평소와 다른 증상이 발견되면 적절한 처방이 스마트폰 메시지로 전송된다. 이 원격 진료 시스템에는 유전자 정보와 현재 상태도 저장되어 있어서 질병이 생길 가능성까지 예측해 준다. 참으로 편한 세상이 다가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기계에 의해서 내가 통제되고 있고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좀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내가 움직이는 것이 모두 데이터로 쌓이고 그것은 또 다른 프로그램에 의해 분석되어져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빅데이터의 시대가 되면 교실에도 혁명이 이루어지고, 우리 사회도 더욱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 혁명시대에 우리는 좀 더 편리하고 바른 서비스들을 기업이나 국가를 통해 제공받게 되겠지만 그만큼 우리도 모르게 더 많은 통제와 감시를 받는 사회가 될 수도 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김현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책]사자가 작아졌어 ! -진정한 사과와 용서?!



“으악- 형아!! 흐아앙~” 다급한 절규에 이어 울음이 터져 나오는 동생. 

“그러니까 이런 걸 왜 여기다 놔둬?” 

급한 마음에 자기 잘못을 얼렁뚱땅 상대방 탓으로 돌리며 큰소리치는 형. 

동생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가장 아끼는 물건을 형이 냉장고 문을 열다가 밟아서 박살을 낸 것이었다. 파는 것이 아니니 똑같은 걸 사줄 수도 없고 만들어 주자니 재료 수급부터 만들기까지 동생 특유의 꼼꼼함을 따라갈 수가 없다. 늘 그렇듯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레퍼토리는 사과의 말, “미안~.” 말은 내뱉었으나 내가 봐도 참 형식적이고 영혼 없는 사과다. 동생이 화를 풀고 용서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미안하다’는 말 자체가 아니라 말을 하는 태도와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에 달려있을 터.

 <사자가 작아졌어!>는 육식동물 사자와 초식동물 가젤이 등장하는 그림책이다. 평소처럼 점심을 배불리 먹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던 사자에게 갑자기 몸이 작아지는 일이 생겼다. 개울을 건너다 물에 빠진 사자를 구한 게 가젤이고, 가젤은 자기가 사자를 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며 절망에 빠진다. 왜냐하면 사자가 어제 점심으로 먹은 것이 바로 가젤의 엄마였던 것. 엄마를 빼앗기고 점심도 저녁도 굶으며 엉엉 울었던 것을 떠올린 가젤은 사자를 당장 다시 물에 빠트려 버리겠다고 한다. 사자는 자기를 물에 빠뜨려도 달라지는 게 없다며 가젤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애를 쓰기 시작한다. 아프리카에 없는 꽃들을 따다 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가젤의 뿔에다 멋진 그림도 그려주고 빗으로 털을 가지런히 빗어주고 심지어 발도 닦아준다. 이 정도면 가젤의 마음이 풀렸을까? “다 소용없어. 그냥 우리 엄마를 돌려 달란 말이야!” 오히려 더 슬퍼진 가젤. 가슴이 막히고 숨쉬기도 힘들어하며 울기만 한다. 그걸 본 사자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꺼내는 말, “그럼..., 날 먹어.” 그러고는 작은 접시 위에 작은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다. 가젤은 어떻게 했을까? “이제 됐어, 아무것도 필요 없어. 풀만 먹는데 너를 어떻게 먹어? 나도 엄마가 다시는 못 돌아온다는 걸 알아, 그래서 슬픈 거야. 나는 죽을 때까지 엄마를 잊을 수 없으니까.” 똑같은 방법으로 되갚아 준다고 해서 마음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젤도 알고 있는 듯하다. 사자는 가젤의 눈물비를 맞으며 가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가젤처럼 다시는 엄마를 못 본다면 정말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젤의 입장이 되어본 것이다. 그리고 가젤의 얼굴로 기어 올라가 눈물을 정성껏 닦아주고 콧등위에 엎드려 포근하게 안아주며 진심어린 사과를 한다. “널 슬프게 해서 미안해.” 

오랫동안 가젤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사자는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순간 다시 커져버렸기 때문에. 그럼 결론적으로 사자의 사과가 가젤의 마음을 달래준 걸까? 가젤은 사자를 정말 용서한 걸까? 커져버린 사자와 가젤은 그 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책의 엔딩 장면을 보고는 씩 웃으며 책을 덮었다. 


그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 마음을 다해 함께 울며 안아줄 수 있는 것, 그것인가 보다. 진정한 사과란. 


“네가 먼저 그랬잖아!”

“아니거든!”

“형아가 그런 거 다 알아!”

“무슨 소리야!..”

평화로운 저녁이다 했건만 형제들의 티격태격 다툼소리가 또 들려온다. 사과하기와 용서하기의 타이밍이 온 것이다. 흑... 과연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진정성을 담은 사과와 용서의 시간이 될 것인가. 영혼이 담겨 있든 없든 ‘미안하다’는 말 자체도 꺼내지 못하는 어른들이 많은 걸 보면 아이들에게도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어쨌거나 내가 원하는 평화의 시간은 언제 오려나...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윤미희

                                 





빨간 불길에 휩싸여 건물이 타고 있는 장면이 그려진 책 표지에서부터 어두운 재앙이 느껴진다.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한참을 방 한쪽 구석에 밀쳐놨다가 심호흡을 하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비참하고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를 외면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열두 살 주인공 롤란트네 가족이 4주간 쉐벤보른으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행복한 시간을 보낼 준비를 하고 가는 도중 핵폭발이 일어나 잔인하고 무서운 긴 불행을 겪게 되는 내용이다. 한순간의 죽음이 오히려 행복하게 느껴질 정도로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심한 외상으로 인한 고통, 배고픔, 끝없는 갈증, 가족들의 죽음 등 만약 지옥이 있다면 이런 상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을 다 잃고 아빠와 둘만 남게 된 롤란트도 살아남은 사람들과 삶을 일궈 나간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 롤란트가 겪은 불행한 일들이 머릿속에 남아 내가 살고 있는 현재와 전쟁과 가난을 겪어낸 과거의 사람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념과 정치를 모른다. 알려고 기웃거리지도 못하고, 사는 것에 바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종전이 아니라 휴전인 상태에 있기도 하지만, 북한에서는 아직도 그 무서운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았다. 다행히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내용의 판문점 선언을 내놓았다. 완전한 비핵화가 현실화 되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래본다. 아주 작게는 물을 아껴 쓰고 쓰레기를 적게 버리는 등 환경을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였으면 한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곳이니까 깨끗하게 지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마음이 우울했지만 여러 가지 삶의 과제를 안겨줬다는 점에서 참다운 선생님을 만난 듯 기쁘기도 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양기순

                                 




[책] 하위권의 고수





 ‘하위권의 고수’는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된 작품으로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캠페인을 벌이는 가운데 쓰여진 10명 작가의 창작동화모음 책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상황과 고민하고 있는 마음들이 10편에 담아져 있다. 동화 속의 아이들은 고민을 힘들어 하고 절망하기보다 용기를 내어 –기적과 환타지 속으로 들어감-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과 꼭 닮은 동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과 용기를 받는 동화가 될 것이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는 소통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 <별난 개구리 별개>, <벌레 만들어 드립니다>는 시들어가던 아이들에게 기적의 선물을 통해 다시 자기 모습대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 행복으로 나아간다. <꼴찌를 찾습니다>, <웃음소리> 는 우리 사회의 일등주의 경쟁교육을 꼬집고 있다. 꼴찌가 일등으로 일등이 꼴찌로 바뀌는 대역전이 펼쳐진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는 참 마음이 아프다. ‘가만히 있어’라고 억압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너무도 창피하다. 어른이라는 이름하에 아이들의 생각까지도 좌지우지하려 하지 않았는지 말하고 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여김은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동화이다. 책 마지막에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에 공감하며 올려본다.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1. 지금 행복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합니다.


2.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는 ‘마음껏 놀기’입니다.


3.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성공입니다.


4.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


5. 교육은 상품성이 아니라 인간성을 키우는 일입니다.


6. 대학은 선택이어야 합니다.


7. 아이 인생의 주인은 아이입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시미선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책] 오이대왕 



할아버지, 아버지, 엄마, 누나, 동생과 함께 사는 평범한 가정 볼프강네 집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밀가루 반죽으로 빚은 듯한 오이 모양을 한 괴 생명체는 뻔뻔하고 거만한 태도로 자기는 지하실에 살고 있는 쿠미-오리 2세 대왕이라고 소개한 후 신하들의 반란으로 내쫓김을 당했으니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가족들은 모두 이 불청객을 탐탁찮게 생각하지만 웬일인지 아버지만큼은 오이대왕에게 호의적이다.

  볼프강네는 성실한 아버지와 가정적인 어머니, 다복한 세 아이와 할아버지가 함께 사는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처럼 보였다 오이대왕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가족들은 엄격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에 눌려 말하지 못한 비밀을 하나씩 숨기고 있다. 오이대왕은 자신의 입지를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 비밀들을 하나씩 수집하다 볼프강에게 들키게 되고, 비밀의 주인들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첫 번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오이대왕은 새로운 계획으로 자신의 새로운 왕궁을 세우려한다. 거짓과 회유로 아버지를 사로잡은 오이대왕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불청객은 아버지를 닮아 있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아버지와 사이가 좋은 막내 닉을 제외하고는 가족 모두 이 오만한 불청객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마치 자신의 일부를 감싸듯이 오이대왕을 포용하고 심지어 자기 침대를 내어주며 대왕으로 깍듯이 받들며 수발을 든다. 한 침대에서 볼을 맞대고 사이좋게 오이대왕의 왕관을 부여잡고 자는 장면은 기이한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이 기이한 장면에서 아버지가 왜 오이대왕을 극진히 대하는지 알 것도 같다. 아버지는 왕관이 아닌 왕관이 갖는 절대적 권위를 부여잡은 듯이 보였다. 어쩌면 오이대왕은 아버지의 권위적인 사고와 엄격함이 극대화 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었을까? 

  어린 닉은 아무 거부감 없이 오이대왕에게 애정을 주고 순전한 마음으로 아버지도 사랑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이대왕은 아버지와도 오이대왕 자신과도 가장 사이가 좋았던 막내 닉에 의해 쫓겨나게 된다. 가족 모두 오이대왕을 어떻게 쫓아내면 좋을까 결정하지 못하고 미뤄두고 있을 때 어린 닉은 너무도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하게 된다. 마치 아버지에게 붙어 있는 불필요한 것을 떼어 내듯이 망설임 없이 간단하다. 

 

“내 이야기가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늘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이경선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도서]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꽃집을 운영하시는 박선생님은 시를 좋아하신다. 가끔 책이나 인터넷에서 본 아름다운 시를 들려주시기도 하시는 데 박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시는 언제나 내 마음에 들어와 잔잔한 울림을 준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도 시를 가까이해 보기로 했다.

  박선생님이 추천해 준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은 산문집이기는 하지만 첫 장을 펼치면 시가 나온다.

 

  그늘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역시 시는 어렵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이해하기 힘들다. 작가가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나 배경이 나와 있을까 기대하며 수수께끼의 정답을 찾듯 책장을 넘긴다.


  연인은 섬으로 떠났다. 여자는 일출을 보러가고 싶다고 하고 남자는 일몰이 아름다울 것이라 말한다. 연인은 시내에서 3일을 보내고 마지막 날 일출과 일몰을 보러가려 했으나 진종일 짙은 안개와 강한 비가 내려 보지 못했다. 여자와 이별한 후 남자는 혼자 일출과 일몰을 보러 갔다. 


 우리도 때때로 오늘을 살면서 오늘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미루며 산다. 그리고는 미련이 남아 지난 일에 대해 후회하고 아쉬워한다. 지나간 젊은 날에 대해 후회하는 사람은 ‘왕년에 내가 잘 나갔지’라고 이야기하고 또 오늘을 그냥 그렇게 떠나보는 경우가 많다. 

 한때는 나도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그냥 그렇게 젊음을 보냈던 적이 있었고 직장생활을 할 때는 여기는 나랑 안 맞아하고 단정지었던 적이 있었다. 젊은 날에는 아픔도 많고 고민도 많아 삶이 내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고 투덜거렸지만 이젠 나도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현재의 내 삶이 점점 내 마음에 든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유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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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노란우체통




“흑흑흑”

“훌쩍 훌쩍”

“으~아~앙”

밖에서 돌아오니 딸아이 방에서 처음엔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울음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그런데 딸아이 뿐만아니라 함께 있던 조카의 울음소리까지 같이 들린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이야?’

‘방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무슨 일인가 싶어 뛰어들어갔더니 하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통곡하고 있고 또 하나는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왜 그러는데?”

“흑흑.....훌쩍훌쩍”

“엉엉엉”

두 아이 모두 계속 울기만 하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아님 둘이 싸웠나?’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아이들에게 계속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아...빠, 아...아..빠가 흑흑... 주...주..죽어...으~~~앙”

“주..죽어....펴...편...지.앙앙앙”

아이들은 울면서 뭐라고 말을 했는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어 정말 답답하고 가슴은 두망망이질쳤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찰나 딸아이가 노란그림이 있는 얇은 책을 들어 올리며 더 큰소리로 울어댔다.

“너 지금 이 책 보고 운거야?”

둘 다 우느라 대답은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린다.

<노란 우체통>그 책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렵게 낳은 외동딸 솜이를 두고 아빠는 떠나야 된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건강하다 장담하던 솜이 아빠는 건강검진 결과에 씌어있는 대장암 판정을 믿지 못한다. 오진일거라 생각하며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지만 결과는 항상 그대로일 뿐! 그것도 말기. 딸아이에게 비밀로 하고 아빠는 딸과 함께 추억 만들기를 하려고 하지만 딸아이가 그 속을 알 리 없다. 아빠가 보내는 사랑한다는 문자, 지우지 말라고 아빠가 부탁하지만 솜이는 바로 지워버리고 어떻게든  딸과의 추억을 많이 남기려 노력하는 모습에 마음 한켠이 저려온다.

플룻을 하는 솜이가 독일로 연주회를 떠났을 때 아빠는 이 세상을 떠난다. 아빠는 솜이와 엄마를 위해 편지를 준비해 때가 되면 도착하게 하고 솜이는 그제서야 아빠의 깊은 사랑을 느낀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빠를 떠나보내야 했던 솜이. 아픈 몸을 이끌고 가족들에게 편지를 준비했던 아빠! 아빠는 편지라는 선물을 자신이 죽은 후에도 계속 받아볼 수 있게 했지만 아빠가 죽어간다는 사실도 모른 채 아빠에게 투정만 부렸던 솜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더 아파지겠지. 

솜이가 커가는 과정을 생각하며 솜이에게 편지를 준비한 아빠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어쩌면 솜이에게도 아빠와 헤어질 준비 할 시간을 주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얇은 저학년 문고지만 이 책을 어린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들도 함께 읽기를 권하고 싶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진수정



글,그림: 전미화 / 사계절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샛노란 표지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까만 머리의 한 아이가 밝게 웃으며 서 있다. 그 옆에 그려진 말풍선 안에는 뭔가 다짐이라도 하듯 힘차게 적힌 글씨, ‘씩씩해요’. 쉽고 편하게 보는 글줄 적은 그림책인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가 얼마 못 가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는다. 차마 책을 덮지 못한 채 가슴이 아려오는 걸 억지로 눌렀다.


 아빠차가 공중에서 크게 한 바퀴를 도는 무서운 사고가 일어난다. 아주 긴 시간을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와 아이가 단색의 바탕에 까만 펜으로 간결하게 그려졌다. 이후 달라지는 생활모습들... 엄마는 더 바빠졌고, 혼자 먹는 밥에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식탁, 아빠 없이 혼자 하는 목욕, 아빠 없이 타는 그네, 잠이 들면 아침까지 엄마를 볼 수가 없기에 곰돌이와 얘기하며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 어느 날은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꿈도 꾼다. 아름다운 풍선으로 가득한 꿈이지만 깨어보니 이불이 젖어있다. 엄마는 화내지 않고 말한다. “괜찮아.” 엄마와 함께 무지개 색깔의 산에 힘차게 오른 날, 엄마는 웃으며 말한다. “이제부터 우리 둘이 씩씩하게 사는 거야, 알았지?” 

이때부터 색이 없던 엄마와 아이의 옷에 색깔이 입혀진 게 보인다. 혼자 먹는 밥도 괜찮아졌고 설거지를 할 줄 알게 되고 엄마가 마신 커피 잔도 치운다. 아빠처럼 어른이 되면 높이 날 수 있을 거라며 혼자 그네도 탄다. 엄마는 예전에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운전을 시작하고 망치질도 하고... 사진 속 아빠가 나를 보며 웃고 있고 아이도 함께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씩씩해요.’ 마지막장에 그려진 아이의 환한 표정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그러다가 이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쭉 씩씩할 수 있을까. 아니, 씩씩해야만 하는데. 


 아이의 시선에서 담담하게 쓴 그림책이지만 나도 엄마인지라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감정이입이 되고야 만다. 3~4줄에 다 표현하지 못하고 글과 그림 사이에 담겨져 있는 엄마의 마음이 절로 읽혀져서 참 아팠다. 겪어보지 않으면 감히 예상치 못할 아픔과 상처이리라. 얼마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충격을 준 남편의 직장동료가 생각났다. 남겨진 아내와 4살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이 책을 내밀고 싶다.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세상,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크고 작은 아픔과 상처들을 늘 마주하는 우리들에게 오늘 나는 씩씩해지는 마법을 걸어보고 싶다. 우리 씩씩해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윤미희

[은행이의 책소개]샤를의 기적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다른 그림책에 비해 월등히 큰 크기에 놀랐고, 너무 화려한 그림에놀랐다.

책표지에 너무나 침울한 표정의 꼬마용이 날개를 아래로 떨어트린 채 바위위에 앉아있다.

시무룩한 꼬마용이 궁금해 지며 책을 펼쳐 보게 만들었다.

여러 용들이 화려하게 면지에 등장한다. 

프랑스작가의 작품이지만 서양적인 면보다는 동양적이 냄새 많이 나는 그림책이다.

꼬마용 샤를은 탄생부터 신비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엄마, 아빠의 지지와 사랑 속에 드디어입학 할 나이가 되어 학교에 입학을 한다. 다른 용들에 비해 커다란 날개와 커다란 발을 가진 샤를은 항상 아이들의 놀림과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모두 불뿜기와 나는법을 열심히 배우지만 샤를은 책읽기와 시쓰기를 더 좋아하는 낭만 시인이다.

학교에서 학예발표회가 있던 날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들 앞에서 자기의 장기와 특기를 마음껏 뽑내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자랑할 것이 없는 샤를은 혼자만의 도피처였던 화산으로 가서 울적한 마음을 달랜다. 갑자기 화산이 폭발하고 잘 날지 못했던 샤를은 추락하고 만다. 죽음을 앞에 두고 샤를의 마음은 슬프기만 하다. 그 때 작은 파리 한 마리가 “넌 날 수 있어~ 나처럼 작은 날개로도 날아다니는데, 그 큰 날개로 왜 날아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거야?” 라는 말에 샤를은 날개짓을 해보고 드디어 하늘을 날 수 있게 된다.

샤를의 큰 날개가 하늘의 해를 가리고 어둠이 오자 학교에서는 이 어둠을 이용해 하늘에 불꽃은 쏘아 학예발표회의 하일라이트를 장식한다.

모두 샤를을 칭송하며 샤를의 부모님도 샤를을 자랑스러워 하며 이 그림책은 끝난다.

이 그림책에서 난 요즘 아이들의 왕따 문제와 옆에서 용에 비해 먼지만한 크기의 파리가 샤를의 조력자가 되어 이 멋진 꼬마용의 용기를 끌어내는 것을 보고 느낀 것이 많았다.

과연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진정한 조력자였을까?

나의 체면과 나의 자존심 때문에 아이의 장점보다는 못하는 것을 질책하고 아이의 이야기 보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아이를 판단하고 있지 않나 라는 자책감이 들게 했던 책이다. 나는 진정한 누군가의 조력자인적이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못하면서 나의 조력자가 되어주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원망만 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프랑스 어린이가 뽑은 마르세유 어린이 도서상과 로빈스 어린이 문학상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이 그림책을 한해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기에 나를 돌아다 볼 수 있는 그림책으로 추천해보고 싶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윤숙

[책]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설흔 작가의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는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의 우정과 삶에 대한 탐구이야기이다. 필자는 어떤 위협 속에서도 자신의 문체를 포기하지 않은 이옥보다 바람 앞에 등불처럼 흔들리는 마치 변절자라 할 김려에게 더욱 마음이 끌렸다. “왜 변절자의 삶을 산 김려에게 더 애착을 보일까?” 란 물음에서 답을 찾기 위해 다시 책장을 넘겨보았다. 

정조시절 성균관 유생이었던 김려와 이옥의 두 문장가는 서로를 존중하며 깊이 있는 글쓰기를 하였다. 특히 이옥의 글은 가히 천재라 할 만큼 멋진 문장과 문체였고 김려는 그런 이옥의 글을 닮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들이 썼던 글은 패관소품체로 나라에서 금지 하게 됐고, 문체반정으로 이옥이 정조로부터 형벌을 받자, 김려는 형벌을 피하기 위해 소품체를 버리고 정조가 원하는 고문을 따르게 된다. “이옥에게는 미안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되려 문체를 바꾸지 않고 고집한 이옥이 바보같다. 글이 대체 뭐라고.” 문체를 바꾸지 않는 이옥을 비난하며 김려 본인은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임금은 김려를 이옥과 한패로 보고 북쪽 땅 부령으로 유배를 보낸다. “이 모든 게 다 이옥 때문이다! 이옥만 아니었으면 내가 유배를 당할리가 없다.”

이옥과 임금을 원망하며 유배길에 올랐지만, 김려를 진정 고통으로 내몰은 건 자신을 인간취급하지 않는 양반들과 아전들이었다. 그들의 추악한 행태는 이루말 할 수 없을 만큼 잔혹했다. 추위와 배고픔, 멸시와 환대를 받으며 지내는 유배 생활은 김려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놨다. 그런 그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건 온갖 핍박을 견디며 뼈만 추스린채 살아나가는 가련한 백성들이었다. 권세가들의 탐욕스런 욕망에 살점이 뜯기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백성들에겐 세상은 한(限)으로 들끓는 세상이며, 죽음이 항시 옆에서 도사리고 있는 삶이었다. 성군이라 할 임금의 치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임금의 눈치만 보며 울고웃고 한 자신이 어리석음을 죄인이 되어 백성들의 옆에 서보니 깨닫게 되었다. “아, 나는 도성안의 개구리였구나!”

김려는 그들의 고통스런 생활을 글(이야기)로 표현해 주었다. 백성들에게 글이란 별천지와 같은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글(이야기)을 듣고 울고 웃고 하며 위로를 받았다. 글이 대체 무엇이길래 ‘글’로 인해 형벌을 받고 또 ‘글’이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인가... 김려는 백성들을 보며 가슴을 죄는 무언가를 느꼈다.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왕이 되었고, 최고권세를 누리고 있는 김조순(김려의 친구)의 배려로 김려는 논산의 현감이 되었다. 유배생활의 끔찍했던 과거는 깨끗이 잊어버린 듯 평안한 삶을 살며 벗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게 이옥의 아들이 찾아와 이옥의 ‘글’을 넘겨준다. 정조 형벌 앞에서도 문체를 바꾸지 않았던 이옥의 글이다. 김려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이옥의 글을 읽는다. 이옥의 글은 집요하게 묻는다.

“나는 여기 있다. 너는 어디에 서 있느냐?” 

유배시절, 백성들과 서로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젠 내 한 몸의 평안을 위해 그 백성들을 등지려 한 것이다. 이옥을 등지고 이번엔 백성들마저 등지려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김려는 한없이 어깨가 웅크려졌다.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비겁함이, 졸렬함이, 거침없이 까발려짐을 느낀다. 그들을 등진채 언제까지 희희낙락 거릴 수 있을까, 이젠 뒤돌아서서 자신의 과거를 마주보아야한다. 고통스럽더라도 끌어안아야 한다. 김려의 글은 백성들과 함께였을 때, 가치(價値)의 꽃을 피웠다. 

“마음이 담겨있는 글이 진정 나의 글이 아니던가.” 그래서 김려는...

귀밑머리 희끗한 나이에 여행길에 오른다. 이 여행길은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일이자, 본연의 ‘나’가 되기 위해 떠나는 길이다. 도망치고 싶었던 과거, 영원히 잊고 싶었던 과거와 마주하기 위해 ‘김려’는 떠난다.

필자가 고심 끝에 마주한 답은, 누구나.. 나 역시 ‘변절자’ 김려처럼 감추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곳으로부터 등돌린 과거가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었다. 김려를 마주하며 우리 모두는 비겁하고 비참한, 부정하고 싶은 어리숙한 시간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늙은 나이에 변절자라는 껍질을 벗고 김려는 상처깊은 과거와 대면을 했고,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나간 사람이다. 그 어리숙함을 인정하고 끌어안고 가야만 한다는 걸, 김려를 마주한 책상 속에서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마흔쯤에 또 다시 깨닫는 부끄러움을 덤덤히 받아들이며, 나와 같은 부끄러움을 마주할 이들과 함께 그 ’길’을 걸어 가보고 싶다. 

지난(至難)한 시대를 살았던 이옥과 김려가 우리들에게 말한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이렇게 멋진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와 보지도 않았을 게야.”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박연진

[은행이의 책소개] 사는게 뭐라고




오래전 강승숙 선생님의 책을 찾아 읽고 참 훌륭한 분이구나 감탄을 했다. 선생님의 책에 소개 되어있던 수많은 그림책들은 처음 보는 책도 많아서 공부할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백만번 산 고양이>는 강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 해서 얼른 찾아보았다. 그런데 내용이 참...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고, 좋아하는 이유도 분명 있겠지만, ‘대중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누구나 다 읽고 다 좋아할만한 책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개성이 강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구의 고양이로 태어난 그 고양이는 자신의 삶을 팽개치다시피 한다. 삶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고 되는대로 살다가 죽고 다시 또 누군가의 고양이로 태어난다. 그러다가 사랑을 하게 되면서 자기 삶에 진정한 애착을 갖게 된다는, 그래서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중학생들과 이 책을 읽었는데 아이들은 ‘살고 싶어야 살게되는게 당연하다’고 입을 모은다. 파격적인 내용이지만 ‘삶이란 살고 싶어야 잘 살아진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쓴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아이들을 객관화된 대상을 보여주어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만든다.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닐 때, 사람들은 절망하고 의욕이 없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찾아낸다. 

 이 책을 쓴 사노 요코, 난 이 분에게 완전 빠져버렸다. 사노 요코의 에세이인 <사는게 뭐라고>를 읽고 곧 <죽는게 뭐라고>와 <하나님도 부처님도 없다>를 찾아 읽었다. 가장 마음에 든 <사는게 뭐라고>를 잊지 못해 다시 빌려 조금씩 아끼며 읽고 있다.

 사노 요코는 이혼을 두 번했다. 다 큰 아들이 하나있고, 수술 마치고도 집에 와서 담배를 피는 골초이다. 그는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사람이 밥을 먹으며 사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한류열풍이 거셀 때 욘사마에게 반했다가 김승우한테 반하고 다시 이병헌한테도 반한다. 아픈 몸에 너무 한쪽 방향으로 티비를 보다가 턱이 돌아갔다. 병이 몸을 꼼짝 못하게 하자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데 죽음이란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올 때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자신은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죽으면 일을 안 하니까 참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죽었다. 2010년의 일이다. 

 나는 그가 죽은 것이 속상했다. 살아있었다면 편지 한 번 보내고 싶었다. 그의 글은 그의 일상을 적어둔 것인데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래 산다는 것은 이런 거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싫어하는 책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지시하고 하면 안 될 것들, 해야만 하는 것들을 늘어놓는 책들과는 아주 다르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늘어놓는 것이나, 자기만 옳다고 이야기하는 책과는 다른 것이다. 난 이렇게 살았다 는 것을 보여주기만 한건데도 위의 그림책의 고양이를 봤을 때처럼 나 자신을 보게 되고, 그래 사는건 이런거지 하면서 찬찬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과 제일 먼저 절교하고 싶다’ 자기혐오가 강했던 사노 요코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이 사람을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는 자신을 잘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때로는 주변에 자신을 너무 몰라서 다른 이들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다. 뭐든지 자신만만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일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는 잘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

 책을 읽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겸손과 자신을 돌아봄, 그러니까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책을 읽고 나면 주인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사노 요코의 책이 그렇다. 정말 책 내용으로 보면 이혼 두 번에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살 수 있고, 성격 안 좋고, 다른 이들의 흠도 넘어가지 못하는데 본인한테는 뭐라 못하고 집에 돌아와 머리카락 쥐어뜯는 그런 성격.. 어찌보면 본받을게 하나 없는 할머니인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이 참 좋다. 앞 쪽에 있는 사진( 암치료 중에 깎은 머리가 살짝 자란 모습)을 보면서 한번 쯤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소개한 많은 글들은 사노 요코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내 느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을지 모르나 이 사람은 삶을 사랑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삶은 찬란하지도 황홀하지도 않았지만 주어진 것을 그저 열심히 밥을 해 먹으며, 때로는 남과 싸워가며, 무엇보다 자신을 직시하며 살아갔다는 것, 그것이 사노 요코가 자신의 삶을 사랑한 증거다. 그래서 그 고양이처럼 이 분은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상쾌한 바람’ 같은 사노 요코... 답답하기만한 일상에 그의 책과 그의 생각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에 큰 고마움을 느낀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민경아

이 땅의 모든 오광명들아~ 힘내라!!




초등학교 4학년이 딸은 학교 도서실에서하루에 두 권씩 책을 빌려온다. 재미없는 책은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재미있게 읽은 책은 나에게 가져와 “엄마 이저 재미있어요.”라고 한다. 읽어보라는 것이다. 언젠가 한번 딸이 권한 책을 재미있게 읽은 뒤로는 딸이 읽어보라는 책은 꼭 읽어본다. 이번에 소개해준 책은 제목만 봐도 흥미로운 <잘한다 오광명>이다. 오광명이라는 이름도 왠지 웃기지만 뭘 얼마나 잘하길래 잘한다고 했을까?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도 소개되어 있는데 이름들이 한나같이 왜 이렇게 웃긴지... 시작부터아이들이 참 좋아할 만하다. 친구를 썩은 떡이라고 놀리다가 그 별명을 갖게된 ‘썩은 떡’, 수시로 똥을 누러 가는 ‘황반장 똥반장’, 황반장과 함께 오광명을 놀리는 ‘임진수’, 광명이 짝궁 ‘김준’, 주인공 ‘오광명’, 그리고 그 아이들의 담임교사 ‘털보 선생님’ 이들의 이야기가 아주 특이하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유치하지 않은 문체와 표현으로 그려졌다. 

초등학교 2학년이나 된 녀석이 선생에게 과자 달라는 둥 ‘선생님 사탕 한 개 만’이라고 애교를 떠는 모양새가 영 거북스러워는데 읽다보니 어느새 적응이 된다. 털보 선생님은 광명이가 사탕 한 개 만 달라며 찾아와도 전혀 나무라지 않는다. 어찌 보면 광명이만 주려고 애쓰는 것 같기도 하다. 공평하지 않은(?) 선생님의 모습이 짜증이 나게 할 때 쯤 광명이가 다른 아이와 싸우고 선생님께 혼난다. 광명이는 하루 이틀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날이면 날마다 싸우고 게다가 못생기게까지 했다. 한마디로 아이들이 꺼려하는 비호감이다. 그런데 그 아이를 멀리 하지 않는 아이가 단 한 명 있는데 짝궁 김준이다. 얼핏 보면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 싫어 할 것 같은 광명이에게도 나름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가끔은 광명이도 착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때 준이가 이런 광명이의 착한 마음 다 알아 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같은 반 친구들도 조금씩 바뀌어간다. 아니 사실은 다른 아이들도 원래 그렇게 착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아이들에게 어쩐지 아빠 같기도 한 털보선생님도 너무나 멋진 선생님이지만 광명이의 슬픔을 함께 느끼고 도움을 주려하는 반 아이들도 무척 귀엽고 멋지다. 그리고 광명이의 진짜 마음을 볼 줄 알았던 준이도 멋지고, 무엇보다 이 글을 쓰신 송언 선생님은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책 뒷부분에 지인이의 말을 읽으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광명이가 얼마나 학교 다니는게 힘들었으면 4년전 담임 선생님에게 전활르 다했을까 싶다. 그런 광명이에게 송언 선생님은 조금만 참으라고, 힘들어도 참으라고 한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선생님이랑 한번 만나자고한다.

얼마전 끝나 TV프로그램 K팝스타 마지막회에서 심사위원 박진영이 6년간 심사를 하며 느낀 소감을 이렇말로 대신했다.

“K팝스타 우승자 6팀 중에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정규교육을 똑바로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대부분 가정에서 교육을 받거나 자유로운 환경에서 꿈을 그리고 자기 세계를 펼쳤고 이 대회만큼은 노래 잘하는 친구들을 뽑지 않았어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을 뽑았어요.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이 한 명 한 명 특별한 아이들이 놀라운 창의력을 가지고 커갈 수 있게 교육제도를 잘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박진영 심사위원의 마음에 머금은 눈물 한 방울을 본 듯하다. 아마도 송언 선생님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송언 선생님은 오광명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 속에 동심의 하느님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오광명의 마음 속에서 깨끗한 동심을 발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아이 같은 마음씨만 이 땅에 희망을 꽃피운다고.

송언 선생님은 학교 다니기 힘들어 초등학교 2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13살 광명이에게 힘내라고, 잘한다고 진심으로 응원해주기 위해 이 책을 썼나보다. 아마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요즘의 모든 아이들에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아이들이 힘을 내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모든 어른들이 이 땅의 모든 오광명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해주면 좋겠다. 이 책이 2008년에 나왔으니 오광명은 지금쯤 스무 두어 살 쯤 됐겠지? 송언 선생님은 어른이 된 오광명을 만났을까? 궁금해진다. 이 책의 주인공 오광명을 나도 만나고 싶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조혜진

[책]버려진 계집아이-야야 내딸이야  내가 버린 내 딸이야



사람이라면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 한 ‘인간’으로 성장해 자신의 가족을 형성하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이고 당연한 권리이다.  그런데 이 권리가 박탈당한 아이가 있었다.  부모가 원하는 아들이 아니란 이유로! 가장 기초적인 사회에서 내쳐진 계집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무속 신화 ‘바리데기’를 읽고 나서다.

옛날 불라국에 오구대왕와 길대부인이 있었다. 아들을 원했지만 딸만 여섯을 낳게되고, 시름에 빠진 오구대왕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백일정성과 기도로 남아를 원했지만 결국 일곱번째 딸이 태어났다. 화가 난 오구대왕은 딸의 얼굴도 보지않고 내다버리라고 소리친다. 버린다하여 이름이 바리데기다. 산 속에 버려진 바리는 산신령의 보호로 혼자 고독히 자라나게 된다.  15년이 지난 후 오구대왕은 자식을 버린 죄로 죽을 병에 걸리게 되고, 길대부인은 내다버린 바리를 찾아 나선다. 산속에서 다시 만나게 된 ‘엄마와 딸’은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며 지난 세월을 보듬어 준다. 집으로 돌아온 바리는 면목없어 하는 오구대왕이 저승 땅에 있는 약수물을 마셔야만 살 수 있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길을 떠난다. 천륜을 저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저승길을 자처한 것이다. 혹독한 산 속에서 고독한 마음으로 살아나간 바리에게 부모의 뉘우침과 사랑이 바리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가족을 찾음으로써,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님에 감사하며 자신을 온전히 내놓아야 갈 수 있는 죽음의 길, 그 길에서 바리는 수많은 이들의 아픔과 절규를 보며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온갖 고초와 시련을 넘어 저승 땅 동대산의 동수자를 찾아간다. 본래 동수자는 천상사람으로 죄를 지어 저승에 내려와 삼십 년 동안 약수를 맡아 지키며 인간세상 칠공주를 만나 아들 삼형제를 보아야 죄를 씻고 하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장 약수 물을 구해 아버지를 살리고 싶지만 동수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결혼과 출산을 하여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된다. 죽음의 공간인 저승에서 새로운 생명탄생, 그리고 어린 생명을 길러내는 어머니의 역할은 ‘생명수’를 구하는 바리의 역정 속에서 생명의 가치를 몸소 체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또 하나의 죄 많은 동수자를 끌어안아 구원을 받게 한다.  기나긴 역정 속에서 드디어 손에 넣게 된 약수물(생명수)은 백일정성 기도해야 한 방울을 얻을 수 있었다.  삼백일 정성으로 약수물 세 방울을 얻고 꽃밭의 꽃들을 꺾어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이미 죽은 오구대왕을 살려내면서 여정의 마무리를 짓는다. 

 



바리의 여정이 소위 말하는 ‘효심’으로 볼 수 있으나, 그것은 ‘효심’으로만 견뎌낼 것들이 아니었으리라.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내, 연민을 통한 진정한 ‘성장’이 있었다. 그러하기에 동수자도 오구대왕도 죄를 사하고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그 후 바리는 이승과 저승에서 헤매는 가엾은 영혼을 달래어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게 해주는 죽음을 관장하는 신, ‘만신의 왕의 길’을 걷게 된다.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한 부모를 저버리지 않고 온전히 자식의 의무를 감내하였기에 인간으로의 권리를 되찾게 된 것이며, 생명의 소중함을 몸소 체득하고 깨달았기에 버려진 계집아이에서 ‘만신의 왕’의 권리와 의무까지 행하는 존재로 승격된 것이다. 

바리의 여정은 ‘거저 얻는 것이 없다.’ 많은 말을 쏟아내는 요즘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들의 삶도 있다는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부여 받은 권리와 의무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옹골지고 아름다운 삶이 되어가길 바란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박연진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책이야기] C.S 루이스의 <나니아 나라 이야기>


나니아. 마법이 유효하고 동물이 말을 하며 숲과 나무의 전령을 만날 수 있는 신비로움이 가득한 나라죠. 우리의 세계에서 그 곳으로 가는 방법은 전혀 예측할 수 없어요. 옷장을 통해 가기도 하고 액자 속 그림이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기차역에서 사라지기도 하구요, 학교 뒷문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뭐야, 마법? 판타지야? 애들 책이군!” 하며 시큰둥하게 여기실 분들도 있겠지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판타지 문학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허황되게 느껴지고 그래서 몰입도 잘 안 되는 문학. 사건의 연속과 재미에만 초점을 맞춰서 심심풀이 삼아 읽다 잊어버릴 가벼운 문학쯤으로 생각했으니까요. 혼자 읽기 시작했으면 두어 권 읽다 휙 던져버렸을 지도 몰라요. 


“전개도 뻔하고 선악의 대비도 단순해. 7권이 비슷할 것 같은데” 하면서요.

그러나 약속을 했지요. 7권 다 차례차례 읽기로요. 지난 1월과 2월은 ‘나니아 나라 이야기>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구와 약속했냐구요? 그 답에 앞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하고 싶습니다. 마법의 이야기에서 그렇듯 나니아에도 절대악 마녀가 등장하고 그 반대의 존재, 아니 더 위대한 사자 아슬란이 등장합니다. 또 우리세계에서 그곳으로 우연히 가게 되는 아이들이 있지요. 아이들은 많은 위기와 모험을 하게 되는데요, 그게 그렇게 신나거나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시련과 시험, 여러 번의 시행착오, 유혹에 대한 갈등,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지요. 


물론 다양한 성격의 주변 인물들도 제 몫을 톡톡히 합니다. 인물이라고 해서 사람에 국한되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기는 나니아, 마법의 땅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신중한 오소리, 충직한 난장이, 현명한 듯 어리숙한 부엉이, 감히 아무도 그의 등에 올라탈 엄두도 낼 수 없는 켄타우로스(허리 위쪽은 사람, 아래쪽은 말의 모습인 존재), 바지런한 비버부부, 그리고 누구보다 용맹스런 쥐, 사악한 원숭이 등등. 그러한 존재들은 이야기를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고 인간보다 더 뚜렷한 성격을 드러내어 생동감을 더해 줍니다.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읽으며 어린이 문학의 힘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어요. 


유연함의 힘이랄까, 포용력이랄까, 단순 명료함이 주는 당당함이랄까, 또 그 단순 명료함이 결코 얕은 깊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숙연함이랄까...그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화는 어린이와 성인 모두를 대상으로 둘 수 있고, 책에서 얻는 감동이나 즐거움도 아이는 아이 것을 가져가고 어른 역시 자신의 눈높이로 끌어 올리거나 깊이 내려가서 느낄 수 있지요. 성인 문학이 할 수 없는 그 어려운 것을 어린이 문학이 해 냅니다.


앞에서 언급한 ‘약속’은 작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모임에서 ‘한 두권 읽고 말게 아니라 7권 모두 도전해서 읽어보자’ 하며 의기투합 했거든요. 저는 시흥동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에서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을 하고 있어요.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그림책도 보고 동화도 함께 보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는 6여년에 걸쳐 7권으로 완성되었고 총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죠. 권수도 부담스러웠지만 완독의 어려움은 책에 대한 재미를 놓치지 않는 거였답니다.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중간에 포기했을 거에요. 그 시간이 있어서 완독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고 혼자 읽을 때 미처 알지 못했던 깊고 다양한 재미를 알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오는 4월이면 은행나무도서관에서 ‘동화 읽는 어른’ 19기를 모집합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좋아하시는 분, 혹은 그 세계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이 오셨으며 좋겠어요. 그래서 함께 읽는 즐거움을 많은 분들이 알아 가면 어떨까 합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박현진



[책]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은비는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동네에서 호랑이 할머니로 불리는 옆집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은비 눈에는 옆집할머니가 귀신할머니처럼 보인다. 은비는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며 우연히 채널을 돌리가다 건물을 향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 퍼붓는 할머니를 보게 된다. 화면 가득 얼굴을 채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옆집 귀신할머니다.


그렇게 뉴스를 통해서 처음으로 위안부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할머니는 도대체 누구한테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인지 그 건물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해 하게 된다. 평소 할머니는 스스로를 꽃 엄마라고 하며 꽃들을 정성껏 돌보시는데, 그건 꽃들이 할머니에게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짓밟히기 전의 어여뻤던 처녀시절을 떠올리게 해주고 귀여운 아이들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되는 할머니를 대신해서 이 꽃들을 돌보게 되는 은비가 할머니의 이름을 알게 되고, 할머니를 다룬 기사를 통해서 할머니의 삶을 알게 된다.

은비는 성추행 당할 뻔 한 경험을 하게 된 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비로소 할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할머니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할머니와 가까워지게 된다. 은비는 어느 날 아픈 할머니를 발견하여 병원에 모시고 간다. ‘선팽이, 선팽이....’라고 신음하시는 할머니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던 은비는 할머니의 건강이 좋아졌을 때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 할머니의 고향 서천 선팽이 마을에 다녀오게 된다.

그 후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부산에 있는 요양원으로 가시게 되고, 은비는 할머니 집에 있었던 화분들을 집으로 가져간다.

 

얼마전 신문을 보다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눈에 들어왔던 한줄. 위안부 ‘수요집회’ 25주년...“1년 안에 끝날 줄 알았다”

매 주 수요일 수요집회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언제부터 얼마나 진행되어 왔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 했다. 수요집회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만 막연히 했는데 올해가 25주년이라고 한다. 기사에는 25년 전 사진과 현재의 사진이 실렸는데 그때는 할머니들이 60대였고, 지금은 평균연령 90세이다. 우리가 설마 하면서 했던 말들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 아니야?’ 했는데 그게 정말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에 순간 멍~ 해졌다. 많이 들어서 뭔가 알고 있는 듯 느껴졌었지만 정작 알고 있는 것은 없었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역사로 끝나는게 아니고 다시 우리의 일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우리 모두 지난과거를 그리고 현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박현진


최근 박건웅 작가의 <짐승의 시간>이라는 만화책을 읽었다. (故)김근태 의원(편의상 이하 ‘김근태 의원’이라 칭하기로 하자)이 민주화 운동 시절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사건으로 19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 동안 받은 고문을 그린 책이다. 책이라면 한 페이지를 채 읽기도 전에 잠들어버리는 내 남편이 다 읽을 때까지 화장실도 가지 않고 집중해서 읽은 책이다. 물론 글자만 빼곡한 책이 아니라 만화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림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만화가 나오기 전 <남영동1985>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볼 때 장면 하나하나가 마음을 아프게 찔러대던 기억이 있다. 


 <짐승의 시간>의 원형이랄까. 김근태 의원은 22일간 머물렀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있었던 일을 책으로 내게 되었다. 

 <남영동>이라는 책을 출간한 곳이 ‘도서출판 중원문화’(박정희 유신독재정권과 싸울 목적으로 1978년 설립됨)라는 곳인데 편집장(이을호 씨) 역시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았고 발행인(황세연) 또한 한쪽 눈을 실명할 정도로 5.18 당시 고문을 받았던 사람이다. 박종철 군이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한 1987년 이 책이 출간되었으니  또다시 험난한 길을 가야 한다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얼마나 비장하고 큰 결심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 책의 발행인은 독자에게 이런 한마디를 던진다.


 “독자 여러분들의 불 같은 정의가 오랫동안 남아있기를 부탁드린다.”

 이 책은 남영동에서의 일과 그 이후 구치소에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그것들에 담겨있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들로 채워져 있다. 내가 기억하는 김근태 의원은 약간 힘이 없어 보이고 목소리도 크지 않은 모습인데 그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만은 굳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2016년을 겪은 나에게 이 책은 더욱 더 진하게 다가온다. 지나간 수십 년의 세월동안 우리가 아는 사람들부터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간 수많은 민주화 열사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민주주의를 고작 몇 사람들이 뿌리째 흔들어 놓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많이 울었다. 아니 사실은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정의롭게 살다가 목숨을 잃은 그 분들의 고통과 수고로움, 그리고 그 가족들의 절규, 나는 백분의 일도 짐작할 수 없는 그 고통... 그분들의 맺힌 한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하지만 눈물이 나오는 그 순간 나는 그만큼의 노력도 없이 그저 받아먹고 있는 이 편한 민주주의의 세상에 살며 너무 값싼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나 하는 미안함에... 눈물 흘리는 것조차 민망스러워 차마 삼키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참 마음 아프게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남영동을 찾았다. 17년 전부터 다니고 있는 우리 교회가 있는 그 동네. 남영동.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올 때면 플랫폼에서 항상 바라보던 그 회색 건물. 남영동 대공분실에... 마흔이 된 이제야 가게 됐다. 이제야 찾아가게 되어 부끄럽다. 그리고 많이 미안해진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찾아간 그 곳. 이제 막 11살 된 딸, 8살 된 아들과 가려니 (솔직히) 조금 무서운 마음도 든다. 그럴 리 없겠지만, 어디서 왔는지, 누군지, 왜 왔는지 물을 것만 같고, 어디 가서 조사받을 것만 같다. 그래서 아는 이들과 함께 갔다. 내가 평소 겁이 없는 인간에 속하는데도 그제야 안심하고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뀐 남영동 대공분실. 김근태 의원이 무거운 중압감을 느꼈다는 1미터 정도 두께의 철문, 그리고 몇 층인지 알 수 없게 건축가 김수근이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 소용돌이 계단, 그리고 겨우 한 뼘 정도 되는 조사실(고문실)의 창문... 그리고 욕조...


 마음을 짓누른다. 아무도 없이 달랑 우리 일행만 있는 5층 조사실이 마치 이 세계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듯한 느낌마저 준다. 지인들과 함께 오지 않고 아이 둘하고만 이곳을 찾았다면 음산한 무거움에 눌려 몇 초 있지 못하고 바로 바깥으로 나와 버렸을 것만 같은 곳...

 <짐승의 시간>과 <남영동>을 읽고서 며칠간 머리가 하얘진다. 생각하느라 잠시 모든 생각을 미루게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 아마 한동안은 이 상태로 지내게 될 것 같다. 


 요즘은 김근태 의원의 에세이집 <희망은 힘이 세다>를 읽고 있다.

 남영동에서 나온 지 15년이 지난 1999년 가을, 매일경제신문에서 김근태 의원은 이 시절을 회상하며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아들애가 대여섯 살 때의 일이다. 부천 YMCA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란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였더니 검은 승용차 뒷자석 가운데 왜소하게 끼여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양켠에는 건장한 사내들이 검은 안경을 낀 채 떡 버티고 앉아 있고.


 유치원 선생님들이 그 그림 제목을 ‘우리 아버지’가 아니고 ‘자랑스러운 우리 아버지’라고 고쳐 쓴 다음 다른 애들 그림과 함께 전시해주었다. 애 엄마는 그 그림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들의 배려가 고마워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대학생이 된 아들이 그 때의 무거운 기억들 때문에 위축되어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젊은이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김근태 의원은 자율과 책임, 그것이 우리 사회의 기본 축이 되는 그런 날을 그리워한다. 그곳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고백을 한다. 


 생각하는 것들, 소신을 삶으로 살아내며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분들. 100% 만족하지 못하지만, ‘아직은 멀었다’라고 가끔은 한탄하게 되는, 그러나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이 민주주의 사회는 지나간 어둠의 시절에 그 분들이 민주화를 위해 목숨과 삶을 내어놓고 군부독재의 추악한 폭력, 끈질긴 억압과 싸운 덕분이리라.

 작년 10월말쯤부터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끼며 살고 있다. 박근혜, 최순실과 그의 악당들, 아니 그 이전 이승만, 박정희부터 이어온 파렴치한 권력자들을 향한 분노와 절망은 단지 나 혼자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책이 다 무어고 민주주의가 다 무어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건 곧 역사가 되고, 삶이 곧 정치다. 정치와 삶은 직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민주화 열사들이라고 불리는(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이루고 지켜온 민주주의를 올바로 지켜내기 위해 결코 침묵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의 공판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민주화 실현을 위해 국민으로서, 그리고 자기 자리에서 민주화를 향해 나가는데 기여하고 자극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충심으로 희망합니다...(중략)... 민주화의 실현을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했으며,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시 반성해야 하고, 민주화 실현을 위해서는 그 누구도 면제되고 제외될 수 없는 것입니다. 민주화가 이룩되는 날에 나는 민주화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당신은 민주화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를 서로 반문하고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중략)...”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조혜진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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