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작가 몰리 뱅의 작품이다. 바로 이런 게 작가의 힘이구나 싶게 표지에 적힌 작가의 이름만으로 책 내용이 기대되고 궁금해졌다.

이 책은 과학책으로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책이지만 몰리 뱅 특유의 과감하고 독특한 그림이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는다. 그림책이 주는 최고의 재미가 바로 “그림” 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다. 

『내 이야기 좀 들어 볼래?   이 아이처럼 해 봐.  가슴에 손을 대고 한번 느껴 봐.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게 느껴질 거야.  네 가슴이 얼마나 따뜻한지도 느껴질 거야.  그게 바로 네 안에 살아 있는 나의 빛이란다.』

눈이 동그랗고 얼굴이 귀여운 아이가 그네를 타는 그림을 통해 태양은 말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보는 재미와 함께 '태양'이 하는 일, 태양이 인간과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려주고 있다. 햇빛이 어떻게 에너지가 되어 생명체들 사이를 순환하게 되는지, 식물이 어떻게 광합성을 하고 산소를 내뿜는지, 광합성을 할 수 없는 동물과 사람들은 어떻게 에너지를 얻는지 과학적인 원리가 꼭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는 그림책인 것이다.

 옆에서 이야기 하듯이 그렇게 '태양'에 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태양'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친숙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준다.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이 책에서 가끔 진실된 말은 ‘어른들은 물어보지 않고 마음대로 한다’이다. 아빠의 친구, 엄마의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 보라는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동감이다. 아마 어른들은 자신들의 감정에 취해 아이에게 미리 물어보는 그런 일은 할 생각도 못했겠지.

주인공 보라는 너무나 맞지 않는 엄마아빠가 이혼을 하고 새엄마와 산다. 엄마가 아니라는 이유로 새엄마를 미워하지만 새엄마는 보라를 미워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렇지만 보라는 새엄마를 계속 미워하고 못된 행동만 한다. 그럼에도 은근과 끈기로 보라를 감동시키는 새엄마, 그러나 고집스럽게 마음을 풀지 않고 짝사랑하는 친엄마의 집에서 방학을 지내기로 하지만 이미 그곳에는 보라의 자리가 없다. 새엄마를 미워하고 엄마와 아빠가 있는 자신의 완벽한 자리를 꿈꾸는 보라의 바람은 어떻게 보면 정직하다. 

그러나 그 꿈은 분명 이기심에서 출발하고 있다.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남이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자리가 가족의 변화로 인해 허물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작가는 계속 보라의 행동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쫓아갈 뿐이다. 새엄마는 자신 역시 새엄마 밑에서 자랐고 그래서 새엄마에게 준 상처와 미안함을 갚기 위해 보라를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엔 보라 역시 노력하겠다고 생각한다. 예상된 결론은 조금 싱겁다. 치열하지 않던 보라의 미움만큼이나.(*)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한정기 지음/ 유기훈 그림/ 비룡소 출판>


우리나라 아동문학에서는 보기 드문 장르라 할 만한 탐정, 추리소설입니다.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고양이’에 나오는 고양이 이름 ‘플루토’(염라대왕이란 뜻이랍니다)를 인용해 만든 이름도 썩 괜찮습니다.  ‘플루토 비밀결사대’ 하니까 뭔가 흥미진진하고 스릴 만점의 사건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지 않나요?  실제로 도자기와 멸치잡이로 유명한 ‘기장’이라는 마을의 지리적 특성이며 문화 풍습들까지 잘 엮어, 유물 도굴과 살인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작품 안에서 연결시켰습니다. 그것도 국보급 유물을 일본으로 밀반출하려던 국제조직이 아이들 덕에 ‘일망타진’되는 대단한 사건입니다.  꽤나 흥미롭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가 펼쳐질 거 같지요? 

실제로 작품을 읽어보면 기대만큼 가슴 떨리고 아슬아슬하게 전개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추리소설 매니아인 금숙이라는 아이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추리, 탐정소설’이라는 이름에 어울릴 만한 ‘꼬임’과 ‘반전’들은 부족한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사건을 통해 추리하고 그것을 맞춰나가는 과정이 너무 쉽습니다. 아이들이 추측을 하면 곧바로 확인이 되고 하니까요.  처음부터 범인으로 찍은 사람이 결국 범인이고, 범인이 숨겨놓은 도자기를 가방에 담아 산을 내려온 아이들이 그에게 들키는 과정이라든가, 경찰이 출동해 사건이 쉽게 마무리되어 버리는 것도 아쉽습니다. 이왕 추리, 모험소설에 도전했으니만큼, 좀 더 치밀하고 정교하게 구성해서 긴장감을 잃지 말고 서술해 나갔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들 손에도 땀이 절로 배게 말입니다.  아울러 이런 이야기에는 꼭 살인사건이나 국보급 유물이 결부되어야만 하는 건지. 좀 더 아이들다운 사건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명탐정 칼레’에서의 ‘성상’이라든가, ‘단추전쟁’의 ‘단추’처럼 말입니다. 어른들 보기에는 정말 별 것 아닌 물건들인데 아이들은 그것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우잖아요. 그래도 여러 명 아이들이 서로 돕고, 머리 맞대 의논하고, 어울려 다니고, 힘을 합쳐 일을 도모해 나가는 이야기가 즐거웠습니다.

5편에 걸쳐 완결판이 나왔다고 하니 회를 거듭할수록 짜임새 있는 구성을 엿볼 수 있겠지요.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 이경옥 옮김 /우리교육 출판


이름이 나오지 않는 '나'(제가 찾지 못한 건가요)는 초등학교 시절 마음을 주었던 친구 하카리에게 놀림을 받고 왕따를 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갖고 쓸쓸하게 중학교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런 ‘나’는 누구와도 마음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데요.

그 무렵, 학교에 떠돌던 초록 아줌마 이야기처럼 초록색 옷을 입었다고 착각하게 된 아가씨, 사라와 만나 자신의 힘듦을 잠시 의지하게 됩니다.

사라는 그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는데 가족들에게도 자신을 의지할 수 없던 나에게 의지가 되어 줍니다.

마침내 나는 사라에게 하카리에게 장난 전화를 걸었음을 고백하게 되고 사라는 ‘매듭을 지으라고, 두려워만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마치 자신에게 들려주듯 들려줍니다.

결국 나는 삼인조 사이에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며 자살 시도까지 한 미즈에와 마음을나누는 친구가 되고, 디자이너가 되지 못한 사라의 아픔을 알게 되며, 그녀가 선물한 초록색 비옷을 입고 하카리에게 찾아가 하카리가 부당했음을 당당하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당당하게 자신을 찾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마침내 사라도 자신의 아픔, 디자이너가 되지 못한 원망을 회사에서 나가는 옷 속에 시침핀을 꽂았음을 나에게 이야기하고 솔직하게 회사에 그 이야기를 하겠다고 합니다.

마지막은 사라같이 보이는 초록 아줌마를 쫓으려던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젠, 끝! 앞으론 스스로 하는 거야!” 

“나는 걷기 시작했다. 역을 향해서 곧장 걷기 시작했다.”

결국에 나는 하카리의 부당함에 대항하는 용기를 가지게 되고,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이겨내며 자신의 친구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오히려 청소년을 부러워하는 사라, 모든 것을 마음먹은 대로 시작할 수 있는 이 시기를 부러워하는 사라의 재출발까지 격려할 수 있는 나로 클 수 있게 합니다.

나의 고통과 마지막에 사라가 가진 고통까지, 두 사람이 가진 내면의 아픔이 옅은 복선으로, 그러나 직선으로 쭉 이야기가 진행되는 느낌이 들어요.

재미있는 것은 일본이 원조로 알려진 빨간 마스크를 생각나게 하는, 차이가 있다면 초록 아줌마는 만지기만 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이야기의 발단과 말미에서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자극하고 드러내는 소재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인물의 삶과 이야기의 구성이 잘 어울려서 청소년이 읽으면 딱 좋을 아름다운 소품이 만들어진 느낌입니다. 물론 그런 점에서 일본 작품이구나의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요.

 우오즈미 나오코의 ‘불균형’은 36회 고단샤 아동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작품이라고도 합니다.(*)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음 만나는 새에 대한 두 권의 자연그림책이 나를 설레게 했다.

표지조차 산뜻한데 찬찬히 책장을 넘기게 하는 힘이 있다.

또 제목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도 간결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상대 지음 / 윤봉선 그림 / 봄나무 출판


<나야, 제비야>는 제비의 한살이를 통해 제비가 어떻게 집을 만들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지 그 새끼들이 어떻게 크고 자라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재미없을 것 같은 이야기가 의외로 재미가 있다. 왜 그럴까. 

나조차 제비를 본지가 언제인지 아득한데 아이들은 제비를 진짜로 본적이나 있을까, 그런데 이 책은 마치 곁에서 제비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제비의 모습을 그린다. 특히 제비집, 짚과 이런저런 자투리들을 진흙에 섞어 만든 제비집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로 제비의 이름은 알지만 그러나 제비를 잘 모르는 아이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보면 좋겠다.  



이태수 글, 그림/ 우리교육 출판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 이야기는 솔직히 아주 훌륭하지만 조금 고민을 했다.

맹금류는 대부분 날지 못하거나 약한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 떨어트리는 걸로 아는데 작가 이태수는 아파트 사이에 둥지를 튼 황조롱이 부부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본 모양이다.

가로수 밑에 꽃다지가 필 수 있는 예가 많지 않아 어찌 보아야할지 망설였던 것처럼...

이 책을 본 아이들이 막내 황조롱이를 보듬는 모습에 감동을 받다가  실제로 맹금류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싶었다. 힘 약하고 느리던 막내 황조롱이가 살아남아 날개짓을 할 수 있기까지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의미를 부여해야 하지 않았을까. 극적인 이야기가 전개되어 감동을 주는 자연그림책이었기에 더 아쉬움이 남았다. 막내의 입장에서 혹은 부부의 입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리기 위해 치열했던 그 무엇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공선옥 글/ 이형진 그림/ 랜덤하우스코리아 출판

 

상수리나무집 사람들, 이 책의 갈피에는 테레사의 글 한 구절이 적혀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자신들이 존중받는 것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상대방이 품어야 할 호의에 대해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으리라. 당연하게도 여기서 가난은 꼭 물질적인 가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수리나무집 사람들'은 공선옥 소설이 가진 한과 슬픔이 어린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다. 이 작품은 따뜻하다. 상수리 나무집에는 하나같이 어렵고 가난한 이들, 돈도 없지만 마음도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이 모여든다.
갈 곳 없던 옥주 할머니를 보고 점쟁이 할머니 용화는 '백날 천날 걸어 봐야 갈 곳이 없구나'하며 상수리나무집에 받아준다.
그래서 눈먼 길수와 아들 별이도 받아주고 영이와 그의 딸 송이도 함께 지내게 된다. 일분군으로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점쟁이가 된 용화 할머니, 정신대 위안부의 아픔은 지닌 옥주 할머니, 피난지에 부모을 잃고 눈이 먼 길수 아저씨와 그의 슬픈 아들 별이, 그리고 미군부대 여자였던 영희와 그녀의 까만 딸,  송이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다. 
이들이 마음을 열고 친해지는 것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말문을 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상처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감싸 안고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가 마치 봄아지랑이를 느끼듯 따뜻함과 아련한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어머니들이 읽으면 좋을 동화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함께 남았다.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카렌 쿠시맨 지음 / 배미자 옮김 / 다른 펴냄 




'은은한 향기 '

처음 필리파 피어스의 작품을 보았을 때 크게 벌이지 않고 일관되게 절제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낯설기도 하고 조금은 충격이기도 했다. <너는 쓸모가 없어>, 이 책도 그랬다. 다 읽고 나서 산파가 쓰는 약초의 은은한 향기 나는 작품 하나를 읽은 기분이 들었다.  거리의 아이로 쇠똥구리로 불리던 아이는 산파인 제인의 조수가 되면서 앨리스라는 자신의 이름도 갖게 된다. 

아이를 낳는 것, 즉 생명의 탄생과 이를 도와주는 앨리스는 산파의 일에 흥미와 자긍을 느끼지만 산파는 쇠똥구리를 있는 데로 구박한다.  자신이 훌륭한 산파가 될 수 없다고 좌절하여 제인의 집을 뛰쳐나간 앨리스는  그러나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산파가 되기 위해 다시 제인의 집으로 돌아온다.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 영국, 암흑기로 불릴 만큼 답답하던 당시에 아이를 낳는 일은 얼마나 힘들고 두려운 일이었을까. 그런 산모에게 산파는 약초와 시럽과 주문으로 위로하고 아이를 낳을 힘을 북돋아준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에게 생명의 탄생,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가슴 벅찬 기쁨이기도 하지만 끔찍한 고통과 두려움을 연상케 한다. 

청소년들이 아이를 낳은 일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까가 조금은 의문이지만 그러나 앨리스가 산파가 되어가는 과정, 자신을 쓸모가 있는 자긍의 존재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담담하면서도 그렇기에 차근차근 읽는 이를 압도하는 설득력을 지닌다.  살아가면서 '너는 쓸모가 없어'라는 마음속의 질문에 답하는 일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다.

그 두려움에 산파 제인은 이렇게 답한다. " (...) 시도하고 위기에 처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수습생이 필요한거죠.산파가 포기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기를 그만두진 않아요." (*)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최나미 글/ 정문주 그림/ 사계절출판사

 

주인공 아이가 걱정스러워하는 엄마는 사는 건 죽는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세상의 심난함을 견뎌내는 주술적 역할을 하는 그 말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건 같은 이집 가족들의 현재적 위치를 보여줍니다. 
상우네가 벼랑 끝처럼 위태롭게 사는 이유는 아빠가 집을 나간 후 소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빠의 부재는 원인도 끝도 보이지 않는데 아빠가 왜 나갔는지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는이 작품에서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듯 합니다.
문제는 아빠의 부재가 결손가정이라 불리는 이집 사람들에게 드리운 그늘입니다. 엄마는 일이 생기면 대책 없이 눈물만 흘리고, 누나는 소위 결손가정의 문제아로 엄마를 학교에 오게까지 합니다. 그렇게 사는 엄마와 누나가 상우는 답답할 뿐 이지요.
얼핏 보기엔 바다로 간 것 같은 아빠와 죽어가는 감나무에 약도 치지 않으면서 살아내기를 바라는 엄마는 같은 부류의 사람일 것 같은데요,
그래서 같이 살기가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지요. 4대 독자라는 이유만으로 상우만을 챙기고 싶은 친가에 가는 건 아빠가 그렇게 된 책임을 뒤집어쓴 엄마와 엄마를 옹호하는 누나에 대한 배신일 수 있지만 그러나 자신의 현재 처지를 벗어나고 싶은 상우의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합니다.
상우의 나이는 열 세살입니다. 수학 문제 푸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 정도로 아이들에게 눌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당찬 아이지만 아빠의 부재를 감당하기는 벅찬 나이입니다. 어쩌면 열 세살은 그런 나이인지도 모르겠어요.
기우뚱거리며 세상을 느끼고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선 나이요.
학교에서 아빠의 부재를 감추던 상우는 상을 받으며 결국 아빠가 없는 아이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아니 사실은 친한 친구들은 알고 있었지요. 상우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은 긴 갈등으로 숨이 막히게 했던 어두움과 갈등을 비로소 위로해줍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상우는 자신에게 이야기합니다. 오해했던 친구에게 사과도 하고 그리고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도 해야겠다,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숙제를.
삶의 문제들이 버겁지만 내일을 살아야할 상우는내일을 숨쉬기 위해 단지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마음 닿는 것을 하면서 살아내자고 자신을 위로합니다.
감상적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감상적이지 않은 문체로 감동이 없는 요즘 아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장편, 작가 특유의 구성과 문체로 보통 아이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바람 아닌 바람을 정직하게 고통스럽게 풀어놓은 걱정쟁이 열 세 살입니다.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한성옥 그림. 글/ 문학동네 출판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그냥 가족 나들이 이야기네~  말풍선을 넣어서 특이 하네~'  이정도로 그냥 그런 책이었어요.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니 재미 있네요~ 
표지에 '우'의 이응에 금지표시를 해 두었고, 아래에선 정말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 보여요~
그런데, 다음 속지에 "뻥~!"이라고 쓰여 있어요. 이 "뻥"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겉은 행복해 보이지만 속은 아닌?, 우리는 행복하지만 다른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그런 의미일까요?
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족들은 자신들이 행복해 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불편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아요. 공공질서도 이들에겐 지켜지지 않는 군요.
그리고 마지막 장에 가서 엄마는 '행복한 하루'의 일기를 홈페이지에 남깁니다. 
과연, 이것이 행복일까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싸이월드"라는 곳에 아이들 사진을 잔뜩 올리면서 행복해 하던 기억이 납니다.
‘이 아이가 내게 정말 행복을 가져다준 답니다’  그러면서 자랑하고 싶었던 거지요.
사실 아이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힘들었던 기억도 많아요.
하지만, 올라가는 사진은 늘 행복한 사진만 선택받지요.
요즘에는 ‘카카오스토리'에도 행복한 사진들만 올라와요.
가족과 여행간 것,  아이들과 체험한 것  등등....
 
이 책을 보면, 우리는 정말 행복한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행복한 척 하면서 사는 건 아닐까? 
불행한 혹은 행복하지 않은 다른 감정들도 모두 표현하고 살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난, 아이들에게 불행한 감정을 숨기라고  하지요.
힘들지만,  노력해보아야겠어요.  우는 것도 나의 감정이고 웃는 것도 나의 감정이라고....  
그리고 속지의 "뻥~!"소리는 어디에서 나는 소리일까요?   맞춰 보세요~  우리 작은 아들이 발견해서 칭찬해줬어요.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김정희 글/ 강전희 그림/ 사계절출판사

언제부턴가 자다깨서 읽다 졸리면 다시 자는 게 내 책 읽는 습관이 돼버렸다. 아마도 큰 아이를 낳고 아이 울음소리에 밤을 뒤척이며 토끼 잠 자듯 한 것이 몸에 익어버렸나 보다. 그렇지만 하필 한밤중에 눈을 떠서 <노근리,그 해 여름>을 손에 잡다니. 아마도 작가의 또 다른 책들, <국화> <야시골 미륵이>가 주는 은은함(?)이 엄청난 비극을 이야기한다는 이 책을 한밤중에 혼자 깨어 읽게 했으리라.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씩 떨고 있었고 결국 그 밤은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끔찍한 학살극이었기에, 게다가 철저히 숨겨졌던 역사이기에 더욱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는 작가의 문제의식에는 동조한다. 피해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모으고, 취재에 발품 팔았을 작가의 노력과 열정에도 고개가 숙여진다. 하지만 조금만 더 편안하게 읽혀졌으면 좋았겠다는 바람을 접을 수는 없었다.  할머니나 어른들 입을 통해 툭툭 던져지는 말들-특히 전쟁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도 거슬렸고, 적나라한 그래서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상황묘사들 때문에도 읽어내기 힘들었다. 이런 소재를 다루더라도, 문장은 편하게 읽히면서도 독자 가슴을 온통 휘어잡아 먹먹하게 하고 가슴 아프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실의 기록과 문학적 표현의 차이에 대한 고민을 새삼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충북 영동군 노근리마을 옆 철도가 지나가는 커다란 쌍굴로 미군은 피난민을 몰아넣고 무차별로 학살한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어떤 이유로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여름의 굴 안에서 쏟아지는 미군의 총알에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나흘은 지옥보다 더 끔찍했다. 한사코 은실을 보듬던 엄마는 총탄을 등에 맞고 숨을 거둔다. 참혹해지는 엄마의 시신과 같이 보내며 핏물과 구더기로 연명한 은실, 충격으로 말을 잃는다. 인민군이 내려온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죽기보다 가기 싫었지만 노근리로 되돌아가 엄마의 시신을 찾아 묻고 나뭇가지로 표시를 해둔다. 늘 업어키웠던 동생 홍이를 잃어버린 언니 금실은 미쳐서 돌아오고 그 언니가 쌍굴 옆에서 목숨을 버린 날, 자신 옆에서 죽은 엄마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엄마를 그리워하고 엄마가 돌아올 것을 간절히 바라던 은실은 오열하며 말문을 터트린다. 충격에 미쳐버린 금실 언니는 결국 죽고 애써 묻은 엄마의 시신 역시 끝내 찾지 못하고가슴아파하던 담임선생도 잡혀가고 아빠가 부역을 한 것에 눈치가 보여 결국 학교도 그만두는데 은실의 아픈 가슴 속에 새겨지는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또렷한 다짐만으로 과연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을 달래줄 수 있을까.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고 새엄마가 들어오고, 은실이 새엄마의 딸인 단비를 받아들이지만은실의 삶이 너무나 아프고 아프다 무차별적인 죽음 앞에서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나도,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도 살을 째는 아픔을, 말을 잃는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고통으로 견딜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서정오 글/ 한태희 그림/ 봄봄 출판

그림책에 대한 사랑(?)을 그만두지 못하고 읽을 책을 쌓아두고서도 항상 그림책 방에서 앉아 그림책을 뒤적인다.
그렇게 사랑한다면 자기들에게도 그림책 몇 권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림책 방에 주저앉아 있다가 <감은장아기>를 발견하고는 놀랐다. 검은색만으로 인물을 표현한 그림에도(판화가 아니다!)놀랐지만 감은장아기의 내용은 기존의 옛이야기의 관념을 완전 뒤집어놓는 것이었다. 일단 추천 목록에 놀려 놓고서 뒷조사를 해보니 더욱 재미가 있다. 
 다르게는 ‘가믄장아기’라고도 하는 이 이야기는 사실 제주도의 오래된 무가의 내용이다. 제주는 땅과 바다가 갖고 있는 특징으로 사람들이 간절한 바람을 갖게 되는데 그런 이유로 큰 굿이 많다.  가믄장아기 이야기는 3개의 본풀이(신의 근본이나 내력을 설명함)중 삼공의 내력을 설명하는 신화이다. 집을 나가는 딸, 나쁜 두 언니, 눈이 먼 부모 찾기와 같은 내용은 정말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이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서동요나 콩쥐 팥쥐 그리고 심청전을 부분적으로 빌려다 쓴 것 같은 그런 이야기이다.
 거지부부는 (원래 이야기에는 강이영서이서불과 홍은소천궁에궁전궁납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남녀) 은장아기와 놋장아기를 동네사람들 덕에 잘 키우고는 막내딸은 검은 나무그릇에 죽을 담아 키웠다. 그래서 이름은 감은장아기.
 감은장아기는 부모가 너는 누구 덕에 사느냐고 하자 부모 덕이라는 두 언니와는 달리 내 덕에 먹고 산다고 말해 부모의 분노를 사고 쫓겨난다. 실제 이야기를 찾아보니 이 부분이 조금 더 사실적이다. 감은장 아기의 정확한 대답은 "나는 하늘님, 지하님의 덕으로도 살지만 배 아래 선 그믓 덕에 산다"고 한 것이다. 배 아래 그믓은 여성을 상징한다. 어떤 이는 자궁으로도 해석하고 어떤 이는 여성이라는 생식적 부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 대답을 하다니... 도대체 이 이야기는 끝을 어떻게 맺으려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리데기를 읽을 때에도 심청전을 읽을 때에도 이건 여성이 원하는 삶도 여성이 스스로 선택한 삶도 아닌 느낌에 불편했을 뿐 아니라 당시 지배층 남성들의 입김과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이 이야기는 상징을 통해 여성의 독립적인 자리매김을 확실히 보여줄 뿐 아니라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움켜쥐고 만들어가기까지 하는 여인의 강건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감은장아기는 스스로 집을 나가고 스스로 남편감을 찾고 부모의 무지를 깨우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운명을 개척하는 이에게는 금전적인 운도 따르는 법이라는 이야기가 첨가되면서 감은장아기의 인생에서 어린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는 기쁨을 찾게 되었다. 그것이 꼭 여성이라는 특별한 이름이 아니더라도 요즘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에겐 특별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외모를 따지고 학벌을 지나치게 따져서 아이들이 목숨까지 버리는 이런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아이들이 감은장아기의 운명을 당당히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기가 운명을 바꾸어버리기까지 하는 모습을 본다면 조금은 위로가 되고 용기를 낼 수 있는 근간이 생기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는 아이들과 함께 내가 갖고 있는 운명과 내가 만들어 갈 운명을 구별지어 생각해보고 싶다. 결국 운명은 내 손 안에 있는 어떤 것인 것이다. 운명의 신인 감은장아기는 훌륭한 운명을 우리에게 부여하는 신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정직한 눈으로 보게 하고 자기가 만드는 운명에 한 걸음 디딜 수 있게 잠시 손을 잡아주는 운명도우미(내가 만든 신조어?)인 것이다.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조 현 글/ 휴 출판

 

<그리스 인생학교>를 읽으면서 잠시 그리스 여행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에 대해서라면 영화 <맘마미아>의 배경 정도로 알고 있거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상상해 본 조르바의 춤사위를 떠올릴 수 있다. 파란 지중해 바다를 배경으로 흰 건물들이 촘촘히 있던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라 낭만적이긴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그리스가 우리 신문에 장식한 불행한 경제 소식들은 낭만의 이름을 지우면서 ‘문제적 나라’로 새로운 이미지를 준 것이 사실이다.
작가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그리스의 독자적인 문제라고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로인해 그리스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다.
감성적이고 영혼을 울리는 듯한 책의 내용이지만 내 경우는 모르는 것을 많이 알게 된 점이 다행스럽다. 사실 난 ‘그리스 로마신화’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리스 뒤에 로마가 붙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모르는 것이 잘못은 아니나 내가 늘 만나는 친구들이 순정만화 풍의 그리스 로마신화에 열광하는지 조금 더 관심을 갖는 것이 도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자극적이고 저속한 번역과 그림은 문제가 있으나 여러 신들의 이야기가 다름 아닌 인간들의 세세한 모습들임을 알고 나니 아이들의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했겠구나 싶다.
신화는 ‘그 때를 살았던 이들의 영혼 그릇이다’라는 결론을 갖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무자비함과 거침없음, 사랑과 애증과 무모함 그리고 어리석음은 그리스인들의 인식과 영혼을 보여준다.
신화와 역사가 같이 이야기되면서 조금 헷갈리는 면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참 그리스답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히포크라테스의 조상은 의신인 아스클레오피오스로 아폴론의 아들이라고 한다. 앞부분은 역사이고 실존인물이고 뒷부분은 신화다. 모든 것이 신화에 대한 열정으로 나온 것이라 상상해 본다. 우리에게는 역사와 신화를 함께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가 ? 동의보감의 허준이 삼신할매나 바리데기신의 후손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그리스에서는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기독교의 사상은 그리스 신화의 많은 부분을 저속하고 자극적인 것으로 업신여겨 온 세월을 생각하면 지금은 그리스인들에게 과연 신화의 얼만큼이 삶 속에 남아 있을지.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피타고라스 이야기다. 수학을 정말 못했고 좋아하지 못해서 수학자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뒷골이 띵 했는데 읽고나니 참 나는 아는 것이 없었구나 한심했다. 피타고라스는 철학자였고 거의 종교의 교주였다는 것, 최초로 철학자라는 말을 썼고, 우주와 개인을 연결하는 코스모스 라는 말을 썼고 평등을 추구했다는 것, 콩의 섭취를 죄악시하고 공동체를 이끌었다는 것... 이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지식이야 그야말로 네이버에게 물어보면 다 나오는 것인데 피타고라스가 살았던 사모스섬에 간 지은이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마음을 울렸는지. 그것은 아마도 피타고라스가 자주 제자들에게 했다는 질문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나는 어디에서 길을 벗어났는가, 나는 무엇을 한 것인가. 또 해야 할 일 가운데 무엇을 하지 못했는가.”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

 

 천롱 글. 그림/ 안명자 옮김 / 청년사 펴냄

 

이 그림책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긴 머리를 가지고 있고 이름조차도 긴머리입니다. 긴머리는 산도깨비의 아들인 사슴을 구해주고 물이 흐르는 샘을 알게 됩니다. 사슴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이 장소를 알려줘서는 안된다고 긴머리가 사는 마을은 산꼭대기에 있으니 항시 물이 부족한데다가 마을에 가뭄까지 들었으니 물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 긴머리는 속이 타서 머리카락이 그만 하얗게 바래고 맙니다. 결국 긴 머리는 물이 흐르는 샘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산도깨비에게 잡혀가지요.산도깨비의 벌은 끔찍합니다. 흐르는 물속에 눕혀 긴 머리카락이 영원히 물살에 씻기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긴 머리가 어찌될지 걱정이 됩니다. 긴 머리는 사슴의 도움으로 자기를 닮은 돌인형에 긴 머리카락을 붙여 시냇물 속에 담가 둡니다. 이 일을 하는 긴 머리의 머리는 빡빡 깎여 있어요.그리고 모든 일이 잘 됩니다. 산도깨비는 시냇물에 누워있는 돌인형을 긴머리로 알지요.


물이 넉넉해진 마을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긴머리의 머리카락도 다시 자랐고요.산도깨비가 긴머리의 머리카락이 영원히 물살에 씻기도록 하는 벌을 주겠다는 말이 정말 무서운데요.
긴 머리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한 상징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만큼은 여자의 긴 머리가 여자에게는 생명과 같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그림이 아주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유화풍의 독특한 그림과 색감도 색다르구요.이야기와 이야기가 주는 느낌이 잘 어울리는 그림책입니다.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가브리엘 뱅상 글. 그림/ 김미선 옮김/ 시공주니어 출판

책 속지에는 어디론가 분주히 다녀온 듯 펼쳐진 우산 두 개와 모자, 장화가 보입니다. 비오는 날 소풍이라?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지요. 소풍을 나설 준비에 들떠있는 두 사람은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준비를 합니다.

누구나 그렇듯 들뜬 마음에 싸갈건 왜 그리도 많은지... 이 두 사람의 들뜬 마음이 커다란 가방에 차고 넘치네요.  설레이는 마음으로 아침을 기다리는 셀레스틴느와 아저씨. 이럴수가! 잔뜩 싸놓은 짐을 두고 비가 오다니!

좌절한 셀레스틴느는 말없는 시위를 시작합니다. 소풍을 못가서 뿔이 난 셀레스틴느에게 결국에는 아저씨가 지고 말지요, 비 안 오는 셈 치고 소풍을 가기로 한거예요.

빗줄기가 안보일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단단히 옷을 챙겨 입고 모자도 챙기고 우산을 펼친 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옵니다. 대체 이런 날씨에 어딜 가나 싶어서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로 달려 나오는 지인에게 결국 한마디 듣습니다. ‘제 정신인가?, 이런 날씨에 아이를 데리고 나서다니!!’

 하지만 우리의 셀레스틴느를 보라지요, 그런 아저씨의 질책어린 손가락질에도 마냥 웃지요. ‘이런 날 소풍가는 우리같이 멋진 사람 봤어요?’라고 반문하듯 비오는 날 소풍이라는 특별함에  푹 빠져버린거지요.

 아저씨는 지인에게 말합니다. ‘어이, 잘 가게 친구. 비 좀 맞는다고 어떻게 되겠나?’.  다른 사람 시선 따위는 두렵지 않고 모든 것을 초월해버린 그 둘은 짐도 내려놓은 채 길을 따라 뛰어갑니다.  보통 비가 오면 “비가 오니까”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취소하는게 당연한 어른세계에서 이 곰아저씨는 어찌나 융통성 없이 다정다감한지... 남들 시선에 구애 받지 않고 아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곰아저씨 ‘에르네스트’가 멋져 보입니다.

 지금은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에 마냥 비가 기다려집니다.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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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무어 글/ 낸시 카펜더 그림/ 마음물꼬 옮김/ 국민서관 출판

 

가슴을 쭈욱 내민 엄마오리가 아기오리 다섯 마리를 이끌고 당당하게 걸어갑니다.
도대체 오리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이 책은 뉴욕 롱아일랜드의 등대마을인 몬탁이란 지역에서 오리가족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마을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오리가족을 구하고 다시는 배수구에 빠지지 않도록 조치한 사건을 그린 책이랍니다.


한가로워 보이는 푸른 공원 안, 그 연못에는 오리가족이 살고 있지요. 엄마오리와 아기오리 다섯 마리. 생김새만큼이나 이름도 앙증맞기만 합니다.

 

엄마오리는 다섯 마리 아기오리를 데리고 공원을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이동을 합니다.
"엄마를 잘 따라 오렴" 올망졸망 아기오리들이 엄마 뒤를 쫓아갑니다. 가는 중간중간에 맛있는 먹이도 냠냠~.
저런, 엄마를 따라가던 아기 오리들이 하수구 구멍 사이로  쏘~옥 빠지고 말았네요.


그림책 안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한 장면, 바로 하수구 안을 들여다보던 마을 사람들 얼굴이지요. 진정한 애정과 관심이 없다면 하수구 속을 그렇게 들여다 볼 수 있었을까요?
작은 생명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랑을 베푸는 마을사람들의 자연스런 태도에 그저 감탄할 뿐이지요. 몸에 익숙해진 배려, 관심,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장면이기도 하지요.
피핀, 비핀, 티핀, 디핀, 그리고 막내 오리 조, 아기오리 다섯 마리는 애타는 엄마오리 품으로 , 공원으로 무사히 돌아갑니다.


읽는 내내 머리속에 그림 하나하나가 영화처럼 지나가면서,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을 사람들의 성숙한 품성에 놀라고 마음 깊숙이까지 따뜻한 온정이 느껴지는 그림책입니다.
오리가족이 오래오래 마을사람들과 살아갈 모습이 그려져서 살포시 그림책을 가슴에 안아봅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 이야기 48.




글/ 김해원,임태희,임어진,김혜연  

출판/바람의아이들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가족을 테마로 한 장편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니다. 네 명의 작가가 쓴 네 가지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편소설과 같은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네 명의 작가가 네 가지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모두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의 이야기가 한결같이 나는 어떤 엄마인가, 아들인가 돌아보게 하고 스스로를 향해 나에게 가족은 무엇인지 묻게 하기 때문이다.

딸을 연예인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엄마를 가진 공예린, 엄마는 가족이 울타리고 보호막이라고 선뜻 말하지만 예린은 가로막이라고 생각한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나이 많은 독신녀 안지나, 가족이 야만이고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엄마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디가 아픈지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재수 없는 쌍둥이 형이 있는 재형, 엄마의 잔소리만 없었으면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재형에게 친구는 ‘가족은 상처만 주는 관계’라 한다. 출판사를 운영한 40대 어른 남자 박동화, 가족이 둥지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받아주는 어머니의 손과 같이 따스하길 바란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면 아빠를 부르며 달려와 안기던 딸은 이제는 커서 친구한테만 관심이 있고, 아내는 여러모로 분주해져서 그보다 귀가가 늦다.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핸드폰 광고를 찍으려고 모인 네 명의 주인공. 가족이 가로막이라고 생각하는 소녀 예린, 엄마의 잔소리가 없었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 상상하는 재형,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고등학교 친구보다도 엄마를 모르는 안지나, 퇴근해서 빈 집 지키기 싫은 40대 가장 박동화, 그들은 모두 지금 가족 안에서 힘들다. 사랑과 관심을 너무 받아서 힘들고 또 못 받아서 힘들다. 핸드폰 판매원이 가족입니까 하고 물을 정도로 가족처럼 보이는 그들. 그러나 철저히 남인 그들은 각기 다른 갈등을 갖고 있지만 사랑이 넘치는 훈훈한 가족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다. 그리고 가상의 삶인 연기를 하면서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며 그들과의 화해의 길을 찾는다. 광고를 다 찍을 때 쯤  아빠 역을 맡은 박동화는 생각한다. 집도 가족도 변해가고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다고... 아마도 이 책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청소년을 위해 기획된 책답게 청소년들의 모습을 참 잘 그렸다. 핸드폰 사달라고 하도 졸라서 사줬더니 수업시간에 갖고 놀다가 선생님께 빼앗기고, 게다가 요금폭탄까지 안겨주는 재형이나, 친구가 혼자 있어 무섭다고 11시 까지 친구와 있어주는 민주나 우리 아이들과 너무나 닮아있다. 청소년의 생각과 행동을 이렇게 잘 그리다니 어른이 썼지만 청소년 책 맞다. 하지만 청소년보다 부모들에게 먼저 권하고 싶다. 집도 가족도 변해가고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걸 어른이 먼저 깨달아야 가족이 잘 사는 일이 수월해 질 테니 말이다.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우리의 가치와 돈

여럿이 함께 운영하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은 바로 그 이유로 세상의 칭찬을 많이 듣는다. 한 가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운영위를 거쳐야 하고 결정에는 모두가 책임을 진다. 함께 만든 도서관이기에 소박한 일에도 가치를 두고 열심히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의 칭찬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참 이 일이 기분 좋은 일임을 알면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한 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돈’ 문제이다.

아름다운 탄생과 세간의 칭송이 우리의 동력이 되는 건 사실이나 돈 문제는 늘 만만치 않게 발목을 붙잡기도 하고 큰 성과없는 토론거리를 낳기도 했다. 여럿이라는 개인이(말은 이상하지만 여기에서는 관과 대별되는 뜻으로) 나라의 도움도, 제 3자의 도움도 받지 않고 도서관을 꾸리기란 정말 어렵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한동안 모두의 생각은 아니지만, 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기업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의견도 있었다. 사실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다. ‘기업이 좋은 일에 돈을 좀 쓰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오히려 우리가 자기들을 돕는 셈 아닌가’ 하며 ‘왜 우리는 도움을 받으면 안 되는가? 도대체 왜?’ 이러고는 머리를 쥐어뜯을 때 하늘에서 한 권의 책이 떨어졌다.

마이클 센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해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대답할 것이 있을 것이다. 우정이나 사랑, 우리 같은 작은 도서관의 가치들... 그런데 미국의 경우이긴 하지만 이런 것들이 점차 시장의 지배논리에 침식당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제는 주에서 공원을 후원해 줄 기업을 찾고 기업은 후원 대신 공원 안에서 해당 기업의 음료수만 팔 수 있도록 요구한다. 어떤 소설가는 특정 기업의 물건을 소설 속에서 12번 언급하기로 하고 돈을 받았다. 우리가 먹는 달콤한 사과에도, 계란껍질에도 광고가 붙어있다. 심지어 돈이 급했던 싱글맘은 자신의 이마에 도박사이트를 영구 문신하고 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합당한 대가를 받으면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기업에도 좋은 일이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센델은 이것에 대해 시장에 의해 성행하는 이런 거래들이 과연 자발적인 거래인지 묻고 있다. 돈의 억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런 행위는 자발적이 아니라 매우 억압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마에 새긴 문신은 개인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학교에까지 침투한 상업화는 결국 욕망을 제어하도록 하는 학교 교육의 원래 목표를 퇴색시킨다. 욕망에 충실한 인간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안일했던 내 머리를 후려치는 책이었다. ‘시장이 제자리로 가게 하려면 당신을 둘러싼 모든 일에 대해 평가하고 생각하라. 그러지 않으면 시장이라는 괴물이 그것을 결정할 것이다.’ 작은도서관은 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들게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결정을 어떤 방법으로 내려야 하는가 이런 생각은 우리의 몫인 것이다. 이런 생각과 비판에 게을러질 때 상업의 논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도서관 곳곳 돈 들어갈 데는 많아진다. 돈 들어갈 데를 두고 걱정하는 것보다 서로의 처진 어깨를 다독이고 우리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우리는 상위권 모범생이기 때문이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에는 결코 팔 수 없는 진한 가치가 분명 있다.

돈으로 둘러싸인 세상이 짜증나고 싫증나지만 돈 때문에 귀한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마이클 샌델 저/ 안기순 역/ 와이즈베리 출판

 

최나미 저/ 정문주 그림/ 사계절

제목이 '걱정쟁이 열세살'이에요. 작가 특유의 구성과 문체로 보통 아이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바람 아닌 바람을 정직하게 고통스럽게 풀어놓습니다. 주인공 아이가 걱정스러워하는 엄마는 ‘사는 건 죽는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세상의 심난스러움을 견뎌내는 주술적 역할을 하는 그 말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건 같은 이집 가족들의 현재적 위치를 보여줍니다. 상우네가 벼랑 끝처럼 위태롭게 사는 이유는 아빠가 집을 나간 후 소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빠의 부재는 원인도 끝도 보이지 않는데 아빠가 왜 나갔는지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는 이 작품에서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듯합니다.문제는 아빠의 부재가 결손가정이라 불리는 이집 사람들에게 드리운 그늘입니다.

엄마는 대책 없이 일이 생기면 눈물만 흘리고 누나는 소위 결손가정의 문제아로 엄마를 학교에 오게까지 합니다.그렇게 사는 엄마와 누나가 상우는 답답할 뿐이구요.얼핏 보기엔 바다로 간 것 같은 아빠와 죽어가는 감나무에 약도 치지 않으면서 살아내기를 바라는 엄마는 같은 부류의 사람일 것 같은데요. 그래서 같이 살기가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지요.4대 독자라는 이유만으로 상우만을 챙기고 싶어하는 친가에 가는 건 아빠가 그렇게 된 책임을 뒤집어쓴 엄마와 엄마를 옹호하는 누나에 대한 배신일 수 있지만그러나 자신의 현재 처지를 벗어나고 싶은 상우의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합니다.상우의 나이는 열세살입니다.스트레스를 수학 문제 푸는 걸로 풀 정도로 아이들에게 눌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당찬 아이지만 그러나 아빠의 부재를 감당하기는 벅찬 나이입니다.어쩌면 열세 살은 그런 나이인지도 모르겠어요.기우뚱거리며 세상을 느끼고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선 나이요.학교에서 아빠의 부재를 감추던 상우는 상을 받으며 결국 아빠가 없는 아이임이 드러나게 됩니다.아니 사실은 친한 친구들은 알고 있었지요.

상우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소설의 마지막 장은 긴 갈등으로 숨이 막히게 했던 어두움과 갈등을 비로소 위로해줍니다.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상우는 자신에게 이야기합니다.오해했던 친구에게도 사과하고 그리고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도 해야겠다고.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숙제를.삶의 문제들이 버겁지만 내일을 살아야할 상우는 내일을 숨쉬기 위해 단지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마음 닿는 것을 하면서 살아내자고 자신을 위로합니다.슬픈 이야기와 마음을 감상적이지 않게 쓰는 것,슬픈 내면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 보이는 것이 이 작가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감상적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감상적이지 않은 문체로감동이 없는 요즘 아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장편,<걱정쟁이 열세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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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전달자'The giver'

-로이스 로리 / 비룡소-

 

우선 표지가 어둡습니다. 검은 바탕에 할아버지의 얼굴-근심이 서린 듯 약간 찡그린 얼굴로 앞을 내다보고 있는-어렵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배경은 미래의 어느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개인의 선택에 따르는 어떠한 종류의 잘못도 있을 수 없고,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분란의 소지를 모두 제거해 버린 완전한 사회입니다. 아이들이 열두 살이 되면 마을 원로들은 그들이 평생 해야 할 일을 정해줍니다. 배우자도 신청을 하면 심사해서 적당한 사람을 골라 줍니다. 아이들도 신청하면 직업이 산모인 사람이 낳은 아이들 중에서 배급해 줍니다. 한 집에 2명씩. 엄마, 아빠, 자녀 2명이 이상적인 기초가족단위입니다. 태어나는 아이들은 한 해에 50명으로 철저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스피커로 마을 사람들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명령을 따르지 않고 중대한 잘못을 세 번 이상 저지르면 '임무해제'당하여 마을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임무 해제된 사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주인공 '조너스'가 열두 살에 받은 직위는 '기억보유자(Receiver)'입니다. 이전의 기억(인류 전체의 역사)을 기억하고 있다가 '늘 같음 상태'가 깨지는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그 기억들로부터 얻은 지혜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 직위를 수행하기 위해 조너스는 '기억전달자(Giver)'로부터 기억을 전달받는 훈련을 합니다.

조너스가 전달받은 기억들은 사랑, 고통, 즐거움, 공포, 굶주림 등 마을 사람들에게는 통제되어 전혀 느끼지 못하는 온갖 감정들입니다. 이러한 감정들을 느끼게 된 조너스는 어떻게 할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그 직위를 잘 수행할 수 있을까요?

인간적인 감정을 모두 통제당하는 대신 마을 사람들은 어떠한 모험이나 위험도 없는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보장받습니다.

친숙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세계-폭력도, 가난도, 편견도, 장애도, 불의도 없는 세계-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까요?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은 미래사회가 과연 유토피아인가 하는 것과 개인의 자유와 선택에 대한 통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미래사회를 다룬 소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조지오웰의 '1984'일 것입니다. 1984는 언어와 역사가 철저히 통제되고, 성 본능은 오직 당에 충성할 자녀를 생산하는 수단으로 억압되며, 획일화와 집단 히스테리가 난무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박탈된 전체주의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두 소설을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극단적인 통제를 통해 사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우리는 이런 극단적인 통제나 감시를 당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의 많은 영역에서-가정, 학교 등-알게 모르게 통제받고 통제하고 있지는 않은 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획일화된 성공 모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선택의 상황에서,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고 해도, 그 선택으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되더라도 그 고통까지도 감싸 안고 극복해나가는 것이 진짜 삶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과학기술발달이 가져온 혜택들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들인지도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 이야기

'책과 노니는 집'은 서학이 들어오고 천주교가 탄압을 받던 조선조 말 필사쟁이를 아버지로 둔 장이라는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장이는 아버지가 천주학 책을 필사한 것 때문에 천주학쟁이로 몰려서 매를 맞아 죽은 뒤 책방의 심부름꾼에서 전문 필사쟁이로 성장해 갑니다.

장이와 눈높이를 같이 해서 읽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를 같이 돌아보는 듯합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모습이나 생각이 실감나게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이지요.

그 당시의 책방의 모습이라든가, 필사쟁이나 서쾌라는 직업, 전기수의 활동 등이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최서쾌는 여간해서 책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전 가게를 늘려 언문 소설을 빌려주는 세책업까지 하게 되자 책방은 더욱 바빠졌다. 가뜩이나 좁은 장이 방에 책값으로 저당 잡힌 대접, 주발 등의 살림살이가 빼곡히 쌓였다. 은비녀와 팔찌 등 값비싼 장신구는 안채에 들여놓고, 책방에 걸린 장부에는 책을 빌려간 사람의 이름과 사는 곳을 꼼꼼히 적었다.

"대체 밥그릇, 솥단지를 맡겨 놓고 책을 빌리면 밥은 어디다 해 먹는디야?” 저녁마다 손님들이 맡기고 간 살림살이를 들어 나르며 만배는 남의 집 부엌살림을 걱정했다...

밥그릇을 맡기고 책을 빌려 읽다니...

책이 귀하던 그 시절의 사람들의 책읽기는 어떠했는지...한 장 한 장 필사를 해야만 했던 책을 대하는 태도는 지금처럼 책이 흔한 시대에 사는 우리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서유당'- 책과 노니는 집

작은 서재라도 있다면 문 앞에 써서 걸어놓고 싶습니다.

 

'책 씻는 날'은 조선 중기에 살았던 시인 김득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김득신의 어린시절 이름은 몽담인데, 어리석고 둔한 까닭에 열 살이 되어서야 겨우 공부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책의 첫 장에 있는 스물여섯 자 조차 떼지 못해서 아예 공부를 그만두라는 얘기까지 듣습니다. 그러나 김득신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중국 상나라 때의 충신이야기 '백이전'을 무려 1억 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하는데 당시 1억은 지금의 10만이라고 하니 11만 3천 번을 읽은 것입니다. 억 만 번 책을 읽는 노력으로 59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그의 시를 효종 임금은 당나라의 시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다며 극찬하였고 병풍으로 만들어 간직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의 주인공들은 어릴 때부터 뭔가 남다른 데가 있거나 천재적인 면이 있어서 읽으면서 본받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나하고는 너무 다른 시람이구나... 나는 절대 따라갈 수가 없어...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득신의 이야기는 나도 꾸준히 열심히 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몽담이를 믿어주었던 아버지의 태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재촉하기만 했던 것은 아닌 지 반성도 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 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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