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20일 발달장애인 주간보호센터인 볕바라기가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활동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이 날은 10년 전 도서관 활동가들이 발달장애아이들에게 책읽기 봉사를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1,3,5주 금요일에 발달장애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봉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신혜옥 볕바라기 대표는 “10년의 세월을 함께 해주신 진수정, 양기순 관장과 도서관 활동가를 비롯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의 지원으로 오늘까지 왔다. 감사하다.”고 칭찬했다. 더불어 “처음에는 책을 읽자고 하면 누워버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이건 대단한 변화”라고 말했다.


양기순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관장은 “처음에는 이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발달장애로 몸은 컸지만 2~3살의 지능을 갖고 있다.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옷을 벗는 등의 돌발상황을 벌일 때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1년 정도 지나니 아이들도 이해되고 상호간에 신뢰가 쌓인 것 같다. 이제는 목소리에 집중하고 책도 보고 눈을 맞추기도 하고 율동도 따라한다.”고 흐믓해 했다.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4명 정도가 돌아가면서 봉사를 했다. 각자가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내가 이 아이들을 변화시켜야 하겠다는 욕심에서 절망을 느끼기도 했지만 7~8년 지나다보니 친구들이 나에게 익숙한 표정을 짓고 눈도 마주치는 것을 보며 믿음을 주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마음이 놓인 것 같다.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도서관은 지금도 봉사를 지속하고 있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글,그림: 전미화 / 사계절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샛노란 표지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까만 머리의 한 아이가 밝게 웃으며 서 있다. 그 옆에 그려진 말풍선 안에는 뭔가 다짐이라도 하듯 힘차게 적힌 글씨, ‘씩씩해요’. 쉽고 편하게 보는 글줄 적은 그림책인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가 얼마 못 가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는다. 차마 책을 덮지 못한 채 가슴이 아려오는 걸 억지로 눌렀다.


 아빠차가 공중에서 크게 한 바퀴를 도는 무서운 사고가 일어난다. 아주 긴 시간을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와 아이가 단색의 바탕에 까만 펜으로 간결하게 그려졌다. 이후 달라지는 생활모습들... 엄마는 더 바빠졌고, 혼자 먹는 밥에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식탁, 아빠 없이 혼자 하는 목욕, 아빠 없이 타는 그네, 잠이 들면 아침까지 엄마를 볼 수가 없기에 곰돌이와 얘기하며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 어느 날은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꿈도 꾼다. 아름다운 풍선으로 가득한 꿈이지만 깨어보니 이불이 젖어있다. 엄마는 화내지 않고 말한다. “괜찮아.” 엄마와 함께 무지개 색깔의 산에 힘차게 오른 날, 엄마는 웃으며 말한다. “이제부터 우리 둘이 씩씩하게 사는 거야, 알았지?” 

이때부터 색이 없던 엄마와 아이의 옷에 색깔이 입혀진 게 보인다. 혼자 먹는 밥도 괜찮아졌고 설거지를 할 줄 알게 되고 엄마가 마신 커피 잔도 치운다. 아빠처럼 어른이 되면 높이 날 수 있을 거라며 혼자 그네도 탄다. 엄마는 예전에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운전을 시작하고 망치질도 하고... 사진 속 아빠가 나를 보며 웃고 있고 아이도 함께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씩씩해요.’ 마지막장에 그려진 아이의 환한 표정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그러다가 이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쭉 씩씩할 수 있을까. 아니, 씩씩해야만 하는데. 


 아이의 시선에서 담담하게 쓴 그림책이지만 나도 엄마인지라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감정이입이 되고야 만다. 3~4줄에 다 표현하지 못하고 글과 그림 사이에 담겨져 있는 엄마의 마음이 절로 읽혀져서 참 아팠다. 겪어보지 않으면 감히 예상치 못할 아픔과 상처이리라. 얼마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충격을 준 남편의 직장동료가 생각났다. 남겨진 아내와 4살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이 책을 내밀고 싶다.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세상,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크고 작은 아픔과 상처들을 늘 마주하는 우리들에게 오늘 나는 씩씩해지는 마법을 걸어보고 싶다. 우리 씩씩해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윤미희

또드락 딱딱~ 동화속 책잔치


지난 10월14일 시흥4동 산기슭공원에서는 '2017년 금천작은도서관과 함께하는 책문화잔치-동화속 책잔치'가 개최됐다. 매해 10월 둘째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이 행사는 금천구작은도서관 협의회와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이 주관으로 산돌어린이도서관, 지혜의숲어린이도서관, 청개구리어린이도서관 등 관애 작은도서관과 살구여성회, 금천문화행동이 함께 해 동화속 분장하기, 사랑나무액자 만들기, 헌책교환해주기 행사등을 진행했다. 


사진 박현주 / 글 이성호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생일잔치를  했어요


9월9일 시흥5동에 위치한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15번째 생일잔치가 열렸다. 이번 생일잔치에는 도서관을 전반적으로 리모델딩한 후에 마련되 좀더 산뜻하고 기쁜 마음으로 진행됐다.  

2017년 ‘작은도서관이 아름답다’ 기금 중 ‘작은도서관 특화사업 기금’에 선정돼 지원을 통해 진행된 리모델링으로 전체 외벽공사와 지하, 실내공간의 효율적으로 만들어갔다. 이 기금은 ‘도서문화재단 씨앗’이 조성해 ‘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에 위탁하였으며 기금운영 기구로 ‘작은도서관이아름답다 지원센터’를 두고 운영중이다. 

생일잔치치는 기존 도서관 내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닌 골목길 앞까지 차양을 치고 동네잔치와같이 진행됐다. 은행나무 도서관이 지난 8월부터 진행한 골목길 청소, 골목반상회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정선화 은행나무 어린이 도서관장은 “너무나 감사드리고 여기 와주신 한분한분에게 감사드린다. 어린이 친구들도 아빠 엄마와 함께 와줘서 더 고맙다.”고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사단법인 어린이와 작은도서관 박소희 이사장은 “많은 동네 주민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은 정말 드물고 눈물이 날 것 같다.  이 잔치에 와준 모든 어린이들과 뭔가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는  주민들이. 정말 부럽다. 앞으로 평생 이어갈 수 있고 어른이 되어도 기억에 남는 도서관이 되길 바란다.  오늘 온 어린이들이 커서 결혼하면 아이들과 함께 다시 이 도서관에 와주실 바란다.”고 축사를 전했다. 

차성수 금천구청장 역시 “우리 모두의 잔칫날인 것 같다. 무엇보다 15살되는 동안의 시련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이 공간은 즐거운 마음으로 이용한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사랑받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인사를 했다 .

도서문화재단 씨앗 김태윤 상임이사 역시 “작은도서관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처음봤지만 마음이 참 따듯해진다. 도서관의 새로운 출범과 15주년 축하한다. 15살이면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로 인격체가 형성되는 시기다. 관장님과 활동하시는 분들이 기획하고 생각했던 따뜻한 도서관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인사를 했다. 

생일 잔치에는 ‘방귀쟁이 며느리’의 인형극과 축하공연, 릴레이 조각보와 팔지공예등의 체험마당과 전시마당, 그리고 먹거리 마당이 진행돼 오가는 주민들의 동네 잔치가 됐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 단장해 같이 살자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기금마련 바자회 열어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이 ‘리모델링 기금마련 바자회를 지난 토요일 도서관 앞 골목에서 열었다. 어린이도서관 특화도서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현재 40년된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바자회에는 네일아트, 다육이 화분만들기 체험부터 각종 장남감과 의류, , 화장품, 반찬 류, 그리고 음료와 순대 등의 먹거리, 어린이 벼룩시장 등이 마련됐다.


정선화 관장은 “‘어린이와 작은도서관 연합회에 사업에 응모해 5년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고. 1단계로 리모델링을 하게 됐다. 평소에 지하를 활용하고 싶기도 하고 2층에 여러 명이 빛그림을 보거나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었는데 비용이 부족해서 바자회를 기획했다.”면서 취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이 찾아주셔 정말 감사하다. 도서관이 동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 소통하고 편하게 들릴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 편하게 와서 이용해 주길 바란다.”고 감사인사를 했다.




 


이성호기자

gcinnews@gmail.com

 

이 땅의 모든 오광명들아~ 힘내라!!




초등학교 4학년이 딸은 학교 도서실에서하루에 두 권씩 책을 빌려온다. 재미없는 책은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재미있게 읽은 책은 나에게 가져와 “엄마 이저 재미있어요.”라고 한다. 읽어보라는 것이다. 언젠가 한번 딸이 권한 책을 재미있게 읽은 뒤로는 딸이 읽어보라는 책은 꼭 읽어본다. 이번에 소개해준 책은 제목만 봐도 흥미로운 <잘한다 오광명>이다. 오광명이라는 이름도 왠지 웃기지만 뭘 얼마나 잘하길래 잘한다고 했을까?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도 소개되어 있는데 이름들이 한나같이 왜 이렇게 웃긴지... 시작부터아이들이 참 좋아할 만하다. 친구를 썩은 떡이라고 놀리다가 그 별명을 갖게된 ‘썩은 떡’, 수시로 똥을 누러 가는 ‘황반장 똥반장’, 황반장과 함께 오광명을 놀리는 ‘임진수’, 광명이 짝궁 ‘김준’, 주인공 ‘오광명’, 그리고 그 아이들의 담임교사 ‘털보 선생님’ 이들의 이야기가 아주 특이하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유치하지 않은 문체와 표현으로 그려졌다. 

초등학교 2학년이나 된 녀석이 선생에게 과자 달라는 둥 ‘선생님 사탕 한 개 만’이라고 애교를 떠는 모양새가 영 거북스러워는데 읽다보니 어느새 적응이 된다. 털보 선생님은 광명이가 사탕 한 개 만 달라며 찾아와도 전혀 나무라지 않는다. 어찌 보면 광명이만 주려고 애쓰는 것 같기도 하다. 공평하지 않은(?) 선생님의 모습이 짜증이 나게 할 때 쯤 광명이가 다른 아이와 싸우고 선생님께 혼난다. 광명이는 하루 이틀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날이면 날마다 싸우고 게다가 못생기게까지 했다. 한마디로 아이들이 꺼려하는 비호감이다. 그런데 그 아이를 멀리 하지 않는 아이가 단 한 명 있는데 짝궁 김준이다. 얼핏 보면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 싫어 할 것 같은 광명이에게도 나름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가끔은 광명이도 착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때 준이가 이런 광명이의 착한 마음 다 알아 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같은 반 친구들도 조금씩 바뀌어간다. 아니 사실은 다른 아이들도 원래 그렇게 착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아이들에게 어쩐지 아빠 같기도 한 털보선생님도 너무나 멋진 선생님이지만 광명이의 슬픔을 함께 느끼고 도움을 주려하는 반 아이들도 무척 귀엽고 멋지다. 그리고 광명이의 진짜 마음을 볼 줄 알았던 준이도 멋지고, 무엇보다 이 글을 쓰신 송언 선생님은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책 뒷부분에 지인이의 말을 읽으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광명이가 얼마나 학교 다니는게 힘들었으면 4년전 담임 선생님에게 전활르 다했을까 싶다. 그런 광명이에게 송언 선생님은 조금만 참으라고, 힘들어도 참으라고 한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선생님이랑 한번 만나자고한다.

얼마전 끝나 TV프로그램 K팝스타 마지막회에서 심사위원 박진영이 6년간 심사를 하며 느낀 소감을 이렇말로 대신했다.

“K팝스타 우승자 6팀 중에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정규교육을 똑바로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대부분 가정에서 교육을 받거나 자유로운 환경에서 꿈을 그리고 자기 세계를 펼쳤고 이 대회만큼은 노래 잘하는 친구들을 뽑지 않았어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을 뽑았어요.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이 한 명 한 명 특별한 아이들이 놀라운 창의력을 가지고 커갈 수 있게 교육제도를 잘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박진영 심사위원의 마음에 머금은 눈물 한 방울을 본 듯하다. 아마도 송언 선생님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송언 선생님은 오광명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 속에 동심의 하느님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오광명의 마음 속에서 깨끗한 동심을 발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아이 같은 마음씨만 이 땅에 희망을 꽃피운다고.

송언 선생님은 학교 다니기 힘들어 초등학교 2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13살 광명이에게 힘내라고, 잘한다고 진심으로 응원해주기 위해 이 책을 썼나보다. 아마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요즘의 모든 아이들에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아이들이 힘을 내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모든 어른들이 이 땅의 모든 오광명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해주면 좋겠다. 이 책이 2008년에 나왔으니 오광명은 지금쯤 스무 두어 살 쯤 됐겠지? 송언 선생님은 어른이 된 오광명을 만났을까? 궁금해진다. 이 책의 주인공 오광명을 나도 만나고 싶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조혜진

[책이야기] C.S 루이스의 <나니아 나라 이야기>


나니아. 마법이 유효하고 동물이 말을 하며 숲과 나무의 전령을 만날 수 있는 신비로움이 가득한 나라죠. 우리의 세계에서 그 곳으로 가는 방법은 전혀 예측할 수 없어요. 옷장을 통해 가기도 하고 액자 속 그림이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기차역에서 사라지기도 하구요, 학교 뒷문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뭐야, 마법? 판타지야? 애들 책이군!” 하며 시큰둥하게 여기실 분들도 있겠지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판타지 문학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허황되게 느껴지고 그래서 몰입도 잘 안 되는 문학. 사건의 연속과 재미에만 초점을 맞춰서 심심풀이 삼아 읽다 잊어버릴 가벼운 문학쯤으로 생각했으니까요. 혼자 읽기 시작했으면 두어 권 읽다 휙 던져버렸을 지도 몰라요. 


“전개도 뻔하고 선악의 대비도 단순해. 7권이 비슷할 것 같은데” 하면서요.

그러나 약속을 했지요. 7권 다 차례차례 읽기로요. 지난 1월과 2월은 ‘나니아 나라 이야기>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구와 약속했냐구요? 그 답에 앞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하고 싶습니다. 마법의 이야기에서 그렇듯 나니아에도 절대악 마녀가 등장하고 그 반대의 존재, 아니 더 위대한 사자 아슬란이 등장합니다. 또 우리세계에서 그곳으로 우연히 가게 되는 아이들이 있지요. 아이들은 많은 위기와 모험을 하게 되는데요, 그게 그렇게 신나거나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시련과 시험, 여러 번의 시행착오, 유혹에 대한 갈등,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지요. 


물론 다양한 성격의 주변 인물들도 제 몫을 톡톡히 합니다. 인물이라고 해서 사람에 국한되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기는 나니아, 마법의 땅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신중한 오소리, 충직한 난장이, 현명한 듯 어리숙한 부엉이, 감히 아무도 그의 등에 올라탈 엄두도 낼 수 없는 켄타우로스(허리 위쪽은 사람, 아래쪽은 말의 모습인 존재), 바지런한 비버부부, 그리고 누구보다 용맹스런 쥐, 사악한 원숭이 등등. 그러한 존재들은 이야기를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고 인간보다 더 뚜렷한 성격을 드러내어 생동감을 더해 줍니다.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읽으며 어린이 문학의 힘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어요. 


유연함의 힘이랄까, 포용력이랄까, 단순 명료함이 주는 당당함이랄까, 또 그 단순 명료함이 결코 얕은 깊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숙연함이랄까...그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화는 어린이와 성인 모두를 대상으로 둘 수 있고, 책에서 얻는 감동이나 즐거움도 아이는 아이 것을 가져가고 어른 역시 자신의 눈높이로 끌어 올리거나 깊이 내려가서 느낄 수 있지요. 성인 문학이 할 수 없는 그 어려운 것을 어린이 문학이 해 냅니다.


앞에서 언급한 ‘약속’은 작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모임에서 ‘한 두권 읽고 말게 아니라 7권 모두 도전해서 읽어보자’ 하며 의기투합 했거든요. 저는 시흥동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에서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을 하고 있어요.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그림책도 보고 동화도 함께 보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는 6여년에 걸쳐 7권으로 완성되었고 총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죠. 권수도 부담스러웠지만 완독의 어려움은 책에 대한 재미를 놓치지 않는 거였답니다.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중간에 포기했을 거에요. 그 시간이 있어서 완독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고 혼자 읽을 때 미처 알지 못했던 깊고 다양한 재미를 알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오는 4월이면 은행나무도서관에서 ‘동화 읽는 어른’ 19기를 모집합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좋아하시는 분, 혹은 그 세계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이 오셨으며 좋겠어요. 그래서 함께 읽는 즐거움을 많은 분들이 알아 가면 어떨까 합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박현진



최근 박건웅 작가의 <짐승의 시간>이라는 만화책을 읽었다. (故)김근태 의원(편의상 이하 ‘김근태 의원’이라 칭하기로 하자)이 민주화 운동 시절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사건으로 19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 동안 받은 고문을 그린 책이다. 책이라면 한 페이지를 채 읽기도 전에 잠들어버리는 내 남편이 다 읽을 때까지 화장실도 가지 않고 집중해서 읽은 책이다. 물론 글자만 빼곡한 책이 아니라 만화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림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만화가 나오기 전 <남영동1985>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볼 때 장면 하나하나가 마음을 아프게 찔러대던 기억이 있다. 


 <짐승의 시간>의 원형이랄까. 김근태 의원은 22일간 머물렀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있었던 일을 책으로 내게 되었다. 

 <남영동>이라는 책을 출간한 곳이 ‘도서출판 중원문화’(박정희 유신독재정권과 싸울 목적으로 1978년 설립됨)라는 곳인데 편집장(이을호 씨) 역시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았고 발행인(황세연) 또한 한쪽 눈을 실명할 정도로 5.18 당시 고문을 받았던 사람이다. 박종철 군이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한 1987년 이 책이 출간되었으니  또다시 험난한 길을 가야 한다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얼마나 비장하고 큰 결심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 책의 발행인은 독자에게 이런 한마디를 던진다.


 “독자 여러분들의 불 같은 정의가 오랫동안 남아있기를 부탁드린다.”

 이 책은 남영동에서의 일과 그 이후 구치소에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그것들에 담겨있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들로 채워져 있다. 내가 기억하는 김근태 의원은 약간 힘이 없어 보이고 목소리도 크지 않은 모습인데 그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만은 굳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2016년을 겪은 나에게 이 책은 더욱 더 진하게 다가온다. 지나간 수십 년의 세월동안 우리가 아는 사람들부터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간 수많은 민주화 열사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민주주의를 고작 몇 사람들이 뿌리째 흔들어 놓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많이 울었다. 아니 사실은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정의롭게 살다가 목숨을 잃은 그 분들의 고통과 수고로움, 그리고 그 가족들의 절규, 나는 백분의 일도 짐작할 수 없는 그 고통... 그분들의 맺힌 한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하지만 눈물이 나오는 그 순간 나는 그만큼의 노력도 없이 그저 받아먹고 있는 이 편한 민주주의의 세상에 살며 너무 값싼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나 하는 미안함에... 눈물 흘리는 것조차 민망스러워 차마 삼키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참 마음 아프게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남영동을 찾았다. 17년 전부터 다니고 있는 우리 교회가 있는 그 동네. 남영동.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올 때면 플랫폼에서 항상 바라보던 그 회색 건물. 남영동 대공분실에... 마흔이 된 이제야 가게 됐다. 이제야 찾아가게 되어 부끄럽다. 그리고 많이 미안해진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찾아간 그 곳. 이제 막 11살 된 딸, 8살 된 아들과 가려니 (솔직히) 조금 무서운 마음도 든다. 그럴 리 없겠지만, 어디서 왔는지, 누군지, 왜 왔는지 물을 것만 같고, 어디 가서 조사받을 것만 같다. 그래서 아는 이들과 함께 갔다. 내가 평소 겁이 없는 인간에 속하는데도 그제야 안심하고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뀐 남영동 대공분실. 김근태 의원이 무거운 중압감을 느꼈다는 1미터 정도 두께의 철문, 그리고 몇 층인지 알 수 없게 건축가 김수근이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 소용돌이 계단, 그리고 겨우 한 뼘 정도 되는 조사실(고문실)의 창문... 그리고 욕조...


 마음을 짓누른다. 아무도 없이 달랑 우리 일행만 있는 5층 조사실이 마치 이 세계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듯한 느낌마저 준다. 지인들과 함께 오지 않고 아이 둘하고만 이곳을 찾았다면 음산한 무거움에 눌려 몇 초 있지 못하고 바로 바깥으로 나와 버렸을 것만 같은 곳...

 <짐승의 시간>과 <남영동>을 읽고서 며칠간 머리가 하얘진다. 생각하느라 잠시 모든 생각을 미루게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 아마 한동안은 이 상태로 지내게 될 것 같다. 


 요즘은 김근태 의원의 에세이집 <희망은 힘이 세다>를 읽고 있다.

 남영동에서 나온 지 15년이 지난 1999년 가을, 매일경제신문에서 김근태 의원은 이 시절을 회상하며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아들애가 대여섯 살 때의 일이다. 부천 YMCA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란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였더니 검은 승용차 뒷자석 가운데 왜소하게 끼여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양켠에는 건장한 사내들이 검은 안경을 낀 채 떡 버티고 앉아 있고.


 유치원 선생님들이 그 그림 제목을 ‘우리 아버지’가 아니고 ‘자랑스러운 우리 아버지’라고 고쳐 쓴 다음 다른 애들 그림과 함께 전시해주었다. 애 엄마는 그 그림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들의 배려가 고마워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대학생이 된 아들이 그 때의 무거운 기억들 때문에 위축되어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젊은이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김근태 의원은 자율과 책임, 그것이 우리 사회의 기본 축이 되는 그런 날을 그리워한다. 그곳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고백을 한다. 


 생각하는 것들, 소신을 삶으로 살아내며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분들. 100% 만족하지 못하지만, ‘아직은 멀었다’라고 가끔은 한탄하게 되는, 그러나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이 민주주의 사회는 지나간 어둠의 시절에 그 분들이 민주화를 위해 목숨과 삶을 내어놓고 군부독재의 추악한 폭력, 끈질긴 억압과 싸운 덕분이리라.

 작년 10월말쯤부터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끼며 살고 있다. 박근혜, 최순실과 그의 악당들, 아니 그 이전 이승만, 박정희부터 이어온 파렴치한 권력자들을 향한 분노와 절망은 단지 나 혼자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책이 다 무어고 민주주의가 다 무어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건 곧 역사가 되고, 삶이 곧 정치다. 정치와 삶은 직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민주화 열사들이라고 불리는(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이루고 지켜온 민주주의를 올바로 지켜내기 위해 결코 침묵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의 공판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민주화 실현을 위해 국민으로서, 그리고 자기 자리에서 민주화를 향해 나가는데 기여하고 자극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충심으로 희망합니다...(중략)... 민주화의 실현을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했으며,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시 반성해야 하고, 민주화 실현을 위해서는 그 누구도 면제되고 제외될 수 없는 것입니다. 민주화가 이룩되는 날에 나는 민주화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당신은 민주화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를 서로 반문하고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중략)...”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조혜진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우리가 만든 그림책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그림책 전시회 진행

금나래갤러리에서 17일까지 전시



관내 학생들과 주민들이 직접 만든 그림책 전시회가 금천구청 앞 금나래 아트홀에서 214일부터 17일까지 열리고 있다.

은행나무어린이 도서관이 2014년부터 ‘시흥동 그림책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3년동안 그림책을 만들어 왔다. 이번 '금천을 그림책에 담다'전시회는 3년 동안 만들었던 책들로 금천구의 자연과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들은 관내 초등학생부터 성인들이 만든 작품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또 그림책이 만들어지는 과과정에 대한 소개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정선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관장은  “3년 전, 동네에 살고 있는 김대규 그림책 작가와  시흥동을 중심으로 그림책 만들기를 시작해 2016년에는  ‘금천을 그림책에 담다'라고 금천구 전체를 담으려고 했다. 은행나무도서관이 멀어서 오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 가산초와 한울중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 만들기를 했다. 그리고 2016년 혁신교육지구 사업으로 관내 일부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과 시집과 그림책  만들기를 했다. 3년 동안 만들어진 그림책들과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작품들을 주민들과도  공유하고 싶어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고 했다.


그림책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의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다. ‘까치이야기는 목련아파트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인공이고,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에 가는 길은 주간보호센터 볕바라기의 발달장애인들이 만든 그림책이다. 문성초등학교 6학년 100명의 학생이 자신만의 그림과 글로 스토리를 만들어 각 자의 책을 만들기도 했다.



전체 그림책 제작에 도움을 준 김대규 그림책 작가는 “6개월 정도 오랜 기간 호흡하면서 만들기 때문에 작업의 과정에서 자신을 찾게 된다. 그림 그리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면서 자신의 변화가 일어난다.”면서 결과물보다 과정이 중요해 습작물도 다 전시하고 있다. 이런 것이 쌓이면서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을 느끼고 변화가 만들어진다. 전시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함께 나누자는 마음으로 하면 좋은 책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전시회의 소감을 전했다.


그림책 만들기를 도와준 시미선 도서관 활동가도 자신과 지역을 더 알게 되고 그것이 책으로 나오니까 스스로의 자긍심이 높아지면서 너무 좋아했다. 할 때는 힘들지만 막상 결과가 나오면 다들 뿌듯해 하는 자체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전시회는 17()까지 오전10~오후6시까지 진행된다.







 

이성호 기자

총탄에 묻힌 사람들의 이야기 <1945, 철원>을 읽고


   철원에 있다는 노동당사 이야기는 진작에 듣고 있었는데 책을 읽기 전, 작가가 그 노동당사를 보고 이 소설을 기획했을 것 같았다.

  사진으로 본 그 건물은, 경험하지도 않은 많은 일들을 느끼게 했다. 실제로 봤다면 더했겠지만 사진으로도 그것은 충분했다.

  2008년쯤, 여성문화유산해설사 강의를 들으며 꽤 오랜 시간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종강을 앞두고, 문화유산을 찾아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발표를 했는데 우리 조는 고려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공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귀한 집 부녀자까지도 끌려갔던 공녀는 경복궁을 거쳐 서대문과 독립문을 지나 원산까지 가고 다시 중국땅으로 가는 긴 여정을 마쳐야 했다. 우리 조는 그녀들의 행선지를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고, 독립문 근처에서 그녀들에 대한 예를 올리기로 하고 댕기와 버선을 준비했다.

  그녀들이 거쳐갔던 서대문과 독립문 근처를 왔다갔다하다가 그녀들의 소리를 들었다고 해야할까 그녀들의 뒷모습을 봤다해야 할까, 아니면 두 가지를 다 듣고 봤을지도 모르겠다. 댕기를 길게 늘어뜨린 여인들이 걸어가고 있었고, 잠시지만 울음소리를 들었다. 지금도 그 곳에 가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철원의, 폭격에 온 몸을 맡긴 그 건물을 보니 또다시 어떤 이야기와 어떤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역사라는 것이 나와 동떨어져있는 것이 아님을 이제 알기 때문일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특히 이 땅에서 벌어진 일들은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사상의 대립을 겪지 않았다 해도 결국 내 안에서 나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잘못 봤나 자꾸 앞 쪽을 보게 된다. 주인공 경애와 기수, 은혜들의 나이가 고작 열여섯이라니... 그 나이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하고, 가족과 이념 사이에서 방황해야 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진작에 보았던 박완서의 소설에서도 열아홉의 어린 박완서가 겪었던 일은 그와 다르지 않았다. 전쟁은 그에게 하나의 숙제가 되어 대부분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박완서는 자신이 겪은 일이었겠지만 이 소설은 ‘철원노동당사가 본 것’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그 시절 있음직한 이야기로 씨실과 날실을 잘 엮었다.

  사상의 극단은 현실의 어려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전두환 시절 학교를 다닌 나는 아직도 전경들의 군화발 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꿈을 꾸고, 깨어서도 땀을 흘린다. 내게 닥쳤던 현실은, 나름 암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역시 극한의 사상들이 출연하고 대립한다. 술을 먹지 못한다는 이유로, 집안이 가난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르조아지라며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던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졸업후 그 시절에 배웠던 인간다움을 위해 애썼던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원을 차리고 참교육 따위는 아랑곳 안했고, 돈을 버는데 열을 올렸다. 사실 그걸 비난할 수도 없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공산주의 사상은 그간 눌리고 억압되었던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연천댁이 그랬고, 경애도, 제영도 그랬다. 뭔가 빼앗기기만 한 사람들이 인간다움으로 대접받고 공평한 처우를 받고 무엇보다 생명같은 땅을 나누어주지 않았던가. 그 사상은 옳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 사상의 실천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사람살이는 그렇게 딱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권력의 맛을 들인 사람은 그것을 추구하게 되어 다시 비인간적인 상황을 만들곤 한다.

  우리 어머니는 신경줄이 얇아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는데, 그러다가 울먹이며 갑자기 전쟁 때 이야기를 한다. 노쇠해지면서 하는 이야기는 주로 지주이자 천주교신자였던 아버지가 숨어지내던 그 곳에 밥을 갖다주던 이야기다. 냉정하기만 한 아버지, 한번도 애썼다고 안아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작은 단발머리 아이는 산을 넘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피투성이인채로 구덩이에서 발견되었고, 다시 소녀 시절로 돌아간 어머니는 아버지,아버지 부르며 운다. 외할아버지는 최근, 순교한 것으로 인정받고 성인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피로 가득찬 아버지의 고무신을 잊지 못하고 마음에 큰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그게 누구의 잘못인가? 누구에게도 그건 너 때문이라고 속시원하게 말하지도 못한 세월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세월이 준 상처로 가족은 해체되고, 믿었던 이는 배신을 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온갖 인물들이 나오는데 다소 극적인 면도 있지만 그럴 법한 이야기들이다.

  끝에 책을 좋아하는 경애가 미자를 데리고 예전 서화영의 서재로 데리고 가 책을 빌려주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하지만 이 때는 1947년으로 평화로운 시절은 그 이후에도 절대 오지 않았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경애가 들은 무심한 총성이 그 무지막지한 시대를 알리는 소리는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다시 또 철원의 노동당사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가 본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기둥에 선명한 총탄이 그것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묻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민 경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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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안소영 지음, 강남미 그림, 출판사 보림 



온종일 방에 들어앉아 혼자 실없이 웃거나 끙끙대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기도하는 이덕무를 보고 사람들은 어딘가 모자라는 책만 보는 바보 "간서치"라 불러다 한다. 이 책은 본가의 적자가 아니니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니 살림을 꾸려 갈 녹봉도 받지 못하고 온전한 양반들만의 세계에 끼워주지도 않았던 서자출신 이덕무와 그의 벗들(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명문가의 자제지만 생각이 깊었던 이서구, 스승이었던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등 역사속 인물들의 삶을 마치 곁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저 별 도리 없이 가난을 대물림 받아 가슴속에 품은 뜻을 세상에 펼쳐 볼 수 없었던 이덕무는 굶주린 때에, 날씨가 추울때에, 근심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기침병을 앓을 때에는 온종일 작은 방에 앉아 햇살을 따라 책상을 옮겨가면서 애써 돼내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한다.


 1766년 5월 백탑(원각사 십층석탑) 이 있는 대사동으로 이사를 하게되고 벗들과 스승을 만나게 됨으로써 이덕무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의 벗중에 박제가는 오랑캐의 신기한 것만을 좋아하며 쫓아 다닌다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잘못된 것에는 눈을 부라리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뜻을 굽히는 법이 없이 그의 말은 언제나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의 눈을 백성들에게 닿아 있었기에 양반과 백성을 구분하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농민과 수공업자 상인들의 순서를 매기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다. 

 쾌한 생명력을,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편안하게 해주는 독특한 기운이 있는 유득공또한 그의 벗이었다. 유득공은 늘 소매에 종이와 붓을 넣고 다니며 조금이라도 색다른 것을 보면 글로 써두어 글 상자 속에 보관하였다. 조선의 역사. 조선의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눈여겨 보았으며 조선땅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그는 (이십일도회고시)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처남 매부지간이었던 백동수는 성미가 급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무인 집안의 자손으로 할아버지에게 활 쏘는 법, 말 타는 법을 배우고 당시 최고 검객 김광택에게 검술을 배웠으며 의술과 단학도 아울러 익혔다. 


 가난에 찌든 선비였던 이덕무와 부족함이 없던 명문가의 자제였던 이서구가 벗이 될 수 있었던건 책을 통해서였다. 문턱이 닳도록 오고가며 책을 나누고 읽고 이야기하면서 서로가 너무 잘 맞았다. 

 이렇듯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사람으로써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마음에 맞는 벗들과 함께 백탑 아래에서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나이와 신분에 꺼리낌없이 함께 어울리는 것이었다.

 탑과 벗들과의 사귐이 무르익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도 더 큰 세계와의 만남을 갖게해주는 스승을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보면 누가 중심이고 누가 변두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의 스스로가 중심인것을 가르쳐준 단헌 홍대용 선생과 편견에 사로잡힌 세상은 새로운 활기라고는 없는 세상,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것들로만 가득한 세상이라며 편견을 버리라고 가르쳤던 연암 박지원과의 만남이었다. 

 정신없이 벗들의 이야기까지 읽어내려갔을때 생각이 들었다. 누구와 어디와 많이 닮았다.  같이 보고픈 책을 정해 열심히 읽고 부족한 책을 줄서서 돌아가며 읽어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정을 쌓아가는 은행나무도서관 역시 그들의 "청장서옥" 못지 않다는 것에 뿌듯했다. 

 서자 출신이라는 운명이 그들을 얽매일때 세상에 태어나 쓰일 때가 없다는 절망감에 고통스러울때 백성의 미래가 조선의 미래가 걱정스러울때 같이 분노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벗이 없었다면 어디에 마음을 둘 수 있었을까?


 이덕무는 나이 40이 다 되어 박제가, 유득공과 함꼐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의 수행원으로 가면서 넓은 세계로 첫 발을 내딛는다. 정조의 탕평책으로 규장각 검서관이된 그는 여러 서적의 편찬, 교정, 감수에 참여하였으며 많은 시편도 남긴다. 그 뒤로는 경기도 적성지방의 현감으로 내려가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 고을을 다스렸다. 그들이 후세에 남긴 많은 서적들을 다 읽어볼 수는 없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다하더라도 누군가 나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와 나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때, 우리는 시간을 나눌 수 있다. 옛삶과 우리가, 우리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하는 벗이 되리라." 이 글귀 처럼 "책만 보는 바보" 한 권의 책으로도 책과 벗들을 그리고 내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하는 벗이 될 수 있으리라 싶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정혜숙 ]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이전에 중반부까지 읽다가 몰입하기 힘들어 포기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한 번에 읽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두 번째 읽고 나니 몰입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이 책의 핵심 이야기이자 오늘날 어른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이라 생각된다.

떠돌이 모모가 원형극장에 머물며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또 그들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이 참 인상적이었다. 진정으로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느낄 수 있다는 점에 공감을 한다.

누구나 살면서 힘든 순간들을 겪게 되는데,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나면 후련해지고 힘든 부분을 누군가가 이해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받게 된다.

나에게 모모는 누굴까? 나도 누군가에게 모모가 돼주고 있는가를 생각해 봤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모모가 거기 살면서부터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모모는 그냥 거기 앉아서 같이 어울려 놀았을 뿐이다.”

청소부 베포, 관광안내원 기기와 우정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사람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어울려 신나게 놀고, 함께 책을 읽는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보면 어느새 일상의 선입견은 사라지고, 우정이 쌓여간다는 점에서 모모와 도서관 사람들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회색 신사들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철학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그때부터 책이 어렵게 느껴졌다. 이발사 푸지 씨는 자기인생을 실패작이라 생각하며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그때 회색신사가 다가와 시간을 아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손님에게 들이는 시간을 단축하고 어머니를 양로원으로 보내며 애완동물을 팔아버리라는 등.....

 

대도시에는 푸지 씨와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도시가 변하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삶의 패턴도 함께 변해간다는 것을 말하는 부분으로 느껴졌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까지 바꾸는 것이 좋기만 할까!’하고 꼬집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지키고 살아야할 것들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어른들의 삶이 바빠지면서 아이들은 장난감,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요즘 아이들 삶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이나 휴대폰이 생각난다.

시간 저축은행에서 나온 회색신사 영업사원의 정체를 알아낸 모모는 아이들과 함께 피켓 등을 준비하여 어른들을 초대하지만 실패로 끝난다. 모모는 카시오페이아를 따라 시간의 근원지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만난 호라 박사로 인해 자신만의 아름답고 위대한 시간을 보게 된 모모는 그것을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낸 하루가 현실에서는 1년이 지났고 그 1년 동안 기기를 비롯해 모모를 아는 사람들은 회색신사들의 작전에 휘말려 여유 없고 힘든 생활에 젖어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간을 되찾아 주기 위해 모모는 시간도둑들의 소굴로 들어가 유리컵에 갇혀있는 시간들을 풀려나게 만든다.

 

처음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라 빠져들지 못했지만, 다시 보니 시간도둑이야말로 현대인의 삶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는 도중에, 그리고 다 읽고 난 이후에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 물음 몇 가지가 있다.

나만의 시간을 갖고 살고 있는가?”

내게 주어진 시간을 도둑맞은 때는 언제라고 생각되는가?”

내가 가진 시간을 행복하게 써 본적이 언제였나?”

나의 욕심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진실한 것들을 외면해버린 적은 없었는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은행나무어린이 도서관 양기순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슬픈 나막신의 시대적인 배경은 일제강점기이다. 일제강점기의 여러 이야기들을 읽어보았지만, 이렇듯 일본 도쿄에서 살아가는 조선인, 특히 아이들의 이야기는 처음 접해보았다. 1970년대에 써진 이 작품에서 어떻게 일제강점기, 일본 도쿄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작가 약력을 찾아보니, 권정생 작가가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조선인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쓰고, 일본의 교육을 받으며,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본인도 아닌 채 이질적으로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 속의 아이들은, 아이들이기에 조선인이건 일본인이건 함께 어울려 놀았다. 서로 잘 놀다가도 놀리며 지냈다.


조선 사람 가엾다

어째서냐 말하면

어젯밤의 지진에

집이 모두 납작꽁

모두 모두 납작꽁


나도 모르게 운율에 맞춰 불러보았다. 납작꽁이라는 말이 어릴적 쓰던 때처럼 정감있고 재미있다. 과연 권정생 작가는 이 책에 나오는 아이 중 누구에 해당되는 아이였을까? 가난하지만, 따스한 가정의 준이였을까? 아마도 그럴 거 같다. 독립운동하는 큰 형과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작은 형이 있는 집에서 특별한 말썽을 부리지 않고 자랐을 것만 같다. 

일본인이건 조선인이건 혼마찌의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비참하고 고단했다. 고아원에서 입양된 하나코, 병든 아버지를 챙겨야하는 에이코, 강아지 메리를 키우고 싶지만 키울 수 없는 미쯔코, 동생에게 급식빵을 가져다주는 키누요처럼 일본인이지만 모두 힘겹게 살아갔다. 내선일체를 부르짖던 일본의 이중적인 모습이 카즈오네 식구들을 통해서 참 잘도 표현되었다. 카즈오와 용이가 싸우면, 조선인은 모두 나쁘다며 카즈오의 형 히로시는 무조건 용이를 때렸다.

개개인을 통해, 각 가정의 모습을 통해 꼭 그 때의 나라가 보이는 건 왜일까? 자식을 때리는 호남댁과 얻어맞는 분이의 모습이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아프고, 자식같은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조선말기의 모습인 듯 보여 화가 났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호남댁이 아닌, 청송댁이나 상주댁과 같이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살뜰하게 보살피는 어머니이고 싶다. 청송댁 밑에서 자라는 걸이와 준이의 모습 역시 얼마나 바람직하고 듬직하던지......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일어나는 고철줍기와 폭격. 책이 끝에 가까와질수록 소년병으로 끌려간 걸이가 전쟁터에서 도망가지는 않을까? 곧 독립이 오겠지? 혼마찌의 조선인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갈까? 그 당시 시대적인 상황을 떠올리며 책 내용과 함께 머릿속에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졌다. 

'슬픈 나막신'이라는 제목에서 나온 나막신은 누구의 나막신일까?

일본에서 나막신을 신고 힘겹게 살아가는 조선 아이들일까?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야하는 일본과 조선, 그 모든 사람들일까?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유선화

김중혁, < 모든 게 노래>

마음산책 / 2013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제법 그럴듯한 음악을 잘 찾는 편인데, 가끔 내가 찾고도 스스로 감탄할 때가 있다. 우연에 대한 감사랄까?

요즘 기타를 배우고 있지만 사실 난 음악을 잘 모른다. 음악에 그다지 관심이 있지도 않고, 많이 알지도 못한다. 노래도 잘 못 부른다. 그렇지만 노래를 알고 싶어는 한다. 

한때 소설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어찌 그리 고상한 취미들을 가졌는지 세계에서 노래 좀 부른다는 가수들의 이름과 노래 제목을 줄줄이 꿰기 일쑤였다. 그러면 오디오는 커녕 변변한 카세트도 없는 나로서는 그 음악이 매우 궁금했다. 음악을 들어보려면 카세트 테잎이나 cd를 사야하는데 음악을 잘 알지도 못하고 사려니 괜히 쑥스럽고 멋적어서 사는 것조차 불편했다.

그런데 요즘은 누군가 어떤 노래가 좋다고 하면 바로 바로 들어본다. 가요부터 팝송, 클래식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수험생용 영문법 책에서 문법을 설명하기 위해 소개된 노래부터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알게 되는 노래는 물론 소설 속 카페에 흐르는 노래까지 찾아 듣는다. 음악을 무척 좋아해서냐면 그건 아니다. 그냥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웬만한 음악은 거의 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서다. 음악을 몰라 부끄럼을 느낄 지경인 내가 노래에 관한 책을 아무 꺼리낌없이 집어들 수 있는 이유도 스마트폰의 신기함으로 인한 자신감이다. 


이 책은 노래에 관한 책이다. 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해서 그 사랑하는 여자를 자신의 친구에게 자랑하듯이 음악에 대한 사랑을 자기 흥에 못 이겨 쓴 글들을 모은 산문집이다. 

음악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가 봄에는 김추자의 <봄비> 최고라면 그런가보다 하며 찾아 들어보고, 무심한 목소리가 좋다고 하면 어떤 목소리가 무심한 걸까 찾아서 들으며 천천히 오래 보았다. 그렇게 책을 읽는 건 

엄청 폼 잡는내 또래의 김천 촌놈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랄까? 이런 식이다.


책을 읽다가 어떤 가수의 목소리가 좋다고 하면 나는 마음으로 받아친다.

"오승은? 그런 가수가 있어? 한번 들어보지. 일단 노래를 듣고 당신 얘기를 수긍하든 말든할게. " 

일단 책읽기를 멈추고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답한다. 

"음, 좋군! 나랑 취향이 맞아. 친구(책을 읽다보니 작가 소개에는 없지만 나와 나이 같음)"

그는 노래에 관한 책을 써서 음악평론가인 줄 알았더니 소설가란다. 중학교 때 부모님을 졸라서 산 기타가 자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한다. 기타가 좋아서 공부를 좀 멀리하게 되었고, 혼자 노래를 부르고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다보니 소설가가 되었다고 ‥ 그러면서 은근 음악을 업으로 삼을 정도는 아니지만 좀 한다 소리는 듣는다고. 애매하고 어중간한 재능을 가졌다며 자기 자랑에 잘난 척, 가끔 글 끝에 그림이 있는데 그것도 자신이 그린 거란다. 그래, 너 잘났다 하며 읽는데 정말 재수없게시리 똑똑하기도 한 것 같다. 관계의 비밀까지 알고 있다고 할까?


목소리를 내고, 목소리를 듣는 과정은 참 의미심장하다. 나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내 목소리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상대방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듣는 내 목소리를 정확한 내 목소리라고 보기도 힘들다. ‥ 우리가 사는 방식 역시 비슷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다. 진짜 나는 어디쯤 있을까. ‥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 39쪽 )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진수정

곤살로 모우레 글, 알리시아 바렐라 그림

이순영옮김, 도서출판 북극곰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가 생각나는 그림책. 어른들을 위한 글 없는 그림책으로 소개된 이 책엔 표지에서부터 빨간 물고기 한 마리가 등장한다.

단순하다못해 심드렁한 표지 분위기에 어울린 심심한 캐릭터로 생각되기도 하고, 눈에 띄었다 해도 제목이 물고기니 별 의미없이 지나칠 수 있는 존재로도 보인다.

공원을 헤엄치듯 날아다니는 물고기를 따라 책장을 펼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원의 일상이 보인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공원이니 상상의 공원 이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공원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또 보고 또 보게 되는 그림책. 그곳에 하나의 공원이라도 백 개, 천 개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소녀와 그녀를 바라보는 소년의 사랑. 늙은 마그다와 마디의 재회, 그들의 추억을 따라가다 내 곁에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해보기도 한다.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 시인의 이야기, 그런 시인을 바라보며 마법 같은 순간을 느낀 꼬마 과학자를 보며 내 딸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밖에도 스웨터를 짜는 할머니, 공원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사진 작가, 공원에서 연주하는 플루티스트. 머리위에 먹구름이 따라다니는 여인, 물줄기가 계속 바뀌는 분수, 유기견과 고양이, 새, 두더지 등 여러 동물 들의 이야기로도 상상을 펼칠 수 있다.

 그저 스쳐지날 수 있는 공원의 일상인데, 조금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니,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그곳에 있다. 

혼자 유유히 사라지는 물고기처럼 오늘 내가 지나온 공원은 어디였을까. 따뜻하게 바라보고 웃음지으며 내 곁을 지나간 물고기는 누구였을까.



                                     2016.07-1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 읽는 어른모임

 조진영

* <뒷집 준범이> 



글 그림 이혜란 / 보림 출판사 


 어느 골목 이웃들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정겹게 풀어내며 추억을 곱씹게 만들었던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한때 인기였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 중에 소심한 성격으로 방안에 틀어박혀 바둑만 두던 ‘택’이라는 아이가 있었죠. 만약 먼저 손 내밀어주고 함께 해준 그 골목의 친구들이 없었다면 ‘택’이는 과연 어떻게 성장했을까요? 


 여기 작은 시장골목에 ‘준범이’라는 아이가 이사를 왔습니다. 앞집은 낮은 지붕아래에 시끌벅적 요란한 친구들이 쪼르르 붙어삽니다. 늘 예쁜 옷차림의 미장원집 공주, 슈퍼마켓 먹보 충원이와 동생 떼쟁이, 만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중국집 강희와 강우, 그리고 강아지 땡이까지. 일하러 가신 할머니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준범이가 하는 일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TV를 보는 게 전부입니다. 그러다가 신나게 노는 아이들 소리에 창문을 내다보게 되고, 그 ‘창’이 마음의 문이라도 되는 듯 서서히 크게 열리게 되지요. 외로운 준범이를 발견하고 함께 놀자며 손짓해주는 자장면집 딸 ‘강희’는 밝고 당당하며 고맙기까지 합니다. 친구들과 섞여 마음껏 놀고 싶은 마음과 나가지 말라는 할머니의 당부를 지켜야 하는 준범이의 미세한 갈등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안 돼...’ 힘없이 놀기를 포기하는 준범이, 친구들이 갑자기 사라진 앞마당의 정적이 제 마음마저 쿵~ 내려앉힙니다. 그때 준범이네 문을 박차고 우르르 밀려들어오는 아이들, “노올~~자!!” 그제야 시커멓게 그려진 연필그림의 준범이 방에 색색의 환한 파스텔톤 희망이 물들어집니다. 아이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한바탕 신나게 놀지요.   


 <뒷집 준범이>는 부산에서 신흥반점 중국집 딸로 자랐던 이혜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담이 담긴 두 번째 책이야기입니다. 아파트와 빌딩으로 가득한 요즘에 과연 이런 동네가 있을까, 아이들이 이런 감정을 잘 이해할까 싶지만, 여전히 이런 골목이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고 굳이 이런 곳에 살지 않더라도 이 아이들의 감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심심하면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는 우리 집 아들들이 생각났습니다. 아파트 마당에 행여 아는 친구가 나올까 뚫어져라 쳐다보고, 누구 하나라도 나오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던 아이들. 너무 더워서 안 되고, 너무 추워서 안 되고,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안 되고... 이런저런 핑계로 아이들이 어우러져서 놀 기회를 차단시켰던 제 모습을 반성했지요. 그리고 또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강희처럼 준범이에게 스스럼없이 따스하게 손 내밀 수 있는 아이들인가? 과연 나는 그런 사람인가? 이 시대 우리 주변에 있는 ‘나의 준범이’는 누구인가?...

 오늘은 나의 준범이를 찾아봐야겠습니다.


                                     2016.06-2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 읽는 어른모임 윤미희  글

 <뒷집 준범이> 

글 그림 이혜란 / 보림 출판사 



 어느 골목 이웃들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정겹게 풀어내며 추억을 곱씹게 만들었던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한때 인기였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 중에 소심한 성격으로 방안에 틀어박혀 바둑만 두던 ‘택’이라는 아이가 있었죠. 만약 먼저 손 내밀어주고 함께 해준 그 골목의 친구들이 없었다면 ‘택’이는 과연 어떻게 성장했을까요? 


 여기 작은 시장골목에 ‘준범이’라는 아이가 이사를 왔습니다. 앞집은 낮은 지붕아래에 시끌벅적 요란한 친구들이 쪼르르 붙어삽니다. 늘 예쁜 옷차림의 미장원집 공주, 슈퍼마켓 먹보 충원이와 동생 떼쟁이, 만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중국집 강희와 강우, 그리고 강아지 땡이까지. 일하러 가신 할머니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준범이가 하는 일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TV를 보는 게 전부입니다. 그러다가 신나게 노는 아이들 소리에 창문을 내다보게 되고, 그 ‘창’이 마음의 문이라도 되는 듯 서서히 크게 열리게 되지요. 외로운 준범이를 발견하고 함께 놀자며 손짓해주는 자장면집 딸 ‘강희’는 밝고 당당하며 고맙기까지 합니다. 친구들과 섞여 마음껏 놀고 싶은 마음과 나가지 말라는 할머니의 당부를 지켜야 하는 준범이의 미세한 갈등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안 돼...’ 힘없이 놀기를 포기하는 준범이, 친구들이 갑자기 사라진 앞마당의 정적이 제 마음마저 쿵~ 내려앉힙니다. 그때 준범이네 문을 박차고 우르르 밀려들어오는 아이들, “노올~~자!!” 그제야 시커멓게 그려진 연필그림의 준범이 방에 색색의 환한 파스텔톤 희망이 물들어집니다. 아이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한바탕 신나게 놀지요.   


 <뒷집 준범이>는 부산에서 신흥반점 중국집 딸로 자랐던 이혜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담이 담긴 두 번째 책이야기입니다. 아파트와 빌딩으로 가득한 요즘에 과연 이런 동네가 있을까, 아이들이 이런 감정을 잘 이해할까 싶지만, 여전히 이런 골목이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고 굳이 이런 곳에 살지 않더라도 이 아이들의 감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심심하면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는 우리 집 아들들이 생각났습니다. 아파트 마당에 행여 아는 친구가 나올까 뚫어져라 쳐다보고, 누구 하나라도 나오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던 아이들. 너무 더워서 안 되고, 너무 추워서 안 되고,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안 되고... 이런저런 핑계로 아이들이 어우러져서 놀 기회를 차단시켰던 제 모습을 반성했지요. 그리고 또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강희처럼 준범이에게 스스럼없이 따스하게 손 내밀 수 있는 아이들인가? 과연 나는 그런 사람인가? 이 시대 우리 주변에 있는 ‘나의 준범이’는 누구인가?...

 오늘은 나의 준범이를 찾아봐야겠습니다.


                                     2016.06-2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 읽는 어른모임 윤미희  글

별별철학원이 생겼어요

특별한 청소년을 위한 특별한 마을교실 5곳 지정

 

 

금천구에 별별철학원이 생겼다. 그것도 5곳이나. 철학원이라고 해서 소위 점집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별별철학원은 특별한 청소년을 위한 특별한 마을교실을 말한다. 금천교육복지센터가 작년 시범사업을 통해 올해 확대 운영하고 있는 대안교육프로젝트다.

학교 내에서 교칙위반이나 무단결석, 학교폭력 등으로 등교정지나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학생이나 학교부적응으로 인해 출석인정이 필요한 학생들이 대상이다.


금천교육복지센터 장서진 담당자는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곳이 부족하기도 하고 통합적인 관리도 어렵다. 센터에서 통합사례를 관리하다보니 본점을 맡아 운영총괄을 하면서 마을에서 역할을 하고, 지점으로 비영리단체 5개 기관을 지점으로 모셨다. 아이들에게 마을 안에 좋은 기관과 사람을 만나게 함으로써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할 수도 있고 학업과 진로에 대한 동기도 부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센터는 지난 6월10일 5곳의 지점에 대한 현팍식을 가졋다.


1호점인 건강한농부협동조합은 텃밭경작과 목공활동을 제공하고, 2호점인 금천생태포럼은 생태감수성을 높이면서 베짱이유아숲에 오는 아이들의 활동보조를 통해 자존감을 높이는 활동을 할 수 있다. 3호점 돌봄살림치유공간 카페 자리는 진로탐색 및 정서적인 지지를 받을수 있고, 4호점인 은행나무 어린이도서관은 글과 그림을 통한 자신의 표현과 자원봉사활동의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5호점인 원테이블/산아래문화학교는 요리활동을 통한 진로탐색을 제공한다.


운영본점을 맡은 금천교육복지센터는 사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지원 및 관리를 하면서 아이들과의 연계를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 동안에는 통합사례관리가 안되면서 복귀 후에도 문제가 재발생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별별철학원이 어른과 아이들의 정서적 유대감이 만들어지고, 또 다른 학교로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본다.


<금천교육복지센터 본점 현판식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 금천교육복지센터>


<1호점인 건강한농부협동조합 현판식>


<독산고등학교에서 찾아가는 별별철학원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책소개]싸목싸목 보금아

크레용하우스 / 이은재 글 / 최효애 그림




‘싸목싸목’은 ‘천천히’라는 전라도 사투리라고 한다.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일지 알 수가 없다. 보금이에게는 어떤 어떤 힘든 일이 일어났고, 그것을 천천히 극복해 나간다는 뜻일까? ‘싸목싸목 보금아’는 세도정치의 폐해가 극심하던 시절 탐관오리들과 지주들에게 수탈당하는 백성의 삶을 보금이네 가족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소금을 팔던 보금이네가 피땀 흘려 가꾸던 소금밭에 모래를 퍼다 붓고 만덕골로 밤도망을 와야 했다. 하지만 겨우 얻은 돌멩이 투성이 밭에서 온 식구가 열심히 키워낸 보리와 감자까지도 빼앗기고 만다. 항의하다 끌려가서 두들겨 맞아도 하소연할 데도 없다. 이런 일은 보금이네만 겪었던 일은 아니다. 억울함이 일상이었던 백성들의 삶이 너무 비참했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수확량의 70~80 퍼센트를 빼앗기고 나면 식구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들다. (나는 아버지가 떠나면서 최부자네서 보리쌀을 꾸어 올 때, 뭔가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중이가 넋은 나간 상태에서도 복순이는 끔찍이 아끼는 걸 볼 때도 아무래도 복순이를 빼앗길 것만 같아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최부자 집을 쳐들어 가지만 최부자의 목숨은 살려주고 사람들은 정든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서문에서 우리보다 앞선 세대들이 보금이처럼 힘겨운 삶을 잘 견뎌 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는 훨씬 행복해졌고,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지금 누리는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아보는 지혜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나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마을을 떠난 사람들의 앞날이 그리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적인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개인적인 노력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가 있을까? 

보금이네와 같은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삼미자어른 같은 사람에게도 그 당시를 살아가는 것이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부패한 관리들이 어떻게 지주들과 결탁해서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지 뻔히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또한 큰 고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 힘겨운 삶을 벗어나는 것은 백성들 스스로가 깨우치고 힘을 모아 저항하는 것 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백성들의 항거가 성공한 적이 있었나?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대한민국으로 바뀌었지만 요즘 인터넷에서는 ‘헬조선’이라는 말과 ‘헬조선 지옥불반도’라는 그림이 떠돌고 있다. 

 ‘싸목싸목 보금아’를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이것이 후기 조선에만 일어났었던 일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인 이야기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2016.06-1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 읽는 어른모임

박수경  글

오늘 월요분과에서 < 우리 동네 미자 씨> 읽었는데, 미자씨 읽다가 다들 선화선배 생각난다고 했어요. 나는 미자씨가 좋은데 선배는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한번 읽어봐요."


나를 닮은 주인공이 있다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도대체 미자씨가 어떤 여자기에 나와 닮았다며 여럿이 웃고 떠들었을까? 궁금했다. 여태 많은 책을 읽었지만 굳이 내가 이야기 속 누구와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팥쥐엄마 정도랄까? 키는 구척장신에 얼굴은 검은 게 콩멍석 위에 구른듯이 얽었고 입술은 썰면 아홉접시가 나올 것 같이 생겼다고 한다. 6학년 때 친구에게 입술이 너무 두꺼워 토인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두꺼운 입술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거기에 붙어버리게 되어, 어쩌다 보니 나를 스스로 팥쥐엄마에게 갖다 붙이고 있는 것이다. 글쎄, 그럼 미자씨도 팥쥐엄마 스타일일까? 책을 검색해 보니 표지그림에 시꺼멓고 입이 함지박만한 미자씨가 있다. 일단 외모가 합격이다.


'미자씨는 혼자 살아요. 어쩌다 보니 가진 돈을 다 날리고 빚을 잔뜩 지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지고 날품을 팔아서 버는 돈으로 가난하게 살아가죠. 찢어진 모기장도 바꾸지 못하고 해진 구두도 그냥 신고 다녀요.'

어라?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게 닮았나? 나와 좀 다른 것 같은데 뭐가 비슷했을까? 도대체 미자씨 어떤 구석이 나를 닮았는지 요리조리 뜯어보며 읽어간다. 

책 중간쯤 읽다보니 미자씨는 일단 어깨가 떡 벌어져 한 덩치하고, 별명이 천하장사다. 몸집과 별명이 일단 나와 같다. 방바닥에 누워 며칠이고 이리 저리 구르는 게 취미란다. 취미생활도 비슷하다. 누가 부탁을 하면 허드렛일도 마다않고 닥치는대로 잘해준다는 것도 닮았다. 게다가 그녀도 좀처럼 아픈 적이 없다. 어쩌다 아프면 약 먹을 생각은 전혀 않고 맛있는 거를 먹으면 나을 거라고 믿는 스타일이다. 나 같다. 그리고 그 맛있는 거라는 것도 아주 소박해서 '오뎅' 정도면 되는 것도 나 같다. 

그렇게 미자씨는 뭔가 엉성하고 모자란 것 같지만 가끔 잘하는 것도 있다. 고추가루도 없이 라면스프와 순대소금을 넣고 기가 막히게 맛있는 동태찌개를 끓일 줄도 아는 것이다. 요리천재가 따로 없다. 

옷 입는 스타일이나 외모도 솜씨도 그렇지만 사는 모양새도 나와 닮았다. 찌개 끓일 재료로 쌀뜨물이 있다고 다행이라고 말할 만큼 쌀도 없이 살아본 적이 있지만, 일단 그녀는 지나간 일에는 담담하다. 그리고 현실에 있어서는 남들이 미자씨에 대해 어떻게 말하든 자신이 보통은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내가 사는 법과 닮았다. 성지는 말끝마다 아줌마가 말하는 보통은 보통이 아니라고 핀잔을 주지만 그런 성지에게 말한다.


"있잖아, 성지야, 내 보통이 보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게?"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 불행해져." (63쪽)


나도 몰랐는데 행복해지고 싶은 내 본능이 내가 보통이거나 보통 이상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며 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미자씨 덕분에 나를 알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나도 다시 미자씨의 사는 법을 가슴에 새긴다. '자신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불행해져.' 미자씨는 모자란 것 같지만 이렇게 누군가에게 가끔 어른다운 얘기를 할 때도 있다. 나도 성지와 같은 아이를 만나면 그 정도 이야기를 꼭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미자씨는 호기심도 많다. 일단 무언가를 배우면 꼭 실험을 해보는 성격이다. 차 장수 아저씨가 아픈 미자씨를 위해 준 동태를 요리하기 전에 일단 치약이 진짜 비린내를 없애주는지 실험부터 한다. 새로운 걸 들으면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도 나와 닮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닮은 건 누군가를 금방 좋아하는 것이다. 아프다는 미자씨에게 동태 두 마리를 준 차 장수의 친절에 금방 사랑고백이라도 받은 듯 들뜨는 여자. 냉동실에 아껴두었던 동태를 차 장수에게 대접을 하겠다고 맘 먹고, 드디어 차장수가 오는 날을 잡아 고슬고슬 맛있게 밥 짓고 보통 정도가 아닌 시원하고 맛있는 찌개를 끓였는데... 차장수 총각은 이제 총각이 아니란다. 지난 달에 결혼을 했단다. 

결국 찌개 한 냄비를 혼자 다 닦아 먹고도 속이 허해서 어린 총각 성지에게 안아 달라고 떼를 쓴다. 성지를 안고 엉엉 우는 모습도 나와 닮았다.

몰래 좋아한던 남자는 이미 장가를 갔대고, 이제 다시 미자씨는 혼자가 됐다. 앞으로 미자씨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똑같은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난 그녀를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그녀는 자신이 불쌍해지지 않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뻔뻔스러울지라도 스스로 누추해지지 않을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2016.05-1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 읽는 어른모임 정선화  글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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