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나무>는 할아버지 밤나무가 손자 밤나무와 부엌 뒤 마당가에 나란히 서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이야기다. 백 살 남짓 살아온 할아버지는 이제 여덟 살이 되어 꽃을 피우고 씨앗열매를 만들 수 있게 된 손자를 보며 이제 자신이 떠날 때임을 안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시나무인 자신이 어떻게 집안에 심겼는지, 아들이 어쩌다 죽었는지. 그리고 나무를 심은 사람과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또 철없고 멋모르는 고집쟁이 손자를 혼내고 타이르기도 하며 앞으로 나무로 살아가는 법을 유언처럼 알려준다.
   손자가 처음 맺은 열매를 잃고 아픔을 겪을 때 "애야, 첫해의 꽃으로 열매 맺는 나무는 없다. 그건 나무가 아니라 한 해를 살다 가는 풀들의 세상에나 있는 일이란다." 라고 위로해준다.

또 눈 속에 파묻혀 두려워하는 손자에게 너는 나무의 일생 중 가장 가볍고 탄력이 좋을 때이니 걱정 말라고, 너는 스스로 싹을 틔운 강한 나무라고 격려해 준다. 눈 속에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가 잘난 척 한다고 흉을 보자 눈과 추위가 나무를 얼마나 단련시키는지 아냐고. 시련이 없으면 열매도 없다고 준엄하게 꾸짖는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나무로 사는 법은 이 것 뿐이 아니다. 언제 어떻게 잎을 준비하고 꽃을 준비하고 열매를 준비하는지, 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비바람과 추위같은 시련을 어떻게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보면 어느덧 읽는 이도 손자가 되어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고집과 독선만 키우는 사람들에게 할아버지는 살살 타이르신다. 

 "이제 너는 여덟 살이다. 아직 어리다해도 일생의 첫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해야 할 나이가 된 게야. 그런 만큼 세상 보는 눈도 전보다 더 깊고 따뜻해야지."  이제 막 자라는 청소년이나 성숙하지 못한 부모세대나 모두 깊게 새겨들을 일일 게다 .



학교에 간 사자
 필리파 피어스 글 /논장

8편의 짧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이 책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마구마구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책 속에서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가위와, 무엇이든 붙일 수 있는 풀과 학교가기 싫어하는 소녀와 학교에 가서 소녀를 괴롭히는 아이를 무섭게 겁을 주는 사자도 만날 수 있다




.

두발 자전거 배우기
고대영 글.김영진 그림 길벗어린이
이기고 싶어하는 마음과 두발자전거 같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운 마음까지. 아이들의 심리묘사가 잘 표현 되어있다. 든든히 뒤를 잡아주는 아빠의 멋진 모습도 미소짓게 한다. 주말엔 가족과 함께 자전거 타러 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은행이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책을 읽고 올린 글입니다. 


동네사람들과 함께 책읽기  책읽는 어른 '함박웃음' 13기 신입회원 모집
4월 11(월)에 기본 교육 첫강이 실시됩니다.
책을 읽고 나누고 싶은 분 누구나 참여 할수 있습니다. 참여 신청은 은행나무 도서관으로 해주세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892-7894

퇴근을 한다. 현관문을 열면 가족들이 반겨주는 평온한 저녁나절의 풍경. 

막내는 '아빠빠..'를 외치며 두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아이가 하나라면 퇴근하는 아빠를 독차지할 수 있으련만 그렇지가 않으니 둘째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동생 뒤에 서 있다. 물론 첫째인  아들녀석은 이제 안아주는 것까지는 원하지 않는듯 아빠랑 하이파이브한번 하고 제 볼일 보러 간다.   

이제 만22개월이지만 우리 나이로는 '세살'이나 잡수신 막내는 아빠에게 껌딱지처럼 착 붙어 있다. 밥을 먹을 때도 아빠 무릎에 앉아 있어야 하고 책을 읽어줄 때는 물론 아빠가 서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아무 상관없이 아빠의 품을 언니에게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어린 것이 무슨 샘을 그리 내는지 지가 앉아 있는 아빠 무릎에 언니가 엉덩이 한짝이라도 걸치면 팔로 밀어내고 꼬집고 울음보를 터뜨리며 언니를 필사적으로 밀어낸다. 아직은 아기니까 할 수 없지 하며 둘째의 양해를 구하고 대충 시간을 때워 왔는데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눈이 내리던 12월 말의 어느 저녁, 막내딸은 자기 지정석인 아빠 무릎에 앉아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있다. 그런데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언니가 은근슬쩍 "나도 좀 앉자~" 하며 한쪽 무릎으로 파고드는 찰라. 막내는 두팔과 양발로 버둥버둥대며 언니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언니도 오늘은 양보안할 기세인듯.

'나 여기 이쪽에만 앉아 있을게..응?" 동생에게 그렇게 얘기하며 엉덩이로 자리를 확보하기 시작하는데, 막내의 울음보가 '앙~'하고 터져 버린다.  이때 나의 상황판단력이 오판을 한 듯하다. 순간 짜증이 밀려들어 둘째의 어깨를 잡고 확 밀어 버렸다.

"넌 저기 가있어. 동생 울잖아 엉?"
아이들의 작은 몸뚱이에게 아빠의 손은 크기만 하고 힘은 세기만 하다. 살짝 들어간 힘도 아이를 단번에 밀쳐내기에 충분했다.
순식간에 아빠의 품에서 '방출'된 둘째는 방구석에 홀로 서서 씩씩댄다. 

이내 눈망울에 울음이 맺힌다. 그리고 외친다. 
"나도 아직 어리단 말야!"
"나도 아직 다섯 살밖에 안먹었다고!"
"나는 왜 안돌봐 주는데? 이 바보아빠야! 엉엉~"
 그리고 가만히 서서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며 아빠를 원망으로 쳐다본다.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에...

막내를 내려 놓는다. 물론 이녀석도 울음보가 터지고 있지만 우선순위는 아니다. 최소한 지금은.
둘째를 서둘러 안아준다. 눈물을 닦아주며 꼭 안고 말해준다. 아니라고, 미안하다고, 아빠가 널 사랑한다고... 그렇게 아이는 한동안 아빠에게 안겨있었다. 그래.. 넌 아직 어리지. 다섯살밖에 안먹었지. 맞아맞아.. 
 그날 밤, 둘째에게 팔베게를 해주며 재워 주었다. 아이는 아빠의 얼굴을 만지며 잠이 들었다

김희준(독산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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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3동 김용술씨

김용술씨는 현재 청소년선도위원회 독산동분회 고문. 독산3동 통합방위위원, 신도브래뉴 아파트 6기 회장이다.
금천인의 네번째 주인공인 이정석 금천신협 이사장은 청소년선도위원회 독산동 분회 회장으로 김용술씨를 기억하며 기자에게 소개해주었다.

성당을 다니면서 봉사를 많이 하고 선도위원을 하면서 아이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약속에 앞서 용술씨는 신도브레뉴 아파트 앞에서 보자고 한다. 알고 보니 신도브레뉴 제6기 입주자 대표가 되어있었다. 관리사무소 2층 조그마한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1986년 서울에 올라와 처음으로 자리 잡은 금천구. 이제 26년째 터를 잡고 있어 제2의 고향이 되었다고 한다.  남문시장 옆에서 자리 잡아 당시 향남 아파트를 샀고 이후 재개발이 되어 지금의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북 정읍에서 올라와 본 금천구의 모습은 촌이었단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금천구의 주거환경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주거개선과 노인복지가 지금 가장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노인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요즘에는 노인들이 자식이 있어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손자 나 손녀를 책임지는 분들도 있다. 게다가 서류상 자식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다보니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부분이 안타깝다. 정말 자식이 있는지, 실제적으로 부모를 봉양을 할수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이떻게 보면 무자식이 상팔자다라는 것이 요즘 노인들의 모습이다” “분명 복지의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부분을 면밀하게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봉사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진행한 것은 독산동 성당 사회복지분과장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남을 위해서 봉사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분과장을 맡으면서 만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이고 이 분들과 함께 일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렸다고한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옛날에는 몰랐다. 그건 해봐야한다. 직접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고서는 알수가 없다”

우리 금천구가 살기 좋은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의 질문에 다양한 의견을 쏟아낸다.
우선, 독산동의 신안산선 전철의 위치가 올바르게 잡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공영주차장 확대의 문제, 가로등의 불빛색깔을 바꾸어 범죄률을 줄일수 있다는 이야기등 다양한 제안들이 줄줄이 나온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이곳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싶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시월애는 남부여성발전센터에서 수채화 강좌를 들은 수강생들이 서로 작품에 대한 품평회도 하고, 다양한 정보교환도 하고, 전시회도 함께하는 수채화 동아리모임이다.
주로 청소년수련관이나 교육기관 등에서 이미 강사로서 활동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11명의 회원으로 시작해 출산이나 이사 등으로 쉬고 있는 분들이 있지만 현재 7명의 고정 회원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림을 전공했지만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주부 화가들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전문 화가로서의 소양을 갖추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나름 수준 있는 소모임이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다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울해지곤 했어요. 이렇게 작게라도 그림을 다시 시작하면서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의 위치를 떠나 나 자신을 찾아가는 느낌이 있어 좋아요.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살림하면서 가졌던 스트레스나 우울함, 외로움과 같은 감정들이 그림을 통해 다스려지는 것을 느껴요.”라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  실력이 아주 훌륭한 전문가들이 아니라서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욕구를 감추고만 있을 수는 없었죠. 그래서 공모전이란 공모전은 다 찾아다녔어요. 여성미술대전에 작품을 냈는데 모두 우수상을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재작년은 구리시 평생학습 축제에서 수상을 했고, 작년에는 서울교육청에서 진행한 평생학습 축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시월애’는 가슴속 뜨거운 열정을 세상밖으로 내뿜고 있었다.   
작년에 처음 ‘시월애’라는 이름으로 정기전을 치렀고, 올해 4월 다시 한번 양천구에 있는 도서관 갤러리에서 2차 정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몇 군데 무료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전시회를 하기에는 너무 공간이나 외장시설이 노후 되어 있고 비좁아요. 좀 괜찮다고 하는 곳은 실력 있는 화가들이 선점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매번 밀려나죠.” 개인전을 하려면 1주일 대관료만 150만원에서 200만원이 넘게 든다. 아마추어이고 주부들인 입장에서 이런 거금을 들여 전시회를 하기란 아주 벅차기 때문에 무료 전시관을 찾는데 1년 전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한다. "돈 안 되는일 한다고 구박하던 남편도 어깨너머 키운 안목으로 평가도 해주구요, 전시회할 땐 가족들 모두 와서 축하해줬어요."

시월애는 매주 모임을 진행한다. 화실이 따로 없기 때문에 각자 집에서 그려온 그림을 보고 품평회도 하고 서로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공유한다. 70보, 80보 크기의 큰 그림을 옮길 때는 버스도 안태워주고 택시는 좁아서 탈 수 없으니 결국 3만원을 주고 택배로 운송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림 둘 곳이 없어서 베란다나 장롱 위, 집안 곳곳의 틈이란 틈은 그림으로 가득 메워져있어요. 그래서 신랑들이 싫어해요. 글쎄 우리 신랑은 아~ 이래서 화가들이 화실을 따로 둬야 하는구나~ 하면서 한숨을 내쉰다니까요.” 모두 이구동성으로 집에 있는 그림들을 설명한다. 햇볕을 받으면 변색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폼 나게 걸어놓는 일은 웬만한 집에서는 불가능하다. “우리 중 누구라도 일 좀 저질렀으면 좋겠어요. 개인 화실 하나만 열면 우리 모두의 것이  될 테니까요.(다같이 웃음)”

그래서 ‘시월애’는 청소년 수련관에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수업을 해주는 대신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 금천구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청소년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이 피아노나 미술을 접하는 마지막 한계점인 것 같아요. 입시 때문에 아이들의 재능이 묻혀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라며 아이들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혼자보다는 이렇게 모임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짚어주고 조언해 주니까 긴장도 되고 은근히 비교도 되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죠. 남편에겐 인정받는 아내, 아이들에겐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 있다면 크게 성공하지는 못해도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 것 같아요.”

2010년 금천구 평생학습 동아리 최우수상에 빛나는 ‘시월애’의 열정적이고 당당한 여성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에서 진한 메아리로 남을 듯 하다. 
 
gcinnews@gmail.com
바라우미 여우초등학교 / 미야자와 겐지/우리교육
자연과 인간,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뛰어넘어 어린이들의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줄 다섯 편의 환상 동화가 담겨 있다.










시튼 동물기 1 / 시튼 /논장
시튼의 동물 이야기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 실제로 커럼포 지역을 호령했던 늑대 왕 로보의 이야기. 늑대 무리의 지도자 로보는 자신을 잡으려는 인간을 비웃 듯 독약과 덫, 올가미를 모두 피해 다니며 악명을 높인다.


바람의 딸 샤 바 누
수잔 피셔 스테이플스  /사계절


*은행이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책을 읽고 올린 글입니다  

파키스탄 유목민 소녀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 샤바누는 파키스탄의 촐리스탄 사막에서 낙타를 기르며 생활하는 유목민 소녀이다. 아시아의 저개발국가 파키스탄. 자연환경이 너무도 척박한 사막지역. 같은 아시아권인데도 많이 다른 문화와 종교, 제도와 풍습, 환경 그 속에서 성장기를 맞이하는 샤바누 이야기는 사춘기를 맞이하는 딸을 둔 엄마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린소녀 샤바누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하는 ‘바람’의 아이다. 그의 엄마는 그녀의 자유분망함을 알고 있었고 그 자유분방함이 그 소녀를 힘들게 할까봐 걱정을 한다. 샤바누가 살고 있는 남성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말이다.
  사춘기를 지내는 두 자매 풀란과 샤바누는 너무도 다른 삶을 추구해 나간다. 언니 풀란은 결혼을 위해 모든 시간과 정성, 삶의 모두를 투자한다. 반면에 샤바누는 남성주의 전통적 가치를 따르기 보다는 낙타를 돌보며 자유로운 삶이 행복하고, 자신의 자유로움을 유지하는 삶을 원한다.

샤바누는 언니의 결혼 준비를 도우며 결혼, 사랑, 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자신 미래에 대한 기대함을 함께 키우며, 결혼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언니 보다는 남성중심 세계에서 탈출하여 딸과 함께 독립적으로 살고 있는 샤르마 이모의 삶을 동경한다.
  유목민의 생계를 위해 낙타를 팔러 모래사막을 지나 목마름과 두려움의 고통을 이겨내며 가는 아빠와의 여정을 견디며 샤바누는 가장 사랑하는 낙타 글루번드를 팔아야만 하는 슬픔을 견뎌야 했다.



사막의 모래 폭풍으로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잃고, 예비 형부마저도 부유한 지주의 손에 죽고 만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샤바누의 약혼자가 어느 날 갑자기 언니의 약혼자가 되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샤바누는 나이 든 새로운 약혼자를 맞게 된다. 인정 할 수 없는 그 일을 겪으며 샤바누는 도망을 한다.   하지만 낙타 미투의 사고로 도망하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맘 여린 소녀 샤바누. 결국 아빠에게 붙잡히고 호된 매를 맞으면서 꿋꿋히 견뎌내는 성숙한 샤바누. 그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것이 하나 있었다. ‘비밀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거야. 그게 바로 가슴 속에 자리 잡은 영혼의 비밀인거야’ 이 말은 샤바누를 쓰러지지 않게 지탱시켜 준 힘이 되었다.

  분노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것은 나의 관점과 내 문화 의식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리라. 삭막한 사막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에겐 우리에게 낯설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최선의 선택으로 삶을 유지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모여 1년이 된다. 이 책은 대략 1년의 촐리스탄 유목민가족. 소녀에서 여인으로 가는 두 딸의 성장기 소설이다. 1년의 짧은 시간을 이야기 했지만 그곳엔 삶의 여러 역경과 평탄치 않은 환경이 있었다.
  그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샤바누의 모습은 우리 성장기 청소년들에게도 새롭게 자신을 바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 한 샤바누의 건강함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의 아이들도 생각이 건강한 아이로. 자아를 바르게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샤바누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 주변에 있는 우리들은 그들의 고민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함께 해주며 이해해 주는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빠힘들지?

보안 감사가 있던 날.
며칠 동안 준비한 대장들과 서류들을 제출하고 마침내 마무리짓고 하루가 끝났다. 에휴~
동료들이 사당동에서 호프한잔하자는 뻐꾸기를 날리셨으나 갈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오늘은 삐약삐약 병아리들 챙기러 들어가 봐야겠어요.ㅠㅠ
저녁10시... 졸음이 쏟아진다.
둘째가 책 한권을 들고 와서는 읽어달란다. `혹부리영감'
웬만하면 내일로 미룰까 하였으나 그 정도도 못해주느냐는 모 처의 압력이 들어와 아들과 딸을 옆에 앉히고 책장을 넘긴다. 이건 왜 이리 글자가 많은 거니..ㅠㅠ
읽다 보니 지친다. 눈꺼풀은 내려가고 발음은 꼬인다.
그래도 읽어간다.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 집에 들어가 노래불러주고 혹떼고 부자되고 어쩌구 저쩌구...하는 순간 들리는 한 마디.
 "아빠, 힘들지? "
책에서 시선을 떼고 바라보니 아들이다. 아들녀석은 책 대신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힘든 건 아니구 그냥 졸려서 그래"   "아빠, 내가 읽어줄까?"
그럴래? 이제 두 페이지밖에 안 남었거든.. ㅎㅎ
하지만 여동생은 오빠보다는 아빠의 목소리를 원했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끝까지 읽어주었지만.
 이렇게 든든한 아들이 되어 주다니. 아빠가 너한테 참 고맙다.



서점 나들이

막내는 집에서 엄마가 재우고. 두 녀석을 데리고 집근처 마트로 갔다. 그런데 무조건 이책을 사달란다.  `7급 한자 따라쓰기 ' .잘 보고 그려라열살이 된 아들에게 기념으로 책을 한권 사주었다. `10살에 꼭 만나야할 100명의 직업인'  이제 열살!이다.  갓 태어난 너를 안고 6월의 초여름에 땀 삐질찌질 쌍문동 언덕배기를 올라가던 그 날이 생각난다. 앞으로 오년만 있으면 아빠랑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을 수 있겠지. 십년만 있으면 어른이 되어 우리 집의 튼튼한 대들보가 되겠지. 그땐 녀석과 호프한잔 해야겠다. 안놀아줄래나....



김희준(독산4동)


금천in이 만난 금천人-네번째 이야기
신협 직원에서 이사장 까지 금천신용 협동조합  이정석 이사장


지난호 금천인 최헌규 목사가 소개한 사람은 금천신용협동조합(이하 신협)의 이정석 이사장(48세)이었다.
‘어라...? 이분 너무 높으신 분 아닌가? 우리 취지와 맞을까?’ 하는 생각과 퍼뜩 들었지만 추천 이유를 들어보니 나름 이해도 된다.  이정석 이사장은 금천 신협의 평직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사장 까지 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의 일에 많이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소개를 받고 우연히 금천신협 정기총회에도 갔었다. 그리고 주변에 이사장에 대한 나름의 탐문도 해봤다. 우선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젊은사람이 와서 신협을 많이 발전시켰다”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된 의견이 조합원들에게 참 잘한다는 것!

지난 1월 총회에서 이사장직을 연임하게 된 이정석씨(이사장이라는 호칭은 생략하자)을 만났다.
전북 김제 출신인 정석씨는 95년 금천신협에 취직하면서 금천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금천구의 단상을 물으니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95년 당시 서초동에서 직장을 다니다  이곳으로 왔는데 너무 비교가 되었다고 한다.

우선, 어떻게 평직원에서 이사장까지 오르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이에 이사장은 신협을 소개한다. 신협은 총회로 대표이사를 선출한다. 그 총회 자체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신협 초창기부터 일하다보니 조합원들이 잘 봐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추세는 실무책임자가 이사장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당시(2007년)에는 흔치 않았지만 현재는 약10%가 실무책임자의 경험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사장에 출마하게 된 동기로는 “이곳 신협에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직원으로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그런 점을 개선할수 있다는 생각으로 출마하게 되었다”라고 이야기 한다. 더불어 “이사장이 되어도 큰 차이는 없다. 변한 것은 의사결정하는데 있어서 반영하기 쉬워졌다는 것 정도? 직원이었을 때도 비슷했다. 동네에서 물건을 살때도 좀 돌아가더래도 조합원의 집에서 샀다. 그것 때문에 초반에는 아내와 많이 충돌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그런 과정이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신협과 금융기관의 차이를 물으니 쉽게 이야기 해서 신용협동조합은 비영리 법인이고 은행은 영리법인임을 상기시킨다. 신협은 이익금이 생기면 많은 부분을 조합원들에게 환원한다.
이를 위해서 비과세등 조합원들에게 이익이 가는 상품을 많이 만든다고한다. 
그리고 이 지역의 금융기관이기 때문에 사업이 활성화 되면  지역에 환원할 수 있는 것이 더 많게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신용협동조합이 아시아에서 가장 큰 곳이 서울이란다. "1960년에 부산에서 시작되었다. 올해로 51년째를 맞이 하고 있다. 처음에는 신협은 운동이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하지만 지금은 금융기관화 되어 있다. 신협의 정체성을 잘 보존하면서 금융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가져야한다.




그러다보니 옛날의 신협운동세대와  현재의 새로운 조합원사이에  이해의 차이가 존재한다.  초창기의 조합원은 새로운 요구들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하고 새로운 조합원은 초창기 신협운동의 선구적 역할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발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을 서로 인정할 때 신협이 발전할 수 있다.
더불어 신협이 성장 발전하는데 직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직원의 복지가 향상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야 신협의 일에 충실할수 있고 그런 부분들이 조합원에게 서비스가 잘 될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직원회의 때마다 “나는 당신들을 위해서 일할테니 당신들은 조합원들을 위해서 일해 달라”고  당부한단다.
금천신협은 오는 2월 중순 시흥동 지점을 오픈한다. 4년의 이사장직을 수행하면서 총자산 700억으로 성장시킨 정석씨.
앞으로 4년은 금천구 주민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금융기관으로서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설 명절 준비로 들뜬 1월 29일, 최고운 시나리오 작가가 요절했다. 같은 집 세입자에게 남긴 쪽지에 많은 네티즌들이 안타까워 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고 최고운 작가의 쪽지)
  문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소수를 제외하고는 일정한 수입 없이 궁핍하게 살고 있다. 문화사회적 기업 자바르떼는 일자리가 없는 예술가들에게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서비스 수혜자들에게는 문화예술 활동으로 자존감을 심어 줌으로써 생활에 활력을 주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 문화예술교육을 펼치면서 문화예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신나는 문화학교가 계기가 되었다. 서울 안산 인천 지역의 공부방, 실업단체, 주민들에게 음악, 연극, 문학, 영상 만화, 미술, 풍물등 다양한 장르의 강좌를 진행한 신나는 문화학교의 성과를 통해 2007년 12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 1월 27일 자바르떼 공연단이 남문시장에서 설맞이 행사를 진행하면서 버나돌리기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이성호 기자>

어떻게 금천구로 이사를 오게 되었나?
  자바르떼는 현재 독산4동 주민자치센터에 입주해 있다. 좁은 사무실에 7명이 일하고 있다. 인천, 안산에 지부가 있고 이곳에는 본부와 서울지부가 일하고 있다. 자바르떼를 이끌고 있는 이은진 대표는 작은 체구에 깐깐하다. 그칠 줄 모르는 언변으로 상대방을 친근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마포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새로운 거점이 필요해 사무실을 구하고 있었다. 작년 11월 성공회대에서 사회적기업 페스티벌 준비하고 지자체 포럼에 패널로 나가서 발표할 때 금천구청장과 구의원 지자체 담당자를 만났는데 그때 금천구에서 제안이 있었다.”

“자바르떼는 문화예술을 통해 생활문화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안을 받고 동료들이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시간도 촉박하고, 금천을 낯설어 하고 사회적 기반도 취약하고... 동료들이 한번 모범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이곳이로 오면 지나쳐 가는 곳이 아니라 올인 한다는 마음으로 왔다. 13명이 함께 일하는데 10년 20년을 내다 보고 지역에 함께할거다. 지역의 시민단체 모임인 금천교육네트워크에 참여해서 함께 일할 것이다.”

올해 계획이 있다면 ?
 작년 말 대형마트에서 통큰 피자와 통큰 치킨으로 많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떨어지고 급기야는 통닭의 원가논쟁까지 벌어졌었다. 골목시장 상권이 무너지고 전통시장의 매출이 떨어져 지역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얼마전에 구청과 함께 문화관광부에 독산동 남문시장 주변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로 전통시장을 활성화 하는 사업, 문전성시 사업’을 제출했는데 채택이 되었다. 3월 말경이면 문전성시 프로그램이 본격화 될 것이다. 시장에서 공동체 관계형성 프로그램을 통해 상인이 자기 힘들을 키워 낼 수 있도록 하고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상인들의 문화 역량을 강화해 기존과는 다른 느낌으로 시장에 오시는 분을 대함으로써 주민들의 인식도 바꾸고 지역주민과 함께 동아리 활동과 공연을 해서 지역에 시장이 왜 필요한지 생각도 나누고 아이들 프로그램도 함께 해서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을 기획하고 있다. 그를 통해 협동조합을 만들고 조합원의 출자로 2012년에는 마을형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운영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3월쯤이면 한팀은 남문시장 근처에 사무실을 내서 문전성시 프로그램을 하고 다른 팀은 독산동 군부대 이전터에 2년동안 문화존이 설치될텐데 그곳으로 들어가서 문화예술 교육활동을 할 것이다”

박미경 자바르떼 서울지부장도 함께 인터뷰 했다.
“금천구에 와서 독산3,4동 지역아동센터 5곳에서 1일 캠프를 했다. 그때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 ‘죽음’에 대한 그림이 많았다. 스토리북을 만들었는데 여러차례 주인공이 죽으면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냐고 했는데 그때 많이 놀랐다. 공부만이 아닌 다른 삶에 대해 아이들에 알려주고 문화 예술 교육을 통해 문화적인 욕구와 성취감을 심어주고 그를 통해 아이들의 상상력도 키워주고 그 작업을 통해 다른 아이들의 생각도 읽게 해주고 싶었는데  캠프 한번으로는 무리였다. 노인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의 인식이 바뀌었으다. 정서적 치유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후 노인, 지역아동센터, 이주여성들과 함께하는 신나는 문화학교를 기획하고 있는데, 많은 프로그램을 지역에서 했으면 좋겠다“

힘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에서 문화 예술은 찬밥 신세다. 대형스타 이외에는 살수 없다.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 예술을 하는 환경이 아니다. 30대 넘고 결혼하면 문화예술을 떠난다.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주체들이 풍부해야 문화 예술가가 활동할 수 있다. 소녀시대만 좋아하면 안 되고 문화가 다양해지고 보는 문화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지 못하다. 문화에 대한 편견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올해로 자바르떼가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된지 3년째이다. 내년 부터는 더 이상의 인건비 지원이 없다. 자바르떼는 문화예술공연과 각종 행사 기획 연출 대행, 캠프프로그램 제작 및 위탁등을 통해 수익을 낸다. 안산과 인천의 지부를 독립해서 자립성을 높이고, 서울에서 역할을 높힌다면 내년에도 충분히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이은진 대표는 자신한다.

금천마을신문 최석희 기자
21kdlp@naver.com




#아빠와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딸


모처럼 일찍 퇴근한 저녁, 오늘은 다섯 살 딸래미에게 팔베게를 해주고 잠을 청하는데
옛날 이야기 한판 해주고 이제 그만 자자 이녀석 머리통이 왜 이리 무거워 다섯 살인데.
"재은이는 결혼이 뭔지 알어?“
“응, 남자하고 여자하고 같이 사는 거..”
“재은이는 나중에 결혼할 거야?”
“응, 아빠 죽으면 다른 남자하고 결혼할거야”
(흐미...니가 나랑 지금 결혼해서 살고 있냐?)
“아빠 안 죽으면?“
“아빠 나중에 재은이 엄마되면 죽는 거 아냐? ”
“야, 너 엄마도 결혼했는데 할아버지 살아계시잖아. 안그래?”
(약간 버럭)
“응 그건 그러네..”
(요것이 아주 애비 죽는 날만 기다리는 건지...)
“재은이는 결혼하면 아기는 몇 명 낳을거야?”
“음...엄마처럼 세 명! "
"엄마도 아기가 세 명인데 할아버지 살아계시잖아, 그렇지? “
“그러네..잘 모르겠당. ”
딸의 눈꺼풀에 잠이 스르르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천방지축 까불어대는 다섯 살 꼬마아가씨도 언젠가는 아빠의 품을 떠나 훨훨 날아가겠지.
그때까지, 그리고 그 후로도 내가 너를 많이많이 사랑할게...


#오빠는 선생님


지난 연말은 생각보다 조금 더 바빴다.
집에 와서 씻고 자고 일어나서 출근하기도 급급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여름날 죽순처럼 쭉쭉 자란다.

어느 날엔가 퇴근해서 숨돌리고 앉아 있자니 놀라운 광경.
둘째가 동화책을 펴놓고 하나하나 글자를 짚어가며 또박또박 읽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 여보야.. 재은이가 갑자기 왜이래?"
나의 우문에 대한 정답은 오빠에게 있었다. 학교다녀와서 동생하고 같이 책을 읽어가며
연습장에 한글자 한글자 써가며 글을 가르쳐 준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일이 나의 가정에 발생하다니~~
하긴 얼마전에 공책에 개발새발 연필로 난장을 부리던 기억은 난다만.. 어느새..ㅎㅎ
 2011년 한해,
너희들은 또 얼마나 커서 엄마아빠를 놀래줄 거니...
.기!대!만!땅!

김희준
(독산4동, 세아이의 아빠)

 

 

해 하나 심자

해 하나 심자

우리들의 가장 낮은 자리에

뜨겁게 떠오를 해 하나 심자


 -백창우 님 '우리들의 가장 어두운 자리에'중


 


새천년이 시작되던 그 해에, 장애인과 함께하던사회복지사 3명이 의기투합하여, '가장 낮은 자리에 뜨겁게 떠오를 해 하나'심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때 어린아이였던 아이들은 숫자상으로 성인이 되었고, 그 때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대학생(한양대학교 손말사랑동아리)들은 사회인이 되었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바깥세상을 들여다보고 선생님과 함께 세상속으로 꽤 자주 외출하여 질서를 배우고 돌아온다.  사회인이 된 자원봉사대학생들은 후원으로 돕고, 또 그 후배들이 명맥을 이어가며 선배들의 빈 자리를 채운다.


볕바라기장애인 주간보호센터는  시흥동 금빛공원 주변 동네에 새 둥지를 틀었다. 전에 있던 곳에 안전상의 문제가 있어 부모님들의 후원을 받아, 이사가지 않아도 되는 2층짜리 단독주택을 구입한 것이다. 마당에 있는 목련나무에 반했다는 신혜옥 공동대표는 바로 앞에 고물상이 있어 그 소리에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묻히니 이웃에게 소음으로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그 한마디 속에서 그동안 동네에서 겪었을 남모를 시름과 새 이웃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볕바라기'의 뜻은 '양지에서 볕을 쬐다'라는 뜻의 순우리말 고어이다. 이 말에서 느껴지는 한가함,  여유로움, 풍요로움이 좋아서 정했다고 한다. 장애인이라고 불우하게 살 필요는 없다. 장애인비장애인으로 나누지 않고 오로지 사람 하나로만 이해되고 싶은 것이 신대표의 깊은 소망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센터를 운영하며 '사람사랑'의 철학을 강조한다. 중증지적,발달 장애인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감각장애인(청각,시각 등)과 달리 겉보기에 장애인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이 사회에서 받는 상처는 누구보다 깊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사회생활이 되지 않는 이유를 일일이 해명하고 배려를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들은 장애인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사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이웃들의 편견없는 시선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래서 일주일 프로그램 대부분이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매 주 월요일마다  구로구에 위치한 까페에 가서 직접 차를 사서 마시고 손바느질을 배운 지가 일년이 되어간다. 배드민턴도 하고, 체육공원이나 안양천에가서 인라인스케이트와 자전거도 탄다. 은행나무도서관에가면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이렇게 아이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은 것이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라주었다.


특히 목요일마다 금빛휘트니스 헬쓰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아이들을 배려해주는 이웃이 누구보다 고맙다.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운동하는 지역주민들도 있는데, 시끄러운 아이들을 참아주고, 선뜻 공간을 내주니 지역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 휘트니스에 오는 회원들은 의아해하지만 계속 아이들을 봐왔던 회원분들이 '원래 오는거다'라며 아이들이 마음껏 운동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원해주니 아이들이 비슷하게 모방도 하고, 체력도 좋아졌으며, 무엇보다 운동 후 샤워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단다. 센터 주위에서 아이들소리가 시끄러울텐데도 이사온 후 한 번도 이웃분들이 쓴 소리 한마디 한 적이 없다는 것도 감사한일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솔선해서 동네청소도 하고 눈이오면 눈치우고, 길위의 얼음을 깨는 노하우(?)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길건너편 꽃집에서는 한달에 두 번 오셔서 꽃꽂이를 가르쳐주시는데 아이들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또 스스로 천연비누를 만드는데, 얼마전에는 대량 주문을 받아 비누를 만들었고 솜씨도 수준급이다.


이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자원봉사자와 후원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손말사랑처럼 10년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분들도 있고 지역에서 뜻을 함께 하시는 분도 있어 신대표는 함께하는 이들이 있으니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지속해 나갈 힘을 얻는다고 한다.


 마침 이미용자원봉사활동을 하고 돌아가는 자원봉사자 김영미(가산동)씨를 만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중증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없어 적응하는 데 어려웠으나 지금은 생활이 되었다며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또 자신의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자신에게도 더없이 좋다고 했다.



앞으로 볕바라기주간보호센터가 구상중인 프로젝트는 3년 후 거주시설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낮시간동안 지내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형태인데, 아이들이 점점 자라나고, 부모님들은 나이들어가면서 집을 떠나 독립(이들에게 독립이란 가정에서 떨어져 살 수 있는 것을 말한다)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평일은 이곳에서 지내고 주말에만 집으로 가는 형태의 거주시설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세워 부모님들과 몇 가지 안을 놓고 준비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이들의 작지만 커다란 몸짓에 함께하는 지역주민으로서 미안한 마음과 파이팅을 보낸다.


그리고 앞으로 이들의 삶의 여정에, 있는그대로 함께해주는 이웃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김수진,남현숙 공동취재
금천마을신문
gcinnews@gmail.com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산화한 지가 올해로 40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근로기준법은 우리사회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차례에 걸쳐
근로기준법기준법의 허실을 살펴 보겠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인권의 최소 기준이다. 3

- 법 위에서 잠자는 사람을 법을 보호하지 않는다.


예전에 우리 상담실에서 함께 상담을 도왔던 분은 중졸인데 노조 간부를 하면서 노동법을 익혀 간단한 상담을 했다. 그런데 그 분이 한탄하는 것 중 하나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나와도 노동법에 대한 기초상식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근로계약서도 딱 부러지게 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전세계약만 해도 계약서는 쌍방이 도장 꾹꾹 찍어 보관한다. 그런데 근로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드물지만 쓴 자기 근로계약을 보관하고 있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근로계약서는 오직 회사의 소유이다. 이런 무지가 자본가들의 편법과 불법의 무기가 된다.


근로기준법과 산재법 그리고 노동조합법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독립적인 과목으로 필수적으로 철저하게 교육되어야 한다. 그 사람이 장차 사장이 되던 노동자가 되던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하다. 누구나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동권은 불온한 것이었다. 노동조합 자체가 빨갱이의 소굴로 배척당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노동권은 여전히 감춰지거나 줄임을 당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이 생겨 임금이 오르고 해고가 줄었다. 하지만 97년 IMF사태 이후 임금은 도루묵이 되었고 고용불안은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정리해고는 비정규직 확산으로 이어졌다. 다시 한 번 저임금 장시간 불안노동이 되돌아 와 버린 것이다.

한 편으로 정권과 자본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집요하게 똥칠을 했다. 그 결과 일반 시민들조차 노동조합하면 이제 배부르고 이기적인 존재로 본다. 노동법을 겨우 보장받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노동귀족으로 보는 것이 대표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다. 정권과 자본의 이런 이데올로기 공세가 사실은 우리의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똥칠임을 알아채는 이가 너무 적다.


노동기본권은 생존권이다. 다른 말로 생명권이다. 생명권을 이기적인 무엇으로 돌리는 것은 정권과 자본의 탐욕 아래 노동자들의 생명을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용기는 드물다. 우리 상담경험으로 보면 해고나 체불 등에 대하여 10중 7은 아예 포기한다. 진정이나 고발을 하는 경우가 30% 수준이고 이들도 2-3년이 넘게 걸리는 소송을 감당하는 사람은 또 수만큼 준다. 법에 호소하는 경우도 열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니 자본들은 불법 편법을 하는 것이 준법을 하는 것보다 경영상의 효율이 높다는 계산을 하는 것이다.


끝까지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1/10의 사람은 주위로부터 독하거나 이상하게 본다.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면 회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등 불온시 하거나 이상한 집단주의로 왕따를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니 의무만 보이지 어디서 제대로 된 권리의식을 경험하겠는가? 권리의식이 제거된 사람들을 우리는 착하다고 한다. 하지만 권리의식 없는 착함은 우리를 탐욕의 호구(虎口)로 만들 뿐이다.  


법의 경구 중에 ‘법위에 잠자는 사람을 법은 보호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법이나 판례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자꾸 고쳐져야 하는 것이다. 똥이 더럽다고 피하듯이 눈 앞에 체불 등 불법에 눈 감으면 뒤에 또 다른 사람이 동일하게 억울함을 당한다. 나의 불이익을 바로 잡는 것이 다른 노동자들의 사람대접을 높이는 길이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왜?’라는 질문을 통하여 시대의 질문에 답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산3동  성일교회   최헌규 목사


최헌규 목사님을 소개한 김유선씨는 다음과 같이 소개를 했다. 목사이고, 성전(건물)을 짓는 것에 나서지 않고, 교인들과 함께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 활동에도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수더분하고 그저 편안한 동네 아저씨의 풍모를 가진 최헌규 목사를 만났다.


우선, 금천구와의 인연의 시작부터 물었다. “신림동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했다. 1997년 금천에 오게 되었고 그 전에는 당시 성일교회에서 신학교를 운영하였었다. 그곳에서 강의를 2년정도 했었는데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고 답한다.
2년의 인연으로 시작하여 당시 성일교회 목사님의 건강상의 문제로 최헌규 목사에게 제안이 왔었다고한다.

그렇게 자리 잡은 금천구. 첫 인상이 어땠을까? 처음 금천에 와서는 참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딱히 ‘이것이다’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처음 개척교회를 했던 신림동과의 분위기가 달라서인지 많이 낯설었다고 한다.
지금도 금천구와 친밀하지 못하다는 최헌규 목사. 그럼에도 지역 경로당 봉사도 진행하고 독거노인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매주 헌금의 10%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어떻게 하면 지역의 자존감을 높일수 있을까 고민이 곳곳에서 느낄수 있었다.
몇 년전  교회에 다니는 중학생의 학교에 가서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고 한다.
대화내용을 살펴본즉
“네 꿈이 뭐니?”
“몰라요”
“그것을 왜하니?”
“그냥요”.
‘모른다’는 것과 ‘그냥’이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으니 나중에는 슬퍼졌다고 한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게다가 요즘의 무한경쟁 속에 내몰린 아이들은 이겨도 상처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며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가 마을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비췄다. 주1회로는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면서.
 “한국교회의 큰 과제는 공동체성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라는 것은 두가지의 경험이 공유되어야 하는데 생활공동체의 경험과 경제공동체의 경험이라고 봅니다.”

생활공동체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걸까? 최헌규 목사는 한가지 일화를 이야기한다.
예전에 진도를 들렀을 때 한 묘비를 경구를 읽어 내려가는데 한 글자를 몰라 궁리 중 마침 지나가는 노인에게 물으니 어떻게 그 사람을 모르냐며 설명을 쭈욱 해 나갔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묘비가 누구인지 생각도 나지 않지만 그 노인이 가진 진도에 대한 애정, 자존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진도사람이라면 알고 있어야 한다는 자긍심을 느꼈다고 한다.
이런 것이 금천에서 필요한 것이고 생활공동체의 경험의 공유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럼 경제 공동체 경험의 공유는 무엇일까 ? 한마디로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요구가 자제되어야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만큼, 자기가 쓰임이 있는 만큼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화제를 바꾸어 평화활동에도 참여하시게 된 동기를 물으니 조합활동(한벗조합)을 IMF때부터 활동했는데 조합원 중 한분이  평화 시민운동을 하는 분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스톤워크’활동으로 이어졌다. 

‘스톤워크’라는 것은 미국 911테러로 희생된 사람들 중 아프간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반전평화운동으로 세계 분쟁지역에 ‘평화’라는 글귀가 새겨진 비석을 수례에 싣고 순례를 하는 행사다.
이 국제반전평화순례운동의 2005년 주제가 세계2차 세계대전 희생자 추모여서 일본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까지 600km거리를 행진했다. 그 후 일본 참가자들이 일본인들도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고통받고 희생된 아시아인들에게 사죄해야한다는 의지가 모였고 그 첫 출발지가 한국이었다.

<사진 : 스톤워크 홈페이지>

그래서 진행된 것이 ‘스톤워크 코리아 2007’이었다. 그 당시 실행위원으로 최헌규씨가 활동했다. 당시 부산자유공원에서 밀양, 남원, 광주, 공주, 수원, 서울을 지나 임진각까지 행진하였다.
 “참여한 일본인들의 중심나이가 60대 후반이었습니다. 이들은 일본에서 60대 학생운동 출신들인데 이후 지역에서 지역운동,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20대에 가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 꿈을 실현하려 노력하는 모습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며 당시를 회상하였다.

최헌규 목사는 처음 목회를 시작하면서 또 하나의 같은 교회가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의 교회가 되고 싶어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것은 왜라는 질문을 통하여 시대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익숙한 삶을 사는 것은 참 쉽죠. 특히 신앙인으로 살아간다고 할 때는 그것에 걸맞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말씀에 ‘원수를 내몸 같이 사랑하라’했으나 현실에서는 한 교회를 다녀도 이해관계가 갈리면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이런 문제를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동체를 이야기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항상 '왜'라는 질문 속에서 안주하지 않으려는 최헌규 목사의 노력이 주민(교인)과 함께 금천구에서 꽃필 날을 기대해본다.


이성호 기자
rangedeep@gmail.com

B-boy 국가대표를 꿈꾸는 `한손버티기 크루'

함성과 열기가 가득한 이곳.
아이돌공연장  못지않다. 여기는 청소년동아리축제 현장이다.
그중 현란한 댄스로 가장 많은 환호성을 받은 남학생들에 눈길이 간다. 그들은 금천구 유일의 비보이댄스팀
`한손버티기 크루'다.



4년전 한동네 사는 아이들이 시흥중학교에서 동아리를 만들어 시작했다.
졸업후엔 각자가 다른학교에 진학했지만, 청소년수련관 연습실을 무료로 대여해 현재까지 팀을 꾸려왔다. 
`한손버티기크루'의 맏형인 안재동(21)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3시간씩 연습하고, 주말엔 각자 자유연습을 한다.”고 한다. 팀원은 7명이며 안재동씨 빼고는 모두 18~19살의 고등학생이다.

후배들은 안키우냐는 질문에 청소년수련관 관계자한테 문의하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끈질기게 하는 친구들은 별로 없다고 한다.  아주 많은 연습과 힘이 들어 요즘 어린친구들은 쉽게 포기하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아무래도 대다수가 고3이라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을 거 같고 부모님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했다.
리더인 안재동씨는 합기도 사범 일을 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사를 통해 각종 대회나 행사에서 공연을 한다. 안씨는 2009년에는 시애틀 비보이 섹션 심사위원에 위촉될 정도로 실력을 갖춘 프로다. 부모님들은 처음엔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꾸준히 하는 것 보시고 지금은 이해해주신다고 한다.

비보이 팀이 그것도 아마추어가 아닌 실력을 갖춘 프로팀이 금천구에 있다는 게 놀랍고 또 놀라웠다. 하지만 이들은 제대로 된 연습실이 없다. 지금 사용하는 청소년수련관 연습실은 9시까지만 열려있어 조금 늦게 모이면 연습 할 시간이 부족하다.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 금천구내에 있었음 좋겠다고 한다.

“구로청소년수련관이나 노원청소년수련관은 연습실 뿐 만 아니라, 매달 한번씩 비보이 배틀 경연이 있을 정도로 많은 무대를 만들어준다. 금천의 청소년들도 다양한 문화예술을 경험할수 있도록 열린 공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한손버티기 크루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독일에 유명한 비보이대회가 있는데 국내 예선에서 1등을 해야만 대회출전이 가능하다고, 열심히 연습해서 꼭 출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4년간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브라질 공연에서 현지 비보이들을 만났는데, 말은 안 통했지만 춤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었다고, 그때는 정말 춤추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한다.

비보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에게 “어른들은 비보이를 머리로 바닥이나 청소하는 짓으로 안다. 비보이하는 애들은 불량청소년으로 보는데,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비보이들이 한국에 많다. 비보이들도 한류스타인데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았음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단다.

마지막으로 금천구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하니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돈 걱정 같은 거 미리 하지 말고, 학생이니까 뭐든 지금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일에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비보이는 연습 한두번 하는걸로 되는것도 아닌데 많은 친구들이 너무 쉽게들 포기한다. 힘들어도 꾸준히 노력해야 꿈을 이루는 것이다, 그 꿈을 쉽게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열정과 패기로 무장된 “한손버티기 크루” 조만간 세계대회정상을 차지할 그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른들의 상상을 뛰어 넘는 아이들이 금천구 구석구석에 있다고 생각하니 몇 년 후의 금천구가 기대 된다.

김진숙. 김선정 공동취재
gcinnews@gmail.com

 금천in이  만난   금천人   '두번째 이야기'

마을의 흔적을
간직한 금천

`이곳에서
내가 너무나 많이
받았구나’
생각했습니다

‘산아래 문화학교’
김유선(44세)씨




유선씨는 영일초, 강서여중, 동일여고 를 나온 금천구 토박이다.
지역에 관심이 가지는 계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IMF실직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실직 전에 어린이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 일을 했었고 동화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IMF로 직장을 잃었고 집앞에  ‘동화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 회원 모집현수막을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은행나무 도서관 활동으로 이어졌고, 금천구에 환경, 생태 관련한 단체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숲지기강지기’를 만들게 되었다. 지금은  탑동초등학교 앞 작은 공간에 자리고 잡고 ‘산아래 문화학교’를 준비중이다

Q.산아래 문화학교를 소개하자면  무엇이가요?
A. 마을의 모두가 교육자이자 피교육자가 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장소가 금천구든 아니든 함께 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소에 메이니까 너무 힘들다. 소규모의 사랑방처럼 쉬었다 가는 강좌. 학교 같은 것이 아닌 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
예를 들면 뜨개질 교실을 열게 되면 주위에 잘하는 분이 강사가 되어 다른분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누구나 배우고 누구나 선생님이 되는 학교를 꿈꾼다.

Q.문화학교를 생각하게 된 동기를 꼽는다면?
A. 나의 변화를 보며 마을에 대한 의미를 다시 행각하게 되었다.고등학교때 우리 동네에서 절대 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서울의 다른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있는 살고 싶은 동네가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금천, 이 동네에서 살면서 내가 금천이라는 동네에서 받은 것이 정말 많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이 동네에 대한 정체성을 얻었다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도 이런 느낌을 함께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Q.금천에 대한 애정의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A. 어느날 갑자기였는데 돌아보니 ‘숲지기강지기‘활동을 하면서 금천에 대한 애정이 높아졌다. 금천에 있는 놀이터, 학교, 안양천, 호암산,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걸어다니면서, 회원들의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금천구 문화제를 찾아 다니면서, 순흥안씨 묘역을 찾아다니고, 한우물을 찾아다니면서, 힘들긴 하지만 그런 과정들이 동네에 대한 애정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Q.평범한 회사원이 ‘숲지기강지기’를 만들었고, 이번에는  문화학교를 만들려고 하는데 힘들지않나?
A. ‘숲지기 강지기’는 처음 공부모임부터 시작했다. 그후 모니터링을 시작했고 카페를 운영했고, 구청 환경과와 연계가 되고, 이후 초,중,고 아이들과 안양천, 호암산등을 돌아보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런던중 생명의숲의 김혜숙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대표님으로 모셔왔다. 그와 함께 사무국장으로 5년을 약속했는데 7년을 함께 했다.단체를  운영,지속하는 것이 참 힘들다. ‘숲지기강지기’ 7년의 활동이 몸에 병이 되어 쉬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쉬는 과정에서 문화학교를 생각했다.
나는 ‘이것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면 해야 한다. 그게 더 행복하다. 힘들다는 것도 뻔이 알면서도 웬 오지랖인지 그러고 싶다. 은행나무 도서관도 그렇고, 숲지기강지기고 그렇고 지금도 존경하고 사랑한다. 앞으로도 평회원으로 도와주고 함께 할 것이다.

Q. 금천에 대한 바램?
A.‘금천구는 못사는 동네, 교육이 후졌다’라는 자기비하의 말이 너무 싫다. 학부모 스스로 비하하는 것을 경계한다. 다른 곳에 없는 것이 금천에는 있다. 내 자식이 에쁘듯이 금천자체의 아름다음을 만들 수 있다. 작지만 나름대로 마을 문화가 살아있는, 소통하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

Q.현재 금천구청의 방향에 대해서 한미다 한다면?
A. 그냥 대놓고 이야기 하자. ‘대학많이 보내려고 합니다’라고. 3년치를 먼저 가져온 재정을 쏟아 붓는다? ‘소득수준이 높다’는 ‘행복한 삶’이라는 도식이 맞을까? 그럼 주민의 삶을 그렇게 올려 놓을 수 있나?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본다. 결국 삶에 도움이 안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좋은 아파트가 많고 혁신학교가 많은 것보다 병원 복지시설이 있어야 주민생활이 높아지지 않을까?

Q.금천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것일까요?
A. 재래시장, 골목시장이 많다.  골목이 많다. 2시 동네사람, 우리 마을의 문화가 있다.
마트가 아닌 시장에서 만나는 동네사람들 끼리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골목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화가 있다. 그것이 금천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전에 독산동에 살 때 동네 아줌마들이 나에 대해서 너무나 많이 물어봐서 힘들었다. 왜 그렇게 내게 관심을 둘까 고민이 들 정도였다.  담장허물기사업의 의외의 효과도 있다. 사람들이 쉽게 말을 건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아는 척을 하게 되고 주위에 뭐든 챙겨주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것이 마을의, 금천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이성호 기자
rangedeep@gmail.com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산화한 지가
올해로 40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근로기준법은
 우리사회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차례에 걸쳐
 근로기준법기준법의 허실을
살펴 보겠습니다.

두번째 이야기
쌍용자동차 77일 파업 투쟁 기간에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은 언론 앞에서 당당하게 "불법을 저지른 이들에게 인권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군사독재 정권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고문이다.
고문의 악랄함을 폭로하자 많은 국민들은 "간첩도 아닌데 고문은 너무했다."라는 반응을 했다. 하지만 인권은 주권이 아니다. 간첩도 인권이 있다. 가장 열악하고 힘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인권이다. 전쟁포로도 제네바 조약에 의한 보호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자기 자식을 때린 사람을 조폭을 통해 납치해서 폭행을 가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돈과 폭력이 유착되어 있음과 돈이 폭력을 지배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돈을 가진 자들이 사회적 약자나 국민에겐 준법을 강조하지만 그들의 세계에선 법 절차가 부재함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엉뚱하게 주류 언론들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마음만 강조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선경재벌의 일족인 최철원이라는 모회사 대표가 1인 시위를 하는 노동자를 꾀여 야구방망이로 한 대에 얼마씩 하면서 구타를 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가진 자들의 치사함과 잔인함과 폭력성이 진저리쳐지지만 문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왜 이럴까?


최소한의 양심과 염치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의 소유에만 집착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발전 지상주의, 출세 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가 양심과 염치와 책임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권을 개인의 소양에 맡기는 것은 너무나 불안전하다. 그래서 근대국가에서는 양심과 염치의 대강을 '헌법'이 규정한다. 그리니 노동법을 지키지 않고 노동조합을 적대하여 아예 무노조경영을 한다는 삼성의 논리는 헌법을 부정하는 헌법파괴 논리다.
헌법을 일상적으로 파괴하면서 잘했다고 웃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주장했다고 조합원보다 10배나 많은 용역깡패를 동원한 현대자동차를 보라.

근로기준법의 총칙을 보면 "근로기준법의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라 되어 있다. 40년 전에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도 인간이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한 것과 요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하여 인간답게 살아보자!' 한 것은 노동자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보장하라는 인간선언과 동일하다.

2007년보복폭행 혐의로 구속 기되외었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사진출처 : 연합뉴스

노동자에게 가혹한 폭행에 '맷값 폭행'을 건네 물의를 일으킨 재벌가 2세 최철원씨 출처:한국경제



40년 전과 동일한 구호를 외쳐야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가 참으로 가엽지만 이런 가여움도 결국은 최저기준도 지킬 생각이 없는 사용자들의 노동법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다.
근로기준법에서는 노사가 동등한 위치에서 자유의사에 의해 근로조건을 결정하라고 하지만 어떤 회사가 이렇게 할까? 남녀,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할 수 없다는 '균등처우' 조항이 있지만 여성들의 차별, 이주 노동자들의 차별은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근기법 제 7조는 폭행의 금지 조항이다. 어떤 사유로도 폭행 구타를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최철원같은 이들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그리고 상사나 나이를 앞세운 폭력을 감수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 8조는 영리로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는 '중간착취 배제'조항이 있지만 현실은 정권에 의해 "파견법" 등 사람장사 행위가 공공연하게 확대 조장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나 돈을 가진 이들은 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어처구니없는 풍조가 돌고 있다.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넘어 공공연하게 법을 파괴하고 있다. 구사대나 용역을 동원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과 배제, 그리고 최철원처럼 아예 직접 구타까지 헌법이 보장하고 법이 구체적으로 정한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을 외면하고 있다.


직업이 사장에겐 돈줄이지만 노동자에겐 생명줄이다. 그런데 요즘은 돈줄을 위해 생명줄 자르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사람에서 승냥이 이리 같은 짐승으로 만드는 것임일 알아야 한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법도 지키지 않으면서 준법이니 질서니 하는 것은 정말 낮 뜨거운 모습이다.
사람다운 세상을 위해 사장도 노동자도 그리고 그 누구도 무엇보다 먼저 노동자 그 중에서 근로기준법을 공부해야 한다.
노동자는 자기의 권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사용자는 최소한의 양심과 염치를 지닌 경영을 위해서 말이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독자 여러분들의 다양한 소리를 듣습니다.  좋은 정책 제안, 비판, 토론의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공간이고자 합니다.




 흥청망청  금천구 업무추진비
금천구청에 적정한  시책업무추진비 1억5천이다.
8억원을 감액하라!!

 
경기도 성남시는 면적 10배, 인구4배, 예산은 6배로 금천구보다 큰 도시이다.
금천구가 성남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 있다. 그것은 시책업무추진비 집행액으로 총액으로 1.6배이고, 주민 부담율은 4배이다.
성남시민은 1인당 628원, 금천구민은 3,955원을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성남을 포함하여 몇 개 지자체와 금천구의 업무추진비 집행현황을 비교해보았다.(아래표)

인근에 있는 인구 100만 규모의 성남, 수원, 부천 각 6억,8억4천만원,5억6천만원,인구 250만인 인천광역시는 14억9천만원을  사용하였다.인구 및 재정규모가 그리고 업무영역이 유사한 자치구인 인천서구청은 1억6천만원이었다.
금천구청은 인천광역시 다음인 10억에 가까운 돈을 사용하였다.

2009년 결산서를 확인하게 된 계기는 2011년 예산안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의구심 때문이었다.
2011년 금천구 예산안에서 업무추진비는 13억 9,270만원(0.57%)편성되었다. 이중 시책업무추진비는 9억4,527만원(0.38%)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구청의 예산안을 보면 이해되지 않는 항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로 부서별 예산서를 펼치자 눈에 들어온 것이 구의회사무국예산이었다. 축구단 운영과 체육행사를 위해 1,800만원을 편성하겠다는 황당한 내용이다. 구의회에 축구단이 있었나?

두 번째로 전통시장 활성화와 관련한 예산이 4,120만원이 책정되었는데 민자보조금이 4천만원이다. 그런데 이 민자보조사업에도 업무추진비 120만원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남문시장 현대화 사업에 약 50억이 들었고 올해 그 사업이 마무리하면서 4천만원이 책정되었으면 그것으로 끝인데 웬 120만원짜리 업무추진이 필요한 것일까?


반면, 초등학교 보건교사 간담회에 9만원이 책정되었을 뿐이다.또 하나 경이(?)로운 것은 구청장을 직접 보좌하는 소위 측근이라는 부서(기획홍보과, 자치행정과, 행정지원과)에 3억2천만원(34%)이 편성되었다는 것이다.
행정지원과에는 시책업무추진비와 별개로 기관운영업무추진비가 구청장,부구청장 몫으로 1억3,420만원이 책정되어 엄밀히 따진다면 4억5천만원이다.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예산이 어떻게 편성될 수 있는가?
시책업무추진비 편성기준이 전년도의 예산을 기준에 따라  관행대로 편성 했다고 강변할 것이다.
이는 지방단치단체들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및 제 시민단체의 업무추진비 공개요구에 거부로 일관하면서 기준금액을 턱없이 높여낸 결과이다.

이제 이 부당한 예산에 대폭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사실 2011년도 시책업무추진비는  작년 금액보다 3억원 가량 줄기는 하였다.
하지만 타 지자체와 비교하여 금천구청에 적정한 시책업무추진비 1억 5천만원라고 생각한다. 
구청장은 수정예산을 제출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구의회에서 감액하여야 한다.

그 감액액 7억5천만원을 복지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업에 사용한다면 얼마나 훌륭하겠는가?  금천구좋은예산연구모임(이하 ‘연구모임’)에서는 2011년 금천구예산서를 분석중이다.
예산서 분석의 기준은 상식적인 판단으로 정했다. 비전문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기준이기에 그리 정했다.
하지만 금천구청의 예산서 일부에서는 그 상식에 맞지 않아보인다. 연구모임에서는 「2011년 금천구예산에 대한 의견서」를 구청장 및 구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금천구 좋은예산 연구모임
민상호

셋째가 생겼다는 후배에게 해 준 말

 

김희준

 

1. 2008년 6월의 어느 날.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법은 없지 싶었다. 셋째 아기가 들어섰다니 말이다. 이제 겨우 둘째 녀석 키워놓고 맘편하게 좀 살아볼까 했는데 임신과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는 2년간의 '고난의행군'이  또다시 시작할거라는 사실에 그저 털썩 주저앉고만 싶었다. 그 때 그런 내 마음을 다잡아주신 분이 계셨으니 당시 우리 과에 같이 계셨던 형님이 그 분이었다.  무슨 일 있냐는 지나가는 질문에 '네. 사실은요..흑흑..' 하며 털어놓은 내 고민에 그 분은 단호한 표정으로 축하한다며 낳아놓으면 모두 축복이 될 아이들이니 뭘 걱정이냐며 내 고민을 쓸데없는 기우로 일축해 버리셨다는.

아, 그런가요? 그렇죠..? ㅋㅋ 제가 사실 아기들은 되게 좋아하기도 하거든요..ㅎㅎ. 이상하게도 그 뒤로 내 맘은 아주아주 편안해졌다. 우리 아기는 딸래미로 태어났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딸딸이 아빠 되는 거잖아요..

 

2. 2010년 9월의 어느 날. 회식자리였다. 한 후배가 조용히 이야기한다. 셋째가 잉태되었다고. 그렇게 걱정하는 표정은 아닌 듯 하지만 겪어보지 못한 사태에 대한 약간의 걱정이 서려 있었다. ㅎㅎ. 난 단호한 표정으로 말해 주었다. 낳아놓으면 다 축복이 될 아이들이니 뭘 걱정이냐고? 축하한다고. 아이 셋 아빠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어서 축하주 한 잔 더하자고. 그렇게 내가 겪은 대로, 나에게 힘이 되어준 그대로 그 친구에게 곱빼기로 더해 돌려 주었다. 그럼요. 아이 셋 키우는 거 힘들다고 생각말아요. 힘든 만큼 그에 곱하기 백보다 더 많은 행복이 찾아올 터이니 아무 걱정 하지말아요. 아마 그 친구도 내가 받았던 그런 위안과 격려를 느꼈을까. 확신할 순 없지만 작은 도움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3. 2010년 11월 3일 오늘.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는 길. 이제 말이 막 늘기 시작하는 막내에게 아빠 토닥토닥해주세요. 하면 고사리손으로 내 어깨를 성의없이 툭툭 쳐준다. 그렇게 조금씩 너의 세상은 열리는 법이지. 내가 길잡이가 되어줄게.



 

'어려운 사람이 쓸쓸히 돌아가지 않게하라' 는 고 김수환추기경 님의 요청으로 1975년 금천구 시흥동에 전진상의원이
생겨났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전진상 의원은 여전히 시흥동 그 자리에 있다.
노란머리의 외국인 간호사와, 약사, 사회사업가 3명의 주말진료로 시작한 전진상의원이 생긴 이후, 이 동네에 어떤일이 벌어졌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전진상 의원/복지관의 문을 열었다.

 

기자를 맞이하는 최혜영 사회복지사는 오늘도 여전히 분주하다.  대기실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진료상담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가 진료상담을 한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지만 전진상의원/복지관의 시스템을 알고나면 쉽게 이해된다. 이곳은 단순한 병원이 아니다. 의료와 사회복지가 통합된 개념으로, 환자가 왔을 때, 사회복지사가 먼저 상담을 하여 의료적인 문제 뿐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알고 적절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즉, 의료적인 필요를 가지고 온 환자들의 근원적인 삶의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가난의 연결고리를 끊는 해법으로 '의료와 교육의 기회 제공'을 선택했다.  그 일환으로  의원, 약국,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1977년부터 무료유치원도 운영하였으나, 보육지원정책이 일반화되면서 무료유치원에 대한 필요가 감소하여 작년부터 자연스럽게 운영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쯤에서 전진상이 왜 금천구를 선택하게 되었는 지 궁금해졌다. 대답대신 보여준 당시 동영상에는 지금의 벽산아파트 자리까지 판자촌으로 빽빽히 들어선 1975년의 시흥동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1980년부터 의료보험이 본격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에 설립당시 판자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병이 났을 때 속수무책이었으므로 무료의료서비스에 대한 필요가 절실했던 것이다. 의료보험과 보호가 적용되는 지금은 차상위계층 등의 저소득층의 전월세계약서를 확인하여 진료대상을 정하고 있다.



가정의학으로 시작된 의원은 35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산부인과, 신경과,신경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외과, 비뇨기과, 재활의학과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이처럼 종합병원 수준의 진료가 가능한 이유는 60 여명의 의료진 자원봉사자가 있기 때문이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주 단위로 돌아가며 저녁시간에 자원진료를 하고있는데, 밤11시가 넘어서까지 진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전진상의원은 낮보다 밤에 더 생기를 띤다. 물론 낮에는 상주하는 가정의학전문의가 진료를 보고있다. 이처럼 주야간진료가 매일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공동체생활을 하며 상주하는 6명의 의료팀과 자원봉사자 후원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재 전진상의원/복지관에서 중점적으로 펼치고 있는 것은 말기암환자의 호스피스 사업이다. 진료의 기회가 제한되어있는 중증환자에게 방문진료를 시작하면서 2009년부터 호스피스사업을 의료보험수가로 적용받기 위한 시범사업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여명이 6개월 이내인 말기암환자인 경우, 암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병원소견서를 구비하면 누구나 무료로 입원하여 여생을 보낼 수 있다. 이는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일일 것이다. 실제로 독산동에 거주하시던 59세의 유방암 환자는 가족과의 불화로 혼자 살다가 전진상의원을 알게되어 성모병원과 연계되어 항암진료를 받고 뇌로 전이된 후 이곳에서 2개월동안 외롭지 않은 여생을 보내셨다. 말기암환자의 돌봄 뿐 아니라, 완화의료센터를 통해 음악,미술치료, 가족간화해 등의 정서적인 부분과 환자의 사후 가족모임까지 진행되고 있는데 말기암환자와 가족들의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한 세밀한 배려가 느껴진다.

최혜영 사회복지사는 "말기암환자들의 입원비와 저소득층의 경우 간병비까지 지원되지만 알지 못해 이용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시니 안타깝다" 며 기자에게 홍보를 부탁하였다.  문의전화 02)802-9313 / 02)802-9311

 

병원을 나서며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르신에게 이 병원을 이용하시는 이유를 여쭈어보았다. 의료비는 둘째치고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잘 낫는다고 입소문이 나서 친구의 소개를 받아 진료를 보러 오게되었다고 한다. 12년째 시골에서 올라와 한달에 한번씩 이용하신다는 옆에 계신 할머니도 여러곳에 가 보았지만 이곳만큼 진료를 잘 하는 곳을 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 특별한 의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유독 이 병원에만 오면 아픈 것이 쉽게 낫는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곳에서는 몸의 병 뿐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의 전반적인 삶에 관심을 가지는 의원, 이런 기관이 오랫동안 금천구에 자리잡고 묵묵히 일해오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김수진 기자
gcinnews@gmail.com

[11월24일 금나래아트홀에서 열린 2010년 청담노인대학 작품발표회에서 청담실버극단이 노인대학 및 동아리를 소개하는 퍼포먼스공연을 선보였다.]

② 청담종합사회복지관 / 실버연극동아리

 

단장 : 수르야 (극단 하얀코끼리 대표)

연극지도 선생님 : 김선혜 (연극배우), 박진원 (연극배우)

단원 : 박만선, 송정자, 문수자, 이진아, 박성애, 조명희, 강인순, 서복희

 

 

       청춘은 말없이 흘러흘러 갔구나

      담담하게 말없이 살아온 내 인생

   실수나 안할지

     버거운 마음으로 찾아온 실버 극단

      극락이 따로 없네

     단비가 내리네


 

우리마을 어르신들께서 지난 10월 연극동아리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청담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았다.

실버극단이 연습실로 사용하고 있는 4층 세미나실 문밖으로 쿵짝쿵짝 빠른 비트의 음악이 세어 나온다.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책걸상들을 양쪽 벽으로 붙여 가운데에 간이무대를 만들고 아직 미처 다 외지 못한 대본을 들고 이틀 앞둔 2010년 청담노인대학 작품발표회에 선보일 퍼포먼스 연습에 한창인 모습이다.

 

퍼포먼스의 시작은 박성애(65)씨의 간드러지는 노래와 함께 시작된다. 노래 실력이 예사롭지 않아 전에 노래를 하셨느냐는 질문에 그냥 평소에 즐겨 부를 뿐이지 뭐 그렇게 잘 부르는 것도 아니야라며 수줍게 대답하신다. 현재 간암으로 투병중이란 말씀에 기자를 깜짝 놀라게 하셨다.

더군다나 혈액암을 어렵게 이겨내시고 찾아온 간암 이라 몸과 마음이 더욱 힘들었을 것 같은데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박성애씨의 아름다운 얼굴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삶의 즐거움을 찾아 실버극단을 찾게 되었다는 박성애씨는 극단 활동뿐만 아니라 아침에는 일도 하시고, 청담종합사회복지관에서 봉사활동도 하신다.

 

친구 따라 강남 왔다는 이진아(65)씨는 박성애씨와 봉사활동과 실버극단에서 연극을 함께 하신다. “친구가 재미있는 거 있다고 가자고 해서 쫓아 왔는데 내가 연극을 할게 될 거란 건 꿈에도 생각 못했어, 근데 이게 참 재미있네~ “라며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극단의 맡언니 서복희(75)씨는 코스프레를하는 학생에게 물어 가발과 학생복을 직접 준비해 오셨다. 공연에 사용될 소품까지 직접 챙기시는 모습이 모두들 맡언니 맡형 같으실 것 같은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맡언니, 막내등의 역할이 있는가 보다. “대학생 때 중대 숙대 합동공연으로 차범석 연출 [깨어진 항아리]란 작품으로 연극무대에 선적이 있었지, 그때가 너무 그리웠는데 마침 실버극단 모집소식을 접하고 바로 들어왔어라고 말하며 생기발랄한 20대 초 청춘을 회상하시는 서복희씨의 두뺨은 여대생 아가씨로 돌아간 듯 수줍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청담노인대학에는 이렇게 연극동아리도 있지만, 사진동아리, 댄스동아리를 비롯해서 컴퓨터, 영어등을 배울 수 있는 노인학습프로그램들이 많아, 다늙어서 주책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제 배워서 어디다 써먹겠어 라고 생각히는 이들도 많은데 아직 살아갈 날들이 10~30년은 더 남았는데 남은 인생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야 하지 않겠어? 우리 마을 노인네들한테 많이들 알려서 같이 남은 생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씀하셨다.

 

실버극단 자칭 꽃미남 청일점 박만선(65)씨는 학생시절 연극을 해 보고 싶었어, 그런데 공부 하느라 기회가 되지 않더라고,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 먹여 살릴라면 돈도 벌어야 하고 그러다 꿈도 멀어져 가고, 어느새 나이가 들어 정년퇴직을 했지, 갑지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도는거야. 인생은 60부터라고 인생 제 2막을 그냥 흘려 보내버리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어, 꿈으로만 간직했던 연극은 기본이고, 웃음치료사 1급자격증, 레크레이션 지도사 2, 언제 쓰러질지 모를 노인들을 위해서 심폐뇌 소생술 자격증 등을 취득했지, 그리고 이번에 금천아카데미 기자학교에도 나가는 걸~ 행복은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야, 스스로 찾아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지박만선씨는 실버극단의 단장인 수르야씨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르야단장님은 젊은 분인데도 자상하게 연기지도도 잘 해주시고 열심히 노력하면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심감을 갖게 해줘, 단순히 지식만을 전달 하는게 아니라 풍부한 현장경험을 토대로 노인들이 쉽게 이해 하고 배울 수 있게 가르치시는 것 같아수르야단장님이 실버극단은 처음 이라는 기자의 말에 박만선씨는 깜짝 놀라셨다. “노인들 대하고 이해 하는걸 보면 다른데서도 실버극단을 가르킨적이 있는 분 같았지 뭐야

 

현재 극단 하얀코끼리 대표이자 장애청소년 연극동아리에서 연극 지도를 하고있는 수르야(예명)단장님은 하얀코끼리에서 배우로 활동중인 김선혜씨와 박진원씨와 함께 실버극단을 지도하고 있다. “제가 혹시라도 빠지는 일이 있어도 어르신들 연기지도를 김선혜, 박진원선생님이 계속 하실 수 있도록 함께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어르신들께서는 청소년들과 달리 삶의 경험이 풍부해서 대사를 외는데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내용적 이해도는 훨씬 빠르세요. 자발적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시려고 노력하시고, 연기수업 중 집중력도 높으세요. 다만 많은 대사와 다치실 수 있으니 극한 움직임은 자제하고, 대본의 프린트 글자크기를 크게 하는 등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라는 수르야단장님의 말에서 어르신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9
월 말에 실버극단을 준비했고 10월에 창단 했어요. 아직 정식 극단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죠.  그래서 이번엔 실버극단을 알릴 수 있는 짧은 퍼포먼스를 준비했습니다. 어르신들께서 직접 청담실버극단으로 6행시를 지으셨는데 그게 또 너무 잘 지으셨어요. 어르신들의 마음을 정말 잘 표현하였습니다. 그 육행시도 퍼포먼스에서 함께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번엔 시간이 촉박하여 짧은 퍼포먼스밖에 준비 하지 못했지만 내년 가을 즈음엔 꼭 연극공연을 올릴 계획입니다. “ 라고 말해 내년에 선보일 실버극단의 인생 제 2의 진짜 무대위에서의 서막이 올라갈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 진다.

 

[청담종합사회복지관 4층 세미나실에서 실버극단은 2010년 청담노인대학발표회를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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