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호암산 315m(해발) 정상에 큰 우물이 있다. 물 마시자고 그 산꼭대기에 누가 우물을 팠을까 생각하면서 올라가다 보면 큰 숨을 몰아쉴 일이 몇 번 생긴다. ‘아이고, 장난이 아닌데’라는 말이 절로 나올 때 쯤 작은 암자를 만날 수 있다.’
이 때쯤이면 몸이 산에 적응되어 가볍게 주변을 둘러볼 정도가 된다. 조금 더 힘을 내서 몇 걸음 더 내디디면 시야가 갑자기 “확” 트인다. 공중부양 한 것처럼 서울시내와 하늘이 한 시야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더 가까이 가서 63빌딩이니 남산이니 북한산을 내다보면 멀리 일산까지 보이니 안전하게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가자.

‘그래 뭐, 올라온 보람이 있다.’ ‘속이 뻥 뚫리는 거 같다’며 쉴 자리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다 보면 우아한 소나무가 곁을 지키고 있는 큰 연못(?)을 만나게 된다. 들어가지 못하게 난간까지 둘렀으니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여기가 그 우물, 한우물이라는 것을 놓치게 된다. 

동서 22m, 남북 12m, 깊이 1.2m이다보니 우리가 알던 동네 아낙들이 물을 긷던 그 우물이 아니다. 게다가 자세히 둘러보면  상하층이 구분되는 거대한 석축을 볼 수 있다. 석축 중엔 석구지(石拘池)라는 글귀 적힌 것도 보인다. 숨은 그림 찾듯 살피면 보인다. 보이지 않는 우물 아래 펄흙 속엔 발굴당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의 석축은 동서 17.8m, 남북 13.6m, 깊이 2.5m로 지금 보이는 조선시대 우물크기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구름을 담고 있는 한우물 아래를 내려다보면 석축아래 또 다른 석축의 흔적이 보인다. 이 때 발견된 유물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이나 한양대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이 우물 속에는 통일신라시대 서해바다에서 한강 남북 쪽을 두루 살피며 나라 걱정하던 군병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전에는 백제의 땅이었으니 그들의 이야기도 있다.  조선시대 백자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그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 우물이 넉넉한 크기인가보다. 가물어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있으니 온 마을 사람들의 기도가 담긴 우물이다. 한없이 크다.

고요하게 멈춰 있으나 짙푸른 물속 깊은 곳에 그 많이 이야기가 담겨있으니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백운산, 청계산과 더불어 우리 동네 물줄기의 시작이니 처음으로 돌아가 새해 맞이하러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만하다.
어느 해인가 1월1일 영하6도에 그 곳까지 올라가다 얼음이 됐다 풀려나기도 했다. 많은 인파에 좀 놀랐다. 그리 요란하지 않게 가도 그 우물은 늘 마르지않은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깊이 들여다보고 내 이야기도 담아두자. 맘 놓고 못한 얘기, 속상한 얘기, 슬픈 얘기, 불쾌했던 얘기, 신났던 얘기, 재밌는 얘기, 맘속으로 그리는 은근한 속내도 두고 오자. 갈증 났던  이야기의 목마름을 풀고 오자. 동네 우물가에서 풀지 않으면 어디서 풀겠는가!

우물에서 벗어나 30미터쯤 가면 왠 돌짐승이 나타난다. 처음엔 산성과 주변을 지키는 해치상이라고 했다는데(호암산이니 호랑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한다.)
석구지(石拘池)라는 기록의 발견으로 “석구”라 불리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해치일 수 없는 둥글둥글 한 인상이다. 뒤태는 더 둥실둥실 귀여운 석구라 웃음이 절로 난다. 오래된 세월에 더 부드러워진 모양새이다. 그 주변을 돌아보면 호암산성의 흔적도 발견된다.

갑자기 뾰족 솟은 흙더미와 그 아래쪽엔 석축을 쌓은 흔적이 옛 산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로부터 나라를 지키던 병사들이 서있던 곳에 가서 나도 서보자. 산성을 따라 더 높이 올라가면 서해바다가 보인다. 물론 날씨가 좋은날이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증거사진 찍다가 혼쭐 난 적 있다. 노을 지는 풍경에 빠져 사진을 찍다가 어두워져 하산 길에 고생한 적이 있다. 그래도 그곳은 가 볼만한 곳이다.

한우물을 찾아가려면 금천구청 역에서 마을버스1번을 타고 벽산아파트 뒷편 호압사 앞 정류장에서 하차-호압사-한우물로 가는 코스와 은행나무 정류장에서 시흥계곡(별장산길)에서 불영암-한우물로 가는 코스 등이 있다.

 

 




산아래 문화학교는  시흥2동에 위치해 있으며 마을에서 함께 배우고, 함께 희망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학교입니다.  대표 김유선

이소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또 한시대가 이렇게 접히고 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은 모든 노동자들을 친자식으로 알고 80평생을 사셨다.
이소선 어머니의 80년의 생이이 우리 지역에 관련이 된 것은 많겠지만 조직 노동자로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 된 1986년의 박영진 열사와 우리시대의 비극이자 비참인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 기륭전자 김소연분회장과의 인연이 기억이 남아 이를 소개 한다.

1. 구로공단 박영진 열사
1986년 3월17일 구로구 독산동, 지금의 금천구 독산동의 신흥정밀에 다니던 노동자 박영진이 분신 항거를 했다. 어머니는 이 소식을 듣고 청계노조 식구들과 함께 강남성모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미 경찰들이 병원 출입문 안에서 방문객을 통제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형사가 가로막자 “내 아들 죽게 생겼는데 에미를 못 들어가게 하는 놈들이 어디 있냐!”며 제일 먼저 박영진을 만났다.
박영진 열사는 심한 화상으로 인해 떠지지 않는 눈을 꿈틀거리며, 정말 전태일 엄마가 맞느냐고 물었다. 태일이 엄마가 맞는다고 하자, 박영진은 진짜 자신은 운이 좋은 놈이라며 가쁜 숨을 헐떡이면서도 좋아했다.
그 열사의 유언이 "전태일 선배가 못다 한 일을 내가 하겠다. 1천만 노동자의 권리를 찾겠다. 끝까지 투쟁하자."였으니 어머니와의 만남은 전태일과의 만남이었다.
박영진열사는 소중하게 모셔지지 못했다. 시신을 경찰이 탈취하여 벽제 화장터에서 태워바로 화장터 뒷산에 뿌려졌기 때문이다. 후에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안타까워 어떻게든 산에 뿌려진 유골이라도 수습을 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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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유골이 뿌려진 장소를 알아내어 낙엽더미와 뒤섞여 있는 유분을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또 묘지 마련이 어려웠다. 안기부로부터 압력을 받은 공원 묘지들이 거부를 했다. 심지어 마석 모란공원 관리소도 묏자리를 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때 다시 어머니가 나섰다. “좋다. 주지 마라. 태일이 묘에 합장하면 된다.” 이소선이 팔을 걷어붙이고 당장 전태일의 묘를 팔 태세였다. 이 기세에 당황한 묘지 관리소장이 “이 여사님이 잘 아시잖아요.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관리소장은 어머니를 붙들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사정했다. 이리저리 바쁘게 연락하던 관리소장은 박영진이 묻힐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산속에 뿌려져 바람에 산산이 흩어졌을 박영진의 넋이 드디어 자리를 찾았다.
어머니는 영진이 봉분 위에 쓰러져 흐느꼈다. “살아서 싸워야지. 살아서 싸워야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왜 가냐!”
전태일과 박영진 열사는 16년의 시간을 두고 열사가 되었다. 두 열사의 만남 이후로 민주 노동 통일 열사들이 모란공원에 모셔지기 시작하여 현재 130기가 넘는 열사가 모란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열사의 혼을 모은 것은 바로 모든 노동자를 전태일로 여긴 어머니의 품 큰 사랑이다.

2.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
이소선 어머니가 금천구 가산동 기륭전자 단식 농성장에 찾아 온 것은 2008년 여름이다. 당시에 기륭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조합원 모두는 '이제 정말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끝장 단식을 하고 있었다.
회사 측의 불법파견에 대하여 잘못을 인정하고 해고한 노동자들을 복직시키라는 소박한 요구가 1000일을 넘게 싸워도 해결되지 않는 세상이 사람이 사는 세상인지, 사람목숨 보다 우선시 되어 것이 과연 가능한지 참담한 마음으로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다.
기륭전자 분회장 김소연은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 한 살아서는 땅을 밟지 않을 작정이었다고 한다.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서 단식농성을 하면서 자신의 결의를 밝히는 올가미를 설치했고, 단식 50일차에는 관을 올리기도 했다.
그때 이소선 어머니가 오셨다. 불편하신 몸으로 힘겹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 오시자마자 농성장 주변을 둘러보시며 뭔가를 찾았다. '위험한 물건 없냐?' 대뜸 물으신다. 아마도 극독이나 신나 흉기 같은 것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모양이다. '없어요. 어머니'하고 답했지만 농성장 안에 있는 물건들을 들춰보시고, 뒤집어 보시면 마지막까지 생명을 위협할 만한 것 없는지 찾으신다. 그러더니 농성장 입구에 설치해 놓은 올가미를 보시구선 이건 뭐냐며 큰소리로 물으신다. 그냥 결사의 의지를 표명의 상징물이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사람은 몰리면 죽을 수 있다.’며 가차 없이 싹둑 잘라 버리셨다.
그리고는 김소연 분회장의 손을 꼭 잡고 ‘죽는 건 태일이 하나로 족하다. 살아서 싸우자.'고 하신다. 아마 단식을 말리려 오셨을 어머니가 우릴 직접 보시고는 ‘단식을 중단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말 못하겠어. 너희가 알아서 죽지 마’ 하며 잡은 손에 힘을 주셨다.
가장 고통 받은 노동자,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는 노동자 옆에 우리 어머니가 항상 계셨다. 돈이 필요없는 의지처,  관절의 마디마디 힘은 없지만 우리 노동자의 가장 큰 든든한 백이 이소선 어머니였다. 그 어머니가 이제 고된 삶을 접고 영원한 안식을 떠났다. 김소연 분회장의 추도사의 마지막 말이다.
"어머니 모든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정말 고맙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가 전태일이 될게요."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재해대응 시스템 구축 시급하다

금천구에 어마한 수해가 발생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본 지는 지난 6월에 수해예방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취재과정에서 시흥4거리 인근과 가산디지털단지역 부근의 지역주민들을 만났다. 주민들은 수해 이야기에 머리를 흔들면서도 어떻게 침수를 막을 것인지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 시흥동의 한 주민은 시홍동에서 나고 자란 기억을 더듬어 복개된 계곡의 위치와 현재의 흐름을 비교해서 지도를 그려놓기도 했다. 당시 두 곳을 다닐 때 공통된 지적이 구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해피해를 확인한다고 한 번 들렀을 뿐 그 이후 누구하나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는 불만이 가득했다. 수해 이후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어떻게 대책이 세워져야 하는지 묻거나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재해대응에 총괄적인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구민들은 수해 발생 할 당시  구청에 전화가 안 된다는 불만이 가득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고 혹시 받아도 이후 조치가 없이 감감무소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한정된 재원으로 긴급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총괄적 지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있다. 제한된 장비와 인력들이 적시에 필요한 곳에 공급하고 주민의 긴급한 요청에 바로 피드백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시급하다.


꼴지가 아니라 일등이다

  서울전역을 뜨겁게 달궜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뚜껑도 열지 못하고 무효 처리되었다. 한나라당은 “투표율이 25%를 넘으면 내년 총선에서 청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미리 깔아둔 포석에도 불구하고 침울하고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선관위의 투표율 발표 직후 오세훈 시장은 “우리나라 미래의 바람직한 복지정책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치게 되서 안타깝다”며 “어려운 환경속에서 투표에 참여해주신 서울시민, 유권자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입으로는 투표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하면서 반성은 없고 오히려 유일한 기회를 놓쳤다며 타박했다.
오세훈 시장이 말하는 ‘유일한 기회’라는 게 ‘소득하위 50% 학생에 대한 선별적 무상급식’이었다. 소득하위 50%를 어떤 방식으로 선별할 것인지, 선별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해답도 없으면서 우격다짐으로 밀어 부쳤다. 게다가 ‘선별적 무상급식’을 ‘단계적 무상급식’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물타기 하기에 급급했다.
  오세훈 시장은 투표 참여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하기 전에 “서울시민의 뜻을 잘 헤아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부터 해야 했다. 이번 투표로 인해 금천주민은 물론이고 서울 시민 모두가 분열되고, 상처받고,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릎 꿇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자신이 한 잘못에 대해서는 심심한 사과의 말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오세훈 시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이번 투표를 지지하고 이끌었던 한나라당은 국민들 앞에 진정으로 용서를 빌어야 한다. ‘좌파의 거짓 선동’ ‘착한폭력’ ‘착한강도’ 운운하며 색깔론을 펼치고 비하발언과 인격모독의 언어를 퍼부었던 막가파식 행태를 반성하고, 국민들이 원하는 보편적 복지를 인정해야 한다. 부자 감세만 철회해도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실현할 수 있다.  투표율이 가장 낮았던 우리 금천구는 보편적 복지를 가장 앞서 이끌어 가는 지역임을 확인했다.
금천구는 꼴찌가 아니라 일등이다.

릴레이 인터뷰 - 태기봉 헤어디자이너

 

독산3동에 사는  태기봉씨는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미용사이다. 금천세무서 부근의 ‘태기봉 헤어겔러리’에 들어가면 진짜 겔러리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화려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지만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스쳐간 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세면대 옆 타일에는 체게바라의 얼굴이 있고, 구석 구석 그의 가족들의 모습도 모인다.
굶주린 사자처럼 울부짖는 사내의 얼굴도 그려져 있고, 한쪽엔 호랑이가 노려보고 있다. 좀 무섭다. 게다가 아무렇게나 찢겨진 종이나 과자박스를 펴서 거기에 그림을 그렸다.

참 제멋대로다. 요즘처럼 좋은 종이, 좋은 물감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자신의 소중한 작품을 아무렇게나 휘갈기는 사람은 초보라도 흔치않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한 조각이나 조형물들도 크게 공들이거나 완벽을 기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자신의 작품을 액자에 넣지도 장식장에 넣지도 않는다. 그저 그 순간을 즐길 뿐이다.

태기봉씨는 말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진짜 빛나는 시기는 50대부터라고 생각해요. 내 꿈은 50대에 농사지으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예요.” 그림을 좋아하지만 자신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화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전봇대 위의 까치를 그렸는데 그때만 해도 쓰다 남은 지저분한 크레용으로 그리다 보니까 제 색깔이 나오지 않았어요. 낮을 생각하면서 그렸는데 심사위원은 밤을 잘 묘사했다고 저에게 은상을 줬지요. 좀 우습지만 어찌되었든 제가 최초로 실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죠.”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던 태기봉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원양상선을 탔다.
전북 장수의 깊은 산골에서 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동네를 크게 벗어나본 적이 없는 촌놈이 세상 구경하러 지중해 뱃길을 나선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넓고 큰지,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 얼마나 좁고 왜곡된 것인지 알게 됐죠.” 이래서 가끔 사람들에게 일탈은 필요한 듯하다.  

 
그렇게 바람처럼 다니던 그가 고향친구들이 모여 있는 구로공단에 취직하기 위해 금천구에 자리 잡게 된다. 그러다 얼떨결에 결혼도 했고, 지금은 큰 딸이 고등학교를 다니는 중년남성이 되었다.
“다니던 회사가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주야교대 근무여서 되풀이 되는 야간일도 고통으로만 다가왔죠.” 그래서 결혼해 아이가 둘이 된 아빠가 직장을 그만 둔다.
보통사람이 결코 하기 힘든 결정이다. “그때만 해도 미용실이 돈이 좀 됐어요. 손재주를 잘 활용해서 돈도 벌고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미용을 시작한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는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가족도 무척이나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꾸준히 자기를 가꾸고 채워나간다. 구립도서관으로부터 ‘다독상’을 받을 정도로 하루 한권 꼴로 책을 읽어내고, 초등학교 때부터 써오던 일기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저를 지금까지 버티게 해준 것은 책과 일기였던 것 같아요. 미용사로 살아가는 것도 돈을 못 벌어서 그렇지 다양한 사람과 얘기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파마를 하려면 적어도 2-3시간 걸리니까 쉽게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어요.” 사람대하기가 어려웠던 태기봉씨에게 미용사라는 직업은 사람과의 인연을 맺게 해준 소중한 끈이라고 말한다.
“워낙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처음엔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는데 지금은 또 적응이 되더라구요. 놀러 한번 간 게 언젠지 모르겠어요.”

 그는 결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꾸지 않는다. 꿈을 꾸기 위해 현실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안다. 물론 그의 가족들은 그가 좀 더 경제적이고 현실적이길 바랄 것이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내면의 세계가 복잡하고, 나이를 먹어도 꿈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한량’이나 ‘철부지’ 쯤으로 인식하지만 원래 꿈이라는 것이 어느 한자리 비워둬야 간직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가위를 잡고 파마를 마는 그의 손이 그림만 그리는 하얀 손보다 훨씬 멋지고 아름답다.
달려라! 기봉아! (ㅋ 죄송!)


김선정 기자
gcinnews@gmail.com
     


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사람들

상담센터에 온 차군이 금천인 신문을 유심히 읽는다. 그리고 묻는다.
"소장님 이게 맞는 것이예요? 이게 바람직한 방향이예요? 나는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는데요." 차군은 금천인 제 6호에 실린 '할머니를 위한 육아교실' 기사를 보고 질문을 한다.

 "육아를 할머니에게 맡기는 것은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에게 두배, 세배의 부담을 주는 것이잖아요. 이런 부분을 지역사회나 행정이 품어 안고 나가야 되는데 그것보다는 부족한 복지로 생긴 부담을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서 그대로 잘 적응하자는 것은 결국 현실의 모순을 고치자는 능동적인 생각에 반하는 것 아니에요?"

 "뭐 네 말이 틀리지 않지만 실제로 있는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잘 키우자는 생각을 칼로 무 자르듯 생각할 수 있나. 교육자들이 그 교육을 통해 무엇인가 배우면 그것도 좋은 것 아닐까?"

"문제는 구청의 평생 학습관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잖아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육아에 대한 부담을 어떻게 줄일까 라는 점과 내 손주 손녀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더 많은 우리 손주 손녀를 위해 노인들이 사회적 보람과 기여로 진행되는 사회육아 프로그램 같은 것을 진행해 주는 것이 옳지 않나요?"

미묘하지만 중요한 문제제기다. 이런 문제제기가 살아있는 우리 노동자들이 나는 좋다. 그냥 무심코 넘어가는 것 중에 똥을 덮는 비단주머니들이 많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말할 때 비정규직이라는 존재 자체가 노동자에겐 권리를 삭제하고 의무만 주고 자본에게 부릴 권리만 주고 의무를 면피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부당한 제도이고 현대판 노예제도이기에 제도 자체의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미 부정할 수 없는 구조로 굳어 있기에 폐기는 과한 주장이고 그저 불평등만 줄이자는 견해가 부딪친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에 합리 중도라는 이름으로 일제의 강점을 인정하고 자치를 하자는 일부 지주 지식인들의 논리는 쉬지 않고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화두가 실용을 이야기 하고 공정을 이야기하다 공생발전까지 진화했다.
하지만 이런 좋은 말들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은 본질에 대한 근본적 관점에서 부자 중심 기업 중심, 힘과 이윤 중심의 관점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근본적 관점은 무엇일까? 브라질에서 가장 존경받는 까마라 대주교가 한 말로 결론 맺는다.
"내가 가난한 자들에게 자선을 행할 때 나는 성자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부자와 가난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자마자 세상은 나를 빨갱이라 칭했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상담문의 859-0373

기관탐방 - 금천구청 여성보육과


사회인식은 변화하고 발전한다. 최근 그 변화의 화두는 무엇일까? 다양한 화두가 있겠지만 그 중 ‘여성’이 단연코 큰 화두일 것이다. 그래서 금천구의 여성과 보육 정책을 담당하는 여성보육과를 찾았다.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의 일을 한다 생각하면 된다고 이미숙 여성보육과장은 소개했다.
크게 여성, 보육, 다문화가정의 정책수립과 집행을 담당하고 있는데 여성부문은 다시 주민대상 사업과 구청내부의 사업으로 나뉘다.


<여성보육과 직원들의 단합 산행>

구청 내부로 보면 여성의 관점이 정책에 녹아 들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원이나 화장실 하나 만들더라도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좀 달라요. 결정과정에서 그런 측면의 지적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쉽지 않죠” 이를 위해서 구청의 각 위원회의 여성위원을 40%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도 했다.
더불어 여성보육과는  구청 직원들에 대한 양성평등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매년 하다보니 관성화 되는 측면이 많아 어떻게 새롭게 해서 효과를 높일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 세대도 다양하다보니 문화적 차이도 있어  쉽지는 않다”고 전했다.

더불어 “구청 직원은 여직원이 더 많다.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남성 중심의 문화가 강하다. 특히 결정 단계에는 남성의 훨씬 많다. 반면 여직원들은 나서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주민 대상으로는 여성활동을 이끌어 내는 것에 포거스가 잡혀있다. “기존에는 관이 주도했다면 이제는 자발적인 참여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얼마 전 구청 지하에 아주 작은 공간이 마련됐다. 여성발전기금으로 공모했던 단체 중 동아리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참여자들의 의지로 만든 공간이다”고 소개한다.
보육정보센터 장난감나라도 이런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다. 단지 장난감을 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를 활용해서 동아리모임도 만들 수 있게 하고, 교육도 하고, 자조모임도 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용자가 2-3배정도 늘었다. 이런 사업들이 초기에너지는 들어가지만 정착이 되면 훨씬 좋다는 의견이다.



<왼쪽)동아리 모둠의 활동   오른쪽)여성들을 위한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설명회>

여성보육과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민원은 바로 어린이집과 관련된 민원이다.
어린이집의 감독에서 먹을거리에 제일 신경쓰고 있다. 타 구에 비교해서도 먹을 것 하나는 잘 먹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공동구매도 참여시키고 친환경급식을 위해서 지원도하고있다. 쌀 , 야채, 계란등에서 친환경식자재를 사용하면 타구보다 좀더 지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육선생님 복리후생도 나름 신경쓰고 있다고 한다. 선생님이 좋아야 아이들도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한다. 보육교사가 1천 명인데 1만원씩 보조해도 천 만원이다보니 쉽지 않다.
업무에 어려운 점을 묻자 “여기 직원들을 한번 봐요. 다들 눈이 궹~하지요? 인력의 문제가 큽니다. 여성, 보육, 다문화의 꼭지들이 모두 사업이 늘어날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인력은 따라가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요. 사람 없다고 이야기 하면 바보라는 말도 있는데 어쩔수 없어요”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이미숙 여성보육과장은 지역사회에 대한 당부도 빠지지 않았다. “관내의 여성단체가 빨리 스스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지금의 활동은 대부분이 봉사활동에 치중되어 있어요. 권익 주장이나 그런 부분에 좀더 힘을 쏟았으면 해요.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은 참 좋은데 그것을 기반으로 스스로 뭔가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라며 앞으로의 바람을 내비쳤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마을 답사- 네번째이야기

금천엔 사람 많고 골목 많은 곳마다 작은 시장이 생긴다. 현재 금천구에서 잘나가는 현대시장도 예전에 번화한 골목이었다.  친구네 집 대문이 노점이 되더니 이제는 번듯한 상가로 변한 곳도 거기 있다.
시장은 사람 따라가는 게 분명하다. 예전에 큰 시장이었던 곳이 오히려 사람이 줄면서 쇠하기도 한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작은 형님이나 고교동창들은 어쩌다 만나면 걸레만두를 먹으러 대명시장에 갔었다고 한다. 그리곤 대명시장이 변했다고들 한다.

교복차림의 10대가 40을 한참 넘긴 세월을 생각해보면 ‘변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  입맛은 그대로인데 대명시장 주변이 달라진 만큼 세상이 변한 거다. 좌판이 하나둘 줄어들더니 호객 하던 상인들도 보이지 않고 썰렁하다. 
어쩌다 순대할머니 수레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번듯한 상가에 술집이니 옷집이니 이런저런 잡화점이 많아졌는데
그 큰 시장은 어디로 갔을까. 건너편에 마트 때문일까.

주차장도 있고 카터(짐수레)를 밀고 장를 볼 수 있는 대형마트가 편리하긴 하다. 계절이나 날씨에 안전(?)한 마트가 유혹적이다. 대형마트가 작은 상가를 문닫게 하고 지역 상권을 위협하는 중이다. 일자리를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으로 내몰아 우리 가정과 이웃을 불안정한 가구로 만들고 있다.

그러니 마트는 가지말자!
대명시장, 남문시장, 현대시장,
무수한 골목시장으로 가자.
물건 값도 헐 하다.
필요한 만큼만 살 수도 있다.
구경거리가 있다.
이웃을 만날 수 있다.
단골집에서 덤을 얻을 수 있다.
요리법이나 사용법을 직접 들을 수 있다.
외상도 가능하다
(어디까지나 급박한 상황 일 때만).
그러니 옛날 시장으로 가보자!

무지막지 시장으로 가자는 뜻은 사는 형편이 어려울수록 돕고 살았던 어른들의 지혜를 따라가자는 것이다. “동네사람 물건 팔아주고 동네에서 나는 거 써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가만 생각하면 어른들 말씀이 이번에도 맞다.
우리동네 물건과 돈이 돌고돌아 동네를 살리는 원리야 가장 기본적인 경제 원리 중 “자급자족”아닌가. 대안 경제로써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유일한 지속가능한 성장이나 녹색성장... 이런 구호들이 이것 안에 포함된 것 아닌가.
대문을 나서 골목을 지나 가까운 시장에 가자. 나는 반은 마트에서 반은 정훈시장, 중앙시장에서 장을 본다. 시작이 반이다. “불편하니 행복하네”를 생활로 가져오기 까지 더 가야한다.


 

 



산아래문화학교
김유선 대표

아픈 몸으로 애사심을 발휘하여 열심히 일한 죄의 대가 정리해고

쌍용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문화제가 매주 화요일 7시에 보신각에서 열린다. 시간이 닿는 대로 참가하고 있다. 격이 없는 문화의 향연이다. 그래서 원없이 웃기도 한다. 그때 00노조 지회장님이 옆으로 온다. 00지회는 정리해고 사업장으로 투쟁 중인 노조다.
"문 소장님 이것 좀 봐요 "하며 툭 고법 판결문을 내민다. 그러면서 친히 판결문의 결론 부분을 펼쳐주며 읽어 보라고 한다.
거기에는 ‘진실을 부정하고, 반성도 성찰도 없고, 단체협상을 회피하고, 나이, 성향, 가정환경, 사건의 동기, 경위, 범행 전후의 상황’을 보아 사용자에 유죄를 내린다고 하고 있다. 사용자의 살아온 환경이나 인성까지 질타하는 판결문은 참 시원했다.
요즘 보기 드믄 판결문이라 지회장님도 꽤나 통쾌해서 자랑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도 천천히 전체를 살폈다. 그런데 쌍방 항소 판결문이었고 쌍방 기각된 사건이고 판결의 내용이었다. 즉 노동자 측, 거기서는 검사 측에서 한 항소도 기각한 것인데 그 내용을 살펴보니 또 그게 기가 막히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해고가 무조건 안 되는 경우를 인정한다. 하나는 출산 휴가 직후의 여성노동자, 다른 하나는 산재 및 산재 후 복귀 직후의 노동자들에게는 복직 후 최소 한 달 이내에는 해고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는 산재 중인 노동자가 회사의 요구로 치료를 하며 일을 했다. 요양 중이라도 일이 가능하다면 일을 하지 않으면 눈치를 받는다.
괜히 주변 동료에게 미안하고 이왕이면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했다. 산재 대신 공상으로 대체하는 노동자도 많다.
공상이란 산재로 올리지 않고 회사 안에서 사사로이 치료를 하는 것이다. 공상은 산재 발생을 은폐하고 후유증에 대한 보상을 막는다. 편법이다.
 문제는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자 명단에 들어 간 것이다. 근로기준법 상의 해고 불가 조항을 위반한 것이고 기특하게 검찰이 항소씩이나 한 것인데 증거불충분으로 기각한 것이다. 사람이 다치고 요양이 필요한 시간이 객관적인데 증거가 불충분하다니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판결이다. 자발적으로 공상 처리를 하고, 자발적으로 치료를 거부하고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법이란 상식의 최소한이고 사회적 통념 안에 있는 것인데 왜 세 살배기도 아는 상식을 법은 수용하지 않을까?
그렇다. 열심히 회사를 사랑하면, 근로기준법이 사라지고, 산재 요양이 사라지고, 법적 보호도 사라진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결과가 해고만 부른다.
마치 싼 똥이 똥파리를 부르듯. 정리해고 승소 판결문도 좋지만 나는 열심히 일한 죄로 받지 않아도 되는 정리해고자가 된 그분들이 애달파 죽겠다. 열심히 일만 한 죄가 정말 죄란 말인가?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상담문의 859-0373


 


마을 답사- 다섯번째 이야기
어딜가도 골목길엔 사람꽃이 핀다


 구청의 담장 허물기 사업으로 골목이 넓어졌다. 그래서 좁다란 골목을 두고 주차문제를 앓던 이웃들을 평화롭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담장 너머 들리던 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우는 소음이 되기도 했다.
뭐, 이건 이웃 간에 사생활을 주장할 수 없는 상황! 때로 어이없게 참견하려 드는 새댁이나 살림 훈수 두시는 이층집 어르신. (휴우) 길게 늘어지는 잔소리는 정말 참기 어렵기도 했다. 허나 이런 이웃이 귀찮게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연로한 시어머니의 친구가 되어주는 새댁이,  낯선 사람을 경계해주는 어르신들이 참 고마웠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안부를 묻는 어르신들을 만나는 곳이 바로 이 골목. 



 여차저차하여 그 골목을 떠나 아파트로 들어온 지 2년 남짓. 나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드나드는 입구가 다르니 아직 한 번도 그 이웃은 마주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와, 기상천외하다. 무슨 구조가 사람은 많이 사는데 그 사람들은 서로를 보지 못할까?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의심없이 그런 집단 거주문화를 살고 있거나 지향하는 우리네 삶이란...

 엘리베이터를 통해 만나는 이웃은 목례정도가 적당하다.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아는 척을 해주다간 완강한 거부의 눈길을 받는다. 몇동 몇호의 익명성으로 통하는 이 동네에선 내가 무슨 일을 당해도 내다봐줄 사람이 없다. 별안간 그 사실을 알고 크고 단단한 걸쇠를 하나 더 달았다.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건만 서로를 지켜주는 이웃이 이곳엔 없다. 귀신 다음으로 무서울 건 없다고 생각하던 나는 요즘 겁을 달고 산다. 우리집 벨을 누르는 우체부나 동장, 택배 아저씨, 부녀회 아줌마, 경비 아저씨까지 이유없이 범인이 되어 경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아! 정말 슬픈 구조다. “몇호 아줌마 ”라는 건조한 이름 뒤엔 서로를 책임질 수 없는 무심한 이웃들이 있다.

좀 시끄럽고 대책없이 참견하는 이웃들이 그립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 커나가는 모습을 같이 지켜보는 것. 어르신들의 건강한 수다가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좀 얻어먹고 많은 것은 나눠먹기도 하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다 남는 봉투에 옆집 것을 채워 넣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이 사는 골목 . 금천엔 그런 골목은 아주 많다. 새 주소로 바뀌어 좀 낯설기도 한  장미길, 행궁길, 별장산길, 정훈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 골목길을 따라 산책을 해보시라.

산책, 마음 비우고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나선 골목길에서 오늘은 무엇을 만날까. ‘감나무집 감나무가 이번 비에 많이 떨어졌네.’, “부지런도 하셔라, 화분마다 뭘 저리 심으셨데.‘, '폭탄(친정 옆집 사는 개이름)이 오늘은 조용하구만.‘,  ‘아이구, 며칠 전 입원 하셨다더니 세탁소 문이 열렸네.’,  ‘저 녀석들 몰려다니며 담배나 피는 건 아닌지 몰라.’,  ‘무슨 냄새가 이리 좋아...이 집 좋은 일 있나.’,  ‘어디 가시나...강원도 아주머니 잔뜩 멋내시고.’,  “아줌마! 어디 가세요?” 쪼르르 나도 모르게 달려가 팔을 잡는다. 나는 이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안다. 우리 집과 오랜 이웃으로 골목을 사이에 두고 엄청난 역사를 쌓은 덕분이다.

 


 

김유선  대표
산아래문화학교


 

은행이가 들려주는 책이야기

백승남  지음 / 한겨레 틴틴  출판   루케미아 루미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이름이 참 리드미컬하다, 예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읽어보니 그것은 ‘백혈병’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백혈병이라면 티비에서 머리를 민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슬픈 눈을 하거나 오히려 밝게 웃음짓는 그런 것만 상상할 수 있는 무식스러운 내 수준에 루케미아 라는 병명은 생소하고 그러기 때문에 죽음의 냄새는 전혀 맡을 수 없었습니다.

루미는 이 책에 나오는 백혈병에 걸린 여자 아이 이름입니다. 황루미. 엄마가 일본 만화를 좋아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합니다.  루미는 재생불량성빈혈에 시달리는 ‘강’이가 관찰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책에서는 강이가 주인공이기도 하고 루미가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그들이 왜 함께 주인공 역할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어느 정도 풀어지기도 했습니다. 루미는 강이보다 더 가벼운 증세로 시작했지만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습니다.
강이는 루미가 까탈스럽게 굴 때 미운 생각도 들지만 루미를 데리고 병원을 나와 스파게티를 먹으러 가기도 하고 두루미라고 놀리는 친구들이 밉다는 루미에게 우리 몸 속의 루미솜과 루미놀에 대해 이야기 해 줍니다.
루미는 머리가 둘 달린 쌍학을 강이에게 배우기 직전에 죽고 맙니다. 루미는 흙으로 새를 만들고 학 접기를 잘하고 하늘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머리가 둘 달린 쌍학의 전설은 우리에게 뭔가를 암시하는 듯 합니다. 오빠가 동생을 지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루미가 죽고 루미 엄마, 강이, 강이 엄마는 모두 루미를 느낍니다. 잠시 보인 루미의 모습은 날개가 하얀 새의 모습과 겹치고, 강이는 병이 재발했다는 통보를 받고 괴로워합니다.
방황하던 강이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루미에게 오빠를 지켜 봐달라고 말하는데 하늘 높이 날아가는 눈부신 새 한 마리를 봅니다.

강이는 루미에게 오빠로서 또 병의 선배로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지만 떠난 루미의 죽음을 인정함으로써 루미에게 다시 힘을 얻습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이들은 이렇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나 봅니다.
작가의 <늑대왕 핫산>에서도 아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루케미아 루미>에서도 우리가 죽음을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단지 살아있는 우리를 위로하고자 함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떠난 이를 더 가슴 깊이 간직해두는 일이기도 하기에 “잘 가..” 라고 말하는 것이 어렵지만 필요한 일인 것입니다.

작가는 금천구에서 함께 동화 공부를 했던 이입니다. 제목에 강이를 쓰지 않고 작가의 아들이름인 ‘완이’를 쓴 것은 완이가 겪은 일이 단지 가슴 아파서라기 보다는 앞으로 겪을 일이 조금 더 아픔을 주더라도 ‘우리가 응원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소극적이고 작은 응원이 완이의 역경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완이가 참된 삶의 의미를 먼저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을 계속 나누며 열심히 살아가리라 믿어봅니다. (초등 6학년부터)


'은행이가 들려주는 책이야기 '는 은행나무 어린이 도서관의 동화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책을 읽고 올린 글입니다.


 



잡초처럼 살아왔다. 그러니 인상도 인생의 굴곡도 완강하다. 옳고 그름에 대하여 똑 부러진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비겁하고 눈치 빠르게 사는 사람은 착한 노동자고 서씨 같이 의견에 경우를 담고 조리를 따지면 아주 귀찮고 골치 아픈 사람 취급을 받는다.
오랜만에 회사가 주최하는 교육을 마치고 동료들과 술을 한 잔 했다. 그것이 조금 과했는지 새벽에 일어나니 숙취를 느꼈다.
그래서 회사에 전화로 오늘 몸이 너무 안 좋아 안전 운행이 어렵다고 연차휴가를 부탁했다. 회사는 취업규칙을 들어 단호히 거절했다. 아프기 4일 전에 미리 휴가 신청을 해야 한단다. 아플 것을 누가 미리 알 수 있다는 말인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다. 억지로 운전을 하는데 회사에서 출발하여 몇 정거장 가지 않았는데 경찰이 갑자기 음주 검사를 한다.
 
7시간 이상 푹 잔 상태라도 숙취가 남고 그것도 음주운전이니 영락없이 걸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경찰이 불심검문을 한 것은 누구의 신고가 있었고 그 신고자는 평소에 서씨를 눈엣가시로 안 회사의 상사였다. 너무 억울한 서씨였지만 노무사 변호사 다 물어봐도 버스운전이란 공공영역에 음주라는 딱지로는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길은 없다는 답만 듣다가 우연히 우리 상담소까지 왔다.

고민 끝에 결과적으로 음주운전이 된 것은 잘못이지만 내가 자의로 한 것이 아니고 회사가 강제로 시킨 부분에 대한 책임의 공유와, 취업규칙 상 명시된 "운전 중 음주"에 대한 징벌 규정을 적어도 운전 중에는 음주운전을 한 것이 아님과 회사의 악의적인 행위에 의한 억울함을 들어 구제신청을 하였다.

그런데 지방노동위원회나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패소했지만 예상외로 행정소송 등 법원에서는 승소했다.
사회적 약자를 빠르고 쉽게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위원회들이 사용자 편을 드는 망나니 칼이 되었으니 말이다.
운전자 서씨는 3년의 투쟁 끝에 승소하여 복직했지만 복직한 지 3일도 되지 않아 이번에는 회사 차고지를 출발하여 얼만 안 된 곳에서 양 편에 주차가 되어 대형버스로선 불가피하게 중앙선을 밟는 순간 회사 간부 아들이 렌트한 차량과 바퀴가 살짝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여 운전면허 취소 등을 이유로 두 번째 해고를 당한다.
이 해고도 이겼지만 연거푸 당한 이런 끔직한 회사의 흉한 짓에 질려 지금은 독산동에서 작은 차로 택배 노동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회사에게 당하는 설움은 많다. 그런데 상담을 하고 송사를 하다보면 세상에 못된 놈으로 매도된다. 과거에 동료들이 집단으로 진술서를 작성하여 회사의 말은 맞고 노동자 말은 틀리다고 한다.
그래도 지면 사실은 반성하고 성찰하고 존중해야 하지만 이겨도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없는 현실에서 비인간적인 비도덕적인 돈의 논리를 본다.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잔인하다.

웃긴 것은 서씨의 승리 이후 서울 경기지역 버스회사들이 전부 취업규칙을 바꿨다. '근무 전후 중 음주 운전'으로, 이제 강제로 숙취 근무 시키고 처벌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승소가 사용자들의 인권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개악만 불러온다. 이런 청개구리 같은 짓을 반복하는 것이 한국 기업의 현실이다.
그리고 반짝 아침 운전 중 음주 측정을 하였다. 회사 측이 기강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항상 편파적이라 누군가 회사에게 술을 마시면서 비판적인 말을 했다하면 바로 그 사람을 찍어 음주측정을 한다.

그런데 음주측정에도 기적이 있나보다. 며칠 전 해고를 당해 1인 시위 겸해 출근 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와 함께 연대하다 들은 이야기인데 그 회사의 000 운전사는 음주를 해도 측정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평소에 유일하게 해고자에게 커피를 사주고 말을 거는 그이의 모습이 미운 회사는 그 사람이 회사 앞에서 거하게 한 잔 한 날 아침에 그와 함께 마신 동료들만 대상으로 음주측정을 했다. 이상하게 다른 기사들은 다 나왔는데 이 사람만 측정이 안됐다.
꿩 잡으려다 애먼 메추리만 잡은 꼴이다. 그러고 보면  정말 신의 아들들이 있는가 보다.
우리는 "그래도 음주운전은 안 되죠."했고 그 사람도 "당연하지 " 라고 답했지만 참으로 얄궂은 이야기였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상담문의 859-0373


주민참여예산위원 구성과 관련한 유감

2011.8.10 금천풀뿌리자치연구모임 민상호

금천구는 주민참여예산조례가 2011년 5월18일자로 구의회에서 의결되고 6월8일자로 제정되었다. 작년 10월 입법예고 이후 2번의 구의회 주관토론회와 주민들의 토론회를 거치는 과정0, 그리고, 지방자치법 개정에 따른 강행규정이 된 조건이 반영되어 어렵게 조례가 제정된 것이다. 당초 20명의 참여예산위원구성에서 40명으로 증가 한 것과 규칙으로 지역협의체구성과 분과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여 어렵게 제정되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주민참여를 전제로 하는 조례제정과정 에서의 문제점을 주민을 배제함이라고 누차 지적하였다. 3번의 토론회과정에서 주장한 내용이 많이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제정된 조례에 대하여 일단수용하고 운영을 하는 과정에서 보완하는 것으로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어렵게 만들어진 만큼 실질적으로 주민이 참여와 역량 강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되길 희망하였다.
조례제정과정에서 나타난 금천구청 일방적인 행정에 시행과정에서 재연 될까 두려워 집행계획수립 전 주민과의 소통을 요구하였다.
6월22일 수요사랑방을 신청하여 7월6일경 구청장과의 만나 주민들의 참여의지와 그 시행방향에 대한 토론을 희망하였다. 그러나, 7월6일 구청장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고, 7월11일자로 주민참여예산위원 및 지역협의체위원 모집공고가 일방적으로 시행되었다. 결국 우겨서 7월27일로 잡힌 구청장과의 면담은 또 한번 금천구의 주민참여에 역행하는 금천구의 일방통행식 행정에 비토하는 의미밖에 없어, 구청장과의 면담을 취소하였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주민참여예산위원 신청자는 27명, 지역협의체위원 신청자 3명으로 7명의 신청자는 공고를 했기에 추첨으로 주민참여예산위원이 될 수 없고, 지역협의체위원이 되거나, 주민참여예산위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금천구에서는 저녁 7시 이후 소액이지만 자신의 돈을 내고, 2번의 주민참여예산학교를 수료한 50여명의 주민들이 있다. 2번의 과정이 구청의 적극적인 후원과 주최로 개최되었다.
특히 2번째로 실시한 교육은 평생학습관의 정규과정으로 개설되었기에(주최:금천구청장, 주관: 금천풀뿌리자치연구모임) 과정운영은 구청 측에 요청하는 규칙에 따라 운영하였다.

교육을 주관한 입장에서 교육생들의 열의에 감동했으며, 구청에서 주최하는 정규과정으로  이후 제정될 조례에 참여할 주민들의 선행학습이 되길 희망하였다. 이를 담당과장에게 구두로 요구하였고, 이에 대한 허락하는 답변도 들었다. 마지막 강좌에서는 청강을 온 담당공무원에게 요청도 하였다.  이도 미덥지 못해 공문을 해당부서(금천연구 2011-6(2011.7.4.))에 보내기 까지 하였다. 

고백하건데 필자는 참여예산위원의 참여에 대하여 그것도 중요하지만 예산감시활동의 중요성을 더 무게를 두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조례제정과정에서 문제제기를 해도 돌아오는 응답에 답답함 등으로 지쳐 더 이상 문제제기할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신청한 주민들의 많은 문제제기와 필자가 주민들에게 한 말에 책임을 느끼며 주민들의 의견을 담아 몇 가지 문제제기를 한다. 

“동별 안배를 고려하여 선정하되 위원회별 정원 초과 시 추첨에 의해 결정”한다고 공고하였기에 추첨을 꼭 하겠다는 주장이다. 공신력을 확보하려는 것은 존중한다. 그러나, 불만을 제기하는 많은 분들이 있으면, 충분히 토론하는 과정을 통하여 조정될 수 는 없는 것인가?  이것이 주민 참여로 운영되는 제도의 본질이 아닐까?
주민들을 공무원의 행정의 틀에 맞추는 것이 주민참여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주민참여예산조례 제9조(구성)에 5항에 의하면 지역협의체운영에 관한 사항은 규칙으로 정하게 되어있다. 규칙에 대한 입법예고를 본적이 없는데, 규칙은 제정하고 시행하는 것인가? 규칙 없이 공고하였다면 조례를 위반한 것은 아닌가? 궁금하다.

부천시의 경우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은 4개 기구에 최대 3,900여명이 참여하도록 되어 있으며, 실지로 3,000여명이 주민참여예산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작 27명중 7여명의 신청자들에 대하여 공고를 했으니, 추첨한다, 못 한다 옥신각신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올해 열 살, 나의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생이다. 가난뱅이 아빠를 만나 좋은 점이라면 사교육에서 해방(?)시켜 주고 있다는 점이랄까?
회사 동료들 말을 들어보면 각종 학원을 두루 섭렵하고 그중에 영어학원은 필수라던데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지 나름 ‘영문학전공자’임을 가끔 한번씩 내세우는 아빠는 해외생활을 한 몇 년 하지 않는 이상 학원에서 배워온 몇마디 영어를 밥상머리에서 중얼대는 식의 영어교육은 현재 단계로선 전혀 필요없다는 나름의 소신으로 아들을 ‘방목’하고 있는 것이다.
때가 되면 하면 된다! 전공자인 아빠가 도와주마..ㅎㅎ..
아들 녀석은 저녁마다 한 시간씩 자기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한다. 가뜩이나 시력에 대한 걱정이 앞선 부모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무작정 막을 수도 없고 하여 게임을 할 수 있느 시간을 정해놓고 허락하고는 있지만 아들이 게임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이날도 그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싶어 시계 바늘을 지켜보다 아들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니 게임에 빠진 모습이 몰입도 이런 몰입이 없을 성 싶다. 이런.
잔소리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참지 못하고 한 마디가 새어 나오고야 말았다. “시간 다 되지 않았어?” 그런데 문제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목소리 톤이 조금 올라간 것이다. 아이는 “아,,아니,,” 라면서도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 모습이 또 아빠의 신경을 거스리게 하니 결국 나오는 한마디 “얼른 꺼!”
아들은 급하게 컴터 전원을 끈다. 짐짓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빠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면 딴청을 피운다. 방을 정리하고 나온 아들이 나오는데 아빠에게 조용히 전하는 말이 정곡을 찌른다.

“아빠 화났지?” 일단 오리발을 내미는 수 밖에..
“아니, 화 안났는데?”
“화 냈잖아” 허허.. 이렇게 된 이상 진실을 토로할 수 밖에 없다
“아,,, 그게 말이지.. 니가 좀 오래 하는 것 같아서..말이지..”
아들은 즉각 반론을 제기한다.
“아냐, 내가 시간 다 보고 있었어, 시간 되면 끌라고 했단 말이야.. 아빠 화내지 마, 알았지?”
흠...그래 니 말이 맞다. 시간이 덜 된 거 같기는 했었어..
“알았어, 아빠 화 안낼게. 앞으론..”

그렇게 그렇게 잠시 집안을 감돌았던 소용돌이는 잦아들었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좋은 이유는 뭘까.. 아이는 아빠에게 화내지 말라고 했다.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화내지 말라고 얘기하면 아빠가 자기 말을 들어주리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던 건 아닐까? 아들에게 그만큼 신뢰가 있는 아빠라는 것 아닐까? 언젠가 아이는 말했다. 아빠가 집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고..회사끝나고 매일매일 일찍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아빠도 니가 옆에 있어서 참 행복하다. 너도 내 맘 알지?

김희준  (독산1동)

동호회 탐방- 부뚜막 봉사단


 지면에 게제되었던 문의전화 번호가 오타로 인하여   017-350-2581로 수정합니다.


지난 7월 27일 기록적인 폭우로 금천구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재해현장을 다니며 취재를 하던 중 시흥초등학교 임시 대피소에서 만난 사람이 ‘부뚜막  자원봉사단’이었다.
폭우 당일인 27일 저녁 9시가 넘어 임시대피소에 도착했을때는 폭우가 다시 쏟아지고 있었다. 그 폭우 속에서 수해민들에게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설거지를 하며 자리를 정리하고 있던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루종일 온 관내가 마비된 것 같은 것을 경험한 기자로서는 어떻게 나온 사람들일까 궁금했지만  “순수 민간 봉사단체”라는 말만 듣고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다.

몇 일이 지나 장인수 회장과 임원들을 만났다. 우선 수해 당일 저녁식사 봉사를 하게 되었는지부터 물었다. 정순옥 총무는 “회장님이 번개봉사 문자를 보냈고 마침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바로 장봤던 내 물건은 다 빼고 저녁 식사봉사 물품으로 채웠다.  저녁에 시흥초등학교에 도착했을 때 전기도, 가스도, 천막도 아무것도 없어 모두 우리가 조달했다”고 답했다. 회원들 중에 수해를 입은 사람도 있었고 친정이 수해를 당한 분도 있지만 나와서 함께 봉사를 했다고 한다.
지난 6월 1일에 발대식을 했다는 신생단체 ‘부뚜막 자원봉사단’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독거노인등 어르신들의 식사가 평일에는 센터나 기관에서 많이 하고 있지만 정작 일요일에는 별로 없다고 이현미 총무는 설명한다. 그래서 일요일에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해드리자는 취지로 주변의 사람들에게 제안했고 그 뜻에 몇몇 사람이 모였다. 

사실 발대식도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 모여서 서로 인사하고 식사나 한번 하자고 했는데 모인 김에 다음 주부터 봉사를 시작하자, 그럼 오늘 발대식을 하자는 식으로 논의가 되어 발대식을 진행했다. 발대식 후 매월 둘째,넷째 일요일 점심봉사를 하고 있다. 시흥2동의 청소년수련관의  식당시설을 지원받아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수련관의 위치가 높아 오기 힘들다는점을 감안해서 차량봉사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금빛공원, 은행나무 공원등 4곳에서  11시30분부터 10분간격으로 차량이 출발한다.

정은숙 홍보팀장은 처음 어르신들에게 무료급식을 안내할 때 많이 어려웠다고 한다. 어르신들을 찾아가 무료급식이 있으니 오시라고 하면 “그럼 내가 무엇을 해야 하냐? 어떤 물건을 사면 되냐?”고 의심했다. 그런 분이 한번 와보시고는 주변에 알아서 알려주시고 할때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현재 약 50명의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무료급식봉사의 모든 비용은 후원해주는 분들과 자비로 하고 있다. 
15명의 청소년 봉사단도 있다. 청소년들도 큰 역할을 한다고 귀뜸한다. 차량봉사대의 정류장 위치 안내 표지판을 두 시간동안 꼬박 들고 서 있는 것도 청소년 봉사대의 몫이다.

부뚜막의 대부분의 회원들은 각기 다른 봉사단체에서 활동을 해왔던 분들이다. 차이를 물으니 대뜸 “더 재미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순옥 총무는 “다른 곳도 열심히 하지만 가서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밥 퍼주고 오면 끝이다. 그런데 부뚜막은 회원 모두가 주인이라는 감정이 크다보니 보람도 더 크다”고 설명한다.
매번 봉사가 마무리되면 모두 모여 그날의 잘된 점, 부족한 점을 함께 평가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좀 남다르다고 덧붙인다.

정은숙 홍보팀장은 기업을 운영하는 한 남자회원이 “기업을 하다보니 접대등으로 아내와 자식들에게 매일 술먹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부뚜막 봉사단을 하면서 일요일에 나갈 때 아들이 어디가냐는 물음에  “봉사하러 간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한 소감을 전했다.
하루 차량봉사에 금천구를 몇바퀴를 돌아도 기름값한번 주지 못하고, 휴일인 일요일 더 일찍 일어나 집안일을 모두 해놓고  봉사하러 오는 열정,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수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바로 달려갈수 있는 신바람은 어디서 나는 힘일까?

장인수 회장은 장난스럽게 “젊음”이라고 한다. 평균나이 40세를 훌쩍 넘겼지만 그 말이 빈말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렵지만 ‘봉사’라는 말을 가장 아름답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부뚜막 봉사단’이 아닐까싶다.
언제 어디서든 금천주민들이 어려울 때 부뚜막 봉사대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봉사 참여는 017-350-2581로 문의하면 된다.

<시흥초등학교 대피소에 설치된 천막. 강한 빗줄기로 빗물이 들어와 수리하고 있다>

<2011년 6.1일 발대식 풍경. 현수막도 발대식으로 하자는 의견에 급하게 가서 뽑아왔다고 한다.>

<식기를 닦고 있는 청소년 봉사단>

<부뚜막 회원들>

<시흥초등학교 임시대피소 배식 풍경>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금천구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문일고등학교 배구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 7월18일 오전, 시흥동에 있는 문일고 체육관으로 향하였다. 금천구의 자랑 문일고등학교 배구부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체육관이 가까워오자 운동장에서부터 이들의 연습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 들어간 곳에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속공을 주고받는 앳된 얼굴의 키 큰 학생들과 이들을 관찰하는 감독님, 공과 선수들의 활기찬 소리와  선수들의 땀방울들이 넓은 체육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 7월 26일부터 열리는 대통령배고교배구대회를 대비해서 종합실전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목표는 우승. 이들의 전적 상 우승은 남의 떡이 아니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각 여섯명의 팀원들이 각자의 자리에 선다. 긴 서브로 경기가 시작되고 상대편이 여유있게 공을 받는다(리시브). 그 공을 세터가 센터에게 토스해주고 센터는 먹잇감을 가로채듯 받아 사력을 다해 속공을 날린다. 하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다. 무서운 속도의 공을 미끄러지면서도 용케 받아낸다. 어렵게 살려낸 공을 이쪽편 세터가 센터에게 넘겨주고 이쪽에서도 속공을 날려보지만 상대편의 블로킹을 당해내지 못한다. 이긴 쪽은 환호성을, 진 쪽은 서로에 대한 격려를...마치 프로 배구시합을 보는 듯 하다.

이 장면은 어떤가? 예닐곱번 이상 공이 왔다갔다하다가 끝내 재치있는 선수가 빈틈으로 공을 밀어내어 마무리되는 경기는 차라리 예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한편,  한 쪽 벽면에서는 한 학생이 벽을 상대로 공을  던지고 받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 학생은 고등학교 들어와서야 배구를 하기로 결정한 늦깍이 선수지망생이라고 한다.

 

"공부하기 싫어서 시작했다." 며 간단명료하게 배구입문의 이유를 밝힌 주장 권영익 학생은 운동선수답게 '쿨'한 성격을 드러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했지만 확실하게 진로를 정한 건 고2때였다. 배구는 운동중에서 기술이 가장 어려운 고급운동이라는 게 매력적이다. 신진식선수를 초등학교 때부터 모델로 생각해왔다. 배구선수치고는 키가 작은데도 열심히하고 잘 하기 때문이다." 며 "무조건 우승이다"는 앞둔 경기에 대한 주장의 각오를 밝혔다.

 
배구부의 막내 1학년 홍은기 학생은 탤런트 이민정을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부모님이 배구선수여서 쉽게 시작했는데 허리가 약해서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 지 고민이다. 일단 대학교 까지 진학한 후 체육교사가 될 수도 있다"며 진로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배구국가대표를 꿈꾸는 손창오 학생은 명지대에 이미 합격되었다. 그의 포지션은 리베로. 그는 배구를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시작했지만 귀찮아서 열심히 안했다. 고2때부터 정신차리고 개인운동도 시작하고 열심히 했는데 그 동안 버린 시간들이 아깝다. 후배들은 빨리 배구를 알고 연습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두시간의 연습이 끝나고 기숙사로 가는 길. 평상시에는 집에서 통학하지만, 시합을 앞두고는 기숙사에서 합숙훈련을 한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기숙사 앞 난간에는 장마 후 간만의 볕을 반기는 이불이 널려져 있었다. 한여름 운동이 힘들었던지 학생들은 기숙사로 돌아와서도 큰소리 없이 씻고 점심밥 먹으러 갈 준비를 한다.




 올 10월에 열릴 전국체전 서울대표로 나갈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문일고등학교 배구부. 올해 3학년 5명 모두 대학진학이 확정되었고, 이선교 선수 등 문일고를 졸업한 현역선수도 많아 대한민국 배구선수의 대표 관문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이들의 등대가 되어준 이호철 감독선생님은 "학교 이사장님이 배구부에 관심이 많아 지원해주시고 학교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것이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선수들의 반 이상이 부모님이 안계시고 경제적으로 어렵다. 잘 할 수 있는 아이들이 가정의 뒷받침이 안되어 꿈을 꺾어야 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많이 아프다."며 선수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였다.
"금천구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문일고 배구부 학생들에게 고마움과 파이팅의 박수를 보낸다.

은행이가 들려주는 책이야기-지리, 세상을 날다    (전국지리교사 모임 지음, 서해문집)

 내 머리맡에는 항상 스무 권 남짓한 책들이 있다. 읽다만 책,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 다 읽은 책, 책,책,책. 마음만 앞서 책 탑을 쌓았다 허물었다하며 이 책 저 책 손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읽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뭔가 할 말이 많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하려니 쉽지 않고 그런데 그 많은 책 중 왜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리, 세상을 날다. 아마도 내게 항상 어디로 떠나고 싶은 소망이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생활에 쫓기는 삶에서 여행을 그저 꿈일 뿐이니 책으로나마 세상을 날고 싶었나보다
  안방에 누워 책장을 넘긴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지구촌 곳곳의 도시와 사람들을 만난다. 오늘의 청계천과 한강에서 3-40년 전 한강 변을 바라보다 500년 전의 서울을 그려보고 다시 아파트 숲들로 빽빽한 서울로 돌아온다. 개발이라는 대의 아래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이 보이고 또 한 편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거만한 빌딩이 보인다.
회색하늘을 가르는 바람을 따라 독일을 슈투트가르트로, 뉴욕의 센트럴 파크로, 평양으로 대구로 간다. 땅과 사람들의 조화로운 삶을 위한 깊은 반성과 후회들. 그리고 땅과 어울리려는 노력들을 만난다.
입시를 위해 외웠던 플랜테이션 농업, 신문에 하루가 멀다 나오는 4대강 사업, 친숙한 것 같지만 알지 못하는 단어들도 만난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가 전 세계적인 기호품이면서 노동력 착취의 대표적 농산물이라는 것,
커피뿐 아니라 축구공, 초콜릿, 설탕이 생산자들에게는 노예의 배고픔과 설움을 주고 기업가나 유통업자만  부와 자유를 준다고 한다. 다행히 생산자들에게 이익이 갈 수 있도록 공정무역이라는 것이 확대되고 있다는 희망을 메시지도 전달 받는다. 휴~
돌아서니 이번엔 지구촌 곳곳에 굶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극심한 가뭄 때문에, 홍수 때문에 자연환경이 너무나 안 좋아서인 줄 알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단다.
전 세계 식량 공급량이 세계 인구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단다. 다만 일부 세력이 식량을 독점하고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공급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기아사태가 벌어지고 있단다. 무기를 사기 위해, 혹은 지독히 이기적인 정권유지를 위해 수출용 상품작물에 주력하느라 정작 생계에 필요한 곡물은 자족이 되지 않아 비싼 돈을 주고 사야하는 현실 때문이란다. 답답하고 분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여행? 그저 세계의 유명한 사적과 문물, 도시를 눈으로 구경하고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고 문화를 경험하는 것인 줄 알았다.
이제 이 지리책을 읽으며 여행이 반드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꼭 어딘가를 가야하는 것이란 생각을 버린다. 여행은 그저  어느 공간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며 그들과의 공감이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은행이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할머니 집에서
이영득 지음. 김동수 그림. 보림

도시아이 솔이가 주말마다 시골 할머니 집에 가서 일어나는 생활 이야기입니다. 할머니의 구수한 사투리도 재미있고 그림일기 형식이라 아이들이 더 좋아 하겠네요. 그림도 아기자기하니 예쁜 책입니다.




버스 놓친 날
장 뤽 루시아니 글.  청어람주니어

어느 날 식구들이 모두 늦잠을 자는 바람에 학교 가는 버스를 놓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편집강박장애를 가진 주인공 벵자멩이 혼자서 세상을주고 싶은 책입니다.

민선5기가 취임한지 1년이 됐다. 차성수 구청장과 서복성 구의원이하 의원들은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할까? 지난 2일 금천구에는 작지만 소중한 토론회가 열렸다. 지역주민들이 구청과 구의회를 평가하는 토론회를 마련한 것이다.
1995년 분구 이래 민간이 주도하여 관을 평가한 사례는 없었다.
 게다가 발제에 나선 대부분의 사람은 전문가도 아니고 능숙한 진행자도 아니었다. 금천구를 좀더 소통되고 서민이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고 그래서 더 소중한 자리였다. 반면 좀 더 내용성 있고 체계적으로 평가를 준비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더 아쉬운 일은 민선5기의 모습이다. 우선, 금천구의회에 그 누구도 참석치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주민들에게 찾아가 지난 1년의 평가를 물어야 할 분들이 함께 평가하자고 손짓하는 자리에도 참석치 않았다.  물론 자리가 불편할 것이다. 좋은 말보다 날선 비판과 서운함들이 더 나오는 자리다. 그럼에도 더 찾아가고 속마음을 나눠야 하지 않을까?

1년을 맞이한 기념식을 하는 것도 좋고, 장미꽃을 나눠 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에 앞서 주민들이 1년을 어떻게 느끼는지 한마디 할 수 있는 자리 하나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자리를 주민들이 마련해도 외면하는 모습에서 어떻게 구민중심의 정책을 펼 칠 것인지 의문스럽다. 
민선5기는 '소통'과 '시민사회역량의 강화'에 많은 무게 중심을 두는 말을 하지만 지난 1년간 구행정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는 주민들의 평가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사람들 -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사라지는 세상

마을신문 기자들의 기사 내용 검토가 열렬하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에 대한 공사(公私)의 책임소재에 대해 논의 중이다. 그 논의를 귀 등으로 듣다가 문득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미국에서 있었던 장면이다. 불타는 집을 보며 집주인이 발을 동동 구른다. 그리고 끝내 집은 불타 무너졌고,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애완동물 5마리가 불에 타 죽었다. 문제는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와 소방관은 옆에서 '강 건너 불 보듯' 구경만 하고 있었다.
소방관은 왜 불을 끄지 않았을까? 그것은 집 주인이 소방서에 세금 75달러(약 8만원)를 내지 않아서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소방관이 한 일은 불이 나 애가 타는 집주인에게 "당신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통보와 함께 불을 끄는 대신 불길이 세금을 낸 다른 집에 옮아붙지 않도록 물을 뿌렸다. 집주인은 "지금 당장 돈을 내겠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우선 시비를 가리는 것보다 당장 불을 먼저 끄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랜 날 우리들의 윤리적 기준인 측은지심에 대한 동의다.
아무리 흉악한 놈이라도 아이가 우물가에 있으면 노파심이 발동되어 ‘어어~~’하는 그 마음 말이다. 낮고 약하고 못난이들에 대한 연민이 측은지심이다.
이것이 없으면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다고 맹자님은 말했다.

미국에서도 사회적 논란이 됐다. 하지만 미국답게(?) 소방관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특히 법과 질서를 부르짖는 보수 논객들은 공공연하게 "그 집이 불타게 내버려 둬라!"외쳤다. "집이 불탄 건 안타깝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공동체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소방관이 세금 안 낸 사람의 집의 불을 끄면 그동안 75달러(약 8만원) 성실하게 내 왔던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고, 결국 모두 세금을 내지 않아 공동체에 해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심지어 "이웃의 세금을 빼앗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노라고 해도 물에 빠진 사람을 먼저 건너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말이다. 미국 사회의 논리는 75달러 때문에 생 자체가 재가 된 집주인의 마음을 제거한다.

그와 동시에 인간다움이 삭제된다. 마을 신문에서 말하는 불법(?)으로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것은 버린 사람을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지 않는 모든 이웃을 범죄자로 보고 응징하는 것이다.
불법을 다른 사람도 따라 할 것이라는 기우를 앞세우기 전에 먼저 치울 것은 치우고 대책을 공동체적으로 마련해 나가는 것이 옳다.

그래서 ‘돈, 법, 질서’라는 사람을 위한 수단들이 오히려 사람을 수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을 선함에 대한 믿음은 포기하고 탐욕과 이기주의를 전제로 한 불신과 모든 이에 대한 무차별한 응징만 키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다.

프랑스의 대학자 시몬드베이유는 말했다. “우리 앞에 총을 들고 서 있는 정면의 적만이 진정한 적이 아니다. 우리의 행복을 축원한다면서 우리를 수단으로밖에 보지 않는 자는 모두 우리의 진짜 적이다.”
빈부격차가 단군 이래 최고이고, 전월세가 하늘처럼 솟는 지금이야 말로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하는 행정, 공공의 서비스가 군림이 아니라 더 약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이자 의무임을 아는 따뜻한 행정이 필요하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상담문의 859-0373


사)살구여성회 사업단 서울형 예비 사회적 기업
찾아가는 어른 공부방



오락가락 하는 비와 내리쬐는 햇살로  가만있어도 끈쩍끈쩍해지는 장맛비가 내리던 6월 30일 오후 살구여성회 ‘찾아가는 어른 공부당 사업단’(이하 사업단)을 찾았다.
‘찾아가는 어른 공부방’은 살구여성회에서 만든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사업단을 총괄하고 있는 박명숙씨는 “기존 살구여성회에서 살구평생학교를 진행하다보니 시간적, 경제적으로 약간 이나마 여유가 있는 분들이 온다. 정말 어려운 분들은 올 수도 없다는 평가를 하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할수 있을까 고민해서  사회적 기업으로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공부방은 밖으로 외출하기 어려운 분들, 시간이 맞지 않은 분들에게 찾아가서 수업을 해준다. 장애인 및 저소득층, 65세 이상의 노인은 무료로, 그 외는 2만원의 수강료를 받고 40분간의 수업을 진행한다. 현재 5명의 방문교사가 80여명의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찾아가는 공부방의 동행취재를 하기위해 사무실에 도착하니 방문교사 신승란씨가 환하게 받아준다. 신승란씨는 오전에 두 번의 상담교육을 마친뒤였다.
2시30분 강의를위해 독산고개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학생은 지적장애인 민수(26세)다. 민수는 특수학교 전문학교등을 졸업하고 보호작업장에서 일을 해왔으나 얼마 전 수술로 다시 집에 있게 되었고 구청 소식지를 보고 신청하게 됐다고 한다.

민수엄마는 “금천에는 가까운 장애인 보호작업장이 없어 아쉽다. 집근처에 다닐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은데….”라며 바람을 이야기한다. “민수는 공부방 선생님이 오는 것을 좋아한다.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주기도 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며 찾아가는 공부방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민수와의 수업은 컴퓨터로 진행됐다. 문장을 보고 자판으로 칠수 있도록 도와준다. 도착해서 땀 좀 식히고 수업채비하고 몇마디 나누니 이내 수업시간 40분 다 찬다.
바쁘게 인사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3시30분 탑동초등학교 부근에서 다음 수업이 기다린다. 버스타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려면 종종 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다.


함께 버스를 타면서 힘든 점을 물으니 “수익성을 내는 것이 제일 힘들다.”라는 답이 나온다. “찾아가는 공부방은 정말 필요한 사업이다.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 청소하시는 할머니는 시간이 안되서 점심시간에 내가 찾아가서 수업을 해준다. 배우고 싶다는 마음하나로 입에 김칫국물 쓱 닦아 가며 후딱 점심을 해치우고 공부한다. 어떤 분은 출근하기 전에 한 시간씩 공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익을 내야한다는 압박감은 참 힘들다”고 토로한다.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40대 후반의 젊은 엄마다. 큰아들이 대학생으로 다 키웠지만 아직 한글을 완전하게 배우지 못해 공부방을 신청해 열공중이다. 지금은 받침쓰기에 한창이다. 젊은 엄마도, 할머니들도 한글을 모른다는 것을 창피해 한다고 한다.

“공부 중간에 누가 오면 책을 싹 숨긴다. 그리고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어떤 분은 집에 가족이 있으면 시간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의는 참 대단하다”며 수강생들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신승란씨는 오전 9시30분, 10시30분, 2시30분, 3시30분, 5시. 이렇게 5번의 강습을 한다. 40분 수업하고 이동하고를 반복한다. 시간이 좀 여유가 있으면 1시간도 챙겨주지만 쉽지 않다.
“여름에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겨울에는 추위에 떨며 찾아가도 참 보람있다. 민수도 내가 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공책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어머님들도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하다.  방문교사들은 복지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가르치는 것도 하지만 말동무도 되고 도움이 필요한 일을 연결시키기도 한다”며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이야기 한다.

공부방은 9월 재인증 심사를 앞두고 있다. 박명숙 씨는 “함께 일하는 교사들의 만족도가 높고 보람있어 한다. 하지만 수익성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진정으로 찾아가는 사회적 서비스를 실천하는 ‘찾아가는 어른공부방’을 금천구 주민들 속에 더 깊숙이, 그리고 더 오래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상담문의  02-895-5973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연재 기고 - 아빠가 쓰는 세남매 성장일기

아들이 이제 열 살이다. 초등학교3학년. 80년대 ‘국민 학교’ 3학년에 담임샘 성함하고 파마머리 똥그란 얼굴까지 생각나는데 나의 아들이 지금 그 나이이다. 앞으로 무서운 속도로 커 나가겠지. 군대에 갈 나이도 곧 닥치겠지.
강화도에서 해병대원들의 끔찍한 총기사건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21세, 20세 어린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왕따를 시키고 피해자인 사병이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뉴스를 통해 ‘기수열외’란 생소한 단어를 접하게 되었다. 기수열외란 선임을 선임으로 인정하지 않고 투명인간 취급을 하며 후임들에게까지 선임대우를 못받게 하며 심지어 욕설에 폭행까지 일삼는 그들만의 ‘전통’이란다.

여기서 떠오르는 단상이 있다. 제대한지 어느 새 15년이 훌쩍 흘렀지만 나의 청춘의 26개월을 구금당했던 90년대 초반의 경기도 어느 산골짝 포병대에서 만났던 어떤 후임병의 모습. 그의 이름은 일명 ‘최스타’였다. 이등병때부터 장성급 행동을 일삼아 장성대우를 해줘야 한다며 인사계(별명이 난쟁이똥자루였다. 키가 워낙 작으신 양반이라..)가 붙여준 별명이다.

최스타는 6개월 정도 차이나는 나의 후임이었다. 충청도 어느 작은 마을에서 왔다던 그는 말수가 적었고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으로 말수가 적어 대화가 힘들었다. 말을 시키면 대답 한번 듣기가 힘들었다. 체력도 약해 작업을 시키면 후들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내가 속했던 부대는 포병대였는지라 당시만 해도 매일 밤마다 공식 점호가 끝나면 ‘식기당번’이라 불리는 실세 기수가 후임들을 교육하곤 했었다. 욕설과 폭행은 일상적이었다.
그때 그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세상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군대라는 곳에서 한 해 500명 이상이 죽어나가던 때였다. 누가 어디서 죽어나갈지 아무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조직이 생기면 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은 받드시 생긴다. 특히 남자들만 모여 생활하는 군대라는 조직에서는 착하고 여린 심성의 병사들이 주로 낙오의 대열을 메꾸곤 한다. 최스타도 그런 점에서 유력한 후보였다.

그가 상병 진급한 날 밤이었나? 취침점호를 마치고 난쟁이 똥자루 인사계가 뒷짐을 지고 한 마디 하던 날이 말이다.
“우리 최스타가 이제 상병이 되었다. 모두들, 최스타가 무사히 제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글쎄다. 그 말이 왜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까…. 인사계가 그 말을 하고 내무반에 흐뭇한 미소가 흘렀던 것 같다. '우리 한번 힘을 모아 최스타를 제대시켜 무사히 고향에 보내주자. '는 공감대였나 싶다.
그랬다. 최스타의 동기들은 작업이나 훈련시 최스타를 도왔고, 선임들은 그를 어느 정도는 귀엽게 봐주었고, 후임들은 최스타를 철저하게 선임대우 해주었다.

만약 못난 선임이라고 우습게 보는 말을 한마디라도 했었다면 그를 포함한 그 동기들은 철저히 보복당했을 것이다. 감히 엄두를 못낼 정도로.
조직에 적응못하는 병사들을 자체적으로 낙오시켜 왕따시키는 모습은 그 때는 없었다.
군대면제자들이 모여 나라를 이끌어 가시니 있는 집 자식들은 이중국적취득으로 죄다 빠져나가고 나의 아들은 단지 못난 애비 만나 군대에 가게 될까…
아, 이나라의 군바리들이여. 무사히 제대할지어다!

                                                                                                           김희준 (독산1동)
필자는 독산1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재빈, 재은, 재령 3남매와 함께 성장일기를 쓰고 있는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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