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구에 임대주택이 많다?

부영 대한전선부지 임대주택→분양주택 선회, 유 구청장 "임대주택이 많아서..."

아파트형 임대주택 금천 2,149세대 관악 7,918세대, 구로 8,171세대, 동작구 5,582세대




유성훈 구청장이 주민과의대화에서 3+1 개발사업 중 종합병원유치관련 발표에서 부영그룹이 제시한 계획안에 대한 설명에서 기존 ‘임대주택’안에서  ‘분양주택’으로 변경했다고 말하고 변경사유에 대해 ‘금천구에는 임대주택이 너무 많다는 논란이 있어 분양주택으로 조정했다.’고 발표해 의구심이 들고 있다.

과연 금천구에 임대주택이 많을까? 전국 임대주택 현황을 알수 있는 ‘마이홈’서비스에 따르면 금천구에 아파트형 임대주택은 2,149세대다.(원룸 및 다가구 임대제 외) 관악벽산타운 564세대, 시흥벽산  1288세대, 롯데캐슬1차 183세대, 시흥목련 105세대, 백운한비치 9세대가 전부다. 금천구 전체 108,327세대(2019년 1월 기준) 에서 볼 때 1.9%수준이다. 여기에 추가로 들어서는 것이 독산역 인근 롯데알미늄 자리에 기업형임대주택(뉴스테이) 919세대가 2021년 입주를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금천구 인근 지자체의 아파트형 임대주택 현황은 어떨까? 관악구는 7,918세대로 3배, 구로구 8,171세대로 4배, 동작구 5,582세대 2.5배가 많다. 해당 부서에서는 부영 측이 애초 2300세대 전부를 임대주택으로만 짓겠다는 계획이었고 주거의 다양성 고려해서 분양주택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 의견을 받아 부영은 의견을 996세대 중 854세대를 분양하고, 장기전세는 142세대를 하겠다고 계획을 수정했다. 한편, 금천구에는  불안한 주거로 주거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약 6천 가구, 8천여명이 넘고, 고시원 등 주택이외의 거처에 9,106가구가 살고 있다.  

구청장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대한전선부지는 2015년 2월26 지구단위계획이 결정되고 2017년 6월26일 부영측은 의료법인 우정의료재단의 설립허가를 내놓는다. 이어 2018년 2월9일 기업형임대 주택공급촉진지구 사전자문신청을 제시했고, 서울시는 7월26일 사전자문요청에 따른 보완을 통보했다. 같은 해 12월10일 유성훈 구청장은 서울시장을 면담했고, 12월18일 부영측은 세부계발사업 수립 제안서를 금천구에 제출하는데 ‘임대주택을 분양주택으로 변경’과 ‘종합병원 부지 확장 (2만㎡에서 2만5천㎡)’이었고 올해 1월 제안서 관련해 각 기관이 협의를 진행했다. 이어 올해 2월 주민공람 및 금천구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자문을 받아 4월에는 서울시에 세부개발계획은 신청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3·1운동 100주년 기념 우리동네 역사 찾기

 

3·1 만세운동의 주역 금천 ,횃불을 든 시흥

 

금천구에서 만세운동은 읍내에서 시작되었다. 37일 시흥 읍내 보통학교(시흥초. 지금의 무지개아파트 부근)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하고 동맹휴학을 결의했다


당시 금천구는 경기도에 속했고 가장 활발하게 만세운동을 펼쳤다. 금천구를 비롯해 영등포, 관악구, 동작구, 안양, 군포시등을 포괄한 옛 시흥군에서는 23회에 걸쳐 연인원 1만여 명이 참여하였는데, 이는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시위횟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1904년 시흥농민봉기가 일제에 의해 진압된 이후 많은 피해를 당했고, 이후 일본군의 주둔과 감시체제로 탄압을 받았음에도 3·1운동에 주도적을 참여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이다.


<매일신보 음력 기미 2월 9일 발행(양력기준 3월10일)보도에는  경기도  시흥 지역 '보통학도 휴교'란 제목으로 '7일 오전11시경에 보통학교 성도일부가 동맹휴교를 하고 만세를 부른 후 헤어졌음으로 주모자 다섯명을 인치해 엄중히 성류를 해 깊이 '전바'를 뉘우치고 이틀날부터 출교하겠다고 맹세했다더라'라는 기사가 보도됐다. >



서울의 시위운동에 호응하여 가장 빨리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은 33일의 개성이었다. 금천구는 37일로 두 번째로 빠르게 서울에 호응하여 일어났다. 323일 시흥군 북면 양평리에서 탄원기 씨의 주도로 400여명의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벌였으며, 이날 영등포 당산, 노량진, 양평리 등지에서도 모두 1,200여명의 주민들이 각지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327일 시흥군 서면 소하리에서 이정석 씨 등이 만세시위를 하다 연행되었다. 이에 328일 밤 10시 주민 200여명이 노온사동의 경찰주재소를 포위하고 이정석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군중은 주재소 벽을 허물고, 방화하며 시위를 벌였지만 이정석을 구하는데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 이종원(이정석의 부) 등 주동자 여러 명이 모두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329일에는 현 구로동인 구로리에서 시위가 있었으며 군내 여러 곳에서 1백명의 군중이 방화를 하고 만세를 외쳤으나 일제의 총격을 받고 해산하였다.


330일 오전 10시 수암면(현 안산) 18개 동리에는 이날 수암리 비석거리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니 모이라는 격문을 보고, 2,000명의 주민이 수암경찰과 주재소의 서쪽 밭에 모여서 큰 기류를 떠받들고 각자는 작은 기를 가지고소 수암주재소, 면사무소를 불태워버리자고 외치면서 관청에 몰려가 만세를 불렀다.


홍순칠은 자기는 원래 조선독립을 희망하는 한 사람인데 독립을 기도하려면 많은 사람이 모여서 시위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믿어, 29일 국유지 소작인 수 명에게 격문 내용을 알리고 조선이 독립하면 국유지는 소작인의 소유지가 되니, 이 때 만세를 부르는 것이 득책이다고 권고하며 소작인을 선동하였으며, 30일 자기가 인원을 조사한 것은 후일 불참자를 문책할 자료를 얻기 위함이다일제 관헌 앞에서 당당하게 진술하였다.

31일에는 시흥군 남면 주민들은 인근의 수원군 의왕면 주민들과 합세하여 2,000여명이 군포장에서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일부 군중들은 주재소 등을 습격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이 발포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우리동네 3·1 운동

 

우리동네 만세운동은 서울과 같은 생활권에 속한 지역이어서 비교적 빨리시작 되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는 분위기 였으며, 상인 등은 철시 투쟁을 감행함으로 점차 관내로 확산되어 나갔다.

시위가 농촌지역으로 파급되면서 마을 이장 등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안산시 수암면 비석거리 만세운동에서도 이장이 통문을 돌려 주민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였다. 일정한 지식과 소양을 갖춘 이장은 말단 실무와 여론을 조정하였다.

비석거리 시위운동을 주도한 홍순칠은 조선이 독립하면 국유지는 소작인의 소유가 된다라며 농민들을 설득하여 동참을 견인한 특징이 있다. 농민들은 토지조사사업에서 가장 큰 피해자 였고 소작농으로 전락한 열악한 처지에 대한 반발과 불만은 매우 고조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독립이 이루어지면 토지분배라고 하는 농민적 이해에 기초한 독립국가 건설을 기대하고 있었다. 만세운동은 일본 식민지배 모순된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민족해방운동을 진전시키는 밑거름이자 에너지원이었다. 독립된 나라를 왕조복귀가 아니라 민주공화제를 주창했다는 면에서 3·1운동은 처음부터 혁명이었다.

 

최석희 기자

 

* 이 기사는 향토문화지(금천구청), 내가 겪은 3·1운동(이희승),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19 “국내 3·1운동-중부·북부(김정인, 이정은), 시흥지역 3·1운동의 전개양상과 현장증언(김형목), 한국독립운동사 3-3.1운동 을 인용하여 작성하였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우리동네 역사 찾기

 

내가 겪은 3·1운동-이희승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은 시흥군(의왕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희승 선생은 내가 겪은 3·1운동3·1운동 50주년 기념논집1969년 게제했다. 본 지는 시흥군 출신의 이희승 선생의 글을 100주년을 맞아 다시 읽어봄으로써 당시의 분위기를 되짚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회승 선생은 호시탐탐한 일본은 1910년 기어이 한일합방이란 명목으로 한국을 완전히 병탄하고 말았다. 고종은 이태왕이란 치욕의 칭호 밑에서 10여년을 지내다가, 1919121일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일인에게 독살까지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191933일은 고종황제 인산(황제의 장례)의 날이었다.,, 인산을 구경하기 위하여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극빈자가 아닌 이상, 서울로 오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회고했다.


서울의 거리는 열광적인 독립만세를 연달아 부르는 군중들로 가득 찼다. 어느 틈에 만들었는지, 종이로 만든 태극기의 물결, 이러한 대열 앞에는 학생이 선두에 섰으며, 여기에 호응한 것이 서울 시민, 지방에서 모여든 시골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였다. 시위 군중들의 맹렬한 기세에 일본 관헌들도 멍청하게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지금의 광화문 세종로 거리인 육조 거리가 콩나물시루같이 인파로 빽빽하였다. 그 속을 인력거를 타고 지나던 일인 경기도 지사에게 모자를 벗어들고 만세를 부르라고 호통을 치니까 혼비백산한 이자는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만세를 불렀다.”


해가 저물어도 만세소리는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이때부터 일본관헌들의 잔인한 보복이 시작되었다 평화적인 시위군중에 대하여 창과 칼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였다. 안국동 부근에서는 손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여인에 대해 일 순경이 환도로 팔을 내리쳐 잘라버렸다. 여기저기서 이러한 일들이 생겨났다.”


“32일에도 시내 각처에서 적은 집단이 군중 속에 파고 들어가서 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였고, 그리하면 반드시 일반군중이 이에 따라 만세를 화창하여 그 기세가 커져가고 있었다. 33일은 인산날 이므로 만세소동은 비교적 적었다. 그러나 거리의 사람만은 어느 날보다도 더욱 많았었다. 35일에는 31일과 같은 대규모의 만세운동을 일으킬 예정이었다. 시발지점은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 전이요, 출발시간은 상오 9시였다. 서울역전으로 집합장소를 정한 것은 인산이 지나서 시골로 돌아가는 사람이 부쩍 많아져서, 그 사람들이 보는 눈앞에서 다시 한 번 대규모의 만세운동을 전개시켜 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전에 이 계획이 누설되어 그 정보가 일본관헌의 수중에 들어간 것으로 생각되었다. 역전에 모이는 군중들도 귀향인이 아닌 사람은 쫓아버리고, 덩어리로 뭉치는 것을 극력 방해하고 있었다. "


"이러한 중에서, 어떤 지도자격인 사람이 인력거를 타고 앉아서 큰 태극기를 높이 들고 역 앞에서 남대문을 향하여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로 청년들로 이루어진 일련의 행렬이 그 뒤를 따라 질주하면서, 여기저기서 만들어 가지고 온 태극기를 꺼내서 행렬에 낀 청년들에게 또는 구경군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것을 흔들면서 만세를 고창하였다이후 서울에서의 만세 시위는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이희승 선생




경기도 광주군 의곡면 포일리(현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에서 출생하였다.

 193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어학과를 졸업, 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가 되고, 같은 해 조선어학회 간사 및 한글학회 이사에 취임하였다. 1940년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연구하였으며,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관련, 검거되어 일본이 망할 때까지 복역하고 8·15광복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에 취임하였다. 195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부원장에 취임하고 1954년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에 선임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희승 [李熙昇] (두산백과)



최석희 기자

 

이 기사는 향토문화지(금천구청), 내가 겪은 3·1운동(이희승),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19 “국내 3·1운동-중부·북부(김정인이정은), 시흥지역 3·1운동의 전개양상과 현장증언(김형목), 한국독립운동사 3-3.1운동 을 인용하여 작성하였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우리 동네 역사 찾기-1

반외세 투쟁의 선봉 1,2차 시흥농민봉기



본 지는 창간 이후부터 금천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다. 우리나라 근현대 음악과 민속에 정통한 노동은 교수(중앙대학교 명예교수)와 함께 “2012년에 금천의 문화는 어디로 갔지?-이제는 금천학을 할 때이다”를 준비하다 아쉽게 불발된적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함께 말씀을 나누었던 노동은 교수가 2016년 고인이 되셨다.

금천구혁신교육지구 마을공동체분과에서는 2018년 6월 4회에 걸쳐 ‘금천마을대학 우리동네 인문할科-한말 시흥농민봉기와 마을공동체’라는 주체로 3번에 걸친 강좌를 개최했고, 10월24일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강연 우리동네 현대역사와 마을공동체 운동’을 열기도 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중앙정부와 금천구에서도 기념행사가 다양하게 준비되고 있다. 

1919년  시흥보통공립학교에서도 3월7일  동맹휴업과 만세시위가 있었다고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에 앞서 1898년 1,2차 시흥농민항쟁도 있었지만 정작 금천구 주민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이에 본 지는 우리 동네 역사를 중심으로 함께 고민을 나누기 위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우리 동네 역사 찾기]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하지만, 전문연구자가 아닌 민간영역에서 관심있는 분들의 논의와 학습을 통해 정리한 것이라 깊이가 얕고,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 

 


우리 동네 항일운동, 시흥농민봉기 

  금천구는 1995년 구로구로부터 분구한 이제 25년밖에 되지 않은 작은 구지만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영등포와 구로, 관악, 동장, 광명, 안양, 안산, 과천, 군포등 넓은 지역을 포괄하던 시흥군의 중심지인 시흥현청이 시흥5동에 존재했다. 금천구에는 두 번의 농민봉기가 있었다. 1898년에 일어난 1차 시흥농민봉기는 지방 관리들의 탐학과 가렴주구에 있었다. 은행나무에 옛 군수들의 ‘선정비’가 믾이 남아 있지만 조선시대 말기 군수는 ‘돈으로 관직을 얻었으니 항구적인 지위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이라 재임기간 최대한 수탈에만 혈안’이었다. 갑오농민전쟁을 통해 깨어 있는 농민이 많아졌다.


 항쟁의 주역들은 지방관리의 비행을 조목별로 정리하고 “향회”를 개최한다는 사발통문을 6개면 42개 동리의 집강(면장, 이장들을 지칭, 지금의 주민자치회장)들에게 통보하였다. 사발통문은 사발(밥그릇)으로 원을 그리고 원을 주위로 제안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해서 누가 주모자인지 알기 어렵게 하는 방법으로 농민항쟁에서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수단이었다. 8월 23일 운집한 수천명의 군중들은 전임 군수 문봉오의 가혹한 수탈과 불법행위를 성토하고 그 아전들의 죄상을 관가에 알리며 처벌을 요구하는 반봉건 투쟁이었다. 농민들은 아전들의 가옥창고를 파괴하고, 집기,전곡 의복들을 마당에 끌어내 불태웠다. 이 사건으로 봉기주동자 남면의 직강을 맡은 성우경과 전횡을 일삼은 향장 엄우명 등 4명을 구속됐다.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수 없도록 원형으로 이름을 적어놓은 사발통문-갑오농민전쟁 당시 사발통문>



  2차 시흥농민봉기는 개항 이후 열강들의 이권 참탈에 항의하는 과정에 일어났다. 일본은 철도를 식민지의 침탈을 쉽게 하는 도구로 보았으며, 1904년 2월 발발하여 전쟁터가 만주지방으로 북상하자 철도부설을 다그치는 과정에 봉기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봉기가 발발하기 3년 전에 영등포~수원간의 경부선철도 공사가 시작된 9월부터 조짐이 있었다.  1901. 9.9 황성신문 보도에 의하면 ‘시흥군 등지에서 경부철도 기공을 한 후에 역부들은 임금이 매우 적다고 비난하고 땅주인은 적절한 지가를 지급하라 하고 분기하기로 하자 병정과 순검을 파견 진압하였다“고 보도됐다.


철도를 부설하는데 있어 일본은 조선측의 희생을 전제로 저렴한 임금과 토지의 무상수용으로 세계에서 가장 싼 값으로 완성시켰다.  19세기 말 식민지 및 반식민지 지역에서 철도 건설비는 일본 돈으로 환전하여 1마일 평균 16만원 수준이었으나 조선에서는 미국의 값비싼 자재를 사용하고도 3만 1천원에 불과했고 일본 군대의 비용과 수송비를 감안하더라도 6만 1천원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니, 당시 인부들이 얼마나 비참한 대우를 받았는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일본사령부는 청국 안동현(지금의 단둥시) 지방의 병참기지와 철도 부설을 위해 경기도와 삼남지방(충청,전라,경상도)에 2,000여명의 인부를 모집하여 보내줄 것을 조선 정부에 요구하였고, 시흥군에는 80명의 인부가 배정되었다. 

8월 각 동회 집강들은 수 천명의 농민들을 인솔하여 관아에 들어가 사정을 호소하였다. 지금은 농번기이므로 인무모집을 연기하고 다른 군이 시행하는 경우를 보아 가면서 실시하자고 요청하자 군수가 이를 받아들여 항쟁 직전에 해산하였다. 하지만 러일전쟁의 전장은 중국 동북지역으로 확대되어 역부 수요를 급증시켰다. 

이에 일본군은 인부 충원을 독촉하게 되었고, 군수는 강제 모집을 하였다. 농민들은 산속으로 피신하여 어떤 마을은 폐허를 방불케 했다. 시흥을 비롯한 경기도 지방은 서울에 가까운 지역으로 일본군의 압력이 집중되었다. 시흥군 이외에도 가평, 김포, 진위, 고양, 용인 등이 역부의 강제모집에 저항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농민항쟁 주동자들은 치밀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이들은 8월 중순경에 퇴리 김원록에게 의뢰하여 역부모집에서 야기되는 각 종 모순을 황성신문사에 투고하기로 결정했다. 초고를 받은 김원록은 읍내에 와 있던 이기준에게 황성신문사에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상경 도중 노량진에서 이명수를 만나 대신 전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명수는 이를 집에 두었다가 며칠이 지나 내용을 살펴보니 역부모집의 부당성과 이를 둘러싼 아전들의 비리에 관한 내용이었음을 알고 곧바로 관아에 알렸다. 9월 10일 순교청에서 김원록을 즉시 체포하는 동시에 대필한 서울의 남중희는 경무청에서 구속하였다. 


  뜻밖의 밀고로 상황이 불리하게 진행되자 집강들은 9월 13일 사발통문을 발송했다. 다음날 집강들의 인솔하에 수천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한천교(안양천)에 모였다. 성우경 집강은 역부모집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한편 아전들과 자신과 작간(간악한 꾀를 부림)은 사실무근임을 밝혔다. 이에 하주명은 작간은 군민이 모두 아는 사실이라고 반박하며 언쟁이 높아지는 가운데 군중은 결백을 확인하기 위하여 관아로 나아갔다. 오후 3시경 관아에 도착할 즈음 이서층(향리와 서리들)은 모두 도망한 상태였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본인 30여 명은 관문을 폐쇄하고 칼을 휘둘러 부상자가 속출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관문 밖에 있던 농민들은 분노가 폭발하여 일제히 돌을 던지며 관문을 파괴하고 돌진하였다. 이들은 감옥을 파괴한 후 수감된 김원록 등 농민항쟁과 관련된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이어 관청과 작간을 저지른 이서층 집과 기물을 파괴 하였다. 

한편 관아 진입을 시도하는 와중에 군수 박우양 부자는 현장에서 사망했고 관아 진입을 저지하던 일본인도 2명이 사망하고 4명은 부상하였으며, 농민 중에서는 광명리 민검석이 사망하고 일본인이 휘두른 칼에 다수 부상자가 발생하는 아비규환이었다.


  일제는 자국민 보호를 구실로 동대문에 주둔한 헌병경찰과 군인 200여 명을 급파하였고 읍내에 주둔하였다. 일분군은 7~8명씩 조를 편성하여 각 동리를 돌아다니며 검속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9월 15일 읍내에 감시가 엄중하자 집강들은 광명리에 모여 사후 대책을 논의하였다. 해결책은 역부모집 중단을 관찰부에 탄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의견서를 작성한 후 철산리 최영선은 이를 가지고 관찰부로 가는 도중에 체포되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일본군의 무력 진압으로 표면적인 평정은 되찾았으나 오히려 민심은 상당히 동요하고 있었다. 


  주동자에 대한 재판은 10월 26일부터 진행하여 김원록은 사형, 성우경 민용훈은 무기징역, 하주명은 15년을 각각 언도했고 김원록은 곧바로 사형에 처해졌다.


민중운동사의 새로운 이정표


대한제국의 몰락과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 가속화되는 상황 속에서 벌어진 시흥농민들의 봉기는 반봉건과 반외세라는 ‘이중적인’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반영시키고 보다 결집된 역량을 발휘하고자 향회(민회)를 개최하였다. 향회는 다양한 농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공동체 장이었다. 향회는 지방관속의 수탈에 대항하고 민권의식을 강조하는 실천의 장이었다.  


  2차 시흥농민운동은 지방관리의 봉건적이 수탈에 대한 저항이자 일제 침략에 대한 저항이었다. 항쟁에서 군수 부자와 일본인 살해하는 등 현실 모순에 대한 타개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또한 신문을 통해 사회적인 여론에 호소한 ‘새로운’ 방법은 민중운동사상 획기적인 시도였다. 이는 결국 군수의 재직 기간을 단축시킴으로써 일시적이나마 수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다른 지역과 연계를 통한 보다 조직적인 저항으로 나아가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2차 시흥농민봉기는 1894년 갑오농민항쟁과 갑오개혁을 통해서 민중운동이 한 단계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생각한다. 2차 시흥농민봉기를 구로구도 ,광명시도 자신들의 역사로 기록하고 있지만 금천구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주민자치, 지방분권 시대 역사의 정체성 찾기


 지방분권, 지방자치화가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이는 지역사 연구의 심화를 통하여 지방자치화 시대에 걸맞는 역사적 정체성을 수립하는 문제와 풍부한 지역사를 복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구로공단이 있으면서 1985년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노동자동맹파업인 ‘구로동맹파업’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역사가 있어 금천구에서는 더욱 각별할 수 밖에 없다. (현재 민주노총의 전신이 되었던 전노협에서는 2차 시흥농민 봉기 등의 투쟁을 근대노동운동의 효시로 중요하게 평가했다.)

이제 3.1운동 100주년 기념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3.1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진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기 역사의 격동기를 살아낸 민중들의 ‘시흥농민봉기’와 같은 거대한 역동성의 역사적인 투쟁의 소산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 위의 대부분 내용은 금천구청 발행 향토문화지와 김형목(독립기념관 책임연구위원)의 ‘시흥지역 농민운동 주역들의 올바른 자리매김’에 근거해서 기록했음을 밝힌다.  다음 호의 주제는 ‘우리동네 3.1운동’이다.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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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의 대화는 구청장만 하나? 이틀이 지났지만 담당자는 파악도 못해


유성훈 금천구청장이 10개동에서 주민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데 실무부서와 제대로 소통이 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고 있다. 본 지는 주민과의 대화 자리에 가능한 참석해 주민들이 어떤 의견과 제안을 하고 있는가 살피고 있다. 지난 19일 시흥3동에서는 시흥유통상가에서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상인이 관련 질의를 했다. 하지만 ‘시흥유통상가 발전전법’과 ‘대규모점포’에 관한 사항 등으로 내용이 어렵고 장내가 어수선해 제대로 파악을 못해 이틀후 21일 본 지 기자는 관련 부서인 지역경제과에 문의했지만 담당자는 “무슨 내용이 어떻게 질의됐고, 답변이 됐는지 아직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는 답을 얻었다. 다시 도시계획과와 시흥3동 주민센터에 연락하니 지역경제과에 문의해야한다는 뺑뺑이 답변만 들었다. ‘주민과의 대화’에는 국장, 과장을 비롯해 담당자들도 참석한다. 주민과의 대화에 참석하느라 구청의 웬만한 담당자들은 자리를 비워 연락도 안된다. 주민들이 제안한 내용에 대해서는 연락처와 이름도 받아적어 추후 답을 한다고 안내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틀이나 지났는데 해당 부서에서는 어떤 내용이 오고 갔는지 파악도 안되고, 자신의 업무와 연관있는 질의가 있었는지 알지도 못한다면 이 ‘주민과의 대화’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짚어 볼 수 밖에 없다. 그저 구청장의 보여주기식 행정일 뿐일 걸까? 물론 2월28일 마지막 순서인 독산3동이 끝나면 10개동 의견을 취합해서 부서별로 나눠주고 검토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습에서는 행정의 기민함과 주민의 의견에 촉각을 세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주민들이 하는 소리’라는 것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다.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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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1동 마을총회] 문화, 환경, 복지등 5개분야 나눠 사업제안



27일 독산1동 주민센터의 마을활력소에는 약 150여명의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마을총회가 개최돼 2016년 마을사업결과공유, 사업제안과 토의, 지역현안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독산1동 마을총회는 문화, 환경, 복지, 도시재생, 주거환경의 5개 분야로 진행됐다. 문화는 분야는 마을축제와 런치콘서트, 마을활력소 방안 등에 대해서. 환경은 쓰레기 무단투기와 분리수거의 문제, 복지는 마을봉사단과 복지협의체 활동, 도시재생은 우시장과 현대지식산업센터 등의 네트워크 형성, 주거환경(금하마을)의 경우 분소지역의 발전과 환경정비 등에 대해 마을의제에 대해서 토론했다.


환경분과는 독산1동의 철길 건너 금천현대 아파트 주변의 쓰레기 적환장으로 인해 파리와 모기와 냄새, 전자제품의 투기되면서 소음이 심각하다는 어려움을 호소했고, 민원 요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구청 측은 답했다. 주민들은 쓰레기 무단투기 방지와 골목청소를 위한 활동 주민들이 나서서 하자고 덧붙혔다.


문화분과는 마을활력소를 통해 공간을 활용해 아이들과 어른이 서로 소통을 통해 예절과 인성교육이 진행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4층 장난감나라와 어린이문고의 공간대여를 적극적으로 해 활용도를 높이고 악기를 통한 특성화 교육의 지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더불어 벚꽃축제와 연계한 우리 동네 스템프 찍기 등의 사업을 통해 마을을 알리는 방안도 제출됐다.


도시재생 분과는 우시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복잡한 도로의 주차환경 개선, 악취제거를 위한 활동과 합동 작업장 설치를 통한 미관개선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찾아오는 우시장을 만들기 위해서 의견을 수렴하는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덧붙혔다.


주거환경(금하마을)분과는 50~80대 연령의 노인들부터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먼저 노력하자고 제안하고 음식물과 일반, 재활용 쓰레기 감안 방안을 제출했다. 음식물쓰레기로 퇴비를 만들어 텃밭을 가꾸고 마을기업을 만들어 판매해 지역의 일자리와 소통의 공장을 만들자고도 제안했다.


지역현안 민원으로 150번 시내버스 임시 차고지 이전 시 노선의 정류장설치와 독산역 1번출구 앞 환경개선, 마을버스 09번의 금천구청까지 연계 등에 대해 질의와 응답이 진행됐다.



<발표 하고 있는 주민들>


<도시재생관련 우시장 노래를부르고 있는 참석자들>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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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한민국을 묻다 민중연합당 이승무 위원장



개별화된 주민의 협치는 대상화 일 뿐


노동자 서민의 직접정치로 바꿔야



2017년 탄핵정국으로 새해를 맞은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이 화두로  만들어졌다. 각 정당들은  갖고 있는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생각과 지역정치에 대한 고민을 들어봤다.



새로운 대한민국. 

공황이라고 이야기하고 저성장 단계로 왔다. 각 국에서 보면 어려운 경제환경에 대해서 2가지 방안이 있다. 하나는 극우적인 방향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극우적인 경향이 있다. 또 하나는 스페인의 포데모사나 그리스의 시리자, 이탈리의 오성운동 등 민주주의 확산되고 직접정치의 길을 터주면서 이제는 복지와 분배로 전환되고 있다.

스페인이나 그리스의 시리자는 선거연합정당으로 나가고 있다. 보수정당과 대항하기 위해서 선거연합을 통해 후보군을 하나로 가는 방향이다. 패권이 아닌 숙의민주주의 연합을 인정하고 끌어가는 것. 이것이 일정기간이 지나면서 단일한 정당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있을 수 있다. 쪽수가 아니라 다양한 상호 배려하고 존중하는 체계로 가는 것이 실제로 자본주의적 병폐를 해결할 수 있는 진보정당이 확대 발전할 수 있는 경로로 가고자 한다.  

이탈리아 오성운동은 시민운동의 확장성을 바라본다. 쓰러기 수거 방법을 제안해서 시장을 당선된 사례도 있다. 이런 역동적인 정치모델을 적극 검토해봐야 한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는 원천적으로 419 이후에 박정희가 강압적으로 권력을 잡은 것부터 시작된다.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이런 게이트가 잉태된 것이다. 대한민국이 민주 권력임에도 소수가 다수를 배재하면서 부패로 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필연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작년 연말까지 1천만이 참여해 새로운 변화를 만든 것처럼 분명히 청산되어야 한다.


민중연합당의 새로운 대한민국


제도정치의 벽이 높긴 하지만 노동자 서민이 직접 정치에 나서야한다. 최순실의 문제를 보면 삼성의 경영권 세습에  국민연금이 개입합으로써 국민연금은 손해를 보고 삼성은 이득을 보는 것이다. 재벌 중심이 아닌 일하는 사람 중심으로 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고도성장의 자본과 권력이 아닌 노동자 서민의 중심사회로 가는 것이 올해 민중연합당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1990년 전후로 레이건 노믹스, 대처리즘의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퍼졌지만 빈부격차가 극심해졌으며 1%가 99%를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경색과 개성공단의 폐쇄로 인해 정치적 자유 뿐만 아니라 경제적 활로도 막히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의 평화가 중요하다. 



대선 전략은 무엇인가?

 민중연합당은 통합진보당이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대해서 강제해산 된 아픔을 딛고 작년 2월에 창당을 했다. 총선에 60여명의 후보도 나왔다. 정당에 선거시기에 후보를 안낸다는 것은 정당의 책임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한다. 지난 1월14일에 독자후보를 낸다는 것을 결정했다. 다만 민주노총에서 민중후보 단일화 방안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했다. 대선 전에 좀더 큰 진보정당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려한다. 


금천구가 2017년 ‘협치’를 들고 나왔다. 어떻게 보는가?


 직접 정치적 대안으로 주민참여예산제가 운영되고 왔다. 실질적으로 금천구청에서 마을민주주의를 했지만 일부만 참여하는 한계가 있다. 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홍보, 자발성에 기초해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구청의 공무원이 나름 전문성이 있지만 제도를 운영하는데까지 관여하다보니 주민이 대상화되는 측면이 있다. 

협치에서 개별화된 개인은 행정에 의해서 대상화될 수 밖에 없다. 행정이 정책적 문제에 대해서 주민들에게 어떤 것이 올바른지 토론하는 것이 있는가 따져봐야 한다. 정치적 쟁점을 배재한 주민과의 개별적 관계로 문제는 풀 수 없다. 


정유년 새해다. 주민에게

정윤연 붉은  띠를 맞아서 정치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촛불혁명에서   것처럼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슬기롭게 이겨나가길 기원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 


인터뷰 1월20일 진행하다

정리 이성호

[장제모칼럼]대의제와 주민참여 제도



마을공동체 활동의 활발한 전개에 더하여 ‘주민 참여’를 내건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의 정책들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그 수와 내용이 다양하게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식이 날로 성장하고 있고 그에 따른 위정자들의 자각으로 인한 결과적 현상으로 우리사회 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민주주의의 저변확대가 기대되는 과정을 맞고 있는 게다

.










그러함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 민주주의가 덜 성숙된 사회라는 지적에 겸허할 필요가 있다. 여러 문제를 말할 수 있지만 민주(民主)를 말하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대의정치(代議政治)가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대의정치를 이해하면, 국정(國政)에는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지만 이는 비현실적이므로 일정 수 단위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을 뽑아 이들로 하여금 대신 담당케 하는 즉 대의(代議) 제도다. 국회의원, 시·도(광역)의원, 시·군·구(기초)의원이 그 대표적 예로, 이러한 제도는 민간부문에서도 광범하게 도입되고 있는데 조합 등 큰 단체의 대의원제도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대의정치의 후진성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별 이의 없이 공감을 할 정도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런 평가가 있을 만큼 우리의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 의원들의 상당수는 국민의 신뢰에 거리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그들을 직접 선출한 유권자들로 부터 외면당하는 경우조차도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물론 의원들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그들의 의정활동이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친 것에 더하여 실망스런 행위조차하기 때문이다. 요약을 하면, 의원들의 능력과 자질 문제다. 의원 면면을 보면 학력이나 경륜 면에서 가벼이 볼 여지가 별로 없는 이른바 엘리트(elite)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참으로 난해하다. 

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일차적으로 본인의 책임인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함에도 간과해서는 안 될 다른 원인이 있는 데 그것은 그들이 의원이 되는 과정 즉 선출과 관련한 제도의 문제가 그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의원이 되려면 법령에 따라 입후보를 해야 하고, 이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정당의 추천 즉 공천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 신청에 의한 무소속 출마다. (여기서 무소속의 경우는 논제 밖이므로 생략하자.) 우리 선거 환경에서 정당의 공천은 아주 중요한 과정으로,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파의 공천은 곧 당선이나 다름없다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거 메커니즘(election mechanism)이다. 

이론(異論)이 있겠지만, 우리의 의원들은 의원이 되기 전 그러니까 후보 때에는 부적격성을 발견하기 어렵지만 의원이 된 후 무능이나 자질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의원이 되는 과정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상당수의 의원들은 그들의 현재가 있게 한 배경 즉 정파의 배려에 보답하고 그로서 취득한 기왕의 권리 지속을 위해 자기 구속을 스스로 정당화함으로 개인적 신념과 철학을 바꾸거나 버림으로 결과적으로 천박한 이기적 기회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정리를 하면, 의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우선적으로 본인 탓이지만 의원이 되는 과정 즉 선거제도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들의 저질행태(모두는 아니다)는 그들이 있게 되는 과정에서 단초(端初)가 마련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원이 되려면 공천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 타의(他意)가 작용하는 게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현실이다. 이를 해부해 보자. 후보 선정의 주요 포인트는 정파에 대한 충성도인데 이는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민주주의 원리에 배치되는데다 다분히 후진적이다. 그리고 ‘당선가능성’이라는 기준인데 이것도 비과학적인데다 공정성 문제를 가진다.


 조직이 크면 그것이 조건 충족으로 간주되는데 이에는 필연적으로 자금이 연관되기 때문이고 따라서 이는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파에 소속되지 않는 무소속 출마가  있지만 우리 선거 환경에서 그 길은 불확실한 선택이고 그렇듯 당선확률도 낮다. 이와 같이 우리의 대의제 과정에는 민주주의 원리인 기회균등이 경시되는데 그것의 개선이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은 물론 헌법규정의 국민 참정권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의제(代議制)보다 더 나은 제도는 현재로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은 정치 선진국의 사례로 설명된다. 우리나라도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이 제도를 도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그 여정에 굴곡과 파행이 있었음에도 민주주의 국가로의 발전에 기여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대의제는 살펴본 바와 같이 문제가 있으므로 이의 개선 당위(當爲)를 헌법이 규정하는 민주주의 국가(헌법 제1조)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제기는 거창했는데 마땅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함은 유감이다. 항간에는 ‘의원 소환제’나 ‘국민 발안 제’ 등의 도입을 제기하는데 공감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유효한 대책이라 확신할 수가 없다. 전자는 법 제정 주체가 대상인 만큼 입법이 순탄치 않고 설혹 된다 하더라도 기대효과는  미지수다. 입법당사자 구속이 취지인 만큼 단서 없는 순수한 내용의 기대가 어렵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도 유사하다. 우선 그것을 있게 하는 과정이 전자의 어려움과 다르지 않고, 과정을 극복하였다 하여도 정연한 진행의 보장이 어려운가 하면 부작용조차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일고 그로 인한 민민(民民) 갈등 우려가 그것이다. 그럼함에도 이 제도 도입은 긍정한다. 어떤 형태로던 현재의 대의제 불합리 해소책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제기되는 문제의 본질, 즉 현행 우리 대의제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의 대안이 아니다. 단지 ‘견제를 통한 문제의 방지’ 목적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생각해 보는, 보완책이자 대안도 될 수도 있는 제도의 도입인데 현재 여러 유형으로 전개되고 있는 ‘주민참여’라는 이름의 각종 주민활동 제도의 활용이 그것이다. 이 제도를 이해해 보면, 국정에의 직접 주민참여 즉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행이고 곧 민주주의의 연원(淵源)이다. 정치인들이 평소 ‘국민’을 앞세우는 것은 이러한 원리를 알기 때문이 아닐까?

살펴보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주민참여 제도’ 중에는 민주주의를 사실적으로 이해할만한 내용이 많고 그것의 시행 일선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은 실감 있게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있다. 이러한 주민참여 제도를 대의제와 연관하여 보는 것은 비약(飛躍)일 수 있으나 그 기능에 대한 본원적인 이해, 즉 제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 공감을 구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글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국정 시행을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국가 행정 제 부문에 국민이 자유롭게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대의제는 이러한 목적으로 도입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방향에서 대의제를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이해를 진보적으로 해 보고자 하는 것이 ‘주민참여제도’ 도입 의견이다. 다시 말하면 대의제에 대한 견제나 보완을 말하기 이전에 민주주의의 본질에 다가가는 추구 즉 ‘직접민주주의’로 이해하는 것이다. 함께 고민해 볼 가치가 있지 않는가? (♣2017.1.6.)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시흥5동 주민자치위 설렁탕으로 따뜻한 겨울나세요

 

지난 1118일 시흥5동 주민자치위원회가 따뜻한 겨울 행복한 하루의 이름으로 동네 저소득층 어르신 130여명을 초대해 식사대접을 했다 .

은행나무 시장에서 야채가게를 운영하는 주민자치위원회 복지분과 김재우 위원이 1년동안 모금해온 돈으로 후원한 식사나눔은 어르신들이 겨울 보양을 위한 설렁탕이 준비됐으면 주미자치위원 20여명이 나와 봉사를 진행했으며 차성수 구청장, 이훈 국회의원 등도 참석해 일손을 거뒀다.

차은희 시흥5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오신 어르신 한 분 한 분이 너무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해줘서 고맙다. 다른 메뉴보다 설렁탕이었기 때문에 더 좋아했던 것 같아 다행이고 이거 드시고 건강한 겨울 났으면 좋겠다. 협찬해 준 김재우 위원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이성호 기자

 

 

2011년 4월 4일부터 10일까지 금천 벚꽃 축제가 진행된다. 아직 벚꽃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1000명의 하모니로 그 아름다움을 대체하였다.

1,000명을 모을수 있을까? 조그맣고 작은 악기를 들고 왔겠지 하는 선입관은 2차 연습을 하고 있는 대강당에
도착했을때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대체 어디에 숨어있었을가 싶은 재주꾼들이 각자의 악기를 들고 열중하는 모습은 무척 생동감있었다.

4/8일 금요일  2차 연습이 진행되었고 바로 다음날인 9일 군부대터 특설무대에서 오후 5시에 공연을 하게 된다.

금천마을신문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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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회화는 no, 원서 함께읽기 yes
  “문화센터 등에서 하는 기초영어회화강좌, 종이접기강좌 등을 도서관에서 까지 할 필요는 없다. 가산정보도서관에서는 오직 도서관에서만 할 수 있는 프래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할 방침이다.” 라고 금천구립가산정보도서관 김은진 사서파트장은 힘주어 말했다.

  “문화센터나 학원 등에서 기초영어회화 및 외국어 공부를 하고 도서관에서는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원서를 활용하여 영어원서 함께 읽기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외국어 능력의 향상뿐 아니라 번역본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원서만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독서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가산정보도서관에서는 7세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로 떠나는 그림책 여행’과 미취학 아동과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엄마랑 아이랑 영어그림책 여행’,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원서 함께 읽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작년까지 일본어원서 읽기 프로그램도 진행됐지만 해당 강사의 출산휴가로 현재는 휴강중이다. 여건(예산)이 허락한다면 중국어원서 읽기 프로그램도 개설하고 싶다”고 말했다.

책으로 소통하는 가교역할

 책 읽는 금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금천구 도서관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 읽는 금천을 만들기 위해 영유아를 위한 ‘북 스타트’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북 그로우’ 60세 이상 어르신을 위한 ‘북 피니쉬’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가산정보도서관에서는 ‘북 그로우’ 운동의 일환으로 청소년 독서회, 성인독서회, 낭독회 등을 운영중 이며, ‘북 피니쉬’운동으로 나만의 자서전 쓰기, 눈이 어두운 어르신을 위한 성우들의 낭독회, 금천노인복지관과 연계하여 동화구연 지도사 양성과정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특히 2010년 3월 처음 시도되는 나만의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이 주목된다. 자서전을 쓰기위한 여러 가지 글쓰기 기법등을 배우며 연말에는 각자 나만의 자서전 한권씩을 완성하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영유아에서 어르신들까지 도서관이 금천구민을 위한 책으로 소통되는 가교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도서관접근이 어려운 지역을 위한 마을문고와 공공도서관과의 상호대차서비스도 실시할 예정이다. “4월에 상호대차 시스템 구현을 위한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며 상반기 안에 공공도서관과 마을문고가 연계되어 상호대차 서비스 실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금천구립정보도서관 박진순 관장은 말했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지난해 학부모를 대상으로하는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도서관으로 꼽혔던 학교도서관과의 연계가 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가장 접근성이 쉬운 학교도서관에서도 보다 많은 책이 소장된 공공도서관의 책을 빌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떨칠수 없었다. 가까운 구로구는 일부 학교도서관과 상호대차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는 본지 기자의 말에 김은진 사서파트장은 “벤치마킹을 해서라도 학교도서관과의 상호대차서비스도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지역적 특성 프로그램 운영

  가산정보도서관만의 특색과 꿈이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도서관은 늘 새로운 상상이 꿈틀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우리구는 서울에서 세 번째로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에 맞추어 ‘대사관과 함께하는 세계 책 여행’ 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책을 통해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체험하며 올바른 다문화 사회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2009년 2월 인도대사관을 시작으로 2010년 11월 칠레대사관 까지 총 18개 나라 대사관이 함께 했고, 올 상반기에는 스위스, 중국대사관과 함께 하기위해 준비중이다. 

 

또, 타 구에 비해 문화적 접근성이 떨어진다. 어린이들에게 ‘나도 멋진 프로가 될거야’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각 분야에서 프로로 인정받는 분들을 모셔다 직업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2008년 이순미 기자를 비롯해 김병준변호사, 개그맨 박휘순씨 우리구에 계신 선생님 의사, 약사, 음악가 등이 일일 강사로 초청됐다. 이러한 시도들이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양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고 답했다.

타지역 도서관에서 벤치마킹하러 방문오는 최우수 도서관의 노하우
  가산정보도서관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주관한 독서캠페인 ‘책 읽는 서울’ 최우수도서관에 3년연속 선정되었다. 책읽는 서울 독서캠페인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선정한 주제를 가지고 서울시 각 공공도서관에서 주제에 맞는 책을 선정하여 ‘한 도서관 한 책읽기’ 독서캠페인을 펼친다.



특히 2010년  독서캠페인 주제는 [다문화, 함께하는 행복]이었는데, 서울시 85개 공공도서관이 참여하여 진행됐다. 가산정보도서관은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김중미 지음/창비 펴냄)’를 선정했다.
다문화라는 광범위한 주제속에서 ‘한국인의 다문화 인식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지역주민들이 외국인에 대한 이중적 시각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독서 토론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진행하였으며 이 토론회에 지역주민 960여명이 참석했다. 현재 다른 도서관에서도 가산정보도서관을 벤치마킹 하러 올 정도”라는 말에 다른 큰 시립도서관을 물리치고 최우수도서관에 선정된 가산정보도서관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2011년 새로운 주제는 [소통과 배려]다. 가산정보도서관이 이 주제를 가지고 어떤 독서캠페인을 펼칠지  주목된다.

남현숙 기자
kasizzang@naver.com

시흥1,2 재정비 촉진구역 주민설명회 소란 속 개최

지난 2월 24일 목요일 시흥동 일대에서 재정비 촉진구역 주민설명회가 개최되었다.
오후 2시 탑동초등학교에서는 제1구역이, 오후 4시 백산초등학교에서는 제2구역 설명회가 각각 열렸다.
제2구역 주민설명회에는 약 500여명의 주민이 참여하여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행사는 재개발 전반적인 계획 및 공공관리제도를 설명하는 영상보기 이후 예비위원장 선출일정공고, 전반적 계발계획에 대한 질의응답, 감정평가사의 관리처분에 따른 보상가 산정방법등이 설명되었다.


<2구역 설명회가 개최된 백산초등학교 강당에는 500여명의 주민이 운집했다.>


설명회가 진행되는 동안 몇차례 소란이 일기도 했다.
예비추진위원장 일정을 소개하면서 공정선거에 합의한 6명의 후보들이 단상에 올라 인사를 하면서 발생하였다. 항의의 주 내용은 제도만 소개하면 될 것을 아직 후보등록도 받지 않은 사람들을 앞에 내세워 인사시킨 것은 공정성에 맞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더불어 항의하며 발언권을 신청했지만 마이크가 제공되지 않자 주민들의 항의가 다시 빗발쳤다.


이날 발언하는 주문들의 의견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로, 아예 사업자체를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현재 전월세를 놓고 있는 고연령의 자가주택자로 보증금 빼주고 세입자 이주금을 나눠주고 하면 전세방 하나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시 재입주는 더욱 힘들다는 의견이. 이들은 현재 재개발 반대 서명을 받고 있다.
두 번째로, 시흥2구역과 존치구역 일부가 통합되면서 더욱 손해를 본다는 의견이다.
세 번재로, 은행나무 사거리 옆에 과아터 공원을 짖는 계획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쪽의 땅 값이 제일 비싼데 그곳에 상가 배치해서 분양하여 조합원 부담금을 낮추어야지 공원이 들어서서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뒤엉킨 시흥재정비 촉진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주민들간의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보여 
앞으로의 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예비 임원후보를 소개하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한편, 금천구는 추진위원장 선거에 공공관리제도를 도입합으로써 공정한 선거를 보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공관리제도란 재개발사업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추진하도록 공공관리자가 행정․재정적 지원하는 제도로 금천구가 공공관리자가 되어 조합설립추진위원회 구성을 지원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금천구는 지난 2월 추진위원장 선거를 금천구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고 공명선거 주민 모니터 요원을 공개 모집하였다. 

이에 따라 이후 선거 일정은 다음과 같다.


2월 24일 주민설명회
3월 3일 예비임원 후보자 등록공고
3월 9일 선거인명부 열람공고
3월14일-16일 예비임원후보자 등록접수
3월17-24일 자격심사
3월28일 선거일공고
4월2일 합동연설회
4월9일 예비임원 선거 (1구역 탑동초등학교, 2구역 백산초등학교)
4월25-6월10일 동의서 제출
2011년 6월 추진위원회 승인




금천마을신문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바람의 딸 샤 바 누
수잔 피셔 스테이플스  /사계절


*은행이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책을 읽고 올린 글입니다  

파키스탄 유목민 소녀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 샤바누는 파키스탄의 촐리스탄 사막에서 낙타를 기르며 생활하는 유목민 소녀이다. 아시아의 저개발국가 파키스탄. 자연환경이 너무도 척박한 사막지역. 같은 아시아권인데도 많이 다른 문화와 종교, 제도와 풍습, 환경 그 속에서 성장기를 맞이하는 샤바누 이야기는 사춘기를 맞이하는 딸을 둔 엄마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린소녀 샤바누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하는 ‘바람’의 아이다. 그의 엄마는 그녀의 자유분망함을 알고 있었고 그 자유분방함이 그 소녀를 힘들게 할까봐 걱정을 한다. 샤바누가 살고 있는 남성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말이다.
  사춘기를 지내는 두 자매 풀란과 샤바누는 너무도 다른 삶을 추구해 나간다. 언니 풀란은 결혼을 위해 모든 시간과 정성, 삶의 모두를 투자한다. 반면에 샤바누는 남성주의 전통적 가치를 따르기 보다는 낙타를 돌보며 자유로운 삶이 행복하고, 자신의 자유로움을 유지하는 삶을 원한다.

샤바누는 언니의 결혼 준비를 도우며 결혼, 사랑, 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자신 미래에 대한 기대함을 함께 키우며, 결혼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언니 보다는 남성중심 세계에서 탈출하여 딸과 함께 독립적으로 살고 있는 샤르마 이모의 삶을 동경한다.
  유목민의 생계를 위해 낙타를 팔러 모래사막을 지나 목마름과 두려움의 고통을 이겨내며 가는 아빠와의 여정을 견디며 샤바누는 가장 사랑하는 낙타 글루번드를 팔아야만 하는 슬픔을 견뎌야 했다.



사막의 모래 폭풍으로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잃고, 예비 형부마저도 부유한 지주의 손에 죽고 만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샤바누의 약혼자가 어느 날 갑자기 언니의 약혼자가 되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샤바누는 나이 든 새로운 약혼자를 맞게 된다. 인정 할 수 없는 그 일을 겪으며 샤바누는 도망을 한다.   하지만 낙타 미투의 사고로 도망하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맘 여린 소녀 샤바누. 결국 아빠에게 붙잡히고 호된 매를 맞으면서 꿋꿋히 견뎌내는 성숙한 샤바누. 그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것이 하나 있었다. ‘비밀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거야. 그게 바로 가슴 속에 자리 잡은 영혼의 비밀인거야’ 이 말은 샤바누를 쓰러지지 않게 지탱시켜 준 힘이 되었다.

  분노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것은 나의 관점과 내 문화 의식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리라. 삭막한 사막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에겐 우리에게 낯설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최선의 선택으로 삶을 유지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모여 1년이 된다. 이 책은 대략 1년의 촐리스탄 유목민가족. 소녀에서 여인으로 가는 두 딸의 성장기 소설이다. 1년의 짧은 시간을 이야기 했지만 그곳엔 삶의 여러 역경과 평탄치 않은 환경이 있었다.
  그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샤바누의 모습은 우리 성장기 청소년들에게도 새롭게 자신을 바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 한 샤바누의 건강함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의 아이들도 생각이 건강한 아이로. 자아를 바르게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샤바누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 주변에 있는 우리들은 그들의 고민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함께 해주며 이해해 주는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빠힘들지?

보안 감사가 있던 날.
며칠 동안 준비한 대장들과 서류들을 제출하고 마침내 마무리짓고 하루가 끝났다. 에휴~
동료들이 사당동에서 호프한잔하자는 뻐꾸기를 날리셨으나 갈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오늘은 삐약삐약 병아리들 챙기러 들어가 봐야겠어요.ㅠㅠ
저녁10시... 졸음이 쏟아진다.
둘째가 책 한권을 들고 와서는 읽어달란다. `혹부리영감'
웬만하면 내일로 미룰까 하였으나 그 정도도 못해주느냐는 모 처의 압력이 들어와 아들과 딸을 옆에 앉히고 책장을 넘긴다. 이건 왜 이리 글자가 많은 거니..ㅠㅠ
읽다 보니 지친다. 눈꺼풀은 내려가고 발음은 꼬인다.
그래도 읽어간다.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 집에 들어가 노래불러주고 혹떼고 부자되고 어쩌구 저쩌구...하는 순간 들리는 한 마디.
 "아빠, 힘들지? "
책에서 시선을 떼고 바라보니 아들이다. 아들녀석은 책 대신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힘든 건 아니구 그냥 졸려서 그래"   "아빠, 내가 읽어줄까?"
그럴래? 이제 두 페이지밖에 안 남었거든.. ㅎㅎ
하지만 여동생은 오빠보다는 아빠의 목소리를 원했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끝까지 읽어주었지만.
 이렇게 든든한 아들이 되어 주다니. 아빠가 너한테 참 고맙다.



서점 나들이

막내는 집에서 엄마가 재우고. 두 녀석을 데리고 집근처 마트로 갔다. 그런데 무조건 이책을 사달란다.  `7급 한자 따라쓰기 ' .잘 보고 그려라열살이 된 아들에게 기념으로 책을 한권 사주었다. `10살에 꼭 만나야할 100명의 직업인'  이제 열살!이다.  갓 태어난 너를 안고 6월의 초여름에 땀 삐질찌질 쌍문동 언덕배기를 올라가던 그 날이 생각난다. 앞으로 오년만 있으면 아빠랑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을 수 있겠지. 십년만 있으면 어른이 되어 우리 집의 튼튼한 대들보가 되겠지. 그땐 녀석과 호프한잔 해야겠다. 안놀아줄래나....



김희준(독산4동)



설맞이 시장 풍경을 기대하고 방문했던 우시장은 아직 본격적인 장보기가 시작되지 않아서인지 손님이 뜸하고 한산했다.
설 대목의 한주 전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손님이 없다.

구제역으로 인해 축산물 가격이 폭등한데다 소비자들의 구매는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손님없는 것좀 봐. 돼지가 올라와야 말이지. 3배 가격을 주고도 살 수가 없다니까."라고 하소연 하는 상인을 만났다. 
국내산이 없다는 얘기에 수입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물량이 딸리니까 수입에 의존하기도 했지.
그런데 수입도 비싸긴 마찬가지야. 주변에 대형마트가 많이 생겨나서 안그래도 소매하는 사람들은 매출이 많이 줄었었지."
라고 힘든 상황에 대한 푸념이 이어졌다. 

  또 한분의 상인을 만났다. "지금은 죽은 엄마가 와도 반갑지 않아요. 하루 몇십만원씩 손해를 보는데 임대료는 꼬박 꼬박
내야지 인터뷰고 뭐고 말도 하기 싫어요."라며 손사래를 친다. 
  취재하는 기자가 무색하리 만큼 손님도 없는 가게에 차마 들어서기 민망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용기내어 취재를 시도했다.
"돼지가 7,80만원씩 하고 어떤건 100만원도 가는데 원가가 올랐다고 소비자 판매가격을 갑자기 배로 받을 수는 없잖아요. 구제역이 해결되고 물량이 확보될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죠. 수입은 훨씬 늘어난 상황입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조사라도 한 적이 있는냐는 질문에 "그런게 있을리가 있나요. 자식같은 놈들 키워서
땅속에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밑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 사람들 모두 할 말 다하면 난리가 날거예요. 참는거죠. 힘들어도 아무말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게문을 쉽게 닫을 처지도 안되니까 어떻게든 버텨보는 거죠."
그래도 이번 주말이면 손님들이 북적이는 우시장 거리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유난히도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는 우리 서민들의 삶에도 얼른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금천마을신문
김선정 기자
gcinnews@gmail.com

금천구청과 성공회대 사회적 기업센터가 함께 하는 제1기 금천구 사회적 기업가 학교는 지난 21~22일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워크샵을 진행하였다. 이번 워크샵은 `청주지역의 사회적 기업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총 4개의 기관을 방문하고 4개의 교육강좌가 준비되는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청주지역의 방문기관은 콩으로 만드는 햄버거로 유명한 ‘생명살림 올리(all利)’, 재가노인요양기관 ‘휴먼케어’, 유기농농업회사 ‘흙살림’, 로컬푸드 식당을 실현하고 있는 ‘우렁각시’등을 현장방문하고 대표자들과의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이번 워크샵에 총괄하는 김성기 교수는 (성공회대 사회적기업센터 사무국장) “현장을 직접볼 수 있어 어느 강의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며 “특히 사회적 기업가들의 교류를 통하여 현실을 파악하고 이후의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될것”이라고 밝혔다.
금천구에 사회적 기업이 창업되기 위해서는 “ 준비된 프로젝트는 대부분 구의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그러기 위해서는 수강생들이 교육후 에도 흩어지지 않고 지역사회에 사회적기업가 조직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의 바램을 밝혔다.

이완범 (48세. 그린노인복지센터장)수강생은 “사회적 기업 개념이 막연했었는데 직접 보고 나니 ‘이것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시작하기 어렵지 않을까? 청주지역처럼 할수 있을까? 의문스러웠지만 멘토분들과의 토론 속에서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라고 평했다.

한편,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사회적기업가의 밤’에 참석하여 수강생들과 각자의 프로젝트에 대하여 실현가능성, 향후 계획 및 시도 방안등에 대하여 토론하기도 하였다.
 금천구(구청장 차성수)는 자치구 중에서 최초로 구 실정에 맞는 사회적기업가를 양성하고자 성공회대학교와 협력하여 33명을 선발해 12월 8일부터 2월 23일까지 『사회적기업가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이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수익창출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일반적인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나,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 제공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을 말한다.
즉 ‘빵을 팔기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이라 고용하기 위하여 빵을 파는’것으로 풀이된다. 
금천구는 2011년 사회적 기업가 학교를 2회 진행계획을 세웠지만 금천구의회의 예결산 심의과정에서 예산이 삭감되어 1회만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으면 3년 동안 인건비 보조를 받을 수 있다. 그 동안 기업은 자립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야 이후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 할 수 있다.
  금천구에는 서울시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된 ‘살구 찾아가는 어른 공부방등 7개가 있으며,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 기업으로는  토너 카트리지를 제조하는 심원테크(대표 김준호)와 문화예술 교육과 공연 체험활동을 제공하는 자바르떼등 3곳이 활동하고 있다.

금천구『사회적 기업가 학교』가를 이수한 예비사회적기업가들은 가칭) 금천사회적기업가협회를 만들어, 예비사회적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실행할수 있도록 서로 지원하면 정보를 공유한다고 한다. 자치구 최초로 사회적기업가 학교를 운영하다 보니, 다른 자치구에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금천구가 사회적 기업가들의 요람이 되고 있다.

최석희 이성호 기자 공동취재
gcinnews@gmail.com

<올리 버거 판매장을 방문중이다>

<설명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



사회적 기업인 재가노인요양기관  '휴먼캐어' 대표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참석한 차성수 구청장.




지난 21일 금요일 4시 30분께 우시장 도매시장 건물에 불이났다.
다행이도 이미 철거를 위해 비워진지 오래된 건물이라 인명피해나 큰 피해가 예상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소방차 도착시간이었다.


"불난지가 언젠데 이제서야 이런데... 다 타고 늦게 와서는 물한번 쏘지도 않네. 쯧쯧"
사실 뒤늦게 몰려든 소방차 행렬이 도로를 가득 메웠고, 불이 난 건물앞에서 줄세우느라 한참을
우왕좌왕 했다.
"그 건물? 몇년 전에도 불 한번 났어. 계속 비어있는 건물인데 뭐. 철거작업하다 불이 났겠지."
의외로 주변 사람들은 별 관심 없어했다.

이렇게 주변 상인들이 냉소적인 것은 구제역으로 인해 손님이 뜸한데다 개발로 인해 철수한 가게들이
썰렁함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제역에 매서운 추위에 썰렁한 마음 달랠 길 없어벙어리 냉가슴 앓듯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김선정 기자
gcinnews@gmail.com





#아빠와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딸


모처럼 일찍 퇴근한 저녁, 오늘은 다섯 살 딸래미에게 팔베게를 해주고 잠을 청하는데
옛날 이야기 한판 해주고 이제 그만 자자 이녀석 머리통이 왜 이리 무거워 다섯 살인데.
"재은이는 결혼이 뭔지 알어?“
“응, 남자하고 여자하고 같이 사는 거..”
“재은이는 나중에 결혼할 거야?”
“응, 아빠 죽으면 다른 남자하고 결혼할거야”
(흐미...니가 나랑 지금 결혼해서 살고 있냐?)
“아빠 안 죽으면?“
“아빠 나중에 재은이 엄마되면 죽는 거 아냐? ”
“야, 너 엄마도 결혼했는데 할아버지 살아계시잖아. 안그래?”
(약간 버럭)
“응 그건 그러네..”
(요것이 아주 애비 죽는 날만 기다리는 건지...)
“재은이는 결혼하면 아기는 몇 명 낳을거야?”
“음...엄마처럼 세 명! "
"엄마도 아기가 세 명인데 할아버지 살아계시잖아, 그렇지? “
“그러네..잘 모르겠당. ”
딸의 눈꺼풀에 잠이 스르르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천방지축 까불어대는 다섯 살 꼬마아가씨도 언젠가는 아빠의 품을 떠나 훨훨 날아가겠지.
그때까지, 그리고 그 후로도 내가 너를 많이많이 사랑할게...


#오빠는 선생님


지난 연말은 생각보다 조금 더 바빴다.
집에 와서 씻고 자고 일어나서 출근하기도 급급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여름날 죽순처럼 쭉쭉 자란다.

어느 날엔가 퇴근해서 숨돌리고 앉아 있자니 놀라운 광경.
둘째가 동화책을 펴놓고 하나하나 글자를 짚어가며 또박또박 읽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 여보야.. 재은이가 갑자기 왜이래?"
나의 우문에 대한 정답은 오빠에게 있었다. 학교다녀와서 동생하고 같이 책을 읽어가며
연습장에 한글자 한글자 써가며 글을 가르쳐 준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일이 나의 가정에 발생하다니~~
하긴 얼마전에 공책에 개발새발 연필로 난장을 부리던 기억은 난다만.. 어느새..ㅎㅎ
 2011년 한해,
너희들은 또 얼마나 커서 엄마아빠를 놀래줄 거니...
.기!대!만!땅!

김희준
(독산4동, 세아이의 아빠)

 

 

해 하나 심자

해 하나 심자

우리들의 가장 낮은 자리에

뜨겁게 떠오를 해 하나 심자


 -백창우 님 '우리들의 가장 어두운 자리에'중


 


새천년이 시작되던 그 해에, 장애인과 함께하던사회복지사 3명이 의기투합하여, '가장 낮은 자리에 뜨겁게 떠오를 해 하나'심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때 어린아이였던 아이들은 숫자상으로 성인이 되었고, 그 때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대학생(한양대학교 손말사랑동아리)들은 사회인이 되었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바깥세상을 들여다보고 선생님과 함께 세상속으로 꽤 자주 외출하여 질서를 배우고 돌아온다.  사회인이 된 자원봉사대학생들은 후원으로 돕고, 또 그 후배들이 명맥을 이어가며 선배들의 빈 자리를 채운다.


볕바라기장애인 주간보호센터는  시흥동 금빛공원 주변 동네에 새 둥지를 틀었다. 전에 있던 곳에 안전상의 문제가 있어 부모님들의 후원을 받아, 이사가지 않아도 되는 2층짜리 단독주택을 구입한 것이다. 마당에 있는 목련나무에 반했다는 신혜옥 공동대표는 바로 앞에 고물상이 있어 그 소리에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묻히니 이웃에게 소음으로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그 한마디 속에서 그동안 동네에서 겪었을 남모를 시름과 새 이웃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볕바라기'의 뜻은 '양지에서 볕을 쬐다'라는 뜻의 순우리말 고어이다. 이 말에서 느껴지는 한가함,  여유로움, 풍요로움이 좋아서 정했다고 한다. 장애인이라고 불우하게 살 필요는 없다. 장애인비장애인으로 나누지 않고 오로지 사람 하나로만 이해되고 싶은 것이 신대표의 깊은 소망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센터를 운영하며 '사람사랑'의 철학을 강조한다. 중증지적,발달 장애인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감각장애인(청각,시각 등)과 달리 겉보기에 장애인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이 사회에서 받는 상처는 누구보다 깊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사회생활이 되지 않는 이유를 일일이 해명하고 배려를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들은 장애인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사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이웃들의 편견없는 시선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래서 일주일 프로그램 대부분이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매 주 월요일마다  구로구에 위치한 까페에 가서 직접 차를 사서 마시고 손바느질을 배운 지가 일년이 되어간다. 배드민턴도 하고, 체육공원이나 안양천에가서 인라인스케이트와 자전거도 탄다. 은행나무도서관에가면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이렇게 아이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은 것이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라주었다.


특히 목요일마다 금빛휘트니스 헬쓰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아이들을 배려해주는 이웃이 누구보다 고맙다.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운동하는 지역주민들도 있는데, 시끄러운 아이들을 참아주고, 선뜻 공간을 내주니 지역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 휘트니스에 오는 회원들은 의아해하지만 계속 아이들을 봐왔던 회원분들이 '원래 오는거다'라며 아이들이 마음껏 운동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원해주니 아이들이 비슷하게 모방도 하고, 체력도 좋아졌으며, 무엇보다 운동 후 샤워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단다. 센터 주위에서 아이들소리가 시끄러울텐데도 이사온 후 한 번도 이웃분들이 쓴 소리 한마디 한 적이 없다는 것도 감사한일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솔선해서 동네청소도 하고 눈이오면 눈치우고, 길위의 얼음을 깨는 노하우(?)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길건너편 꽃집에서는 한달에 두 번 오셔서 꽃꽂이를 가르쳐주시는데 아이들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또 스스로 천연비누를 만드는데, 얼마전에는 대량 주문을 받아 비누를 만들었고 솜씨도 수준급이다.


이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자원봉사자와 후원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손말사랑처럼 10년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분들도 있고 지역에서 뜻을 함께 하시는 분도 있어 신대표는 함께하는 이들이 있으니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지속해 나갈 힘을 얻는다고 한다.


 마침 이미용자원봉사활동을 하고 돌아가는 자원봉사자 김영미(가산동)씨를 만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중증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없어 적응하는 데 어려웠으나 지금은 생활이 되었다며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또 자신의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자신에게도 더없이 좋다고 했다.



앞으로 볕바라기주간보호센터가 구상중인 프로젝트는 3년 후 거주시설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낮시간동안 지내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형태인데, 아이들이 점점 자라나고, 부모님들은 나이들어가면서 집을 떠나 독립(이들에게 독립이란 가정에서 떨어져 살 수 있는 것을 말한다)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평일은 이곳에서 지내고 주말에만 집으로 가는 형태의 거주시설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세워 부모님들과 몇 가지 안을 놓고 준비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이들의 작지만 커다란 몸짓에 함께하는 지역주민으로서 미안한 마음과 파이팅을 보낸다.


그리고 앞으로 이들의 삶의 여정에, 있는그대로 함께해주는 이웃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김수진,남현숙 공동취재
금천마을신문
gcinnews@gmail.com




특별기획-보육교사, 원장, 학부모 간담회
내 아이가 다니는
보육시설, 과연 안전한가?

아이,교사, 부모가 신뢰하는 보육시설을 꿈꾸다.
  

지난해 말, S방송국의 프로그램을 통해, 인천의 어느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이불에 소변을 보고 낮잠을 자기 싫다고 했다는 이유로 뺨을 때리고 독방에 가두는 일이 드러났다.  서울 성동구 어린이집에서도 아이가 울었다는 이유로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왜 보육시설 안에서 원아폭행사건, 혹은 성희롱 및 폭력사건, 급식사건 등이 잊을만하면 한번씩 발생하는가? 사건이 발생한
시설과 교사의 개인적인 문제인가? 우리구와는 상관없는 다른 지역의 이야기인가? 혹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어 앞으로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 지 모를 일은 아닌가?

이에대해 '금천in'에서는 우리지역의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부모와 교사를 모시고, 현재 우리사회의 보육 현실과 현장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어보고. 아동의 안전과 인권이 존중될 수 있는 보육시설로 가기 위한 대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토론참가자 : 김수진(본 지 기자, 사회), 강미(구립정심어린이집학부모), 김희숙(근로복지공단 모아래어린이집 원장), 정미자(새터어린이집 정미자 보육교사) 

사회자: 어린이집관련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부모 혹은 교사 입장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 것 같다. 이번일로 어떤 느낌을 가지셨는가?
김희숙(이하 김):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교사들은 힘이 빠진다고 한다. 우리는 안그렇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없고 참 난감하고 민망하다. 그런 사건을 보면서 학부모들은 우리시설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실까, 답답해진다.

강미(이하 강): 부모입장에서는 사실 '혹시?'라는 의문이 들기도하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는 별개로 그런 마음이 든다. 보육시설에 CCTV 설치하는 것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그거 보기 시작한 엄마들을 그것을 끊을수가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일하는 시간에도 그것만 보고, 혹시 우리애가 다른 애랑 다투는 일이 있으면 전화해서 왜 단속안하느냐 고 따지게 된다고 한다. 

김:초중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길때에는 교사와 기관을 믿고 맡겨야 한다고생각한다.
서울형어린이집의  경우.. CCTV를 무료로 설치해주지만 일부러 설치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교사의 인권도 있다. 잘 따라하는 아이의 부모는 좋겠지만 소극적인 아이들도 분명이 있다. 그아이들이 무방비로 나간다는 것이다. 그 비용으로 교사 처우개선에 힘을 기울였으면 한다.

정미자(이하 정):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절이 있는데 이제는 아이들을 맡기는 것이 불안한시대가 왔다는 것이 안타깝다. 보육교사로 일하면서 (교사를 믿지 못하는 것 때문에) 굉장히 많이 상처를 받게 된다. 보육의 주체는 부모, 아이, 교사(기관)인데 그 주체간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아 안타깝다. 그런사건들이 어제 오늘 생건 것은 아닐텐데.. 정말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단순히 개인의 자질도 있겠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

김: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보육수요가 갑자기늘었다. 그런데 국공립 보육시설은 적고 민간에 (보육을) 맡긴 것이다. (안그런 곳도 있겠지만) 보통의 민간시설은 이익을 남겨야 한다. 결국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아이들 먹는 것을 줄이고, 교사 급여를 덜주는 방법이다. 그러다보니  교사자격이 안되는 사람을 채용하기도 하고, 아이들 특히 영아들은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애기를 하지 못하니, 예전처럼 꿀꿀이죽을 먹이는 일 같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김희숙 원장>


사회자: 지금 우리가 어린이집과 부모와의 신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대한 부모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CCTV말고 부모입장에서 아이가 시설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통로가 없다. 현재 보육시설 내에서 부모가 어린이집을 믿을수 있도록 참여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 지 궁금하다. 예를 들면, 독산동의 한어린이집의 경우 등하원을 할 때 출입문에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지내는 공간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시간상으로는 짧지만 그러면서 아이들이 지낼 환경도 보고 함께 있는 아이들, 선생님도 보게되고 그러면 훨씬 친숙한 느낌이 들 수 있다. 교사 입장에서도 부모가 계시니 조심하는 부분도 있고. 이처럼 부모가 어린이집운영을 보거나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정 : 원장선생님도 말씀 하셨지만. 보육시설에서 신뢰문제는 부모가 참여하는 장치가 있느냐 없느냐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보육시설이 공공성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공공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워내야 하는데, 현실은 수익성을 창출해내야하는 구조이다보니 (부모들의) 신뢰를 갖지 못하게 한다.


김 : 영리를 목적으로 하면 그럴 수 밖에 없다.

강 : 그래서인지 예전 어린이집에 다닐 때  견학을 많이 갔다. 한 달에 네 번 정도 가서 견학비 내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구립에 오니까 (비해서) 너무 안가더라. 원장님이 바뀌면서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여기는 너무 (견학을) 안가지요? 이 동네는 맞벌이가 많고 일용직이 많아 부모들이 아이들 데리고 다니기 어려워요. 그런 면에서 견학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했더니, 지금은 일년에 4번 정도 간다.

사회자: 운영위원으로 참여해서 원하던 성과를 얻으신건가?(모두웃음)

이번일과 관련해서, 부모도 여유가 없으면 아이한테 짜증이 나듯이, 어린이집 교사가 일이 많으면, 교사가 아이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김 : 평가인증준비할 때 행정업무가 정말 많았다. 완벽하게 하려면 4달간 야근을 해야한다. 토요일 일요일 매일 하고 추석때도 나오고 간신히 평가인증을 받았다. 야근을 안할려면 아이들을 방치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한다.


정 : 나는 0세반 담임인데. 세쌍둥이를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정에서는 여러사람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다. 어린이집 교사:아동의 비율은 0세1:3, 1세 1:5명이다. 수익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 교사대아동 비율이 너무 높아서 지친다. 그만큼 아이의 행동에 반응하고 정을 보낼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힘들 때가 많다.


김 : 10년전만해도 오후 일찍 하원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점점 종일보육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아이를 봐야하는 시간이 많아 지면서 일과시간에 청소할 시간도 없다. 업무가 그렇게 많아 졌음에도 교사대 비율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사회자: 교사들 처우는 어떤가?


김:예전에 채용공고를 내면 경쟁률이 50대1이었다. 올해는 10대1이더라. 유아교육과 졸업한 사람들은 병설 유치원으로 가고. 일반사무직으로 간다. 우수한 인력이 많이 빠져나간다. 어린이집에 5년 근무하면 기관지염 생기고 위궤양이 생기더라.  애들 끝난다음에 수업준비하고 행정업무 한다. 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되려면 11시까지 일해야 한다. 애보는 공은 없다고..(모두웃음)


정 : 10시간 근무하고, 보육일지 쓸 시간도 없다. 집에가서 보육일지 쓰고, 교육준비하고...집에가서도 근무의 연장이다. 교사로서 열심히 하는것도 좋지만, 일반인으로 살기 힘들다.


 

<학부모 강미씨>

사회자: 보육의 공공성이 확보되려면 국공립어린이집이 대안인데, 모두들 알면서 국공립어린이집은 왜 늘어나지 않는가?


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인들에게는 선거 때 표가 중요한데, 국공립보다 민간어린이집이 많아, 민간보육시설의 시설장을 의식하다보니 국공립시설이 늘어나지 않는걸로 알고 있다.


사회자: 민간과 국공립어린이집을 모두 경험하신 학부모 입장에서 국공립시설이 어떤가?

강:식단은 다 유기농을 하고. 시설장 성향에 따라 교육이 달라지지만 숲체험도 많이 하고. 가끔 학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하고 교육도 한다. 그런데 국공립어린이집은( 차량운행을 하지 않아 부모가 직접)데려다 주고 오는게 문제다. 그런데 어린애들을 차에 빽빽하게 태우고 다니는거 보니까 아이입장에서 힘들 것 같기도 하다.


사회자: 현재 대안은 국공립 지원시설이 늘어나는거 밖에 없는가?


강 : 어린이집에 행정이나 청소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거 같다. 그러면 맡기는 부모 입장에서는 안정감이 있다. 그러면 몇 년 대기하며 국공립에 보내지 않을 수 있겠다.

정 : 그런데 보충인력이 희망근로 공공근로로 대체할 수 있는 거는 아니다. 상시적인 인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원장 선생님과 교사를 연결해주는 원감이나 주임선생님이 있는데, 원장과 담임만 인건비가 지원되다보니 보통 원감이나 주임선생님은 담임을 겸임한다. 담임을 맡지 않고 원감의 역할을 하는 인력이 있으면 교사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인력이 있으니 교사가 휴게시간을 가질 수 있고 교육이나 휴가를 갈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자 : 이번 사건은 아동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 한 사건이다. 아동이 사회적 약자이다보니 쉽게 무시될 수 있다. 보육현장에서 '이럴 때 아이들의 인권이 침해당할수도 있겠다.'싶은 경우가 있는가?


김: 아이들의 자존심을 세워주어야 하는 장면에서 교사들이 명령해서 아동의 의지를 꺾는 경우가 있다.인권을 목적으로 한다면, 떼부리는 아이가 있을 때 떼인지 아픈것인지, 친구하고 관계때문인지 잘 판단해봐야 한다. 잠깐 울도록 하고, 조금있다가 격려해주는 교사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보육교사양성과정에도 아동인권보장에 대한 전문과정의 교육은 없다. 현장에서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것(폭행,성폭력)에 대해 그때그때 이루어지는 교육밖에 없다.


정 : 교사로서 (아이들 인권을 존중해야 할 때인지 교육적으로 엄하게 해야할 지)혼란스러울때가 있다. 예를들어 영아들의 경우 바깥놀이활동을 하기싫어 우는 아이들이 있다. 그 때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지만 다른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 아이만 혼자 특별히 봐 줄 수가 없다.편식하는 아이의 경우도 그렇다.교사대 아동비율이 낮을수록 아이의 인권이 잘 보장될 수 있다.


강: 어린이집 마다 심리치료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미자 선생님>

사회자: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


김: 어린이집에 물건을 맡기는게 아니고 어린 아이를 맡기는 것이다, 아침에 등원할 때 학부모님이 웃는 얼굴로 인사해주고 고마워하는 말이라도 해 주시면 교사들은 더 신나서 일한다. 보육은 사람서비스이다. 교사,부모,아이 삼박자가 서로 믿고 고마워할 때 모두가 행복한 보육을 만들 수 있다.

정:전국적으로 국공립어린이집의 비율이 5.4%밖에 안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또 CCTV는 부모들끼리도 다투게 만들고 믿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아이들끼리 싸우면서 큰다.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아이들싸움이 어른들싸움으로 번진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강:오늘 이 시간을 통해 어린이집교사의 입장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 다른 부모들도 보육시설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이해한다면 그럴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내 자식만 귀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되어가는데, 우리아이와 다른아이가 다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부모들이 다른 아이들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사회:김수진 기자
기록:최석희 기자
촬영:이성호 기자
금천마을신문 '금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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