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모 칼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한미 군사훈련과 관련하여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그간의 남북 간 화해 무드가 걷혀지고 다시 냉전기류가 일고 있어 걱정이다. 그런데다 일본의 경제도발로 국민들의 심기가 거북한 시점이라 나라전체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이런 중에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에 따른 문제까지 일면서 국민들은 여간 피곤하지 않다.
인사청문회제도는 장관급 등 국가 요직을 선임할 때 자질이나 능력 그리고 도덕성을 사전에 검증함으로 직에 상당하는 품격과 능력을 요구하는 절차로 자유민주국가로서는 당연하면서도 필요한 제도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를 일찍부터 도입하여 시행 중이고 그것이 가지는 취지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제도는 본래의 취지보다는 정파의 이해(利害)를 앞세워 시행주체 즉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전락 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흠결을 가진 후보자를 배제하기 위한 강력한 한 방법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그 시행에 상식을 벗어나거나 유치한 진행이 많은 것은 물론 후보자의 명예훼손 등 비법적인 행위조차 서슴지 않는 경우도 있어 그 취지의 긍정성을 지우고 있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간의 청문회 경과를 볼 때 문제 제기에 공감이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후보자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다는 정파적 이해를 앞세워 정부를 공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같이 청문회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 그런 사례다. 후보자에게 결함이 있을 경우는 이를 부각시켜 지명을 철회하도록 하는 것은 지지하지만 그럴만한 정도도 아닌데 정쟁의 목적만으로 막무가내로 몰고 가는 것은 공감은커녕 보는 것조차 싫을 경우도 있다. 더욱이 그 지적이 지나쳐 후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등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용인하기 어려운 행위도 해대는 데는 저항감조차 가지게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청문회의 필요성은 누구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것은 물론 그 제도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강력한 지지가 있어야 하는 것을 절대 동의한다. 그러나 이 제도가 특정 계급 영역에서만 조명되거나 평가되는 현재의 제도는 재고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볼 때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도덕성 검증이 본질이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진행이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제도 시행에서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들의 자질문제라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는 국회의원의 권리영역에서만 시행되고 평가하는 것은 제도가 취지하는 바를 냉정히 관찰할 때 문제를 가진다는 뜻이다.
이 제도를 규정한 현행 법률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정치체제에서 국가 고위직에 대한 검증은 국민을 대신하는 국회가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간의 경과를 볼 때 이 제도가 취지하는 본질을 벗어나는 시행을 하고 있는데 따른 제도 변화를 기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다시 말하면 인사 청문회의 검증 절차 수행 권한을 국회에만 국한하는 것을 다양화해보자는 것이다. 국가의 법제도 제정 취지는 그것이 지향하는 바의 달성을 강제하기 위함인데 시행결과가 일관되게 지향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를 살펴 필요한 법률개정을 하는 등 변화를 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지하다시피 헌법도 시대적 가치관 등 현실적 문제가 있으면 개정할 수 있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다. 하물며 하위법률이고 그것은 지향하는 바의 달성은커녕 사회적 문제만 야기 시켜 국가통치 장애에다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정치 불신조차 조장하는 것은 관련 법률 개정 당위를 충족한다. 
정치권이 권력을 갖는 것을 국민들이 동의한 것은 국가 안보와 국민의 복리증진을 책임져 달라는 요구가 배경이다. 그런데 권력이 그런 방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의 회수 등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보편성이고 우리 헌법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들은 국가 통치체제가 국가공동체의 모든 면에 책임 있는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하는 권리를 행사하여야 한다.   
차제에 현행 인사 청문회 제도를 개정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청문회의 진행이 본래 취지와는 달리 정파의 정쟁으로 일관하면서 일정 시간을 경과할 경우 기피하는 장치를 두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장치 설정 등은 정치 전문가들의 논의 과제로 돌린다. 다만 지금과 같은 파행이 연속되지 않도록 국민들이 간여할 수 있는 여지를 둔다면 효율성을 높힐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 반대를 포함한 여러 이론이 있을 것이다 중복이거나 대의제의 취지에 반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가 제도는 그것으로 지향하는 바를 완전하게 달성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것을 담보하기 위해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다시 말하면 청문회 제도에 국회의 독점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를 두어야한다. 
그간의 과정을 볼 때 청문회 결과를 공감할 수 있는 경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제도의 본래 취지를 충족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도덕적 결함에다 직분 수행에 의심이 되는 인사를 청문회 검증 결과에 관계없이 임명하는 경우도 있는 것은 이 제도 존재의의를 다시 생각해야 할 모습이다. 그럼에도 이 제도는 지속되어야 하고 더욱 확대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현행 제도 규정의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하도록 하자.(♣2019.08.25.)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다양한 마을활동을 펼치고 있다.

글·그림 17살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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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철도 시공 감리로 파견 나온 정선생님은 가끔 본인이 쓰신 시나 수필을 보내주시곤 한다. 일 자체가 워낙 역동적이고 특수해서 일반인이 경험해 보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그 경험을 정밀 묘사하듯 세세하게 설명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고, 사진까지 첨부하기에 조금 거친 듯해도 글에 힘이 있다.   
오늘은 일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밤사이 지인들의 소식을 확인하는데, 전쟁터를 방불하게 하는 사진이 눈에 확 들어온다. 곧이어, 내가 살고 있는 인구 30여만의 소도시 모로고로에서, 로 시작되는 긴 글이 보인다. 유조차가 전복되어 탱크에서 기름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이 몰려든 상황에서 폭발이 일어나 100여명이 넘는 사망자가 생겼다는 것이 요지였다.
원인은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오토바이와의 충돌, 다른 하나는 졸음 운전이란 것이다. 그는 후자에 방점을 두는 듯하다. 다르에스살람에서 출발한 유조차가 아침 7시에 모로고로에서 사고를 낸 것으로 보아 밤길을 달려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탄자니아는 야간 운행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음베야에서 일할 때는 자주 여행을 다니곤 했는데, 왠만한 장거리 여행에는 버스를 이용했다. 저렴한 비용이 장점이었지만 길을 좋아했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그런데 한 번은 버스가 종착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소도시의 정류장에 서더니, 아침이 될 때까지 움직이지를 않아 죽을 고생을 했다. 많이 걸려도 9시간이면 가능한 거리였기에 게으름을 피우다, 늦게 출발하는 버스를 탄 것이 사단이었다. 그 이후로 장거리 버스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을 정도이니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어쨌든, 불법임을 알고도 트럭 운전사들이 야간 운행을 감행하는 것은 열악한 도로 사정과 낮에 시시각각 만나게 되는 부패한 교통경찰 때문이란 것이다. 지금 다르에스살람 중심부는 도로 공사가 한창이어서 출퇴근 시간이면 극심한 교통 정체로 도시가 몸살을 앓고, 고속도로도 편도 일 차선 구간이 많아 곳곳에서 정체를 일으킨다. 그러니 시간이 돈인 기사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밤길을 달리는 것이다. 부패한 교통 경찰을 원인으로 꼽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 출장을 가는 데, 도로 곳곳에서 차를 세우는 경찰 때문에 지체되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 역시 과장은 아니다. 
대부분의 대형 사고 희생자는 사회적 약자이다. 이 사고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도로 주변에 살고 있던 가난한 서민들과 삐끼삐끼라고 하는 오토바이 운전 기사다. 유조차에서 쏟아진 기름을 훔치려고 모여든 사람들과 기동력 있는 오토바이 기사들이 소문을 듣고 가세해 인산인해가 된 것이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차의 배터리를 떼어내면서 스파크가 일며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유조차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는 이번 사고만이 아니고 주변 국가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위험에 대한 무감각도 원인중의 하나이겠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고가 상품인 휘발류는 큰 유혹이 되는 것이다. 오토바이 기사들이 휘발유가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지 모를 리 없지만,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당장 눈앞에 떨어진 행운을 모르는 척 지나치기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멀리 떨어진 곳의 대형 참사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프다는 말이 있지만, 이번의 대참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것은, 탄자니아에 도착해서 5주간 머문 모로고로 언어학교에서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다음 세상에는 좀 더 풍족하고 빈부의 격차가 없는 곳에서 태어나길...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성격이 다르지만 단짝 친구인 오리와 곰의 이야기다. 
오리는 성격이 활발해 혼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친구 곰을 찾아 가지만 곰은 낚시를 떠나 일주일 후에 돌아온다는 메모를 남겼다. 혼자 남은 오리가 잘 할 수 있다며 괜찮아, 할 수 있어 아무일도 아니라며 혼자 지내보려하지만 어떤 일을 해도 심심하고 재미가 없자 곰을 그리워하다 ‘곰은 나 없이도 잘 지내고 있을까?’생각을 하며 “곰아, 돌아와!” 소리쳐 부르며 곰을 찾아 나선다.
 낚시를 하러 나온 곰은 혼자 있으니 귀찮게 하는 오리도 없고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캠핑을 준비하며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텐트도 칠 수 없고 낚시도 안 되고 간식거리도 없는데 비까지 내리니 한숨만 나온다. 밤이 되고 무서움을 느낀 곰이 다른 생각으로 무서움을 떨쳐내려 하는 그 때 오리가 나타난다. 서로 깜짝 놀라고 오리는 곰에게 이것저것 안부를 묻는다. 
그렇게 둘은 다시 만나고 반가워하고 곰이 오리에게 ‘네가 와서 반갑다’고 말하며 오리가 곰에게 ‘니가 나를 피하는 줄 알았다’며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밤을 같이 보내고 다음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오리는 또다시 곰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곰을 귀찮게 하며 언제나 영원히 함께 있겠다고 말하자 곰이 ‘언제나 영원히’한 말에 한숨을 쉬며 책 이야기가 끝난다.
 친구 사이가 항상 좋을 수 없고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지만 친구와 떨어져 있을 때 친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활동을 같이 하던 친구가 방학을 해서 만날 기회가 줄어들자 집에서 시간 보내기가 너무 지루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무언가 허전하고 할 일이 없어진 것 같았다는 말을 듣고 ‘곰이 떠난 후 심심해하던 오리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안경애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조리 존 글/벤지 데이비스 그림/ 이순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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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200

 

민족과 그것이 ‘주의(主義)’가 붙는 민족주의는 참 다르다. 그 이전에 민족에 대한 관점 자체가 이중적이다. 히틀러나 도조(2차 대전 일본 1급 전범. 한국인 징병과 징용, 그리고 위안부의 최종 책임자 : 편집자 주)의 민족주의와 유관순·김구의 민족주의는 가해와 피해라는 건널 수 없는 차이를 품고 있다. 민족을 사랑하는 것은 모성이나 애정 같은 본성적 영역이라면 민족에 주의가 붙으면 결렬한 탐욕이나 적대가 휘두르는 차별과 혐오를 전제한다. 그래서 민족주의를 흔히 ‘양날의 칼’이라 하는데 강도의 칼날이 될지 요리사의 칼이 될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시대의 조건과 그 시대의 사람들의 품격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가 크다. 민족은 흔히 인종주의를 감추거나 키우는 경로가 되기 때문이다. 종교적 다툼과 민족적 다툼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크게 피를 묻힌 비극의 핑계였다. 하지만 그 속내는 지배자들의 민중들에 대한 착취와 수탈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모략이 태반이다. 그래서 민족이란 말이 가해의 수단이 아니라 피해에 대한 저항의 수단인지, 민족이란 말이 약자의 입장에서 연대와 극복의 의미를 품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자는 것이 진보적 관점이다.

우리는 정부의 필요에 의해 반일감정에 동원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승만이 내정의 참담을 가리고 존재의 명분을 채우기 위해 친미 반일의 행보를 했고, 처음부터 친미 친일한 박정희를 지나, 전두환이 광주의 피를 숨기고 자기의 권력에 명분을 채우기 위해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를 이유로 반일 궐기에 국민을 동원한 바 있다. 그 이후로 북풍과 일풍은 아주 손쉬운 책략이 되어 종종 노동자 민중의 눈을 속여 왔다. 이번 경우는 좀 다르다. 왜냐면 아베의 일본이 아주 전략적이며 정치적인 선제공격에 의해 문제가 불거지고 악화됐기 때문이다. 아베는 과거를 회복하기 위해 선공을 하고 있다. 그는 한반도 평화를 공격해 전쟁 구조를 유지 하려한다. 남한의 민주주의를 공격해 남한의 독재 적폐를 온존케 하려한다. 한국의 경제를 공격해 예속적 반민중적 구조를 강화 하려 한다. 누가 봐도 못된 군국주의다. 이런 군국 아베의 일본은 우리에게 뜻밖의 교훈을 준다. 우리 안에서 반공반북이 친미친일과 어떻게 하나이고, 그 결과가 매국 반동화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경원 황교안 주옥순 김문수 전광훈 이영훈... 반공반북과 유신에 대한 맹목이 얼마나 아베의 군국주의와 닮았는가를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꼭 기억할 입장이 있다. 구미에서 전범 기업 아사히 자본과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글이다. “아사히는 강제징용을 한 미쓰비시의 자회사다. 아사히는 12만평의 부지 50년간 공짜 임대, 5년간 국세 면제, 15년간 지방세 감면을 받고 있다. 아사히는 비정규직을 고용하여 불법파견까지 자행하며 연평균매출 1조씩 떼돈을 챙겼다. 지금도 정부가 전범기업 수백 개에 특혜를 주고 있고 국민연금은 투자까지 하고 있다. 우리에게 더 심각한 것은 김앤장이다. 대한민국 최대로펌 김앤장은 청와대를 김앤장의 출장소로 만들었다. (양승태의 대법사법농단도 결국 김앤장과의 사악한 거래다.). 김앤장은 강제징용을 한 미쓰비시를 변호하고, 가습기 살균제로 아이들 목숨을 앗아간 옥시도 변호했다. 외환은행을 인수해 떼돈을 벌어들인 론스타도 변호했다. 강제징용을 부정하는 아베에 맞서 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에 앞서 정부는 전범기업에 지원과 투자부터 멈춰라. 김앤장 출신 쓰레기를 정부 요직에 임명하는 짓도 중단하고. 김앤장을 해체시켜라.” 이런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아사히 일본 본사 앞에서 일본인들은 자발적으로 연대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가 민중의 일본과 아베의 일본이 다름을 알아야 하는 실체적 이유다. 친선과 연대야 말로 모든 폭압과 침탈에 대한 우리의 유일 무기이고, 거기에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없다. 

촛불은 우리 안에 우리의 존엄을 파괴하는 특권과 반칙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항쟁이었다. 집단지성의 열정적 발로라고 자찬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반일만큼 우리에게 반칙적인 존재인 미국에 대한 엄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일제에 대한 분노만큼 베트남에서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 안에 분단과 전쟁이 만든 증오에 기초한 반동 매국에 대한 특별한 경계가 필요하다. 서구 어느 철학자가 말했단다. ‘애국심이란 선조의 땅을 지키는 마음이라기보다 후손의 땅을 보존하는 마음이다.’ 애국심이 필요한 것도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권의 실세라는 자가 친일과 사카린 밀수 등의 범죄로 부를 만들고 반칙과 특권으로 그 부를 세습하는 삼성에 쫒아가 “슈퍼 애국자“라 해서는 반일(反日)의 결과가 종일(從日)이 되는 기괴한 일이 생긴다. 특권과 반칙과 불의를 타파하는 조국과 민족 사랑을 하면 좋겠다. 노동자 민중이 행복하고 후손들이 행복한 애국을 위해 우리는 분노와 열정 속에 진보의 이성을 담는 노력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금천구 퍙화통일 신문 ‘날개’ 기자단은 지난 6월 15일 21명의 청소년들이 발대식을 갖고 전쟁기념관 견학, 통일관련 취재 및 기사작성 등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관심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참교육 학부모회 남부지회에서 주관하고 있다.

 

 

 

“아무리 전쟁이 멈췄다 해도 달라진 건 없습니다. 그저 전쟁이 끝난 게 아니고 잠시 멈춘 것 뿐입니다. 우리의 분단의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져 줄 길은 통일입니다. 통일을 위해선 먼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배려하며 하나 하나씩 맞추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다. 분단이란 오랜 헤어짐 때문에 많은 갈등도 생기겠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서울문백초등학교 5학년 이주은
 
“전쟁이란 단어는 매우 슬픈 단어다. 총소리와 탱크 소리만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난 전쟁을 안했으면 한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했을 때  난 ‘종전’의 희망을 품고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내가 죽기 전에 종전이 되고 통일이 되었으면 한다.”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이수영

“내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과 정상회담을 많이 하고 친해져서 핵 미사일이나 핵 폭탄을 없애서 평화로운 통일을 할 것이예요. 경제적 협력, 사회활동 교류, 이산가족 찾기, 관광사업 등 남북한 소통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이해하며 함께 가는 통일을 이룩하고 싶어요. 어서 빨리 북한 친구와 백두산과 한라산을 손잡고 구경하고 싶어요.” -서울문백초등학교 5학년 이주호

 “중국 인해전술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머릿수가 무기(총알)보다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군대가 압록강 근처까지 가서,  거의 우리나라가 통일을 시킬 수 있었는데, 중국이 개입한 이 인해전술 때문에 상황이 역전 되어 너무 아쉬웠다. 생각해 보니, 우리 역사 중에서는 다른 나라가 개입할 때는 언제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이윤수
“6.25전쟁과 관련된 동영상과 사진, 전시물들을 보니 그 시절을 겪으셨던 우리 할머니 생각도 났다. 얼마나 힘들고 슬프고 두려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쟁기념관의 한쪽 벽면에 가득 새겨진 수많은 전사자들의 이름을 보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리고 몸바치신 수많은 분들의 희생에 깊은 감동과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서울두산초등학교 6학년 장서윤 

“내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은 사소한 일부터 차례대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고, 국민청원에 평화에 대한 중요성을 올리는 것도 아주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평화는 문제 상황에서 대화로 해결하면서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노희재

“지금 당장 통일이 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다. 통일이 되려면 북한과 남한이 자주 만나고 서로 도와주며 이해해줘야 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진짜 평화는 통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싸울 일도 없고 전쟁도 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 같다”  -서울두산초등학교 5학년 박소은

“ 6.25전쟁을 하면서 돌아가신 분이 국군은 137,899명 정도 UN군은 37,902명 정도라고 한다. 나는 이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 하나하나 다 알지는 못하지만 이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6.25전쟁을 기억해야 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이런 비참한 역사를 다시는 일어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두산초등학교 5학년 이채원
        
“우리나라가 겪었던 전쟁사를  알수 있었던 전쟁기념관 관람하면서 선조들이 힘들게 지켜준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많이 키웠으면 한다.”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윤서정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진짜 평화란 무엇일까? 나는 평화가 자유롭고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나라가 통일부터 됐으면 좋겠다. 먼저 통일이 되어야지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서울금나래초등학교 5학년 노희원

“전세계 각 군대들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작은 나라를 돕기 위해  수만 명의 청년들이 전쟁터에 뛰어 들었다. 연필 대신 총을 잡고 나라를 위해 싸웠던 학도병들은 대부분이 나보다 몇 살 위 소년들이란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린나이에 전쟁터에서 얼마나 무서웠을지, 얼마나 아팠을지 감히 나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서울두산초등학교 5학년 임예빈

 

글·그림 17살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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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모 칼럼]

 


우리는 오늘, 결연한 마음으로 대내외에 국가의 자존과 민족의 자긍을 선언한다. 대한민국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국가로 평화를 지향하는 민족이다. 우리는 이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한편 세계에 다시 공표함으로 인류는 평등하고 인종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서로 존중하여야 함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 선언은 오천 년 우리 역사의 배경에서 찾고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의 뜻을 바탕으로 둔다. 모든 세계인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여 서로 도와 함께 발전하려는 것으로 각자의 양심에 따라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독립영웅 선조들이 설파했던 바이며, 전 인류가 함께 추구해야 하는 길이자 모두의 정당한 권리다. 
역사 이래 한 반도는 일본의 무도한 침략으로 강토는 더러운 발에 유린당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고 민족이 겪은 고통은 말로 다하지 못한다. 그들이 한반도에 저질은 행위는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세계가 다 알고 있다. 그런  전력에도 뉘우침이 없더니, 이제 다시 알량한 기술로 문명을 빙자하여 침공을 하니 그 모습 딱하기 그지없다. 문명을 앞세우면서 행동은 야만적으로 하니 말이다
우리 민족을 우롱하는 욕된 말들은 안 들은 척 무시하면 되지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술과 독창성으로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위협하는 데는 분노를 넘어 적개심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의 비이성적 행위야 낯설지 않지만 인류 공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국민조차 속이는 행위는 참으로 보기 흉하다.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은 이러한 일본의 저급한 행보에 우려와 함께 연민조차 가진다. 
우리는, 일본이 저질은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들어 속 좁게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긴 시간 우리 문화를 깔보았고, 우리사회의 선량한 풍속과 민족적 신념을 흉보는가 하면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바꾸기를 하고 있지만 이 또한 탓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회주의에 능란한 간교한 정치인과 그들에 아부하는 소수 학자들의 논리일 뿐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는 인간의 의지로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꽃다운 소녀들의 청춘을 송두리째 앗아간 인간수심의 범죄와, 무고한 생명을 실험 살생한 것과, 신성한 노동을 착취한 죄는 오직 반성을 통한 갚음만이 필요하다. 이는 누구의 배려로 용서를 논할 대상이 아니고 오로지 피해자의 양심에 따라 처분 될 뿐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기에도 바쁜 우리는 일본을 원망하고 과오를 따지며 싸울 겨를이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을 바로 세워 민족의 자존을 지키는 일이다. 양심에 따라 우리의 운명을 만들고 지켜야 하지 감정에 매몰되어 문화인답지 못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다만 낡은 사고에 빠진 일본의 정치인과 학자들에게 이성을 찾도록 정의로운 충고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신랄하게 추궁해 갈 것이다. 
일본정부가 유념할 것은, 진실을 왜곡하여 두 민족을 이간하는 것은 궁극에는 자멸의 길이 된다는 사실이다. 하루빨리 잘못을 뉘우쳐 양 민족이 이해를 통한 화해로 좋은 이웃이 되도록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재앙을 피하는 길이다. 또한 일본의 양심세력들은 작금의 사태가 국민의 뜻이 아니고 일부 못난 정치인과 그들에 빌붙어 진리를 외면하는 학자 등에 의한 정의롭지 못한 행위임을 자각하고 현재에 제기된 양국 간의 문제에 사려 깊게 접근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부도덕한 정치인과 학자들의 설자리를 없애 오늘과 같은 불행한 역사가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민족 또한 울분으로 이성을 잃는 과오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오직 진실을 말하고 정의롭게 행동함으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부와 긍지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오늘의 사태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길이다.
일본과 한국이 함께 할 일은, 이웃한 민족끼리 선린관계로 뭉쳐 패권주의적 외세를 배제하는 일이다. 그것이 동아시아를 지키는 거룩한 임무고 궁극에는 세계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일찍이 대한국인 안중근 님께서 양 민족에게 한 고언이다. 명심해야 한다.(♣2019.08.14)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199]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권윤덕 글/ 창비 펴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어린 시절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부모님은 일하러 일찍 나가시고 동생과 둘이 집에 남아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다 헤집어 어지르기도 하고, 저녁때가 되면 기다리다 지치고, 무섭고, 배고프곤 했었던 때가 기억나 코끝이 찡해집니다. 

 이 책엔 고양이가 나옵니다.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친근한 고양이.
‘우리집 고양이는 깍쟁이에요. 안아주려고 하면 도망가고 모르는 척 하면 옆으로 다가오고‘ 로 시작하는 책에서 아이는 고양이와 함께 놀기도 하고, 빨래도 널고, 파리도 쫓고, 꽃냄새도 맡고, 벌레도 내려다보고, 놀다가 심심하면 밖도 내다봅니다.
밖에는 아이들이 많이 놀고 있지만 아이는 말합니다. 
내 친구는 고양이밖에 없고 고양이 친구도 나밖에 없다고...
저녁이 되어 엄마가 올 시간이 되면 밖의 모든 소리가 귀에 들리고 점점 무서움을 느낍니다. 
고양이와 이불속에 숨기 바쁜 아이... 고양이와 둘만 있으면 될 것처럼 보였으나 아닌가봅니다. 

 조금씩 아이는 변해갑니다. 이젠 내가 고양이를 따라 하겠다고, 용기를 내어 어두운 창밖을 찬찬히 살펴보고 높은 곳에 올라 먼 곳도 바라보고, 고양이처럼 몸도 크게 부풀려보고... 그리고 ‘이제 밖으로 나가는 거야!‘하고 외치며 고양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 놉니다. 
 그림책들이 다 그렇듯 색감이며 중간 중간 고양이나 아이의 모습, 또는 주위의 모습 등에서 찾아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굳이 글을 읽지 않아도 그림만으로도 알 수 있을 만큼 섬세하고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한번 씩 외로워질 때면 이 책을 찾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그림책에서 내 어린 시절을 한번 떠올려보며 미소 지어봅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노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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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희 기자

 

저번 주에 전쟁기념관을 갔다 왔어. 나는 그 곳에서 6.25전쟁에 대해서 배웠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인천상륙작전과 학도의 용군이야.
  인천 상륙 작전은 맥아더 장군의 지휘 하에 이뤄진 작전인데, 전쟁 후 서울과 인천은 북한에게 넘어갔고, 우리 군인은 저 아래 낙동강 앞까지 밀린 아주 위태한 상황이었지. 맥아더 장군은 미군과 함께 상륙을 준비하면서 부산 쪽에만 군인들이 많고 수도권에는 별로 없다는 것을 계산했어. 그리고 인천을 통해 상륙을 해서 서울까지 다시 우리가 되찾을 수 있었지.
  다음 인상 깊었던 것은 학도의 용군인데 학도의 용군은 학도병을 말하는데, 학도병은 군인이 아닌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전쟁이 나자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인으로 전쟁에 참가 한거야. 나는 그 분들이 너무 자랑스러웠어. 우리 또래, 우리 오빠 정도의 나이인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어 전쟁에 참가한 그 마음이 너무 커 보였기 때문이야.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으면 멀리멀리 도망갔었을 텐데, 전쟁에 참가한 학도병들이 너무 대단해보였어.    
  특히 한 학도병이 어머니께 편지를 쓴 게 그 곳에 있었는데 그 편지글이 내 마음을 울렸어. “어머니,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라고 쓴 글인데 보자마자 나는 많이 울컥했어. 글을 쓴 학도병이 사람을 죽인 게 얼마나 슬프고 무서웠을지 그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았어.
  인천상륙작전과 학도병 외에도 6.25전쟁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많이 희생된 UN군이었어. 열심히 싸운 우리 국군도 감사하지만, 한 번도 들어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와서 우리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워주신 UN군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 나 같았으면 “그들이 누구인데 그 나라에 내가 왜 가서 싸워? 죽을 수도 있는데?”라며 전쟁에 참가할 생각은 전혀 안 했을 텐데 전쟁기념관에 쓰여진 수많은 UN군들의 희생에 너무 감사했어.

  전쟁기념관을 다녀오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게 희생한 우리 국군과 UN군, 학도병 그리고 수없이 많이 죽은 우리 국민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 그들의 희생으로 지금 내가 편하게 살고 있으므로 그 분들의 몫까지 내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그 분들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도록 평생 노력할거야. 친구들아~ 너희들도 이번 여름 방학에 전쟁기념관에 가보렴. 강추! 강추!!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장서희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은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시키겠단 목적으로 소련과 중공군의 지원을 받아 남침을 하여 시작된 것이 6.25전쟁이다.
 6.25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엄청났다. 국군 62만 명과 유엔군 15만 명이 전사, 부상, 실종되었으며 전쟁으로 인한 난민은 1000만여 명이나 되었다. 이는 그 당시 전 국민의 절반이나 되는 엄청난 수였다. 또한 북한군에게 밀려 후퇴할 때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고 대한민국 제조업의42%가 파괴되었으며 도로, 철도, 항만, 학교는 물론 개인 자택까지 대부분 파괴되어 경제체제가 무너지고 국민들의 생활이 황패해졌다. 그리고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이산가족이 생겨나는 등 아직까지도 큰 고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6.25 전쟁은 국민들에게 전쟁의 무서움과 고통, 참혹함 등을 각인시켜주었고 전쟁이란 어떠한 이유라도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통일이 절실하다. 최근 과거보다 많이 나아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통일이 더 이상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통일이 현실이 된다면 많은 이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기술력과 자본 그리고 북한의 자원과 저렴한 인건비가 만나면 큰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보다 우리민족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만 문제점은 독일처럼 갑작스러운 통일의 여파로 인한 여러 가지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평화적인 통일은 우리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주변 강대국을 우리의 평화통일을 위한 조력자로 끌어들여야 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감으로 갑작스러운 통일로 인한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 또한 지속적인 교류와 원활한 소통으로 점진적인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용산전쟁기념관을 방문한 평화날개 기자단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정 원  

함상열 기자

 

 우리는 흔히 기념관이라고 하면은 행복한 날, 아님 의미 있는 날들을 기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전쟁기념관을 보면서 전쟁은 기념할만한 것이 아닌데 오히려 ‘추모관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전쟁기념관을 견학하고 나서 전쟁은 그만한 커다란 희생이 있었고 그 희생자를 존중해 주기 위해서라도 전쟁 기념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을 기준으로 몇 주간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할 준비를 마치고 38선을 넘어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경보령을 해제 했었던 우리나라는 순식간에 서울을 빼앗겼고 결국 낙동강에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 후 우리는 유엔군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유엔군이 도착하고 거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인 맥아더 장군이 있었다. 당시에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북한군이 모여 있었기에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을 개시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북한군은 우리의 습격에 당하고 만다. 우리군은 상황을 180도 바꾸어서 우리는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중공군(지금의 중국이)이 개입을 하게 되고 그리고 우리는 북한과 함께 38선을 기준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각 측의 지원해주는 국가들이 이대로는 너무 힘드니 그만 휴전하자 라고 해서 공산주의 상징인 중국에 도움을 받은 북한과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의 도움을 받은 우리나라는 휴전협정을 맺고 냉전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북한으로 나뉘게 되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전쟁기념관을 많이 가는 이유가 유엔군 참전국가들 중 우리 땅에서 싸우다 죽은 자국 참전용사들이 많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전쟁 중 희생된 군인도 기억해야 되지만 사실 그 전쟁 중 우리나라 땅에서 이 전쟁의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국민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많은 국민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갔지 않는가?
  우리 땅에서 서로에게 총을 들이 대며 죽고 죽이는 전쟁은 절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를 정신적으로 재무장 하고 국방력을 튼튼히 해 우리나라를 넘보지 않게 해야 한다. 전쟁 없는 ‘평화적 통일’을 위해 우리는 북한과 핵을 폐기하자는 협상을 하고 끊어졌던 기찻길을 잇는 노력을 하고 있다.
 통일이 잘 되어서 우리나라도 분단국가에서 벗어나 다시는 우리영토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통일을 바라는 중2 
함상열 (문일중학교 2학년)

  임유빈 기자

 

약 70년 전 우리나라는 한 사건을 통해 한민족인 남과 북이 서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바로 6.25 전쟁입니다. 6.25 전쟁이란 1950년 6월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 군사 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하여 한반도에 일어난 전쟁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일어난 까닭은 무엇일까요? 
 6.25 전쟁이 일어난 까닭을 알기 위해서는 8월15일 우리나라가 광복한 날로 돌아가 봐야합니다. 광복 후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마자, 우리나라는 독립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신탁통치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신탁통치에 대한 갈등과 대립 속 의견이 다른 미국과 소련은 각각 남과 북을 따로 통치하기로 하였고, 통일된 정부를 원했던 한반도에서는 남과 북 두 개의 정부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남한과 북한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6.25전쟁을 기억해야하고 잊지 않아야하는 역사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왜 70년이나 지난 역사를 기억해야만 할까요? 그 이유는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아픈 과거를 잊지 말아야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6.25와 같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북한과 대화해야 합니다. 저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관심을 통해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두산초등학교 
6학년 임유빈

글·그림 17살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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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임금제를 두고 노동자와 정부 그리고 사용자 간의 다툼이 요란하다. 주는 자와 받는 자간의 시비인 것 같지만 그렇게만 볼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와 같이 안일하게 생각할 국민은 많지 않겠지만 시대를 함께 살아가야 할 국민 모두의 문제로 보고 함께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부족한 것 같다. 서두부터 따지듯 접근하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이 문제는 이해 당사자와 정부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로 보아야 함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최저 임금제는 글자 그대로 근로자의 노동에 대한 최소보수 즉 노력가치의 하한선을 정하는 것으로 이의 논의에 대해서는 그것을 부담해야 할 당사자인 사업자들조차도 가볍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그로 인해 향후 만나게 될 그들의 입장 때문에 공감을 못하는 것으로 본다. 그럴 만큼 우리 사회의 최저 임금에 대한 시민의식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사실 이 문제 즉 최저 임금제는 중요 사회 과제가 된지 오래고 그래서 이해 관계자들은 서로의 처지를 무시하지 않지만 워낙 어려운 각자의 사정들 때문에 대립관계가 되었다고 이해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의 임금 체계는 다분히 근로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라는 점에는 정부와 다수의 국민들이 우려와 더불어 대책 필요성에 공감 하는 분위기다.
최저 임금문제는 정의의 문제이나 사회적 여건 불비로 묻혀왔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표면화되고 그에 따른 진전이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일자리문제로 근로자의 선택에 여유가 없게 되면서 다시 묻혀버렸다가 생활고로 일가족 자살사건이 일어나면서 생존의 문제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후보시절 최저 임금을 정액(시급 10,000원)으로 공약한 것은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한 우려의 표현으로 본다. 부담해야 할 대상 즉 기업들의 사정도 어렵기는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사정으로 보는 것이다. 그럴 만큼 우리 사회의 일용 근로자의 삶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근로자가 어렵다고 부담을 기업에만 지울 것인가, 그럴 경우 기업이 어려움을 만나게 되니 국가가 나서 세금으로 이를 보전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럴 만큼 우리의 국가 경제는 여력이 있는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질문이지만 누구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듯 고용과 임금 문제를 보는 우리사회의 분위기는 부정성이 기조다.. 
유념해야 하는 것은, 현재와 같은 저임금문제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문제로 받아들여 그 구성원들이 뜻을 모아 공동대응으로 대응해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가 마땅한 정책을 마련하도록 국민들은 모두가 내 문제 마냥 독려하고 성공적 시행을 위해 정부에 힘을 모아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권리를 바르게 행사하는 것이자 민주시민의 역할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국가가 좋은 정책을 마련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준비된 이야기를 해보자. 국가는 최저 임금제를 이런 저런 잣대를 가지고 헤매지 말고 인간의 존엄성을 잣대로 삼아 정리를 해야 한다. 다양성이 복잡하게 존재하는 사회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제도는 허구가 아닌 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긍한다면 답이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의를 푯대로 하면 목적이 보일 것이고 그것을 지향하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이로움이 된다.
다음으로, 이 예민한 문제를 누가 어떻게 담당할 것인가를 이야기해보자. 실질적 이해 당사자인 기업과 근로자이지만 두 대상은 이해충돌로 합의 기대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개입하여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두루 뭉술 정책으로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물론 어려운 사정이기는 하지만 더는 방안이 없다면 상대적 약자 편을 들어야 한다. 모두를 보호하여야 하지만 방법이 궁색하니 달리 선택이 없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그래서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기업들이 어렵고 특히 영세기업들은 더욱 그렇다. 기업이 존재해야 근로자의 자리가 있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자리 빌미로 현실에 눈감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기업이 어렵다고 근로자들을 생존의 장 밖으로 밀어내는 형국이니 말이다. 일가족이 목숨을 끊는 일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냉정해야 한다. 현실을 감안한 정책을 만들고 그것의 실효성 담보를 확실히 해야 한다. 한쪽이 유리하면 다른 한쪽이 불리하게 되는 게임이다. 모두를 만족할 수 없으니 유감스럽지만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 다만 다른 한쪽에 대해서는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지금은 모양이 별로지만 언젠가는 정부 신뢰로 국민들이 답을 할 것이다. 
결론을 말한다. 국가는 최저임금 제도를 마련하고 그 실행에 공무원들의 우유부단이 없도록 확실한 장치를 두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한 헌법 원리를 앞세우면 명분은 충분하다. 그런 한편 기업도 또 다른 약자로 두는 정책을 따로 수립하도록 한다. 
기업은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현재를 수용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고용이 있음을 지지하지만 기업의 존재이유를 사람의 생존에서 찾아야 한다. 근로자들도 겸허한 자세로 현실을 보아야 한다. 불만족한 배경일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 자기 발전의 계기로 보답해야 한다. 사회의 부(富)는 나눔으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동의한다면 그것에 기여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 나눔은 그 정신이 평등할 때 비로소 가치를 가진다.(♣2019.07.28.)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198

 

어른이 된 우리는 대부분 어린 시절 목욕탕에 대한 기억이 한두 가지씩 있을 것입니다.
나 어렸을 적엔 목욕탕 가는 것이 거의 일주일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집에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어 목욕탕에 안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 중 목욕탕을 안 가봤거나 잘 모르는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본 아이들도 목욕탕 하면 때 밀고 씻는 공간보다는 찜질방을 더 많이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커서 목욕탕이 어떤 공간으로 기억될까요?
 판다들도 목욕탕을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판다 가족이 집에 있다가 (여기에서는 집이 동물원입니다.) 목욕탕에 갑니다. 판다들의 목욕탕은 어떤 모습일까요? 판다들이 목욕을 하면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판다 목욕탕에서 판다의 비밀이 하나둘씩 벗겨집니다. 
이 책은 글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유아들 책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큰 아이들도 좋아합니다.
판다들의 반전적인 모습에 어른들도 웃음 짓게 합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욱 재미있고 구석구석 붙어있는 글들도 재치가 넘칩니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여기저기 살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과연 판다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의 입에서는 “판다는 ooo이었어요” 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은 뭐라고 말했을까요?
쉿!!! 판다의 비밀은 무엇인지 조용히 살펴볼까요?

투페라 투페라 지음 / 노란우산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박현진

나는 살면서 세 번, 내 삶의 지평이 확~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첫 번째가 나만의 자동차를 갖게 된 것이다. 초록색 티코. 내 발에 딱 맞는 신발이었다. 대로변에서 가지쳐나간 샛길들은 내게 늘 유혹이었고, 그곳들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은 없었다. 하나가 아니었기에. 나는 이제 저, 어디로 뚫려 있을지도 모르는 길을 혼자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길을 잃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돌아 나오면 그뿐이었으므로.
두 번째가 PC 통신을 만난 것이다. 도스 시절의 향수가 물씬 풍기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파란 화면 속에서 깜박이던 커서는 얼마나 매혹적이었던가! 구글처럼 모든 걸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보다 현명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궁금한 것을 게시판에 올리면 하룻밤 사이에 댓글이 쫙~ 달려 있곤 했다. 그 당시의 나에겐 신세계였다. 
세 번째가 eBook과의 만남이다. 정확히 말하면 ‘월정액 전자책 구독 서비스’. 한 달에 일정액을 내면 맘껏 원하는 책을 다운로드 받아 읽을 수 있다. 인터넷에 연결되는 순간 언제 어디서나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책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걸 안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다. 새로 전학 온 친구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그녀의 엄마는 나의 엄마와 달리 신여성이었고, 내가 먹어보지 못했던 양과자, 토끼 모양으로 빚은 사과, 그 당시 귀했던 바나나나 귤 등을 맵시 있게 접시에 담아 내오곤 했다. 가구들도 고급스런 것이었겠지만,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지 별 기억이 없다. 다만, 그녀의 방 한 편에 놓여있던 책장에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손때조차 묻어있지 않던 책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순간 그녀에게 질투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그 책들을 빌릴 수 있었고, 책 때문에 그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듯하다. 
NGO 지부장 역할로 아프리카 땅을 다시 밟았다. 한동안 업무 파악하느라 주말을 즐길 여유 같은 건 생각도 못했다. 이제 좀 자리가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골칫거리 하나가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지역소식지 발행이었는데, 현지인에게 글을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첫 번째 소식지는 어찌어찌 만들어졌는데, 내 마음이 까맣게 타고 난 후였다. 일에 탄력이 붙고 주말을 되찾자, 책을 읽고 글도 쓸 짬이 생겼다. 내가 기자가 되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든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직원 중에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있어 둘이 의기투합했다. 영어 번역본은 다시 스와힐리어로 번역하고,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병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내 깜냥의 지평에서 빚어졌을, 나의 한글판 글이 사장되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내용을 조금 수정해서 한국의 매체에도 올리고 싶은 마음에 이 익숙한 공간을 다시 찾게 되었다. 혹시라도 소피아를 기억해주는 독자가 있다면, 그들과의 해후가 반갑고, 한글본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기쁘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199

 

친일 친미만이 살길이라며 반공반북과 대립시켜 지들 매국 본능을 감춘 채 노골적인 항복요구로 해대는 친일 망동도 많지만, 반일(反日)이 극일(克日)이 아니라 혐일(嫌日)이 되는 것에 불끈한 이성적인 분들이 ‘나도 친일’이라 말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목줄 급소가 잡혔다고 한 걱정하는 분들이 냉철한 이성으로 대화와 타협을 주문한다. 경험으로 노동자에게, 또는 모든 사회적 약자에게 ‘현실적’이라는 말은 ‘굴욕적’이라는 말이다. 타협하라는 말은 굴종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순응 적응을 하다못해 ‘알아서 복종’을 하라는 말이다. 현실적인 이유의 태반은 ‘물질적’ ‘경제적’이다. 하루 한 끼의 온전함, 가족들의 안위, 그것이 우선하는 생존의 비루함이다. 그래서 현실적이라는 것은 자기 가치가 만든 자기 존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땀 배인 희망, 나 말고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현실적이지 못한 행위는 감상적 감정적 무엇이 된다. 감정 감상이 폭발하는 이유, 폭발까지 이르는 과정의 의미, 현실과 이성을 넘는 역사적 역동성은 자기들의 필요한 만큼만 끌어다 이용할 뿐이다. 이성은 보통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이다. 당연히 압도적으로 물질적인데 그것의 대표적 표현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약자가 참고 견디라는 말이다.  
반일역사애국론과 친일경제애국론은 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둘 다 70년 한반도 및 한일관계의 진정한 몸통 미국의 문제를 불가피한 전제로 본다. 둘 다 문제의 근본 대신에 현실의 안주를 애걸한다. 다만 반일애국론은 현 집권 정치의 유지, 친일 경제 애국론은 현 경제 체제의 존속을 바란다. 그래서 한국 재벌 중심의 빈부격차의 경제 구조가 깨져야 한다는 것을 잊은 친일을 하고, 노동자 민중의 피땀을 더욱 심하게 쥐어짜겠다는 반일을 한다.  
이번 친일 반일 소동을 야기한 아베의 심보는 복합적이다. 오랜 경제적 난관을 뚫기 위해 긴장과 팽창 정세 구조의 필요, 강대국으로 일제(日帝)를 복구하고픈 정치적 야욕, 동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한반도 대립과 긴장을 축으로 한 미일동맹 강화, 1965년 한일협정이 만든 기울어진 한일관계를 깨려는 한국 정권을 길들이거나 교체, 당장은 일본 내정에서 선거 승리를 위해 작심하고 선방을 날린 셈이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대응도 복합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 체제와 통일로 가는 구조를 위한 대응이다. 기울어진 한일 정치 경제적 구조, 그러니깐 독재정권의 반민족적 반민중적 한일협정 체재의 근본적 혁파, 외교에서의 적폐의 청산을 하는 방향에서의 대응이다. 다른 측면에서 이 기울어진 운동장 적폐구조가 국내의 분단예속 구조에서 특권을 누린 체제에 대한 성찰적 대응이다. 노동자 민중의 애국심의 분출이 또다시 분단예속 적폐들의 면죄부나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칙과 특권을 타파하는 방향으로의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간다.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인정하는 ‘특별 연장근로’ 도입, ‘재량근로제’ 도입 확대, 화학물질을 들여오고 연구할 때 필요한 규제 및 인허가 기간 단축, 세금혜택과 예산 배정, 반도체 소재 개발사업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추진까지 과로와 산업재해로 무수하게 죽은 노동자들의 목숨 값으로 겨우 생긴 생명과 생태의 보호 장벽을 허물고 이명박근혜 이후 자본가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날강도적이고 반생명적인 조건을 다 보장한다고 나선다. 
우리는 분노하다 피똥 싸고,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은 뒤에서 허옇게 웃는다. 결국 애국은 우리 노동자 민중들은 동네잔치에 간 사이에 집안 다 털린 꼴이 된다. 그러니 작금의 반일 혐한 소동이 실은 아베 정권과 문재인 정권이 자기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한 적대적인 척 공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조금 더 나아가 삼성과 이재용 구하기의 한일합작 협작은 아닌지 의구심이다. 
분명한 것은 애국이 맹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맹목의 애국은 반공 반북 전쟁 애국이 되고 노동자 민중의 피땀을 쥐어짜다 죽이는 애국이 된다. 한국 현대사가 만든 애국 적폐, 적폐애국이다. 이것도 이참에 끊고, 노동자 민중이 행복하고. 나라의 자주와 평화가 통일로 가는 애국을 하자는 말이다.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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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198

 

강남역 한복판 교통 탑에서 30일이 넘게 고공 단식 농성중인 해고 노동자가 있다. 김용희다. 온몸을 구겨 넣어도 두발이 허공중 매달리는 좁은 곳에서 폭염과 장맛비를 고스란히 감내하는 사정은 상식으로 짐작도 못할 것이다. 지난 7월 10일은 그의 생일이었다. 회갑 생일인데 삼성에서 정년나이란다.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 했다는 죄로 그는 납치, 회유협박, 테러, 해고, 해외유배를 당했고 그 과정에서 부인은 성폭행을, 부친은 자살을 당했다. 지옥 같은 24년을 끝장내기 위해 단식고공농성을 시작한지 한 달이지만 삼성은 ‘입장이 없’고 마지막 일터였던 삼성물산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생일 날 진행된 문화제에서 그는 ‘24년, 암흑 터널을 헤맸다. 나에게 유일한 희망의 힘은 여러분이 거기에서 들고 있는 촛불하나 핸드폰 불빛 한 점이었다.’며 절박한 외로움을 토로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요금소 옥상에는 여성노동자들이 10일이 넘게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도로공사는 일자리를 쪼갠 근본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용역회사를 자회사로 돌리고 자회사로 전직하라고 한다. 대법 판결도 소용없는 횡포를 막고 정상적인 정규직화를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불가’하다고 하고 사장 이강래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불가능하다는 말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대안도 없고 어쩔 수 없다며 자행된 신자유주의 시장 횡포, 자본의 광란 정리해고 비정규직이 처절하게 파산시킨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은 언제나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말이다. 물론 불가능한 일도 있다. 종교나 신의 영역이야 인간이 도저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일찍이 공자님은 자기가 성의로 할 일과 경이원지(敬而遠之), 즉 ‘삼가되 멀리하라’는 영역을 구별했다. 귀신의 영역과 사람의 영역을 말이다. 하지만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어쩔 수 없고 불가능한 영역을 만든다. 이기심 탐욕 경쟁 빈부격차 ... 최근에 제4차산업혁명이라는 공갈협박 주술까지 사람이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억센 희망 대신에 귀신의 세상을 만들어 공포에 떨며 순응 적응 굴종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사람을 존중하고 살리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세상이 된다. 사람이 일회용 휴지가 되는 이런 자본주의 체제가 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지금이 행복한 이들이야 지금이 변화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싶겠지만, 지금이 아픈 우리들에게 오늘은 보다 나은 내일로 가는 여정, 사람의 영역에서 어제의 모든 불가능은 오늘과 내일엔 가능으로 전환되고 전환 시켜야 한다. 
그러고 보면 일본 아베정권도 한일 간의 협정, 박정희와 박근혜가 맺은 그 치욕적인 협정의 시정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헌법을 파괴하고 아예 헌법을 조작했던 박정희와 헌법을 농단 유린했던 박근혜은 존재 자체가 반민주다. 그런 반민주가 만든 역사에 대한 테러, 가해자이자 매수자 그리고 군국주의 일본만 편한 불의를 시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사람을 위한 약자를 위한 한발은 언제나 지금의 기득권자들에게 불가능하다는 낙인을 찍힌다. 아베와 삼성과 도로공사는 낙인을 찍는 ‘샴 세쌍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시대의 슬픈 등대, 강남대로에서 김용희의 죽음을 태우는 절박한 호소는 단지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삼성이 대표하는 그 특권과 반칙과 부정부패와 고문과 유린에 대한, 돈 중심 체제에 대한 강력한 항거다.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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