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9일 가산디지털단지내에 ‘청년공간-무중력지대’가 개관식을 가졌다. 개관 당시 공간을 기획했던 업체는 “더불어 “지벨리는 많은 기업과 사람이 있지만 청년일자리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청년들의 공유공간이 없는 것도 한 이유다. 그래서 실제 지벨리 근무하는청년들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휴식, 놀이, 만남이 이 공간의 3가지 키워드다.”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개관식에 참석해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업무를 하다가 피곤하고 힘들 때 쉬기도 해야 한다. 자주 오가며 사람도 만나고 강연도 듣기도 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 일대가 G벨리로 IT와 패션등 최첨단 산업이 많은데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창조적 상상력에는 쉼이 필요하다. 이런 것이 곳곳에 필요하다.”고 공간의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정식 개관을 하고 4개월째를 맞는 ‘청년공간-무중력지대(이하 무중력지대)’를 지난 4월 22일 찾았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무중력지대에는 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먹는 모습, 담소를 나누거나 공부나 회의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일반 공공기관과 달리 주중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이 공간을 위탁운영하고있는 프로젝트 노아의 박근우 대표를 본 기자와 청년활동가 정소민, 유연수씨와 함께 만났다.


무중력 지대

지금까지 청년문제의 해결은 일자리문제에 집중했지만 그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자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위한 지원이 되어야 한다는 정책에서 출발했다.

‘무중력지대’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을 짓누르는 여러 장애를 중력으로 보고 그 중력을 떨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씅면 좋겠다는 취지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작명했다.

현재 서울의 청년공간은 은평구가 맨 처음 생겼고, 다음이 여기, 그리고 어제 대방동에 생겼다. 내년 생길 청년청과 성북지역까지 5개곳이 청년정책을 끌고 갈 예정이다.

금천구의 무중력지대는 다른 4곳과의 성격이 다르다. 여기는 청년직장인들이 워낙 많다보니  청년실업, 구직의 문제보다는 청년 직장인들의 근로환경개선이 우선적인 목표가 되고있다.

그렇다보니 사업목표도 청년직장인들의 복리후생과 고용안정에  많은 부분 집중되어 있다.


청년커뮤니티가 만들어져야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보다는 수동적이고 폐쇄적은 삶을 살고 있는 청년들이 뭔가 살수 있구나, 응원 받고 있구나를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가장 우선적으로 청년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려한다. 그러기위해서 여기를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문화활동도 제공하고 쉴 수있는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청년들이 서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 녹지가 없는 문제, 야근의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는 이야기해야하는데 지금은 없다. 이런 것도 사람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서 이야기되어야한다. 

G벨리에는 소규모 사업체가 많고 비정규직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 노력하면 어떤 성취가 이뤄져야 하는데 30대가 되어도 자기 성장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모성 업무가 많다는 불안감이 크다. 이런 분위기는 기업의 입장에서 봐도 좋지않다. 

<프로젝트 노아 박근우 대표>


청년들의 삶의 방향이 문제

정부는 청년문제를 대할 때  청년실업이나 구직교육에 대한 것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문제는 청년들의 삶의 방향이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참여할 시간이 없다. 게다가 서울시의 청년프로그램들이 사람의 혁신과 변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아침저녁으로 미친듯이 일하는 청년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청년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서 올해는 이 공간이 자신들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이용하게 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그리고 일자리 지원기관과 기업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것을 이미지화해 다양한 매체로 전달하고자 한다.

G벨리와 청년의 교집합

산업단지라서 자본은 많지만 터프하다. 무중력지대와 같은 공간이 구로에도 생기고 곳곳에 생겨야한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다. 이런 공간은 청년들과 기업들에게 모두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모습에서 일부 기업들은 G벨리의 위기라고 이야기한다.

판교나 역삼의 아이티단지는 이런 공간을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사업장 자체로 건물을 이렇게 변화시켜나가고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G벨리의 이미지를 개선시키고 싶다. 주거의 터전 때문에도 꺼나지만 근무환경자체가 나빠도 떠날 수 밖에 없다. 성장가능성? 경력으로 인정되는가? 종은 동료를 만나는 가의 문제에 있어 G벨리를 선택했다는 것으로 떠나지 않게 하고 싶다.


오타구들의 아지트가 되었으면

무중력지대가 아지트가 됐으면 좋겠다. 청년노동자들의 아지트이면서 모든 사람들이 주인인 곳으로. 그래서 운영자들의 말투도 손님을 대하는 것처럼 하지 않는다. 자발성만큼 큰 힘은 없다. 

G벨리 안의 노동자들이나, 금천구 지역의 청년들이나 누구나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으니 많이 놀러왔으면 좋겠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소리를 켤 수 없어 화면만으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화면을 봐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고, 배우의 입을 보며 열심히 말을 읽어내려다 결국 보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아 낯설게 되면 이해도 어려운 거였나 봅니다.

장면 하나, 속마음 하나까지 친절하게 글로 설명하는 책을 보다 글 없는 책을 봐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친절한 글 대신 친절한 그림이 함께 있어서 상상과 이해를 도와주었던 그림책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낯선 글 없는 그림책임에도 불구하고 이기훈 작가의 [양철곰]은 읽을 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마음이 충분히 읽.혀.졌.다.는 건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양철곰]의 표지에는 낡은 집들 사이에 똑같이 낡은 커다란 양철곰이 앉아 있습니다. 무너질 것 같은 수많은 낡은 집들 속의 양철곰은 왠지 쓸쓸해 보입니다. 

이 책은 환경에 관한, 사람의 이기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개발명목으로 작은 초록언덕에서 밀려난 양철곰은 사람들이 모두 황폐한 지구를 떠나도 혼자서 자신의 몸에 물을 끼얹습니다. 

양철과 물은 어울리지 않지만, 자신의 몸이 망가져도 계속 끼얹습니다. 결국 몸이 무너져 내리면서 몸 안에 있던 도토리 씨앗들이 깨어나고 자라나 [나무곰]이 되고, 다시 지구는 초록을 되찾고, 떠났던 사람들도 동물들도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지만 자신의 몸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양철곰이 기다린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동물들, 깨어날 씨앗들, 돌아올 인간들이었을까요? 그 기다림속에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습니다. 

나는 내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애써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해받지 못해도 눈길받지 못해도 위해본 적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가끔 이해하지 못해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이해받지 못해 외롭기도 합니다. 친구사이에도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저 묵묵히 나를 믿고 할 일을 해봐야 겠습니다. 양철곰이 ‘나무곰’이 될 때까지 하다보면 책에서처럼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까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읽는 어른모임  안해나




안녕하세요 청년활동가 정소민입니다 ^^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아 쌀쌀한 중이었지만 마을지원센터에서는 즐겁게 수원 마을탐방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저만 엄청 추웠나요 ? ㅠㅠ)

딱 봐도 수원시의 지원이 돋보이는 큰 규모로 정비된 행궁동도 돌아보고, 소박해보이지만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는 송죽동 달팽이네 마을도 돌아봤어요. 그리고 오늘 제가 느낀 교훈은, 바로 무엇이든 어디든 관이 주도하든 주민이 주체가 되든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때 (벌써 오래전이네요 ;;;) 수원 행궁동은 많은 비판의 여지가 있던 지역이에요 저도 그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행궁동을 처음 방문했었어요. 우리가 행궁동을 돌며 보았던 잘 구획된 도로와, 가로정비사업이 수원마을르네상스센터 이근호센터장님이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보여주기식으로 미관에 치중된 사업이 진행되었죠. 그 과정에서 행궁동에 거주하셨던 주민들의 의견은 크게 영향력을 떨칠 수 없었고, 수원화성문화제, 그리고 화성 행궁을 관람하러 오는 외부 관광객들을 위한 사업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공방길이니 뭐니, 작가들이 많이 입주하고 또 통일된 공공디자인, 공공예술 그때 유행하던 모든 것들이 투입되었지만, 그것이 과연 '재생'이냐를 놓고 말이 많았습니다. 저도 그때 처음으로 예술과 디자인 그리고 창작자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이번에 방문하고 보니 수원 KYC는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알리는 활동을 하시는지라 화성문화제나, 행궁 같은 이런 행사와 문화재의 중요성을 ‘삶의 모습’ 자체보다는 크게 생각 하셨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또 그러다보니 방문객들이 처음 맞닥트리게 되는 지역의 ‘외관’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게 이해가 되구요.(개인적인 의견입니다 ㅎㅎ) 과거의 고민과 현재의 고민이 살며시 겹쳐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생태도시를 컨셉으로 둘러보았던 곳들에서 작게 또는 크게 일어나는 갈등들은 그때의 부작용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점차 주민들이 모이고 인사나누고 하는 모습으로 변화해가도록 만드는 것은 역시 사람의 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궁동을 처음 보았을 땐 그저 잘 닦인, 꾸며진, 통일된 느낌의 거리여서 사람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번 방문이 매우 새로웠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공감대를 함께 형성해나가는 과정이 느껴졌어요.

우리의 삶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고민없이 당연한 것들을 받아들여왔죠. 자동차, 백화점, 원자력발전소 등 꼭 필요한지 고민해보기전에 당연해져버린 것들이 많아요. 그런 당연한 것들을 하루아침에 갑자기 ‘없애보자!’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단순 충격을 넘어서서 폭력에 가까운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요? 그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겠죠. 그러나 그 갈등을 천천히 지지고 볶아가면서 풀어가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결국 미래로 가는 길을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거잖아요.


마지막으로 갔던 송죽동 달팽이네는 처음엔 너무 소박한 모양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리 동네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후미진 골목길을 걸었거든요. 더군다나 투어를 시작하자마자 술이 얼큰하게 취하신 아저씨께서 “뭘 잘난게 있고 자랑을 한다고 맨날 사람들을 구경시키냐”고 역정을 내시는 바람에 긴장속에 투어가 시작되었지요. 그러나 활동가 김은자선생님은 “네 우리 달팽이마을은 잘난 것도 보여드릴 것도 없는 작은 골목에서 시작되었습니다”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계속 들으면서 정말 달팽이네 회원들이 아니었다면 만들 수 없는 마을만들기 사업이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아주 작은 텃밭, 정말 너무나 작아 아이들 공책보다도 작은 텃밭이라도 하나씩 있는거에요. 텃밭이 없는 곳엔, 장화에 흙을 담고, 등허리가 터져버린 애기 목마에 흙을 담고, 바구니에 흙을 담아 푸른 싹이 돋아날 것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마을만들기니 도시재생이니, 뭐 문화콘텐츠니 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사람들이 가진 개개인의 개성을 바깥으로 끌어내는 작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잖아요. 똑같이, 다이X에서 파는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내가 타고난대로 살아가는 삶을 천천히 만들어가자는 이야기잖아요. 정말 집집마다 화단이 개성이 넘치더라구요. 인상깊었던 곳은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바이올린 장난감이 매달려있던 한 할아버지의 작은 텃밭이었습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소품들을 활용해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는거지요. 공무원과의 갈등, 주민들과의 갈등, 어려움을 이겨냈던 이야기 등 진정성이 돋보이는 시간이라 기분도 매우 좋았습니다.


결론은 역시 사람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처음 르네상스센터에서 들었던 이야기처럼, 사람도 좋지만 그중에서도 스스로를 시민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냥 ‘익명’의 도시인으로 살아가는 것과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다르잖아요. 조금 더 책임이 따르기도 하고. 또 마지막에 달팽이마을 김은자 대표님께서는 행정을 버리라고 그런식으로 말씀하셨어요. 기대하지말고, 기대지말라고. 자발적으로 우리끼리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너무 이분법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보다, ‘공무원’ ‘행정’ 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는 추상적인 말 속의 사람을 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왜, 예전에 행정이 주민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그냥 불특정 다수의 커다란 주민덩어리로 대할 때도 부작용이 많았잖아요? 그것처럼 시민들이, 주민들이 행정을 행정으로 대하지 않고 그 안의 사람 한명 한명을 봐주어야 관-민의 소통이 더욱 원활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로를 ‘누구누구씨’라고 부를 수 있는거죠. ^0^ 오늘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마을투어를 준비해주신 마을지원센터에도 감사하고, 또 주민분들과 이렇게 함께 돌아보고 공감대를 만들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다음 마을투어는 어디가 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





 정소민 마을활동가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 이야기 95.




 친구란 무엇일까?

 슬플 때 함께 있어주는 사람, 

서로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 

맛있는 게 있을 때 나눠 먹는 사람.


 친구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선생님 질문에 아이들은 대답을 잘 하지만 미나는 대답을 할 수 가 없다. 전학생인 미나는 아직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친구를 사귀기는 커녕 반 친구들로부터 지독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싸가지가 없다는 둥, 자신들을 무시한다는 둥 오해까지 받고 있다. 

미나는 그저 친구를 사귀는 게 두려울 뿐인데… 또 다시 친구와 헤어지는 게 싫고 울고 싶지 않을 뿐인데 그런 마음을 들어 줄 이도 없다. 엄마는 너무 바쁘고 아빠는 또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 미나에게 생긴 할머니 친구. 할머니는 친구가 보배인데 왜 친구를 사귀지 않냐고 묻는다.

  "짱가 일당이 저를 괴롭히면 저는 그 애들을 막 밟아 주고 싶을 만큼 미워요. 우리 반 애들은 다 그래요. 왕따 될까 봐 다들 나를 모른 척한다고요. 그딴 친구를 사귈 바에야 혼자 되는 게 나아요. 전학 가면 그만인걸요?"

  " 외로워진다. 외로워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어. 몸이 아파 생기는 병보다 외로움 때문에 생기는 병이 더 깊고 오래 가는 법이다. 너도 이 할미만큼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될 게다." (p.160)

사람은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할머니도 친구가 없기는 미나와 마찬가지다. 여름에도 겨울 모자를 쓰고 다니는 할머니에게 모자 선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할머니를 찾아간 날, 미나는 아파 누워계신 할머니의 벽장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한다. 할머니가 스무살 무렵, 항상 외톨이인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어준 전도사님이 보내준 편지와 그 전도사에게 미처 전달하지 못한 할머니의 편지다.


진수 선생님게

나 찻지 마새요

나는 보고 십지 안아요.

나보고 비뜰어젓다고 말하며는

전도사님도 그런 줄로 아새요.

편지 쓰지 마새요.

집에 찻아오지두 마새요. 다 미워요.

나는 태어날 떼부터 외토리였어요.


너무나 외롭고 슬픈 마음이 느껴지는 편지에 미나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전도사님이 할머니께 말한 것처럼 아무도 태어날 때부터 혼자인 사람은 없다고 할머니를 위로한다. 그렇게 미나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끝내 누구에게 마음을 건네지도 받지도 못했던 할머니에게 같이 남은 생을 보내자고 하는 할아버지를 따라 가시라고 한다. 더 이상 외롭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할머니와 친구와 되면서 미나를 왕따 시키던 짱가와 반 아이들과도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다.

미나를 놀리고 왕따시킨 아이들을 때리는 선생님께 친구들 잘못이 아니라 친구사귀기가 두려워서, 헤어지는 게 두려워서 친구들을 무시한 자신이 잘못했다고 자신의 마음을 반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미나는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열두 살, 첫 생리를 하며 아파가면서 성장한다. 그리고 또 다른 헤어짐. 미나보다 더 고집스럽고 외롭게 살던 할머니가 마음을 열고 할아버지를 따라 떠나버렸다. 그렇지만 미나는 이제 너무 슬프고 아프지 않다. 할머니와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할머니가 행복해지는 길이니까.


열두 살 아이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고 그보다 큰 청소년이나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상처받기 싫어서, 헤어지는 게 두려워서 더 이상 사랑하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사랑이 본능이라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상처 받아도 또 누군가에게 덤벼들고 사랑할 사람이 나이기에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잘 몰랐는데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지만 우정을, 사랑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애써야 하는 지도 생각하게 된다. 

배신당하고 상처받는 게 싫어서 친구를 사귀기 싫다는 사람에게 누군가는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춤을 추면서 취미를 가져보라고 충고한다. 그러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게 될 거라고. 하지만 작가는 친구를 사귀기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전도사님의 편지를 빌어  좀 다르게 말한다. 


민들레는 꽃씨가 되어 날아갈 때,

자기를 뿌려 준 민들레에게 돌아가지 않아.

자기 스스로 한 송이 민들레가 되는 거야.

나는 네가 그렇게 용감해졌으면 좋겠어. (p.175)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용감해지기. 가까워지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용기있는 모두가 되길 …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 99


민주노총 4.24 총파업에 부쳐


"여러분의 이번 파업은 법률상 위법이다. 그러나 사람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 있고 돈 많은 몇 사람만을 위한 법은 법이 아니다. 저 산동네 철거민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법이 위반됐다고 집을 뜯는다. 노점 상인들은 도로교통법에 걸어 목판을 차버린다. 이렇게 밥을 못 먹게 하는 법은 법이 아니다"

현대중공업 노조 집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연설이다. 위법의 파업도 그것이 생존권을 지키는 것이라면 당연하게 정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불법도 아닌 합법적 절차를 다 밟은 파업을 해도 처벌을 받는다. 지난 번 철도파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노총이 4.24일 총파업을 결의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자 죽이기 정책인 노동시장 구조 개악<비정규직종합대책>과 공공기관 가짜 정상화 대책 분쇄를 위해, 공적연금강화 및 공무원연금개악 중단, 최저임금 1만원 쟁취,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및 노조법 2조 개정을 통한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하자는 파업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 중의 하나가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란 하위 법률로 제한할 수 없는 권리라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은 헌법은 그냥 만들어 논 공자님 말씀이고 자기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자의적으로 법을 남용하는 사회다. 비근한 예로 집회 및 시위에 대한 권리는 헌법 상 신고제인데 아주 철저하게 허가제로 운영하고도 모자라 집회 및 시위에 대해 소음측정까지 하면서 방해한다. 파업이 불편하여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우선 자기가 정말 민주공화국의 시민인지 자문해야 한다. 파업은 불편하라고 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말에 귀 닫고 입 다문 사람들에게 소통과 해결을 요구하는 총파업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서 하는 것이다.

 

보통 파업은 노동자들의 학교라 한다. 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이 순종의 노동이 아니라 인간 존중의 노동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한 부속물이 아니라 나를 바꿔 일터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용감한 주체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박정희가 경제개발계획은 잘해 경제가 발전했다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정말로 우리가 자가용을 가지고 자기 집을 꿈꾸게 된 것은 1987년 6월의 민주혁명과 그 뒤를 이은 노동자들의 대 투쟁으로 사회적 부를 조금이라도 분배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은 보통선거를 만들었다. 우리들이 지금 민주주의라고 느끼는 대부분은 자본주의의 발전의 결과가 아니다. 반대로 사회적인 약자들이 당시 자기들을 옥죈 부정하고 불의한 법률에 맞서 불법한 투쟁을 통해 목숨을 걸고 쟁취한 결과물이다. 항상 말하지만 질서에 준법만 지켰다간 아직도 인류는 노예제에 살고 있을 것이다.

 

역사는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으로 인정했다. 파업의 불편함은 종기를 짜는 엄마의 단호한 손길처럼 당장 아프지만 병을 낫게 하는 치료 통이요 아이를 낳는 산통이다. 아픔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용기를 낼 때 민주주의가 지켜지고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된다. 파업을 어려워하고, 파업을 비난하고 파업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산통을 두려워 아이를 낳지 않는 산모요,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면하는 비겁함이요 헌법을 부정하는 짓이다.

 

노동자들의 파업 속에는“노예가 주인이 되기 위한 요구, 노동자 민중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노동하고 살라가려는 요구”가 있다. 노예가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이것이 싫은 이들이 있다. 노예주다. 현대판 노예주는 자본가들이다. 그들은 낮은 임금에 쉬운 해고 그리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기계형 노동자를 원한다. 정말 그들은 노예노동을 원하고 있다. 아니면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등이 용인될 수 없다. 아니면 아예 정리해고를 넘어 일상적으로 실적이 적으면 해고를 한다는 식의 사고를 할 수 없다.

 

노동계급과 자본가 계급이 싸우면 노동계급이 이기는 것이 역사의 진보적 방향이다. 최저임금만 보더라도 헌법 상 인간의 존엄성이 높이를 보여 주는 최저조건에 대한 규정이다. 그런데 항상 사용자는 그 인간 존엄의 최저기준을 낮추려고 한다. 사용자가 이겼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 깨졌다는 것이다. 자본의 승리는 인간 존엄성의 퇴행이다. 이 퇴행에 대한 최고의 방어가 노동자들의 총파업이다.

 

파업은 업무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파업을 이유로 업무방해 손해배상 청구하는 한국 현실은 인권의 기초는 물론 자기들이 정한 헌법을 부정하는 것인데 이놈의 나라는 헌법 유린을 서슴없이 해된다. 파업은 사용자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괴로운 만큼의 절반이라도 너희도 느껴 보라는 절규다. 노동자들을 존중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처지와 조건을 배려하지 않는 사장들에게 우리도 굶을 테니 너희도 이윤을 포기해라는 강력한 요구다.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은 한계가 없어야 한다. 자기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우리 사회 약자들의 기본권의 강화, 사회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 다 파업이라는 행위에 포괄되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공익, 국민 불편, 산업 손실을 앞세우는 논리에 익숙하지만 사람을 위해 가장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노동이 바로 파업이다. 세상을 바꾸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총파업은 기생충이 숙주를 멸시하는 세상에 기생이 생산의 주인이 아니라 숙주가 세상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행위다. 파업은 세상을 움직이는 진짜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래서 파업하는 노동자가 아름답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역전된 민주와 인권에 대한 본격적인 저항이다. 이 시대 민주주의 선봉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사람다운 사람으로 나서는 길에 마음 떨림은 설렘이다. 행복해 지기 위한 최대의 노동, 용기, 실천이 총파업이요, 다음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으로 민주노총 4.24 총파업이 성사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세월호 참사를 애타하는 마음으로 4천만 민중이 하나같이 일어설 때다.



문재훈

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 100

세월호 1주기를 보내며 

모두가 경악했다. 사고가 났지만 모두 구조했다는 그 보도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모두가 그 거짓과 은폐와 책임회피에 경악을 했다. 모두가 분노 했다. 그 분노는 우리나라 우리 사회가 4.16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1년,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기는커녕 세월호의 진실마저 실종될 참혹함만 더하고 있다. 정부는 차벽을 쳐 거짓을 보호하고 특위 시행령을 통해 진실을 은폐하려하고 있다. 시흥대로에 네모진 노란 펼침 막들이 걸려 있다. 단체와 사람들의 이름 위로 수많은 절규들이 박혀있다. 

간절함이 배고픈 봄 날 아지랑이처럼 흔들린다. 정말 대한민국은 진실은 존재할 수 없는 몰염치 파렴치의 세상이 되고 말았는가? 유가족에게 위로는 못할망정 목을 조이고 영장을 청구하며 폭력을 가하는 정권. 그들에게 울부짖는 한마디가 절절하다. “이게 정부냐? 이게 국가냐?”  


세월호의 본질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든 사고다. 선장부터 모두가 비정규직인 체제가 만든 사고다. 안전도 보호도 없이 오직 돈만 벌면 된다고 낡은 배를 지 맘대로 누더기를 만들 수 있는 야만이 만든 사고다. 

죽은 건지 산건지 죽임을 당한 건지 모르는 유병언이 상징하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만든 사고다. 탐욕으로 반칙으로 특권체제를 누리는 특권 마피아들이 낸 사고다. 사고는 의도치 않은 곳에서 발생한다. 사고를 원하는 사람이 없는 데서 발생한다. 

그래도 사고에는 원인이 있다. 교통사고가 나도 그것이 졸음 때문인지 음주 때문이지 아니면 상대방 차량의 가해 때문인지 가린다. 세월호가 왜 거기에서 180도를 돌아 넘어졌는지, 그 밑을 지나간 검은 물체는 무엇인지 사고 원인에 대한 무수한 의문만 있다. 그런데 현 정권은 사고 원인을 가려내지 않고 정비가 불량했다고 운전자도 아닌 차주를 처벌하고 사고에 대한 책임을 다 물었다고 시치미를 뗀다. 이것이 부정 정권 박근혜정권의 입장이다.

그래서 세월호의 본질은 확장됐다. 사고에 대한 정부의 무능 또는 무책임이 304명을 죽이는 사(건)태가 되었다. 사고는 날 수 있다. 벌어진 사고를 가장 피해를 적게 가장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자 존재이유다. 하지만 모두 다 살릴 수 있는 구제를 무슨 일인지 정부는 거부했다. 그래서 304명의 인명은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정부의 무능이나 무책임이 죽여 버린 학살이다. 사건(태)는 누가 의도해서 저질러진 것이다. 그럼으로 세월호의 본질은 탐욕 한 자본들과 결탁한 무능 부정한 권력의 방관에 의해 저질러진 사태다. 사고가 난 원인과 그 책임을 넘어 사고가 사태가 된 참혹한 과정의 진실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하는 이유다. 


지난 1년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인가? 현재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세월호가 보여 준 위험한 세상을 바꿀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이다. 세월호를 통해 확인된 안전사회의 염원에도 사용기간이 지난 원전을 연장 가동한다는 결정을 서슴없이 밀어 붙이는 정권, 복지는 늘리고 연금은 키우는 것이 민주복지국가의 의무인데 복지는 파괴하고 연금은 깨는 것에만 혈안이 된 정권을 통해 우리는 세월호가 되버린 괴물을 만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재벌이 금고에 쌓인 사내유보금이 504조 원을 넘어섰다. 1년 새 37조 6천억이 늘었다. 


삼성(196조7천100억 원) 

현대차(102조1천500억 원) 

SK(53조500억 원) 

포스코(45조3천억 원)

 LG(42조3천200억 원)

롯데(27조9천400억 원) 

현대중공업(15조6천200억 원)

GS(10조3천200억 원)

한화(8조3천500억 원)

한진(2조8천억 원) 


2013년도에 자본가들이 연봉과 주식배당금으로 받은 액수를 보자. 


죽음 병에 누워만 있어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079억 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635억 원, 

최태원 SK그룹 회장 587억 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253억 2천만 원,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120억 원, 

구본무 LG그룹 회장 236억 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199억1천만 원, 

이재현 CJ그룹 회장 165억8천만 원, 

홍라희 리움미술관 장 154억9천만원,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154억4천만원,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149억4천만 원,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68억2천만 원, 

신종균 IM(IT·모바일)부문 대표이사 는 62억1000만 원을 챙겼다. 


불안한 세상은 재벌들의 엄청난 돈벌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가난은 저들의 부다. 저들의 부는 우리의 피땀이다. 그러니 안전한 세상을 원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염원은 불안을 통해 돈을 버는 저들이 그대로 있는 한 언제나 그저 염원으로 끝날 것이다. 시간이 주는 망각과 팍팍한 일상에 진실이 묻히기만 기다리는 돈과 권력의 힘 앞에 우리의 바람은 무력하게 스러질 뿐이다. 


세월 호 304명의 죽음이 그 죽음의 진실에 온 생을 부딪치고 있는 유가족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유가족 대표의 요구는 이랬다. “올바른 사회, 안전한 사회,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 때까지 함께하자.” 인간이 존엄이 지켜지는 안전한 사회로 세상을 바꾸자고 한다. 그러기 위해 겉이 아니라 속을, 깃털이 아니라 몸통을, 껍질이 아니라 뿌리를 바꾸는 생각과 실천이 필요하다. 돈과 권력의 중추 정권과 재벌의 더러운 유착체계가 사회의 골간이 되고 특권이 되어 일하는 사람들이 가축과 같은 사축이 되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또한 세월호는 이제 그만 잊자고 하면서 천안함은 영원히 기억하자는 시대의 정신병, 일제의 만행은 사과하라면서 베트남민의 비극은 당연하다는 시대의 정신적 괴물들과 싸울 수 있는 역사의식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를 기망하는 몽매와 돈과 권력의 부정부패한 특권만 보는 현 정권에 대한 전체 민중의 정면도전, 전면돌파가 필요하다. 영국 속담에 빵을 얻으려면 빵 이상을 요구하라 했다. 빵만 요구하면 빵도 못 얻지만 빵 이상을 요구하면 적어도 빵을 얻는 법이다. 담대하고 거침없이 눈앞의 불법 정권의 차벽을 치워나가자. 국민을 적대시하는 불법 폭력 불통 꼴통 정권을 치워나가자. .


문재훈

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우리 주치의, 한번 만나볼래요?

기관탐방-서울근로자건강센터

가산디지털단지 3단지에 서울근로자건강센터가 있다. 2013년 4월 29일 개관한 이래 하루 2000여명의 노동자들의 건강을 담당해왔다.  근로자건강센터는 체계적인 건강관리가 어려운 50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에게 별도 비용부담 없이 건강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전국 국가산업단지 10여 곳에 설치되어 있고 서울은 산업단지가 있는 금천구에만 설치되어 있다.

개관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백헌기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구자현 민주노총 남부지구협의장 등의 내외빈들이 참석해 ‘영세한 사업장들의 노동자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게 됐다’고 기대감을 모았다. 15만 명의 넘는 노동자들이 있고, 대부분이 50인 미만의 사업장이 있는 디지털단지에서 서울근로자건강센터가 자리 잡은 어떤 역할을 해왔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지난 2014년 12월 센터를 찾아 장성미 센터장과 강순환 부센터장을 만났다.

센터의 가장 큰 슬로건은 ‘행복한 주치의 사업’이다. 과자 하나를 사는데도 단골로 가는데 병원이야 말해서 뭘하랴.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위험한 일도 있고 건강에 위해를 한 일도 있는데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관리하고 예방하는 것이 센터의 본 업무다.

장성미 센터장은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하는 혈압, 혈당의 변화, 혈종지질의 변화, 격무에 다른 스트레스에 의한 불면증에 대해서 직접 사업장에 나가 작업환경을 평가해주고 상담과 검사, 교육을 한다. 그리고 다시 2달 후에 다시 변화가 있는지 찾아간다. 사람의 본성이 바뀌는 것이 어렵듯이 일하면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강순환 부센터장은 “노동자가 건강해야 업무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진다. 이제는 사람이 재산인 시대다. 그 부분을 사업주도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기계가 있어도 사람이 없으면 일을 못한다. 60년대는 기계가 재산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사람이 재산이고 가치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인식의 변화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인식의 변화나 행동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변화되지 않는다. 센터의 선생님들과 사업주들 간의 좋은 관계가 형성되고 그것을 통해 사업주들에게 회사를 운영하는데 무엇이 필요한가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근로자건강센터는 외국인, 아르바이트, 자영업자, 재직자 구분없이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사진 서울근로자건강센터 >

디지털단지의 노동환경 특징

센터는 디지털단지만이 아닌 서울시 전체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다. 부르는 곳이 있다면 금천을 비롯해 강서, 강북, 성동 어디든 달려간다. 

디지털 단지의 특징에 대해 강 부센터장은 “인식의 변화가 만들어지려면 최소 3년 이상정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지속적으로 접근할 만한 사업장이 많지는 안다. 정보통신, 패션 쪽의 업체가 많아 사업장의 규모도 작고 빨리 바뀐다. 근로자들이 젊고 이직률이 높아 안정성이 없다보니 인식을 변화시키고 변화를 일으킬 접점이 만들어지지 못해 아쉽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공단의 특성에 맞춘 사업은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다. 젊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비만이나 체형에 관심이 많은 점을 이용해 비만탈출, 거북목, 허리디스크 등 몸건강 마음건강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또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을 달래는 직무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상담과 관리를 하고 있다.


산업보건 5개 분야 모인 유일 무일한 곳.

센터는 산재 및 작업환경 5개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유일한 곳이다. 직업환경전문의, 산업전문가, 상담심리전문가, 운동치료사, 산업위생사 등 산업보건의 전문인력이 다 모여 있어 토탈케어가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산업재해에 대해서 일반 재활의에서는 작업환경에 대한 이해를 못하게 된다.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공장이라면 문제가 되는 동작이 무엇인지, 어떤 근육이 무리가 되는지 평가 되어야 하고, 어떤 수술을 받은 후 어떤 근육을 강화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복귀를 위한 심리치료나 카운슬링이 병행되어야 한다.

장 센터장은 “산재를 당하고 복귀하는데는 인력과 시간의 품이 많이 든다. 이런 것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이 센터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센터는 병원이 아닌 점을 강조했다.  강 부센터장은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아프면 병원치료를 해야 한다. 센터에서는 왜 그런 문제가 생기고 어떻게 하면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지 알려주고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 부센터장은 자활센터를 방문할 때 경험을 말하며 “그 분들은 안 아픈 곳이 없다. 무릎, 다리, 어깨 등. 대부분 노년으로 청소용역을 하면서 4~5시에 끝난다. 앞으로 취업률은 줄어들게 되면 이분들은 익숙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에 쫒기면서 일하게 되면, 불안해지면서 건강에 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분들이 많이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 센터장도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한다. 아르바이트, 외국인, 자영업자를 가리지 않는다. 심리상담도 기록이 남지 않으니 편하게 상담을 받으면 된다.”고 바람을 전해다.

센터는 올해 ‘주치의 사업’에 큰 힘을 쏟을 것이라고 한다. ‘주치의 사업’이란 간단한 협약을 통해 근로자 건강진단 사후관리 및 안전보건교육 등 직원건강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어디에서 근무하든지 상관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관리해줄 수 있는 서울근로자건강세터를 금천주민이나 금천구이 사업장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해보길 권해본다. (상담 02-6947-5700)



<집단 스트레칭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근로자건강센터 >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꿈씨에서 함께~ 꿈꿔양~[꿈씨 어린이 작은도서관 개관3주년]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꿈씨 어린이 작은도서관은 독산4동의 실크로드라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 마을이 노다지처럼 느껴지고 마을 안 깊숙이 간직되어있던 귀한 인적자원들이 꿈씨로 모여드는 것을 실감하며 갖게 된 생각이다.


2월7일 꿈씨 어린이 작은도서관 개관 3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분주한 연말연시에 거창한 행사를 준비하기엔 무리가 있어 지난해를 되돌아보며 작은도서관을 찾는 친구들과 무엇을 나눌까 고민을 했다. 꿈씨엔 훌륭한 인적자원이 너무도 많다.

동화책으로 힐링 받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꿈씨맘, 우쿨렐레 연주지도 재능 나눔을 하는 준영맘, 24개월 미만 아가들에게 영어동화 들려주는 몽골인 하리온씨, 직장인으로 주말에만 찾는 일본인 가네꼬상.

그리고 중학생임에도 중국어 강좌를 진행하는 중국인 송운봉군,  자연 놀이 속 영어환경 조성 및 자기주도 학습 품앗이 이끄미 고순남씨, 다문화 가정까지 품은 육아공동체 ‘자발이네’, 마을지기로 지난해 큰 역할을 해준 예정이 엄마 고경미씨, 호암복지관에서 동화구연, 베이비 마사지, 마술 등을 배운 실버 강사 김상례 할머니.

또 청소년 환경동아리‘청기누설’은 과자따먹기, 땅따먹기, 림보, 공기놀이등 옛놀이를 맡았다.이분들 모두가 즐겁게 참여해 무대를 꾸며주었고 꿈씨 친구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 또한 우연히 인연이 닿은 ‘한강수 전통문화보존회’ 한국무용 예술인들은 더욱 특별하다. 독산4동 주민센터 5층 강당을 이용하는 한국무용 예술인들은 2층에 작은도서관이 있는줄도 몰랐다고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사랑 보따리’ 동화구연 동아리에서 개관행사를 이틀 앞두고 꿈씨를 처음 방문해 책공연을 해주신 적이 있다.  그 중에 한국무용을 하시는 분을 발견하고 바로 섭외를 했는데 흔쾌히 승낙해주시어 개관행사를 더욱 빛내준 아름다운 우리 춤사위를 선보일 수 있었다. 

“도서관 3주년 행사하십니까? 내가 뭐 도울게 있으면 말씀하시라요~”  참으로 반가운 문자였다.  건강한 농부 협동조합 김선정 대표가 보낸것이었다.

“마을지원센터에서 빔 프로젝트와 스크린, 마이크…. 가져와야하는데…” 바로 도움을 청했다. 

지난해 일년살이 영상 ‘2014 꿈씨스토리’는 금천학부모모임 윤정선 사무국장의 큰 딸 김시온양(금천고 2학년)이 밤새워 작업을 해서 완성이 되었다.

이렇듯 특별한 행사라서가 아니라 꿈씨의 일상에도 많은 마을사람들의 손길이 닿아있다.

아마 앞으로도 함께이지 않으면 작은도서관의 성장은 제자리 걸음일지도 모르겠다. 책이 있는 놀이터... 마음을 나누는 나눔터... 꿈을 가꿔가는 키움터...

“여러분 올해도 꿈씨와 함께~ 꿈꿔양~^^”


박현주 

꿈씨어린이작은도서관 관장

루카스의 긴 여행 

빌리 페르만  지음   느림보 출판사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세상에는 아이러니한 게 참 많이 있다. 그 중에서 사람이 각자 타고난 재능도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필시 누군가가 있어서 각자 인간에게 주어진 재능을 똑같이 주지 않고 각자 다르게 주도록하는 것 같다.  지금의 세상을 그만치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것이 그렇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물론 유지보다는 발전하는 쪽으로 모든 열정을 쏟지만 말이다. 

"루카스의 긴 여행"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에 미치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분명 남들에 비해서 나만의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을 텐데 말이다. 몇 개가 꼽아진다. 그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아! 바로 이게 누군가로부터 내가 가지고 태어나면서 이 사회에 기여하도록 부여받은 것이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좀 더 나은 쪽으로 만드는 것에 성공의 여부를 둔 사람의 글도 생각난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행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항상 행하는 것에 주춤하는 것이 나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부모님과 자식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이 책에서도 자식은 물감냄새를 좋아하고 목수인 아버지는 나무냄새를 좋아하는데부터 비극이 내재되어있다. 각자 자신들이 좋아하는 냄새를 찾는 것이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찰리와 그의 아버지뿐만이 아니고 우리 모두 이 본능의 냄새에 목말라하고 있다. 이미 찾은 사람은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행복해하고 있지만 그 반대인 사람은 시간만 낭비하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찾은 사람보다 찾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찾아가는 길에 흘린 수많은 땀방울의 흔적만 있을 뿐이다. 

그 흔적이 좀 더 발전의 길로 나아가도록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이 본능의 냄새를 찾는 것이 행복의 길로 가는 것일텐데 자의적으로 외면하기도 하도 타의적으로 외면하는데서 문제는 발생된다고 본다.

  흔하게 쓰는 "소통"이라는 말도 우리가 청소년인 시대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소통이 아니고 명령과 복종, 이런 것에 더 익숙했다. 그런 몰상식한 시대를 잘 타고는 왔지만 결국 만족스럽지 않아서 자꾸 뒤를 돌아 보게 된다. '만약에, 이랬으면' 가정법을 쓰면서 생각해본다. 아쉬운 것이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가정법을 쓰지 않도록 하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루카스의 긴 여행1,2" 에서도 아버지가 아들인 찰리에게 좋아하는 물감냄새를 맡도록하면서 살게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되었다면  많은 시행착오 없이 자기가 타고난 화가의 재능을 꽃피워 역사에 남는 화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한 개인의 성공이 아니고 한 세기의 성공으로 받아들인다면 부모가 재능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큰 죄에 속한다는 생각이 든다. 

루케는 지혜롭다 . 아버지인 찰리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정직하게 대답할 줄 안다. 찬찬하게 살피면서 간다. 성급하게 서두르지도 않고 흥분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머무적거리지도 않는다. 적재적소에 알맞는 행동과 완급을 조절할 줄 안다. 아버지인 찰리의 불행의 댓가로 아들인 루케한테는 모든 면에서 관대하게 풀려나가도록 도와주는 듯하다. 아버지의 희생이 밑거름이 된 셈이다. 

부모가 자식을 볼 때 한 개인으로 내 안의 자식으로만 보지 않는다면 자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듯 싶다. 세상을 이어가기 위해서 내가 태어나도록 했을 뿐 그 나머지는 각자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가도록 그렇게 생태적으로 가지고 이 세상으로 불림해 왔다고 말이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웹진 [플랫슈즈]는 금천구에 살고 있는 몇몇 엄마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아이를 안고 지나가는 엄마들이 어김없이 신고있는 굽낮은 플랫슈즈처럼 내밀하고 섬세한 ‘여성’, 그리고 ‘엄마’의 시각으로 하이힐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갖춘 플랫슈즈와 같은 따뜻한 글들을 만날 수 있는 웹진입니다. http://flatshoes.or.kr



  웹진창간을 앞두고 오래 전부터 계획한 가족유럽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한국에 있었으면 남편들의 출산이야기를 썼을 테지만 이왕 유럽에 나오게 되었으니 특파원처럼 이곳 독일의 출산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독일에서 아는 동생집에 머물렀는데 그 후배가 다니는 뮌스터 복음교회에 현지에서 아이를 낳은 두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서영지씨는 98년에 유럽에 와서 이탈리아에서 지내다 2006년에 독일에 와서 2007년 3월에 아이를 낳았다. 지금은 가정주부로 지내고 있고 자기를 아주 잘 노는 사람이라고 소개해 주셨다. 김연숙씨는 학생이고 2008년에 독일로 와서 2010년에 아이를 낳았다. 두 분 모두 아이가 한명씩이고 모두 독일 뮌스터(Münster)에서 출산하였다.

# 인터뷰내용은 두분의 이야기를 따로 쓰지 않고 함께 편집하여 적어놓습니다. 필요한 경우에만 옆에 이름을 ( )로 넣었습니다.



Q. 독일의 산부인과는 어떤가요?

A. 독일의 산부인과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한국에서의 출산경험은 없지만 가족 중에 출산하는 걸 본 적이 있으니까요. 독일은 일단 임신과정과 출산까지 한 푼도 들지 않아요. 산부인과는 초기와 말기에는 한 달에 한 번, 중간에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가게 되죠.

     산부인과에 가면 의사가 직접 산모를 데리러 와요. 산부인과뿐 아니라 대부분의 병원에서 의사가 사무실에서 직접 나와서 이름을 묻고 방으로 가죠. 그리고 초음파를 하는데 앞에 막을 치지 않아서 의사가 뭘 하는지, 표정이 어떤지 다 볼 수 있죠. 한국에서 많이 하는 3D초음파나 장애검사는 의사가 권장하지 않는 편이예요. 노산이라면 모르죠. 어쨌든 만일 산모가 기본적인 진료 외에 추가로 검사하기를 원하면 따로 비용을 내야 해요. 

하지만 의사가 권해서 하는 경우  라면 의료보험으로 처리가 가능해요. 돈이 든다면 엽산을 구입해야 하는 정도죠.


Q. 임신을 했을 때 주위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A. 저(연숙)는 공부를 할 때 임신을 했는데 임신 8개월에 휴학할 때까지 주변 친구들이 제 임신사실을 몰랐어요. 물론 제가 이야기를 안 한 부분도 있지만 아주 친하지 않은 이상 큰 관심은 없어요. 독일 사람들끼리도 그렇고. 우리나라는  태몽 얘기도 많이 하는데 여기서는 그런건 없는 것 같아요. 산모에 대한 배려도 특별히 산모를 배려한다기 보다는 장애인이라던가 아이라던가 노인이라던가 사회적인 약자를 전체적으로 배려하다보니 산모도 자연스럽게 배려대상이 되죠. 



Q. 출산과정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출산과정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옷을 하나도 안 입고 출산하는 방으로 가는 거죠. 정말 아무것도 안 입어요. 출산하는 방에는 수중분만, 그네, 공 등 여러 가지 출산을 돕는 도구들이 있고 산모는 계속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하면서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자세를 찾죠. 

특히 독일에는 '헤바메(Hebamme)'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으로 말하자면 산파같은 거죠. 산파라고 해서 나이 든 분만 있는 것은 아니고 젊은 사람부터 나이드신 분들까지 있죠.    

(*사실 독일의 임신,출산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바로 이 ’헤바메‘였다. 헤바메는 독일, 스위스 등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출산을 돕는 역할을 하는 이들을 말한다. 독일은 50여개의 헤바메 교육시설이 있다. 헤바메는 임신기간과 출산, 출산 후까지 연결되어 전체적인 임신,출산과정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특히 출산과정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아닌 헤바메가 전체과정을 조율한다고 한다. 의사는 헤바메의 지시에 따라 의료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에서는 간호사나 의사가 산모를 압박하는 경우가 있는데 독일에서는 산모 스스로 자세를 찾도록 도와주고 그 과정에서 헤바메가 계속해서 산모를 격려해요. 누구도 산모에게 지시하지 않고 산모가 하는 자세를 지지해 주면서 진통하는 시간들 동안 함께 있어주죠. 저는 언니가 출산 때 찾아왔는데 언니도 생리통이 심해서 결국 옆 침대에 같이    누워있었거든요. 그런 것도 헤바메가 챙겨줬어요.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와 함께 있게 해 준 후에 바로 몸무게와 반응검사, 뇌성마비인지 다운증후군이 있는지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해서 문제가 있으면 곧바로 치료에 들어가죠. 그런 점은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2-3일 후에는  퇴원을 합니다. 

독일사람들은 퇴원하고 나면 바로 외출도 하고 출산 후에 바로 목욕도 하고 그래요. 그런 점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사실 한국사람들이 출산 후에 목욕을 안 한다고 같이 있는 사람들이 불쾌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죠. 어떤 분은 남편이 독일사람인데 한국인 부인에게 ‘너는 왜 이렇게 힘들어하냐, 안씻냐’고 한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Q. 미혼모나 낙태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A. 독일에서 결혼을 했냐 안 했냐의 여부는 어떻게 보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되기도 해요. 결혼을 하지 않고도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아요. 저희 아이 학교선생님이 아이도 있는데 어느날 청첩장을 보내 준 것을 보고 놀랐죠. 한국에서는 학교선생님이라면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더 조심스러우니까. 유치원에서 같은 반 친구 부모도 나중에 우리 결혼한다고 광고를 하시더라구요. 


Q. 그러면 결혼을 한 부부와 안한 부부에 대한 지원이 좀 다른가요?

A. 네, 다르죠. 결혼을 하지 않은 그러니까 서류상으로는 미혼모인 사람들에게 훨씬 많은 혜택이 돌아가죠(사실 이 부분이 인터뷰 중 가장 놀란 부분이다. 나는 당연히 결혼한 부부에게 많은 혜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혼모,  유학생부부 등 사회적인 약자에게는 국가뿐 아니라 여러단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저희도 종교단체쪽에서 도움을 받았는데 출산 때까지 돈으로 하면 거의 200만원 가까이 받은 것 같아요. 낙태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10주 안에는 결정할 수 있어요. 그 안에 낙태는 합법이죠. 

저희도 처음 산부인과를  갔을 때 의사가 계획임신인지 물어보더라구요 그래서 계획한게 아니라고 했더니 낙태에 대해 물어보더라구요. 물론 아이를 초음파로 보여주고 나서 물어보긴 하죠. 그리고 대부분 아이 출산도 그렇고 키울 때도 돈이 따로 드는 것이 

없으니 낙태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Q. 마지막으로 서영지씨 남편이 지나가시기에 남편의 출산경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출산과정에서 기억나는게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A. 인상깊었던 것은 의사와 간호사가 아니라 헤바메라는 산파였어요. 의사와 간호사가 기계적(?)으로 접근한다면 헤바메는 인격적인 부분을 담당하죠. 출산할 때까지 10-15시간을 산모와 함께 있어주죠. 대단한 것 같아요. 독일의 분만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독일에 오기전에 들었었는데 그 시스템이란게 시설이 아니라 바로 헤바메와 같이 분만과정을 잘 치루도록 도와주는 것인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며.

여행 중에 놀란 것이 있다. 15년 전 일본에 갔을 때 그곳이 한국보다 발전된 사회라고 느꼈는데 이번 유럽여행에서는 이제 거의 차이가 없다고 느껴질 만큼 한국이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는 아직 차이가 많이 느껴졌다. 산모와 남편이 기억할만큼 출산의 과정에서 격려와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 인상 깊었고 인터뷰 중에 한 분이 헤바메가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었을 때 통증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나는 2008년에 첫째아이를 출산하였는데 기억나는 것은 간호사의 냉랭한 목소리와 출산 후 아내 배 전체에 있던 멍자국이다. 아이가 안 나온다고 배를 주먹으로 밀어서 생긴 자국이다. 비슷한 시설을 가진 두 나라의 출산과정에서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하현용  //필자는 독산2동에 살다 지난 12월 제주도 이민을 가 이번 달 초 두아이의 아빠가 됐다.  이  글은 플랫슈즈에 11월에  기고한 글이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꿈씨 어린이 작은도서관은 독산4동의 실크로드라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 마을이 노다지처럼 느껴지고 마을 안 깊숙이 간직되어있던 귀한 인적자원들이 꿈씨로 모여드는 것을 실감하며 갖게 된 생각이다.

2월7일 꿈씨 어린이 작은도서관 개관 3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분주한 연말연시에 거창한 행사를 준비하기엔 무리가 있어 지난해를 되돌아보며 작은도서관을 찾는 친구들과 무엇을 나눌까 고민을 했다.

꿈씨엔 훌륭한 인적자원이 너무도 많다.

동화책으로 힐링 받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꿈씨맘, 우쿨렐레 연주지도 재능 나눔을 하는 준영맘, 24개월 미만 아가들에게 영어동화 들려주는 몽골인 하리온씨, 직장인으로 주말에만 찾는 일본인 가네꼬상.

그리고 중학생임에도 중국어 강좌를 진행하는 중국인 송운봉군,  자연 놀이 속 영어환경 조성 및 자기주도 학습 품앗이 이끄미 고순남씨, 다문화 가정까지 품은 육아공동체 ‘자발이네’, 마을지기로 지난해 큰 역할을 해준 예정이 엄마 고경미씨, 호암복지관에서 동화구연, 베이비 마사지, 마술 등을 배운 실버 강사 김상례 할머니.또 청소년 환경동아리‘청기누설’은 과자따먹기, 땅따먹기, 림보, 공기놀이등 옛놀이를 맡았다.

이분들 모두가 즐겁게 참여해 무대를 꾸며주었고 꿈씨 친구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 또한 우연히 인연이 닿은 ‘한강수 전통문화보존회’ 한국무용 예술인들은 더욱 특별하다. 독산4동 주민센터 5층 강당을 이용하는 한국무용 예술인들은 2층에 작은도서관이 있는줄도 몰랐다고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사랑 보따리’ 동화구연 동아리에서 개관행사를 이틀 앞두고 꿈씨를 처음 방문해 책공연을 해주신 적이 있다.  그 중에 한국무용을 하시는 분을 발견하고 바로 섭외를 했는데 흔쾌히 승낙해주시어 개관행사를 더욱 빛내준 아름다운 우리 춤사위를 선보일 수 있었다. 

“도서관 3주년 행사하십니까? 내가 뭐 도울게 있으면 말씀하시라요~”  참으로 반가운 문자였다.  건강한 농부 협동조합 김선정 대표가 보낸것이었다. “마을지원센터에서 빔 프로젝트와 스크린, 마이크…. 가져와야하는데…” 바로 도움을 청했다. 지난해 일년살이 영상 ‘2014 꿈씨스토리’는 금천학부모모임 윤정선 사무국장의 큰 딸 김시온양(금천고 2학년)이 밤새워 작업을 해서 완성이 되었다. 이렇듯 특별한 행사라서가 아니라 꿈씨의 일상에도 많은 마을사람들의 손길이 닿아있다. 아마 앞으로도 함께이지 않으면 작은도서관의 성장은 제자리 걸음일지도 모르겠다. 책이 있는 놀이터... 마음을 나누는 나눔터... 꿈을 가꿔가는 키움터...“여러분 올해도 꿈씨와 함께~ 꿈꿔양~^^”


박현주 

꿈씨어린이작은도서관 관장

시흥동 그림책을 만들다

은행나무 어린이 도서관, 11명의 신인 동네 작가와 함께







은행나무 어린이 도서관이 지난 1월13일 ‘시흥동 그림책 프로젝트’ 오픈식을 가졌다. 

‘시흥동 그림책 프로젝트’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에 다니는 초등학생 ,청소년, 어른 11명이 지겁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으로 시흥동의 아이들과 엄마들이 동네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6월3일 첫 모임을 시작으로 11월까지 매주 화요일 모여 진행했으며  한 달 동안의 인터뷰 취재와 두 달 동안의 기획과 스케치 그리고 석달 동안으 그림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프로젝트로 통해 신인작가가 된 이는 이경선,장정민,조혜진, 박희진,유래은,추진우,추소은,김강희,강권수,권예인,이윤주 씨로  13일 오픈식을 갖고 은행나무 어린이 도서관에서 1차 전시를가졌고, 이어1월20일~24일 시흥5동금천마을에술창작소어울샘에서,3차 전시는1월27일~2월1일까지금천구립시흥도서관에서 진행했다.


이성호 기자



19세기 부유한 집에 태어나 살았던 14세 소녀, 마리아가 쓴 일기 형식의 책이다.

이 책은 30분정도 할애하면 읽어낼 수 있는 짧은 책이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한참동안 여운을 남기는데다가 무언가 답답한 느낌이 들게 한다. 그것은 세기가 달라진 지금 시대에도 형태만 다를 뿐 인권유린을 행하는 사회적 구조가 같은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권리를 생각하게 하는 책!  첫 장을 펼치면 ‘나 라서 행복해! 난 너희들과 다르게 태어났어. 난 달라. 그래서 나는 행복해!’ 라는 문장이 나온다. 아무생각 없이 읽고 나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태 때문에 나라가 떠들썩한 사건이 오버랩이 된다. 처음부터 부유한 백인집안에 태어났기에 가능했던 마리아의 삶과 조금은 닮아있다.

14살의 마리아는 생일선물로 어린노예와 그 아이에게 사용할 채찍을 선물로 받는다.

순수했던 마리아는 차츰 노예 사용법에 대해 터득해 가고, 노예는 그냥 사고팔 수 있는 소유물인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간다.

 예쁜 여자노예를 사들여 성노예로 삼는 아빠, 속이 상하지만 묵인한 채 애꿎은 여자노예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는 엄마와 그 노예를 아무 미련 없이 내다 팔아버리는 아빠, 노예시장에 처음가본 마리아는 줄줄이 묶여있는 노예를 보고도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다. 그러면서 마리아의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고, 마리아는 오직 자신의 가슴이 언제 커질지 루카스랑 어떻게 하면 결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뿐이다.

  자기가 속해있는 집단속에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어지는 세습적 대물림이다. 자신에게 보여 지는 것으로만 세계를 보는 모순을 끝까지 갖고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올바른 시각을 갖기 위한 영혼의 흔들림이나 반항은 또 다른 몰락이 전제되어지기 때문에  꿈도 꾸지 않는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만들어진 인물이지만 사건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이라니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마리아와 같은 생각을 한다.

  내가 저 시대에 흑인으로 태어났다면 할 수 있었던 일이 있었을까? 불가항력적인 것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나 있었을까? 인권이라는 단어가 새삼 존엄하게 느껴진다. 내가 그렇게 느끼면 상대에게도 그렇게 해줘야 마땅한 것이 인권이다. 짧지만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한국판 인권 유린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펴냄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민경아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탐방 기고 > 은행이의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이야기95]왕따  (0) 2015.04.30
[책]루카스의 긴 여행  (0) 2015.03.02
책 이야기 87 커다란 나무가 갖고 싶어요  (0) 2014.12.12
뛰어라 메뚜기  (0) 2014.11.18
그건 내 조끼야  (0) 2014.10.29

희망을 가졌다는 것

이승무 전 진보당 금천구위원장


인터뷰가 약속된 토요일 밤, 작업 후 나타난 이승무 씨의 얼굴은 용접 불꽃으로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썹도 군데군데 그을려 있었다. 병원을 가봐야 하지않겠느냐는 물음에 그냥 얼굴 한번 쓸어내리고 웃고 만다. 이승무 씨는 용접공이면서, 얼마 전 헌법재판소가 강제해산한 통합진보당의 금천구위원회 전 위원장이다. 

공교롭게도 12월19일 박근혜정권 2년을 맞는 날 통합진보당은 해산됐다. 헌정사상 유래가 없던 정당해산에 많은 사람들은 당혹감에 빠졌다. 통합진보당의 중앙당과 서울시당 사무실은 폐쇄절차와 회계정산을 하고 있고, 국회의원과 지방비례의원직은 상실됐으며, 통합진보당의 모든 모임은 불법화됐다. 

헌재의 해산결정에 대해 이 전위원장은 “14년동안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온 진보정당이 국민의 선택이 아닌 박근혜정부에 의해 강제해산되고  민주주의가 무너진 것에 대해 많이 분노했다. OECD가입국이자 GDP 2만달러의 국가에서 정부가 정당을 해산한다는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87년 이전으로, 박정희유신 정권으로 돌아간 착찹한 기분”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관심법의 헌재 판결문

헌재의 판결문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많다. 판결문에 대해서도 “정당해산이 과거 독일에서 있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시기였음에도 4~5년에 걸쳐 신중하게 결정했다. 자료만 해도 정부요구 17만페이지, 진보당 요구 10만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양인데 1년도 안되는 기간에 졸속으로 처리했다. 이석기 의원의 5월12일 강연회에 참석치 않은 사람도 참석한 것으로 거명하는 등 검증을 거치지 않은 허술한 심사였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이 사용한 것이고, 반국가단체로서 북한을 추종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반국가 단체라는 결론인데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은 미국의 루즈벨트도 이야기했다.”고 밝히며  헌재판결문을 비판했다.


정권에 대한 공포의 확대

이 전위원장은 정권에 대한 공포감의 확대를 가장 우려하면서 “박근혜정부에 ‘반대’라고 말하는 사람과 단체에 대해 공안몰이가 예상되고 있다. 냉전의 구도, 매카시즘이 확대되고 표현과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말살되고 있다. 종북이니 빨갱이니 피해의식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최대 적인 권력에 대한 공포감이 확대되고 있다. 그것이 정권이 노리는 것 같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이 공포정권으로 가고 있다.” 고 진단했다. 


희망을 가졌다는 것

이 전 위원장은 오랜 기간 노동조합활동을 하면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고민했고 당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이 대기업 조합 중심인데다가 영세공장이나 건설현장은 노조로 조직하기가 어렵고 교섭상대도 막연했다. 건설현장에서도 다단계에 하도급까지 되니 누가 사용자로 되어야 하는지 한계도 있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노동자가 잘사는 사회, 건설노동자, 영세노동자들이 잘 살수 있는 것이 나의 희망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방법이 뭘까? 프랑스에서는 큰 공장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그 구속력이 금속이면 금속, 금융이면 금융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건설노동자들이 대구에서 협약을 했다면 그것이 전체 건설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런 것은 진보정당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해결해야할 문제들

이 전위원장은 “진보당이 해산됐음에도 평화통일의 문제, 양극화의 문제, 경제민주화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다. 금천 주민들이 이런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는데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웹진 [플랫슈즈]는  금천구에 살고 있는 몇몇 엄마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아이를 안고 지나가는 엄마들이 어김없이 신고있는 굽낮은 플렛슈즈처럼 내밀하고 섬세한 ‘여성’, 그리고 ‘엄마’의 시각으로 하이힐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갖춘 플랫슈즈와 같은 따뜻한 글들을 만날 수 있는 웹진이다.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힘들었으면 다같이 의논하거나 합의한 바도 없이 여자들이 이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파업에 돌입했겠어요?” 

  출산율 저하 현상을 두고 어느 학자가 일갈하던 말이 뇌리를 스친다. 프랑스에서 유년기를 보낸 어느 여성은 자신은 결코 한국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이 여성들로 하여금 이런 독한 결심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여성이 모성(母性)을 타고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어머니의 거룩한 사랑’에 대한 무수한 말들이 어머니로서의 기쁨을 가로막고 어머니로서의 고단함을 토로할 수 없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 태어나 보람을 느낀 몇 안 되는 일 중에 하나는 분명 아이를 낳은 것이다. 또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단함 속에서도 습기 눅눅한 방에 스며드는 햇살처럼 살가운 기쁨을 맛보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 낳기’를 권유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다른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안겨주지만 그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고단함을 기꺼이 견디겠다는 ‘결단’과 ‘결심’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 일은 엄청난 각오 없이는 결행할 수 없는 ‘구국의 결단’이 되었고, 그것은 진정 ‘나라를 구하는’ 일이 되었다. 


한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수의 젊은이가 다수의 노인을 부양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전망하고 있다. 더구나 소수의 젊은이 가운데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부모 세대를 부양할 만큼의 세금을 내거나 경제적으로 자신의 부모를 직접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자리를 제대로 갖지 못한 한국의 젊은이들은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지 못한 채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최소의 생활비만을 충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부모 세대나 부모는커녕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조차 없으며,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부모로서의 삶은 때로 지나친 ‘낭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노인 인구가 어린이나 청년 인구를 월등하게 앞서는 시대를 맞이하면서 부양해야 할 사람만이 남고 부양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사라져가는 사회는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이 아이 없는 사회의 초상화는 생명의 활기가 사라져가는 사회를 예고한다. 이런 사회에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거나 변화를 모색하거나 미래의 희망을 노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싫어서 아이들의 출입을 금하고 싶어하는 이 사회에서 이제 정말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깔깔대는 웃음소리, 번잡하게 뛰어다니는 발자국 소리, 장난스러운 질문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재잘거림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우리는 이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침묵 속에서 고독하게 늙어갈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이 이처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음을 아이를 낳을 능력이 있는 여성들 또한 모르지 않는데 왜 그녀들은, 혹은 우리들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마음 먹은 것일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이를 낳지 않기로 마음 먹은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이며, 차마 출산을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매스컴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젊은 여성들을 나무라며 아이를 낳는 일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떠벌리고, 방송마다 아이 낳은 사람들이 나와 아이를 낳고 키운 일이 얼마나 즐겁고 보람 있었는지 설득하는데도 왜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꿈쩍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마주치는 어른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결혼을 권하고 결혼한 여성에게 아이 낳기를 권하고 첫째를 낳은 사람에게 둘째를 권하고 둘째를 낳은 사람에게 셋째를 권하는데, 이런 걱정과 간섭이 귀찮고 싫어서라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만도 한데 왜 이다지도 확고한 것일까?


  지난 여름 슬로베니아를 여행하면서 내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오후 4시나 5시 무렵 동물원이나 근처 공원에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나온 가족의 풍경이었다. 여행자인 나와 달리 매일 일터에 나가고 아이를 돌보는 일상을 되풀이하는 중일 텐데도 평일 오후 여가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생활의 노동에서 멀리 떨어진 나보다도 더 여유로워 보였다. 내가 부러웠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오후 4시나 4시 반 경에 엄마와 아빠 모두가 일자리에서 돌아와 자기 아이를 맞이할 수 있고 그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평일 오후 5시경 동물원에 갔을 때 아이들은 모래사장에서 도마뱀 모양의 나무통 위에 물과 모래를 섞어가며 깔깔거리고 있었고 엄마들과 아빠들은 아이들이 노는 곳 근처에 한가롭게 놓인 썬베드 위에서 일상의 수다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이런 풍경을 한국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단 한 번도 꿈꾸어보지 못했다. 

  찾아가는 박물관마다 직원이 친절하게 나와서 유모차를 받아 올려주고 엘리베이터까지 안내하여 동승해 주었다. 유럽 지역 내에서 탑승한 비행기 안에서도 승무원은 물론 앞뒤 자리에 동석한 어른들까지 모두 아이의 번잡스러움이나 수다스러움을 귀찮아 하지 않고 오히려 마술 등을 보여주며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주었다. 이제 막 36개월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혼자 3주 동안 외국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분위기 덕분이었다. 오히려 여행의 피로감이 가장 가중된 시점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9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 동안 나는 비행기에 동석한 한국인은 물론 승무원의 눈치를 봐가며 아이의 행동을 제지해야 했다. 여행의 들뜬 기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귀국 이틀 뒤 나는 여행 다닐 때처럼 자연사박물관을 가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를 이기지 못해 결국 인근 박물관 나들이에 나섰는데, 말도 통하고 익숙한 공간인 한국의 박물관에서 오히려 유럽에서보다 훨씬 큰 피로감을 맛봐야 했다. 아이가 떠들지 않도록 시종일관 잔소리를 하거나 아이를 제지하면서 유모차를 혼자 끌고 이리저리 동분서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 후 내가 여행을 하면서 피상적으로 경험한 것 이외에도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혜택들이 아이와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유럽 지역 내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유럽 내에서 출산 및 육아에 대한 복지 혜택 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도 한국보다 월등히 나은 혜택을 보장한다. 아이는 물론 아이를 둔 부모의 교통비를 감면하거나 전기세, 수도세 등의 각종 공과금 감면 혜택을 주기도 하고, 또 만 3세가 될 때까지 정부에서 무상으로 신뢰할 만한 베이시시터를 모든 가정에(맞벌이 가정 등의 별도 조건 없이) 파견하기도 한다.    

  나는 이들 나라가 한국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여서 돈이 많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여행했는데 이들 나라의 경제적 상황이 한국보다 월등하게 낫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과 이들 사회의 차이는 각 사회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고 어떤 사안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다루고 있는가 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출산장려금이나 각종 보육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사회가 사회 구성원을 길러낸다’는 관념을 서로 확인하거나 공유한 적이 없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들어가는 대부분의 비용과 시간, 각종 노동과 보살핌의 활동 등이 고스란히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결심한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말 그대로 한국에서는 출산이 개인이 결단하는 문제가 된 지 오래다. 

  한국이 시스템 부재의 사회인 것은 최근에 와서 더욱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온 국민이 목격한 세월호의 침몰은 공공 영역의 부재 속에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 떠맡겨온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고통스럽게 증언한다. 한국에서는 물난리가 나면 정부 관계자나 관리들이 나서서 방둑을 수리하고 수재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발적 헌금인 수재의연금을 걷어 해결하려 든다.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시스템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구심을 향해 결속하려 드는 개인들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다. 막대한 사회적 자원을 시스템을 튼실하게 구축하고 합리적으로 작동시키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헌신과 희생을 촉구하는 사회적 선동이나 캠페인에 쓰는 장면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개인의 희생을 통해 굴러가는 사회가 진정 좋은 사회일까? 개인이 헌신이나 희생을 결단하거나 결심하지 않아도 자신의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 것은 아닐까? 개인의 희생과 헌신에 관한 미담(美談)들이 ‘세상은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라고 우리 귀에 속삭이지만 이 미담들의 그늘에서 개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고단한 일상과 고통의 몸부림은 세상 밖으로 드러날 기회조차 상실한 채 땅 속 깊숙이 파묻히고 있다. 더구나 출산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미담의 차원을 넘어서 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책무를 외면하는 일종의 비윤리적 행위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너는 네가 살고 있는 사회의 미래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거야.”라는 협박 아닌 협박의 말로 기혼 가임 여성을 압박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 드문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여성의 출산을 반기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가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승인한 결혼을 통해 부부가 된 이성애자 남녀 부모 밑에서 ‘합법적으로(?)’ 태어난 아이들만이 축복받을 자격을 얻는다. 이른바 ‘미혼모’로 불리는 여성들의 출산은 환영받지 못하며 이들의 출산을 장려하거나 지원하는 어떤 사회 정책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사회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이 사회는 오직 아이가 태어난다는 사실, 혹은 태어난 아이의 숫자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그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미래 사회 구성원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으니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생각만 할 뿐 미래 사회 구성원들이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 이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잘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태어난 아이가 만 3세가 될 때까지 모든 출산 가정에 베이비시터를 파견하는 사회는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만 3세까지의 보살핌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인식이 널리 공유되어 정책적으로 실행되는 데까지 이른 사회다. 이런 사회는 출산만이 아니라 태어난 아이들이 충분한 보살핌 속에 자라나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미래 사회 구성원이 될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일, 다시 말해 아이들을 돌보고 키우는 일을 사회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지만 태어난 아이를 기르는 데는 무관심한 사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을 개인의 결단으로 내모는 사회는 ‘불임의 사회’에 가깝다. 임신을 하지 않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한국 사회’다.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출산이 반드시 육아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가임 능력’은 ‘보육의 역량’을 포함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가임 능력은 생물학적 능력만이 아니라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요즘 여성들이 이기적으로 자기만 생각해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으려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한국 사회’인 것이 아닌가. 아이를 키우려 들지 않는 사회는 ‘가임 능력’을 상실한 사회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생명의 가치를 부르짖는 일이 사치가 되고 생명을 지키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태어난 모든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어떤 의미에서 가장 명확한 ‘불임’의 증거다.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생명을 낳아 기르는 일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회에서 출산을 부추기는 모든 선동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을 결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 출산을 결심했건 간에 나는 그들의 용기에 힘찬 격려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그리고 제발 이들의 용기있는 결단이 헛된 일이 되지 않도록 내가 사는 이곳이 부디 생명을 존중하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플랫슈즈  김영희


원문글 플랫슈즈 http://flatshoes.or.kr/xe/feature/552


오체투지. 마음은 하늘을 품되, 몸은 가장 낮게,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절박한 기도 행위다. 지난 년 말 기도의 첫걸음을 연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법 제도 자체를 없애자고 했다. 물론 그들의 서원은 국가 폭력과 자본의 거부로 막혔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한 노력은 멈출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이번엔 정리해고제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상징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두 번째 행진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은 권리와 의무가 단절된, 실질적인 노예제도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허용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은 존재할 수 없다. 정리해고 비정규직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 반대말이다. 민주주의에서 노예제도는 있을 수 없고, 좋은 노예제도 없다. 차별 적은 비정규직은 좋은 노예라는 말에 다름 아이다. 현대판 노예제도인 비정규직은 그 자체로 민주사회의 오욕이고 수치다. 이것이 기륭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법 제도 완전철폐를 걸고 오체투지를 하는 이유다. 


그들은 말한다. "사람됨을 포기할 수 없다. 사람을 노예로 만들고 사람을 오직 절망으로 내모는 이 반역사적이고 반인간적인 비정규직 노동은 그 자체로 사회적 범죄다.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지 않고서는 대한민국 누구도 결코 자유롭거나 행복할 수 없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 하는 이는 사탄이거나 무뇌(無腦)거나 미친이다... 진정한 빈곤의 뿌리 차별과 설움의 원흉인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야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비정규직을 옹호하는 정치세력과 정면 대결을 하고 비정규직 법 제도 자체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 일보 전진 투쟁을 하자." 


정리해고는 아무 잘못도 없이 생존에서 추방시키는 묻지마 사형제도다. 잘못도 없이 불이익을 당해도 된다는 것으로 근대법의 기초 원리 자체를 부정한다. 원인없는 결론, 책임없는 권한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해고를 허용하는 생각은 근대법 이전 초기 자본주의 무법시대로 퇴행하려는 반역사적 폭력이다. 정리해고 법 제도의 존재 자체가 200년 이상 근대법의 발전을 퇴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 퇴행의 날벼락에 맞서 77일간의 파업, 26명의 죽음, 단식과 고공농성, 대법원의 잔인한 판결, 그리고 세상의 등대가 되어, 시대의 깃발이 되어 지금도 굴뚝농성을 하고 있는 그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그들만큼 절박한 스타케미칼, 콜트콜텍 등 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자들이 공동 주체가 되어 2차 오체투지 행진을 한다. 비정규직과 함께 정리해고제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인본주의를 부정하는 반사회적 범죄임을 고발하자는 것이다.


그들의 오체투지는 "대통령과 정부, 국회 등에 청원하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절박한 이들이, 온 몸, 맨 몸으로 새로운 길을 내자는 손 내밂이다. 바닥부터 지렁이 거북이처럼 더디더라도 수많은 이들과 함께 다시 일어서자는 간절한 기도다. 차별에 굴종이 아니라 저항으로 나선 노동자 민중들에 대한 연대의 행진이다. 한 자리에 머물러 고여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물길이 되어 물고를 트자는 간절함의 실천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새해 새 실천을 하고 있다. 그들은 오래된 투쟁이지만 전혀 새로운 길을 떠나자고 한다. 그것은 정규직이라는 개인의 안락과 안전한 일터라는 개별 기업의 요구에 머물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로 단식 농성 고공농성 연행 벌금 구속, 죽는 것 빼고 다 해본 노련한 전사의 경험으로, 26명의 목숨의 빚을 안고 싸우며 지금도 70미터 굴뚝 농성중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경험으로, 우리사회를 민주공화국으로, 사람 사는 공동체로 되돌리기 위해 시작된 새로운 행진이 오체투지다. 


가만히 있지 말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마음을 전하는 행진이고, 인간을 부정하는 정치 경제 법 제도에 대해 저항 하자는 권고다. 너와 나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존엄하게 살자는 호소다. 온 몸을 던져, 낮은 몸 더욱 낮춰 가난한 우리가, 지금 아픈 우리가, 양심으로 연대로 생명을 지켜 온 우리가 다시한번 힘차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나아감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 이 고통에 굴하지 않고 생명 아닌 것들에 맞서 생명을 살리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간절한 손 내밂에 답해야 하는가? 물에 빠진 사람 구하기 위해 물에 빠진 원인이 급한 것이 아니 듯 이해와 요구를 넘어 저 절박한 손을 잡아 주는 연대가 우선이다. 그 손잡음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연대를 강화시키는 첫 마중물이 된다. 그 마중물에 응해 올라오는 암반수가 을들의, 을들 못되는 병과 정들의 사회 정치적 힘을 강화한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반대 투쟁은 반빈곤 반차별 운동이다.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단결하자 자본은 그것을 범죄라 했다. 만약 노동자들이 그 법에 적응했다면 인류는 아직도 노동조합이나 사회복지라는 말을 몰랐을 것이다. 불법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되기까지 노동권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굽힘 없는 투쟁이었다. 투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노예제를 살고 있을 것이다. 


을미년. 을들이여 미적 되지 말고 힘차게 생명 아닌 것들에 맞서 생명의 이름으로 싸우자. 70년대로 퇴행된 정치, 그것보다 더 기막힌 하인 노동을 강요하는 경제, 히틀러보다도 못한 친일 반동의 역사의식, 이 기막힌 현세 지옥에 맞서 체온 따뜻한 사람들의 연대와 투쟁을 시작하자. 오체투지를 하는 노동자들의 손 내밂에 그 손잡아 주기가 절박하다.


 


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이젠 달랑 A4 한 장인가?


지난 11월 25일부터 12월 15일  제184회 제2차 정례회에서 2015년 예산안을 다뤘다. 이에 앞서 금천구청은 11월  17일 홈페이지에 금천구의회 부의안건을 공개하고 2015년 일반 및 특별회계세입세출 예산안을 공고했다.

공고는 2015년 예산안과 기금안, 조례안이 첨부됐지만 공고된 예산안은 A4 달랑 한 장에 2015년 총액 예산안과 2014도 예산 비교액 뿐이었다. 참고사항으로  2015년도 일반 및 특별회계 세입․세출 예산(안) 1부, 2015년도 일반 및 특별회계 세입․세출 예산(안) 첨부서류 1부는 별송이라는 표시만 되어 있고 첨부되지 않았다. 

결국 달랑 1장의 예산안만 공개한 것이다.  금천구청은 해나다 전체 예산안을 공개하지 않고 부서별 예산현황, 당해연도 대비 증감현황, 구 재정정보는 함께 공개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마저도 없이 달랑   한 장이었다. 

예산안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애 대해 구청측은 ‘확정되지 않은 안’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천구청의 정보공개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행정공개시스템에도 ‘2015년세출예산편성내역(안)’이라는 36페이지짜리 서류가 공개되어 있음에도 굳이 구청이 먼저 주민들에게 알려줄 수는 없는지 의문스럽다.

참여는 애정에서 나오고 애정은 서로에 대한 과정과 관계의 공유 속에서 나온다.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참여를 할수 있겠는가?  게다가 예산문제는 누구나 가장 먼저 관심을 두고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이다.

외피만 ‘참여’를 달고 있는 모양세는 과거 행정 중심의 관중동원과 다를 바 없다. 속 빈 ‘참여’와 알맹이 없는 ‘민관거버넌스’가 이젠 지겹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관계속에서 피어나는 꽃

금천지역자활센터  윤지태 팀장


금천구는 2011년부터 사회적경제부분 활성화를 위해서 사회적경제한마당을 비롯해 매월 공유경제장터 해노리장도 운영해오고 있다. 금천자활센터는 사회적경제 강의와 연대회의, 장터에서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2011년 제1회 사회적기업가 학교에서부터 첫 얼굴을 보고 그 후 지속적으로 자활에서 활동하며 매 장터에 참여한 사람이 윤지태 팀장이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실내로 들어올 수 없는 먹거리 부스를 빠짐없이 맡아오고 있는 사람도 윤 팀장이다. 몇 년간의 꾸준함에 지태 씨와의 약속을 잡았다.



자활

교과적인이야기로 한다면 자활센터는 1997년 IMF 당시 능력은 있지만 부도나 실직한 분들을 구제하기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수급자로만 살수 없기 때문에 새롭게 일을 배워 취업도 하고 창업도 도와주기 위한 기관으로 전국에 247개가 있고 금천지역자활센터는 2001년에 설립해 금천구에 사업단은 간병, 청소, 인큐, 장애인통합 등 6개의 사업단과 4개의 자활기업이 있다. 자활에서 교육을 받은 사업단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이후 기업으로 독립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자활의 특징 중 남녀 비율을 보면 남성이 많은데 금천구의 경우 6대 4 정도로 여성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가까운 경기도나 지방으로 나가게 되면 보조금으로 자활센터의 건물을 지원해 한 곳에서 자체적으로 교육도 하고, 상담과 작업도 함께 이뤄지는데 반해 금천자활은 모든 사업장이 뿔뿔이 떨어져 있다. 자활이라는 것이 참여자들과의 대화가 상당히 중요하다. 애로사항이나 고민들을 바로바로 캐치하고 밀착관계를 형성해야하는데 사업장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보니 애로사항이 많다. 

 

자활사람들

참여자들, 특히 여성 참여자의 경우에는 대부분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 분들의 삶을 들어보면 ‘나라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러다보니 내적인 면에서 작은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

2009년 금천자활에 처음 왔는데 참여자분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웠다. 당시 2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신 분들을 이해할 수 있었겠나? 공감대를 갖지 못하니 고민을 나눠도 ‘잘못 이야기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많은 부분에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참여자분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취감도 나온다. 그 분들이 나를 인정해줄 때 보람차다. 성과와 사업단 운영도 중요하지만 참여자들과 밀착됐다고 느낄 때 위로를 받고 힘이 난다. 이제는 내 표정만 보고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보시기도 한다.


사회적 경제와 자활

두 영역이 많이 겹치고 사회적기업이 급부상하면서 사회적기업가학교를 수강했다. 사회적기업과 자활기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적 환원과 서비스나 지원부분에서도, 창업해서 지역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는 것까지 큰 차이가 없다. 자활도 연대를 하고 배워야 공존이 가능하기에 힘들고 큰 수익은 없지만 해노리장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지역자활센터는 지역주민들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 분들이 주체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금천자활이 지역에 도움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먹거리 냄새라도 풍겨서 행사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의 도움이 아닐까 생각했다.  


꿈을 가지시라

자활에 참여하시거나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난 힘든 과거에 발목이 잡혀 ‘어쩔 수 없어’라는 생각에 빠진 분들이 많다. 본인이 꿈을 가지고 설계를 한다면 얼마든지 디딤돌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곳이다. 열심히 꿈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사람의 관계 속에서 자립의 발판을 마련하고자하는 자활의 목표 실현은 지태 씨와 같은  꾸준함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호 

gcinnews@gmail.com



우리 손으로 만드는 2015년 마을미디어 지원사업 계획서 후기-

마을미디어가 행정에 던지는 작은 질문

‘우리에게 마을미디어는 마을의 말입니다. 

당신들에게 마을미디어는 무엇입니까? 

마을의 말, 듣고 있습니까?’


마을에 미디어로 무지개가 뜨다

 2012년 <우리마을 미디어문화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서울시 마을미디어활성화사업은 올해로 3년째에 접어들면서 회색빛 거대도시 서울을 알콩달콩 소소한 마을의 이야기와 지역주민들의 당당한 목소리로 채워나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조한 ‘살맛나고 재미있는 마을공동체’가 지역 곳곳에서 주민들의 자발성과 책임감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마을미디어는 미디어라는 다소 전문적인 영역의 활동을 행정의 지원과 민간의 역량이 결합하여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일상과의 접목을 통해 자본과 권력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과 마을의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렇게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신문, 잡지, 라디오, 영상 등의 형태로 다종다양한 마을미디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시민이 시장’이라는 서울시

 지난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서울시 전역 및 서울시청과 서울광장 일대에서는 ‘2014 희망서울 정책박람회’가 열렸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제안하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공감을 통해 문제해결에 다가서며 서울시 정책의 토대를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간다는 취지의 이 행사는 민선 6기 서울시의 중요한 척도가 되는 자리였다. 

이 정책박람회의 ‘공감’, ‘토론’, ‘제안’ 프로그램을 통해서 모여진 다양한 의견들이 과연 얼마나 관을 움직이고 행정에 반영되어서 ‘시민이 시장’이라는 슬로건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

 서울 곳곳에서 마을미디어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모임)는 현재 80곳 내외에 이르고 있다.(매체 합산, 2014년 지원/비지원 포함) 이 가운데는 (사)마포공동체라디오나 (사)관악공동체라디오, 은평시민신문 처럼 마을미디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훨씬 전부터 지역에 뿌리 내리고 미디어의 공공성 확대를 위해 매진해 온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정책과 관계가 깊다. 

마을 안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공동체 회복),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풀뿌리 민주주의),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주민들이 직접 제기하고 공론화(의제 발굴)할 수 있는 마을미디어는 비영리성, 공익성을 갖는 지역밀착형/주민주도형 활동이다. 여기에 공적지원이 일부분 투입되고 필요한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며 행정과 현장의 긴밀한 소통체계가 형성되도록 하는 것이 서울시, 즉 행정의 역할이다. 


희망의 상상력 기존의 정형화된 틀을 깨자!

이러한 로드맵을 마을미디어 현장에서 먼저 제안하고 현장의 목소리가 사업계획 수립과 정책 결정에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서 ‘2014 희망서울 정책박람회 <마을미디어 현장과 정책 잇기 - 우리 손으로 만드는 2015년 마을미디어 지원사업 계획서>’(이하 정책박람회)가 마련되었다. 

정책박람회는 조은형(창신동라디오 덤), 안병천(관악FM), 김일웅(강북FM), 양승렬(동작FM)의 공동제안으로 논의가 시작되어 3차례의 확대 사전모임을 통해 방향과 주제 등을 정해나갔다. 

첫 고민은 ‘우리는 항상 서울시에서 내려오는 정해진 양식의 지원사업 계획서만 바라보면서 그 안의 짜여진 내용들을 채우고 선정되어지길 기다리는 존재’라는 한탄에서 출발하였다. 

주민이 주인이 된다는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 그리고 주민주도형 소통채널을 만들어가는 마을미디어사업이 그러한 형식틀에 갇힌 채로 진행된다면 중장기적 발전계획을 세우기도 힘들거니와 마을의 다양한 이해와 미디어라는 특성을 살리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책박람회를 통해서 사업계획내용을 역으로 민이 관에 제안하고 그것이 현실에 반영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보자는 상상력이 발동된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 담긴 정책 제안들

 9월 20일(토) 서울시청 신청사 3층 소회의실에서 열린 정책박람회에는 약 30여명 가량의 마을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였고 3개의 테이블로 나누어 토론을 진행하며 마을미디어 정책내용을 제안했다. 

첫 번째 테이블은 현재 서울마을미디어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라디오 방송국들로 구성됐고 두 번째 테이블은 신문과 잡지,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 마을미디어들 그리고 마지막 테이블은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자랑하는 ‘조상’급 마을미디어들이 모여 앉았다.(마을미디어판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마포FM과 관악FM을 재벌, 기업, 또는 조상으로 부른다.) 정책박람회에서 논의되어 취합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리: 김일웅(강북FM))


■ 서울시 마을미디어 지원사업 리모델링

-마을미디어 활동을 위한 공간 및 기초 장비 지원 

- 연차에 맞는 체계적 컨설팅 제도 마련

-마을미디어 아카이브 확대 : 마을차원의 기록 및 아카이브를 위한 예산 마련

-공공기관 및 유휴공간의 유동적 활용

-마을미디어네트워크의 마을주도성 강화등 12개


■ 서울시 마을미디어 사업 활성화 방안 : 사업 인프라를 중심으로 

- 마을미디어 지속성 확보를 위한 중간지원조직 규모 및 역할 강화

- 효율적 사업 운영을 위한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전문성 및 독립성 강화

- 수평적 사업운영을 위한 마을미디어 민관 거버넌스 협의체계 마련

- 지역 마을미디어 생태계 조성을 위한 거점형 시범사업 실행 등 7개


 마을미디어 신규 단체들과 2~3년 가량의 활동경력을 가진 곳들이 모인 라디오 테이블과 복합형 테이블에서는 마을에서 활동하면서 느끼는 애로사항들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제안들이 많았다. 

마을미디어 활성화를 위한 문턱 낮추기와 다양한 마을미디어의 지속가능한 성장 구조 마련을 위해서 마을(현장)중심의 현실적 지원사업 체계 구축과 절차 개선, 양질의 마을미디어 재생산을 위한 강사 양성 체계 마련, 공간․장비에 대한 지원, 사회적 일자리와의 연결 등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큰 그림을 고민하고 있는 ‘조상’ 테이블에서는 마을미디어의 단단한 토대 구축을 위해 중간지원조직(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위상과 역할 강화, 거점형 시범사업 실행 등의 의견이 도출되었고 마을미디어 정책연구 강화와 수평적 민관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내용도 제안되었다. 


마을미디어가 행정에 던지는 작은 질문 하나  

 테이블별로 열띤 논의를 거쳐서 ‘2015 마을미디어 지원사업 계획서’의 내용이 성안되었다. 백지상태였던 사업계획서의 내용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고 서울시민의 이름으로 참여자 모두가 결재란에 자기 이름을 라벨지로 붙였다. 

이 사업계획서의 결재란은 1차 결재가 서울시 담당과, 2차 결재가 서울시장 그리고 마지막 최종 결재권자가 시민으로 되어 있다. 이번 정책박람회를 통해서 마을미디어들의 요구는 또 한 번 공식적으로 확인이 되었다. 

지난 3월 열린 ‘서울마을미디어 청책토론회’와 내용은 비슷하다. 비슷한 내용이 반년 후 다시 한 번 제기되고 현장에서 만드는 내년도 지원사업 계획서 형태로 성안되어 담당부서에 제출되는 이 모습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나는 대표제안자 중 한 사람으로서 서울시에 작은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다. 

"우리에게 마을미디어는 마을의 말입니다. 당신들에게 마을미디어는 무엇입니까?  마을의 말, 듣고 있습니까?"


동작 FM   양승렬 대표



본 글은 서울마을미디어 뉴스레터 `마중' 10호에 실린 글로 서울 속 마을의 소식을 전하는 다양한 미디어와 활동을 소개하고자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와 협의 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