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야식업점들이 영업하기에는 살짝 이른 시간인데도 금천구의 맛집 불불이족발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4~50년 전통을 이어온 여느 맛집들과는 달리 만들어진 지 2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불불이족발은 이미 수많은 체인점은 물론, 족발 중 최고라 자부할 수 있을 정도다. 금천구의 대표 맛집 불불이족발을 취재하였다.

왜 이름이 불불이족발인지?
  보통 족발집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 이름이 불불이족발로 지어졌습니다. 다른 이유로는 불을 이용하여 한 번 더 익혔기 때문입니다.

체인점은 몇 개인가요 ?
  체인점은 총 30개고 서울 경기 지역에만 25개, 여수 천안 대구 등 지방에 5개가 있습니다.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무엇인가요?
   불불이족발집의 대표 메뉴로는 불불이 바베큐족발, 양양 왕족발, 쟁반국수 등이 있는데,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바베큐족발입니다. 바베큐족발에는 매운맛과 바베큐맛이 있습니다. 손님들의 입맛에 따라 바베큐맛과 매운맛 반반 두 개가 섞여 있는 신메뉴도 개발하였습니다.

불불이족발만의 특징이 있다면?
  족을 매장에서 직접 매일 삶고, 그날그날 삶은 족을 손님들에게 판매하는 것입니다.

손님들에게 한 말씀
 족발 하면 오래된 것 같고 전통만을 강조해 젊은 입맛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불불이족발은 붉고 매콤하게 만듦으로써 젊은이들의 입맛까지 사로잡는 맛 이라며 앞으로도 우수한 재료를 엄선하여 최고의 맛을 내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소 : 금천구 시흥1동 123-2번지
전화 : 02-803-8980

불불이족발의 대표메뉴 바비큐족발(왼쪽) 와 막국수(오른쪽)

 

 

문일고 신문반 정예찬(2학년) 전태헌(1학년)

 

가을이 깊어가면서 자주 비를 만난다. 고운 단풍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안타까움. 

월요일부터 계속 비가오니 바람은 더 차고. 동네 공원을 더 돌아볼 요량으로 우산을 받치고 걷는다. 여기 시흥3동 윗동네(윗 박미마을) 빌라촌으로 들어서면 골목이 고요하다. 한적하기도 한 골목 사이사이로 은행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가 제각각 잎을 떨구고 있다. 까치공원을 들어서는 골목길 주소는 시흥대로14길 12이다. 

지난번에 갈 때만 해도 공원에 나무들이 단풍丹楓 들었나 싶었다.  이제는 나무는 빛깔 뿐 아니라 낙엽을 떨구거나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내년을 기약하며 그나마 나뭇잎에 남아있던 영양분을 가지와 줄기와 뿌리로 내보내고 잎은 기꺼이 떨어질 준비를 한다. 반질반질 물기로 반짝이는 나뭇잎들도 겨울을 준비하느라 바짝 말라있다.  그동안 광합성이라는 것으로, 그러니깐 충분한 노동의 댓가로 얻었던 초록의 엽록소는 서서히 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뭇잎의 사라짐은 나무를 살리는 일이다. 함께 겨울을 나자고 나무에 붙어 있다가는 통통한 수분이 얼어 그냥 죽어버릴 수도 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고 한다. 때 이른 추위에 맞춰 지금 잎들은 부지런히 떨어지고 있다.

공원에 도착하니 그렇게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지런히 쓸어 모으시는 할머니가 있다. 나는 늘 비슷한 생각이 든다. 봄이 되어 새순이 돋아 계절을 알려주는 것처럼 나뭇잎이 좀 떨어져 있으면 얼마나 시기적절한 가을을 표현 하는가 싶다. 하지만 어느 공원 어느 가로수에서나 낙엽 쓸어 모으는 일로 바쁘신 분 들을 만난다.

운동하는 분들이 바람에 날린다고 싫어하신다고 한다. 이미 비에 젖은 나뭇잎은 바닥에 착 달라붙어 비질에도 꿈쩍 않는다. 보다 못해 “오늘은 그만 비가오니 나뭇잎을 쓸지 않아도 되겠어요.” 말씀드렸더니. “아휴,  비질이 안되네. 낼 아침 일찍 영감하고 와서 해야 할 모양이야.”하더니. 비질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지나가던 할머님이 나와 같은 맘이셨는지. “오늘은 그만 해도 되겠어요.”하신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번 달까지 까치공원에서 일하신다고 한다.  공공근로 작업을 하시는 모양이다. 공원입구 분리수거함 옆에는 그동안 쓸어 모은 낙엽자루가 제법 많다.

무엇이 아쉬운지. 계속 낼 아침 일찍 와야겠다고 다심을 하신다. 이렇게 비가오니 놀이터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아닐까싶어 이렇게 저렇게 말을 여쭙는다. “까치공원에는 아이들이 많이 오지요.” “그게 어린아이들 몇몇이 따로따로 왔다가 공차거나 하지.” “여자아이들은 4학년이나 됐을까하는 아이들이 같이 그네 타러 와서 잠깐 놀다간다”고 한다. 덧붙여 하시는 말씀은 요즘아이들은 바빠서 노는 아이가 없는 것 같다고. 

또 노인부부와 할머님들이 번갈아 걷는 운동을 하시는데 그 정도가 까치공원의 단골 이용자라는 거다. 

그러고 보니 까치공원도 지난 번 갔었던 비둘기공원처럼 윗부분은 흙을 밟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그 흙바닥 위로 낙엽이 차곡차곡 쌓인다. 한참을 바라보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그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무와 나의 역사가 같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냥 순간과 순간이 만났으니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떨어져 있는 나뭇잎의 흔적을 쫒아 어디에서부터 떨어졌나 어미 나무를 찾아본다. 

까치공원에는 느티나무가 일곱 그루- 가장 화려한 단풍을 보여주고 있다. 열매가 아직도 달려 있는 꽃사과나무엔 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우람하기 짝이 없는 버즘나무의 거대한 잎은 아직도 건재하다.  은행나무, 단풍나무, 모과나무, 향나무, 개나리, 화살나무, 철쭉, 회양목, 사철나무가 여는 공원에서 봤던 대로 익숙한 자리에 있다. 하지만 익숙한 그 나무들이 오늘은 달라 보인다.  어쩌면 그 나무들은 매일매일 다른 모습이었으리라. 내가 눈여겨보지 않는 틈에 조금씩 자라고 조금씩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을 거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사람들처럼 나무도 그러 했을 것이다. 

익숙한 것들이 다르게 보였던 까치공원. 거상빌라102동, 미도빌라7동, 유정빌리지, 미도빌라8동, 미도빌라9동, 미도빌라11동, 거상빌라101동이 호위하듯 공원을 감싸고 있다. 건물도 쉼쉬게 하는 공원이 거기 있다. 





 

산아래문화학교 김유선 대표 

줄넘기 기네스북 소유자   박봉태 할아버지


지난 10월12일 금천아트캠프(구 군부대이전터)에서 한마음체육대회가 열렸다. 많은 주민들이 참여했고 작게나마 성화도 만들었다.  89세 박봉태 할아버지와 문성중학교 탁구부 학생이 성화봉송자로 참석해 점화를 했다.  ‘연로한 분이 참 건강하시네’하며 다가갔다. 몇마디 나누니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의 성화를 봉송했다고 하신다. 

이런 분을 왜 아직 몰랐을까? 

박봉태(89세) 할아버지는 가산동에 살고 있으며, 줄넘기 할아버지로 유명하다. 매일 대문 앞에서 줄넘기를 하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네스북 기록 보유자이다. 

1988년 9월 18일 4시간동안 줄넘기 많이 넘기 37,414회를 기록하고 있으며, 다음해 1989년 7월 2일 1시간동안 줄넘기 많이 넘기 14,628회로 기네스북에 등록되어 있는 것이다.  66세 때 일이다.

매 해 줄넘기 대회가 치러지고 있지만 깨지지 않았다. 3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왜 줄넘기를 시작했을까?

할아버지는 1924년 평양북도 희천군 출신이다. 기관사로서 6.25를 겪으면서 이남에 내려왔고 이산가족이 됐다. 이후 버스 운전기사로 20년을 살았다. 20년의 버스 기사 생활은 8가지 직업병을 남겼다. 위장병, 신경통, 담, 피부신경통 등이 50살이 넘은 할아버지를 괴롭혔다. 그 전까지 운동이라는 것은 할 시간도, 여력도 되지 않았다. 병원에서도 운동을 권했지만 “50살이 넘었는데 무슨 운동이냐?”로 넘겼다. 막내아들이 “ 그럼 줄이라도 넘으세요”라고 권유해 시작한 것이 줄넘기였다.

그 바탕에는 병 없이 살아서 고향을 가겠다는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51살에 시작한 줄넘기는 할아버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매일 매일 줄넘기를 하다보니 3만번을 넘는 횟수를 하게 됐고 동네 사람들이 그 기운이면 마라톤을 해보라고도 하고, 기네스북에 도전해보라고도 했다. 

건강만 해지려고 했는데 하다보니 욕심이 생겨 기네스북에 도전하게 됐다. 당시  연습할 때는 새벽 2시부터 7시까지 연습을 했다.  4시간 연속 줄넘기를 할 때는 세 아들이 돌아가면서 수분 보충을 위해 물총으로 입에 물을 넣어주고, 흐르는 땀을 물총으로 닦아주도록 했다. 줄넘기 선수를 하려면 1분에 160번 이상을 한다. 하지만 1시간에 14,628회를 하려면 1분에 204번 이상, 1초에 4회 이상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많이 하면 허리가 아프지 않을까? 몸이 무거운 필자의 경험으로는 당연한 의문을 제시하니 바로 줄넘기를 가지고 나와 시범을 보여주셨다.  “줄넘기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디스크가 생길 수 있다. 우선, 시선은 하늘을 바라보고 뒤꿈치의 뒤축이 땅에 닿으면 안된다. 입을 다물고 코로 들이 마쉬고 가야 한다. 입을 벌리면 수분을 많이 뺏기기 때문에 쉬는한이 있더래도 코로 숨을 쉬어야 한다.”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아직도 할아버지의 줄넘기 속도는 무척빠르다.  일반인의 이단뛰기와 약간 비슷하다는 느낌이랄까?

기네스북의 등재로 영국 런던의 기네스북 본부에 초청되기도 하고,  1986년 아시안게임 성화봉송도,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화봉송도 함께 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할아버지의 명함은 특이하다. 접이식 명함으로 펼치면 일반명함의 4배만하다. 여기에는 빽빽하게 약력과 표창 내역이 들어가 있다.

대체로 줄넘기 운동을 한 이후다.  새마을 지도자로서, 줄넘기 기록보유자로서, 통일을 바라는 이산가족으로서의 활동으로 받은 표창과 방송출현 등이다.

지난 2000년 군산 벚꽃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42.195km를 70대 부문 1위로 완주하며 지금까지도 건강을 지키고 있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인사말은 “건강”이다. 

지금도 건강의 비결을 묻자 “게으리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똑같이 복 받는다. 하지만 본인이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몰라서, 알아도 실천을 못해서다. 건강하려면 게으르지 말고 운동을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2012년 대한민국 평균 수명은 80.6세다. 수명은 늘어나고 있지만, 각종 질병으로 건강한 삶이 늘어나고 있진 못하다. 

건강한 노후를 원한다면 박봉태 할아버지의 건강비결을 한번 실천해볼 일이다. “건강하고 싶다면 게으르지 마세요”



각종 수상패, 매달, 사진등을 전시해 놓은 개인전시실을 만들어 놓았다. 

개인전시실 내부풍경


거꾸로 가는 시계.  세태가 거꾸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주문제작 했다고 밝혔다.

줄넘기, 마라톤 등으로 딴 메달을 차곡차곡 전시하고 있는 박봉태 할아버지


 그동안 주례를 섰던 500여쌍의 결혼식 사진을 정리해놓은 병풍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는 박봉태 할아버지

88올림픽 성호봉송 사진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주간 뉴스브리핑

내 마음대로 순위



1위 : "이제 늦은 점심을    한술 떠야겠습니다."

UN 산하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사무국의 인천송도 유치가 확정(10월 20일)된 후 이명박 대통령께서 페이스북에 직접 올린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끼니도 거른 채 국가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대통령의 마음이 엿보이는 문장이다.

정부는 이번 기금 사무국 유치로 유·무형의 이득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대규모 국제회의나 올림픽·월드컵 유치는 효과가 단기적인 데 반해 국제기구 본부를 유치한 효과는 영구적 일거라 기대한다고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기금 직원만 500~1000명으로 예상되고 회의 참석차 한국을 찾는 출장자도 매년 수천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주재원 500명을 기준으로 연간 3800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인천발전연구원은 인천 지역경제에만 연간 1,900억원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자식에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땅 주인에게 땅값 인하를 요구했다던, 디테일한 이명박 대통령이 큰 업적을 하나 일구어 냈다. 잘한 건 잘한 것이니 만큼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자. 

이 마당에 우리나라의 환경정책이나, 사대강 삽질 등을 탓하지는 말자.

단지, 대통령의 늦은 점심 한술이  쌍용차 정리해고에 맞서 곡기를 끊고 단식 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 밖에 없는 쌍용차 지부장의 소식과 오버랩 되면서, 같은 나라 국민과 대통령이 맞는지 의심은 된다.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은 선진국이 낸 돈으로 조성한 기금으로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는 국제 금융기구다. 환경분야의 세계은행(WB)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16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총회에서 기금  설립을 승인했다.

2위 : 차베스의 사회주의는  멈추지 않는다.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세계적인 미인들이 넘쳐난다는 멀고 먼 나라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 대통령(58)이 10월 7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돼 연임에 성공했다. 1999년부터 14년간 대통령을 역임했고 향후 6년 임기가 추가된다. 20년간 장기 집권하는 셈이니 대통령 한 사람이 길어야 8~10년을 재임하는 서구의 시각에서 차베스는 ‘독재자’나 마찬가지다.그러나 단순히 독재자로 치부하기에 차베스는 인기가 많아도 너무 많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2006년 대선 때의 74.69%보다 높은 80.94%였다.

차베스의 인기 비결은 자본이 아니라 사람, 그 중에서도 빈곤층 중심의 정책에 있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가 남미 최대 산유국이란 이점을 활용해 석유를 수출하고 여기서 번 돈을 빈곤층을 위한 경제·사회정책에 쏟아부었다. 차베스 집권 기간 베네수엘라 빈곤층은 50%, 극빈곤층은 70% 감소했다. 대학 입학자 수는 2배 이상 늘었고, 수백만명이 생애 처음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았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국경을 넘어 대륙 전체를 하나의 좌파동맹으로 만들었다. 지난 10여년간 중남미 여러 국가에서 좌파 혹은 중도좌파 정치인들이 집권했다. 이들 역시 차베스와 마찬가지로 빈곤을 퇴치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차베스의 4선은 중남미의 이 같은 흐름을 공고하게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라고 하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사회주의고, 자본주의냐를 떠나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용기 있게 행하는 대통령과 때론 힘들겠지만 꾸준한 인내와 지지를 보내는 국민들이 있는 나라는 부러워해도 지는 건 아니지 않을까? 베네수엘라의 인내와 용기에 지지를 보낸다.

3위 : 어린이,청소년 인권조례안 서울시의회 본회의 통과 91% 찬성 

12일 서울특별시의회 본회의에서 <어린이 청소년 인권조례안>이 통과됐다. 재석인원 59명 중 찬성 54명, 기권 5명. 이날 조례안을 대표발의한 윤명화(중랑구 제4선거구, 민주통합당) 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은 제안취지를 설명하면서 “의원 여러분, 무조건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조례안은 지난 10일 인권특별위원회에서 임신, 출산 부분과 성적 지향에 대한 보수 단체의 반발을 의식해 삭제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이 있어 관련 인권단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인권특위가 있던 당일 참석 대상 19명의 의원 중 10명만 참석, 그중 6명만 찬성해 본회의 통과 여부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이 조례안의 상정 직전 안건인 <서울특별시교육감 소속 학생인권옹호관 조례안>이 59명 중 54명의 찬성, 기권 5명으로 통과된 직후에 찬반 토론없이 바로 표결을 진행하였고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이같은 표결 결과는 이 조례안을 추진한 의원들과 관련 인권단체들이 10일 전후 조례안 통과를 위한 개별 면담, 입장서 전달 등의 활동을 펼치면서, 부정적 견해를 보였던 일부 의원들이 찬성입장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인권조례안은 통과되었고, 실제적 실행만이 남았다. 많은 지자체들과 학교에서는 조례가 통과되어도 실행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지 않았던 모습이 있었다.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성숙한 어른들의 약속이행의지를 보여주자.


김량남 

시흥4동에 거주하며 ‘일하는 삶이 아름다운 금천청년회’ 회장을 역임했다

단체 탐방- 금천공동육아협동조합 준비모임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


최근 저출산이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사회의 인적구성은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지만 아기를 낳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직업을 가지고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도 어디 맡길 것이며, 어떻게 키울 것인지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이다. 

이런 고민들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금천구 주부들이 모여  공동육아 협동조합을 꿈꾸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금천공동육아협동조합 준비모임’ 을 하고 있는 이은정 씨는 “결혼하고 임신하면서 겁이 많아졌다. 사는 것이 험악해진 것 같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두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에  함께 일한 선생님으로부터 생협이나 공동육아에 대해서 권유를 받았다. 그래서 한우물생협에 가입했고, 공동육아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말했으며,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됐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광명과 안양에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대기 신청을 했다가 합류한 신선윤씨는 “어려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해오다 아이를 낳고서는 내가 온전히 책임지고 기르고 싶었다.  이 사회의 구조가 내 아이를 책임지지 못하고, 내 이웃을 책임지지 못하는 흐름으로 가는 것 같다. 일반 어린이집에서는 교육에 초점이 되다보니 규칙과 규율이 앞서는 것 같다. 그런 곳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공동육아를 택했다”고 말했다.

아이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마을과 지역에 대한 고민도 공동육아를 추진하고 있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은정 씨는 “아이 키우는 것에 있어 공동체 회복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시절을 돌아 보면 동네에서 놀고 동네 어른들이 함께 돌봐줬다. 나이 터울이 많은 언니, 형, 누나한테 배우기도 했다. 아이에게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하며 공동육아를 넘어 지역에 대한 전망도 함께 세우고 있었다. 신선윤 씨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안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이 안에 있다는 것, 단순히 내 아이가 아닌 우리아이, 우리 마을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최혜은 준비위원장은 “논의할 때 중요한 것은 ‘공동육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출자금은 그 다음이다. 지금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육아에 대한 생각의 공통분모를 찾고 공유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 모인 사람들은 그 부분에 공통점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공동육아 제도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엄마가 보조교사로 참여하기고 하고, 단순히 돈을 출자하고 아이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원칙이 공유되어야 한다. 생협 먹거리를 먹이고, TV를 보지 않게 한다거나 이런 것도 공유되야한다”고 덧붙인다.

그럼 공동육아와 일반 어린이집의 차이는 무엇일까?

최 위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공동육아가 단순히 어린이집 같이 아침에 맡기고 저녁에 찾고 단지 다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공동육아는 어린이집 운영에 전반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일반 어린이집은 운영의 주체가 원장과 교사다. 하지만 공동육아는 아동, 부모, 교사가 주인 인 것이 가장 큰 차이다.”라고 설명했다.

준비 모임은 11월, 12월 부모대상 교육프로그램을 개최하고, 이때 모인 분들로 1월에 조금더 구체적으로 사업을 추진, 내년 3월에는 부모협동조합시설을 만든다는 계획을 잡았다.

최 위원장은  “지금은 꿈꾸는 단계이면서 실행을 해보는 단계다.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의 형편도 고만고만하다. 하루하루가 구멍인 인생이다(웃음). 그럼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사람이 떠나지 않고 들어오게 할수 있는 그러 마을이 되었으면 한다.  11월 교육프로그램을 들어보고 고민을 나누고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인사를 했다.

'금천공동육아협동조합 준비모임'의 소중한 시도가 아이 키우기 좋은 금천구의 힘찬 출발이 되기를 바래본다. 


<지난 10월 12일 '사회적 경제 한마당 + 마을축제'에서 참여한 금천공동육아협동조합 준비모임의 한 회원이 아이를 데리고 나와 부스를 지키고 있다. 이날 부스에서는 공동육아 조합원 모집 및 육아정보를 부스를 찾아오는 부모들과 공유 했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은행나무어린이 도서관 입구 아이들의 솜씨로 벽화가 예쁘게 그려져 있다.

은행나무

 

우리동네에는 약900년된 은행나무가 있다. 그 은행나무가 지키고 있는 길을 은행나무 사거리라 부르고, 그 앞의 버스정류소 이름은 은행나무 앞이다. 또 인근의 놀이터는 은행나무 놀이터라고 부른다.

그 은행나무 그늘 아래에는 벤치가 있어 매일같이 할머니들이 모여앉아 따뜻한 담소를 나눈다. 그 옛날 그리했던 것 처럼 은행나무는 마을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우리동네에는 10년 된 키 작은 은행나무가 있다. 온갖 재미난 이야기가 이곳에 모여 있어 동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 바로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이다.

 

동화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김현실 관장에 따르면 1998년 살구여성회에서 열렸던 한 독서지도 강좌 ‘우리아이에게 어떻게 책을 읽힐까?’ 를 함께 들었던 엄마들과의 인연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김 관장은 그 때를 떠올리며 “강좌를 들은 후 우리도 금천에서 동화읽는 어른모임에 가입하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동네마다 따로 이름이 있는데 우리는 ‘함박웃음’이라는 이름으로 98년부터 활동했다.”고 밝혔다. 구립도서관, 주민센터 새마을문고 등에서 모여 동화책을 읽고 스터디를 하는 중 수지에 느티나무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 관장은 “느티나무 도서관 소식을 듣고 너무 부러웠다. 어쩌면 우리도 도서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2002년 봄에 어린이도서관 추진위를 꾸리고, 책도 모으고, 함박웃음 회원들이 30~300만원까지 돈을 내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은행나무 놀이터가 있는 길 건너편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고 말했다.

 

키 작은 은행나무

 

지난 5월15일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은 금천초등학교와 탑동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를 오고 가는 길목에 세 번째 보금자리를 찾아 이사를 했다. 57.52㎡의 반지하 주택으로 입구가 좁아 160cm가 넘는 어른은 고개를 숙이고 겸손한 자세로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를 ‘키작은 은행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김 관장은 전했다. 또 “도서관이 이전보다 작아져 1,900여권의 도서를 보내야만 했다.”는 말에서 약간의 아쉬운 마음이 전해오는 듯 했다. “그래도 이사를 온 후 아이들이 더 많이 찾는 도서관이 되었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예전에는 엄마를 따라 아이들이 오게 되었다면, 여기는 아이들에 이끌려서 엄마들이 지역회원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밝혔다.

여느 도서관처럼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아닌 일반 가정집 같은 분위기와 세 개의 책으로 가득한 방에서 숨을 곳도 있는, 웃고 떠들어도 괜찮은 아지트 같은 분위기가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모이게끔 하는 것 같았다.

 

도서관을 통해 만난 소중한 인연

 

도서관은 동화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회원들과 마을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 운영된다.

함박웃음 8기 회원이자 빛 그림 공연팀을 맡고있는 유문주(41) 팀장은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에서 활동하기 이전에 동화책 전집 방문판매 사기를 당했던 경험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 일을 계기로 엄마도 동화책에 대해서 알아야 아이에게 책을 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여기와서 동화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 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에 참여 하면서 은행나무에서 받았던 것을 되돌려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어선옥(54)씨는 2009년부터 진행된 ‘찾아가는 도서관’을 통해서 다문화가정에서 책을 읽어주고 있다. 어 씨는 “ 1년 전부터 만나게 된 중국 조선족 가정의 민제(7)가 처음 만났을 때는 곤충 및 과학관련 책 이외의 책을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요즘에는 창작동화에 대한 재미를 알아가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훼방꾼도 귀는 열려있다.

 

유 팀장은 “훼방꾼도 귀는 열려있다.”고 말하며, 관내 한 초등학교의 학습이 부진한 아이 5명을 대상으로 책읽어주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경험을 이야기 했다. 학습이 부진한 아이들 중에서도 수업중 임에도 유독 장난이 심하고 친구들을 괴롭히고 울리는 남자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유 팀장은 “마지막 수업으로 선생님한테 편지를 쓰게 했는데, 그 아이의 편지를 보고 선배들이 말하는 ‘훼방꾼도 귀는 열려있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아이는 편지에서 ‘우리집에 있는 25권의 책 다 읽었어요. 내년에도 또 만나요.’라고 썼다.”고 전하며 “책읽기라는 간단한 나의 활동이 그 아이에게는 변화의 시작 된것 같다.”고 덧붙였다.

 

900년된 은행나무 처럼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1시~6시까지 운영된다. 운영시간 이전의 시간은 공부모임 및 동아리 모임의 장소로 활용된다. 김 관장은 “우리 도서관이 동네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며 “작은도서관으로서 동네 속으로 들어와서 동네아이들의 아지트가 되는 것이 우리 도서관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또 “우리동네의 900년된 은행나무 처럼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도 900년 1000년 지나도록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도서관이 되길 바란다.”고 소원했다.

 

남현숙 기자  kasizzang@naver.com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담장

도서관 입구앞에 빼곡히 벗어놓은 아이들의 신발들

 

도서관에 꼬마손님이 들어오고 있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둘리곡을 은행나무 도서관과 맞게 개사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농약없이도 잘 큽니다


개장 초기에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텃밭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요즘은 부쩍 어르신들이 눈에 띈다. “우리 아들이 분양받았는데 바빠서 못 오니까 내 차지가 됐지 뭐.”라고 하신다. 의지만 넘쳤던 젊은이들은 이래저래 바빠서 텃밭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고, 익히 농사라는 것을 지어봐서 손길 필요함을 아는 어르신들은 텃밭의 작물들을 나몰라라 할 수 없어 공을 들이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이런 ‘경작본능’은 대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고, 우리 주말농장을 훌륭하게 이끌어 주는 주된 동력이다. 하지만 한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농사의 상식’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에 농사 좀 지어보셨다는 어르신들은 “배추를 저렇게 그냥 심으면 망해요. 굼벵이 잡는 약을 살~짝 치고, 비닐을 쫙~ 깔아줘야 잘 큰다니까.”라고 얘기하신다. 주말농장에서는 친환경 농사를 위해 화학비료, 화학농약, 비닐멀칭을 금지하고 있고 분양자 전체에게 이러한 내용을 알리기 위해 ‘의무교육’까지 시행했지만 어르신들의 ‘상식’으론 도저히 납득이 어려운 내용일 뿐이다. 

하루에도 몇 분씩 운영진에게 대놓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살 수 없냐고 물으신다. 여기선 그런 거 사용하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면 그래도 양심은 있으셔서 “우리 집 옥상에 뿌릴려고 그래요. 여기다 뿌릴 거 아니예요.”라고 하신다. 그러시곤 걱정스러운 말투로 “굼벵이 잡는 약을 미리 쳐주어야 가을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하시며 돌아서신다. 


언젠가는 깻잎이 심어진 밭 위로 하얗게 서리가 내린 것처럼 뭔가가 뿌려진 걸 봤다. 진짜 서리가 내린 줄 알고 깜짝 놀라서 가봤더니 하얀색 화학 비료가 뭉텅이로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사용량을 알지 못하니 그냥 있는 대로 뿌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소리 없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새벽 농약이다. 인적이 드물고 특히 운영진이 없는 시간에 어르신 특유의 부지런함이 발동되는 것이다. 물조리개에 물을 받다보면 거품이 유난히 많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십중팔구 농약을 탔던 흔적이다. 그럴 때마다 의심은 되지만 그렇다고 누가 그랬는지 캐낼 방법도 없고 설사 알아낸다 해도 딱히 어쩔 도리는  없으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해 유해함을 알리고 설득하는 노력을 할 뿐이다.   

종묘상에 가면 씨앗의 종류보다 농약과 비료의 종류가 훨씬 더 많다. 씨앗 한 봉지 심으면서 뿌려야할 화학제품들이 어찌나 많은지... 종묘상에서는 그것 없인 농사가 안된다고 단언한다. 값이라도 싸면 좋으련만 굼벵이 잡는 약, 민달팽이 잡는 약, 하면서 꽤나 비싸게 판매된다. 세계시장의 대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종묘회사의 경우에는 아예 자기회사의 씨앗에 맞는 농약과 비료를 따로 만들어 내고 그것을 셋트로 판매하고 있다. 종묘회사가 물류까지 점령하고 있어서 이 셋트를 구매해 사용하지 않는 농민들의 채소는 판매 경로를 찾기 힘들어지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정말 무시무시한 현실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걸 본적이 없는 분들에게 이제는 화학비료와 농약 없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농사의 상식’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생전 처음 농사를 짓는 초짜들이 화학제품 사용의 필요성도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쓸 생각도 안하는 것 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운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연을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후대를 위해 아끼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땅의 건강함을 지금이라도 조금씩 지켜낼 수 있었으면 한다.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

사무국장   김선정

cafe.daum.net/gcfarmer

'탐방 기고 > 텃밭에서 만난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텃밭요리대회  (0) 2012.07.20

[기관탐방]금천예술공장

              -3년의 시간은 서로 젖어드는 시간

예술공장은 지역을 예술적으로 조망하고 

사회적 가치를 찾아내는 곳

2009년 10월, 금천구 독산1동 제조업이 몰려 있는 곳에 금천예술공장의 개관식이 열렸다. 당시 예술‘공장’이라는 단어와 함께 로봇모형의 조형물이 뇌리에 기억되었지만 직접 가볼 일이 많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이 지나 2012년 8월이 됐다. 

주변에 금천예술공장이 있는 것을 아는 분이 많은데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얼마 되지 않는 기자생활 동안 금천예술공장에서 보내주는 팜플렛이나 안내책자, 전시소개 등을 많이 봤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간단하게 예술공장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말에 김희영 매니저는 “국내외 예술가들이 모여서 작업하는 공간이며, 시민들에게는 참여할 수 있고 열려있는 공간”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금천예술공장은 서울 문화재단 창작공간사업소 8곳 중 하나로 가장 규모가 크고 내용적으로 탄탄하다. 창작공간사업소의 기획은 1차적으로 일반적인 예술가의 창작지원이 목표다. 여기에 지역으로 들어가 섬처럼 분리되었던 다른 창작지원소의 문제를 보완해서 지역재생과 주민에 대한 기여가 목표로 추가되었다. 그에 맞게 주민이 누릴 수 있도록 기본 설계가 되었다. 예술가들이 와도 개인작업과 함께 사회참여, 주민, 지역과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을 요청하고, 그런 사람을 뽑기도 한다. 현재 금천구 주민들의 영화제작 모임인 ‘금천미세스’가 4기 입주 작가로 들어선 것도 이런 배경이다. 

이런 고민들은 실제 다양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김희영 매니저는 “실제 가리봉 쪽방촌 투어 프로그램을 만든 이수영 작가, 시흥동 무지개 아파트의 35가족과 사진작업을 함께 한 정연두 작가 등은 현대미술 정상의 작가들이면서 지역과 함께 한 작품들을 많이 했다.”며 “단순히 교육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을 예술적으로 조망하고 사회적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지난 과정을 설명했다.

이 뿐만 아니라 인근의 금형회사에 벽화작업을 함께하기도 했다. 이 과정을 관내 고등학생들과 함께 4주간의 워크샵을 진행한 후 벽화를 그렸다. 또한 ‘예술가와 1박2일’을 열어 서울시내 고등학생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열기도 했다.


김 매니저는 금천예술공장이 진행하고 있는 지역과 함께, 주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커뮤니티 아트가 현대 미술의 큰 흐름이라고 곁들였다. “이런 미술계의 흐름은 예술의 관계, 소비자와 창작자의 관계를 재조정하고 있다. 때문에 문화 정책 쪽은 변화되고 있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즉, 어떤 특정한 목표․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작가를 선발하는 경향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순수예술 창작지원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예술공간에 없는 성격을 예술공장이 갖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의 만족도는?

김희영 팀장은 “일단 오시는 분들 자체가 의욕적인데다가 만족도가 높아 한 번 오셨던 분들은 꾸준하게 다시 찾는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자기 작업과 참여자들의 요구의 절충점을 찾는 것이 어렵다. 예술가들은 본인이 작업을 하니까 같이 협의해서 해나가는데 생산되는 퀄리티가 창의적이고 높다.”며 “일반적으로 학부형이나 선생님들은 입주 작가들이 갖고 있는 고등교육의 내용과 현대미술의 잠재성 등에 많은 부분을 바란다. 서로의 요구가 다르니 조심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3년의 시간

점심시간이 되면 인근의 공장 노동자들은 예술공장에 오신다. 커피도 마시고 나무그늘에서 쉬기도 한다. 예술공장은 이런 기능을 중요하게 보고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예술공장의 목적과 주민들의 목적 절충이 사업을 하면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3년의 시간은 지역과 예술공장이 서로 젖어들듯이 가까워지는 과정이었다. 


금천예술공장은 올해 지난 6월 28일 제3기 입주작가 오픈 스튜디오와 기획전시 ‘지속되는 예술, 불가능한 공동체’를 진행했다. 오픈 스튜디오가 어떤 의미일까? 

김 매니저는 두가지를 꼽았다. 우선, 예술작업공간은 주민들에게 닫혀있다. 이를 보여준다는 것은 봉사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예술가의 공간은 매니저들도 접근이 어렵다. 일반인들이 와서 볼 수 있는 것은 소중한 기회다. 미술관에는 작품만 있지만 여기는 작가와의 관계도 있다는 것이 큰 차이다. 


마지막 사소한 질문으로 ‘공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유를 물었다. “설계당시 해외사례 중 영국의 군수․제철공장을 개조한 공간을 사용하며 factory (공장)라는 이름을 사용한 예를 인용한 것과 실제 이 공간이 공장을 이노베이션(기술혁신)시켜 만들었고, 이 근처 제조업단지의 지역적 정체성을 고스란히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의미에서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17일 2012 금천예술공장 4기 입주작가 최종 합격자가 공지됐다. 국내 11개팀과 해외 21개팀이 최종 선발됐다. 이들과 함께 2013년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길지 기대하며 금천예술공장 바람을 전한다. “동네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잃지 마시라”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사진 : 금천예술공장 창고동  옥상에 설치된 로봇]




<쌍용차 구로정비본부 정문에서 노동조합이 아침선전을 하고 있다   >


쌍용자동차 정비본부는 구로역 맞은편에 있다. 거기에서 2,30년 일한 노동자들이 상담소에 왔다. 산자와 죽은 자가 나눠질 때 산자가 되었지만, 함께 살자는 노조의 지침과 평생을 함께 일하다 죽은 자가 된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의리를 지켰다는 죄로 징계해고를 당한 분들이다. 3년의 노력 끝에 중앙노동위원회, 행정소송, 고등법원을 통해 징계 해고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 사이에 정리해고 된 노동자들, 정리해고되기 전에 스스로 퇴사한 이들과 가족들이 22명이나 죽은 대 참사가 핏자국 선명하게 찍혔다. 그 험한, 그리고 견딜 수 없는 참담함을 딛고 얻은 승소는 참으로 반갑고 값진 열매다.

회사에서 고등법원에서 패소한 지 3개월이 지나서 갑자기 복직통보를 했다. 그런데 그것도 문서가 아니라 하급 중간관리의 일방적 전화통보다. 하지만 형식이 개똥이면 어쩌랴, 꿈에 그리는 원직복직이면 찰떡이지 하며 기대에 찬 징계 해고자들에게 회사가 전달한 것은 '고등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여 대법 판결까지 잠정 복직을 시키되 복직 다음 날 복직자 모두에게 휴업조치를 한다'였다. 

이런 회사의 통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묻는 방문이다. 휴업조치를 한다는 것은 휴업수당을 지급한다는 것이고 그 비용이 평균임금의 70%이니 좀 낳은 것 아니냐서부터 휴업조치 자체가 부당하다는 것에 대해 상담을 했다. 그런데 쌍차의 경우 이미 징계 해고 직전에 임금의 30%를 노조가 자신 삭감한 상태다. 그래서 실제 복직자가 받을 수 있는 임금은 70%의 70%로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회사는 고법 패소가 대법 패소로 이어질 경우 평균임금의 100%를 근 50% 수준으로 지급하겠다는 속셈이다. 그리고 이런 회사의 조치는 눈앞에 닥친 국회 청문회에 복직을 위해 노력했다는 핑계거리를 만들고 복직이라는 말로 정리해고자들과 입장이 달라져 투쟁에서 멀게 하려는 일석삼조의 의도를 담아 던진 것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22명의 죽음을 불렀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그저 표현이 아니라 절박한 현실임을 증명했다. 함께 살자는 그들의 구호가 얼마나 절절하고 긴박한 구조요청이었는지 알게 했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괴롭히는 것은 회사가 제기한 정리해고의 이유가 회계조작에 의한 거짓이었다. 이를 공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국회 청문회 및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새누리당사 앞 박근혜 의원의 선거 사무실 앞에서 20일째 노숙 농성 중이다. 하지만 바로 앞에 살아 있는 우리 시대 전태일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외면하고 전태일 열사 기념 사업회를 방문한다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행보에 우리 노동자들은 두 번 세 번 가슴에 대못을 박힌다. 

복직이라는 당근과 휴업이라는 채찍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근데 우리의 경험으로는 당근과 채찍은 지나치게 미화된 표현이다. 채찍에는 당연히 손해와 아픔이 있고 당근에는 허탈과 절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리는 회사 측의 이런 수작을 낚시질이라 한다. 

낚시가 굉장히 미화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낚시의 잔인함에 결코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떡밥이라는 유혹, 미끼 속에 숨은 미늘이라는 흉기, 생명을 낚는 그 행위가 결코 미화될 수 없다고 본다. 더욱이 이른바 손맛이라 불리는 그 살생의 전인함이라니.. 특히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차라리 당기는 과정에서 고기를 저항을 하지만 풀어주는 과정에서 더욱 더 힘이 빠지고 저항을 포기한다. 이런 과정은 마치 노사 간의 대립과 협상에서 절박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을 최대한 악용하여 시간을 벌고 회유와 협박을 하는 사용자들의 상용수법과 너무나 닮았다. 3년의 투쟁 끝에 승소한 이들은 3년 동안의 고통, 그 고통을 지켜보며 더욱 힘들었을 가족들의 상처가 복직을 통해 치유되길 원했다. 하지만 22명의 죽음을 보면서 버틴 그들의 바람은 복직 다음날 휴직이라는 생명을 포기하라는 술책에 더 큰 상처로 남고 말았다. 휴업을 개인에게 부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회사의 휴업조치는 개별 징계이자 절차와 과정 그리고 이유도 없는 부당징계라는 것이 상담의 결론이었다.   

최시중이라는 늙은 나이에 감옥에 있는 것이 너무 치욕스러우니 생의 마지막을 위해 석방해 달라는 청원을 했다고 한다. 죄를 지은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감옥에 갇힌 것이 치욕스럽다는 것에서 엠비 정권의 도덕적 수준을 본다. 그러니 자기들은 한 달도 못 견디면서 쌍용자동차 한상균 전지부장을 감옥에서 3년 6개월, 단 하루도 줄이지 않고 만기를 채운 뒤 석방했다. 

이건희 정몽구 그리고 최시중... 유전무죄 유권 무죄, 무전 유죄 무권 유죄. 치욕은 계속되고 있다.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박채란(가산동, 31) 작가 인터뷰

 

월요일, 고양이에서

 

인터뷰를 앞두고 박채란 작가라고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2010년 서울시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선정작가, 동화작가, 다문화 작가 등 그녀를 칭하는 호칭은 다양했다. 작품으로는 2004년 [국경없는 마을/서해문집]로 안산시 원곡본동에 2만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국경 없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에 이어, 2007년 [국경없는 마을]의 동화버전 인 [까매서 안 더워? / 파란자전거]를 집필했다. 이후 2009년 청소년 자살이라는 다소는 무거운 주제를 담은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사계절] 펴냈다. 이후 김은의, 이미지 작가와 기획집필팀<날개달린 연필>로 활약중이다.

 

작가와 만나기로 한 월요일, 책읽는 고양이에 들어서자, 한참 청소기를 돌기고 있는 박채란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청소년 북카페 ‘책읽는 고양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박 작가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사진을 먼저 보아서 일까? 오랜 친구처럼 친숙한 느낌이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다짜고짜 작가에게 물었다. “동화작가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니면 그냥 작가라고 불러야 하나요?” 무지한 내 질문에 박 작가는 “동화작가란 말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아요. 내가 동화를 특별히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라며 “요리를 한다고 생각하면 재료가 있을 거에요. 가지, 양파, 호박 등 재료에 맞게 요리를 하게 됩니다. 요리하는 사람한테는 식재료가 가장 존중해야 할 대상이죠. 글에선 그 재료가 영감이에요. 그 영감이 아이들에게 맞았던 것 일 뿐입니다. 그것이 어른이나, 노인, 여자들에게 맞다면 그들을 대상으로 한 글을 쓸 겁니다. 난 동화를 쓴다기 보다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꺼내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라는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돌아왔다.

 

첫 작품 [국경없는 마을]

 

원래 소설가가 꿈 이었다는 박 작가는 어려서 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2001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함께걸음]에서 기자로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 즈음 출판사 서해문집으로부터 다문화 관련한 책을 써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21세 박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완전 신인’이었던 박 작가는 단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덥석 제의를 받아들였다. 막상 계약을 하고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힘들었다. 박 작가는 그 때를 회상하며 “알고보니 내 앞에 세 명이나 째고 나갔다더라구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서 그 작업이 얼마나 힘든 일 이었는지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국경없는 마을]은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국경없는 마을’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써낸 작품이다. 책이 출판된 2004년 보다 2010년 다문화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며 서울시 한도서관 한책 읽기 도서로 선정되면서 다시 한 번 재조명된 작품이다.

 

동화와의 인연 [까매서 안더워?]

박 작가가 [국경없는 마을]을 집필한지 약 1년여가 지난 어느날 교회 언니로부터 동화공부를 함께 하자는 권유를 받았다. 언니와 함께 동화공부를 하면서 들었던 이금이 선생님의 강의는 박 작가가 동화를 쓰게 된 인연이 되었다고한다. 당시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박 작가는 “국문과 4년을 다녔고, 문학을 평생 꿈으로 안고 살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이 동화에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그 무렵 다시 출판사로부터 [국경없는 마을]을 아이들이 읽기 좋은 형식으로 써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고, 박 작가의 첫 번째 동화 [까매서 안 더워?]가 탄생하게 되었다. [까매서 안 더워?]는 [국경없는 마을]과 함께 ‘2010년 한 도서관 한 책읽기’ 선정도서가 됐다.

 

글을 쓰면서 가장 행복했던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를 쓰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분량도 7~800매로 박 작가가 처음 쓴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박 작가는 사이프러스를 썼던 2007년 1월에서 4월까지의 시간들이 글을 쓰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서울시청 정동교회 인근에 작업실을 얻어서 글을 썼는데 등장인물 4명의 이름을 청바지에 적어서 다녔다고 한다. 박 작가는 “등장인물 이름을 잃어버릴까봐 그런 것도 있지만, 버스를 타고 다니며 청바지에 적힌 아이들의 이름을 보며 계속 생각했어요.”라며 “글을 다 쓰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덧 봄이 와 있는 거에요. 글을 쓰는 넉 달 동안 뭔가 다른 세계에 있다가 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라며 그때의 감상을 전했다. 또 “내 삶과 인생에 대해서 다 들어간 책이에요.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해서 못 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는 십대 아이들의 고민과 성장통을 그린 소설로, 자살이라는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가지고 삶과 죽음, 사랑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박 작가는 “책이 나온 날이 하필 노 대통령이 돌아가신 날 이었어요. 책이 나온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많이 울었어요.”라고 그 때를 회상했다.

 

은교에게 추천하는 책 [비밀의 화원]

 

박 작가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은 [비밀의 화원], [하이디], [세라 이야기] 등 만화나 짧은 그림책으로만 봤던 책들이다. “이 책들 완역본으로 봤는데 정말 훌륭하고 아름다운 책 이에요. 특히 비밀의 화원은 작가가 죽기 직전에 만든 책이라 작가의 인생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또 “방정환, 이원수, 마해성, 현덕 선생님 등은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은 고전들로 정말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3일은 결혼 후 10여년만에 첫 딸 은교가 태어난 날이다. 박 작가는 “내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게 할까 고민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만약에 아이가 한 권 밖에 책을 읽을 수 없다면 [까매서 안더워?]보다 [비밀의 화원]을 주겠다.”고 말했다.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청소년에게

 

“작가가 어떤이들만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 내가 시를 쓰고, 글을 쓰면 오늘은 내가 작가에요.”라고 말하는 박 작가는 “머리로 우리 자신을 검열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것을 위해 자신도 매일같이 머릿속 검열을 거치지 않고 그냥 쓰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고 귀뜸했다.

 

독자들에게

 

“작가랑 독자 인연으로 만나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것 같아요. 독자는 수 천만권 중 한 권을 골라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글을 써야 해요.”라며 “건강하고 좋은 글을 죽을 때까지 쓰고 싶고 그것이 나의 소원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남현숙 기자

kasizzang@naver.com

 

벽산5단지 테니스 클럽

 

지난 11일 토요일 오후 5시 벽산5단지 아파트 503동 앞에 위치한 벽산5단지 테니스클럽(이하 벽오클럽)을 찾았다. 계단식으로 붙어있는 두 개의 테니스코트 에서는 각각 4명의 회원들이 복식경기를 하고 있다. 땀 흘리며 공을 치는 모습이 무더운 여름 날 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쾌해 보인다. 그들 뒤로 관악산이 병풍처럼 웅장하게 펼쳐져 있어 청량감을 더 한다.

 

코트 한쪽에 마련된 컨테이너 사무실은 한쪽 벽면에 통유리로 된 커다란 창이 있어 두 개의 테니스코트에서 펼치는 경기를 모두 관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운동을 막 마치고 들어온 한 회원은 시원한 물을 마시며 의자에 앉아 창 밖으로 다른 회원의 경기를 관전한다.

 

창 위에 오래된 사진들이 걸려있다. 그 사진들이 벽오클럽의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하다. 벽오클럽은 2002년 월드컵이 있던 해 9월 입주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모임이 만들어 졌다. 이강국 고문은 “벽산5단지에는 테니스코트가 3개가 있다. 그중 2개가 503동 앞에, 금동초등학교와 524동 사이에 1개 있다. 테니스코트가 있으니 자연히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모임이 만들어 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사무실 한쪽 귀퉁이 캐비넷 위로 트로피 및 상패 등이 눈에 띠었다. 이 고문은 거기서 한 트로피를 꺼내며 오랜 먼지를 털어냈다. 2004년 000대회 단체부문 2위 트로피이다. 트로피를 내 보이며 0 고문은 “벽오클럽에서 처녀 출전한 대회에서 받은 단체전 준우승 트로피” 라고 설명한다. 첫 출전한 대회에서 그것도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으로 받은 상이라 다른 그 어떠한 상 보다 의미가 남 다른 상이다. 트로피 뒷면에 검정색 매직으로 이강국, 장종범, 김종배, 이호연, 김호실, 박정규 라고 당시 출전했던 영광의 주인공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2002년 20여명의 회원이 지금은 68명이 되었다. 이 고문에 따르면 벽오클럽은 관내 테니스 클럽 20여개 중 가장 많은 회원이 활동하는 가장 활성화 된 클럽이라고 한다. 회원들의 연령은 26세에서 75세로 연령층이 다양하며, 특히 부부회원이 전체 회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는 테니스가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 좋은 운동임을 나타내는 수치이다.

 

이 고문은 “벽오클럽 테니스장은 테니스 하기 좋은 천혜의 환경을 갖췄다.”고 자랑한다. 그 이유로 “벽산아파트가 해발 190m에 자리하고 있으며, 관악산이 보이고, 아래 시흥5동과의 기온차가 2도가 더 낮게 나온다.”고 말 하며 또 “3시 이후 해가 너머가 그늘 가에서 운동 할 수 있다. ”고 설명한다.

 

오늘의 벽오클럽이 있기까지 주민들의 반발도 많았다고 한다.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파이팅! 소리 등이 소음이 되었고, 또 경기장을 밝히는 조명도 문제가 되었다. 벽오클럽 뿐 아니라 다른 아파트 단지 내 테니스 클럽들이 이러한 주민과의 갈등으로 없어진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벽오클럽은 주민들에게 코트 하나를 개방하여 테니스 이외의 베드민턴이나 걷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명절 때마다 단지 내 노인정 등을 챙기는 등 테니스장의 존재이유를 설득키 위해 3~4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다음 달인 9월 벽오클럽은 10주년을 한 달 앞두고 있다. 이 고문은 “지난 10년간 우여곡절이 많았다. 회장과 고문단 중심으로 회원들이 일심단결하여 오늘의 벽오클럽이 있는 것”이라며 “나에게 벽오클럽은 휴식처이다. 언제든 마음 편하고 내 건강을 지켜 주는 곳이며, 힘들 때 평온함을 주는 곳”이라고 말 하며 조금은 귀엽게(?) “벽오클럽 forever”라고 덧붙였다.

또 최인식 부회장은 “벽오클럽에 들어온지 5년이 됐다. 부회장을 맡고 있는 올 해 10주년을 맞이한 뜻 깊은 해 있다. 클럽이 발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 행복하고 건강한 체력을 갖출 수 있는 한해, 웃음 만발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회장님을 대신해서 회원님들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진심이 전해졌다.

남현숙 기자

 

지난 11일 시흥2동 벽산5단지 아파트 503동 앞에 위치한 테니스 코트에서 벽산5단지 클럽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복식경기를 하고 있는 벽오클럽 회원의 모습

복식경기를 하고 있는 벽오클럽 회원의 모습

어렸을 적 시장에 장사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면 밤 10시가 넘어서 우리 형제들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소리에 눈비비고 일어나면 닭과 통마늘을 삶은 냄새와 김이 방안 가득하고 상이 차려져있다. 잠이 덜 깬 채 어머니께서 입 안에 들이민 닭고기를 먹는다. 부드럽고 쫄깃한 닭고기를 씹다보면 어느새 잠이 깬 우리 형제들은 모두 부지런히 닭고기를 먹고 있다. 닭을 다 먹고 나면 한 쪽이 물러서 둥그렇게 도려낸 복숭아를 하나씩 건네신다. 이렇게 우리는 배불리 밤중 복달임을 하고 또다시 행복한 표정으로 다시 누워 잠을 잔다. 그날 어머니는 복날 팔고 남은 닭을 닭장사한테 떨이로 싸게 두어마리 사와 통마늘만 몇 줌 넣어 석유곤로에 심지를 크게 키우고 얼른 삶았으리라. 그때는 닭에 인삼을 넣고 삶는 게 호사였고 썩지 않은 멀쩡한 복숭아를 사먹는다는 게 우리 식구들에게는 사치였다. 우리 오남매는 몇 년을 그렇게 밤중 복달임을 해도 닭먹고 체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맛있고 아까운 것을 먹고 체하면 불효니까. 통마늘만 넣고 닭을 삶아오던 어머니도 오래전부터 인삼 등을 넣어 삶고 몇 년 전부터는 녹두를 넣어 닭죽을 끓여 주신다. 몸에 겁나게 좋다며.

어머니 생각에 녹두삼계탕을 먹으러 간 시흥보신탕에는 보신탕 손님 대 녹두삼계탕 손님이 6대 4의 비율이었다. 대한민국의 대표 보양식은 역시 보신탕이 약강세이다. 음식점 안의 작은 가구들과 입구의 대기 의자도 세월이 묻어난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다. 큰 방 하나와 단체방 3개가 있는데 큰 방에는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연상되는 꿩 박제가 녹두삼계탕을 먹는 우리들을 살짝 내려다보고 있다. 한물간 이 박제유행물 또한 시흥보신탕의 역사이리라.

녹두삼계탕은 우리가 흔히 먹는 삼계탕의 재료에 녹두를 넣고 끓인 것이다. 입맛 떨어지고 심하게 아플 때 어른들이 녹두로 자주 죽을 쑤는 것을 보고 닭과 녹두를 같이 끓이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보신탕과 녹두삼계탕의 두 가지 메뉴로 올해로 11년 째 영업을 하고 있는 시흥보신탕 주인아주머니(오영심·50세)의 메뉴개발에 대한 설명이다. 보신탕과 녹두삼계탕의 조리비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인아주머니가 아닌 주인아저씨(배윤식·51세)이다. 시흥보신탕을 개업하기 이전에 어떤 음식점도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용감하게 음식점 문을 연 것은 음식에 관심이 특별한 배윤식 씨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는 집에서 한 번씩 다 해볼 정도로 음식에 대한 관심이 유별났어요”

이곳 녹두삼계탕은 성질 급한 사람은 못 먹는다. 주문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하여 25분 후에나 녹두삼계탕이 나온다. 뚝배기 안에 영계, 대추, 인삼, 밤, 은행과 함께 푹 퍼진 찹쌀과 녹두가 뜨거운 김을 뿜고 있다. 뜨거운 영계를 건져서 닭다리를 뜯으니 퍼지지 않는 쫄깃함이 또다른 부위는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살을 다 발라 먹고 나서 뚝배기에 남은 걸쭉하고 담백한 눅두죽을 다 먹으면 배가 많이 부른다.

11년 째 맛있다며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오는 특별한 비결에 대하여 물으니 “특별한 비결은 따로 없어요. 그냥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 써서 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보신탕이 더 맛있다고 하는디….” 

주인아주머니 오영심 씨는 더 맛있다는 보신탕을 먹지 않은 게 못내 아쉬운 것 같다. 

앤드류 카슨 박사(Andrew D. Carson)가 주장한  ‘10년의 법칙’이란 게 있다. 어느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성과와 성취에 도달하려면 그 분야에서 지속적이고 정교한 훈련을 최소한 10년 정도는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음식점에서 단 두 가지의 메뉴로 10년 이상 영업을 했다면 어느 수준에 도달한 맛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에 고단백의 보양식을 먹는 이유는 무더위로 지친 몸의 원기를 돋우어 주고 가을을 잘 넘기기 위해서이다. 녹두삼계탕에 들어가는 닭은 속을 데우고 간의 기능을 개선시켜주며 소화흡수가 잘 된다. 또 녹두는 몸의 노폐물을 해독해주고 열을 내리게 하고 식욕을 돋우며 피로회복에 좋다.

예전부터 우리 어머니도 뭘 알긴 알으셨나보다. 밤중에 먹어도 소화 잘되는 닭을 삶아준 걸 보면. 




시흥보신탕·녹두삼계탕 (전화:894-0172, 주소: 서울시 금천구 시흥1동 895-4) 

*기다림에 약하신 분 녹두삼계탕은 30분 전 예약필수


김현미 독산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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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박물관에서 놀자 -다섯번째 이야기


박물관에서 공부를 한다고? 박물관에 가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공부라고 하면서 그런데 왜?  특별히 공부를 하러 간다고 하는 것이지? 꼭지 제목은 ‘박물관에서 놀자~’라고 해 놓고 박물관에서 웬 공부? 

이번 글부터 몇 회에 걸쳐 정말 박물관에서 공부하는 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물론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럼 무슨 공부를 하다는 것이지? 

박물관에서 사회공부하기다. 박물관은 역사공부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어려워만 하는 사회공부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어떻게 할까? 초등생을 중심으로 설명해 보자. 먼저 사회교과서를 펼친다. 4학년 2학기, 6학년 1학기에 경제가 다루어진다. 경제? 머리부터 아파온다. 생산과 소비, 분배, 효용가치, 환율……. 경제용어만 들어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박물관에서 해결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돈에서부터 출발하자. 우리나라 돈을 발행하는 기관은 한국은행. 이곳에도 박물관이 있다. 화폐금융박물관이다. 물품화폐부터 철전, 은병, 상평통보는 물론 현용 화폐에 이르기까지 돈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세계의 화폐도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되어 있어 아이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위조지폐 코너에서는 아이들이 천 원짜리를 들고 연신 “내 돈이 진짜 돈인가”를 살핀다. 

또한 중앙은행이 하는 일, 물가가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인플레이션도 필수코스. 다른 나라의 화폐 단위와 환율계산도 척척할 수 있다. 경제가 보인다. 2층에 올라가면 돈이 잔뜩 쌓여 있는 금고에 들어 갈 수 있다. 실제 돈자루를 들어보면서 돈의 무게를 가늠해 볼 수 있다. 1억 원을 들면서 누구나 한마디씩 한다. “무거워도 좋아. 이 돈이 내 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등장한 화폐도 만들어 가져갈 수 있다. 돈이 가깝게 느껴진다. 대전에 있는 화폐박물관에도 화폐의 발생에서부터 역사, 제조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돈을 보았으니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을 둘러보자. 신세계에서 운영하는 한국상업사박물관에서은(지금은 보완을 위해 휴관중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상업의 발달과 유통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삼국시대 시장에서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상거래에 쓰였던 물건들과 문서, 도량형도구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옛시장의 모습은 서울역사박물관과 농업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 국가가 관리했던 시전과 지금의 동대문시장 부근의 인현시장과 남대문시장인 칠패시장, 한강의 경강시장(노량진, 마포, 용산, 송파…) 등을 만날 수 있다. 농업박물관에는 실제 시골 장 구경나온 사람처럼 어슬렁거릴 수 있도록 커다란 장터를 재현해 놓았다. 쌀, 닭, 생선도 팔고 있고, 대장간 구경도 한참 할 수 있다. 물론 배가 고프면 국밥 한 그릇 먹을 수 있었던 주막도 구경거리다. 

돈도 벌었으니 저축에 관심을 기울일 때. 은행의 역사와 하는 일은 신한은행이 운영하는 한국금융사박물관과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에 가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한국금융사박물관은 진대법과 같은 구휼제도부터, 객주, 전당포,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은행 등 금융의 역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당나귀는 왜 은행에 갔을까?” 질문의 답을 찾다보면, 은행의 역할을 알 수 있다. 2층 체험실에서는 1원짜리가 몇개 모이면 100만원이 되는지 아이들과 헤아려 보면 신이난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은 말 그대로 은행의 역사가 있는 박물관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인 식민지시대의 은행을 보면서 새삼 민족자본의 중요성도 깨닫고, 한국전쟁 때 임무를 다하는 은행원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진다. 은행하면 저축이 떠올려지는 것은 당연. 이곳엔 저금통갤러리가 유명하다. 그저 구멍 뚫린 저금통인줄만 알았는데 2억에 달하는 저금통이 있다! 그것도 이곳 은행사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 세상에 단 두 개만 있단다. 

박물관 둘러보기가 끝나면 아이들과 시장과 대형마트를 가자. 생산과 소비, 유통 이러한 것들이 용어가 아니라 나의 일상생활이라는 것을 직접 느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오현애 회장

필자는 시흥4동에 거주하며 '박물관이야기' 회장이다. 금천교육협동조합 나눔 발기인회 대표로 활동하고있다.

 


[정치] 박근혜 의원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 주장 

5.16이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라는 것은 역사적 판단이 이미 끝났다. 그래서 역사교과서에서도 군사 쿠데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박근혜의원은 자기 아버지인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가 '불가피한 최선'이라는 역사적 재평가를 했다. 그러면서 이견이 있으니 '국민의 판단 역사의 판단에 맡기'란다. 

결국 독재의 상징이자 헌법 파괴의 불행인 5.16 쿠데타, 군사독재정권의 시작을 긍정한 것이다. 나아가 1987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를 부정한다. 이것이 '시대착오적이고 위헌적'이라는 비판이 이는 나오는 이유다. 

최근 극우세력들이 일제의 침략으로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니 이러다간 곧 이완용도 "불가피한 최선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했다."라고 주장될 것 같다. 

[경제] 뱅스터를 아시나요. - CD금리 조작사태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의 리보, 유리보 금리 조작사태 후 뉴욕 연방준비은행 방치 의혹과 함께 피해자들의 고소가 제기되는 등 국제 금리 조작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국제 은행들이 결국 은행 강도 또는 은행을 무기로 강도짓을 한 뱅스터들이라 비판하고 있다. 이것과 동일한 사태가 한국에서 발생했다. 금융권의 CD금리 조작사태다. 

"278조에 달하는 변동 가계대출금액에 비춰, 금융사들이 갈취한 부당이득 규모는 조 단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이 가계부채 900조원 시대를 ‘국민성공시대’라며 서민들의 등을 치더니, 금융사들마저 ‘고리사기’로 서민들의 등골까지 빼먹은 셈"이다. 이런 사태를 통해 확인 되는 것은 시장이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돌아간다는 말은 완벽한 사기라는 거다. 이미 자기들이 다 짜고 쳐 서민들을 봉으로 삼는 야바위판 그것이 현실 자본주의다.  


▢MB,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골프 소비세 인하 등을 추진'

22일 이명박 대통령이 민관합동토론회에서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골프 소비세 인하 등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경실련은 "부동산 투기조장을 통해 거품을 키우고, 가계부실과 함께 금융부실을 더욱 키우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빚을 더 내서 빚을 해결하겠다는 이상한 정책이다. 

한마디로 집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했는데 집값이 하락해서 대출 이자조차 값을 수 없자 국민들이 빚을 더 내 집을 더 사고 골프를 더 쳐달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우스푸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하우스 푸어 양산 책이라는 비판은 불가피하다.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강남사람들을 위한 부동산 정치라는 막장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보복은 나의 천성? - 정치 검찰의 막장 압수 수색의 천박함 

지난 19일 민주당 이석현 의원의 보좌관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보좌관의 개인 비리라고 하지만 세 살배기가 봐도 전날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봉 제공 사실을 폭로한 민주당 이석현 의원에 대한 정치보복성 수색이다. 

엠비의 비리와 측근 비리에 대한 거북이 대응과 달리 야당 후보에 대해서는 단 하루 만에 번개 불에 콩 구어 먹듯이 압수수색을 하는 것을 보면 그 기민성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그럴수록 천박해 지는 것도 모르고... 법이라는 무기를 휘두르는 이들은 항상 민심은 천심이라는 잣대에 의해 검증받아야 한다. 

아니면 법 자체가 국민을 향한 권력의 흉기가 되기 때문이다. 경찰을 보고 짭새, 졸개라고 했다고 벌금을 때리는 현실에 와서는 우리나라 법은 이미 보편성과 일관성을 잃은 권력의 흉기다.  



[세계] 대북 풍선 날리기는 '동까모'로 귀결됐나? 

북한이 최근 김일성 동상을 파괴하려는 사람을 적발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는 남한 내 탈북자 단체인 '동까모'(김일성 동상을 까는 모임)와 남측 정보기관, 미국의 사주로 국경지방의 동상을 파괴하려다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북민전(북한인민해방전선) 대표이자 자유북한방송 대표인 김성민의 권유로 동까모에 가입하고 이후 한국과 미국의 정보기관원을 만나 보온병 형태의 폭발물 투척기와 원격조종기를 이용한 동상폭파계획을 설명 받고 계획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국정원은 이를 부인했다. 통일을 공작으로 하는 것, 간첩을 파견하는 것을 우리는 천인공노할 범죄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하면 로맨스인지? 만약 남한에서 북한이 어디를 파괴하는 것이 적발됐다면 아마 수십일 지면을 장악할 텐데 너무 조용한 남한 언론, 참 애국적이다. 그리고 위선적이다. 


참여에는 목적의식이 있어야

금천in이 만난 금천人 -장제모 박미사랑 마을협의회 회장

2012년 7월, 요즘 서울시와 금천구 의 화두는 무엇일까? 단연코 마을만들기다. 

마을이 무엇일까? 마을만들기라는 것은? 그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들이 벌어지고 있고, 강의들도 쉼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현장에 머리 희끗한 분이 계속해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사람이 장제모(71세)씨다. 장 씨는 현재 시흥3동에 살고 있으며 휴먼타운인 ‘박미사랑 마을협의회’ 회장이면서 시흥3동 주민자치위원이다.

장 회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부산 동래고 3학년 때 4⋅19혁명에 참가한 국가유공자이면서,


20대에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용사이기도 하다. 베트남전쟁의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으로 오랜시간 고혈압, 당료와 싸워오고 있다.

2006년부터 주민자치위원회 일을 시작했다. “봉사에 대한 고민들이 많았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 봉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다 2002년인가? 반상균 청장시절에 시흥3동에 쓰레기 소각장을 건설한다고 했을 때 구청당국의 주먹구구식, 대충대충 강행하려는 것을 보았다. 동네 주민들도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제안들이 나오고 있지 않았다. 그때 몇가지 법적인 문제를 제기했고, 공청회의 패널로 나가기도 했다. 그런 움직임들로 결국에는 쓰레기 소각장은 취소됐다. 그 후 2006년부터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서울시정을 모니터하면서 여기가 왜 낙후되었는가 반문했다. 그래서 지역사회,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접근을 하게 됐다. 



“주민자치위원회에 와보니까 예전의 동정협의회 같았다. 관청의 들러리 성격이 짙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최고령자다. 위원장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보고자 한다”고 소감을 이야기 했다.

주민자치위원회 운영에 대한 제안도 이어졌다. 

"원래 취지가 이런 것이 아니다. 회의시간도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오기 힘든 구조고, 위촉과정도 문제다. 말이 오픈이지 인터넷에만 오픈하면 누가 보는가? 시흥3동은 위원장 및 위원들이 나름 규정을 만들었다. 3번 이상 안나오면 위원에서 퇴출된다. 그리고 문어발식 다리 걸치기를 금지하고 있다. 어떤 일이던지 논의는 생산적이어야 한다. 여지 저기에 이름을 걸면 안된다. 그래서 2가지 이상을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정당국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행정당국이 왜 주민자치위원회를 만드는가? 주민들의 참여? 참여에는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 회의도 사전에 안건을 만들고, 임원회의를 통해 다듬어 위원회에서 심의 통과 시켜야 한다. 그런데 주민자치위원회의 공간도 없다. 주민자치위원회는 동장의 부속기구가 아니다. 하다못해 회의록이나 문서를 보관할 곳도 없는 게 현실이다. 간사는 회의록을 만들고 총무는 회계장부를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구청은 위원회가 기능을 잘 하는지 감사도 해야한다. 그 대신 견재와 일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야 한다. 자부와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거버넌스라고 하지 않나? 당국만 행정을 하는 시대는 아니다. 주민자치위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넘겨야한다. 그래야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그런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합리적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장 회장은 시흥3동을 훌륭한 자연환경을 가진 곳,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동네로 소개했다. 여기가 휴먼타운으로 됨으로써 금천구의 전체적인 동력으로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요즘 매우 바쁘다. 휴먼타운 안에 건립될 마을회관에 대한 사업과 그 회관을 바탕으로 마당을 만들고 골목축제를 만들 계획이다. 둘레길과 연결시켜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노인들, 청년들, 장년들을 모아 우리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있다. 또한 유통상가를 우리 동네만의 특성으로 보고 이를 장점화하는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장제모 회장이 꿈꾸는 마을은 어떤 것일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의다. 정의가 사라지면 혼란과 불만이 있게 마련이다. 다양성이 있어 우리가 있듯이 저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부정의 요소, 배격의 요소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정의에 바탕하게 된다면 부작용이 안생길 것이다. 이것을 위해 노인세대들이 거름역할을 해야한다. 그런 뜻에서 틀⋅제도를 만들면 각자가 다 자기의 일을 하고  어우러질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이상으로 가지는 마을, 커뮤니티의 모습이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7월 1,2째주 뉴스 브리핑입니다. 


[정치]

▢ "박근혜 대선출마 선언,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 선포"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대선 출마 선언이 지난 10일 영등포에서 있었다. 젊은 층과의 소통의 장소로 택한 것인데 반값 등록금을 원하는 학생들과 충돌로 시작된 대권 레이스다.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가 설마 박근혜 개인의 꿈만 이뤄지는 나라는 아니겠지. 변화 희망 미래 행복을 말하지만 반성 개혁 소통 비전이 없는 출마선언이라는 야당의 논평 속에 이미 국회 다수당인데 공약이 왜 필요한가? 바로 실천을 하면 되는 데라는 누리꾼들의 요구가 눈에 박힌다. 


▢ 상왕의 추락 - 엠비 형 이상득 의원 구속 

레임덕이 구체화 된 것인가? 11일 이상득 의원은 저축은행에서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 친형의 구속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 한다. "죄송합니다" 이게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권좌의 마지막 말이다. 현 정권의 실세였던 박영준 전 차관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구속 수감된 상태이니 대통령 빼곤 다 구속된 셈인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 쓰고 도둑 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 읽은 우리 정치의 비극은 이렇게 아직도 썩은 내를 풍기고 있다. 


[경제]

▢ "한국 가계부채, 스페인보다도 심각"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WP)>가 한국이 심각한 가계부채로 유럽 재정위기 국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할 수 있다며 국가 디폴트(국가파산) 가능성을 강력 경고했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와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한국의 가계부채가 국가 디폴트에 빠진 스페인-그리스보다 심각하다고 경고한 데 이은 것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국제적 비관론이 빠르게 확산되는 모양새다. 구체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 빚이 가처분소득의 155%인데 2007년 미국의 가계 빚은 가처분소득의 140%에 달했으나 지금은 120%로 떨어졌고, 스페인도 130% 수준이었다. '저축의 나라'한국이 빚쟁이 나라가 된 것은 당연히 1997년 외환 위기부터인데 정부는 만기가 된 대출을 연장해 주는 것으로 책임을 다한 것처럼 반응하고 있다. 다음 대통령의 고생이 눈에 선하다. 


[사회]

▢ 권력의 무도함과 뻔뻔함을 보여주는 박창근 교수에 대한 고소

박창근 교수는 엠비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일관되게 비판한 학자다. 박교수에 대해 최근 공사사상 최대의 부정비리 구속자를 낸 한국수자원 공사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검찰에 고소를 했다. 4대강 사업의 치명적 부실을 은폐하려는 국토부와 수자원공사의 꼼수라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평가다. "합천댐, 함안댐의 대규모 세굴을 반년 이상 숨겨온 수공이 이를 비판하는 민간전문가를 고소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며 도둑이 매를 든 꼴이라는 비판이다. 국가사업과 관련한 어떠한 비판과 의견도 받지 않겠다는 불통 정권의 또 다른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국제]

▢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을 떼려는 쥐는 고양이의 편이다. 

일본은 전범국가고 한국은 그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다.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는 것은 조폭 살인범에 채워진 수갑을 피해자가 따 주는 것과 같다. 특히 일본총리 직속 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이란 말로 제3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군국주의 재무장 야욕을 분명히 하는 차원에서 더더욱 위험한 행위다. 일본은 이번 협정을 통해 내부적으로는 집단자위권 허용을 추진하고 외부적으로는 한국과의 군사협정을 추진했던 것"이라는 것이 야당의 분석이다.  "핵무장과 집단자위권 등 한걸음 한걸음 군사대국으로 재무장의 길을 가고 있는 일본과 군사적 협력교류의 폭을 넓히는 것은 일본 내 우익정치세력의 염원을 이명박 정부가 앞장서 풀어주는 꼴"이다. 동학농민군 진압하겠다고 일본 군대를 한반도에 끌어들여 식민지 노예가 되었던 구한말의 바보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다.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금천구청 앞 큰 텃밭의 개장식이 4월에 있었다. 그후 많은 사람들이 상추, 오이,고추 등을 심고 거두었다.

마을신문 금천in 과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도심 속 소중한 공간인 금천한내텃밭에서 일어난 일들을 연재를 기획하며 금천구에서 다양한 텃밭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해본다.

비온 뒤라 그런지 햇살은 더 뜨겁고 끈적끈적 올라오는 습기 때문에 숨만 쉬어도 땀구멍에 이슬이 맺히고 등짝이 찰싹 들러붙는다. 채소 색깔이 만약 초록이 아닌 주황이나 분홍색이었다면 어쩔 뻔 했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생각이 스칠 즈음 어디선가 왁자지껄 하게 들이닥친 사람들이 있었다.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호기롭게 나타난 이들은 여성발전센터에서 ‘도시농업지도사’ 과정을 수강하고 있는 늦깍이 학생들이다. 숨도 쉬기 힘든 날씨에 요리를 하기로 했단다. 네 개 조로 나눈 사람들이 서로 자신들이 준비한 음식을 뽐내면서 만들기 시작했다. 상대팀을 견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양으로 승부한 떡볶이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꼴찌를 먼저 꿰찼고, 채소 샐러드는 옆 팀 샌드위치 속으로 들어갔다. 

텃밭을 소재로 한 요리를 한 접시씩 출품(?)하는데 세심한 데코레이션까지 합쳐져 멋진 작품전이 되었다. ‘상추불뚝전’, ‘오감을 자극하는 영양만점 샐러드’, ‘주물럭 샌드위치’, ‘푸짐한 나눔 떡볶이’로 붙여진 작품들은 노란 치커리 꽃과 상추, 집에서 직접 가져온 바구니와 예쁜 접시로 장식되었다. 숨도 쉬기 힘들었던 방금 전과는 달리 눈으로만 봐도 즐거운 음식들을 보면서 온 몸이 시원하게 식혀지는 것 같았다. 역시 여성들은 위대하다! 








이어서 텃밭운동회 기획이 시작되었다. 풀잎으로 허수아비 만들기, 고랑 천천히 갔다 오기, 깻잎 입으로 이어 날리기, 밀짚모자 손 안대고 이어 옮기기, 몸으로 채소이름 말하기, 씨앗이 싹트는 모습 연기하기 등 재미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도시농업을 접하면서 열정에 넘쳤던 예전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씨앗 하나도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고 감자 하나를 심으면서도 길게 토론을 해야 했던 그 때가 엊그제 같다. 두둑에 감자를 엎어서 심어야 하는지 뒤집어서 심어야 하는지, 두둑 한가운데 심어야 하는지 옆구리에 심어야 하는지... 끝도 없는 토론하느라 주변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머리통만한 고구마를 보고 깜짝 놀래고, 주먹만한 애기 수박을 보면서 콩닥거렸던 ‘처음의 그 설레임’은 지금도 내 맘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 사무국장   김선정

cafe.daum.net/gcfarmer

우리를 살찌게 하는 것들 쓰레빠 가이드 



비가 오는 금요일 저녁 독산3동 남문시장 주변에 있는 탁주·만세전을 찾았다. 염상섭의 <만세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맛있게 다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만세! 부르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만세전’이라는 상호를 붙인 곳이다. 만세전에는 역시나 비오는 날이라고 막걸리와 파전이 땡겨서 집 나온 사람들이 참 많다.

비오는 날, 전국민이 막걸리와 파전이 땡기는 이유에 대한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비가 와서 우울한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세로토닌이 막걸리와 해물파전에 들어있는 단백질과 비타민B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라는 설과 또 하나는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파전 지글거리는 소리가 빗소리와 비슷해서 땡긴다는 설이다. 빗소리와 파전 지지는 소리가 비슷해서 땡긴다는 설에 대해서는 그럼 천둥칠 때는 뻥튀기가 땡기냐고 딴지를 걸고 싶다.

주문을 하니 찌그러진 노란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 각종 해물을 넣고 노릇노릇 지진 파전, 김칫국, 김치, 야채 양념장이 나온다.  만세전은 부부기리 운영하는데  주방은 주인아저씨(방영재, 43세) 담당이고 테이블 6곳은 주인아주머니가 담당한다.

만세전 메뉴에는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각종 전류, 무침류, 볶음류, 찌개류가 있다. 오돌뼈와 무뼈닭발 그리고 모래집 무침은 각종 야채에 버무린다.  낙지와 쭈꾸미 볶음은 소면 외에도 밥을 주문하면 남은 양념으로 볶아서 나오는데 공짜다. 소주파인 필자는 안주로 시원, 칼칼한 해물짬뽕을 자주 시킨다.

만세전의 모든 메뉴를 만드는 손은 양식조리 주방장 타이틀 20년의 관록을 지녔다. 독산사거리의 빌딩 스카이라운지에 있던 그 옛날의 캘리포니아, 건너편 국민은행 지하 아마데우스 레스토랑의 주방장 등을 두루 거쳤다. 또 육회지존이라는 프렌차이즈 회사의 드레싱을 개발을 했던 손으로 즉석에서 모든 메뉴를 만들어준다. 방영재 씨는 지금도 예전 몸담았던 프렌차이즈 회사들이 메뉴개발을 의뢰하면 메뉴개발에 참여하기도 한다. 손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

“대학 낙방 후 미용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어요. 그때는 자격증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했거든요.”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음식을 만들고 김치도 함께 담궈서인지 음식 만드는 일에 쉽게 빠져들었다. “이후 학창시절에 먹은 돈가스가 너무 맛있어서 또 만드는 게 무척 궁금해서 양식의 길로 들어섰지요” 아직도 어려서 어머니가 비오는 날 만들어주셨던 김치전과 빈대떡이 가장 맛있었다고 한다.

비가 오면 막걸리와 파전을 혼자 먹는 사람은 없다. 비오는 날에 혼자 먹는다면 더욱 우울해질 것이 뻔하다. “비도 오는데 저녁에 막걸리에 파전 어때?” 하면서 사람들을 불러낸다. 비가 와서 기분이 꿀꿀한대 이 사람과 마주하면 즐거울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사람과 만날 구실이 되는 게 바로 비, 막걸리, 파전인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하면 세로토닌뿐이랴 엔돌핀에 도파민까지 나온다. 그러니 비오는 날엔 좋아하는 사람을 꼭 만나자

우리 사랑 만세다.


탁주·만세전(전화:830-4796)  서울시 금천구 독산3동 165-6  덕천빌딩


김현미 독산3동

방학이다!! 아~ 아이들은 마냥 즐거울 것이고, 엄마들은 아이들과 실랑이할 생각에 벌써 걱정이 앞설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동안 밀린 공부도 좀 하고, 부족한 과목도 찾아 보충도 하고, 책도 좀 읽으면 좋으련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이 큰 고민을 해결할 방법, 아이들과 이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일명, ‘박물관 피서법’을 권한다.  

박물관 피서법? 말 그대로 박물관에서 더위를 피하는 것! 박물관은 유물을 위한 적정 온도유지와 통풍은 물론,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이어서 당연히 쾌적한 실내 환경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전시유물도 가득하니 피서도 하고, 살아있는 체험활동까지,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그럼 어느 박물관을 갈까? 이번 여름방학엔 특별히 대학교 안에 있는 박물관들을 찾아가 보는 거다. 어, 대학교에도 박물관이 있었나? 물론이다. 거의 모든 대학에는 연구기관으로 박물관을 갖추고 있고, 일반 관람객에게도 개방하고 있다. 게다가 아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곳도 있어 활용하기에 더욱 좋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난후에는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대학캠퍼스를 산책해 보는 거다. 아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대학교가 굉장히 넓구나”, “나도 빨리 대학생이 되고 싶다”, “이담에 난 어느 대학에 갈까?”, “무얼 배우고 있을까?” “그때도 이 박물관이 있을까?” 등등 상상의 나래를 편다면 아이들이 저절로 공부에 의미를 두지 않을까 싶다. 물론 “넌 여기 꼭 와야 돼!”하는 강요는 금물! 

오늘은 몇몇 전문 주제를 가지고 있는 대학 박물관과 우리 동네에서 찾아가기 가까운 곳을 소개하기로 한다. 




<경희대학교 자연사박물관. 포유류 전시실. 가까이서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되어있다>


경희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안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과 자연자원이 잘 보존된 곳이다. 광물과 암석, 식물, 곤충, 수생생물, 포유류 등이 잘 전시되어 있는, 살 아 있는 자연체험학습장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배웠던 자연교과서를 들고 숨은 그림(?) 찾기 놀이를 해 보자. 교과서에 등장하는 동식물이나 암석, 식물 등을 전시장에서 찾아본다든가,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전시장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 아이들과도 함께 게임을 만들어 전시장을 보자. 새록새록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낼 것이다. 두 곳 모두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숙명여자대학교에 있는 정영양자수박물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은 각각 동양자수와 한국복식 분야의 전문박물관이다. 박물관 이름에서 눈치 챌 수 있는 것처럼 자수와 한국복식에 관해 두 전문가교수들이 일생동안 수집하고 연구한 유물 기증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두 곳은 또한 복식유물의 보존과 복원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옛날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살았을까,” “옷에는 어떤 장식을 했지?”, “저렇게 긴 치마를 입고 어떻게 일을 했을까?”, “아저씨들 옷도 종류가 많네”.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숙명여자대학교 정영양자수박물관. 동아시아 자수의 정수를 볼 수 있다.>


가까운 서울대학교 안에도 박물관과 규장각, 미술관이 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은 선사시대와 고대의 역사, 문화를 보여주는 고고역사실과 민속생활사실, 전통미술실이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물 500여점은 자체 소장품과 발굴조사로 수습된 유물이라고 하니 중학생이나 초등 고학년이면 그동안 배운 한국사를 대입해 보면 좋을 것이다. 

<서울대학교미술관 전경.>

규장각은 조선시대 정조임금 때 만들었던 왕립도서관인데 서울대 안으로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승정원일기, 의궤, 고지도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이다.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소중한 유물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서울대 미술관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독특한 건축디자인으로 유명한 곳이니 밖에서라도 꼭 그 건축미를 감상해 보시도록! 정문에서 멀지 않다. 


오현애 회장

 필자는 시흥4동에 거주하며 '박물관이야기' 회장이다. 금천교육협동조합 나눔 발기인회 대표로 활동하고있다.


세아이 아빠가 쓰는 성장일기 34번째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한 소리 한다. 또 무슨 건으로 책을 잡혔나 싶어 긴장한 채 들어보니 다행히 나의 잘못은 아니되 나의 자식들의 소행이 빚어낸 상황이란다. 아래 층 사는 아주머니가 올라와 제발 부탁이니 조용히 좀 살고 싶다며 신신당부 하고 갔다는 것이다. 우리 집은 독산1동에 위치한 건축한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주공아파트이다. 층간소음이 살인까지 부른다는 신문보도를 몇 차례 접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그런 사실을 체감하지 못했다. 원래 옛날에 지은 아파트가 더 튼튼한가 봐 하며 안심했었는데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요즘 신축된 아파트들처럼 윗집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옆집 아이 리코더 부는 소리, 아랫집 핸드폰 진동소리까지 들리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도 층간소음에는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지금까지 간과하면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윗집에 사사는 분들이 아이들이 없는 노부부만 살고 계신 집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 아! 그래서 그랬었구나. 층간소음에 강한 아파트라며 어느 정도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제지하지 않았는데 아랫집 사는 분들에게는 층간소음이 장난이 아니었나 보다.

 다음 날은 휴일이었다. 오전에 시간을 내서 조심스레 아랫집 현관을 두드려 본다. 인상 좋으신 아주머니가 문을 여시고 이래저래 해서 왔다고 말씀드리니 일단 들어오라신다. 거실에 서서 마치 벌서는 아이처럼 일단 사과부터 드리고 변명을 늘어놓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어리고 거기다 셋이나 되니 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냐고 하지만 저녁 늦은 시간이나 휴일에는 쿵쿵 울리는 소리가 너무도 거슬려서 집에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가 힘들기만 하다. 이런 점을 좀 주의해 주었으면 하다는 그런 요지였다.

 거듭거듭 죄송하다고, 아이들에게 충분히 이해시키고 집안에서는 될 수 있으면 잠만 자겠다는 거창한 공약까지 늘어놓고 넙죽 인사드리고 나왔다.

 “얘들아, 이리 와바” 아이들을 불러 모아본다. “아빠가 지금 아랫집 아줌마를 만나서 얘기하고 왔는데, 아파트라는 곳이 말이지 우리 집에서 뛰면 그 소리가 아랫집에 울려서 아줌마가 잠을 못 주무신데. 그러니까 집안에선 뛰어 다니지 말고, 특히 소파에서 점프하지 말고, 놀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놀아야 대, 알겠지?

물론 아이들은 냉큼 대답은 잘한다. 하지만 어찌 열 살도 안 된 생명력으로 파릇파릇한 기운으로 충만한 어린 것들이 몸뚱이를 어찌 가만둘 수 있겠는가. 오히려 집안에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법이지.

 나의 어린 시절, 그때의 서울은 아파트가 거의 없었다. 지하철 2호선 라인의 환승역인 대림역 근처가 나의 코흘리개 시절 살던 동네였는데 그때만 해도 2층집 옥상에 올라가면 남산타워까지 한 눈에 보일 정도로 시내에 고층건물이 없었다.(그러고 보니 엄청 나이 먹었군.ㅠㅠ)

세월은 무심하게 흘렀다. 코흘리개 어린아이는 40줄에 접어들었고 무밭 배추밭이었던 동네는 고층빌딩으로 즐비한 상업지구가 되었다. 아이폰가지고 노는 첨단세상은 좋은데 아파트에 딸려나오는 층간소음이란 불청객은 과연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성장을 하면 어느 정도 해결은 되겠지만, 지금이 문제인걸. 집안에 매트로 도배를 할까, 아이들을 묶어둘까(?), 아니면?...

남북통일보다 세계평화보다 더 풀기 어려운 층간소음 이라는 문제. 고민은 깊어가되 그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아랫집 부부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사과드리는 바이다. ㅠㅠ


                          독산1동 김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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